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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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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독립운동가 유적지 탐방 안민석, ‘현장 체감형 역사교육 비전’ 선포

    교육 독립운동가 유적지 탐방 안민석, ‘현장 체감형 역사교육 비전’ 선포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한 만주 및 연해주 일대의 교육 독립운동가 유적지 탐방 여정을 마치고 ‘역사교육 대전환’을 공식 선포했다. 경기도교육청 역사 탐방단은 1일 차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을 시작으로 2일 차 ‘백산 안희제 선생’ 발해농장 유적지, 3일 차 ‘페치카 최재형 선생’ 유적지와 고려인 학교, 4일 차 ‘보재 이상설 선생’ 유허비와 신한촌 기념비 등을 찾아 국외 교육 독립운동가의 숨은 거점들을 답사했다. 탐방을 마무리 짓는 자리에서 안 교육감은 이번 여정의 주요 성과를 정리하고, 탐방에 참가한 교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수집한 자료와 소회를 바탕으로 향후 역사교육의 구체적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탐방을 통해 확보한 현장 독립운동 유적지의 기록과 영상, 현장 데이터는 향후 학교 역사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역사교육 아카이브 구축에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현지 고려인 학교 등과 구축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학생과 교원 대상 역사 탐방 및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안민석 교육감은 “하얼빈에서 연해주 신한촌까지 이어진 4박 5일간의 여정은 단순한 유적지 탐방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역사교육의 이정표를 세우는 과정”이라며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교육의 가치를 현장 중심의 역사교육에 반영해 아이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민족적 자부심을 가진 인재로 성장하도록 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의 대전환을 이뤄내겠다”라고 밝혔다.
  • “끼니 걱정하고 단칸방서 홀로 사망”…송혜교·서경덕 주목한 어느 독립운동가의 지독한 삶

    “끼니 걱정하고 단칸방서 홀로 사망”…송혜교·서경덕 주목한 어느 독립운동가의 지독한 삶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배우 송혜교가 제81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박자혜 지사의 일생을 다룬 다국어 영상을 새롭게 선보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서 교수는 15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신이 기획하고 송혜교가 후원한 4분 분량의 영상을 전 세계 누리꾼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어와 영어 내레이션을 함께 수록해 국내외 시청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영상은 박 지사의 숨은 희생을 상세히 담아냈다. 어린 시절 궁에 입궐해 조선의 마지막 궁녀로 살았던 박 지사는 1910년 궁을 나온 뒤 신식 교육을 받고 조산사 자격을 취득하며 주체적인 신여성으로 성장했다. 이후 1919년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로 재직하던 중 3·1운동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민족의 현실에 눈을 떴고, 간호사 독립운동 단체인 ‘간우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투쟁에 나섰다. 중국으로 망명한 박 지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과 결혼하며 독립운동가의 아내이자 동지로서 고난의 길을 함께 걸었으며, 고국에 돌아와서도 의열단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의거를 뒤에서 도우며 독립을 향한 의지를 이어갔다. 그러나 현실은 혹독했다. 일제의 집요한 감시 탓에 운영하던 산파원 문을 닫아야 했고, 당장 한 끼를 걱정해야 할 만큼 극심한 생활고가 이어졌다. 남편의 옥중 순국과 자식의 죽음이라는 잇따른 비극 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품었던 박 지사는 결국 단칸방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서 교수는 그동안 정정화, 윤희순, 김마리아, 박차정, 김향화, 남자현 등 대중에게 생소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국어 영상으로 알리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다국어 영상을 시리즈로 제작해 국내외에 꾸준히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 교수와 송혜교는 지난 15년 동안 세계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 40여곳에 한국어 안내서와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를 새긴 부조 작품 등을 기증하는 활동도 함께 펼쳐왔다.
  • “총 든 여자 안중근”…송혜교·서경덕, 삼일절 맞아 독립운동가 ‘남자현’ 조명

