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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원형극장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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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내편만 옳다는 생각 버려야 선진국

    [열린세상] 내편만 옳다는 생각 버려야 선진국

    몇 년 전, 지중해 연안의 에게해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중 어느 섬에 들렀더니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인 원형극장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스 시대의 원형극장과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은 고대 지중해 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간의 구조, 활용 목적,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정치적 의미에서도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당시의 원형극장은 문화, 예술의 공연장 역할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광장이었다. 공동체가 모여 여론을 모으고, 정책을 토론하는 공론장으로서 정치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두 문명의 극장은 단순한 문화 예술 공간을 넘어, 당시 지배 체제와 시민들의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물이었다. 그리스의 극장은 언덕의 경사면이라는 자연 지형을 활용해 부채꼴 형태로 아늑하게 감싸는 구조로 지어져 있었다. 그리스 극장의 중요한 정치적 의미는 ‘참여’와 ‘평등’, 그리고 ‘공동체의 자치’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특징은 주로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시민 민주주의의 연장선으로서 고대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 등에서 볼 수 있듯,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라 성인 남성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정치적 공간과 맞닿아 있었다. 둘째, 비극을 통한 정치적 의미 부여로서 극장에서 상연된 비극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정의, 권력의 오만, 국가와 개인의 갈등 등 고도의 정치적·철학적 주제를 다루며 시민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유도했다. 즉, 극장은 시민들이 민주 시민으로서 자각하고 토론하는 정치적 교육장이었다. 로마에는 반원형인 일반 극장과 콜로세움으로 불리는 원형 경기장이 있다. 평지에 콘크리트 아치 공법을 이용해 거대하고 웅장하게 세워진 인공 건축물이다. 이곳의 정치적 의미는 ‘황제의 권력 과시’, ‘체제 결속’, 그리고 ‘엄격한 계급 질서’ 유지였다. 로마 원형극장의 주요 특징 중 첫 번째는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고 황제의 권력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기 위한 통치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정치적 비판이나 철학적 성찰보다는 권위와 말초적 쾌락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스 극장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공간이었다면, 로마의 극장은 철저한 차별의 공간이었다. 이것이 두번째 특징이다. 무대와 가까운 가장 좋은 좌석은 원로원 의원과 귀족들이 차지했고, 뒤로 갈수록 평민, 맨 꼭대기 층에는 노예와 여성이 앉았다. 이는 로마 사회의 수직적이고 절대적인 신분 질서를 공간적으로 각인시키는 정치적 장치였다. 이처럼 소위 풀뿌리민주주의 정치는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에서 잘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과 같은 건설적인 정치 공론의 장을 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시대 환경이 너무도 많이 변했기에 동일선상의 비교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필자의 소박한 생각으론 치열한 토론과정과 합리성을 결여한 채, 오직 내 주장만이 옳다는 극단적 대립주의와 과도한 경쟁, 그리고 승자독식의 폐해 등으로 인해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에서와 같은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은 개인 SNS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 편의 일방적 주장, 그것도 때론 극단적 주장만을 펼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풀뿌리민주주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오직 내 편만이 옳다는 그릇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도 경청하고 때론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고 상대방의 주장도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와 관대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적, 문화적 선진국에 걸맞는 진정한 일류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우윤근 법무법인(유)광장 고문·전 러시아 대사
  • 6000년 세월 겹겹이…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나는 도시

    6000년 세월 겹겹이…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나는 도시

    올해 한국·불가리아 수교 35주년내년 1월부터 ‘유로화’ 사용 가능로마·비잔틴·오스만 시대 어우러져K팝 커버댄스 등 한류 전진기지로과거의 문명과 현대 도시 탐험 제격 불가리아 소피아에는 오랜 세월이 겹겹이 쌓여 있다. 고대 세르디카 유적부터 로마 시대 유적, 비잔틴 문화와 오스만 제국의 흔적, 공산주의 시대 건물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현대 도시에서 과거 문명을 탐험하며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내년부터 여행이 더 편해질 전망이다. 불가리아는 지난 1월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솅겐 협정’에 가입한 데 이어 내년 1월부터 유로화를 도입한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발칸 반도에 있는 불가리아가 유럽 여행의 출발지로 거듭날 전망이다. 올해는 한국과 불가리아 수교 35주년이 되는 해다. 주불가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은 불가리아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이어 가기 위해 K팝 커버댄스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9세기 고유 문자인 키릴 문자를 만든 불가리아는 6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국가”라는 김동배 주불가리아 대한민국 대사가 추천하는 소피아 여행지를 돌아봤다. ●수천년 역사 품은 세르디카 유적 소피아 주요 관광 명소들은 도심에 있어 도보로 돌아볼 수 있다. 먼저 불가리아 대통령궁 뒤편 중정에 자리한 세르디카 유적을 찾았다. 세르디카는 비잔틴 시대 소피아의 지명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소피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유적지는 2000년대 초 소피아 시내 지하철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됐다. 지금은 로마 시대에 건설된 도로와 관청 건물 등 흔적만 남아 있지만 과거에는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원형극장, 신전, 공중목욕탕, 그리고 화려한 주택들로 가득했던 곳이다. 소피아에는 기원전 8세기부터 트라키아 세르디 부족이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이 이곳을 정복하면서 발칸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번성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272~337년)는 ‘세르디카는 나의 로마’라며 한때 로마 수도를 이곳으로 옮길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세르디카는 로마제국 멸망 후 훈족의 침략 등으로 파괴되기도 했고, 비잔틴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14세기 ‘지혜’를 뜻하는 그리스어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유적지 한편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 게오르기우스 교회가 있다. 4세기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교회는 소피아에서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정사각형 기단에 원형 돔이 올려진 로툰다 양식으로 지어졌다. 로마 시대에는 신전이나 목욕탕으로 사용되다가 교회로 바뀌었고, 오스만제국 시대에는 모스크로 사용됐다. 작지만 웅장한 위용을 뿜어내는 교회는 경건함 속에서 고요한 울림을 선사한다. 세르디카 유적을 나서면 불가리아 대통령궁 앞에서 수시로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하얀색 제복을 입은 근엄한 근위병들이 관광객들에게 절도 있는 교대 의식을 선보인다. ●도시의 상징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 대통령궁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소피아의 랜드마크인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이 있다. 황금빛 돔과 화려한 모자이크, 웅장한 내부 장식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운다. 불가리아 정교회 성당인 대성당은 500년 가까이 지배를 받아 온 오스만튀르크제국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해 건립됐다. 1877~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국민 기부금으로 만들었다. 대성당은 1882년 착공해 1912년 완공됐으며 발칸 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높이 45m(종탑 포함 53m)에 달하며 12개의 종탑이 위로 뻗어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은은한 촛불과 성스러운 향기가 마치 영혼을 정화하는 듯한 경외감을 안겨 준다. 내부 중앙 돔 주변에는 얇은 금색 글자로 주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지하에는 정교회 유물과 성화 컬렉션 등을 전시한 박물관이 있다. 대성당 인근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는 1907년 건립된 러시아 정교회다. 다채로운 타일로 장식된 외관과 5개의 황금빛 돔이 불가리아 정교회와는 다른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장소다. ●예술의 중심지 이반 바조프 국립극장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도로를 건너면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이반 바조프 국립극장을 만날 수 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극장은 불가리아 연극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매일 밤 연극과 오페라, 발레,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진다. 국립극장은 불가리아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반 바조프(1850~1921)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1907년 완공된 건물 외관은 붉은 벽돌과 우아한 돔을 갖추고 있으며, 정면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블가리아의 아픈 역사를 보여 주는 유적지도 볼 수 있다. 오스만제국 통치 시절인 1576년 건축된 바냐 바시 모스크는 소피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슬람 사원이다. 당시 오스만제국이 시민들에게 이슬람 개종을 강요하면서 민족 정체성과 문화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인근에 있는 세인트 페트카 지하 교회는 오스만제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눈에 띄지 않도록 지하에 건설한 정교회다. 지하 교회 옆 네델리아 광장에는 16m 높이의 소피아 여신상이 우뚝 서 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과 해방을 상징하는 여신상이다. 불가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4년부터 소련 진영 아래서 공산 체제를 유지했으나 1989년 동유럽 민주화 물결 속에 변화를 맞이했다. 소피아 여신상은 2000년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이 서 있던 자리에 건립됐다. 여신상은 머리에 황금관을 쓰고 있으며 왼손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를 들고 있다. 소피아 여신상이 멀리 바라보고 있는 건물은 ‘구 공산당본부’다. 1955년 공산주의 체제의 위엄을 보여 주기 위해 건설됐다. 과거 건물 꼭대기에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 별이 설치돼 있었으나 철거됐다. ●여행자들의 천국 비토샤 거리 비토샤 거리는 소피아의 상징인 비토샤 산(해발 2290m)의 이름에서 유래한 여행 중심 거리다. 길이 2㎞ 정도의 거리에는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 바, 클럽 등이 밀집해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멀리 비토샤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토샤 거리는 낮에는 활기찬 에너지로, 밤에는 은은한 조명 아래 로맨틱한 분위기로 변신한다. 다양한 상점들을 구경하며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노천 카페에 앉아 향긋한 커피를 음미하며 현지인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도 좋다. 저녁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에서 불가리아 전통 요리 등을 맛볼 수 있다. 불가리아는 풍부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만큼이나 독특하고 맛있는 전통 음식을 자랑한다. 그리스, 터키, 중동 등 주변국의 영향과 슬라브 민족의 고유한 요리법이 어우러져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선한 샐러드와 발효 유제품이 불가리아 특유의 향신료와 함께 제공돼 풍성한 식탁을 완성한다. 다양한 과일로 만든 불가리아 전통 증류주인 ‘라키아’를 곁들이면 음식의 풍미가 더욱 돋보인다. 불가리아 전통 음식으로는 토마토, 오이, 양파에 흰 치즈인 시레네를 듬뿍 올려 만든 ‘숍스카 샐러드’와 요구르트, 오이, 호두를 넣어 만든 차가운 수프 ‘타라토르’, 다진 고기를 양념해 구운 ‘케밥체’와 ‘큐프테’, 불가리아 전통 파이 ‘바니차’ 등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야나 교회 소피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는 보야나 교회다. 비토샤 산기슭에 있는 보야나 교회는 13세기 프레스코화를 간직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보야나 교회는 1979년 불가리아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교회는 시내 외곽에 있어 지하철과 트램, 버스 등을 이용하면 30~40분 정도 걸린다. 보야나 교회는 10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에 걸쳐 지어진 세 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는데, 각기 다른 시기에 추가됐지만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1259년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뛰어나 중세 불가리아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내부에는 240여점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는데 18개 장면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내부는 10명 안팎의 관람객만 입장 가능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며 관람 시간도 10분 정도로 제한된다. 입장권 가격은 12레프(약 1만원)다. 벽화에 깃든 화가의 영혼을 느끼며 그림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비토샤 산은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기 위해 찾는 시민들의 휴식처다. 비토샤 산은 193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봄가을에는 하이킹과 등반객들이 몰리고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변신한다. ●온천과 와인, 휴양지 벨린그라드 온천, 와인, 휴양을 즐기려면 소피아 주변 도시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불가리아에는 1000여개의 온천이 있을 정도로 온천수가 풍부하다. 소피아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벨린그라드는 ‘발칸 지역의 온천 수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가성비가 높은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멜닉은 불가리아 와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멜닉에는 유명 와이너리가 많아 최고 품질의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다. 이곳의 와인은 과거 영국의 처칠 총리가 좋아했다고 한다. 장미 생산 지역으로 가장 유명한 카잔락에서는 매년 6월 장미 축제가 개최된다. 장미 수확 체험과 장미유 생산 공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장미유 1㎏을 생산하려면 장미꽃 3.5t이 필요하다고 한다. 동쪽 흑해 연안에 있는 휴양 도시인 부르가스는 불가리아 수산업, 해양물류, 그리고 산업단지가 모여 있는 중심지다. 겨울철에는 스키 리조트들이 유명하다. 반스코는 론리 플래닛에서 2025년 유럽 최고의 스키 여행지 중 하나로 선정됐다. 불가리아 제2의 도시인 플로브디프는 2019년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됐다. 구 시가지에는 불가리아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돼 있으며 로마 시대 원형극장도 볼 수 있다. ■여행수첩 항공: 한국에서 소피아까지의 직항편은 없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등을 경유해야 한다. 15시간 이상 소요된다. 소피아 국제공항에서 도심까지는 9㎞ 정도(자동차로 15분) 떨어져 있다. 교통: 소피아에는 지하철, 트램, 버스 등 대중교통이 잘 발달해 있다. 무선 태그(Wireless tag)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1회권(1.6레프), 1일권(4레프)도 판매한다. 생활: 물가는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레스토랑과 카페 등에서는 5~10% 정도를 팁으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치안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불가리아어를 사용하지만 주요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통한다. 불가리아는 내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며 현재 화폐인 1레프는 830원 정도다. 유로화 도입을 앞두고 고정환율제를 도입해 1유로는 1.95레프다. 무료 투어 : 소피아 법원 앞에서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진행하는 ‘무료 소피아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2~3시간 동안 주요 명소를 돌아볼 수 있다.
  • [데스크 시각] 메탈리카가 경복궁에서 공연한다면/홍지민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메탈리카가 경복궁에서 공연한다면/홍지민 문화부장

    님 아레나. 프랑스 남부 도시, 프랑스의 로마로 불리는 님에 자리한 로마시대 원형극장(아레나)이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이 세워진 1세기 후반 지어졌다고 한다. 현존하는 로마시대 원형극장 중 보존이 잘 돼 있는 편이라고 한다. 2009년 10월 세계적인 스래시메탈 밴드 메탈리카가 이곳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공연을 즐겼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유적에서 록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화제가 됐다.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 공연 실황을 고스란히 담은 DVD를 통해 현장을 간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었다. 어스름에 원형극장 전면을 타고 넘어 극장 안을 비추는 카메라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원형극장의 전경, 극장을 가득 채운 1만여 관객들의 함성, 그리고 메탈리카가 공연 인트로로 사용하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엑스터시 오브 골드’까지…. 그런데 우리가 생경하게 여겼던 님 아레나에서의 록 공연은 메탈리카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이름 좀 있다는 밴드만 따져도 앞서 1992년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2005년 람슈타인이 콘서트를 열었다. 더 큐어, 데이비드 보위, 밥 딜런, 라디오 헤드, 폴리스, 그린데이, ZZ톱, 슬래시, 슬립낫, 시스템 오브 어 다운, 프로디지, 오프스프링 등도 거쳐 갔다. 록밴드(아티스트)만 이 정도니 대중음악 전체를 따지면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것 같다. 님 아레나에서는 검투사 경연을 비롯해 과거 로마 게임을 재현한 축제, 지역 축제, 투우를 비롯한 각종 행사와 스포츠 대회도 열리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문화 유적 보존에 신경을 제대로 쓰지 않는 것이라기보다는 원형극장의 원래 용도를 현대에서도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곁에 함께 살아 숨쉬는 문화 유적으로서 말이다. 지난 5월 카스텔델몬테(몬테성)에서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의 패션쇼가 열렸다. 카스텔델몬테는 이탈리아 남부 안드리아 부근에 위치한 중세 시대의 성채다. 124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세웠다고 한다. 이탈리아 1센트짜리 동전에 새겨져 있을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곳이다. 우리나라 10원짜리 동전에 등장하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처럼 말이다. 구찌는 별자리 등 천문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새 컬렉션 ‘코스모고니’(Cosmogonie)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카스텔델몬테를 배경으로 세계에 선보였다. 문화 유적에서의 구찌 패션쇼 역시 처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 프랑스 아를의 알리스캉,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궁전의 팔라티나 미술관, 로마 카피톨리노 미술관 등에서 구찌는 패션쇼를 펼쳐 왔다. 지난 5월 청와대 개방, 그에 따른 활용 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로 크고 작은 논란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 패션 화보 촬영에 얽힌 국격 훼손 논란이 그 정점이 아닌가 싶다. 이 논란의 여파로 오는 11월 1일 경복궁 근정전 일대에서 예정된 구찌의 패션쇼가 무산될 뻔했다. 여러 논란의 근저에는 청와대를 성역처럼 여겨 온 우리 인식이 일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쳐다보기만 하는 박제된 문화 유적보다는 우리 곁에서 다양하게 숨쉴 수 있는 문화 유적을 선호한다. 다만 문화 유적이나 문화재에 대한 관리 부주의와 몰이해로 크고 작은 훼손이 잇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우려하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구찌 패션쇼는 경복궁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관리로 패션쇼 개최 이후에도 경복궁은 개최 전과 다름없는 상태여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우리 문화 유적에서 이러한 행사를 또 열 수 있는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 좁은 협곡, 숨겨진 바위 도시… 붉은 사막, 그 너머 쪽빛 홍해

