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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뚫린 루브르… 틱톡커들, 모나리자관에 자기 그림 전시

    또 뚫린 루브르… 틱톡커들, 모나리자관에 자기 그림 전시

    벨기에 출신 크리에이터들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실 벽에 자신의 그림을 몰래 걸어두고도 아무 제지 없이 빠져나갔다. 지난달 19일 왕실 보석 도난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루브르 보안에 또다시 구멍이 드러난 셈이다. 15일(현지시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벨기에 출신 틱톡커 두 명은 지난 13일 소셜미디어(SNS)에 루브르 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주변 벽에 자신들의 작품을 몰래 걸었다고 공개했다. 무모한 도전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보석 도난 사건 이후 보안이 실제 강화됐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이번 행동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영상에서 이들은 “레고로 조립 가능한 액자를 만들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려면 조각으로 분리해야 하지만 안데 들어가 다시 조립하면 된다. 그림도 말아서 들고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입장 과정부터 보안 검색대 통과, 전시실 도착까지 전부 촬영했다. 검색대를 지나친 뒤 전시실 한쪽에서 경비원을 피해 레고 액자와 자기 얼굴을 넣은 그림을 조립했다. 애초 ‘모나리자’ 바로 옆에 걸 계획이었지만 경비가 삼엄해지자 몇 미터 떨어진 다른 벽에 액자를 붙이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들은 “모나리자 벽엔 경비가 너무 많아 불가능했다. 하지만 같은 전시실에는 걸어뒀다”고 했다. 이들은 과거 벨기에 헨트 미술관에서도 같은 방식의 장난을 벌인 전력이 있다. 지난 5월에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이 열린 독일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 화장실에 27시간 숨어 있다가 무료로 경기를 관람해 화제를 모았다.
  • [씨줄날줄] 금속 자재로 전락한 문화유산

    [씨줄날줄] 금속 자재로 전락한 문화유산

    지난 9월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은 3000년 전 아메네모페 파라오의 금팔찌를 도둑맞았다. 파라오의 황금가면에 흔히 보이는 청금석이 박힌 금팔찌는 이탈리아 전시를 준비하던 문화유산복원연구소에서 사라졌다. 절도단은 값을 매기기 어려운 문화유산을 단돈 3800달러(약 545만원)에 금은방에 넘겼다. 금팔찌는 4000달러(574만원)에 다른 세공업자에게 팔렸고 곧 전기로에서 녹아 흔해 빠진 장신구가 됐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아시아 전역에서 금속 문화유산을 강탈해 무기를 만드는 데 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강화 전등사 동종도 이때 부평 조병창에서 쇳물이 돼 사라졌다. 전등사 스님들이 광복 이후 조병창을 찾아갔지만 동종이 보이지 않자 마당에 뒹굴던 송나라 시대 철종을 대신 달았다. 철종을 보물로 지정한 배경에는 일본의 무지막지한 반달리즘(문화유산 파괴)을 기억하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약탈한 금괴와 문화유산을 지금까지 은닉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침략의 선봉에 섰던 야마시타 도모유키 대장이 항복 직전 일본과 필리핀에 숨겨 뒀다는 것이다. 이른바 ‘야마시타 보물’이다. 필리핀 정부는 금괴 일부를 찾아내기도 했다. 국가 차원의 금속 문화유산 소멸 범죄는 러시아에서도 있었다. 러시아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소련은 러시아정교회 재산을 국유화하며 금속 의례용구를 모두 압수했다. 이때 많은 성당의 종이 역시 용광로로 보내졌다고 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나폴레옹 왕실 장신구 도난 사건은 카이로 금팔찌 사건과 닮았다. 그런데 루브르 장신구는 보석과 금 시세만 1억 달러(143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루브르는 ‘모나리자’도 도난당한 적이 있지만 너무 유명해 팔리지 않자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번 절도범들이 특별히 장신구를 노린 이유다. 수사당국도 나폴레옹 장신구를 녹여 보석과 금괴로 분리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한다는 소식이다.
  • [씨줄날줄] 영화 같은 ‘루브르 절도’

    [씨줄날줄] 영화 같은 ‘루브르 절도’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가 114년 전 ‘모나리자’ 도난 이후 최대 규모의 절도를 당했다. 일요일 개장 30여분 뒤 사다리차를 타고 침입한 4인조에게 ‘나폴레옹 3세 황후의 다이아몬드 왕관’을 비롯한 보석 8점을 털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철통 보안이 뚫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이 실제 상황이 된 것이다. ‘박물관 털이’는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사적 점유물로 전환시키는 간 큰 범행이다. 그래서 특별한 서사도 뒤따른다. 절도범이 세상의 주목을 받고, 도난당한 작품에는 명성이 덧입혀진다. 어떤 도둑들은 유명인이 됐다. 2010년 파리 현대미술관의 외벽을 타는 곡예 끝에 피카소와 마티스 등의 그림 5점을 훔친 베란 토미치의 이야기는 ‘파리의 스파이더맨’이란 제목의 넷플릭스 다큐로 제작됐다. 뭉크 전문 도둑인 팔 엥게르는 1988년 노르웨이에서 ‘절규’를 훔치려다 길을 잘못 들어 ‘뱀파이어’를 훔쳤다. 그는 4년 수감 동안에도 ‘절규’의 붉고 푸른 하늘을 잊지 못해 1994년 재범 끝에 ‘절규’를 훔치고는 신문에 ‘절규와 함께 첫아들이 태어났다’는 출생 광고를 냈다. 절도를 당한 빈자리에서 작품값이 더 높아진 사례는 흔하다. 모나리자는 루브르에서 사라진 2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화가 됐다. 영국 런던 덜위치 픽처 갤러리가 소장한 렘브란트의 ‘야코프 데 헤인 3세’ 초상화는 네 번이나 도난당해 기네스북까지 올랐다. 예술품 절도에는 다양한 작전이 동반되기도 했다. 스웨덴의 예술품 도둑들은 마치 영화에서처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동하기로 악명 높다. 2000년 스웨덴 국립박물관에서 기관총으로 무장한 강도들은 렘브란트와 르누아르 작품을 훔쳐 모터보트로 탈출했고, 2018년 스트렝네스 대성당에서 17세기 왕관을 훔친 도둑들은 자전거를 타고 도주하다 제트스키로 갈아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박물관의 예술품 절도가 이쯤 되면 세계 예술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 판이다.
  • 대낮 루브르 뚫은 형광 조끼 4인조…7분 만에 왕실 보석 사라졌다

