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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처럼… 나를 잃고 나는 걸었네 [강동삼의 벅차오름(끝)]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처럼… 나를 잃고 나는 걸었네 [강동삼의 벅차오름(끝)]

    #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걷는 여행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상심 증후군’에 빠진 듯 했습니다. 상심증후군은 전문 의학용어로 타코츠보 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좌심실이 수축되어 위쪽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일본에서 쓰이는 문어 잡는 항아리 타코츠보와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떤 상실과 고통으로 인해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났을 때, 별안간 모든 목표를 상실했을 때, 지독한 열병을 앓는 듯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타코츠보 증후군에 빠졌을 때, 그때 ‘걷기’를 택했습니다. 살기 위해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몇걸음만 걸어도 헉헉대는 내 몸에 절망했습니다. 큰 병을 앓고 난 내 몸은 한마디로 저질체력이 돼 있었습니다. 가까운 도두봉도 헉헉대며 올라갔습니다. 안되겠다싶어 제주도의 오름을 주말마다 한번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걷는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새별오름에서 시작한 ‘벅차오름’ 토요연재 시리즈도 50회를 눈앞에 두게 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오름을 어디로 해야 할 지, 선뜻 정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오름을 선택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49회에 나간 말미오름과 함께 올레길 1코스를 마지막으로 정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심사숙고하다가 새별오름 옆 오름이 떠올랐습니다. 새별오름에서 시작한 오름연재니까 새별오름으로 끝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오름을 ‘이달오름’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 이달봉과 이달촛대봉이 나란히 솟아오른 모습이 마치 젖가슴 같습니다 이달오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새별오름 옆에 있는 오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달오름에 눈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제주당 억새풍경을 감상하다가 그 앞의 오름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름이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에는 이달오름을 대지에서 솟아오른 아름다운 젖가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봉우리가 두개인 쌍둥봉이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보면 흡사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달봉과 이달촛대봉이 이어져 나란히 솟아 있습니다. 초행길이어서 이달오름을 가는 방법을 검색해보니 가장 쉬운 길은 새별오름 왼쪽 시멘트 길로 걸어가는 방법과 제주당 억새들녘을 지나가거나 아니면 새별오름 정상에서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새별오름이 익숙해져 있어 오름 왼쪽 길을 택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공동묘지가 나옵니다. 새별오름 서쪽 뒤편에 마을공동묘지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참고로 이쪽 탐방로로 이달오름을 가는 것은 비추합니다. 같이 갔던 아내가 하산할 때는 이쪽으로 오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심란해지는 것 같다며…. 우여곡절 끝에 이달오름 앞에 멈췄습니다. 또 한번 실책을 범합니다. 탐방로 시작점에서 오름 오른쪽으로 좀 더 가서 올라가야 하는데 시작점 앞 숲속으로 난 길이 보이길래 그 길을 택했습니다. 숲속입구로 들어가는 바람에 이달촛대봉으로 가는 길을 먼저 만납니다. 이달봉은 표고가 488.7m이고, 비고가 119m입니다. 반면 이달촛대봉은 표고 456m, 비고 86m여서 낮습니다. #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비우는 법을 배우고 인생의 내리막을 내려오는 법을 배웠습니다오름을 산책하며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가장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높은 산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우거진 숲에서 보이지 않는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길없는 길처럼 막막해도 다가서야 길이 열린다는 것을. 헤매고 헤매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평탄한 길보다 실패하며 굴곡진 길을 걸어가봐야 상대방의 심경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 앞에서 자신을 낮추게 된다는 것을, 가슴이 따뜻해야 상대방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 깨달았습니다. 비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비워야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수풀이 우거져 들어갈 공간이 없으면 들어가려다가 포기한다는 것을. 비워야 홀로 되는 순간에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비워야 정상에서도 가슴이 뻥 뚫린다는 것을. 비워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을, 비워야 멋진 전망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려오는 법을 배웠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절정기가 있습니다. 정상을 밟았지만, 금세 정상을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정상을 오래 지키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생의 내리막길은 늘 존재한다는 것을. 올라가는 법보다 내려오는 법이 더 힘들다는 것을. 늙어가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성숙해져야 단풍 들고 잎새를 떨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야 새싹이 다시 돋아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정비 안된 길로 또 잘못 들어서서… 가시밭길을 헤매었습니다이날도 그렇게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오르막길이 힘들어도 곧 정상이 나오고 다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소나무숲을 오르다보니 이달오름 정상입니다. 조그만 막사같은 산불초소가 보입니다. 탐방객이 올라와 드론을 띄우고 있습니다. 정상이 탁 트이는 곳이 아니어서, 벤치조차 없어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달봉이라고 쓰여있는 표지석이 누워있습니다. 세워져 있어야할 표지석이 땅에 누운 채 있습니다. 새별오름과 달리 그만큼 이달오름은 탐방로 정비가 안된, 사람 발길이 드문, 조금은 초라한 오름임을 실감합니다. 내려오는 길은 더 험합니다. 가시덤불은 아니지만, 미끄러운 흙길이고 붙잡을 밧줄마저 여의치 않습니다. 후덜덜하며 내려옵니다. 혹시라도 낙상할까봐, 천천히 걸어내려옵니다. 남들이 올라온 길을 역방향으로 내려오는 탓에 코스는 난코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산한 뒤 새별오름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이번엔 갈림길에서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가시밭길을 헤맵니다. 가시덤불을 헤집고 겨우 빠져나와 다시 길을 찾았습니다. 20분간 지체된 듯 합니다. 다행히 겨울이어서 풀이 무성하지 않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탐방이 때론 고행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달오름은 새별오름처럼 유명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는 모습이 웬지 애정하게 됩니다. 조금은 아웃사이더 같은 인생에 연민의 정을 느끼는 이유와 비슷한 듯 합니다. 존재감 없는 모습이지만 진솔한 모습에 설득당했습니다. ‘미안하다, 몰라봐서…’ 그런 감정이 듭니다. # 서쪽 오름의 대명사 새별오름 들불축제는 불놓기 대신 빛의 축제로 열린답니다그리고 산길을 올라 새별오름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집니다. 360도가 탁 트인 오름이 50회를 소개하면서 많지 않았습니다. 남쪽이 트이면 북쪽은 막혀있고 동쪽이 트이면 서쪽은 숲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새별오름은 멀리 서귀포 앞바다, 마라도, 비양도, 한라산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새별오름은 은빛 억새가 장관인 곳입니다. 겨울인데도 억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는 셔터를 눌러대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 아래 억새오름을 카메라에 담고 마음에도 담습니다. 새별오름을 처음 소개할 당시 들불축제를 하느냐 마느냐 논쟁이 뜨거울 때였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논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올해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새별오름 들불축제는 방애불(들불)을 놓는 행사는 하지 않습니다. 산불위험·환경보호 논란으로 ‘오름 불놓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 대신 빛의 축제로 바뀝니다. 세계적인 음악가 양방언을 포함한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와 함께 미디어파사드, 빛, 조명, 불꽃 등으로 디지털 연출기술을 활용한 불놓기로 새로운 실험을 선보입니다. 새별오름을 유난히 사랑하는 한 선배는 이참에 365일 문화예술축제가 펼쳐지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던 말이 떠오릅니다. 2년 만에 새 모습을 보일 새별오름 들불축제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사랑하라… 마치 상처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샛별과 같이 빛나는’ 새별오름을 오르며, 춤추는 억새들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를 읊어봅니다. 이 시는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쓴 미국의 유명작가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라는 설도 있지만, 난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처럼’ 시집에서 읽고 알게 됐습니다. ‘춤춰라, 마치 아무도 안 보는 것처럼(Dance like there’s nobody watching). 사랑하라, 마치 상처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노래하라, 마치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Sing like there’s nobody listening).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 처럼(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살아라,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오름을 오르는 순간만큼은 내 자신도 오름을 닮아가려 했습니다. 이 시(詩)와 같은 결로 말하자면… 걸으면서,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마치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걸으면서 내 주위에 너그러워졌습니다, 마치 한번도 친구가 있어본 적이 없는 것 처럼. 걸으면서 용서하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마치 한번도 미워해본 적이 없는 것 처럼. 걸으면서 내 자신에게 관대해졌습니다, 마치 한번도 엄격해본 적이 없는 것 처럼. 걸으면서 내 자신에게 다시 성실해졌습니다. 마치 한번도 게을러본 적이 없는 것 처럼. 걸으면서 어느 때보다 겸손해졌습니다, 마치 한번도 거만해 본 적이 없는 것 처럼. 걸으면서, 걸으면서…
  • 그림으로 펼쳐진 사유의 여정, 문장의 풍경