    좁은 협곡, 숨겨진 바위 도시… 붉은 사막, 그 너머 쪽빛 홍해

    좁은 협곡 사이를 빠져나오자 불현듯 거대한 신전이 나타났다. 실제로 보고 있지만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바위를 깎아 건설한 신비로운 고대도시 페트라. 그 속에 서면 인간의 능력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요르단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나라다. 지중해 동남쪽 아라비아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쪽으로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쪽으로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접하고 있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지만, 불행하게도 석유는 단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그런 만큼 교육열은 높다.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와 정보기술(IT) 전문가는 대부분 요르단 출신이다.●영화 인디애나 존스·트랜스포머 촬영지로 유명 요르단을 대표하는 여행지는 페트라다. 수도 암만에서 150㎞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 3시간여를 가야 한다. 페트라는 특유의 신비로운 존재감으로 인해 영화에 많이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트랜스포머’다. 외계 로봇 종족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신전 암벽 뒤에 감춰져 있는데 이 신전이 바로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알 카즈네’다. 알 카즈네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에도 등장했다.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예수의 성배를 찾아다니는 과정에 나온다. 인디애나 존스가 말을 타고 협곡 사이를 달리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만나는 장밋빛 신전이 바로 알 카즈네다. 붉은 사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그 건축물을, 그곳이 페트라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정교한 세트 정도로 여겼다. 페트라 앞에 서자 왜 스필버그가 이곳을 성배를 숨겨놓은 장소로 설정했는지, 외계인이 그들의 운명을 건 열쇠를 이곳에 숨겨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세상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직접 눈으로 봐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일들투성이다. 페트라를 세운 주인공은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인 나바테아인이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해발 950m의 바위투성이 고지대에 이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도시는 번성했다. 황량한 사막과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은 아니었지만 예멘, 메카,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아라비아반도, 페니키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을 하던 대상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이다. 나바테아인은 ‘왕의 대로’를 장악하면서 아라비아의 거상으로 부상했고 페트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왕의 대로는 요르단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대의 길. 해발 1200m에 위치한 이 길은 지금도 자동차가 툴툴거리며 달린다. 도시가 발전하자 로마제국이 페트라를 넘보기 시작했고 결국 106년 로마군에 점령당하고 만다. 이후 세월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후 페트라는 동로마가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동로마가 페트라보다 수도에 더 가까운 시리아의 팔미라로 무역의 중심지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대상들의 활동 무대도 시리아로 옮겨지게 되고 페트라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쇠락해 가던 페트라에 결정타를 날린 건 지진이었다. 6~7세기 발생한 대지진은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페트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1000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전설 속 도시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도중 요르단 남서부 지방을 지나던 중이었다. 황무지와 가파른 협곡이 어우러진 도시 와디무사에 도달한 그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에게서 와디무사 인근에 보물이 감춰진 고대 도시의 폐허가 있다는 전설을 듣게 된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페트라였다. 페트라에 정착해 살고 있던 베두인족은 자신의 생활 터전을 침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베두인족 가이드를 앞세워 협곡 틈새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허 속에 잔존해 있던 나바테아인의 도시를 발견했다. ●‘파라오 보물 창고’ 알 카즈네… 신전·수도원 유적도 페트라 입구에 위치한 마을은 와디무사. ‘모세의 건천’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4세기, 60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왕의 대로’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이동하던 중 페트라를 통과한다. 모세는 이곳에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지팡이를 바위로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페트라 입구에 자리한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알 카즈네까지는 ‘시크’라고 불리는 협곡을 따라 약 3㎞를 가야 한다. 여행자들은 100m가 넘는 높이의 바위들이 2~3m의 좁은 폭으로 형성돼 있는 시크를 걸으며 저마다 웅장한 페트라의 모습을 상상한다. 시크를 따라가다보면 절벽에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침식작용과 대홍수로 생겨난 지형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샌드위치를 자른 듯 층층이 겹친 지층은 지질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벽에는 굵은 홈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사막 위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았기 때문. 바위를 깎아 만든 이 홈이 다름 아닌 수로다. 그렇게 좁고 긴 시크를 통과하다 보면 협곡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리고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드러난다. 바로 알 카즈네다. 기원전 100년경 건축된 알 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형태의 신전 건물로 너비는 30m, 높이는 43m에 달한다. 1, 2층 정면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과 풍요의 여신인 알우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알 카즈네는 이집트 파라오의 보물이 감춰져 있다는 전설 탓에 ‘보물창고’라고 불린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는 작은 사각형의 방만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어두운 방 한쪽에서는 실망한 여행자들의 작은 탄성이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대부분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아레타스 3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페트라에 암벽 조각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페트라를 둘러싼 협곡의 암석들이 조각하거나 파내기가 쉬운 사암이기 때문. 그리스어로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데 실제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쌓아 올리면서 만든 건축물이 아닌 암벽을 깎아 내려가면서 조각해 만든 건축물이다. 알 카즈네를 지나 협곡을 따라 가면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가 나타난다. 절벽을 파내서 만든 33층의 계단 형태의 원형극장은 무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당시 종교 의식과 다양한 회의 장소로 사용됐다고 한다. 원형극장을 지나 절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나온다. 데이르 수도원인데 입구의 높이만 8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신전, 수도원, 목욕탕 등이 남아 있는데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다.●해발 1000m 광활한 사막… 수백 m씩 솟은 바위산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1888~1935). 영국 군인이었던 그는 연고도 없는 아랍 지역의 독립을 위해 1917년 와디럼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랍의 적인 터키군의 요새가 있는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아카바를 함락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그의 영웅담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낙타를 타고 붉은 와이럼을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와디럼은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 떨어져 있다. 면적이 720㎢에 달하는 광활한 사막이다. 언뜻 평지처럼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도 해발 1000m인 고지대다. 달리다 보면 수백m씩 솟은 바위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와디럼에는 아직도 낙타를 몰고 살아가는 베두인들이 있다. 그리고 여행자들도 찾아든다. 지프를 개조한 트럭을 타고 사막을 여행한다. 열기구와 경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이들도 있다. 사막에는 여행자를 위한 베두인족 텐트도 마련돼 있다. 사막 한가운데 마련된 터라 전기도 없고 2인용 텐트에는 잠금쇠도 없다. 와디럼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달릴 뿐이다. 울퉁불퉁한 사막을 시속 80㎞로 달린다. 얼굴에는 모래가 날아와 박힌다. 바위산을 만나면 바위산을 감상하며 잠시 쉰다. 때로는 바위산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해질 무렵이면 사막은 황금빛, 아니 붉은색으로 물들고 베두인들은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모래사막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마침내 지평선에 닿고 어느 순간 사라질 때쯤이면 텐트로 돌아간다.밤의 사막.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쌀알을 뿌려 놓은 것 같다. 별빛 아래에서 베두인족이 만들어 주는 ‘아라빅 커피’를 마시며 화덕에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러고는 밤새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간다. 그렇게 하룻밤 있어 보았다. 해가 뜨는 아침 무렵, 사막이 점점 장밋빛으로 변해 갈 때, 로런스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로런스는 와디럼이 “신의 모습과도 같다”고 했다. 그가 와디럼을 가로질렀던 까닭은 아랍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사막에서 신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휴양 도시 아카바… 140여종 산호림·형형색색 물고기 와디럼을 나와 아카바로 향했다. 자동차로 1시간 안팎의 거리. 홍해에 면한 휴양도시다. 해변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고 수영장마다, 백사장마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가득했다. 아카바만에는 140여종의 산호림이 울창해 1년 내내 다이버들로 붐빈다. 유리로 된 바닥을 통해 해저를 관람하는 요트도 있다. 배를 타고 홍해로 나가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 한적한 근해에 정박해 스노클링을 즐겼다. 투명한 물 아래로 새하얀 산호초가 너울댔고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코앞까지 다가와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생각지 못한 요르단에서의 사치스런 휴식. 방콕과 홍콩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내일 따위는 잊고 선탠 베드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해변은 고뇌하는 인간을 싫어하지. 홍해의 눈부신 햇살이 찬란했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 여행수첩 한국~요르단은 직항 항공편이 없다. 요르단항공, 에티하드항공, 대한항공 등으로 방콕, 두바이 등을 경유해야 한다.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70원이다. 페트라는 암만에서 약 3시간 거리. 페트라~와디럼~아카바 코스가 요르단을 여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루트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인 사해는 요르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보통 바다 염도의 약 5~6배인 사해는 피부병이나 류머티즘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해에서 동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인 온천은 ‘폭포 온천’이다. 낮은 산에서 55℃의 폭포가 떨어지면서 알맞게 식어, 폭포 아래에 고인 물로 천연 스파를 즐길 수 있다. 2000년 전 헤롯왕이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제라쉬는 요르단 북부에 자리한 도시다. 암만에서 약 50㎞ 떨어져 있다. 요르단에서 가장 큰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이 이 도시를 두고 뺏고 뺏기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700년경에 있었던 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흙더미 아래 묻혔는데, 일부를 발굴해 놓았다. 제우스 신전을 비롯해 광장, 극장, 문 등 고대 로마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영원한 ‘별들의 고향’… 경성의 낭만을 소환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영원한 ‘별들의 고향’… 경성의 낭만을 소환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3회 극장순례(영화의 고향) 편이 지난 4일 서울 종로와 충무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여름 야행 두 번째 행사를 맞아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답사단 일행 30여명은 모자와 부채, 손풍선 등으로 완전 무장했지만 쏟아지는 폭염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안전사고를 막고자 도보 코스를 줄이고, 서울신문사에서 때마침 제공한 ‘아이스 쿨 스카프’에 의지해 답사를 마쳤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6시 지하철 종각역 3번 출구 앞 종로타워빌딩(옛 화신백화점) 앞에서 집결, 우미관 옛터~인사동 조선극장 옛 터~허리우드극장~단성사 옛터~서울극장~충무로 영상센터 순으로 2시간짜리 극장순례를 다녀왔다. 서울극장에서 충무로 영상센터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답사 중 첫 대중교통 이용사례다. 해설을 맡은 심흥식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흘러간 추억의 영화는 물론 자신이 경험한 70~80년대 영화의 주제가를 직접 부르면서 영화와 극장 분위기를 전달해 공감과 호평을 얻었다.서울은 극장의 도시이다. 한국영화의 고향이기도 하다. 근대화의 산물이자 대중문화의 상징인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수도 경성에서 화려하게 꽃피었다. 1920년대 전후 ‘문화로써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사상’ 즉 문화주의와 문화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중심에 영화가 있었다. 일제의 통치방식이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색깔을 바꾼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의 문화정치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주의 정치가 아니라 식민지의 ‘문명개화’(文明開化) 혹은 ‘문치교화’(文治敎化)의 흉내에 불과했지만 500년 봉건왕조의 지배에서 막 깨어난 대중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영화로 대표되는 서울의 대중문화는 양반 선비문화, 고급 엘리트문화에 대항한 문화적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1930년대 접어들면서 신파극, 뽕짝가요, 영화 등 3대 장르가 주도하는 ‘조선식 대중문화’가 경성에서 폭발했다. 근대화와 식민지 정서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양식이었다. 당대 경성의 신인류를 지칭하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낭만주의적 퇴행성을 대표하는 식민지 근대성의 표식이라면,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울지 마라) 같은 신파극은 이율배반적 비극미의 표출이었다. 3대 장르에서 짜내는 부조리한 눈물은 대중에게 위안을 제공했다. 체제 순응이라는 자학적 죄의식을 외면하는 핑곗거리를 제공했다. 대중문화는 정치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특히 영화(Screen)는 성(Sex), 스포츠(Sports)와 함께 ‘3S’의 대명사였다. 1919년 제작돼 한국영화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의리적 구토’는 과도기 성격의 영화이다. 연극 무대에서 구현이 어려운 장면이나 풍경을 활동사진으로 찍어서 중간에 끼워 보여주는 연쇄극이었다. 단성사 사장 박승필은 명월관, 청량리, 홍릉, 장충단, 한강철교 등 경성의 명소를 찍어 단성사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중간에 삽입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과 함께 막을 올렸고, 1937년 나운규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 최초의 무성영화이자 흥행 대작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과 대중의 민족 정서를 반영한 이 영화는 상영 첫해에 1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아리랑이라는 걸출한 영화 한 편이 영화를 대중문화의 간판산업으로 밀어 올렸다.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 히트를 한 이후 1938년 경성 시내에서 영화와 연극관객이 하루 평균 1만명에 이르렀고, 1942년에는 연인원 2000만명이 영화와 연극을 관람했다고 한다. ‘영화 경성시대’였다.한국영화는 1950~60년대 르네상스를 맞았다. 1955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은 정비석이 서울신문에 연재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해 영화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교수 부인의 바람은 전통적 가부장제를 밑바닥에서 흔드는 발칙한 소재였다. 1961년 한국영화사상 최대의 문제작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시작으로 신상옥,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 뒤이었다. 1970년대 유신 시절 침체기에 접어든 한국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등 호스티스 영화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사회성 짙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등으로 되살아났다.극장은 신파극, 뽕짝가요, 영화 등 오락문화를 쓸어 담는 그릇이었다. 본래 연극 공연장이던 극장은 무용·음악·예능 등 무대예술 공연장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19세기 말 영화의 발명 이후 극장과 영화관이 구별됐다. 무대와 조명을 갖춘 국내 최초의 실내극장은 1902년 서대문밖에 세워진 협률사였다. 로마 원형극장을 본뜬 협률사가 최초의 관립극장이자 서양식 극장이었다면 1908년 신문로에 설립된 이인직의 원각사는 최초의 사설극장이었다. 활동사진 상설극장으로 가장 먼저 개관한 곳은 1910년 종로구 관철동 경성고등연예관이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뒤 1915년 수용인원 1000명 규모의 상설영화관 우미관으로 거듭났다. 판소리와 창극을 공연하던 단성사는 1918년 활동사진 전용관이 되기 전까지 경성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극장이었다. 무성영화 시절 유명한 변사는 대부분 우미관 출신이었다. 찰리 채플린이 제작·감독·각본·주연을 맡은 무성영화 ‘황금광시대’도 우미관에서 상영했다. 우미관은 단순한 극장이라기보다 종로상권을 넘보는 청계천 이남 남촌에 근거지를 둔 일본 야쿠자의 북촌 진출을 막는 방어선이었다. 종로 주먹 김두한의 사무실이 우미관에 있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 무대이다. 종로2가 길가 화단에 표석이 남아 있다. 답사단이 찾은 종로타워 뒷골목 우미관은 1959년 관철동 우미관이 불타 없어진 뒤 화신백화점 뒤로 옮긴 곳이다. 이전 후에는 이류 재개봉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1982년 폐업, 지금은 우미관 주차장이 됐다. 1907년에 개업한 단성사는 1919년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장화홍련전’과 ‘아리랑’을 상영하면서 장안의 영화 중심가로 떠올랐다. 이후 ‘서편제’ ‘태백산맥’ ‘장군의 아들’ 등을 개봉했다. 1913년 황금연예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국도극장은 일본인 거주지역인 을지로를 대표하는 극장 황금좌로 운영되다가 1948년 개칭했다. 지금은 국도호텔로 변신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를 각각 개봉했다. 1922년에 건립된 인사동의 터줏대감 조선극장은 영화상영과 판소리, 가무곡 공연 겸용관이었다. 김기진 등이 신파극에 대항해 근대 신극운동을 펼친 토월회의 창립공연을 비롯해 명창대회가 열린 유서 깊은 장소이다. 1936년 방화로 소실된 뒤 이런저런 장소로 떠돌다가 포장마차 골목으로 쓰이고 있다. 뒷면 대나무 숲 앞에 조선극장 터 표석이 서 있었으나 훼손돼 사라졌다. 황금좌, 우미관, 단성사, 조선극장이 경성의 4대 극장으로 군림했다. 1935년 설립된 연극전용 동양극장은 1976년 폐관될 때까지 서대문을 대중연극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1(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일시: 8월11일 토요일 오후 6~8시 ●집결장소: 청계광장(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1.2호선 시청역 4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해외여행 | 신들의 휴양지 안탈리아 Antalya