    대낮 루브르 뚫은 형광 조끼 4인조…7분 만에 왕실 보석 사라졌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19일(현지시간) 오전 9시30분쯤 4인조 도둑이 사다리차를 이용해 2층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프랑스 왕실 보석 8점을 훔쳤다. 범행은 불과 7분 만에 끝났다. 로이터통신은 범인들이 직접 가져온 사다리차를 센강 변 외벽에 세워 창문을 절단한 뒤 ‘아폴론 갤러리’에 침입했다고 보도했다. 범행에는 전기톱이 사용됐으며 내부 진열장 두 곳이 파손됐다. 당시 박물관은 이미 개장해 관람객이 입장해 있었다. 프랑스 방송 BFM TV가 공개한 영상에는 형광 안전조끼를 입은 남성이 전기톱으로 유리 진열장을 절단하며 불꽃이 튀는 장면이 담겼다. 현지 언론들은 “공사 인부로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보석을 꺼내 들었고, 경보가 울리자 곧바로 탈출했다. 도둑 4명은 스쿠터 두 대에 두 명씩 나눠 타고 도주했으며 이 중 한 대는 루브르 인근 골목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형광 조끼, 전기톱, 장갑, 무전기 등을 수거했고, 범인들이 사용한 사다리차에 불을 지르려 한 흔적도 확인했다. “외제니 황후의 왕관 파손 회수…피해품 대부분 19세기 제정기 유산” AP통신은 도난품이 대부분 19세기 제정기 황후들의 보석이라고 전했다. 외제니 황후의 티아라와 대형 브로치, 마리 루이즈 황후의 에메랄드 목걸이·귀걸이, 마리 아멜리·오르탕스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 성유물 브로치가 포함됐다. 도난된 9점 중 1점은 외제니 황후의 왕관으로, 도주 중 떨어져 파손된 채 회수됐다. 이 왕관은 다이아몬드 1354개와 에메랄드 56개로 장식돼 있으며 루브르에서도 가장 귀중한 전시품 가운데 하나다. 조직범죄 가능성에 무게…정밀 계획된 7분로이터통신은 파리 검찰이 이번 사건을 전문 조직범죄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수사는 문화재 절도 전담반(BRB)이 맡았다. 경찰은 “사전에 치밀한 정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인들이 사용한 전기톱과 사다리차, 스쿠터 이동 동선 등을 감안하면 “군사 작전 수준의 계획 범죄”라는 평가도 나온다. “보안 구멍 드러나”…루브르 인력 감축 논란 재점화프랑스24는 이번 사건이 루브르의 보안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인력 감축과 관람객 과밀로 보안 인력이 부족하다는 내부 비판이 이어졌다. 노조는 “15년 동안 정규직 200명이 줄었다”며 “물리적 감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초부터 루브르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이며, 신형 CCTV와 통합 관제 시스템을 포함한 보안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마크롱 “유산에 대한 공격”…“범인 법정 세울 것”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엑스(X)에 “루브르 절도 사건은 우리 역사이자 유산에 대한 공격”이라며 “작품을 반드시 되찾고 범인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극우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루브르는 프랑스 문화의 상징”이라며 “이 사건은 국가의 수치이자 정부의 부패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이후 최대 충격 루브르 박물관은 1911년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가 ‘모나리자’를 훔친 사건 이후 여러 차례 도난을 겪었지만, 개장 직후 대낮에 벌어진 절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난이 일어난 아폴론 갤러리는 프랑스 왕실 보석이 전시된 공간으로 모나리자 전시실과 불과 250m 떨어져 있다. 루브르는 사건 직후 하루 동안 휴관했으며, 파리 경찰은 CCTV와 출입기록을 정밀 분석 중이다.
  • [포착] 공사 인부로 위장한 4인조, 루브르서 7분 만에 왕실 보석 훔쳐

    [포착] 공사 인부로 위장한 4인조, 루브르서 7분 만에 왕실 보석 훔쳐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19일(현지시간) 오전 9시30분쯤 4인조 도둑이 사다리차를 이용해 2층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프랑스 왕실 보석 8점을 훔쳤다. 범행은 불과 7분 만에 끝났다. 로이터통신은 범인들이 직접 가져온 사다리차를 센강 변 외벽에 세워 창문을 절단한 뒤 ‘아폴론 갤러리’에 침입했다고 보도했다. 범행에는 전기톱이 사용됐으며 내부 진열장 두 곳이 파손됐다. 당시 박물관은 이미 개장해 관람객이 입장해 있었다. 프랑스 방송 BFM TV가 공개한 영상에는 형광 안전조끼를 입은 남성이 전기톱으로 유리 진열장을 절단하며 불꽃이 튀는 장면이 담겼다. 현지 언론들은 “공사 인부로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보석을 꺼내 들었고, 경보가 울리자 곧바로 탈출했다. 도둑 4명은 스쿠터 두 대에 두 명씩 나눠 타고 도주했으며 이 중 한 대는 루브르 인근 골목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형광 조끼, 전기톱, 장갑, 무전기 등을 수거했고, 범인들이 사용한 사다리차에 불을 지르려 한 흔적도 확인했다. “외제니 황후의 왕관 파손 회수…피해품 대부분 19세기 제정기 유산” AP통신은 도난품이 대부분 19세기 제정기 황후들의 보석이라고 전했다. 외제니 황후의 티아라와 대형 브로치, 마리 루이즈 황후의 에메랄드 목걸이·귀걸이, 마리 아멜리·오르탕스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 성유물 브로치가 포함됐다. 도난된 9점 중 1점은 외제니 황후의 왕관으로, 도주 중 떨어져 파손된 채 회수됐다. 이 왕관은 다이아몬드 1354개와 에메랄드 56개로 장식돼 있으며 루브르에서도 가장 귀중한 전시품 가운데 하나다. 조직범죄 가능성에 무게…정밀 계획된 7분로이터통신은 파리 검찰이 이번 사건을 전문 조직범죄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수사는 문화재 절도 전담반(BRB)이 맡았다. 경찰은 “사전에 치밀한 정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인들이 사용한 전기톱과 사다리차, 스쿠터 이동 동선 등을 감안하면 “군사 작전 수준의 계획 범죄”라는 평가도 나온다. “보안 구멍 드러나”…루브르 인력 감축 논란 재점화프랑스24는 이번 사건이 루브르의 보안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인력 감축과 관람객 과밀로 보안 인력이 부족하다는 내부 비판이 이어졌다. 노조는 “15년 동안 정규직 200명이 줄었다”며 “물리적 감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초부터 루브르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이며, 신형 CCTV와 통합 관제 시스템을 포함한 보안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마크롱 “유산에 대한 공격”…“범인 법정 세울 것”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엑스(X)에 “루브르 절도 사건은 우리 역사이자 유산에 대한 공격”이라며 “작품을 반드시 되찾고 범인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극우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루브르는 프랑스 문화의 상징”이라며 “이 사건은 국가의 수치이자 정부의 부패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이후 최대 충격 루브르 박물관은 1911년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가 ‘모나리자’를 훔친 사건 이후 여러 차례 도난을 겪었지만, 개장 직후 대낮에 벌어진 절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난이 일어난 아폴론 갤러리는 프랑스 왕실 보석이 전시된 공간으로 모나리자 전시실과 불과 250m 떨어져 있다. 루브르는 사건 직후 하루 동안 휴관했으며, 파리 경찰은 CCTV와 출입기록을 정밀 분석 중이다.
  • 루브르 박물관이 털렸다…‘단 7분’ 사이 사라진 보석들 [포착]