    “총 든 여자 안중근”…송혜교·서경덕, 삼일절 맞아 독립운동가 ‘남자현’ 조명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배우 송혜교가 제107주년 삼일절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알리기에 나섰다. 서 교수는 1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시대의 틀을 깬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영상을 다국어로 제작해 국내외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는 “4분 분량의 영상은 제가 기획하고 송혜교가 후원했다”며 “한국어 및 영어 내레이션을 각각 입혀 전파 중”이라고 전했다. ‘총을 든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한국 독립운동사를 빛낸 ‘여자 안중근’, ‘독립군의 어머니’이자 일제가 ‘전율할 노파’라고 부를 정도로 나이와 성별의 한계를 넘어 활약한 독립투사”라고 남자현을 소개했다. 남자현은 서울에서 참여한 3·1운동을 계기로 당시 다소 늦은 나이인 47세에 만주로 망명해 무장 독립운동 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한다. 그는 만주 일대에 교회와 여자교육회를 설립하며 여성 계몽에 열중하고 독립군 부상병 간호에 헌신했다. 이후 독립운동에서 항일 무장투쟁가로 변모했다. 독립단체의 화합을 위해 혈서를 쓰고, 일제가 만주에 괴뢰국을 세우자 자기 무명지(無名指)를 잘라 쓴 ‘조선독립원’ 혈서를 국제연맹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61세에 사이토 조선 총독과 무토 전권대사를 직접 처단하기 위해 비밀작전을 수행하던 중 밀정의 밀고로 체포됐다. 서 교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고 국내외에 널리 소개하고자 정정화, 윤희순, 김마리아, 박차정, 김향화에 이어 6번째 영상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송혜교와 함께 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다국어 영상을 시리즈로 제작해 꾸준히 알려 나갈 계획”이라며 “유튜브 등 각종 SNS를 통해 전파 중이며 전 세계 곳곳의 한인 커뮤니티에도 영상을 공유해 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와 송혜교는 지난 15년간 역사적인 기념일 등에 맞춰 해외에 남아 있는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 37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 부조 작품 등을 기증해 왔다.
  • 경기도의회 ‘독도사랑·국토사랑회’,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서 헌법 정신을 되새겨

    경기도의회 ‘독도사랑·국토사랑회’,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서 헌법 정신을 되새겨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이 시작된 곳입니다.”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 중인 경기도의회 ‘독도사랑ㆍ국토사랑회(회장 김용성 의원)’와 ‘역사바로세우기 경기연대(회장 김성수 의원)’ 탐방단은 11일(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유적지를 찾아 나라를 잃은 민중의 열망이 모여 위대한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그날의 감격을 되새겼다. 청사 1층 회의실에 들어선 김동영 의원(더불어민주당, 남양주4)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1919년 3.1운동의 거대한 함성이 국경을 넘어 이곳 상하이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국내에서 터져 나온 독립의 열망을 더 이상 흩어진 투쟁으로만 둘 수 없었기에, 김구, 안창호, 이시영 선생님 같은 분들이 민중의 명령을 받들어 1919년 4월 11일 바로 이곳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전국에서 ‘만세’를 외쳤던 수백만 민중의 피와 눈물이 이곳에 모여 새로운 희망의 정부를 세운 것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임시정부의 생활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극심한 가난과 내부 갈등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빛나는 희망을 만들어냈다. 이채명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양6)은 2층 김구 주석의 집무실을 둘러보며 “이 작고 차가운 방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들이 계획되고 진행되었습니다. 청년 윤봉길이 거사를 앞두고 자신의 새 시계와 김구 주석의 낡은 시계를 맞바꿨습니다. “제 시계는 이제 한 시간밖에 쓸모가 없습니다.”라며 조국의 미래를 부탁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곳은 단순히 낡은 건물이 아닙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영원히 바친 청년의 결의와, 그 청년을 떠나보내야 했던 지도자의 비통한 눈물이 이 방의 공기 속에 그대로 서려 있는 듯합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상하이에서 시작된 임시정부는 항저우(杭州), 충칭(重慶)으로 이어지는 27년간의 고난의 여정 속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광복군을 창설해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외교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독립 의지를 알렸다. 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 민족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자 독립운동의 총지휘부였다. 김태용(역사바로세우기 경기연대 사무국장)은 청사를 나서며 “최근 ‘1948년 건국절’이라는, 대한민국의 뿌리를 흔드는 주장이 있습니다. 명백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바로 이곳 상하이 임시정부와 우리 헌법이 그 증거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김태용 사무국장은 “현행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이미 끝난 논쟁입니다. 당시 해공 신익희 선생 같은 분들이 ‘대한민국은 1948년에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1919년 선열들이 피로 세운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여 헌법에 새겨 넣었습니다. 만약 1948년을 건국절로 삼는다면, 지난 27년간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이어진 임시정부의 모든 항일 투쟁은 한순간에 나라 없는 이들의 활동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는 독립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야말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라고 1948년 건국절 주장을 강력히 비판했다.
  • 희양산 정상 벼랑 끝에서… 불꽃같은 그의 삶을 되짚다