    그림으로 펼쳐진 사유의 여정, 문장의 풍경

    동서고금 막론한 ‘철학의 은유들’ 노자·헤겔 등이 남긴 사상 담아내거장들이 남긴 ‘문학 속의 풍경들’글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 풀어내철학의 빛 혹은 문학의 풍경. 글로만 상상했던 세계가 그림으로 펼쳐진다. 혼자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바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겠다. 그 차이를 탐색하는 재미는 오롯이 ‘생각하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스페인의 부자(父子) 철학자 페드로, 멀린 알칼데가 함께 글을 쓰고 화가 기욤 티오가 그림을 그린 ‘철학의 은유들’(단추)은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부터 현대 폴란드의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중국 춘추시대 노자부터 독일의 공산주의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까지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철학자 24명의 사상을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 보이는 그림책이다.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가슴에 안고 있다.” 동양철학의 주요 개념인 ‘음양’은 서로 대립하고 보완하면서 천지의 만물을 만들어 내는 원리다. 노자를 위시한 도가사상에서 제시하는 음양의 세계를 책은 인간이 없는 먼 산의 풍경을 통해 드러낸다. 우뚝하게 서 있는 산은 양지바른 곳(陽)과 그늘진 면(陰)이 어우러지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야행성 동물인 부엉이는 고대 그리스부터 철학과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신성시됐다. 헤겔 역시 이 부엉이에서 큰 철학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부엉이가 어두운 밤에 움직이기 시작하듯 철학 역시 밤의 고요 속에서 그 본질을 드러낸다. 책은 검고 거대한 전나무가 울창한 숲 앞에 작디작은 인간을 그려 넣으며 헤겔 철학의 세계를 은유했다. 로즈윙클프레스의 ‘문학 속의 풍경들’(누리아 솔소나 그림, 리카르도 렌돈 글, 남진희 옮김)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 고전 반열에 오른 작가 25명이 문장으로 치열하게 그려 낸 소설 속 풍경을 눈앞에 환한 그림으로 보여 준다. 내가 글로 읽었던 세계가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새삼 감탄하는 그림이 여럿 담겼다. “바로 그때 바람이 모든 장애물을 다 없애버리기라도 할 듯이 객차 지붕의 눈을 쓸어내렸고, 어디선가 떨어진 철판 조각을 흔들어댔다. … 무시무시한 눈보라지만 그녀에겐 그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 속 문장이다. 책은 이 소설 속 풍경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의 광활한 황무지를 제시한다. 이곳에는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러시아의 엄혹한 눈과 바람을 견디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눈보라. 하지만 기관차는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기어이 그것을 뚫고 철길을 따라 달린다.
  • [마감 후] ‘서프라이즈’ 성장률에 깜짝 놀란 사람들

    [마감 후] ‘서프라이즈’ 성장률에 깜짝 놀란 사람들

    ‘서프라이즈.’ 지난달 25일 한국은행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치(1.3%)를 발표하자 모든 언론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단어로 기사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성장률’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던 것 같다. 제일 먼저 놀란 곳은 다름 아닌 대통령실과 정부였다. 대통령실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처해 “민간 주도의 역동적 성장”이라며 대통령의 경제외교 성과를 강조했다. 고무된 표정의 기획재정부도 “성장 경로의 청신호가 켜졌다”며 “민간 소비가 바닥을 치고 회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통계를 작성한 한은 관계자도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발표 전날 예정에 없던 금융통화위원회를 소집한 뒤 조사국에 ‘깜짝 성장’의 원인을 찾아내라는 긴급 지시까지 내렸다. 한 달 뒤 수정경제전망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률 예측이 크게 빗나간 이유에 관해 “저희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며 “수출이 좋아진 것은 예상했는데 내수가 근본적으로 생각보다 좋아졌다”고 말했다. 1분기 ‘깜짝’ 경제성장률 발표를 두고 국정과 경제를 이끄는 대통령실과 기재부, 한은까지 놀란 마당에 ‘민간 주도의 역동적 성장으로 경제가 좋아졌다’는 뉴스를 접한 국민들 심정은 어땠을까.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고물가와 고금리에 허리띠를 더 졸라맬 여유조차 없는 대다수는 “내수가 살아났다”는 정부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더 놀란 듯했다. 물론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로 통계 숫자만 한 자료도 없다. 한은에 따르면 1분기 성장 기여도에서 수출이 0.6% 포인트로 전체 절반에 육박했다. 지난 4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여 온 수출이 성장률을 상당 부분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결론은 달라진다. 전체 수출액은 오히려 전 분기보다 43억 5000만 달러 줄었는데 에너지 수입 감소로 수입액이 수출보다 낮아지면서 통계가 플러스처럼 보이는 ‘불황형 흑자’다. 대다수 국민이 수출 증가에 따른 성장 효과를 체감할 수 없는 이유다. 나머지 성장률 0.7%는 내수에서 비롯됐다. 내수의 민간소비 기여도는 0.4% 포인트로 절반을 넘는다. 실제로 1분기 가계소비 지출은 전 분기보다 1조 7000억원 늘긴 했다. 하지만 전체 지출에서 국내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2분기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최근 엔저 열풍을 타고 일본 여행객이 급증하고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불리는 직구 확대로 해외 소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GDP 통계는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서 쓰는 돈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자랑하는 ‘내수 깜짝 반등’ 효과를 국내 자영업자들은 못 느끼는 것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자서전에서 세상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했다.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통계 숫자는 거짓말을 못 하지만 해석하는 사람이 숫자를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왜곡하는 행태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최재헌 경제부 차장
  • 루체른 사자상에 남겨진 스위스의 흑역사 [한ZOOM]

    루체른 사자상에 남겨진 스위스의 흑역사 [한ZOOM]

    훈족의 침입을 피해 유럽대륙으로 넘어온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중세 유럽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런데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독일인 조상들의 대이동’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당시 게르만족은 특정 민족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프랑크족, 반달족, 동고트족, 서고트족 등 여러 이민족을 함께 부르는 말이었다.  게르만족은 엄격한 장자상속(長子相續)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가 아닌 아들은 집을 떠나 스스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동화책에 떠돌이 왕자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독사과를 먹고 쓰러져 있던 백설공주를 살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왕자 역시 먹고 살길을 찾아 떠나던, 첫째가 아닌 아들이었다.  먹고 살길을 찾아 집을 떠난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던 직업은 용병(傭兵)이었다. 왕이나 영주에게 소속된 직업 군인이 되면 안정적인 수입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위스 출신 용병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지금의 스위스는 선진국이지만, 과거의 스위스는 험준한 알프스 산맥과 호수가 전부이며, 농사지을 토지가 부족한 가난한 나라였다. 그래서 스위스 청년들은 먹고 살기 위해 유럽 각국으로 넘어가 용병이 되었다. 이들은 용병이 아니면 먹고살 길이 없었고, 스위스 용병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다음 세대가 용병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막힌다는 생각으로 고용한 왕과 영주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렇게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스위스 용병의 인기는 높아져갔고, 스위스 용병을 선호하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교황이 있는 바티칸시국에서는 스위스 근위대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루체른의 상징, 카펠교(Chapel Bridge) 스위스 중부에 있는 루체른(Luzern)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 ‘카펠교’(Chapel Bridge)가 있다. 약 300m 길이의 다리의 지붕 안에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담은 약 120점의 그림이 걸려있다. 다리의 가운데에는 탑이 있는데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포로를 감금하고 고문하던 반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루체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카펠교 주변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천천히 카펠교를 걸으며 안쪽 지붕에 전시된 그림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카펠교를 건너 북서쪽 방향으로 걸었다. 사거리가 나올 때마다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바위동굴 안에 쓰러진 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덴마크 출신 ‘베르텔 토르발센’의 설계하고, 독일 출신 ‘루카스 아호른’이 작업한 빈사의 사자상(瀕死의 獅子像)은 전투에서 쓰러진 사자의 모습을 자연바위를 조각해 만든 작품이다. 루체른의 또다른 명소, 빈사의 사자상 (瀕死의 獅子像) 빈사(瀕死)는 위독한 병이나 심각한 상처 때문에 죽음에 이른 상태를 의미한다. 빈사의 사자상은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쓰러져간 용맹한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1792년 튈르리 궁전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혁명군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전멸한 스위스 용병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빈사의 사자상을 두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다’라고 평가했다.  1789년 10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부부는 ‘베르사유 궁전’을 떠나 파리 시내에 있는 ‘튈르리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곳에서 시민혁명군의 감시를 받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국왕부부는 1791년 6월 왕당파 군대가 모여 있는 파리 북동쪽 ‘몽메디(Montmédy)’로 탈출을 시도했다가 ‘바렌(Varennes)’에서 붙잡혔다. 국왕부부의 탈출시도 사건은 프랑스 시민들에게 충격이었다. 국왕이 탈출 후 군대를 이끌고 파리로 되돌아올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프랑스 시민들은 국왕부부에게 심각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국왕부부에게 측은감을 느끼고 있던 온건파 시민들까지도 등을 돌렸다.  1792년 8월, 시민혁명군이 국왕부부를 끌어내기 위해 튈르리 궁전을 공격했다.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갔고, 국왕부부의 주변에는 약 800명의 스위스 근위대만 남아 있었다.  스위스 근위대는 시민혁명군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만약 자신들이 도망간다면 더 이상 비겁한 스위스 용병을 고용할 곳은 없을 것이며, 끝까지 국왕부부를 지킨다면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스위스 용병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루이 16세는 스위스 근위병들에게 퇴각하라는 명령서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시민혁명군에게 포위당한 스위스 근위병들에게 왕의 명령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스위스 근위대 약 800명은 전투 중에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가 죽음을 당했으며, 빈사의 사자상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먹고 살 것이 없어 용병을 수출하던 가난한 나라 스위스. 흑역사를 가진 이 나라는 시간이 흘러 선진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도 스위스처럼 먹고살 것이 없어 미국으로, 중동으로, 유럽으로 일꾼을 수출하다가 이제 선진국 대열에 오른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역사적 작업을 해야하지 않을까? 빈사의 사자상에서 가슴에 숙제를 안고 발길을 돌렸다.
  • 맨발 걷기 예찬… 19세기 철학자는 이미 예견했었다