    루브르 박물관이 털렸다…‘단 7분’ 사이 사라진 보석들 [포착]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석류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오전 9시 30분쯤 4인조 괴한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침입해 프랑스 왕실 보석류가 전시된 ‘아폴론 갤러리’에서 보석류를 훔쳐 달아났다. 라시다 다티 프랑스 문화장관은 이날 엑스(X)에 “오늘 아침 루브르 박물관 개관 때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며 “다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당국의 초기 조사 결과 범인들은 보석류 9점을 훔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1점은 범행 현장 인근에서 회수됐다. 범인들이 떨어뜨리고 간 보석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외제니 황후의 왕관으로, 부서진 채로 발견됐다. 이 왕관은 다이아몬드 1354개와 에메랄드 56개로 장식됐다. 프랑스 문화부는 아폴론 갤러리에서 도난당한 보물 8점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며, 나폴레옹 1세가 부인 마리 루이즈 황후에게 선물한 에메랄드·다이아몬드 목걸이, 18세기 마리 아멜리 왕비와 오르탕스 왕비와 관련된 사파이어 목걸이 등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범인들의 작전은 단 7분 만에 끝났다. 로랑 누네즈 내무장관에 따르면 범인들은 사다리차를 이용해 건물에 진입해 아폴론 갤러리 진열장 2개를 부순 뒤 도주했다. 외신들은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다리가 박물관 2층에 걸쳐져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도했다. 이후 경찰이 진입하면서 박물관은 봉쇄됐고, 주변 도로도 폐쇄됐다. 박물관은 이날 하루 휴관했다. 아폴론 갤러리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프랑스 왕실의 화려한 보석류가 전시된 공간이다.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는 불과 250m 떨어진 곳에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지난해에만 방문객 900만명이 찾은 관광 명소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부터 유럽까지 전 세계 유물과 예술 작품 3만 3000점을 전시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이 도난 사건의 표적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11년 전직 박물관 직원인 이탈리아인 빈센조 페루자는 밤새 빗자루 보관장에 숨어 있다가 코트 안에 모나리자 그림을 숨겨둔 채 그대로 도망쳤다. 그림은 2년여 만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발견돼 회수됐다.
  • 피카소 정물화, 운송 도중 사라졌다

    피카소 정물화, 운송 도중 사라졌다

    도난 사고를 가장 많이 당한 화가로 유명한 ‘입체파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의 정물화가 모국 스페인에서 운송 도중 사라졌다. 18일(현지시간)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에 따르면 지난 2일 수도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그라나다로 향하던 피카소의 1919년 작 ‘기타가 있는 정물’의 행방을 경찰이 수사 중이다. 사라진 그림은 개인 소장품으로 인물화 캔버스 규격인 1호(22.7×15.8㎝)보다도 작은 가로 9.8㎝, 세로 12.7㎝ 크기다. 피카소 작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레도르 파인 아트’는 도난당한 그림이 몇 년 전 60만 유로(약 10억원)에 팔렸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카하 그라나다 문화센터에서 지난 9일부터 시작해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정물: 움직이지 않는 것의 영원함’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옮기다가 발생했다. 나머지 50여점 이상의 그림들은 무사히 그라나다에 도착해 현재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그라나다는 자동차로 약 4시간 걸리는데, 사라진 ‘기타가 있는 정물’은 소장자의 집에서 운송회사로 먼저 옮겨졌다. 운송회사는 나머지 전시 작품이 모두 준비되자 2일 이동을 시작했고, 목적지 그라나다로부터 27㎞ 떨어진 곳에서 야간 정차가 한 번 있었다. 카하 그라나다 센터는 전시 작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모든 작품을 한꺼번에 옮겼다. 지난 6일 작품의 포장을 벗겨 목록과 비교 확인하던 직원들은 피카소 작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시회 개막 이후 1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작품의 행방은 묘연하며, 경찰은 그림이 사라진 시점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한편 19일에는 연간 900만명이 찾는 프랑스 파리의 관광 명소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해 박물관이 하루 문을 닫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소형 전기톱으로 무장한 4인조 강도단은 이날 오전 스쿠터를 타고 나타났으며, 공사 구역을 통해 관내에 침입했다. 이들은 대담하게 프랑스 왕실의 보석이 전시된 ‘아폴론 갤러리’로 직행해 나폴레옹과 황후의 왕관, 목걸이, 브로치 등 보석류 9점을 훔쳤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191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도난당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가 훔쳐낸 ‘모나리자’는 2년여 만에 루브르로 다시 돌아왔다.
  • ‘모나리자 도둑’ 될뻔했던 피카소의 손바닥만 한 작품 사라져