    해외여행 | 신들의 휴양지 안탈리아 Antalya

    TURKEY 신들의 휴양지 안탈리아 Antalya 창밖 바다 위로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공짜 미니바를 열고 고민한다. 인생은 초콜릿상자라 했지….그렇다면 난 ‘올 인클루시브All-inclucive’를 꺼내 먹겠다. 수천년 역사의 흔적이 가득한 고대 도시. 보드라운 지중해는 연 300일의 따뜻한 햇살을 선물했다. 긴 해안선을 따라 올 인클루시브 골프 리조트와 5성급 호텔들이 휴양객을 기다리고 있는 곳, 터키 남서부의 선택받은 휴양지 ‘안탈리아’다. ●Antalya 로마부터 오스만까지, 포용의 역사 모스크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소리가 정적을 깬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엔 수천년 전과 다름없는 지중해의 따스한 바람과 고고한 햇살이 평화롭다. 지난해 G20 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안탈리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지는 아니다. 하지만 터키를 방문하는 외국관광객들이 이스탄불만큼 많이 찾는 유럽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며, 명문 축구팀과 골프선수들이 겨울마다 즐겨 찾는 전지훈련지로도 유명하다. 따뜻한 지중해를 끌어안고, 뒤로는 눈 쌓인 토러스 산맥이 지키고 있는 천혜의 관광자원에, 최고급 호텔과 골프장이 계속 신축되는 모습은 마치 한국의 제주도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하나 더, 안탈리아엔 치열한 역사의 흔적이 있다. 이곳의 옛 이름 팜필리아Pamphylia는 BC 7세기 리디아부터 시작해 페르시아, 알렉산더,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를 거친 ‘여러 종족의 땅’이다. BC 159년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Attalos 2세가 세운 항구도시 ‘아탈로스의 도시’가 훗날 안탈리아로 불리게 된다. 그 후에도 로마와 오스만제국을 거치는 굴곡진 역사의 흐름을 거쳤다. 구 시가지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문화유적과 건축양식을 만나 볼 수 있다. 안탈리아 시내관광은 ‘성벽의 안쪽’을 뜻하는 칼레이치Kaleici에서 시작된다. 4.5km의 성벽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AD 132년 로마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시민들이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만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은 구시가지 관광이 시작되는 관문과도 같다. 세월의 흔적이 반짝이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선물가게와 멋스런 레스토랑을 지나 100년은 족히 넘은 고택도 만날 수 있다. 길가엔 선명한 오렌지 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린다. 안탈리아 국제영화제의 심벌도 골든 오렌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골목을 나와 항구에 다다르면 지중해 바다를 향해 항해를 준비하는 멋진 범선과 요트들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성벽 밑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피서객, 빵을 잔뜩 쌓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뽐내는 남자, 터키 전통 아이스크림을 만들며 요란하게 호객을 하는 장사꾼을 뒤로하고 터키식 생선구이를 곁들인 푸짐한 점심을 먹다 보면 안탈리아의 일상에 흠뻑 빠지게 된다. 저녁엔 석양을 바라보며 로맨틱한 디너를 만끽할 수도 있다. 로마시대를 제대로 복원한 항구는 1984년에 세계여행기자 및 작가협회가 선정하는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항구에서 흥정을 잘하면 폼 나는 요트를 타고서 지중해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토러스 산맥 위 눈 녹은 물이 지하수로 내려와 절벽을 타고 40m 아래 바다로 떨어지는 듀덴Duden 폭포의 장관은 배를 타고 바다에서 보아야 제맛이다. 광장 남쪽에 약 40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나선형 첨탑 이블리 미나레Yivli Minare는 안탈리아의 상징이다. 오스만 투르크는 술탄의 막강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를 인정하는 포용력을 보여 줬다. 덕분에 안탈리아에는 기독교 교회와 이슬람 사원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양식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바닷가엔 모래가 예쁜 라라Lara 비치도 있고, 조약돌 해변이 2km에 달하는 콘야알트Konyaaltı 비치도 색다른 물빛으로 유명하다. 안탈리아는 환경교육재단이 선정하는 블루 플래그Blue Flag 최다인증 지역이다. 청정수질과 청결 그리고 자발적인 환경교육으로 지금까지 총 197개의 해변과 6개의 선착장이 인증을 받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에 가볼 만하다. 터키 최고의 박물관으로 1988년 유럽 내 올해의 박물관으로 뽑힌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로마, 셀주크, 오스만 시대의 유물까지 만나 볼 수 있다. 아스펜도스, 시데 등 주변 관광지도 많아 사방이 다 유적지다. 안탈리아 시내를 벗어나도 40분 거리에 10여 개의 문화유적을 만나 볼 수 있다. 바울이 첫 번째 전도여행을 떠났던 페르게Perge, 이제는 동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해발 210m 언덕 위 고대 아크로폴리스의 쓸쓸한 잔해 실리온Sillyon,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데Side, 그리고 좀 멀지만 산타클로스의 원조 ‘성 니콜라스 대주교(산타의 고향은 핀란드가 아니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미라Myra도 인접해 있다. 아스펜도스Aspendos는 로마시대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 AD 2세기경 로마시대에 지어져 수차례 재건축된 아스펜도스 다리를 지나게 된다. 산 위의 눈은 녹아 강물이 되고 땅은 비옥해서 수확물도 넉넉했다. 다리 밑으로는 대나무로 만든 수백 개의 가게가 제법 활기 넘치던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였다. 지금은 그림 같은 강물만이 조용히 흐를 뿐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은 아크로폴리스 시대에 공연, 집회, 선거 등을 하던 곳으로 지금도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약 1만5,000명(고대인들의 체형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지금은 그보다 수용인원이 적을 수 있다)이 앉을 수 있는 극장 무대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면 맨 뒷자리까지 소리가 울린다. 훌륭한 고대의 자연음향효과는 지금도 손색이 없어서 오페라 등 각종 공연이 열리고 있다. 극장 옆 언덕길로 올라가면 아크로폴리스도 가볼 수 있다. 터키엔 즉석에서 힘껏 짜서 파는 석류주스가 인기인데, 원형극장 입구에도 한 곳이 있다. 새빨간 석류 주스는 메마른 유적지와 잘 어울린다. AIRLINE터키항공TK은 유럽 전 지역으로 다양한 노선을 운항한다. 안탈리아 직항은 없지만 이스탄불을 경유해 갈 수 있다. 인천-이스탄불 항공편은 매일 운항한다. 밤 12시20분 인천 출발, 오전 5시 이스탄불 도착 후 오전 6시40분 출발하는 국내선으로 1시간 15분 거리의 안탈리아에 갈 수 있다. 목·금·토·일요일엔 낮에 출발하는 추가운항편도 있다. 낮 12시50분에 인천을 출발해서 이스탄불 경유, 안탈리아에 밤 10시50분에 도착한다. 비즈니스항공권을 구입하면 안탈리아행 국내선은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세계 최대 규모의 터키항공 CIP라운지에서 무료 와이파이, 식사, 영화, 샤워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인천-이스탄불 일반석을 구입해도 추가되는 안탈리아 국내선 가격은 한국의 국내선과 비슷한 수준이다. www.turkishairlines.com CLIMATE터키는 한반도의 3.5배 크기로 지역에 따라 기후가 크게 다르다. 대체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하며 봄, 가을이 짧고 여름은 고온 건조, 겨울은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린다. 안탈리아 지방은 지중해를 끼고 있어서 연간 300일 이상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며 연평균 기온 21.5도로 최적의 날씨 조건을 자랑한다. 글·사진 한정훈 기자 취재협조 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www.naspr.com,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하프타임] 알리 요르단 왕자 FIFA 회장 선거 재출마

    알리 빈 알 후세인(39) 요르단 왕자는 10일 요르단 암만의 고대 로마 원형극장에서 300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차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10개월 전만 해도 나는 제프 블라터 회장에게 도전할 유일한 후보였다”며 “FIFA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마했고, 다른 이들이 두려워할 때 나는 싸울 용기를 갖고 있었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알리 왕자는 경쟁자인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에 대해서는 ‘블라터의 후계자’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에 대해서는 “FIFA에 너무 오래 있었다”고 지적했다.
  • 해외여행 | 터키,누군가는 내 뼈 위에서 파티를 즐기리라③History & Heritage