    맨발 걷기 예찬… 19세기 철학자는 이미 예견했었다

    최근 공원이나 등산길에서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맨발로 걸으면 면역력이 높아지고 혈액 순환이 좋아져 만성 염증 예방과 불면증 완화, 스트레스 저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도 맨발 걷기를 위한 공간 조성에 나서고 있다.그런데 19세기에 이미 맨발 걷기를 예찬한 사람이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후 가장 뛰어난 자연주의 철학자이자 작가로 인정받는 존 버로스는 ‘길가의 환희’라는 글에서 “맨발은 나의 표상이며 모든 걷는 자들을 대변하는 표상이다. … 밝은 기운들은 맨발로 걷는 자와 동행하며 이들을 돕는다”고 맨발 걷기의 장점을 강조했다. ‘걷기의 즐거움’(인플루엔셜)은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등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세계적인 작가 34명이 걷기와 산책의 즐거움을 찬양한 글들을 골라 모았다.걷기는 지구에 인류가 나타난 이래 가장 원초적인 행동이자 운동이었다. 시대와 배경에 따라 걷기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지만 공통된 것은 걷기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롭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인 문학가 레슬리 스티븐은 “진정으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 자체가 즐거워 걷는다”며 “다리의 근육 운동은 걷기가 자극하는 두뇌 운동이나 걸으면서 떠오르는 조용한 명상이나 상상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걷기는 평온하고 균형 잡힌 마음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있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푸른숲)은 온전한 나를 찾아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고 싶을 때는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걷기의 즐거움’이 작가들의 걷기 예찬을 엮었다면 ‘철학자의 걷기 수업’은 노자,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이 말하는 걷기에 관한 생각을 보여 준다. 한편 ‘걷는 존재’(위즈덤하우스)는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많지만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져 얼마 못 가 걷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쓰레기를 주우며 걷기, 바람 부는 날 걷기, 노래 부르며 걷기,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걷기 등 1년 52주 동안 매주 다른 방식의 걷기를 실천한다면 걷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 19세기 자연주의 철학자가 예언한 맨발 걷기 열풍

    19세기 자연주의 철학자가 예언한 맨발 걷기 열풍

    최근 공원이나 등산길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맨발 걷기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 운동법이다. 맨발로 걸으면 몸속 면역력이 높아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만성염증을 예방하고 불면증을 완화하고 스트레스 저항력을 높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맨발 걷기를 위한 공간 조성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미 맨발 걷기를 장점을 예찬한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후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 철학자이자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존 버로스(1837~1921)는 ‘길가의 환희’라는 글에서 “맨발은 나의 표상이며, 모든 걷는 자들을 대변하는 표상이다.……밝은 기운들은 맨발로 걷는 자와 동행하며 이들을 돕는다”라며 맨발 걷기의 장점을 강조했다.‘걷기의 즐거움’(인플루엔셜)은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등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세계적인 작가 34명이 걷기와 산책의 즐거움을 찬양한 글들을 골라 모았다. 걷기는 지구에 인류가 등장한 이후 가장 원초적인 행동이며 운동이었다. 시대와 배경, 글의 성격에 따라 걷기에 대해서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통된 것은 ‘걷기’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이자 문학가였던 레슬리 스티븐은 “진정으로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 자체가 즐거워 걷는다”라며 “다리의 근육 운동은 걷기가 자극하는 두뇌 운동이나 걸으면서 떠오르는 조용한 명상이나 상상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 철학자 니체도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고백했다.그런가 하면 걷기는 ‘평온하고 균형 잡힌 마음’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있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푸른숲)은 온전한 나를 찾고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고 싶을 때는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 속을 걷는 활동으로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내면의 진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돼 행복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걷기의 즐거움’이 작가들의 걷기 예찬이라면 ‘철학자의 걷기 수업’은 노자,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등 동서양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이 말하는 걷기와 관련된 철학을 보여준다.한편 ‘걷는 존재’(위즈덤하우스)는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많지만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져 얼마 못 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쓰레기를 주우며 걷기, 바람 부는 날 걷기, 노래 부르며 걷기,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걷기 등 1년 52주 동안 매주 다른 방식의 걷기를 실천한다면 걷기를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 [김성진의 미래한국 서치라이트] 흔들리는 안전 대한민국, ‘예방’으로 리셋하라/전 산업통상지원부 대변인

    [김성진의 미래한국 서치라이트] 흔들리는 안전 대한민국, ‘예방’으로 리셋하라/전 산업통상지원부 대변인

    9년 전 세월호 침몰로 304명의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참사 이후 피해 보상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재난안전대책도 발표됐다. 정부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이 달라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해 우리는 다시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를 겪었다. 사고 전 몇 차례 이상징후와 신고가 있었음에도 현장에는 국가가 없었다. 정부는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일상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일상이 안전한 나라’와 거리가 먼 곳에 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이 ‘묻지마 칼부림’에 희생됐다.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보내는 내 집이 철근이 부족해 ‘순살 아파트’라 불리며 언제 무너질지 모를 공포의 장소가 됐다.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되기 전에 시민들이 위기 상황을 신고했으나 묵살됐고 14명이 희생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달라질 것이라는 약속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경제는 선진국이 됐지만 재난안전 대처는 아직도 후진국이다. 선진국들의 재난안전관리는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다. 후진국 사고는 부실과 안전 부주의로 인한 인재가 대부분이다. 반복되는 인재를 막기 위해서는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선진국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둔 선제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땜질식 사후관리 대응 체계로는 급변하는 재난환경과 새로운 유형의 위험에 대처할 수 없다.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야 한다. 정교한 예측 모델과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면 지진과 산사태, 그리고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시 재난안전관리가 가능한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현재 재난안전 업무는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재난안전 업무는 전문적 분야인데 정치적 성격의 지방자치 업무와 함께 수행되다 보니 평상시에 관심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기존 국민안전처와 같이 장관급 독립 부서로 다시 분리해 재난안전 업무를 전담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회에 ‘재난안전상설위원회’를 설치해 정부의 재난안전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상시 점검하도록 해야 한다.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에 대해 경영 책임자가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작업장에서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면 중대재해로 규정된다. 하지만 공공 분야는 명확하지 않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지자체장과 책임자에게 안전의무를 부과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재난안전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재난안전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다. 정부는 연구개발(R&D)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해 기술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산업계는 ICT와 인공지능 등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국민의 생명도 지키고 일자리도 만들 수 있는 두 마리 토끼가 될 것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는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재난과 안전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다가올 위험은 평시에 대비해야 한다.
  • 제주도청 오디오북 무료 서비스… 이젠 귀로 책을 읽으세요

    제주도청 오디오북 무료 서비스… 이젠 귀로 책을 읽으세요

    하루종일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엔 누군가가 대신 책을 읽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제주특별자치도는 새달 2일부터 청사 방문객의 독서 편의 증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책을 귀로 듣는 구독형 오디오북 무료 서비스를 도청 1청사 본관 로비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오디오렌즈라는 앱을 깔고 도청을 방문해 원하는 책의 QR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책 한권이 다운로드된다. 예를 들어 마크 트웨인의 소설 ‘미스터리한 이방인’ QR코드를 찍자 책 한권이 1분도 안돼 내 핸드폰으로 들어왔다.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음악처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듣는 책’ 오디오북 무료 서비스로 성우들의 생생한 명연기와 음악이 녹아있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디지털콘텐츠다. 장점은 별도의 회원가입 절차 없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도서를 권수 제약 없이 내려 받아 대출 기간 90일 동안 자유롭게 본인 핸드폰으로 구독할 수 있다. 다만 90일이 경과되면 다운로드 받은 책이 자동으로 앱에서 삭제되기 때문에 다시 도청을 도서관에 가듯 방문해 책을 다운로드 받는, 조금은 번거롭지만 행복한(?) 외출을 해야 한다. 도는 5월 2일부터 본격 운영에 앞서 지난 4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한 주간 시범 테스트를 거친다. 이에 따라 도청 1청사 본관 1층 로비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제주 관련 도서, 베스트셀러 소설, 시·에세이, 인문,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듣는 책 300여 건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강재섭 제주도 총무과장은 “최근 책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자책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듣는 책’이 새로운 독서 문화로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면서 “도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독서를 즐기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듣는 책 서비스를 확충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STOP PUTIN] 학생이 교사 고발해 해고, 서로 감시하며 소련 시절로