    ‘모나리자 도둑’ 될뻔했던 피카소의 손바닥만 한 작품 사라져

    가장 도난 사고를 많이 당한 화가로 유명한 ‘입체파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의 정물화가 모국 스페인에서 운송 도중 사라졌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는 지난 2일 수도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그라나다로 향하던 피카소의 1919년작 ‘기타가 있는 정물’의 행방을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사라진 그림은 개인 소장품으로, 인물화 캔버스 규격인 1호(22.7×15.8㎝)보다도 작은 가로 9.8㎝, 세로 12.7㎝의 크기다. 피카소 작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레도르 파인 아트’는 도난당한 그림이 몇 년 전 60만 유로(약 10억원)에 팔렸다고 밝혔다. 6만점 이상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남긴 피카소는 1000점 이상의 유작이 도난, 분실, 소유권 분쟁을 겪고 있다. 이번 사고는 카하 그라나다 문화센터에서 지난 9일부터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정물: 움직이지 않는 것의 영원함’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옮기다 발생했다. 나머지 50여점 이상의 그림들은 무사히 그라나다에 도착해 현재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그라나다는 자동차로 약 4시간이 걸리는데 사라진 ‘기타가 있는 정물’은 소장자의 집에서 운송회사로 먼저 옮겨졌다. 운송회사는 나머지 전시작품이 모두 준비되자 2일 이동을 시작했고, 목적지 그라나다에서 27㎞ 떨어진 곳에서 야간 정차가 한 번 있었다. 카하 그라나다 센터는 전시 작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모든 작품을 한꺼번에 옮겼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인 6일 작품의 포장을 벗겨 목록과 확인하던 직원들은 피카소의 작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시회가 개막한 지 1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작품의 행방은 묘연하며, 경찰은 그림이 사라진 시점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아직 체포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대한 작품 규모와 높은 시장가치, 다양한 크기 때문에 도둑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것이 피카소 작품이지만, 작가 본인도 예술품 절도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 1911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도난당하자 피카소도 조사를 받게 됐다. 피카소는 루브르박물관에서 도난당한 조각상을 갖고 있다가 모나리자 절도범으로 몰릴 뻔한 것이다. 실제 범인은 루브르 직원이었던 빈센조 페루자였는데 그는 이탈리아로 작품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에 모나리자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 75세 가왕 조용필, 추석 연휴 안방 사로잡았다

    75세 가왕 조용필, 추석 연휴 안방 사로잡았다

    “무대에서 죽는 것. 그것이 로망이죠. 노래하다 죽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제 꿈입니다.” 추석 연휴 안방극장의 주인공은 ‘가왕’ 조용필(75)이었다. KBS가 지난 6일 방영한 ‘광복 80주년 대기획-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가 전국 시청률 15.7%를 기록해 추석 연휴 기간 지상파·종편·케이블을 통틀어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방송 중 분당 최고 시청률은 18.2%까지 치솟았다. 이번 방송은 지난달 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를 담았으며 조용필의 단독 공연이 KBS에서 방송된 것은 1997년 ‘빅쇼’ 이후 28년 만이다. 조용필은 인터뷰 영상에서 “지금이 아니면 여러분을 뵐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면서 “내 소리가 앞으로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빨리 (공연을) 해야겠다 싶었다”며 방송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용필은 150분간 게스트 없이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모나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고추잠자리’, ‘꿈’, ‘바운스’ 등 히트곡 28곡을 열창했고 세대를 뛰어넘는 음악의 힘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KBS는 이번 공연과 관련해 프리퀄과 본 공연, 비하인드 다큐멘터리까지 총 3부작 특집과 본 공연 특별판 재방송까지 집중 편성했다. 지난 8일 공개된 콘서트 비하인드 다큐멘터리는 7.3%, 같은 날 연이어 재방송된 특별판도 7.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제작진은 고척돔의 압도적인 규모감과 생생한 공연 실황은 물론 조용필의 명곡을 따라 부르며 울고 웃는 관객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안방 떼창’을 고려한 자막 편집으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기도 했다. 1997년 ‘빅쇼’의 조연출을 맡았던 한경천 KBS 예능센터장은 “조용필의 목소리는 28년이 지났음에도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이번 공연은 대한민국이 함께 부르고 함께 위로받은 국민의 무대였고 추억이 아닌 현재의 감동이었다”고 밝혔다.
  • 파리, 예술의 도시를 다시 읽다

    파리, 예술의 도시를 다시 읽다

    에펠탑과 루브르, 역사와 스카이라인의 상징고전서 현대까지 500년, 예술 남긴 치유언어예술의 도시 파리가 지닌 빛과 그림자가 한 편의 지적 향연으로 펼쳐졌다. 동신대 DS-TOGETHER 여성리더십 최고위과정에서 2일 박소영 작가를 초청해 ‘프랑스 예술 기행’을 주제로 특강을 개최했다. 박 작가는 루브르의 고전 명작에서 현대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예술 500년의 궤적을 압축해 들려주었다. 단순한 미술사가 아닌, 인간과 시대를 관통하는 ‘치유의 예술’을 웅변하는 자리였다. 19세기 오스만 남작의 도시 개조 이후 큰 변화가 없는 파리는 지금도 고층 건물이 드문 덕분에 어디에서든 에펠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17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에펠탑, 그리고 200주년에 맞춰 완공된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는 혁명 정신과 근대 문명의 궤적을 상징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예술의 정수다. 박 작가는 “수많은 인파가 ‘모나리자’ 앞에 몰리는 현상은 500년 넘게 인류를 사로잡는 작품의 힘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이주하며 가져온 작품은 오늘날 프랑스 문화유산의 정점으로 남아 있다. 루브르의 명작들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집약한다.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교황 앞에서 황제가 스스로 왕관을 쓰는 장면을 담아 세속 권력이 교황권을 압도함을 상징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는 귀족과 민중이 혁명의 한가운데서 연대하는 순간을 포착, 근대 프랑스 정신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파리는 인상주의의 발원지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한때 조롱을 받았으나 ‘인상파’라는 이름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내와 아들의 죽음, 백내장이라는 개인적 비극 속에서도 그는 연못의 ‘수련’ 연작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아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치유의 미학’으로 평가된다. 론 뮤익은 극사실적 조각으로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충격과 성찰을 동시에 안긴다. ‘피노 컬렉션’의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박제된 비둘기로 미술관 권위를 풍자했고, 한국 작가 김수자는 보따리 설치작업을 통해 이별과 소중함을 동시에 담아냈다. 박 작가는 “현대미술의 난해함은 곧 작가의 사유를 읽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강연을 관통한 핵심어는 ‘치유’였다. 박 작가는 “예술가에게 최고의 찬사는 ‘당신의 작품 덕분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이라며 일본 나오시마 사례를 언급했다. 한때 쇠락한 어촌이던 이 섬은 예술을 매개로 삶의 활력을 회복해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했다. 예술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공동체를 되살리는 힘을 지녔다. 20세기 거장 피카소의 삶은 천재성과 스캔들이 교차했다. 그는 청년 시절 친구의 죽음으로 ‘청색 시대’를 열었고, 새로운 사랑과 함께 ‘장밋빛 시대’로 전환했다. 연인 올가, 마리 테레즈, 도라 마르, 프랑수아즈 질로 등은 모두 그의 뮤즈이자 창작의 원천이었다. ‘우는 여인’ 연작이나 연인의 초상은 사생활의 그림자가 예술로 승화된 사례다. 피카소의 창조적 전환은 폴 세잔에게서 비롯됐다. 세잔은 한 화폭에 여러 시점을 동시에 담아내며 원근법을 파괴했고, 이는 피카소에게 “그림은 입체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이를 발전시켜 입체주의를 창시, 미술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박소영 작가는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곧 작가의 삶과 시대정신을 읽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강연은 예술이 단순한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비추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치유의 언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 장성군, 올해 ‘장성군민의 상’ 수상자 선정