    해외여행 | 터키,누군가는 내 뼈 위에서 파티를 즐기리라③History & Heritage

    ●History & Heritage 관념이 구체화 되는 순간 터키를 여행하면서 오늘날의 국경과 지도적 공간 개념을 허물지 않는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진다. 또한 유럽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없다면 여행 내내 수도 없이 등장하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과 아고라, 그리스 양식의 건축물과 신전들, 기독교 성화 위를 덮은 코란의 문구들이 계통 없이 뒤죽박죽된다. 로마를 보려면 터키를 먼저 가라 아나톨리아 반도는 초기 그리스 문명이 시작되고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되기까지 오랫동안 그리스인들이 주인이었던 땅이었다. 그리스 유물을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서로마가 제국의 이름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에는 로마의 속주였던 땅이었으니 로마의 흔적도 남아 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집단거주지, ‘차탈회육’ 이 발견된 곳이고 인류 최초로 철을 만든 히타이트 문명BC 2000년경이 태동한 곳이니 선사시대의 유적을 확인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스 로마 문명을 보려면 터키를 먼저 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47km 떨어진 곳의 아스펜도스에는 원형극장이 있다. BC5세기에 이미 은화를 만들어 쓸 정도로 번성했던 이 지중해 도시는 이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슬람의 시대를 바람처럼 거치면서 풍화되었다. 지금은 작은 마을로 남았지만 과거의 영화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는 곳이 바로 원형극장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찍부터 연극이 발달했다. 그들은 청명한 지중해 기후를 즐기며 야외극장에서 축제를 했고 토론을 했고 비극과 희극의 경연대회를 했다. 호전적인 로마인들은 극장을 검투사 경기장의 용도로 더 많이 활용했다. 그리스는 언덕과 경사면을 깎아 극장을 만들었고 로마는 평지에 아치를 받쳐 극장을 완성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성당을 질리게 본다는데 터키 지중해 여행에서는 원형 경기장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경기장이 저마다의 다름으로 다가오는 탓에 성당처럼 질릴 겨를은 없다. 건축물의 형태가 다르고, 훼손의 정도가 다르며, 공명의 상태가 다르고, 주변의 산세가 다르다. 무엇보다 이미 기원전에 ‘보고’ ‘보여지는’ 쌍방향의 문화를 즐겼다는 것이, 여전히 기원전 하면 돌도끼를 든 원시인을 생각하는 내 머리에는 질투 섞인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은 <명상록>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161~180년 재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최대 2만명까지 수용하는 거대한 극장이다. 보존 상태도 완벽하지만 특히 오케스트라에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객석 어디서든 잘 들리는 공명감이 미스터리한 건축 기법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죽음의 모습에서 삶을 읽다. 안탈리아 좌측, 아나톨리아 반도의 남서쪽 끝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곳이 ‘리키아Lycia’다. 그리스어가 아닌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할 정도로 독창적 문명을 키워 온 땅이다. 리키아의 중심도시 미라Myra의 고대 유적지는 뎀레Demre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도 원형극장이 있는데 고대 유적지의 초입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절벽 위의 무덤들이다. 고대의 리키아인들은 죽은 자를 땅에 묻지 않고 수직 절벽에 굴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그 안에 석관을 안치하는 매장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시신을 땅에 묻으면 썩을 것이니 영혼 불멸과 사후 세계를 믿었던 그들은 영혼의 집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지위가 높으면 더 높은 절벽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늘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부활도 빨라질 것이라는 순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키아의 무덤에서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리키아 사람들의 순망함을 보면서도, 정작 그들을 묻었던 사람들의 도시는 무덤 아래 땅 밑에 묻혀 버린 그 기묘한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된다. 미라에서 좀 더 남쪽 바닷가로 내려가면 마을 전체가 아예 바다 속에 잠겨 버린 곳도 있다. 케코바Kekova라는 곳이다. 2세기경 지진으로 수몰됐다고 하는데 해안가에는 목욕탕과 집터, 나지막한 돌산에는 당시의 건축물과 석관묘의 흔적이 남아 있고 수심 5~6m의 코발트빛 바다 아래로 수중 도시가 희미하게 들여다보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Chatting 수다거리 미라Myra의 바닷가 마을, 뎀레Demre가 유명한 것은 바로 산타클로스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루돌프 사슴을 타고 와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 그 동화 속 할아버지의 실제 인물인 성 니콜라우스270년~346년경가 주교로 있던 곳이다. 산타클로스와 성 니콜라우스 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가 먼저겠지만, 그리스 정교회나 가톨릭, 기독교에서는 대표적인 성인으로서 성 니콜라우스를 숭배한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억울한 사람에게 힘이 돼 준 그의 생전의 업적이 약자와 뱃사람과 여행자의 보호 성인으로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주교로 있던 미라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는 폐허처럼 남아 있다. 3세기부터 있었던 교회의 자리에 6세기, 현재 모습의 교회가 지어졌고 이후 증축되었으나 이슬람의 점령과 자연 재해 속에서 교회는 자연스럽게 파손됐다. 그리고 이슬람을 믿는 터키의 무관심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성지는 방치되었다. 중앙 홀과 두 개의 회랑이 있는 바실리카 형식의 교회는 입구 바닥에 모자이크 장식이 있고, 현관 벽에 파손된 프레스코 성화가 있다. 니콜라우스 성인에 대한 공경심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이곳을 둘러볼 이유가 있을까 싶게 우중충한 모습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사실은 죽은 성인을 신화로 포장해서 유통시키는 자본의 힘이다. 성 니콜라우스 생전의 수많은 선행은 2차 대전 후 관광산업 부활의 기치를 내건 핀란드에 의해 산타클로스로 재탄생했고 여기서 굴뚝, 선물, 어린이, 순록과 같은 장치물들이 등장한다. 산타클로스의 빨간 색, 하얀 색의 옷 역시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결국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 낸 이미지 속에서 산타클로스를 소비했다는 것인데, 생기 하나 없는 성 니콜라우스 교회를 나오면 그 주변의 기념품 가게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자본의 위력을 실감한다. 아무리 터키의 이슬람을 세속 이슬람이라고 하지만, 십자가를 기념품으로 진열해 놓고 성가를 틀어놓는 그 태연함에 웃음마저 나온다. 여하튼 미라를 갈 때, 산타클로스의 기원 또는 원형을 찾아 간다는 말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뭔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산타의 기원을 찾으려면 코카콜라 공장을 가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라는 성 니콜라우스의 봉사와 희생 그리고 선행의 행적을 기리는 장소로서 더 빛날 것이다. 터키에서 듣는 하루 다섯 번의 ‘아잔’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윙하고 울린다. 하루 다섯 차례일몰 직후, 밤, 새벽, 낮, 오후의 예배시간을 알리는 방송이고 이를 ‘아잔’이라고 한다. ‘아잔’은 ‘알라는 위대하다’로 시작해서 ‘알라 외에 신은 없다’ 로 끝난다. 터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비록 터키가 이슬람 국가로서는 거의 유일한 민주국가이자 탈 종교국가이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세속 이슬람주의라고 하더라도 모스크에 모여 기도하는 의식은 철저히 지킨다. 이슬람을 생활이 아닌 뉴스 정도로 접하는 우리에게, 터키와 같은 이슬람 국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이슬람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는 터키를 여행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이비 이슬람교’가 좋았다. 여자들에게 부르카또는 히잡 쓰기를 강요하지 않고, 자기 종교만을 위한 폭력을 성전 ‘자하드’라고 억지 부르지 않는 탈 근본주의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평화와 평등이라는 이슬람 사상의 중심을 지켜 나가고 있었고, 무함마드 자체가 아닌 그가 추구한 삶을 살기 원하며, 하느님알라 말씀에 복종하고 기독교의 복음과 선지자 예수까지 믿음의 범주로 수용하는 포용성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장미로 유명한 데니즐리의 구네아겐트 작은 마을에서 ‘아잔’의 울림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한적함, 길거리 햇볕 좋은 곳이나 가게 앞에 나와 앉아 한담을 나누는 많은 노인들의 졸음 같은 평화의 한가운데서 ‘아잔’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 거침 없는 기도 소리가 내 고막에 금을 쩍쩍 가게 하고 신경을 긁기 시작했을 때,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누릴 고요함의 권리는 왜 무시하는 것인지 반감이 생겼던 것이다. 나중에 이 생각을 터키 사람에게 말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아잔을 듣다 보면 그 소리에 너무나 익숙해진다.” ●Sentiment 그리고 감상 한 조각 감동은 셔터를 누르게 하고 감상은 볼펜을 찾게 한다. 엽서든, 수첩이든 혹은 빈 종이든, 무어라도 끄적거리고 싶은 욕망을 늘 나는 특별한 여행지에서 경험한다. 그 특별한 장소란 좀 더 쇠락하고, 밀려 있고, 버려지거나 남겨진 곳들이다. 내 뼈 위에서도 파티를 터키의 지중해 여행에서 일행과 떨어져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던 곳은 두 군데였다. ‘사갈라소스Sagalassos’는 고원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해발고도 1,450~1,700m 지점에 유적지로 남아 있는 이 도시는 그 잔해만으로도 과거에 얼마나 영화로웠는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게 한다. BC333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함락당한 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BC25년, 로마령이 되면서 절정의 시기를 갖게 된다. 518년의 지진과 이후의 아랍 공격 등으로 폐허가 된 사갈라소스는 1706년 탐험가 파울 루카스에 의해 발견된 이후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하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아크다으산 바로 아래에 아고라, 공회당, 도서관, 대형 분수, 공중목욕탕 들이 도시 형태로 흩어져 있지만 특별한 감상은 원형경기장에서 맞이한다. 터키에서 가장 높은 곳의 고대 극장 무대는 무너졌지만, 9,000석 규모의 객석들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지금도 눈을 감고 있으면 원형경기장의 풍경이, 그리고 그 함성이 단번에 두루마리 펴지듯 죽 펼쳐진다. 파묵칼레 옆 ‘히에라폴리스’에서는 어떤 이에게 긴 편지를 썼다. 혼자 품고 있기에는 이 감상이 너무 벅찼다. BC190년경 페르가몬 왕국 때 세워진 이 폐허의 도시는 공간적으로 넓고 여백은 충분하다. 원형 경기장을 오르는 언덕에 유채꽃은 만발하고 그 길에서 자유와 해방감과 상상력은 무르익는다. 아스펜도스처럼 보존 상태가 좋으면서도 경치는 압도적으로 더 좋다. 1,200개의 무덤이 있는 헬레니즘 시대의 공동묘지도 히에라폴리스에서 볼 수 있다. 죽은 도시를 바라보며 아래쪽의 관광객들은 수영과 온천을 즐긴다. 고대와 현대, 죽음과 삶, 지止와 동動의 대칭들이 천연덕스럽게 공존하는 곳, 히에라폴리스에서 시간과 공간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어느 해, 내 뼈 위에서 누군가는 파티를 즐길 것이다. ▶travel info Turkey AIRLINE 터키 가는 길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는 비행기로 12시간이 걸리며 터키항공,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운행중이다. 이스탄불에서 안탈리아까지는 국내선으로 1시간 20분이 걸린다. 터키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전압은 220V로 한국과 같으며 화폐는 터키리라TL. 1리라는 한화로 약 400원 정도. Hotel Regnum Carya Golf & Spa Resort 안탈리아 벨렉에 위치한 이 호텔은 골퍼들에게 특화된 리조트 호텔이다. 멋진 바다와 해변, 워터 파크와 넓은 수영장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객실도 고급스럽다, 거대한 열대 나뭇잎으로 포인트를 준 리셉션에서의 웰컴 샴페인과 와인, 그리고 디저트 등이 이 호텔의 첫인상을 풍요롭게 해준다. 객실 미니바를 포함해 레스토랑, 바 등에서의 모든 알코올, 음료 등은 무료다. 레스토랑의 메뉴도 매머드급이다. 저녁 8시, 풀장에서의 불꽃 페스티벌도 환상적이다. Kadriye Bolgesi, Uckum Tepesi Mevki, Belek 7500, Turkey fOOD 입이 호강하는 터키 음식 지중해 음식이 대개 그러하듯 터키 음식은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고, 눈보다 입을 즐겁게 하며, 덧입힘보다는 날것과 원재료의 향과 맛을 중요하게 여긴다. 잘게 썬 고기 조각을 구워 먹는 전통요리 케밥은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로 만든다. 케밥의 종류는 수십가지가 넘는데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굽는 시시 케밥과 도네르 케밥이 잘 알려져 있다. 케밥은 요구르트로 만든 시원하고 시큼한 맛이 나는 아이란과 함께 먹기도 하며 터키식 볶음밥인 필라프와 함께 먹기도 한다. 또한 올리브를 빼놓을 수 없다. 오이, 양파, 올리브 등을 크게 썰어서 올리브유를 넣고 만드는 샐러드는 언제나 편하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넓게 편 밀가루 반죽 위에 토마토, 마늘, 고추, 쑥갓, 쇠고기와 양고기, 후추와 각종 향신료, 치즈 등을 올린 다음 큰 화덕 속에 넣고 익혀낸 후 한 입 크기로 잘라 내오는 피데도 참 맛있다.홍차 맛 터키 차이 터키 사람들은 차도 많이 마신다. 하루에 보통 열 잔 이상의 차를 마시는데 우롱차를 더 발효한 것이 터키의 차이chai다. 엷은 홍차 맛이 난다. 차이를 파는 차이하네Chaihane나 차이에비Chaievi는 문화와 정보의 사교장이며, “와서 차 하잔 하시오구엘 차이 Guel Chai”는 그들의 관용어다. 실제 물건을 사는 가게에서도 주인은 차를 시켜 손님에게 권하기도 하는데, 뜨거운 차를 호호 불면서 가격을 흥정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이래저래 터키 사람과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덩달아 착해진다. 죽음만큼 강렬한 커피 커피도 터키인의 기호품이다. 터키에서는 커피를 ‘카흐베Kahve’라고 부른다. 커피 가루를 넣어서 끓여내기 때문에 잔에 가루가 남는다. 그러니까 터키 커피는 2/3 정도만 마신 후 남겨야 한다. 터키 사람들은 커피를 음식과 차의 향기를 개운하게 씻어 주는 마무리로 생각한다. 또한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는 것은 그 사람의 역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행위로 여긴다. 터키 속담에, ‘한 잔의 커피에는 40년의 추억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 앞의 사람의 40년 역사를 존중하거나, 또는 40년 동안 나에게 커피를 대접한 사람을 존경하고 기억한다는 중의적 의미이다. restaurant 케바치 카디르Kebapcı Kadir 1851년부터 164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케밥집이다. 장미의 도시 으스파르타 시청 뒤에 있다. 할리우드 배우 등 셀러브리티들이 많이 찾는 탓에 가게 벽에는 유명인들의 사진, 각종 상장 등이 빼곡하다. 염소와 양을 꼬치에 끼운 뒤 대형 화덕에 아침 7시부터 굽기 시작하는데, 당연히 기름이 쪽 빠지면서 고기가 아주 쫄깃해지고 담백해진다. 가격은 1인분에 15~30리라 수준. Ulu Cami Yanı ,Valilik Arkası Kebapcılar Arastası No:8 +90 246 218 24 60 에디터 트래비 글 윤용인 사진 Bar & Dining 김은주, 윤용인 취재협조 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02-336-303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IS 소년병들이 권총으로…팔미라 유적 집단처형 영상 공개

    IS 소년병들이 권총으로…팔미라 유적 집단처형 영상 공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최근 점령한 시리아 고대도시 팔미라의 원형극장에서 정부군 25명을 각각 소년병에 의해 처형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4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했다. 이 영상은 IS가 지난 5월 21일 팔미라를 점령한 직후 행한 처형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영상에는 녹색과 갈색 위장복을 입은 정부군인 25명이 IS의 흑백 깃발이 세워진 원형극장의 무대 위에서 총살당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들을 처형한 IS 병사들은 아직 어린아이거나 10대 소년병으로 보이며, 사막용 위장옷을 입고 머리에는 갈색 두건을 두르고 있다. 이날 처형은 극장 좌석에 띄엄띄엄 앉아있는 남성과 아이들의 눈앞에서 시행됐다. 보도에 따르면, IS는 팔미라 점령 직후 시내와 주변 마을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200명 이상을 처형했다. 원형극장에서의 처형은 IS가 팔미라를 제압한 지 1주일도 채 못된 지난 5월 27일 비정부기구(NGO)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의해 보고됐다. 또한 시리아 고대유물국의 마문 압둘카림 국장은 IS에 의한 처형이 “팔미라의 고대유적 파괴를 시작하는 전조가 아니냐”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압둘카림 국장은 “팔미라 원형극장에서 사람들을 처형하는 등의 행위는 인간성이 결여된 증거”라고 말했다. 그레코로만(그리스 양식과 로마 양식을 혼합한 예술양식) 양식으로 1~2세기에 세워진 팔미라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국제사회에는 IS가 이 원형극장과 신전 등의 유적을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IS는 팔미라 시내에 있는 이슬람 무덤과 팔미라 박물관 앞에 놓여 있던 사자상을 파괴하기도 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고대 폼페이 인들의 주식은 ‘기린고기’였다?

    고대 폼페이 인들의 주식은 ‘기린고기’였다?

    고대 로마의 농·상업 중심지이자 휴양지로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다가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사라진 비운의 도시 ‘폼페이’. 그런데 최근 폼페이 인들이 주식으로 ‘기린’, ‘성게’ 등 당시에 매우 진귀했던 음식을 섭취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허핑턴 포스트는 신시내티 대학 고전학과 스티븐 앨리스 교수가 이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앨리스 교수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주 나폴리 인근 폼페이 유적 배수구 부분을 조사하다 다양한 음식물 화석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고대 로마의 주식이었던 올리브, 포도, 생선 등이었지만 몇 가지 특이한 것들도 추가로 발견됐다. 바로 ‘기린’, ‘성게’ 등 당시에 진귀했던 음식물이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산으로 추정되는 향신료 흔적까지 발견됐다. 앨리스 교수는 “배수구야 말로 시대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역사의 보고”라며 “이번에 발견된 기린 뼈는 고대 로마 관련 유적에서 발견된 것 중 최초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해당 음식물 화석은 폼페이인들의 무역 루트가 굉장히 다양했고 문화가 이국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휴양지로 상류층들이 주로 머물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음식물 화석을 통해 당시 로마의 엘리트 계층들이 주로 어떤 음식을 먹고 식습관을 가졌었는지 추론해 볼 수 있다. 한편 기원후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산 분화로 사라진 폼페이는 지난 1549년 수로공사중 우연히 유적이 발견돼 발굴이 시작됐다. 1748년에 광장, 목욕탕, 원형극장 등 주요 유적이 발견됐고, 현재까지 전체의 총 3분의 2 가량 발굴됐다. 사진=러시아 화가 카를 브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1833)’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佛 오랑주 페스티벌서 미리 본 정명훈 지휘 ‘라보엠’

    佛 오랑주 페스티벌서 미리 본 정명훈 지휘 ‘라보엠’

    한국 관객들은 야외오페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2003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투란도트’는 유료관객 8만명의 성황을 이뤘지만, 무대 위 성악가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고 마이크로 증폭된 아리아는 기대 이하였다. 4개월 뒤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이다’는 개선행진 장면에서 코끼리가 대변을 보면서 들어온 탓에 관객들은 추위는 물론 악취와도 싸워야 했다. 두 공연은 ‘운동장오페라’의 내리막길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새달 서울공연 성패 가늠할 시험무대 10년이 흘렀다. 8월 28일부터 9월 2일까지 연세대 노천극장(7000석)에서 프랑스 오랑주페스티벌 버전의 ‘라보엠’을 50억원을 들여 재현한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면 10년 전 기억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그린 푸치니의 ‘라보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레퍼토리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지휘를 맡고 세계 정상급 성악가인 안젤라 게오르규(미미역·소프라노), 비토리오 그리골로(로돌포역·테너)가 출연하니 여태껏 한국에선 보지 못한 올스타급 캐스팅이다. 관건은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시각적 쾌감을 전달하는 ‘아이다’, ‘투란도트’와 달리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명사인 ‘라보엠’을 야외 무대에서 얼마나 흡인력 있게 구현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파바로티 후계자’ 그리골로 절창 부족함 없어 11일(한국시간) 프랑스 오랑주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라보엠’은 서울공연의 성패를 가늠할 시험무대였다. 1세기쯤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으로 지어진 너비 70m, 폭 22m, 높이 30m의 원형극장 무대는 웬만한 전문공연장 못지않은 음향을 구현했다. 성악가들은 와이어리스(무선마이크)를 쓰지 않았지만, 소리가 뭉개지거나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13년째 호흡을 맞춘 정명훈 감독과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의 호흡도 무난했다. 특히 연세대 노천극장에도 서게 될 그리골로의 절창은 부족함이 없었다. 1막의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na)을 비롯, 4막에 이르기까지 ‘파바로티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미성을 뽐낸 것은 물론 쇼맨십으로 여름밤 무대를 한껏 달궜다. ●한국관객 ‘야외오페라 트라우마’ 극복 가능성 무대 설계와 공간 활용도 흥미로웠다. 막과 막 사이 무대 전환이 불가능한 야외무대의 속성상 1~4막의 세트를 하나의 무대에 표현하는 게 야외오페라의 큰 어려움이다. 제작진은 연극무대 같은 간결한 세트에서 해법을 찾았다. 예컨대 건물 세트를 짓는 대신 무대 바닥에 구획을 표시하는 선을 그어놓고 문짝만 세워 놓는 식이다. 대신 조명을 이용해 막마다 공간을 이동하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폭은 좁고 너비는 극단적으로 긴 원형극장 무대의 특성도 영리하게 이용했다. 크리스마스의 거리풍경을 보여 주는 2막에서는 140명 안팎의 합창단을 한꺼번에 올려 활력을 끌어냈다. 죽음을 앞둔 미미의 심경을 드러내는 3막에서는 소품마저 최소화해 황량함과 스산함을 극대화시켰다.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은 “야외무대에 걸맞게 무대를 상징화, 간소화했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스펙터클한 볼거리보다는 사람 간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라보엠’의 느낌을 충실하게 소화했다.”고 평가했다. 미흡한 구석도 일부 띄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박사과정(오페라연출 전공)의 이설련씨는 “미미가 죽음에 이르는 4막에서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일반 오페라극장과 달리 관객 눈에 고스란히 들어오는 오케스트라석의 조명이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점도 되짚어볼 만하다. 오랑주(프랑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카다피군, 세계유산을 방패로