    [STOP PUTIN] 학생이 교사 고발해 해고, 서로 감시하며 소련 시절로

    러시아 사할린 섬의 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독립된 나라라고 말했다가 당국에 고발돼 벌금을 부과받고 학교에서 해고됐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서는 소련 시절로 돌아간 듯 이웃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리나 두브로바(57) 교사는 8학년 학생들에게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전쟁 없는 세계’에 대해 노래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줬다. 수업이 끝난 뒤 여학생들이 남아 그에게 “우크라이나는 우리와 별개의 독립국인가요”라고 물었고, 그는 독립국이 맞다고 답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더는 아니에요”라고 쏘아붙였다. 며칠 뒤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고, 두브로바는 법정에 서야 했다. 법정에서 학생들과 두브로바가 나눈 대화를 녹음한 내용이 증거로 채택됐다. 학생 중의 한 명이 녹음한 것으로 보였다. 판사는 두브로바가 러시아군의 신뢰를 공개 석상에서 깎아내렸다며 400달러(약 5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학교도 비도덕적 행동을 했다며 그를 해고했다. 두브로바는 NYT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 사회에 퍼진 전쟁 찬동 분위기를 전하며 “모두 광기에 빠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사건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러시아 사회에서 편집증과 극단적 갈등이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고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앞장서 과거 소련식 공포 정책을 강화해서다. 소련에서는 동료 시민을 신고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스스로 의심해봐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쟁’이나 ‘공격’, ‘침공’으로 칭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러시아군에 반하는 공개 성명을 내도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는 이것이 가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정보 전쟁’을 고려하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지난달 16일 연설을 통해 러시아 사회에 ‘자기 정화’가 필요하다며 “진정한 애국자를 쓰레기, 배신자 사이에서 구분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인권감시단체 ‘OVD-인포’에 따르면 러시아 검찰은 이미 400명이 넘는 사람을 상대로 이 법을 적용했으며 이 중에는 별 표 8개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던 남자도 포함됐다. 러시아어로 ‘전쟁 금지’는 여덟 글자다. 알렉산드라 바예바 OVD-인포 법무실장은 사람들이 동료 시민을 신고하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며 “탄압은 당국자들의 손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손에서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모스크바 서부의 한 쇼핑몰 컴퓨터 수리점에서는 전시된 모니터에 ‘전쟁 금지’라는 문자가 나오자 지나가던 어르신 행인이 이를 신고했고, 가게 주인 마라트 그라체프(35)는 경찰에 체포됐다. 벌금 1200달러(약 150만원)를 물어야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한 지역 뉴스매체가 공공도서관에서 친서방 태도를 보인 사람에 대해 공분하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알고 보니 도서관 사서가 소비에트 학자의 사진을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것으로 오해해 빚어진 소동이었다. 서부 칼리닌그라드의 지방 정부는 주민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선동하는 이들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신고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러시아의 한 국수주의 정당은 엘리트 계층 가운데 ‘해충’을 제보하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드미트리 쿠즈네초프 의원은 “청소가 시작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전쟁이 어느 정도 지나가면 그 과정이 속도를 낼 것이라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누구라도 총에 맞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역사학자 니키타 페트로프는 “사람들에게 다시 공포가 스며들고 있다”며 “이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를 고발한다”고 개탄했다. 두브로바와 거의 비슷한 일을 서부 펜자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리나 젠(45)도 겪었다. 어느날 교실 칠판에 전쟁을 지지하는 의미를 담은 “Z” 글자가 커다랗게 써 있어서 나치 문양 스바스티카와 닮았다고 무심코 말했다. 역시 8학년 학생이 왜 유럽 스포츠 대회에 러시아가 출전하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젠 교사는 “내 생각에 그게 옳은 일이다. 러시아가 문명된 태도로 행동할 때까지 그런 일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한 소녀가 “하지만 우리는 모든 자세한 일, 특히 전쟁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젠 교사는 “그래 맞아,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해”라고 답했다. 그러고 끝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텔레그램에 젠과 학생들의 대화 내용이 돌아다녔고, 연방보안국 요원이 위중한 범죄라고 을러댔다. 그는 주변에 자신을 옹호하고 감싸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당시 학생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증오를 느꼈다고 했다. 해서 그는 이달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그렇다고 온통 암울한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브로바가 벌금을 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였던 사람이 하룻만에 모금 운동을 해 150달러를 건넸고, 두브로바는 반려견 쉼터에 기탁했다. 그라체프의 고객 수백명은 당국에 그를 고발하지 않았고 서방 제재 때문에 수리비를 곱절 인상했는데도 그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고마워했다.
  •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제로 코로나’에서 ‘고강도 방역’으로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제로 코로나’에서 ‘고강도 방역’으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올바른 말과 거의 올바른 말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만큼 크다”고 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표현하려 할 때 정확한 말을 찾아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2022년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옮긴 이학주 선수에 관한 기사에서 ‘워크에식 논란’이라는 말을 접했다. 생소했다. 검색해 보니 영어 단어 ‘work ethic’으로 ‘노동관, (윤리관으로서) 근면’이라는 뜻이었다. 그냥 ‘선수로서의 성실 논란’ 또는 ‘직업의식 부재’ 등의 말을 사용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워크에식’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의문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보기술(IT) 시대에 들어서면서 외국어로 된 새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말로 대체하기 어려운 용어도 있겠지만, 위의 예처럼 언론조차 큰 고민 없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각보다 많은 언론사에서 ‘워크에식’이라고 적는 것을 보고 입맛이 썼다. 그런데 이런 외국어들을 우리말로 다듬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우리 사회에 제안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달에 두 번 모여 말을 다듬는 이 모임은 ‘새말모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이 모임을 2020년부터 꾸준히 꾸리고 있다고 하는데, 갈수록 전문용어가 늘어나고 복잡한 용어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어서 올해부터는 경제 분야와 의학 분야, 문학 분야 등의 위원이 보강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신조어 하나를 두고 한참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 ‘말모이’의 조선어학회 사람들처럼 보였다. 2022년 들어 두 번째로 열린 새말모임에서 후보로 올라온 새말은 모두 7개. 그중 새말모임 위원들은 ‘제로 코로나’를 골라 다루었다. 제로 코로나는 중국 등 몇 나라에서만 썼던 방역 정책인데, 지금은 중국이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며 한시적으로 사용한 것 같아서 굳이 다듬을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검색하는 용어이므로 다듬을 필요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쓰는 ‘고강도 거리두기’, 중국의 문화나 방역 정책 등의 소식을 모아 알려 주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중국사무소의 자료에 나오는 ‘초강력 방역 정책’, ‘고강도 방역’, ‘초강력 방역’ 등이 우리말 대체어로 제시됐다. 제로 코로나란 ‘무(無) 코로나’라는 뜻이기에 그런 용어들이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나오고, 코로나를 싹 쓸어 버린다는 의미에서 ‘코로나 싹쓸이’, ‘코로나 박멸’이 제안되기도 했다. ‘제로’가 ‘백지 상태’라는 뜻에서 ‘백지 코로나’ 또는 ‘코로나 없애기’가 나오기도 하고, 코로나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의미에서 ‘코로나 봉쇄’나 ‘코로나 원천 봉쇄 정책’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떻게 다듬을 것인지를 차분하면서도 치열하게 토의한 끝에 ‘고강도 방역’, ‘초강력 방역’, ‘백지 코로나’를 다듬은 말 후보로 정했다. 이 후보 낱말을 국민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선호도 조사에서 국민들은 ‘고강도 방역’(84%)이 가장 적절하다고 답했고, ‘초강력 방역’(75.1%), ‘백지 코로나’(28.5%) 순으로 선택했다. ‘제로’라는 단어 뜻과 아무런 상관은 없으나 ‘제로 코로나’ 전체가 하나의 용어로서 담고 있는 의미에 더 많은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제로 코로나’ 등 선언적으로 멋 부리는 말들 대신 정책적으로 분명한 뜻을 담는 말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더 유리하고 정책 의미를 더 많은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코로나 빨리 사라지면 좋겠다.
  • [마감 후] 지도자의 독서/하종훈 문화부 기자