    장성군, 올해 ‘장성군민의 상’ 수상자 선정

    전남 장성군이 올해 ‘장성군민의 상’ 수상자로 사회복지·체육 부문 변태섭 씨, 산업경제 부문 김의병 씨를 선정했다. ‘장성군민의 상’은 지역사회 발전 등 공적이 있는 개인·단체에 수여하는 장성군의 최고 명예상이다. 군은 앞선 17일 군청 상황실에서 장성군민의 상 심사위원회 회의를 열고 올해 수상자를 최종 결정했다. 사회복지·체육 부문 변태섭 씨는 장성 출신 사업가로 쌍마공업사와 모나리자 화장지 창업을 통해 지역의 위상을 높이고, 자수성가의 모범을 보여 왔다. 다문화가정·참전용사 지원, 장학사업 등 사회 환원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현재 주간 장성신문사 회장을 맡고 있다. 산업경제 부문 김의병 씨는 대한민국 김치품평회에서 2023년, 2025년 두 차례 대상을 수상한 농업회사법인 ㈜새벽팜 대표다. 현재 해외 수출을 통해 전라도 김치의 맛을 세계에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꾸준한 나눔 실천은 물론, 재광장성군향우회 회장을 맡아 고향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장성군은 오는 26일 공설운동장 옐로우시티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제48회 장성군민의 날 및 제27회 장성군민체육대회’에서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 고척돔 1만 8000 관객 홀린 가왕… 추석연휴 안방서 만난다

    고척돔 1만 8000 관객 홀린 가왕… 추석연휴 안방서 만난다

    “여러분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왕’ 조용필(75)이 팬들과 또 한번의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 1997년 KBS ‘빅쇼’ 이후 28년 만에 방송을 통해 팬들과 만난다. 이를 위해 지난 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공연이 녹화됐다. 공연은 예약 개시 3분 만에 전석 매진됐고 1만 8000여명이 현장을 찾는 등 높은 관심 속에 펼쳐졌다. 녹화분은 오는 10월 6일 방송된다. 공연 날 반짝이는 응원봉 물결이 일렁이는 가운데 무대에 등장한 조용필은 150분간 28곡을 열창했다. ‘미지의 세계’로 포문을 연 조용필은 ‘못 찾겠다 꾀꼬리’, ‘자존심’ 등 흥겨운 리듬의 히트곡을 연이어 선보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그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조용필은 “28년 만에 TV 앞에 서니 떨린다”면서 “여러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노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해마다 가수상을 휩쓰는 등 1980년대 문화 아이콘이었던 조용필의 과거를 되짚어 보고 K팝의 시초이자 현재진행형 가수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그의 음악 세계를 조명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흘러나오자 공연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고, 관객들은 ‘가지 말라고’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잊혀진 사랑’을 한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이어 통기타를 메고 등장한 조용필은 ‘허공’, ‘그 겨울의 찻집’, ‘Q’ 등을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순서를 마련해 큰 호응을 얻었다. ‘태양의 눈’에서는 강렬한 깃발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아시아의 불꽃’과 ‘모나리자’에서는 화려한 무대 장치가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앙코르곡 ‘여행을 떠나요’를 부를 때는 관객 머리 위로 대형 애드벌룬이 떠다니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광주에서 온 나정훈(58)씨는 “국민가수 조용필의 음악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면서 “음악적으로 갈수록 젊어지고 발전하는, 늙지 않는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계란으로 ○○ 그렸다고 760만 조회수?…“빨리 특허 내야” SNS 난리, 뭐길래

    계란으로 ○○ 그렸다고 760만 조회수?…“빨리 특허 내야” SNS 난리, 뭐길래

    인도의 한 남성이 뜨거운 팬 위에 계란만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를 그려 오믈렛을 만드는 기발한 영상이 화제다. 접시 위 완성작에는 모나리자 초상화가 뚜렷하게 구현됐다. 13일(현지시간) 인도 힌두스탄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계란으로 모나리자를 재현한 오믈렛 영상이 ‘오믈렛 다 빈치’라는 제목으로 지난 11일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돼 760만 조회수와 35만 ‘좋아요’를 돌파하며 화제몰이 중이다. 영상 속에서 남성은 먼저 뜨거운 팬 위에 계란을 이용해 모나리자의 윤곽을 조심스럽게 그려나간다. 그다음 계란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 그림이 연한 갈색으로 변하도록 했다. 인물 그림이 완성되자 남성은 남은 계란 반죽을 팬에 부어 오믈렛 제작을 마무리했다. 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걸작은 접시 위에 올려진 요리로 재탄생했다. 요리와 예술의 절묘한 만남을 담은 이 영상은 온라인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댓글 창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시청자들은 “완전한 예술 작품”이라며 “도저히 믿기 어렵다”고 반응했다. “미술관에 걸어둬야 할 작품”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모나리자 오믈렛으로 명명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한 네티즌은 “형님, 해외 식당들이 베끼기 전에 빨리 특허 출원하세요”라며 재치 있는 조언을 건넸다. 수많은 이용자가 요리로 이 정도 독창성을 구현한 사례를 처음 본다고 입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이건 단순한 조식이 아니라 진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가 특히 주목받았다.
  • 세계 최고가 115억원짜리 우표 새달 한국 온다

    세계 최고가 115억원짜리 우표 새달 한국 온다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고 값비싼 우표인 ‘1센트 마젠타’가 다음달 국내에 처음 공개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다음달 17일부터 닷새간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리는 ‘세계 우표 전시회 필라코리아 2025’에서 세계 65개국의 희귀 우표 20여만장을 전시한다고 25일 밝혔다. 우표계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1센트 마젠타’는 1856년 영국령 기아나(현 가이아나)에서 폭풍으로 우표가 공급되지 않자 우체국장이 소량으로 발행해 임시 우표로 사용됐다. 현재 단 한 장이 남아 있다. 202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830만 달러(약 115억원)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표가 됐다.
  • 루브르 ‘모나리자’ 처럼… ‘미인도’ 내년부터 대구간송미술관서 상설 전시