    카다피군, 세계유산을 방패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 렙티스 마그나가 포화에 휩싸일 위기에 놓였다.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근거지인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미스라타 사이에 끼어 있는 이곳에 최근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렙티스 마그나는 기원전 200년 절정을 맞은 고대 로마의 해안 도시로,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잘 보존되고 장엄한 유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알렉산드리아와 카르타고에 이어 아프리카 지역에서 세번째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원형극장과 목욕탕, 광장, 수많은 아치형 구조물이 있는 이곳에 카다피군이 최소한 5대의 그래드 로켓 발사체와 수백개의 로켓, 각종 군수품을 숨겨 놓았다고 반군측은 주장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반군 관계자는 14일(현지시간) “카다피는 나토가 고대 유적만큼은 결코 공습하지 못할 것이라 믿고 각종 군수품을 렙티스 마그나의 건물 곳곳에 숨겨놓았다.”고 말했다. 그래드 로켓 발사체는 사정거리가 30㎞가 넘고, 40발의 로켓을 일시에 발사할 수 있다. 최근 정부군이 미스라타 공격에 주로 사용했다. 또 반군이 일부를 점령한 질탄 지역 등을 공격할 때에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나토군이 이 지역에 대한 공습을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고대 로마 도시의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외신들은 “고고학적인 유물도 전적으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렙티스 마그나가 그런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은 카다피와 그 가족의 신세가 얼마나 재앙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살아있는 역사의땅 이스라엘을 가다

    살아있는 역사의땅 이스라엘을 가다

    이스라엘. 누군가에게는 거룩한 곳이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설거나 불편한 곳이다. 하지만 신성(神性)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만 빼고 바라보면 믿음 여부를 떠나 종교 관련 유적지야말로 역사, 문화 공부에 더 없이 좋은 여행지다. 켜켜이 쌓이는 수직의 역사와, 그 기억과 공간을 공유하는 수평의 사람이 서로 씨줄날줄로 얽혀 살아가고 있는 곳. 이스라엘 땅에 스며있는 수천년의 역사와 자연 경관의 독특한 매력을 짚어 본다. │예루살렘 박록삼특파원│헤롯왕이 건설한 지중해변의 옛 항구도시 케사리아(Caesarya)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아코(Akko)는 이 땅 위에서 인간이 얼마나 융성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융성함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경제 수도 역할을 하는 텔 아비브에서 차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케사리아, 40분 정도 더 올라가면 아코가 나온다. ●수직으로 쌓인 제국의 융성과 몰락의 시간들 아기 예수의 후환을 두려워하며 베들레햄의 갓난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이가 헤롯왕이다. 욕망은 늘 공포의 단짝이다. 케사리아는 그 헤롯왕이 기원전 22년 방파제로 지중해의 파도를 잠재워 해상 무역을 위한 항구로 만든 인공의 도시다. 그는 원형극장, 마차경기장 등 당대 로마 못지않은 화려함도 함께 추구했다. 케사리아는 이후 로마제국이 총독부를 마련하며 더욱 번성했다. 로마는 1만 5000여명의 병사들이 먹을 식수를 끌어오기 위해 수㎞에 이르는 멋드러진 수로교(水路橋)를 지었고, 로마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목욕탕을 갖춰 놓는 등 화려함과 영원을 추구했다. 로마의 몰락 뒤 7~10세기는 이슬람의 시대였고, 11세기에는 십자군이 침략하며 종교의 지엄함을 원했다. 이후 터키제국이 지배의 발길을 거친 곳이다. 모두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이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백, 수천년이 흐른 지금 그저 부서진 기둥 조각과 앙상한 돌무더기, 절반 남짓의 담벼락 등으로 남은 폐허는 제국의 영광, 승리의 기쁨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옛 제국은 아이들의 소풍 놀이터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관광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앞으로 몸을 내주며 흔적을 새겨 놓을 뿐이다. 모든 제국은 몰락했다. 모든 침략자는 패퇴했다. 유구하리라 바랐던 제국의 융성과 번창함은 또 다른 제국에 몸을 내줬고, 창과 칼로 만들어낸 승리는 영원한 지배를 약속하지 못했다. 시간이 강제하고, 인간이 그러하게 만들었다. 아코 역시 마찬가지다. 무슬림들의 정복, 십자군의 지배, 오스만튀르크의 지배가 밀물과 썰물이 나들듯이 이뤄졌다. 지배와 복속, 승리와 패퇴는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이곳의 고대 건축물에 덧입혀져 왔다. 십자군시대의 건축물이 지하에 있고, 터키제국의 건축물이 그 위에 올려졌다. 또한 아코의 건축물들 위에는 또 다른 지배자 영국의 흔적까지 쌓였다. 이제껏 4% 남짓만 발굴됐다고 하니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예루살렘, 평화와 수평의 가치를 역설하다 이스라엘을 찾은 이의 발걸음은 당연히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이곳은 오늘의 이스라엘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키워드를 모두 품고 있다. 특히 올드시티에는 유대교를 믿는 이들,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 기독교를 믿는 이들이 공존한다. 유대인의 마을과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아랍인의, 이슬람인의 풍경이 번갈아 등장한다. 예루살렘의 상징인 통곡의 벽(Western wall)을 손으로 짚고서 앞뒤로 몸을 흔들며 기도하는 유대인, 몇 골목 떨어진 곳에서는 시장통에서 팔라펠(피이타 빵 안에 야채와 고기 등을 넣은 아랍식 샌드위치)을 팔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코란 독경 소리에 맞춰 남루한 담요를 펴고 바닥에 엎드려 기도 올리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있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경계의 이쪽저쪽에서 경계를 존중하며, 또한 경계를 비웃으며 살고 있는, 공존의 지혜를 터득한 이들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현장 학습 시간이면 총든 경호원이 꼬박 따라붙는다. 15명당 1명의 경호원은 의무 사항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곳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불균형한 전쟁이 수십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곳임을 일깨워준다. 안타깝게도 분쟁과 갈등은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 위주의 희생을 재촉한다. 이스라엘은 내부의 팔레스타인 외에도 시리아, 레바논과도 여전히 국경 분쟁과 지지부진한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수천년 수직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예루살렘에서 평화와 공존, 수평의 가치가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실제로 이스라엘 북쪽 나자렛은 종교의 박물관이자 평화적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곳이다. 예수가 나고 30년을 자랐던 나자렛에는 그리스·이집트 정교, 이슬람교, 천주교, 기독교, 동방교회 등 여러 종파들이 저마다 각자의 성당, 교회, 회당을 갖고서 최고 신성(神性)의 시원(始原)으로 삼고 있다. 글 사진 youngtan@seoul.co.kr ●여행 팁! 갈릴리 호수 북쪽 골란고원에서 요르단강 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사해가 나온다. 90번 도로다. 4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긴 거리다. 길 왼쪽으로 이스라엘의 집단농장 키부츠가 가꾸는 바나나밭, 대추야자밭 등이 이어지고, 더 멀리로는 요르단의 산맥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린다. 요르단강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이다. 오른쪽으로는 흙바람 날리는 광야, 양떼를 모는 목동이 점점이 보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중간중간 차를 멈춰 그 광경에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서쪽으로는 지중해를 끼고 올라가는 길이 있다. 2번 도로다. 역사 속에서 유럽 등과 무역이 이뤄졌던 항구를 많이 끼고 있어 상대적으로 번성했다. 자파, 텔 아비브, 하이파, 아코 등 아름다운 도시들을 선으로 잇고 있다. 특히 해가 지는 시간에 이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지중해 석양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 은희경과 떠나는 크로아티아 가을여행

    은희경과 떠나는 크로아티아 가을여행

    빼어난 풍경과 온화한 기후로 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여행국가 크로아티아. 이곳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역사 도시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안내 책자 한 권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다. 2일부터 월~목 오후 8시50분 방송하는 EBS세계테마기행은 4부에 걸쳐 크로아티아의 숨은 매력을 공개한다. 이번 여행은 아직 소녀 같은 웃음을 지니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이 함께 한다. ‘새의 선물’을 비롯해 ‘아내의 상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 소설을 통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그는 여전히 발랄한 모습으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크로아티아 가을 풍경을 전한다. 2일 방송하는 1부 ‘요정들의 호수 플리트비체’ 편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를 찾는다. 방송은 이곳에서 수백 년 된 케이블카 등 각종 역사 유적을 소개한 뒤, 세계자연유산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방문한다. 공원에는 백운암·석회암 지대 및 여러 가지 색을 내는 신비의 호수, 90여개의 폭포 등 천혜의 예술작품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3일 2부 ‘중세의 낭만 이스트라’ 편은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에 자리한 역사 도시들을 찾아간다. 이곳은 로마의 지배 당시 지어진 원형극장 같은 유적과 함께 세계 3대 진미라는 송로버섯으로 유명하다. 제작진은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 송로버섯의 채취과정과 요리법 등을 전한다. 이어 4일 방송하는 3부 ‘향기의 섬 흐바르’ 편은 도나트 성당이 위치한 도시 자다르를 찾아 유서 깊은 성당의 모습과 함께 환상의 풍경을 자랑하는 해변을 소개한다. 마지막 5일 4부 ‘아드리아의 진주 두브로브니크’편은 크로아티아의 전통공예·음악·춤을 즐길 수 있는 전통 마을을 찾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1700년 전 ‘고대 로마’ 3D로 관광한다

    1700년 전 ‘고대 로마’ 3D로 관광한다

    약 1700년 전의 고대 로마를 3D로 관광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구글은 ‘구글 어스’를 통해 제작한 고대 로마의 3D 시뮬레이션을 공개했다. 약 7000채에 가까운 고대 건물들이 복원된 이 시뮬레이션에는 로마를 상징하는 치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콜로세움(Colosseum·플라비우스 원형극장), 그리고 가장 오래된 집회장으로 꼽히는 포룸(Forum)등이 포함돼 있다. 위성을 이용한 지도 서비스에 주력해왔던 구글 어스는 최근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 전성기 당시의 로마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에게 로마 곳곳의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용자들은 콜로세움 등 유명 건축물들을 3D를 이용해 체험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과 버지니아 대학의 공동연구로 탄생한 이 같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고대 건축물 전문가의 조언과 남아있는 옛 터의 레이저 스캔 이미지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약 10년간의 연구끝에 공개된 ‘고대 로마 3D 시뮬레이션’은 건축 학자들 뿐 아니라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Advanced Technology’ 버지니아 연구소의 베르나드 프리셔(Bernard Frischer)박사는 “이 프로젝트는 교육적으로도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라며 “현재는 고대 버지니아의 윌리엄즈버그(Williamsburg)지역을 3D로 복원하는 작업에 있다.”고 밝혔다. 사진=구글 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년의 역사’ 부활

    ‘천년의 역사’ 부활

    공사착공 18년 만인 오는 30일 그랜드오픈예정인 경북 경주시 신평동 ‘신라 밀레니엄파크’ 조성 현장을 찾았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보문호를 좌측으로 끼고 보문관광단지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공사차량과 인부들의 분주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장을 나흘 앞둔 27일 관계자의 안내로 진입로와 조경공사 등이 한창인 신라 밀레니엄파크를 둘러봤다. ●에밀레종 타워가 랜드마크 매표소를 지나자 석굴암 전실을 형상화한 정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면에는 천마상의 분수대가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분수대를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면 길 가장자리에 12지신(支神)상 석조물이 서 있다. 조금 더 가면 이곳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에밀레종이 웅장함을 자랑한다.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을 4.5배(높이 17m) 크기로 확대해 종 속을 4층짜리 사무실로 꾸몄다. 여기서부터 밀레니엄파크가 본격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파크는 삼부토건 계열사인 ㈜신라밀레니엄이 신평동 일대 부지 17만 8200㎡(5만 4000평)에 총 1000억원을 들여 신라역사 체험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에밀레종 타워 앞에는 지상 및 수변 무대로 꾸며진 주공연장이 마련됐다. 지상무대에는 성벽과 민가, 망루 등을 갖춘 신라의 성(城)이 자리를 잡았으며, 특히 수변무대에선 선박 7척이 동원돼 신라와 당나라의 해상전투가 재연된다. 주간에는 신라가 당나라를 무찌르는 내용의 ‘천괴의 비밀’, 야간엔 ‘(성덕)여왕의 눈물’이 각각 공연될 예정이다. 연출 감독은 ‘용의 눈물’의 김재형 총감독이 맡았다. 주변엔 신라 전성기인 8세기쯤, 세력면에서 경주와 어깨를 겨루었던 콘스탄티노플(로마), 바그다드(이라크), 장안(중국)을 재현한 세계 4대 도시 조형물이 배치됐다. 특히 장안엔 당나라 현종과 그의 애첩 양귀비가 함께 목욕했다는 화청지(華淸池)가 꾸며져 있다. 중국의 목수 등이 초빙돼 화청지와 건물 4동이 75% 크기로 정교하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다양한 체험형 공방과 공연 다시 에밀레 타워에서 남쪽으로 100여m 이어지는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가면 1300여년 전의 신라 속으로 들어간다. 관광객들은 40여채의 초가집에서 신라시대의 민예품인 토우·한지·칠기 등을 장인들과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다. 이름하여 체험공방이다. 공방을 지나면 성골·진골·6두품 등 골품제에 맞춰 신분별 주택들을 추정 복원한 신라방(정방형 140×140m)이 자리잡고 있다. 성골 집은 회랑 등 삼국사기에 나와있는 대로 고증됐다. 주변엔 마상무예를 구경할 수 있는 원형극장 형태의 화랑공연장과 마당극이 펼쳐질 장보고공연장, 어린이 놀이터인 설화공원 등 신라를 소재로 한 다양한 테마공간이 들어서 있다. 입장료(1인)는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 5000원, 어린이 1만 2000원. 밀레니엄파크와는 별도 공간으로 정문 인근에 들어선 한옥 호텔촌인 ‘라궁(羅宮)’은 모두 16채의 객실을 갖췄다. 경복궁 보수 경력 등을 가진 국내 최고의 목수 100여명이 건축에 참여했다. 이 호텔은 객실마다 노천탕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며, 하루 숙박비는 30만원 선. 전재홍 신라밀레니엄파크 사업기획팀장은 “개장 이후 ‘천년왕국, 신라의 꿈과 향수’를 주제로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연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0)‘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중심’ 알제리의 알제

    [이슬람 문명과 도시] (10)‘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중심’ 알제리의 알제