    [마감 후] 지도자의 독서/하종훈 문화부 기자

    “모든 독서가가 다 지도자가 될 수는 없지만, 모든 지도자는 독서가가 돼야 한다.” 해리 S 트루먼(1884~1972) 전 미국 대통령의 이러한 말은 대통령의 독서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수립한 트루먼은 평소 정치사상의 근본인 플라톤의 ‘국가’를 비롯해 마크 트웨인의 문학작품을 즐겨 읽은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나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통해 혜안을 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최근 여야 대통령 후보자에게 ‘인생의 책 또는 젊은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 세 권’을 물어본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눈 떠보니 선진국’(박태웅),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을 꼽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선택할 자유’(밀턴 프리드먼)와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스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를 추천했다. 두 후보가 고른 책들은 후보 개인 및 해당 진영의 색깔, 방향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후보가 추천한 ‘눈 떠보니 선진국’은 우리 사회가 양적 성장 위주 사고에서 벗어나 ‘신뢰 자본’을 구축할 것을 촉구했고,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 문제를 다뤘다. 가난했던 이 후보의 마음이 투영됐다. 능력주의의 결함을 지적한 ‘공정하다는 착각’은 공정과 능력주의를 내세운 국민의힘에 반박하는 성격이 강하다. 윤 후보의 ‘선택할 자유’는 시장에 규제를 가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고발한 책으로 규제 일변도인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자유론’은 개인은 오직 타인과 관련된 부분에서만 사회에 책임을 진다는 자유주의의 바이블 격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도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고 진단한다. 다분히 지지층을 의식한 책 선정으로 방향은 다르지만 두 후보 모두 경제·사회와 관련해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다만 더 큰 틀에서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이나 역사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을 다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나 전쟁을 정치의 연속성에서 이해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같은 고전은 차치하고서라도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나 존 미어샤이머의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등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책들도 많다. 대통령 자리는 경기도지사나 검찰총장과는 다르다. 변화하는 국제정치 환경을 인식하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합리적 선택을 하는 지혜와 용기를 갖춰야 한다. 특정 독트린에 빠지지 않고 창의력을 적용할 지성적 용기를 기르려면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두 후보가 각각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외교’나 ‘한반도 비핵화 및 한미동맹 강화’를 내세웠지만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네거티브 공방이 대선을 뒤덮었기 때문일 테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당장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당선 이후라도 국제정치 서적에 대한 일독을 권하고 싶다.
  • 달라진 세계문학전집…여성·장르·지역 등 특화해 미발표작 위주 잇단 출간

    달라진 세계문학전집…여성·장르·지역 등 특화해 미발표작 위주 잇단 출간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하면 분량이 많아 부담스럽거나 서구 남성 작가 중심의 고루한 고전을 모아 놓은 책들이라는 편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의 감수성에 맞춰 여성이나 장르 소설 등 특정 테마에 맞춰 국내 미발표작을 소개하는 책들이 기존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휴머니스트는 이번 달부터 4개월마다 다섯 작품을 동시에 내놓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리즈 출간을 시작했다. 시즌마다 매혹적인 테마를 선정해 색다른 관점과 재미를 느끼게 한다는 취지다. 이번 달 출간된 ‘시즌1’의 테마는 ‘여성과 공포’로 잡아 19세기 영국 여성 작가 메리 셸리의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을 1권으로 펴냈다. 2~5권으로는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스릴러 소설집 ‘회색여인’, 미국 작가 이디스 훠턴의 소설집 ‘석류의 씨’, 버넌 리 소설집 ‘사악한 목소리’, 도러시 매카들의 공포소설 ‘초대받지 못한 자’ 등을 냈다. ‘프랑켄슈타인’을 제외하고는 단행본으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이성근 휴머니스트 편집자는 “긴 작품을 읽기 어려워하는 요즘 독자들의 성향을 고려해 300쪽 안팎의 책으로 전집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은행나무 출판사도 지난달부터 매달 한 종씩 펴내는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시리즈를 시작했다. 지난달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소설 ‘등대로’를 시작으로 중국 작가 찬쉐의 ‘마지막 연인’, 율리 체의 ‘인간에 대하여’,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단편집 ‘고딕 이야기’, 마리즈 콩데의 ‘땅의 장벽’ 등을 순서대로 선보인다. 울프의 탄생 140주년을 맞아 낸 ‘등대로’를 제외한 11편이 모두 국내 처음 번역되는 작품이며, 12월까지 나오는 12권 모두 여성 작가 작품으로 계획됐다.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국내 최초로 동남아시아 근현대문학만을 묶은 ‘동남아시아문학 총서’ 시리즈를 출간했다. 재단의 모태인 한세실업이 동남아 지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베트남 작가 도빅투이의 ‘영주’(2015), 인도네시아 작가 함카의 대표작 ‘판데르베익호의 침몰’(1939), 태국 아깟담끙 라피팟의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1929) 등 3종을 먼저 펴냈다. 민음사나 문학동네 등이 주도하는 기존 세계문학전집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신규 진입자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새로운 활로가 절실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기존에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을 다시 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 새로운 작가들에 대한 독자의 열망도 커졌다”며 “1970년대 이후 새롭게 세계문학에 등장한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오노레 드 발자크,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등 각국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작가별로 특화된 전집도 소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열린세상] 44만㎢·5000해리의 한국, 해양전략 촘촘해야/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44만㎢·5000해리의 한국, 해양전략 촘촘해야/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500여년 전 유럽의 바다는 시끄러웠다. 열강들은 황금과 노예, 상아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진출에 열을 올렸다. 식민강국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곧 충돌했다. 양국은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조정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에 선을 그었는데, 이것이 세계 영토를 양분한 토르데시야스조약(1494년)이다.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와 인도양, 아프리카는 포르투갈에 포함됐고, 아메리카대륙과 대서양은 모두 스페인에 포함됐다. 물론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한 조선은 전혀 몰랐던 그들만의 역사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중심의 바다는 16세기 후반부터 영국, 네덜란드 등의 도전을 받게 된다.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 설립 또한 1600년부터다. 우리 역사 속의 하멜 또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직원이었다. 이 시기 네덜란드 그로티우스의 ‘해양자유론’(1609·바다는 누구도 점유해선 안 되는 인류 공동의 자산)에 맞서 영국의 셀던은 ‘폐쇄해론’(1635·주변 바다의 연안국 소유 가능)을 이론화시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항한 자국 해양 진출의 정당성을 대변한 것이었다. 열강의 이론은 18세기를 거치면서 국제사회에 수용됐다. 연안국은 영해를 통제했고, 그 바깥은 모든 국가가 이용하는 공해가 됐다. 이후 국제사회는 바다의 헌법전이라고 불리는 ‘유엔해양법협약’을 새롭게 채택(1982년)했다. 배타적경제수역과 심해저라는 제도도 도입됐다. 연안국은 12해리(약 22㎞) 영해를 넘어 200해리(약 370㎞)의 배타적경제수역까지 넓은 바다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우리의 해양 면적도 약 44만㎢로 확대됐다. 국토 면적이 10만 413㎢이니 바다가 육지의 4.3배인 셈이다. 원유 등 천연자원의 100%, 수출입 물동량의 99%를 해상에 의존한다. 중동과 극지까지 5000해리가 우리의 해상 교통로다. 해양 역량도 세계 10위권이다. 희유금속 확보를 위해 국제해저기구로부터 3개의 심해저 광구(약 8만 500㎢)도 확보했다. 국토 면적에 가까운 크기다. 3개의 남북극 연구기지와 5800t급 이사부호는 대양과 극지 진출의 과학적 경쟁력을 대표한다. 이쯤이면 대한민국은 바다의 나라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해양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이번에는 패권 경쟁이다. 사실 나는 이러한 관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의도된 역사적 숙명론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만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지라도 그 운율은 반복된다”는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그 운율이 한반도를 향하고 있고, 21세기 해양 질서와 깊게 연계돼 있다. 경쟁은 노골적이다. 미국은 군사활동에 필요한 모든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FON)를 주장한다. 중국의 대양 진출 억제를 목적으로 하나 동맹국인 우리나라 바다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동해와 태평양을 관통하는 해상 활동 또한 정례화되고 있다. ‘강 대 강’의 대립이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세력 확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주변국의 해양력 팽창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바다에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이 해양력 재편을 위한 정치 언어라면 우리도 해양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15세기의 조선이 아니다. 사회·경제·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이다. 해양을 이용할 줄 아는 국가로 성장한 것이다. 한반도 해역뿐 아니라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는 국제 해역 진출 전략을 수립할 때다. 해양의 가치가 변화하듯 질서도 달라진다. 우리가 무관심할 때 누군가는 21세기형 해양자유론을 주창할 것이고, 누군가는 폐쇄해론을 주장할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바다의 나라다.
  • 잉거솔 시계, ㈜워닝월렛과 함께 새롭게 시작