    루브르 ‘모나리자’ 처럼… ‘미인도’ 내년부터 대구간송미술관서 상설 전시

    내년부터는 조선 후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미인도’를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매일 볼 수 있게 된다. 18일 대구시와 대구간송미술관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기획전 개막과 함께 정밀 복제본 2점과 원본을 교차 전시함으로써 미인도를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원본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관람객이 언제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정밀 복제본을 제작할 계획이다. 정밀 복제본 제작에는 6개월가량 소요된다. 이는 보물급 국가유산인 미인도가 연간 90일의 적산조도 허용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제약에 따른 결정이다. 미인도 상설 전시는 도심 관광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미술사의 대표작인 미인도는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에 비견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대구시와 간송미술문화재단도 협력을 통해 루브르박물관이 모나리자를 연중 전시하는 것처럼, 미인도를 연중 전시하기로 했다. 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미인도 정밀복제본 제작과 상설 전시는 원작 보존과 시민 문화 향유를 동시에 실현하는 모범적인 전시 모델”이라며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파리를 상징하듯, 신윤복의 미인도가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권위보다 미소, 통치자의 초상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권위보다 미소, 통치자의 초상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대통령 선거 유세 활동이 한창일 때 거리에는 대통령 후보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안내 홍보물, 리플릿, 포스터 등을 보면 통치자 초상의 전형적인 원칙과 변용이 보인다. 고대 이집트 시기부터 통치자의 모습을 새긴 석상은 통치자의 절대 권력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고대 로마 제국 시대 역시 광장이나 공공장소에 황제의 기마상을 설치해 통치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요했다. 이 시기 모든 시민은 파라오나 황제에 대해 절대복종해야 하는 종속 관계였다. 에른스트 칸트로비츠는 ‘왕의 두 신체’라는 저서에서 왕에게는 두 가지 신체 즉 ‘자연의 신체’와 ‘정치적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연의 신체란 인간으로서 질병과 노쇠함을 겪고 결국엔 죽음을 맞는 신체를 말한다. 반면 정치적 신체 개념은 질병, 노화, 죽음을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로 신성시된 개념이다. 따라서 정치적 신체는 피와 살, 땀, 뼈 등 자연의 신체 개념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통치자들은 정치적 신체를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거나 이미지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여겨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야생트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1701)이다. 환갑에 가까운 자연인 루이 14세는 노화와 신체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가발, 구두를 착용하고 망토를 길게 드리워 신체를 과장했다. 루이 14세는 한 손을 허리에 올려 아킴보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킴보 자세란 팔꿈치를 바깥으로 향하게 하는 통치자의 전통적인 자세다. 또한 칼은 권력의 표상으로서 정치적 신체를 강조하는 필수템이다. 예술가들은 통치자 초상의 주문을 받으면 약점을 지닌 권력자의 신체를 정치적 신체로 만들어야 했다. 예술가들은 통치자의 약점을 감추고 노화와 질병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더 나아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솜씨로 자연인을 절대 권력자로 만들어 왔다. 예술가들은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픈 권력자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동조해 왔던 것이다. 현대 들어서도 정치인의 초상에서 정치적 신체 원칙은 비교적 잘 지켜져 왔다. 얼굴의 잡티나 흉터를 제거하고 대칭 비율을 조절한다든지 살짝 보이는 머리의 빈 곳을 채우는 정도로 보완하고 있다. 점점 권력자나 정치인들의 정치적 신체 개념은 약화되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역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를 살펴보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자신이 이끌 방향을 안내하거나 자신의 국정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때론 두 손을 맞잡고 신중하게 생각 중인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후보는 살짝 튼 모나리자의 자세를 유지하고 온화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21세기 지도자는 피, 땀, 눈물도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자연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우리도 정말 지쳤다”…방문객 줄 섰는데 4시간 문 닫은 佛루브르, 왜