    북아프리카 서쪽의 알제리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우 익숙한 나라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출신지역이고,‘이방인’·‘페스트’ 같은 그의 소설 주무대가 대부분 알제리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뿐이랴.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지드는 알제리의 체험을 배경으로 평생 소설과 산문시, 회고록 등을 남겼다. 그렇지만 알제리는 우리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정부군과 이슬람 급진주의자들 사이의 끈질긴 내전과 잔혹한 민간인 학살 사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알제리는 아프리카의 해맑은 햇빛과 순수하고 파란 지중해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의 나라로 일어서고 있다. 지금까지 가려져 있었던 북아프리카 지중해의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사연들도 진주처럼 하나씩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서게 된다. 그 알제리의 수도요 지중해의 중심도시가 알제다. 긴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11시간을 날아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서, 다시 그곳에서 4시간을 더 날아 도착한 곳이 알제 공항이었다. 그렇게 붐비지는 않지만 정감이 흐르는 도심이다. 하얀 차도르를 걸친 여인들과 삼각형 고깔 모자를 쓴 노인들이, 만나기만 하면 눈웃음을 보내는 정겨운 나라. 원시의 지중해를 끼고 언덕 위의 하얀 집과 해안가에 자리 잡은 또 다른 하얀 모스크와 성채들이 독특한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 삶의 역동적 공간 ‘카사바´ 알제를 가까이서 호흡하기 위해 언덕위의 구 도심 카사바로 향했다. 알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구역이고 가난한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위험하다며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원의 당부가 전공자들의 관심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알제 주민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삶 구석구석을 들여다 볼 기회를 만끽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인파들 사이로 여기저기 좁은 골목길이 미로를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각양각색의 상품들이 제 주인을 기다리며 시끌벅적하게 흥정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알제다운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 아니겠는가. 수백년 된 목욕탕 ‘함맘’은 아직도 따스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꼬마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한참 동안 우리를 안내하더니, 어느 집 앞에서 멈춰 섰다. 알제리 독립을 위해 애쓰던 독립 투사들이 1957년 프랑스의 공격을 받고 순교한 곳이라고 했다. 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잠시 묵념을 했다. 우리도 똑같은 독립의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가. # 알제리 대학 도서관의 카뮈 원서 한 권 구시가에 발길을 돌려 신시가 중심지로 방향을 틀었다. 체 게바라 거리를 따라 해안가로 20분정도 걸어가다가 서쪽 언덕으로 방향을 바꾸면 넓은 광장에 기마 동상 하나가 서 있다. 에미르 압둘 카디르의 동상이다.19세기 알제리 서부에서 프랑스에 저항하며 조국의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 투사다. 알제리 사람이면 누구나 존경하고 따르는 인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10만 대학생을 수용하는 알제리 대학이 보인다. 카페와 레스토랑, 패션 명품점까지 들어찬 대학촌을 지나 알제리 대학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19세기 이전에 편찬된 귀중본만 100만권 이상 소장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최대 도서관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운이 좋았던지 도서관장의 특별 배려로 전 세계에서 단 1부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카뮈의 ‘형이상학, 기독교, 신플라톤주의’라는 빨간 표지의 책을 볼 수 있었다. 그 때의 짜릿한 기분이란, 정말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 카뮈의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찾아서 알제리 주민 대부분은 7세기 무렵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삶 속에는 고대 역사의 숨결이 여전히 묻어나고 있었다. 그 중심지가 수도 알제다. 아랍어로 ‘엘 제자이르’라 불리는 이곳은 고대 페니키아 시절부터 중요한 항구 도시였고,10세기경에는 로마와 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역 도시로 성장했다. 그 때문인지 국제 교역의 요충지로서 알제 항구는 일찍부터 외세는 물론, 그 당시 성행하던 해적들의 주된 공격 목표가 됐다. 결국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그나마 발전의 발판으로 삼으며 성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지금 남아 있는 성채나 모스크, 마드라사(신학교) 등은 이 시기에 건축된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알제 주변에는 이슬람 유적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유적들까지 군데군데 숨어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고대 유적지가 티파사다. 티파사라면, 카뮈의 산문 ‘티파사에서의 결혼’이란 작품을 탄생시킨 무대가 아닌가. 알제에서 서쪽으로 70㎞ 정도 떨어져 있는 티파사로 가는 해변길은 풍요와 은총으로 가득했다. 흑갈색 땅에서는 옥수수가 자라고 그 사이로 푸른 채소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티파사에 도착했다. 북아프리카 해변 한 쪽에 이렇게 장대한 고대 유적지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잘 포장된 길을 열어뒀다든가 안락한 숙박 시설을 마련해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한 그런 유적지는 아니었다. 잡풀이 무성하고 이름 모를 열대의 붉은 꽃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고대의 역사 공간이었다. 유네스코는 초라한 이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그 의미를 기리고 있었다. # 유럽과 아프리카의 만남-알제리 카뮈가 거닐었을 길을 따라 단절된 역사의 향기에 취해 보았다. 오래된 유적지는 고대 페니키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지만 원형극장이나 신전, 바실리카 등 대부분 비잔틴 시대의 유산이었다. 유적지가 끝나는 막다른 지점까지 다다르자 언덕 아래 세찬 물살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와 닿아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지중해다. 그리고 그 건너편이 바로 프랑스 땅이다. 그러고 보니 알제에서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알제리 남쪽 도시 타만라세까지 2000㎞에 이르니, 알제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보다 길다는 사실이 문뜩 떠올랐다. 사하라를 고향으로 유목 생활을 하는 토착 투아레그족이나 베르베르족들의 전통과 관습보다 로마나 유럽의 해양 문화가 더 강하게, 더 빨리 스며들 수밖에 없는 북아프리카 문화의 특성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듯했다. 문화는 섞일수록 발전하고 다양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수록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는 사실을 북아프리카 최고의 해안 도시 알제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희수 이슬람문화연구소장·한양대 교수
  • 터키 2000년전으로의 여행