    희양산 정상 벼랑 끝에서… 불꽃같은 그의 삶을 되짚다

    일제 멸망 꾀한 아나키스트 가네코양녀로 고초 겪다 3·1운동 뒤 급변평생 같았던 4년 독립투쟁 끝 옥사박열의 흔적 따라 문경 자락에 영면찾는 이 적은 백두대간 내륙의 명산 불교의 성지이자 희양산문의 장소오르기 힘든 만큼 빼어난 풍경 자랑이름값에 견줘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산이 있다. ‘백두대간의 화강암 돔’ 희양산이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이 경계를 이룬 산. 명불허전이라 할 희양산의 풍경도 빼어났지만 그보다 마음을 빼앗은 건 자신을 사랑하고, 또 그만큼이나 조선의 남자를 사랑했던 일제강점기의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 이야기였다. 힘들게 희양산에 오를 때에도 그의 이야기는 머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문경의 박열 의사 생가 옆에 홀로 잠든 그의 묘를 보고, 그의 일생을 정리한 글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희양산에 앞서 가네코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건 이 때문이다. ‘불량스러운 조선의 아나키스트’ 독립지사 박열(1902~1974)은 지난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통해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한데 그의 첫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1904~1926·대부분의 검색 사이트가 1903년 출생이라 적고 있지만 여기선 한국의 공훈전자사료관과 일본 국회도서관 기록에 따른다)는 당최 생경했다. 영화에선 꽤 비중 있게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열(이제훈)의 사상적 동지, 혹은 죽음도 가르지 못한 연인 정도로 그려져 그의 진면목을 알기엔 역부족이다. 영화에서 말하지 않은 가네코(최희서)의 어린 시절, 교도소에서의 극단적 선택(타살 의혹도 여전하다) 이후 처리 과정, 사형 선고 이후 박열의 행보 등까지 살펴야 비로소 그들의 삶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그 마지막 퍼즐이 있는 곳이 문경의 박열의사기념관이다. 기념관에 들면 왼쪽으로 묘지가 나온다. 묘비에 “이곳은 일본인으로서 일제의 멸망과 일왕 폭살의 필요성을 주장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이명 朴文子)의 묘”라고 적혀 있다. ‘박문자’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의 관습에 따른 이름이다. 묘역은 봉분 크기에 견줘 전체 면적이 어색할 정도로 넓다. 물론 북한에 잠들어 있는 박열의 유해가 봉환되는 상황을 상정해 넓게 조성한 것이다. 먼저 알아야 할 건 가네코는 조선 독립운동가의 일본인 아내이기 이전에 이미 군주제와 군국주의, 남성 우월주의 등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에 맞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혁명가였다는 것이다. 영화로 잠시 돌아가자. 교도소 간수가 가네코에게 말한다. “조선에서의 7년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가네코는 이렇게 응수한다. “그래서 깨어 있는 거다.” 조선에서의 경험이 그의 삶에서 무척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이 대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가네코는 옥중 자서전을 통해서도 “3·1 독립운동을 목격했을 때 나에게도 권력에 대한 반역 정신이 일기 시작했으며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감격이 가슴에 용솟음쳤다”고 했다. “그(박열)와 동지로서 투쟁했던 4년만이 진정한 나의 삶이었다”고도 했다. ●무적자에서 독립투사로 다시 태어나 가네코가 영화에서 독백처럼 읊은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면 이렇다. 그의 친할머니는 그를 “무적자”(無籍者)라고 불렀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자, 호적에 오르지 못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가네코가 태어난 곳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다. 하지만 처제와 살림을 차릴 정도로 난봉꾼이었던 아버지와, 재혼을 거듭하던 부창부수의 어머니는 그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무적자’인 탓에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가네코는 친척 집에 얹혀살다 1912년 충북 청주 부강면(현 세종시)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돼 조선으로 건너간다. 