    잉거솔 시계, ㈜워닝월렛과 함께 새롭게 시작

    130년 전통의 고품격 기계식 시계 브랜드 잉거솔(INGERSOLL)이 에리스골드(Aries Gold)의 한국 공식수입유통사 ㈜워닝월렛(대표이사 이진민)을 통해 한국시장에 새롭게 선보인다. 1892년 뉴욕에 설립된 잉거솔은 미국 처음의 시계 제조업체 중 하나로 당시 모든 시계가 전통적인 수작업에 의해 소량 생산돼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관행을 깨고, 핸리 포드(HENRY FORD)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적용해 생산됐다. 1896년 1달러에 판매를 시작한 잉거솔의 포켓시계 ‘YANKEE WATCH’는 ‘1달러’ 시계라 불리우며 미국, 유럽 등에서 4000만개 이상이 팔렸다. 또한 1935년에는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잉거솔 시계에 사용하며 캐릭터 시계의 시초로 인정 받은 바 있다. ㈜워닝월렛 이진민 대표는 “잉거솔은 26대 대통령 루즈벨트가 여행중 ‘잉거솔 시계가 생산되는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 할 정도로 역사 깊은 브랜드”라며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간디,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등 전 세계 유명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한편, 공식 AS센터를 통해 1년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잉거솔 시계는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씨줄날줄] 키다리 아저씨/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키다리 아저씨/임병선 논설위원

    1912년 미국 작가 진 웹스터가 발표한 ‘키다리 아저씨’는 고아원에서 지내던 제루샤 애벗이 매월 한 번씩 후원자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쓰는 조건으로 대학 진학 후원을 받으며 시작한다. 후원자의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애벗은 현관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보고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게 된다. 대학에 진학한 뒤 스스로 ‘주디’란 애칭을 붙인 그녀는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고단한 처지를 위로하며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낸다. 주디는 기숙사의 한방에서 지내던 줄리아 펜들턴의 먼 친척 저비스도 만난다. 대학 신문의 편집장을 지낼 정도로 글 재주를 인정받은 주디는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책을 내려고 출판사에 보내지만 퇴짜를 맞는다. 대학 졸업식에도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가 되려고 농장으로 이주한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가 병석에 있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마침내 아저씨의 집을 찾은 주디는 뜻밖의 인물임을 확인하고 그가 애달픈 사랑을 키우다가 거절당하고 앓아 누웠음을 알게 되는데…. 통속적인 로맨스 소설처럼 보이지만 작품은 인간이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며 성장하는 과정을 명징하게 그려 냈다는 평가를 듣는다. 오롯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상정한 편지 글로 이뤄진 작품이 100년 넘게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굴곡진 삶도 돌아볼 만하다. 1876년 웹스터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 ‘톰소여의 모험’을 펴냈던 출판업자 아버지와 트웨인의 조카였던 어머니 밑에서 뉴욕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신문기자로도 활약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 갔다. 불평등 해소에 관심이 많았으며 상류층 여성으로는 드물게 생업을 갖고 있었다. 교도소와 고아원의 주거 여건을 개선하는 것에 열정을 쏟았고 여권 신장 운동에도 앞장섰다. 마흔 살에 첫딸을 낳고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10년 동안 1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가 화제다. 매년 이맘때 대구사회복지모금회에 어김없이 나타나 사랑을 베풀던 아저씨가 익명 기부를 그만두겠다고 했단다. 부인이 신문 지상에 보도된 기부 메모의 필적을 보고 알 정도로 비밀을 지켰던 그는 다른 단체로 옮겨 기부하는 즐거움을 계속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한결같이 기부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늘 수입의 3분의1을 기부 몫으로 떼어놓고, 사업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기부할 돈을 회사 살리는 데 쓰라는 권유에도 ‘내 몫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이었다고 했다. 성탄절 아침, 산타 아저씨와 마주친 것처럼 반갑다. bsnim@seoul.co.kr
  • “백인 남성 싹쓸이 그만”… 노벨상 새 역사 쓴 ‘여풍’

    “백인 남성 싹쓸이 그만”… 노벨상 새 역사 쓴 ‘여풍’

    올해로 제정 119주년을 맞은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12일 경제학상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 세기가 넘는 동안 노벨상은 학문의 금자탑을 쌓은 이들에게 수여되는 최고 영예로 여겨졌지만 최근 몇 년 새 수상 자격 및 수상자 행적 논란, 명단 유출 등으로 얼룩졌다. 서구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명도 있었지만 올해는 여성 수상자가 4명으로 전체 수상자 11명 중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며 노벨상 개시 이래 여풍이 가장 센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 시상이 시작된 노벨상은 물리학상과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등 6개 분야에 주어진다. 지난해까지 총 919명의 개인과 24개 단체(복수 수상 제외)에 수여됐다. 상금은 올해 기준 1000만 스웨덴크로나(약 13억 510만원)다. 특출한 학문적 성과 이외에 따라붙는 조건들도 있고, 추천자와 후보 명단은 50년간 공개되지 않는 관행으로 노벨상 선정 과정에는 매년 관심이 집중돼 왔다. 한 분야 최대 3명까지만 수상이 가능하고, 발표 당시 생존해 있어야 한다. 다만 평화상은 단체에 수여되기도 하고, 기준에 들어맞는 후보가 없을 시 건너뛰고 다음해로 넘어가기도 한다. 최종 결정은 번복되지 않으며 자진 추천도 불가능하다.노벨은 유언장에 “국적에 관계없이”라고 남겼지만 역대 수상자들이 실제 학문에 기여한 비중보다 과도하게 서구 백인 남성에게 집중돼 여성, 아시아·아프리카계에 문호가 좁고, 주류 연구 분야가 아니면 외면받는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이른바 학문적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이다. 국가 발전 수준이 학문적 척도와 비례 관계에 있긴 하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별 수상자를 보면 미국이 383명(2019년 기준)으로 압도적인 1위에 올라 있고 영국(132명), 독일(107명), 프랑스(70명), 스웨덴(33명), 러시아(31명) 순이다. 일본이 28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CNN은 10일(현지시간)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여성은 57명으로 전체의 6%에 불과하고, 흑인은 16명으로 2%가 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학 부문에선 흑인 수상자가 배출된 적이 없다. 마크 지머 코네티컷대 교수는 “인종 다양성 부족의 근본 원인은 노벨상이 아니라 사회 체계에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핵분열을 발견한 여성 유대인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여러 차례 화학상 후보로 추천됐지만 공동 연구자였던 독일 과학자 오토 한만 1944년 수상해 학계에서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로 비폭력운동을 주창한 마하트마 간디는 1937~1939년 3년 연속, 1947년 평화상 후보자로 추천됐지만 서구 열강에 반대하는 식민지 출신을 불편하게 여긴 당시 유럽 분위기 탓에 수상하지 못했다. 천체 물리학 분야가 입자물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상자가 적은 점,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자에게 경제학상이 쏠린 점 등도 마찬가지다. 문학상 분야의 ‘언어 헤게모니’도 지적된다. 역대 수상자의 언어를 보면 영어 30명, 프랑스어 15명, 독일어 14명, 스페인어 11명, 스웨덴어 7명, 중국어 2명, 일본어 2명으로 영어권이 월등하다. 다행히 21세기 들어 수상자 중 여성 비중은 오름세다. 올해는 앤드리아 게즈(물리학),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제니퍼 다우드나(화학), 루이즈 글릭(문학) 등 4명이 호명됐으며 특히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공동 수상한 것은 최초다. 최근 몇 년간은 후보 명단 유출 의혹, ‘미투’ 폭로까지 겹쳐 한바탕 시끄러웠다. 2010년을 전후해 도박 사이트에서 특정 후보자의 베팅 금액이 급증하기도 했고, 2018년엔 선정 기관인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이 명단을 사전 유출한 혐의가 확인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프로스텐손의 남편이 여성 18명을 성폭행했다는 주장까지 불거지며 결국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지 못하고 이듬해로 미뤄졌다. 수상자들의 자격이나 전후 행적이 구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페터 한트케의 유고 전범 지지 행적이 도마 위에 올랐고, 앞서 2016년엔 반전 음유시인 가수 밥 딜런의 문학상 수상을 놓고 “과연 노랫말이 문학의 범주에 들 수 있느냐”는 찬반 논란이 일었다. 2009년 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우 집권 1년도 안 된 시점이라 ‘구체적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한 바가 무엇인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1949년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는 정신병 치료 명목으로 뇌 일부를 잘라 내는 수술을 고안했지만 곧 폐기됐다.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법을 발명, 화학비료로 식량 생산 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1918년 화학상을 받았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무기 개발·사용을 주장해 ‘화학무기의 아버지’라는 오명을 남겼다. 노벨 평화상은 세계 정치인들이 욕심을 내기 마련이지만 유대인 학살 장본인인 아돌프 히틀러(1939),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1945·1948), 전두환 전 대통령(1988)이 후보로 올랐던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아 있다. 평화상에 대놓고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와 나란히 내년도 후보로 추천돼 관심이 쏠린다. 앞서 2018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동 수상 가능성이 각종 도박 사이트에서 점쳐지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평화상을 받은 이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1906)·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1919),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1978), 김대중 대통령(2000)이 꼽힌다. 반면 소신에 따라 수상을 거부한 이는 2명뿐이다. 1964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제도권에 편입되고 싶지 않아 모든 공식적 영예를 거부한다”고 밝혀 온 발언을 그대로 따라 상을 반납했다. 또 다른 한 명은 1973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함께 평화상에 지명된 레득토 베트남 총리다. 노벨위원회는 베트남전 종결을 이끈 공로로 두 사람을 호명했지만, 레득토 총리는 “내 조국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고, 나는 전시 지도자이지 평화의 사도가 아니다”라며 상을 거부했다. 여기에 키신저 장관은 휴전 협상 중 하노이 폭격을 명령해 당시 심사위원 2명이 항의 의미로 사퇴하는 등 상의 의미가 바래기도 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상 거절을 강요당한 이들은 7명이나 된다. 대표적 사례가 소설 ‘닥터 지바고’로 1958년 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다. 그는 작품에서 러시아 혁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부는 물론 모국의 작가 동맹에서도 압력을 받으며 생전 수상이 불발됐고, 사후에야 아들이 대리 수상했다. 중국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는 2010년 노벨상 수상자로 호명됐지만 징역 11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어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학계에 충분히 족적을 남겼지만 노벨상과 인연이 없는 인물도 많았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해 작가 제임스 조이스, 레프 톨스토이, 마르셀 프루스트, 조지 오웰, 마크 트웨인 등은 생전에 노벨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선 올해 과학 분야 최초 수상 여부를 놓고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에게 관심이 집중됐지만 고질적인 기초과학 투자 외면 속에 결국 무산됐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노벨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은 수상자들이 자국에서 상을 받는 TV 중계로 대체되고, 오슬로에서 평화상 시상식만 개최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처칠의 ‘뻐끔담배’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처칠의 ‘뻐끔담배’