    터키 2000년전으로의 여행

    무너져 내린 돌덩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에 손을 대어보자. 느껴지는가,2000년 전의 그들의 외침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터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었던 대표적인 ‘신탁’의 성지였다. 무채색의 올리브 나무, 파란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한 바다와 하늘의 절묘한 조화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해안 도시로의 여행은 낯선 이방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에게해, 마르마라해, 흑해 그리고 지중해 사이에 기묘한 모양으로 떠있는 나라, 터키 여행은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또한 지중해를 따라 가득 들어선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과 아폴로 신전, 고대 기독교 문화의 에페소 등 세계 문명의 흔적들이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시계를 2000년 전으로 맞추어 놓고 코발트빛 바다가 펼쳐진 지중해를 따라 터키를 돌아보자. 글 사진 터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터키 서남부 해안을 달리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좁다란 해안도로가 뻗어 있는 터키의 서남부 해안을 버스로 달렸다. 따스한 봄바람에 실려오는 싱그러운 바다 내음에 기분이 들뜨기도 하고, 로마와 그리스의 위대한 문화를 칭송하듯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파도의 노랫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을 시작했다. # 진짜 코발트 블루, 이런 색이야 터키의 지중해 여행은 안탈리아에서 시작한다. 이스탄블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지중해 해안 도시로 터키 관광의 중심으로 불릴 정도로 최고급 호텔과 빌라 등 여행자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편의시설이 많다. 또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안탈리아에서 주변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버스투어’는 유럽인들에게는 인기. 첫번째 목적지인 올림포스까진 이름 모를 크고 작은 해변들을 끼고 달렸다.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니 ‘김형영씨 시’가 생각난다.‘하늘과 바다가 내통하더니/넘을 수 없는 선을 하나 그었구나/나 이제 어디서 널 그리워하지.’ 낯선 땅이라서일까, 슬픔을 간직한 색 ‘블루’때문일까. 뜻모를 슬픔이 가슴을 메운다. 파란 도화지에 흰점 같은 버스는 하얀 선을 그리며 달리고 또 달린다. 올림포스 해변은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했으며 아직도 해안 절벽 위에는 집터들이 남아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도굴되어 겉모양만 남아 있는 AD2세기 오데모스 장군의 묘,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 흔적과 담장 등이 기다린다. 또한 올림포스는 레포츠의 천국으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산과 바다, 계곡이 잘 어우러져 캠핑이나 산장에서 머물며 트레킹, 카약, 스쿠버다이빙, 암벽 등반 등을 즐긴다. 많은 산장 중에 트리하우스가 유명하다. 산타클로스로 유명한 성니콜라스 교회와 바위절벽에 굴을 파 만든 암굴 묘가 있는 미라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 게코바가 있다. 비잔틴 시대의 아름다웠던 도시가 수차례 지진으로 인해 물에 잠겼다. 그래서 지금은 산 정상에 있는 리키아인들의 무덤만 슬픔 역사를 조린다. 하지만 에메랄드빛 바다 속에는 당시의 아름다운 도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면 이젠 로마와 그리스의 거대한 문화에 취해보자. # 아폴로 신을 만나다 ‘아폴로 신전’이 터키에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게코바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리면 디딤이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 역시 그리스와 로마시대 번영을 누렸던 항구도시다. 그러나 지금 남겨진 것은 아폴로 신전이 유일하다. 아폴로 신전으로는 그리스 델포이 신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터키에도 디딤을 비롯한 아폴로 신전이 두개나 있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규모 면에서는 그리스 델포이보다 크다. 그러나 온전히 서 있는 기둥이 3개에 불과해 세상에 덜 알려졌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에 발을 디뎠다. 인간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신들의 영역은 지금 몇 번의 지진으로 무너져 내려 신전 앞에 뒹굴며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몇 아름도 넘는 기둥에 눈을 감고 손을 대어보았다. 혹시 아폴로 신을 만날까 하고 말이다. BC6세기경에 지어진 이 신전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고위 사제만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 하늘의 계시를 듣고 그 내용을 밖에 있는 왕이나 백성들에게 전하는 그런 곳이었다. # 황홀한 로마의 도시 에게해 해안 도시 이즈미르는 오디세이로 유명한 호메로스의 고향으로 터키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셀주크에는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에페소가 기다린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하며 로마시대에는 25만 명이 살던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다. 에페소로 들어서자 기다리는 것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신전의 기둥, 나뒹구는 대리석, 허물어진 건물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기둥 하나, 돌멩이는 모두 로마의 역사다. 특히 에페소는 기독교인이면 꼭 한번 들러보는 성지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갖은 핍박을 받으며 전도를 했던 곳이며 옥중에서 에페소 교인들에게 보냈던 편지가 바로 신약성서의 ‘에베소서’이다. 또한 사도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에 머물며 요한복음을 썼던 기독교 역사상 아주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에페소에는 없는 것이 없다. 여러 신전은 물론이고 대중들을 위한 목욕탕, 돈을 받고 운영했다는 화장실, 평민과 귀족들의 공간을 나누었던 헤라클래스가 새겨진 기둥문, 병원을 상징하는 조각, 대리석에 새겨진 ‘발’보다 작으면 미성년자로 취급해 들어 갈 수 없었던 창녀의 집, 도서관, 각종 하수도 시설 등 정말 고대 로마의 발달한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원형극장도 두개다. 귀족들이 회의를 했던 작은 것과 무려 2만 5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을 위한 원형극장도 재미나다. 과학적인 설계로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뒤쪽까지 잘 들린다. 에페소에서 가장 멋있는 건물은 단연 켈수스 도서관이다. 비록 거의 다 무너져 내려 앞쪽만 간신히 건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건물의 높이가 16m나 되고 1만 2000권의 책을 가지고 있던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2000여년전 기계도 하나 없던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대한 신전과 건물들을 오직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따사로운 봄햇살이 내리쬐는 켈수스 도서관 앞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잠시 발을 멈춘다. 한쪽에서 3인조 오케스트라가 관광객을 위해 음악을 선물한다. 정말 2000년 전 그들의 삶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곳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인근 셀주크 박물관이나 에페소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 터키 여행정보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은 터키항공(02-777-7055)이 월·목·토요일 1주일에 3차례 뜬다. 현재 전세기를 띄우고 있는 대한항공(1588-2001)도 조만간 주 3회 정식 취항할 예정.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약 12시간 걸린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통화는 터키 리라인 에테르(YTL)를 쓴다. 1달러에 1.25 YTL 정도.1유로는 1.45YTL. 우리 돈으로 720원 정도. 달러와 유로 모두 통용된다. 미리 달러로 환전을 해서 출국하는 편이 좋다.
  •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유행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이드의 깃발을 쫓아 다니는 패키지 여행은 구시대 유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내맘대로’ 자유롭게 떠나는 선진국형 개별자유여행(FIT)이 새로운 추세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어디를 가보았다는 ‘점찍기식’ 여행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유럽의 관문인 프랑스를 FIT로 직접 다녀왔다. 쪽빛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초록빛 계곡과 드넓은 초원을 따라 파리에서 노르망디, 루아르, 꼬뜨 다쥐르, 프로방스까지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렌터카와 지하철, 버스, 프랑스 철도와 연안 여객선, 조그만 지방 철도에도 올랐다. 여행도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만났다. 에펠탑이나 니스해변 등 여행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명소들보다 프랑스의 푸른 자연속에 숨겨진 비경들이 더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패키지 여행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크게 어렵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과 철저한 준비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기자가 다녀온 10박 11일간의 프랑스 여행을 소개한다. ■ 도움말 MK유럽, 레일유럽, 프랑스관광청 프랑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여행, 이렇게만 하면 준비가 반이다 준비에 많은 시행착오가 뒤따랐지만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준비에 노력한 만큼 편하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시간이기도 했다. 출발 한달전.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항공과 숙박, 이동수단 등의 순으로 여행의 골격을 잡았다. 항공편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서 특가 상품을 찾아냈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니스행 항공권으로 항공료 79만 9000원에 파리 스톱오버(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것) 비용 10만원, 세금 10만 9000원 등 모두 100만 8000원. 정상 가격(130만∼180만원대)보다 많이 쌌다. 일본이나 두바이 등을 경유하는 60만∼80만원대 항공편도 있었지만 편하고 빠른 직항편을 택했다. 숙박은 유럽지역 호텔 예약 전문업체인 MK유럽(02-719-0461)을 통해 일정에 맞는 주요 도시에 호텔을 정했다. 인터넷에 숙박예약 사이트가 많지만 MK유럽은 국내 여행사 등에 호텔을 공급하는 다국적 호텔 체인업체로 훨씬 저렴하다. 숙박은 특급부터 일반 호텔까지 다양하며, 숙박비는 문의해 경비에 맞추면 된다. 교통수단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등 단거리 이동은 현지에서 해결하면 되지만 철도나 렌터카 등은 국내에서 예약하는 것이 편하고 저렴하다. 유럽 지역의 철도는 레일유럽 한국사무소가 있는데 개인 예약은 받지 않으며, 서울항공(755-1144)과 걸리버(2170-6500),RTS(722-4033)에서 대행한다. 렌터카는 허츠나 에이비스, 알라모 등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개별 여행인 만큼 휴대전화 로밍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통신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분당 발신은 1000∼2000원, 수신은 400∼500원이다. 여행자 보험은 출국직전 공항에서 가입하면 된다. 비용은 보상액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사망 1억원, 상해치료 2000만원, 질병치료 1000만원, 휴대품 분실 40만원의 경우 10일에 1만 5000∼2만원선이다. 여행 준비물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기가 가볼 곳에 대한 여행정보를 미리 찾아 준비하고, 프랑스 여행서적 2권 정도를 지참하면 좋다. 특히 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지는 불어 안내서밖에 없는 만큼 불어 사전도 지참하면 요긴하다. 이 정도만 준비하면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기타 현지 여행 정보는 기사의 <ⓘ>를 참고하면 된다. ◆ DAY1 몽마르트르, 야경에 취하다 ●설렘과 걱정, 파리에서의 첫날밤 ‘잠시후 샤를르 드골공항(CDG) 도착하겠습니다.’현지 시간 오후 6시40분(국내 시간 새벽 1시40분). 파리 도착을 알리는 대한항공 KE 901편 기장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파리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그저 파랗기만 하다. 오후 1시55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을 날아왔지만 파리는 한낮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쬔다.‘뭘 해야하나?’ 첫 숙박지를 찾는 것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목적지는 파리시내 북쪽에 위치한 ‘포레스트 힐 라 빌레트’(Forest Hill La Villette). 시내 지도를 펴고 한동한 고민한 끝에 고속전철(RER)과 지하철을 타는 것이 찾기 쉬울 듯싶어 공항 RER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RER 티켓(8.75유로)과 지하철표를 10묶음 단위로 할인 판매하는 ‘카르네’(carnet)를 구입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함께 탈 수 있는 티켓 1장은 1.30유로지만 카르네는 10유로. <ⓘ-1> 처음 타본 RER는 후텁지근했는데 무엇보다 내릴 역에 대한 안내방송이 없어 당혹스러웠다.RER는 20분만에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고, 지하철 2,7호선으로 갈아타고 ‘포르트 드 라 빌레트’(Porte de la Villette)역 에 내렸다. 지하철 역시 안내방송이 없어 역구내의 간판을 보면서 내릴 곳을 가늠해야 했다. 지하철 문도 우리와 달리 수동식으로 내릴때 녹색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서 열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 프런트에 ‘호텔 바우처’(호텔 예약서)를 보여주고 방을 얻은 뒤 짐을 풀었다. 별 3개인 호텔 숙박료는 조식을 포함,1박에 210유로. <ⓘ-2> ●젊음이 가득한 몽마르트르 언덕 밤 9시.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기위해 과감히 방을 나섰다. 지하철 7,2호선을 타고 앙베르(Anvers)역에 내려 사크레쾨르 사원이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순백의 성당 잔디에는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인파로 붐볐고, 언덕위의 노천 식당 테라스는 활기가 넘쳤다. 배가 고파왔다. 성당 아래 ‘레테 앙 팡트 두스’(L´ete en Pente Douce)라는 작고 예쁜 식당을 찾았다. 식사는 ‘오늘의 요리’로 치즈와 토마토, 돼지고기 등을 넣은 샐러드 ‘살라드 뒤 뮐레’(11유로)로 양이 무척 많다. 팁은 식탁에 놓고 나오면 된다. <ⓘ-3> 순백색 조명을 밝힌 성당을 올라가자 야경을 감상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너무 자주 보여(?) 금방 익숙해 졌다. 이어 성당을 끼고 오른쪽길로 올라가면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타나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10여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밤 12시 호텔로 돌아와 파리의 첫날밤을 지냈다. 한국 시간으로 치면 아침 7시로 밤을 꼴딱 세운 셈이다. <ⓘ-4> ◆ DAY2 센강은 좌우를 나누지 않는다 ●쪽빛 하늘을 따라 도심을 걷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물빛이 창밖에서 쏟아진다. 그 빛에 놀라 잠을 깬 것은 오전 5시. 시차 탓에 빨리 일어난 것이다. 호텔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인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전 8시. 지하철을 타고 파리의 중심인 시테(Cit)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5> 시테역에 내리자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인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는 파리 중심석이 새겨져 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비취는 성당 내부는 장엄함과 엄숙함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어 걸어서 파리의 중심을 흐르는 센(Seine)강을 건넜다. 강폭은 넓지 않았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파리 3·4대학(소르본대학)을 거쳐 뤽상부르 공원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앙리 4세의 왕비가 세운 공원으로 넓이가 25만㎡에 이른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깎아놓은 나무과 넓은 잔디밭. 잔디에 누워 하늘을 봤다. 구름 한점없는 하늘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죽은자들의 세계 카타콩브 찌는 듯한 더위는 시원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지하묘지 카타콩브(Catacombes·입장료 5유로). 사전 지식이 없이 들어간 지하묘지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주택가 한복판에 만들어진 지하묘지로 800m에 이르는 동굴안에 인골 600만기가 안장돼 있다. 낮 12시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이 거의 없다. 나선형 계단을 땅속으로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동굴안에서 서늘함이 밀려왔다. 기온은 11∼12도. 밖의 날씨와 비교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다 못해 춥다. 가로 1.5m, 높이 3m의 동굴을 따라 100m쯤 걸어들어가자 유골이 동굴 양 옆으로 빼곡하게 쌓여 있다. 출구까지는 45분이 걸린다. 밖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와자’(Wadja)라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식당이다. 매일 바뀌는 오늘의 메뉴는 전채요리와 메인요리, 디저트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채요리는 꽃양배추 샐러드, 메인요리는 생선과 쇠고기, 디저트는 과일프루츠나 치즈빵 중에 고르면 된다.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가격도 14유로로 비교적 저렴하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인 보들레르, 소설가 모파상 등 저명인 100여명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공원처럼 편안한 곳이다.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아 지하철을 타고 7호선 퐁마리(Pont Marie) 역에 갔다. 역에서 나와 퐁마리 다리를 건너 첫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보이는 ‘베르티용’(Berthillon)이라는 집이다. 유사한 아이스크림 집이 많아 헷갈리기 쉽지만 간판에 ‘31번’이라고 쓰인 집이 원조다. 가격은 1컵짜리가 2유로,2컵짜리가 3.5유로다. <ⓘ-6> 휴식도 여행의 일부. 오후 8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7> ⓘnformation center ⓘ-1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RER와 버스, 택시 등 다양하다.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에어프랑스 버스의 경우 편도 11.50유로 정도이며, 택시는 도심까지 40∼50유로(야간 20% 할증)다. 환율은 1유로에 1240원 정도. ⓘ-2 이는 공시 가격으로 국내에서 예약하면 훨씬 저렴하다. 호텔 숙박료는 대도시와 지방,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방 도시의 별 1∼2개짜리 호텔이 40∼80유로다. 별 3개 이상은 100∼300유로 선이다. ⓘ-3 팁은 음식값이나 택시요금의 10% 정도지만 식당에서는 통상적으로 2∼3유로 정도면 된다. ⓘ-4 항공권은 에어프랑스 티켓을 끊었지만 왕복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인천∼파리행은 오전 10시25분, 오후 1시55분 두차례 있는데 오전은 에어프랑스, 오후는 대한항공이 운항된다. 두 항공사가 코드셰어(좌석공유)를 해 두 곳 중 저렴한 항공사에서 티켓을 끊으면 된다. 돌아오는 항공편은 오후 1시15분,9시50분에 있다. 에어프랑스 티켓으로도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5 지하철은 14호선까지 있으며, 운행은 오전 5시30분부터 자정넘어(0시30분)까지 운행한다.1·3·5일권인 파리비지트 패스(www.parisvisite.co.kr) 등 다양한 할인 티켓 제도가 있지만 하루에 티켓이 2∼3장 정도면 충분한 만큼 카르네가 간편하다. ⓘ-6 프랑스 거리는 집 주소만 알면 지도 한장만 들고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돼 있다. 지도에 표시된 도로 번호를 따라 가면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7 프랑스 전원은 220V로 우리나라와 같다. 자기전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충전하면 된다. ◆ DAY3 전원 드라이브, 느림을 즐기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과 개선문 전날 너무 일찍 잠을 청한 탓에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잠이 오지 않아 오후부터 시작될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다. 책을 펴고 오를리(Orly) 공항에서 노르망디 지역의 수도원 몽생미셸로 가는 길을 연구했다. 전날 5유로 주고 구입한 미슐랭(Michelin) 프랑스 전도를 펴고 고민하는 사이 어느 덧 날이 밝았다. 오전 일정은 에펠탑과 개선문. 식상하리만치 유명한 파리의 상징물이지만 빼놓을 수는 없었다. 오전 8시 에펠탑을 향했다. 에펠탑은 6호선 트로카데로(Trocadero)역과 비르아캥(Bir-Hakeim)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샤이요(Chaillot) 궁전도 구경하면서 내려갈 겸 트로카데로 역에서 내렸다. 멀리 샹드 마르스 공원과 에펠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1898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에펠탑은 높이 320m로 3개 층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이어 샤를르 드골 에투알(Charles de Gaulle Etoile)역에서 내려 개선문을 본 뒤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넓은 도로를 따라 유명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다. 오를리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센강을 따라 앵발리데(Invalides) 옆에 있는 에어프랑스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센강 유람선을 타는 바토뮤슈 승선장에는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센강과 어우러진 에펠탑의 풍경이 장관이다. 퐁데 앵발리드 다리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앵발리드 공원을 지나자 정류장이 나타났다. 도보로 30분. 오를리행 버스는 30분마다 1대씩 있는데 1인당 8유로다. 차비는 기사에게 내면 된다. 시내 교통이 막혀 공항까지 40분쯤 걸렸다. ●렌터카를 몰고 시골 풍경속으로 오를리 웨스트 공항 허츠 렌터카 데스크에서 한국에서 예약한 바우처와 함께 국제면허증, 신용카드를 내밀자 손쉽게 수속을 끝냈다. 직원은 프랑스내 호텔 주소를 물은 뒤 “한번도 안 탄 새차를 빌려 주겠다.”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수속을 마친 뒤 터미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렌터카는 이제 막 출고된 소형 벤츠. 타코미터(운행기록장치)에 36㎞라고 찍힌 갓 출고된 차량이었다.<ⓘ-8> 오후 1시30분. 무작정 공항을 빠져 나왔다. 낯선 곳에서의 운전, 낯선 차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괜히 빌렸다.’는 후회도 들었다. 렌터카 직원이 “공항을 나가 5분쯤 파리 시내쪽으로 가다가 ‘베르사이유’(Bersailles) 방향의 표지판이 보이면 그 길로 진입하라.”고 알려줬지만 긴장한 탓에 진입로를 놓쳤다.10여분쯤 헤매다 결국 차를 세운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겨우겨우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편도 3차로의 차선중 모든 차가 가장자리의 차선을 이용한다는 것. 추월할때만 1·2차선을 이용했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30㎞, 비가 올 때는 110㎞. 차들은 운전경력 15년인 나도 별로 내본적이 없는 170∼190㎞의 속도로 말그대로 쌩쌩 달린다.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자 주변 경치가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벌판에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그림속의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긴장이 풀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샤르트르 지방을 지나 고속 휴게소로 들어갔다.<ⓘ-9> 낯선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달린지 3시간. 국내에서 좋아하는 음악 CD 등을 가져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1시간쯤 달리자 오후 5시30분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널찍한 갯벌 사이로 난 긴 도로를 달리자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는 웅장한 수도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도원 앞 주차장(주차료 4유로)에 차를 세운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성 내부 관람은 6시까지로 아쉽게도 입장이 마감됐다. 그렇지만 성안 마을 등은 돌아볼 수 있었다. 성안은 17세기의 마을 모습 그대로다. 고풍스러운 호텔, 식당, 매점, 기념품 가게 등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과거의 마을이다. 레스토랑 호텔인 ‘메르 풀라르’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비스킷 가게에 들러 버터와 우유가 듬뿍 들어간 ‘칼레트’ (9유로) 한상자를 샀다. 오후 8시쯤 성을 나와 숙소를 잡기로 했다. 다른 지역의 숙소는 서울에서 미리 예약을 했으나 이 지역은 렌터카 일정이 늦게 결정되는 바람에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몽생미셸에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성밖 마을에는 호텔들이 많았다. 그러나 차로 1시간을 달려 항구도시 생말로(St.Malo)에 도착했다. ●시골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 밤 9시. 생말로는 젊음의 활기가 넘쳤다. 해변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제트스키, 보트 등이 거친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의 일종인 상트로 바트릭 바탕고 ‘오베르주 쥐네스’(Auberge de jeunesse). 건물이 아담하고 예쁜데다 해변 근처에 있어 인기가 높은 숙소다.2인실을 빌려 짐을 풀었다.(숙박료는 조식 포함 1인당 16.5유로). 방은 깨끗하고 넓었다. 직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올 초부터 한국 배낭여행객들이 조금씩 찾고 있다.”며 2유로인 침대 커버를 무료로 건네줬다. 짐을 풀고 인근 ‘엘 파티오’(El Patio)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했다. 작은 피자와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자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달아났다. 특히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는 두고두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음식값은 10유로. ⓘnformation center ⓘ-8 렌터카는 국내 대행업체에 전화로 예약하면 이메일로 바우처를 보내주는데 인쇄해서 가져가면 된다. 비용은 24∼27일(3박 4일) 72시간 빌리는데 89.59유로이며, 세금 등을 포함해 143유로 정도가 든다. 예약시 오토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국제면허증은 각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면 당일 발급해 준다. 인지대 5000원. ⓘ-9 휴게소는 우리나라 비슷하다. 주유소를 거쳐 들어가면 대형 슈퍼마켓과 화장실, 레스토랑이 있다. 톨게이트도 우리나라 체계와 비슷해 입구에서 표를 뽑은 뒤 나갈 때 돈을 지불한다. ⓘ-10 프랑스의 운전에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은 ‘선진입차 우선’인 교차로. 우리나라와 같은 사거리에는 대부분 로터리가 있는데 왼쪽에 진입한 차가 없으면 들어갈 수 있다. ⓘ-11 고성 투어버스는 투르역 광장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하는 투어 차량이 있다. 반나절(5∼6시간), 하루코스(9시간) 등이 있는데 20∼40유로다. 입장료와 점심값은 별도다. ◆ DAY4 투르, 동화나라로 가는 길 ●생말로에서 투르까지 안개 낀 ‘그랑베 섬’(Rocheur du Grand Be)과 해안선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변은 이른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지는 해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몰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좁은 도로를 따라 가자 프랑스 최대의 항구답게 수백여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고, 영국 등지로 떠나는 대형 여객선도 기적을 울리며 사람들을 불렀다. 오전 10시. 간단하게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루아르(Loire) 고성지역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속도로보다는 시골 국도를 달리고 싶은 마음에 국도를 따라 떠났다. 내리던 빗줄기도 점차 줄어든다.<ⓘ-10> 시골길은 무척 한적했다. 스쳐지나가는 하나하나의 풍경이 그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 고흐, 고갱, 마티스 등 유명 화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스쳤다. 대형 지도를 따라 가다 보니 수차례 길을 잃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냥 주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라발, 앙제시내를 거쳐 지나갔다. 기름이 거의 바닥이 가까워 온다. 주유도 하고 잠시 쉴 겸 다시 고속도로에 들렀다. 얼마쯤 달리자 휴게소다. 주유소는 셀프 주유다. 노랑, 파랑, 빨강 라벨의 주유기가 있어 어느 것을 넣어야 하나 잠시 고민. 근처에 있는 “주유원에게 어느 것을 넣어야 하느냐”고 묻자 ‘쉬페르 프르미에르’(Super Premiere)라고 쓰인 노란색 주유기를 가리켰다. 처음으로 직접 해보는 주유. 차의 주유기를 열고 넣자 45ℓ나 들어간다. 기름이 가득차면 저절로 멈춰 주유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기름값은 50유로로 따져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계산은 주유한 후에 중앙에 있는 계산원에게 가서 주유기 번호를 불러주면 된다. 투르로 향하는 길은 영화속에서나 봤음직한 전원 풍경 그대로다. 경치에 취해 차를 대놓고 쉬어가기를 여러번. 사나흘을 머물러도 좋을 듯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의 만남 오후 4시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리는 루아르 계곡에 접어들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1020㎞의 루아르 강을 따라 르네상스 시대의 왕후, 귀족들의 수많은 성이 흩어져 있다. 프랑스 전역에 약 5000개의 성이 있는데 이중 쉬농소·앙부아즈·랑제·앙제·블루아·쇼몽·슈베르니성 등 80여개가 이 곳에 있다.<ⓘ-11> 첫 목적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무대가 된 위세(Uss)성. 투르시내에서 28㎞떨어진 곳으로 1485년에 건축됐다. 동화속의 성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첨탑이 주변 경치와 어울려 아름답다. 너무 조용해 정말 공주가 잠만 잘 수밖에 없었을 것처럼 고요하다. 사진은 성 앞에 있는 작은 강 뒤에서 찍는 것이 예쁘다.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인근에 있는 아제 르 리도(Azay-le-Rideau)성으로 향했다. 성보다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휴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점심은 인근의 ‘라망드’라는 식당에 들어가 오믈렛(8유로)으로 간단히 때웠다. 이어 빌랑드리(Villandry) 성으로 향했다.16세기 건축물로 르와르 고성중 가장 마지막에 곳.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 쉽지 않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성 관광’ 안내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다. 각종 야채가 있는 정원, 장식정원, 분수정원 등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내부와 정원 관광은 8유로. 오후 7시. 투르 시내에 예약한 ‘홀리데이 인 호텔’에 들어갔다. 기차역 앞에 있어 찾기 쉬웠다. 주차장에 들어가려면 먼저 호텔 체크인을 한 뒤 가로막을 통과할 수 있는 비밀 번호를 받아야 하며, 주차료 7유로를 내야 한다. 식사는 역 앞에 있는 ‘로데옹’(L´odeon)이란 식당.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민물고기 요리를 파는 곳으로 가격은 15∼20유로. ◆ DAY5 작은 마을에 들러 고흐를 기리다 ●투르에서의 한적한 휴일 프랑스의 주말은 어떨까. 시민들의 휴일 생활을 엿보려 일요일마다 시청앞에 장이 서는 벼룩시장을 찾았다. 100여개의 노점에는 집에서 쓰던 소품이며, 책, 그림, 찻잔, 액자, 음악판과 CD 등 없는 것이 없다. 쓰던 물건이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예쁜 액자 하나를 사려고 물어보자 30유로. 새것에 비해 결코 싸지 않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몽콩투르(Moncontour) 포도주 동굴 저장 지역이 나왔다. 파리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이 곳의 경치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다.‘포도밭 산책로’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보니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포도밭과 대형 저장고가 보였다. 마을 전체가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인근에 있는 ‘뱅 드 부브라이’라는 곳에는 바위산에 동굴을 뚫고 집을 지은 이색적인 마을. 바위산 위에 지은 돌탑과 그 아래 마을, 호텔 등 모두가 돌산과 연결돼 마을이 형성돼 있다. 렌트카로의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시내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리 외곽도로의 교통 체증 탓에 5시가 넘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1890년 7월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 비록 이곳에서 고흐가 산 시간은 두달 남짓하지만 이 곳을 무대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고흐가 자취했던 ‘라부(Ravoux)의 숙소’(입장료 5유로) 등 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고흐의 자취를 더듬어 갈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안내판이 나온다. 그림을 그린 방향을 어림잡아 가늠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마을과 계단, 오베르 교회, 까마귀 들판 등을 그림의 소재를 돌아본 뒤 산중턱에 있는 고흐의 묘지를 찾았다. 동생과 나란히 묻혀 있는 묘지는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여 있지만 다른 묘지들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오후 8시. 오를리 공항 근처 홀리데이 인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DAY6 니스 해변, 푸른 바다에 마음을 적시다 ●렌터카 여행을 마치고 렌터카를 반납한 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남프랑스의 니스(Nice)로 향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공항터미널로 향했다. 렌트카 반납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오전 11시 공항으로 출발했지만 반납은 열쇠를 건네 주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12> 비행기는 오후 3시. 공항 방침상 짐을 보관해 주는 장소나 라커가 따로 없기 때문에 출발 시간까지 무작정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가 1시간30분이나 연착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3∼4시간 걸리는 떼제베(TGV)를 이용하는 것는 건데 아쉬움이 든다. ●가슴을 열어주는 니스해변 오후 6시 ‘리비에라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니스에 도착했다.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칸느와 함께 지중해를 바라보는 꼬뜨다쥐르 지방의 중심도시.4번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선 버스’(요금 4유로)에 올랐다. 니스 해변을 따라 가는 버스에서 보는 풍광이 눈을 사로잡는다. 공항에서 해변까지는 약 6㎞.20분 정도 걸린다. 리비에라(Nice Riviera) 호텔에 짐을 푼 뒤 곧바로 해변으로 향했다.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들고 싶을 정도로 푸르다. 그 속에서 흘러가는 여유로운 시간. 호텔에서 마세나광장에서 해변으로 가면 활모양으로 뻗은 해안을 따라 화려한 호텔들이 즐비하다.<ⓘ-13> 프롬나드데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3.5㎞에 걸쳐 계속되는데 해변은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데크체어로 채워져 있다. 밤 9시가 넘도록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볼거리도 많다. 마세나 광장 등지에서는 음악공연과 길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길거리에 동상처럼 서있는 각종 캐릭터 모형은 실제 사람으로 관광객들이 돈을 넣으면 슬쩍 움직인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약간 높은 바위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빠끄 드 샤또라고 불리는 ‘성터공원’이다. 해안선과 옛항구 등 니스의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 엘리베이터(편도 0.7유로)가 있다. 맛집은 마세나 광장 인근에 있는 지중해 요리 전문점 방돔(Le Vendome)에서는 원조 홍합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9유로. ◆ DAY7 칙칙폭폭, 지중해를 끼고 달리다 ●기차를 타고 지중해를 따라 기차를 타고 지중해의 쪽빛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것만큼 시원한 것이 있을까. 맑게 갠 하늘, 검푸른 지중해의 먼 바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 니스에서 칸, 툴롱, 마르세유, 아를, 아비뇽을 거쳐 계속되는 철로변의 풍경은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굳이 어느 도시에 내리지 않아도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광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하다. 이렇게 기차 여행이 시작됐다. 호텔에 큰 짐을 맡긴 뒤 니스빌 역으로 갔다. 한국에서 끊어온 3일짜리 프랑스철도 자유 티켓으로 첫 목적지인 아를(Arles)로 향했다. 시간표는 각 역마다 비치돼 있다. 직접 가는 편도 있지만 대부분 마르세유(Marseille)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오전 9시 니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가는 길은 영화의 도시 칸 등을 지나가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마르세유엔 11시26분, 아를에는 오후 1시51분에 도착했다. 기차는 영화에서 보는 왜건형 칸막이방. 한 방에 6명이 마주보고 앉아서 간다. ●작지만 예쁜도시 아를과 아비뇽 론강(Le Rhone)을 끼고 있는 아를은 작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의 유적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아를 역에서 걸어서 라마르틴 광장을 거쳐 내려가면 카발르리몬, 원형투기장, 고대극장, 생트로핌 교회, 반고흐 카페, 반고흐 다리 등 볼거리가 많다.3세기 초엽 만든 생트로핌 교회는 로마네스크 미술의 견본으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장소다. 반 고흐가 요양을 했다는 아를 요양원에서는 이젤을 펴놓고 예쁜 정원을 그림에 담는 화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고흐 다리는 시내에서 직접 가는 버스가 없다. 바리올(Barriol)행 1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20분 정도를 걸어야 볼 수 있다. <ⓘ-14> 오후 6시 아를 역으로 돌아와 인근 도시 아비뇽(Avignon)으로 향했다. 기차로 17분.14세기 교황청이 이 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세계 교회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교황청 광장 주변 카페들이 예쁜데 로셰 데 돔 공원에서 바라본 론강의 경치가 압권이다. 공원에서는 ‘생베네제’ 다리가 보이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인 ‘아비뇽 다리위에서’라는 동요의 무대가 된 곳이다.12세기 지어졌으나 17세기 홍수로 소실돼 지금은 반쪽만 남아있다. <ⓘ-15> ◆ DAY8 섬섬옥수, If I were a bird ●하늘 빛을 담은 프리울섬 마르세유 항구에 있는 어시장은 어촌 마을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갓 잡아 올린 정어리와 도미 등 각종 생선을 판매하는 어부들과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 600년전 그리스인들이 세운 항구도시다. 마르세유에서는 한번쯤 여객선을 타고 인근섬 여행을 떠나도 좋다. 아침 일찍 항구의 ‘벨주부두’에 있는 마르세유 여객선 터미널(www.answeb.net/gacm)을 찾았다. 이 곳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섬’(Ile D´If)으로 가는 배가 떠난다. 왕복 10유로. 오전 9시부터 1시간 단위로 배가 출발하는데 만선이면 시간에 관계없이 출발한다. 이프섬은 배로 10여분 남짓 걸린다. 여객선의 종착지는 이프섬에서 10분쯤 더 떨어진 ‘프리울 섬’으로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은 사막을 연상케 한다. 섬에 내려 순회 코끼리 열차(왕복 3.5유로)에 올랐다. 차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30분쯤 걸리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황홀하게 만든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해수욕장이 있는데 쪽빛 물빛 그자체다. 가는길에 있는 해수욕장은 2∼3일쯤 푹 쉬다가고 싶게 만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전 11시30분 배를 타고 서둘러 섬을 나왔다. 기차를 놓쳐 바로 직후 있는 테제베를 예약했다. 일반 철도는 그냥 타도 되지만 테제베는 예약이 필요하며, 따로 수수로(1.5유로)를 내야한다. 그래도 프랑스 대표 철도인 테제베를 타본다는 기대감에 표를 끊었다. 그러나 니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50분. 일반열차가 2시간10분 걸리는 것에 비해 이 구간에서만은 시속 300㎞이상으로 달린다는 테제베가 오히려 일반 고속열차보다 느리다. 자리도 일반열차에 비해 불편하다. ⓘnformation center ⓘ-12 렌터카 반납시 우리나라와 달리 꼼꼼하게 체크하거나 묻는 일이 없다. 기름이 부족하거나 렌트 시간을 초과하면 미리 100유로 정도 임치해 놓은 돈에서 제하고 돌려준다. ⓘ-13 공항 등 프랑스의 공공장소에서는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 유아 등에 대한 우대가 특별하다. 줄을 서지 않고 우선적인 서비스를 받는다. ⓘ-14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분명한데 남프랑스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지만 건조해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온난하다. ⓘ-15 프랑스 철도 예약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여행 계획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철도 패스중 적합한 것을 골라야 한다. 패스를 이용하는 국가 수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유럽 전지역을 돌아다니려면 유레일 패스가 유리하지만 프랑스 등 특정 국가만을 여행하려면 프랑스 패스를, 프랑스와 인근 국가 3∼5개국을 이용하려면 유레일 셀렉트 패스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2국가만 여행하려면 프랑스-이탈리아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저렴하다. 프랑스 철도패스는 1등석 성인이 299달러이며,2명 이상 여행할 경우 세이버 티켓을 끊으면 15%정도 저렴하다. 나머지 패스의 경우 1개국을 추가할 때마다 7만∼10만원정도 요금이 올라간다. 특히 철도패스에는 센강 유람선, 박물관 할인 등 보너스 할인 혜택이 있으므로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다. 모든 패스로는 해당국가 테제베와 일반 철도 모두를 탈 수 있는데 테제베를 타려면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예약비로 1.5∼8유로 정도를 내야 한다. 일반 철도는 예약없이 기차역에 나가 오는 기차를 그냥 타면 되는데 3일권의 경우 한달동안 3일을 탑승 횟수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 DAY9 포도주·풍경, 프로방스의 유혹 ●프로방스 철도에 몸을 싣고 아침 일찍 ‘살레야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과일, 야채 판매상과 꽃시장,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서민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니스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중심부에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전문점 등이 즐비하다. 생필품은 물론 고급 브랜드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다양한 품목을 갖췄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프랑스 전통 치즈와 포도주, 과자 등 각종 먹을거리를 맛봐도 좋다. 낮 12시 호텔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코드다쥐르 지방의 웅대한 산악풍경을 볼 수 있는 프로방스 철도(www.trainprovence.com)에 올라보기로 했다. 철도역은 니스역에서 북쪽으로 약 400m,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하루 4차례 정도 기차가 운행한다.<ⓘ-16> 철로가 단선이라 교행이 어려운데다 철로가 오래돼 수리를 자주해 역에 도착하면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기차는 두칸짜리 아담한 기차지만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기차다. 기차역에서 프랑스철도 티켓을 보여주면 50% 할인해 준다. 디뉴까지는 150㎞로 3시간10분이 걸리는데 시간이 없어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앙트르보(Entrevaux)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17세기 요새마을 앙트로보 앙트로보까지는 크고 작은 13개의 기차역을 지나는데 1평 남짓한 간이역도 많다. 기차는 바르강 계곡을 따라 달리는데 깎아지른 듯 세워진 바위산과 계곡, 산허리에 매달린 자그마한 마을 등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차창밖으로 매력적인 마을이 즐비하다. 이날도 철로에 이상이 생겼다. 오래된 철로라서 수리중이라는 차장의 말에 따라 중간에 내려 2∼3개 역을 버스로 갈아타고 갔다. 바위산 단면들은 지층이 지리책에 나온 사진처럼 그대로 보아도 멋있다.2시간 걸려 도착한 앙트르보는 17세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바위산 정상에 있는 요새도시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다. 성을 휘감고 올라가는 길이 이채롭다. 그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성문이다. 강에는 마을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고성을 들어가는 길에 입장료를 따로 받는 사람이 없어 입장료 자판기에 돈을 넣고 3유로짜리 코인 티켓을 끊은 뒤 회전문에 넣으면 들어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그렇지만 건너보이는 마을 전경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쁘다. 정상에는 각종 방과 감시탑, 감옥 등 전형적인 성이다.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DAY10 마지막 시간은 마티스와 함께 ●니스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이제 막 적응이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후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오전에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마티스 미술관까지는 17번 버스(1.20유로)를 탔다. 가는 길에 검표원들이 버스를 가로 막고 표검사를 했다.<ⓘ-17> 마티스 미술관(입장료 4유로)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인근 시미에 지구에 있는 로마시대의 투기장과 원형극장, 목욕탕 등 유적들이 더 볼만하다. 이어 걸어서 20분정도 떨어진 샤갈미술관(입장료 4.5 유로)에는 구약성서 이야기를 묘사한 17장의 연작 유화 등 450점이 전시돼 있다. 오후 2시 공항으로 출발, 아쉬웠던 여행이 끝났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탔는데 편도 요금은 25유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프랑스. 일상에 찌들어 쫓기듯 살아온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nformation center ⓘ-16 기차는 니스에서 알프스 온천마을인 디뉴(Digne)까지 운행한다. 니스에서 오전 06:42,09:00,12:43,17:00에 출발하고, 디뉴에서는 07:00,10:33,13:58,17:25분에 출발한다. ⓘ-17 버스 티켓을 기사에게 구입하면 꼭 버스에 비치된 개찰기(콩포스테·Composter)에 표를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표에 시간이 찍히고 이후 표가 1시간 정도 유효한데 만일 이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검표원에게 걸리면 ‘무임승차’에 해당하는 벌금을 문다. 무임승차하다 걸리면 30배의 벌금을 물게 된다. ⓘ-18 관광지와 호텔 주변은 소매치기 등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구급차(19), 소방서(18), 주 프랑스대사관(01.47.53.01.01), 한국관광공사(01.45.38.71.23), 대한항공(01.42.97.30.80)으로 연락하면 된다.
  • ‘고구려유적 유산지정’ 안팎/한·중 고구려사 갈등 새국면