기대와 달리 곧장 식모로 전락한 가네코는 극단적 선택까지 결심할 정도로 할머니와 고모에게 가혹한 학대를 받는다. 그는 부강역 앞 철길로 뛰어들려다 멈추는 일을 거의 매일 반복한다. 그가 이를 멈춘 건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목격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가네코는 도쿄에서 박열을 만나면서 급진적인 아나키즘에 심취하게 된다. ●박열에 대한 연모 갖게 된 시의 첫 문장 “나는 개××로소이다.” 박열이란 이름을 세상에 깊이 각인시킨 문장이다. 가네코에게서 박열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싹트게 된 것도 ‘나는 개××로소이다’라는 시의 이 첫 문장이었다. 둘은 1922년 동지로서의 동거 서약을 맺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일왕 암살을 계획했다는 대역죄로 체포돼 1926년 사형선고를 받고, 이 과정에서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도움으로 옥중 결혼식을 올리고, 당시 일본 내각 총사퇴를 불러온 ‘괴사진’을 촬영하는 등의 내용은 널리 알려진 바다.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둘의 행보는 갈린다. 무기징역으로 감형한다는 일왕의 ‘은사장’을 발기발기 찢은 가네코는 도치기현의 우쓰노미야 여자교도소로 이감된 뒤 그해 옥사했다. 그의 죽음이 본인 의지였는지, 타살이었는지에 관해선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박열은 감옥에서 22년을 복역한 뒤 재일본조선거류민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다 6·25전쟁 때 납북돼 평양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죽어서 다시 돌아왔지만 빈자리 남아 교도소 인근 공동묘지에 묻힌 가네코의 유골은 우여곡절 끝에 그해 조선으로 돌아왔고, 11월 5일 박열 집안의 선산인 문경읍 팔령리에 묻혔다. 그의 소원대로 “박열의 고향마을”에 묻힌 건 2003년 박열의사기념관 조성 당시다. 다만 “박열과 나란히 묻어 달라”는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가네코는 꽃보다 상록수를 좋아했다. 그는 작성 연월일 불명의 옥중편지에서 자신의 묘를 찾는 이들에게 “새싹을 피워 올리고 있는 상록수 한 가지를” 올려 달라고 했다. 피었다가 시드는 꽃보다 “언제나 푸르게 하늘을 향해 활짝 피어나는 상록수의 새싹을 나는 끝없이 사랑”해서다. 죽음의 원인은 불명이지만 그가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사족 하나 덧붙이자. 일본인으로 한국 독립유공자에 헌정된 인물이 둘이다. 한 명은 가네코, 또 한 명은 박열 부부를 변호한 후세다. 가네코는 2018년 애국장, 후세는 2004년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그중 가네코에 관한 일본 내 재평가 움직임은 1972년 그의 일대기를 그린 ‘여백의 봄’ 출간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1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개막한 제30회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도 그의 옥중 자서전과 이름이 같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다. 박열과 교도소를 달리한 이후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 그린 영화로 올 초에 개봉했다. 영화를 통해 100년 전 국가권력에 항거한 여성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길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 ‘박열’은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이제 희양산으로 간다. 희양산은 중부 내륙의 명산이면서도 찾는 이들이 적다. 산객들이 방문하기에 무척 불편해서다. 들머리는 괴산과 문경 두 곳이다. 한데 문경 쪽은 사실상 막혔다. 산 아래 봉암사가 조계종에서 지정한 특별수도원이라 연중 산문을 걸어 잠근다.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절집 문과 등산로를 연다. 조계종이 워낙 강력하게 보호하는 곳이라 그날 외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 괴산 쪽에선 연풍면 은티마을이 들머리다. 일반인이 희양산에 오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곳이다. 