    “우리도 정말 지쳤다”…방문객 줄 섰는데 4시간 문 닫은 佛루브르, 왜

    세계적인 관광 명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지난 16일(현지시간) 갑자기 4시간 동안 문을 닫았다. 직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인파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 항의하며 파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AP통신,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은 이날 4시간 동안 문을 닫았다가 오후 2시 30분에 다시 문을 열었다. 루브르 박물관이 갑자기 문을 닫는 것은 드문 일이다. 과거 전쟁이나 코로나19, 일부 파업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휴관한 적은 있으나 직원들이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파업을 한 적은 없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날 오전 전시실 안내원, 매표소 직원, 보안 인력 등 대부분의 현장 직원이 근무를 거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박물관 직원들이 소속된 노동총동맹(CGT)의 문화 부문 지부 대변인 크리스티안 갈라니는 이날 오전 진행된 월례 회의에서 파업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갈라니는 “우리는 너무 지쳤고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파업 이유로 갈수록 열악해지는 근무 환경을 꼽았다. 갈라니는 지난 15년 동안 루브르 박물관에서 2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려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문객이 너무 많고 전시실 상태도 매우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방문객은 약 870만명인데 이는 박물관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두 배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의 루브르 박물관 운영 보조금은 지난 10년 동안 20% 이상 감소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 ‘모나리자’는 박물관 직원들에게 골칫거리다. 하루 평균 2만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나리자 앞에 몰려들어 혼잡한데다 소음도 심하다. 이번 파업은 지난 1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루브르 박물관 개보수를 위한 ‘10년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이뤄졌다. 이 계획은 누수, 온도 변화, 시설 노후화, 관람객 과밀 문제 해결을 골자로 한다. 한 직원은 “우리는 ‘지금’ 압박받고 있다”며 “예술 작품만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보호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반발했다. 한편 박물관은 18일 정상 개관한다.
  • “질병·죽음의 공포는 창작 자양분”… 심리 묘사로 표현주의 개척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질병·죽음의 공포는 창작 자양분”… 심리 묘사로 표현주의 개척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고통은 나 자신과 예술의 일부”어린 시절엔 결핵, 평생 만성병 앓아5세부터 부모 형제 가족 5명 잃어‘병든 아이’ 연작 그려 슬픔 치유·속죄“인간의 살아 있는 감정 그릴 것”“주관적 경험·감정 표현” 예술관 밝혀사실 재현하는 기존 흐름에서 탈피‘절규’는 실존적 불안·고뇌 그린 걸작질병이 안겨 주는 고통과 창조성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다. 고통과 질병은 창조성을 빼앗는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지만, 한편으로 창조의 불씨를 지피는 동력이 된다. 노르웨이의 거장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고통과 창조의 이중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술가다. 그는 평생 병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았지만 고통을 창작의 자양분으로 삼아 독창적 예술세계를 창안했다. 뭉크가 남긴 일기와 기록을 통해 그가 어떻게 고통스러운 개인사를 창조성으로 승화시켰는지 살펴보자. 첫 번째 명언, “내 고통은 나 자신과 예술의 일부가 됐다. 질병과 불안이 없었다면 나는 키 잃은 배와 같았을 것이다.” 뭉크의 일기에 적힌 이 문장은 그가 고통을 예술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증거물이다. 뭉크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5세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14세가 되던 해에는 가장 의지했던 누이마저 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결핵은 노르웨이 사회와 뭉크 가족에게 끊임없는 위협이었지만 치료법이 없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남동생은 폐렴으로, 여동생은 정신병으로 고통받다 숨을 거두었다. 그가 26세 되던 해에는 우울증과 종교적 강박에 시달리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몸이 허약했던 뭉크 자신도 어린 시절 결핵을 앓았고 일평생 만성적인 질병과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다. 이런 비극적 가족사는 “나는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인 결핵과 광기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질병, 광기, 죽음은 내 요람을 둘러싼 천사들이었고, 그들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는 뭉크의 고백에서도 나타난다. 반복적인 상실과 잦은 질병의 경험,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가족력에 따른 불안감이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작품세계의 주제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누이의 임종 순간을 묘사한 작품 1 ‘병든 아이’는 가족의 병과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픈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킨 과정이 담겨 있다. ‘병든 아이’ 연작 중 첫 번째인 이 작품은 15세의 누이 소피에를 결핵으로 잃은 뭉크의 상실과 죄책감을 반영한다. 소녀는 창백하고 병약한 모습으로 침대에 기대 앉아 허공을 응시한다. 소녀를 간병하던 이모 카렌이 죽어 가는 조카의 손을 잡고 흐느낀다. 보호자의 표정과 몸짓에서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이 느껴진다. 임종을 앞둔 환자보다 살아 있는 가족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둡고 침울한 병실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소녀의 얼굴 주변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아 밝게 표현됐다. 죽음과 삶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영혼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뭉크는 1885~1926년 누이의 임종 순간을 6점의 회화와 석판화, 드라이포인트, 에칭 등 판화로 반복해 그렸다. 그가 40년 넘게 같은 장면을 다양한 버전으로 작업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애도와 추모의 감정이다. 뭉크가 가족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누이를 잃은 경험은 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실과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누이의 마지막 순간을 화폭에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늘 기억하며 함께 있다고 느꼈다. 다음으로 뭉크 자신도 어린 시절 폐결핵으로 죽을 뻔하다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다. 누이는 죽었는데 자신은 혼자 살아남은 데 대한 죄책감이 컸다. 그는 ‘병든 아이’ 연작을 그리면서 속죄하며 고통을 치유했다. 이는 “나는 어떤 화가도 내가 ‘병든 아이’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깊은 슬픔을 작품에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 그림을 수없이 다시 작업했다. 죽어 가는 누이의 투명하고 창백한 피부, 떨리는 입술과 손을 포착하기 위해 몇 번이고 애썼다. 이 작품은 나의 예술에 새로운 길을 열어 준 돌파구이자 이후 내 작업의 기원이 된 영혼의 그림”이라는 뭉크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병든 아이’ 연작은 한 예술가의 개인적 고통이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 명언, “나는 더이상 뜨개질하는 여자나 책을 읽는 남자를 그리지 않겠다. 대신 사랑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살아 있는 감정을 그리겠다.” 뭉크가 1889년 파리 근교 생클루에 머물던 시기에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생클루 선언’에 나오는 글이다. 그는 이 선언을 통해 예술의 본질이 외부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화가의 주관적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급진적 예술관을 밝혔다. 또 회화 방식에 대해서도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보았던 것을 그린다”며 그림이 기억을 통해 걸러지고 재구성된 내적 진실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생클루 선언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존 미술에서 다뤘던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심리적 주제들을 표현하는 혁신적 예술관을 제시하며 표현주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국립오슬로미술관은 “뭉크는 이 선언을 통해 사실을 재현하는 기존 미술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표현주의로 나아갔다”고 평가한다. 작품 2 ‘절규’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닌 가슴으로 느낀 감정을 그리겠다는 ‘생클루 선언’이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실현된 걸작이다. 성별을 알 수 없는 해골을 닮은 인물이 피처럼 붉은 하늘과 꿈틀거리는 검푸른 피오르(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를 배경으로 다리 위에 서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다. 이 작품은 뭉크가 1892년 1월 22일, 친구 두 명과 산책하던 중 경험한 극심한 불안감에서 탄생했다. 그는 일기에 “해가 지고 있었고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갑자기 검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 하늘에 피의 불꽃 혀가 일렁거렸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에 몸을 떨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가 들리는 듯한 환청을 경험했다”고 적었다. 뭉크는 눈앞에서 본 현실이 아니라 기억 속 특정 순간에 느꼈던 공포와 불안감을 왜곡된 형상, 소용돌이치는 선, 강렬한 색채를 통해 시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를 휩쓴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고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꼽는다. 하지만 처음 공개된 당시에는 주제와 표현기법의 혁신성으로 인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 미술비평가 헨리크 그로슈는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뭉크의 정신 건강 상태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흥미롭게도 작품 3의 화면 왼쪽 위 구석에는 “미친 사람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이라는 연필로 쓰인 듯한 글귀가 남아 있다. 2021년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정밀 분석 끝에 뭉크 본인이 직접 썼다고 확인했다. 당시 뭉크의 정신 상태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고, 자신에 대한 비난과 오해에 시달리던 뭉크가 분노와 좌절감을 이 글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명언, “예술은 네 심장의 피에서 태어나야 한다. 예술은 너의 심장의 피다.” 뭉크는 1891년에 쓴 일기에서 예술을 피에 비유한 명언을 남겼다. 피가 생명 유지에 절대적인 것처럼, 예술은 인간의 가장 깊고 진실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피는 창작에 따르는 고통과 희생을 상징한다. 이는 “예술은 기쁨과 슬픔에서 자라는데, 그중에서도 슬픔에서 가장 많이 자란다”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창작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예술가의 헌신적 노력을 강조하는 뭉크의 예술철학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니체는 “나는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뭉크와 니체는 둘 다 예술이 자기희생적인 고통의 결과물이며 진실한 표현만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노년의 뭉크는 죽음과 소멸이라는 인간적 한계를 넘어 영원성을 갈망했다. “내 썩어가는 육신에서 꽃이 자라날 것이고, 나는 그 꽃들 속에 있으리라. 그것이 곧 영원이다”라며 육신의 소멸 후에도 예술을 통해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세상을 떠나기 전 홀로 집에서 4년에 걸쳐 그린 자화상 작품 4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에 그의 마지막 바람이 담겨 있다. 늙고 병든 모습의 뭉크가 관을 연상시키는 시계와 사후의 안식처이자 소멸의 공간을 상징하는 침대 사이에 차렷 자세로 서서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의 꼿꼿한 자세는 육체적 쇠락에도 예술가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그의 등 뒤 빛으로 가득 찬 실내 벽에는 그가 그렸던 그림들이 걸려 있다. 이 작품들은 그가 평생 탐구한 창조라는 병이 빚어낸 찬란한 결과물이자 소멸하는 육신을 넘어 영원히 빛날 예술혼을 의미한다. 그는 “나에게 그림 그리기란 병이다. 그러나 나는 이 병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 병을 더욱 깊이 파고들고 싶다”고 말하며, 창작을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뭉크의 삶과 예술을 통해 우리는 삶의 어둠조차도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치유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그림 이상의 혁신적 발명품, 마담 조콩데의 미소 [으른들의 미술사]