    고구려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역사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토록 권고했기 때문이다. 오는 여름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는 권고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쪽에서 보면 일단 다행스럽다.지난해 WHC 총회가 북한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등재 신청을 보류했음에도,지적사항에 대한 북한당국의 보완은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이라는 국가적 사업으로 지안(集安)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완벽하게 정비해 놓아 ICOMOS 조사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2002년 1월에 등재를 신청한 북한의 유적은 또다시 보류되고,1년 늦은 2003년 1월에 신청한 중국 것만 세계문화유산에 단독등재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동시 개별 등재’로 새로 얻은 것이 없는 반면 중국은 상당히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당초 중국은 북한이 199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하면서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할 움직임을 보이자,자국의 고구려 유적과 ‘공동 등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북한이 거절하자 단독 등재를 추진했고,이번 결정은 그 성과라고 할 수 있다.게다가 북한은 평양의 동명왕릉 및 진파리 고분군,황해남도의 안악고분 등 고분 63기만 등재를 신청했다.반면 중국은 국내성과 오녀산성,환도산성,광개토왕비,왕릉 13기,귀족 무덤 26기 등을 포괄하고 있다.중국이 신청한 유적의 범위가 훨씬 넓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 갈등과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문제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ICOMOS가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는 것과 고구려 유적을 남긴 주체를 중국 민족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로마제국의 유적 중 상당수는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산재해 있다.독일의 트리어 기념물과 영국의 하드리안 성벽,프랑스의 오랑주 및 아를르 유적,스페인의 루고 성벽과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 유적과 모로코의 볼루빌리스 유적,튀니지의 엘 젬의 원형극장 등이다.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지만 로마 전성기의 역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중국에도 이런 사례는 있다.중국령 티베트자치구의 수도인 라싸의 포탈라궁은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티베트가 현실적으로 중국의 영토 안에 있는 만큼 중국의 신청권이 인정된다.그럼에도 세계적으로 포탈라궁을 ‘티베트 문화’가 아닌 ‘중국 문화’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세계에 고구려가 한국사의 일부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가는 정부와 학계의 노력이 중요하다.그렇지만,가능성이 별로 없다고는 해도,오는 여름 중국의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WHC 총회에서,ICOMOS의 공동 등재 권고에도 불구하고 중국 것만 단독 등재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노력은 더 중요하다. 서동철기자 dc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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