한데 여기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마을 아래 주차장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거리가 1㎞를 훌쩍 넘긴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30분 가까이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이를 알고 있는 등산객들은 어떻게든 산행 입구까지 차를 가져가려고 하지만, 이를 막는 주민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한쪽은 봉쇄, 한쪽은 눈칫밥이니 아예 희양산을 패스하는 이도 없지 않다. 명산이면서도 찾는 이가 드문 이유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이 남녘을 향해 치닫다가 중부 내륙에서 우지끈 솟아오른 돌산이다. 괴산 연풍면과 문경 가은읍이 이 산에서 경계를 이룬다. 높이는 999.4m.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화강암 암벽이다. 맑은 날 암벽이 볕을 받으면 환하게 빛을 낸다. 한자 이름을 ‘햇볕 희’(曦) 자에 ‘볕 양’(陽) 자로 쓴 이유다. 불교계에선 희양산을 성지처럼 여긴다. 통일신라시대의 선종을 대표하는 아홉 곳의 불교 성지, 이른바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문이 문을 연 곳이라서다. 은티마을 초입에 금줄로 동여맨 돌탑이 있다. 남근을 상징하는 돌무더기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풍수지리상 은티마을은 여근곡 형상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이 마을에 은거한 백제군을 신통력으로 꿰뚫어 보고 병력을 투입해 전멸시킨 뒤 ‘남근입어여근즉필사의’(男根入於女根則必死矣)라는 표현으로 마을 지세를 설명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담긴 내용이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대놓고 남녀상열지사에 비유한 것인데, 마을 입구의 남근석은 그러니까 풍수지리상 비보(도와서 보충함)의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은티마을에서 희양산 정상까지는 편도 4.5㎞다. 마을 주차장에서 걷는 구간을 포함하면 거리는 좀더 늘어난다. 각종 온라인 게시물은 소요 시간을 편도 3시간~3시간 30분 정도라 적고 있다. 이는 전문 산꾼 기준이다. 일반 등산객이라면 최소 편도 4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하산길에서 소요 시간이 준다고 해도 최소 왕복 6시간,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7시간 이상 걸린다. 물론 ‘등린이’(등산 초보)를 기준으로 삼으면 소요 시간은 더 늘어난다. ●식수는커녕 화장실도 없는 오지 등산 희양산 정상까지는 지름티재를 거쳐 직벽 구간으로 오르는 코스와 희양산 성터를 거쳐 ‘상대적’ 완경사 구간으로 오르는 코스로 나뉜다. 전자가 거리는 짧되 매우 거칠고 힘들다면, 후자는 다소 길어도 덜 거칠다. 등산로에 계곡물은 거의 없다. 산짐승들이 마실 물 정도만 드문드문 고여 있을 뿐이다. 당연히 식수는 단단히 챙겨 가야 한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없다. 그저 정상부 일대에 최소한의 생명줄인 로프가 매어져 있는 게 전부다. 지름티재까지 3㎞ 구간은 된비알이 별로 없다. 이후 1.5㎞의 직벽 구간이 문제다. 특히 정상의 암반부에선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써야 간신히 오를 수 있다. 내려올 땐 더 위험하다. ‘등린이’라면 가급적 성터 코스로 오르길 권한다. ●봉암사 너머 굽이굽이 산세도 일품 정상에서 맞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이다. 특히 문경 쪽이 빼어나다. 봉암사와 그 너머 경북 일대의 산들, 조령천과 합류해 남녘으로 굽이쳐 흐르는 영강 등이 절경을 펼쳐내고 있다. 희양산이 깃든 괴산 연풍과 문경 가은 쪽에 가볼 만한 여행지가 많다. 괴산 연풍면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후기 순교자들의 유적지다. 너른 잔디밭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어우러져 쉬어 가기 딱 좋다. 문경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그가 태어나자 금빛 안개가 피어올랐다는 금하굴 등의 견훤유적지, 그의 아버지 아자개를 모티브로 삼은 아자개 장터 벽화 거리 등 볼거리가 있다. 등록문화재인 가은역, 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 등으로 구성된 문경 에코월드도 가은읍 내에 있다. 산행의 피로는 온천으로 푼다. 문경새재 아래 온천단지가 조성돼 있다. ‘왕의 온천’이라 불리는 충북 충주 수안보도 희양산에서 멀지 않다.
  • 역사 흔적 담긴 33곳 찾아 광복 80돌 의미 되새기자