    교차로에서 자동차가 신호 대기 중이다. 앞차 운전석 창문이 열린다. 운전자의 왼손이 밖으로 빠져나온다.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있다. 보기가 불편하다. 아니나 다를까. 신호가 바뀌자마자 담배꽁초를 길에 툭 던져 버리고 냅다 달아난다. 뒤에서 지켜보던 이는 불쾌감이 확 밀려온다. 아파트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연기는 윗집 사는 이웃과의 물리적 충돌까지 초래한다. 우리 시대의 풍속도다. 1970년대와 80년대, 아니 90년대까지도 이렇지는 않았다. 영화관에서, 찻집에서, 심지어 열차 객실에서도 대놓고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거리에서 불붙은 담배를 손에 들고 다니다가 지나던 행인의 옷에 구멍을 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담배 풍속은 급격히 변했다.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간접흡연의 해악이 널리 알려지면서 애연가들은 다들 죄인이라도 되는 듯이 움츠러들고 있다. 보기에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깟 담배 좀 끊으면 안 되냐고? 애연가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 담배를 끊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나는 천 번도 더 끊어 봤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만큼 담배 끊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흡연 부스에서 눈치 보며 피우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담배 하면 떠오르는 정치인으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1874~1965)을 빼놓을 수 없다. 처칠은 시가만 따로 보관하는 특별보관실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그 방에는 그가 선호하는 아바나(쿠바)산 시가인 로메오이훌리에타가 보관돼 있었다. 처칠이 시가를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못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대중과 카메라맨 앞에서 종종 시가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시가를 많이 피우지는 않았다. 하루에 12개비를 넘긴 적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처칠은 시가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았다. 그는 시가를 피운다기보다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가 다시 끄기를 반복했다. ‘뻐끔담배’였던 것이다. 처칠은 라이터를 절대 사용하지 않았고 언제나 특별 주문한 아주 커다란 성냥을 썼다. 시가를 피우는 것보다는 피우는 과정을 즐겼다. 91세까지 장수한 처칠이 골초였다는 사실을 들어 담배 무해론을 끌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처칠은 ‘무늬만 골초’였다. 삼례농협 창고위로 흘러가는 구름처럼 담배는 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황순원 생전 자주 찾던 ‘소나기’ 의 배경작가 유년시절 보낸 평양과 빼닮아 설립소설 배경의 지명 이용한 산책코스 눈길 일제 민족성 말살 정책 꿋꿋하게 이겨내우리말 소설의 순수성 지킨 문학혼 정수국내 첫 문학관 AR 등 실감 콘텐츠 사업촘촘한 버드나무 뿌리 사이에 첫사랑이 있다. 소나기처럼 삽시간에 왔다가 비구름이 바람에 흩어지듯이 떠나거나 사라져버린 무방비의 사랑이다. 비 갠 자리의 흔적이 나무뿌리 사이로 오롯하게 새겨지는 고장, 경기도 양평. 이 지명은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양근군은 버드나무의 뿌리, 지평은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과 공평할 평자가 만난 글자다.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니! 그렇다면 흡사 버드나무 뿌리가 비 맞은 숫돌을 감싸쥔 형상을 소설에서는 사랑이라 부른 것일까.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1953년 작품인 소설 ‘소나기’ 이야기다. 한국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발표한 소설이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독자들에게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아련한 이미지로 굳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소나기처럼 스치듯 지나갔지만 강렬하게 남은 빗방울의 흔적만으로도 일생을 회고할 수 있는 사랑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고장에 다녀왔다. 어른들 눈에 ‘여간 잔망스럽지 않다’던 소녀의 흔적과 그를 기억하는 소년의 애틋함이 새겨진 소설 속의 ‘조약돌’ 혹은 지평의 숫돌은 지금 버드나무 뿌리 어디쯤 닿아 있을까 생각하면서.●황순원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의 모든 길 평남 대동군 재경면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수학한 황순원 선생의 고향 대신에 소설의 배경이자 선생이 즐겨 찾은 양평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들어선 것은 2003년 일이다. 양평군 지원과 선생이 혼신을 다해 제자들을 길러 냈던 경희대의 결연으로 이곳에 테마공원이 조성된 것이다.‘유년의 내 고향을 빼닮았다’며 찾은 곳에 온전히 그의 소설로만 탄생한 마을이라니. 선생의 제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황순원문학촌장은 ‘선생의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 사이에 있는 모든 길’이라 회고했다. 양평과 평양은 단순한 지명 자체를 벗어나 남과 북을 가로지르고,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인간애가 펼쳐지는 삶의 길이자 소설의 땅인 셈이다. 단편소설 ‘소나기’가 수록된 소설집 ‘학’에 실린 동명 소설에는 이념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인간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던 교과서 속 소설은 시대의 모진 칼날 속에서도 소설의 명맥과 한글 문장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선생의 고투가 새겨진 산물이다. 서슬 퍼런 일본의 한글 말살 정책에도 우리말로 쓴 소설의 순수성을 지켜 내려던 선생의 문학혼이 빛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소설사가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관하여 김종회 문학촌장은 다시 이렇게 소회했다. “세상의 명리에 타협하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세상과 절연하지도 않으셨으며, 있을 자리와 할 말, 물러설 때와 취해야 할 행위에 망설임도 구김살도 없으셨던, 삶과 글의 양면에 걸쳐 뜻깊고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고 떠난 작가셨습니다.” 그 엄혹하고도 핍진했던 시대에 어찌하여 ‘첫사랑’이었던 걸까. ‘소나기’가 발표된 시기인 1953년은 특히나 6·25전쟁이 막바지였던 때가 아닌가. 전란의 여파로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사람이 사람됨을 잃을 수밖에 없던 시대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피어난 첫사랑의 이야기라니. 이는 선생이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 대한 서정적 표현이자 사랑’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후대는 평가하고 있다. “소설이 정말로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냐”고 당돌하게 물어오던 제자에게 선생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답한 우문현답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해서 아직도 회자되는 중이다.●매시 정각마다 분수쇼… 소설 속 주인공 된 듯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이념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 작가의 ‘사랑’ 이야기가 오늘날 홀연히 피어난 공간이 바로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다. 이곳은 황순원문학관을 비롯해 황순원 묘역, 수숫단 오솔길,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들꽃마을, 학의 숲, 송아지 들판, 너와 나만의 길, 목넘이 고개, 징검다리 등으로 꾸려져 있다. 이 소나기 마을을 에두르는 산책코스는 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배경지에서 이름한 것들이다. 오솔길을 걷다 매 시각 정시가 되면, 소나기 광장에 난데없는 분수쇼가 펼쳐지는 모습 또한 빠트릴 수 없는 볼거리이자 온몸을 흠뻑 적실 수 있는 문학촌 체험 중의 백미다. 이 또한 그곳을 찾은 연인들의 사랑을 위한 장치인 것일까. 문학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설의 흔적을 종합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 모든 첫사랑의 흔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다 보면 광장에서 분수에 몸이 젖듯이 마음도 사랑에 젖어가고, 또 소설의 한 대목처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마을에 온 연인들의 사랑은 꼭 이루어진다는 말도 떠돈다고 한다.“선생님, 사랑이 뭘까요?” 또 “첫사랑은 뭘까요?” 소녀가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듯 질문을 하고 나면 돌아오는 대답은 물론 없겠지만 그 질문의 자리에 내 스스로 찾아낸 대답이 스며들겠지. 이쯤 해서 첫사랑의 정의를 ‘첫 번째 한 사랑’보다는 ‘그녀 혹은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랑이 첫 번째’라 말하면 어떨까. 왜 이리도 ‘첫사랑’에 마음을 두느냐 질문한다면 나는 지금 ‘첫사랑의 마을’에 다녀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소나기 마을의 테마가 ‘첫사랑’인 까닭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잠시 공사가 중단됐지만, 개관 10주년을 넘긴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지금 대대적인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 바로 ‘실감콘텐츠 사업’이다. 실감 콘텐츠는 사용자에게 가상 환경에서 현실 같은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각, 청각, 촉각, 운동감각 등의 모든 감각 정보를 전달해 가상체험(AR)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의 영화화나 드라마화는 익숙하지만 가상 체험은 익숙하지 않은 독자와 방문자들에게 ‘실제 소설 속으로 들어간 듯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스토리)가 나에게 다가와 다시 한번 ‘텔링’되는 순간. 전국 문학관 중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사업이다. 마치 지금 현실의 이 순간에 저 공간으로 들어서면, 소년과 소녀가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책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니, 어떤 느낌일까. 조만간 그 시스템이 완성되면 다시 한번 소나기 마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늘어버렸다. 소설 한 편이 한 마을을 조성했고, 그 마을 속에서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문학의 외연이 문장과 미학을 넘어선 것을 대변한다. 작품 속의 문장들이 ‘현재’와 ‘스토리 텔링’을 넘어서서 ‘현실’이 된 순간이라면 1950년대와 2020년을 잇는 일쯤은 너끈히 해내고도 남을 것이다. 1950년대의 소설 속의 문장이 2020년으로 스며와 새로운 목소리와 물리적인 몸체를 갖는 공간에서라면 ‘첫사랑’을 더 궁금해해도 되겠다. 떠나간 이들,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을 마음껏 불러내어 못내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을 성 싶다. ‘소나기’ 증강현실을 넘어서면 소나기 마을 뒤편에 ‘첫사랑 테마 로드’가 펼쳐질 예정이라고도 했다. 첫사랑의 산실인 이곳에서 세계 문학 속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마지막으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주요 테마로 준비되고 있다.●첨단 과학 통해 다시 노작가 모습 만나게 되길 AR 속에서 ‘소나기’의 첫사랑과 만나고 나오면 ‘별’의 목동과 어린 왕자의 우주적인 사랑 그리고 톰 소여가 모험을 떠나던 도중에 만난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열리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증강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분수에서 물을 쏘듯이 내게 다가오면 가랑비와 소낙비에 옷이 젖듯이 내 마음도 젖어들 수밖에 없을 터이다. 바라건데 그 현실 속에서는 첫사랑뿐만 아니라 황순원 선생의 모습도 만나뵐 수 있길. 소년과 소녀를 넌지시 바라보는 마을의 인자한 할아버지의 형상에서부터 현실의 풍파를 날카롭게 그려내되 사람의 됨됨이를 끝내 잃지 않으려는 모습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밤이 깊도록 원고를 써내려 가는 노작가의 뒷모습으로라도 선생을 만난다면 어떨까. 선생께 언제까지라도 ‘당돌한 질문’을 건네고 싶은 제자의 바람과 독자들의 ‘첫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소나기 마을’은 또 어떤 모습으로 현실을 비추게 될까 궁금해지는 지점이다.한 편의 소설이 시대와 손잡고 만들어낸 가장 최신의 시스템 속에서 사람의 제일 오래된 마음인 ‘사랑’ 이야기가 버드나무 뿌리 안에서부터 툭 불거져 나와 우리에게 손짓하는 마을. 자,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증강현실이든 1950년대의 사랑이든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이곳을 다녀온 나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게 되고야 말았다. 당신에게도 오늘은 첫 번째 사랑의 감정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를! 첫사랑에 관해서라면 조금 더 잔망스러워져도 괜찮겠다. 소나기처럼. 소설가 이은선
  • 하늘서 본 모리셔스 日선박 기름유출 현장...’인도양의 보석’ 어쩌나