    그림 이상의 혁신적 발명품, 마담 조콩데의 미소 [으른들의 미술사]

    루브르에서 만나다<3>: 인간 탐구의 끝판 ‘모나리자’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나리자’다. ‘리자 부인’이라는 뜻의 모나리자는 피렌체 상인 프란체스코 델조콘도의 부인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마담 조콩데’(La Joconde)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연간 1000만명에 달하는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가장 큰 방에 ‘모나리자’를 걸어놓았다. 그러나 많은 관람객들에 떠밀려 모나리자를 충분히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모나리자’가 이토록 유명한 이유는 당시 작품들과 다른 혁신적인 기술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먼저 4분의 3면으로 앉은 모습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자세였다. 당시 그리스도나 성모만 정면상이었고, 일반 인물들은 비교적 그리기 쉽게 측면으로 그렸다. 다빈치는 모델의 자세로 이 세상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냈다. 이 자세는 인물의 양감과 함께 자연스러운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 다빈치 발명 덕분에 현대 초상화뿐 아니라 오늘날 입사용 원서 사진들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자세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은 모나리자 미소다. 중세 시대는 신 중심의 사회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금기시됐다. 사랑, 웃음, 슬픔이라는 인간과 관련된 모든 감정은 죄악이었다. 1000년 안팎의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그 시대를 살던 다빈치는 인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해부도 마다하지 않았고,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도 그는 인간의 몸속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다빈치는 미소의 비밀을 찾아냈다. 인간이 미소를 지으려면 몇 개의 근육이 움직이는지 연구하던 다빈치는 입가 주변의 근육과 뺨, 눈가 주변의 근육 44개가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 바로 미소라는 걸 발견했다. 다빈치는 날카로운 윤곽선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붓질을 통해 미소를 그렸다. 이 기법을 ‘스푸마토 기법’이라 한다. ‘안개 낀’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푸마토는 윤곽선을 여러 번 흐릿하게 칠해 경계를 없애는 방법이다. 윤곽선이 흐릿하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는 어느 날엔 수줍게, 어느 날엔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인다. 날마다 다른 빛의 양, 보는 사람의 위치,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관람객 각자의 행복 곡선이나 다름없는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는 500년 전 한 인간이 인간을 깊이 연구한 결과다.
  • 여신의 몸 위에 부린 ‘무명 작가’의 솜씨 [으른들의 미술사]

    여신의 몸 위에 부린 ‘무명 작가’의 솜씨 [으른들의 미술사]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은 규모 면에서나 소장작 수로나 명성으로나 ‘세계 최고’라 불린다. 코로나 펜데믹 이전에는 1000만명 이상 방문했고, 2024년에는 873만여명이 찾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술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50만여점에 이르는 소장작 가운데 반드시 봐야할 작품을 중심으로 12회에 걸쳐 다뤄보고자 한다. 루브르에서 만나다<1>: 사모트라케 섬의 니케 루브르 박물관은 12~13세기에 궁전으로 지어져 16세기 프랑스 왕의 거처로 사용됐고 1680년대 루이14세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옮겨가면서 루브르 궁전은 왕실 컬렉션을 전시하는 곳으로 활용됐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793년에 컬렉션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가 나폴레옹 집권기에 잠시 폐쇄됐다. 프랑스 제국 시기에 왕실 유물뿐만 아니라 유럽, 이슬람 문화권, 아프리카 대륙 등에서 기증받거나 약탈한 작품들까지 50만여점(외젠 들라크루아 국립미술관 포함)을 포함하고 있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 루브르에서 꼭 만나야 하는 여성이 셋 있다. 조각상인 사모트라케의 니케와 밀로의 비너스, 회화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니케 상은 에게해 북부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됐다. 19세기 중반 그리스에 파견된 프랑스 영사가 섬을 탐사하던 중 이 조각을 발견해 프랑스로 보냈다. 발견 당시부터 조각상의 머리와 팔은 없는 상태였으며 소실된 어깨와 날개 부분은 이후 석고로 채워 넣은 것이다. 프랑스 복원팀은 발아래 대리석 받침대를 연결해 뱃머리 구조를 보강했다. 이런 형식은 고대 시기 해전을 치르고 돌아오는 뱃머리에 승리를 기원하는 조각상을 놓아두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전시팀은 이 작품을 계단 위에 설치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작품을 올려다보며 점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뱃머리에 내려앉은 승리의 여신의 벅찬 감성은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 잭이 외친 “나는 세상의 왕이다”와 로즈가 말한 “우리 날고 있어요”는 신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을 인간이 훔쳐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신들의 세상을 훔쳐본 대가는 참혹했다. 잭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잠들어 갔으며, 로즈는 평생 그 사람을 그리워해야 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딘 ‘승리의 여신’은 지금 방금 막 뱃머리에 착지한 느낌을 준다. 바람을 해치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앞으로 나가는 뱃머리에 내려앉은 승리의 여신은 바람과 물보라를 모두 몸으로 받고 있다. 그 바람에 여신의 몸매는 그대로 드러났다. 여신은 누드의 모습이 아니라 얇은 천을 두른 모습이다. 여신의 배꼽과 왼 다리를 보면 맨살 위에 긴 튜닉을 입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명의 작가는 자신의 솜씨를 뽐내고 싶었다. 누드 상은 실력 있는 조각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베일과 같이 얇은 천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작가는 여신의 몸 위에 자신의 서명을 새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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