    역사 흔적 담긴 33곳 찾아 광복 80돌 의미 되새기자

    한국관광공사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오는 31일까지 국내 여행 정보 플랫폼 ‘대한민국 구석구석’(visitkorea.or.kr)에서 광복절 특집전을 선보인다. 독립운동가의 고귀한 희생과 업적을 기릴 수 있는 역사 유적지부터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명소 등 33개의 뜻깊은 여행지를 소개한다. 광복의 의미를 마음에 새길 수 있는 특별 전시 정보도 모았다. 항일운동의 흔적을 따라가는 도보여행 코스도 선보였다. ▲3·1운동 전개 과정을 따라가는 서울 ▲일제 수탈의 아픔이 서린 곳, 전북 군산 ▲근현대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는 부산 코스 등이다. 온라인 이벤트도 열고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소개된 역사 여행지 50여곳 안에 숨겨진 태극기를 찾아서 응모하면 된다. 이벤트는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 “각종 SNS를 통해 전파 중”…송혜교가 후원한 ‘이 여성’ 정체는?

    “각종 SNS를 통해 전파 중”…송혜교가 후원한 ‘이 여성’ 정체는?

    3·1절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배우 송혜교와 의기투합해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을 알리는 영상을 제작해 각종 소셜미디어(SNS)에 전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서 교수는 “한국어 및 영어 내레이션을 입힌 영상 ‘독립군 여전사, 박차정’을 유튜브 등 각종 SNS를 통해 국내외 누리꾼에게 전파 중”이라고 밝혔다. 4분 30초 분량의 이 영상은 서 교수가 기획을 맡고 송혜교가 후원했다. 영상은 의열단장 김원봉의 아내로 항일 여성운동 단체 근우회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다 일본군과의 교전 중 부상, 그 후유증으로 숨진 박차정의 생애를 상세히 살펴본다. 중국에서 난징조선부녀회 창립을 주도하고,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으로 독립운동 인재를 양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서 교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고 전 세계에 널리 소개하고자 정정화, 윤희순, 김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영상을 올리게 됐다”며 “앞으로 꾸준히 시리즈로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서 교수와 송혜교는 지난 2012년부터 역사적인 기념일에 맞춰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 37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부조 작품 등을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두 사람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보스턴 미술관, 토론토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ROM) 등 세계 유명 미술관 및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서를 기증했다. 앞서 송혜교는 지난 2016년 미쓰비시사로부터 중국 현지에서 공개되는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송혜교는 “한국인을 2차대전의 강제 노역에 동원해 소송 중인 기업의 광고 모델은 할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강제노역 피해 할머니는 송혜교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혜교의 소속사 UAA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모델로 활동할 수는 없다”며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 교수는 송혜교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미쓰비시가 전범 기업임을 확인했다며 “그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사랑할 줄 알고, 지킬 줄 아는 멋진 배우”라고 극찬했다.
  • “전범기업 모델 거절한 송혜교, 가장 큰 장점은…” 서경덕, 일화 전하며 ‘극찬’

    “전범기업 모델 거절한 송혜교, 가장 큰 장점은…” 서경덕, 일화 전하며 ‘극찬’