    하늘서 본 모리셔스 日선박 기름유출 현장...’인도양의 보석’ 어쩌나

    ‘인도양의 보석’ 모리셔스가 일본 배 기름 유출 사고로 환경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7일(현지시간) AP 등 외신은 일본 소유 벌크화물선 ‘MV 와카시오’ 호가 모리셔스 동남쪽 해안에 좌초하면서 기름이 바다로 유출됐다고 전했다. 선박에서 흘러나온 수천 톤의 기름으로 뒤덮인 모리셔스는 그야말로 ‘흑해’(黑海)를 방불케 한다.7일 미국 민간 인공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모리셔스 위성사진을 보면, 선박에서 흘러나온 대규모 기름이 띠를 형성하면서 쪽빛 바닷물이 거무튀튀하게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고 수습에 동원된 군경과 팔을 걷어붙인 주민들은 사탕수수 잎을 채운 자루를 띄우는 등 방제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다.프리빈드 주그노트 모리셔스 총리는 좌초된 선박에서 며칠 전부터 흑갈색 기름이 흘러나와 환경적 보전 가치가 높은 일대 지역으로 퍼지고 있다고 밝혔다. 모리셔스 정부에 따르면 사고 선박에는 4000t에 가까운 기름이 실려 있었다. 선체에 균열이 생긴 만큼 앞으로 더 많은 기름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모리셔스 정부는 일단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한 상태다. 주그노트 총리는 “우리나라는 좌초한 선박을 다시 띄울 기술과 전문 인력이 없다”면서 “프랑스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지원을 호소했다”라고 말했다. 모리셔스와 가장 가까운 이웃은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이다. 모리셔스는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다. 사고 선박 ‘와카시오’ 호는 지난 7월 25일 밤 모리셔스 산호초 바다에 좌초했으며, 선주는 일본 오키요 해상 회사와 나가사키 해운으로 돼 있다. 사고 당시 중국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브라질로 가는 중이었다.모리셔스는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하고 난 뒤 천국을 만들었다”라고 했을 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인도양의 보석, 인도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며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에게 최고의 휴양지로 사랑받고 있다.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했던 모리셔스는 그러나 팬데믹으로 직격탄은 맞은 것도 모자라, 기름 유출 사고까지 겹쳐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밥딜런이 극찬한 ‘포크 전설‘ 존 프린, 코로나19로 사망

    밥딜런이 극찬한 ‘포크 전설‘ 존 프린, 코로나19로 사망

    1971년 데뷔···저항정신·유머 담아그래미상 두 차례 수상하기도美 음악계 인사들 잇따라 사망그래미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 포크 가수 존 프린이 코로나19로 숨졌다. 74세. 빌보드와 AFP통신 등은 “미국 전설이자 존경받는 싱어송라이터 존 프린이 7일(현지시간)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그의 아내 피오나 웰랜 프린은 그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의 노래를 부르며 기도해달라”며 소식을 전해왔다. 피오나 웰랜도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현재는 완치된 상태다. 1946년 미국 일리노이주 메이우드에서 태어난 그는 클럽에서 공연하던 중 당시 인기 컨트리 가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에게 발굴돼 1971년 ‘존 프린’을 발매하며 정식 데뷔했다. 그는 사회 비평적이고 저항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컨트리 음악으로 꾸준한 얻었다. ‘파라다이스’, ‘헬로 인 데어’, ‘샘 스톤’ 등 히트곡을 남겼고 앨범 중 15장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오르기도 했다. 1991년과 2005년에는 그래미어워즈 포크 분야 최고상인 ‘베스트 컨템퍼러리 포크 앨범’에 선정됐다. AFP통신은 “그는 한때 작사계의 마크 트웨인이라고 불렸으며, 초현실주의적인 기지로 우울한 이야기들을 꾸며냈다”면서 “밥 딜런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사·작곡가 중 한명으로 프린을 꼽았고 그의 음악이 순수한 프루스트적 실존주의라고 평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40만명, 사망자가 1만명을 넘기면서 최근 미국 가요계 스타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컨트리 가수 조 디피와 ‘아이 러브 록 앤 롤’ 원작자 앨런 메릴, 재즈 트럼펫 연주자 월리스 로니가 숨졌다. 이달에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OST로 유명한 작곡가 애덤 슐레진저, 재즈 기타리스트 버키 피자렐리, 재즈 피아니스트 엘리스 마살리스 등이 별세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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