    서경덕 교수가 배우 송혜교와의 오랜 인연을 떠올리며 전범기업의 모델 제안을 거절한 송혜교의 장점으로 ‘진정성’과 ‘꾸준함’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9일 서 교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많은 우리 팔로워님이 어젯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송)혜교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다고 보내줬다”며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올렸다. 서 교수는 “5년 전에 출연해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강제 동원이 있었던 옥매광산을 큰 자기님과 작은 자기님께 소개해 줬던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 하다”며 “지난 14년간 혜교 씨와 함께 의미 있는 일들을 꾸준히 진행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그는 송혜교와 함께 뉴욕 현대미술관(MoMA),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보스턴 미술관, 토론토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ROM) 등 세계 유명 미술관 및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서를 기증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 부조 작품 등을 37곳에 기증해 왔다. 서 교수는 송혜교의 장점으로 ‘진정성’과 ‘꾸준함’을 꼽았다. 이어 “오래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중국 광고 모델 제안을 받았을 때, 전범 기업이라는 이유로 모델을 거절한 사건은 아주 유명한 일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교수님과 함께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칭찬했다. 이어 “이러한 진정성이 지금까지 14년간 꾸준히 함께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며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또 의미 있는 일들을 둘이 준비 중이니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송혜교는 지난 2016년 미쓰비시사로부터 중국 현지에서 공개되는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송혜교는 “한국인을 2차대전의 강제 노역에 동원해 소송 중인 기업의 광고 모델은 할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강제노역 피해 할머니는 송혜교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혜교의 소속사 UAA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모델로 활동할 수는 없다”며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 교수는 송혜교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미쓰비시가 전범 기업임을 확인했다며 “그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사랑할 줄 알고, 지킬 줄 아는 멋진 배우”라고 극찬했다.
  • 日 전직 여배우 “일본인 패주고 싶다”…‘이곳’ 찾은 반응, 왜?

    日 전직 여배우 “일본인 패주고 싶다”…‘이곳’ 찾은 반응, 왜?

    일본 성인물(AV) 배우 출신 유튜버가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내놓은 반응이 화제다. 우에하라 아이(32)는 최근 자신의 한국 유튜브 채널 ‘찬양하라 우에하라’에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첫 영상을 올렸다. 우에하라는 2016년까지 AV 배우로 활동했고 현재는 유튜버이자 뷰티 살롱 대표로 지내고 있다. 우에하라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됐던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서대문형무소 사형장과 감옥 등을 둘러봤다. 견학을 마친 그는 “잔혹해서 마음이 아프다. 일본인을 한 대 패주고 싶다”면서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한국의 지금 모습이 있기에 굉장히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의 안 좋은 이미지가 아직 한국인들에게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시대니까 사이가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는 “우에하라 아이는 최근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 역시 진짜 역사를 알려면 한국의 많은 유적지나 박물관에 가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선택한 곳이 이곳 서대문 형무소”라는 설명이 붙었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첫 영상이 의미 있다”, “과거 공부하려 노력해 줘서 고맙다”, “이런 분들이 많아져서 진정한 한국 일본의 화해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등 댓글을 달았다. 우에하라는 AV계를 떠난 후 크리에이터로 변신해 불닭볶음면 먹방이나 K팝 댄스 챌린지 영상 등을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8일에는 한국 유튜브 채널 ‘찬양하라 우에하라’를 개설하고 한국에서의 다양한 체험을 소재로 영상을 올리고 있다. 서대문형무소 외에도 한강 공원 피크닉, 한국 지하철 체험, 한국 PC방 방문 등의 영상도 올라왔다.
  • ‘꾸준한 선행’ 송혜교, 파리에 韓독립운동 안내서 기증

    ‘꾸준한 선행’ 송혜교, 파리에 韓독립운동 안내서 기증

    배우 송혜교가 프랑스 파리에 한국 독립운동 안내서 1만부를 기증했다. 17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에 따르면 송혜교는 주프랑스한국교육원과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 한국·프랑스어로 제작된 독립운동 안내서 1만부를 기증했다. 안내서는 한국의 역사 사이트에서도 내려받을 수 있으며 독립운동가 서영해, 고려통신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구지, 파리 한국 친우회 창립지 등을 소개했다. 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다가오는 파리 올림픽을 맞아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파리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들에게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를 널리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이 해외에 방치돼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알리고 보존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송혜교는 지난 2011년부터 13년간 서 교수와 함께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그는 해외에 남은 독립운동 유적지 36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 부조작품 등을 기증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성산일출봉· 천제연도 공짜… 국가유산청 17일 출범 기념 국가유산 76곳 무료개방

    성산일출봉· 천제연도 공짜… 국가유산청 17일 출범 기념 국가유산 76곳 무료개방

    ‘국가유산청’ 출범을 기념해 제주 성산일출봉, 선흘리 거문오름 등 전국의 주요 국가유산 76곳이 무료로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오는 17일 ‘국가유산청’ 출범을 기념해 국가유산의 가치를 국민과 함께 나누기 위해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4대궁, 종묘, 조선왕릉과 제주 성산일출봉 등 전국의 국가유산 54개소를 포함해 총 76곳의 유료 관람 국가유산을 무료로 개방한다고 15일 밝혔다. 제주 지역에서는 성산일출봉 천연보호구역, 선흘리 거문오름, 평대리 비자나무 숲, 천지연 담팔수 자생지, 천제연 난대림, 서귀포 정방폭포, 제주목 관아,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산방산 암벽식물지대가 해당 기간 무료로 개방된다.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 역시 휴무일 없이 전부 무료개방(단 창덕궁 후원 및 유료행사는 제외)한다. 이외에도 서울의 암사동 유적과 서대문형무소, 수원 화성행궁과 남한산성 행궁, 강릉 오죽헌, 태백 용연굴과 영월 고씨굴, 단양 온달동굴, 공주 무령왕릉과 공산성, 아산 외암마을, 남원 광한루, 전주 경기전, 순천 낙안읍성, 경주 대릉원 일원과 김유신묘, 동궁과 월지, 안동 하회마을, 영주 소수서원 등 지자체가 관할하는 54개소의 전국 유료입장 국가유산들도 같은 기간 무료입장으로 개방된다. 4대궁·종묘,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국가유산청 출범을 기념해 우리 국가유산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무료공연과 행사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특히 경복궁에서는 국왕, 왕비, 왕세자, 세자빈이 산선시위와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을 산책하는 모습을 재현한 ‘왕가의 산책’(17~19일), 창덕궁 선정전 뒤뜰에서는 생소병주와 처용무, 춘앵전 등 조선시대 궁중의 악·가·무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고궁음악회-풍류에 정재를 더하다’(17~18일), ▲ 창경궁에서는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야간 미디어아트 공연 ‘창경궁 물빛연화’(17~19일)가 춘당지 권역에서 펼쳐진다. 덕수궁에서는 오는 31일까지 독립운동가의 유묵 등 23점 내외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소장유물 특별전’이 열리고 있으며 17일부터 6월말까지 종묘에서는 ‘망묘루 특별개방 행사’가 진행된다.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도심 가까운 곳에서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조선왕릉 숲길’ 9곳도 한시 개방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유산청 출범을 맞아 준비한 전국 국가유산들의 무료개방과 연계행사를 통해 국민들이 궁궐과 능묘, 아름다운 자연유산, 그리고 역사를 담은 유적지까지 각지의 다양한 국가유산 현장을 찾아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며 “ ‘문화재’가 ‘국가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되는 것에서 나아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모두의 소중한 자산으로 함께 나누고, 지키며, 가치를 더하는 국가유산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된 이래로 60여 년 간 유지해 온 문화재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된 정책환경과 유네스코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국가유산 체계를 정립하여 국가유산을 통한 새로운 미래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오는 17일 ‘국가유산청’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출범한다.
  • 송혜교+서경덕 교수 콤비의 특별한 3·1절…女 최초 의병장 윤희순 알린다

    송혜교+서경덕 교수 콤비의 특별한 3·1절…女 최초 의병장 윤희순 알린다

    3·1절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배우 송혜교가 함께 여성 최초의 의병장 ‘윤희순’ 알리기에 나섰다. 서경덕 교수는 1일 “삼일절을 맞아 배우 송혜교 씨와 의기투합해 여성 최초의 의병장 ‘윤희순’ 영상을 다국어로 제작해 국내외에 공개했다”며 “이번 영상 역시 ‘서경덕 기획, 송혜교 후원’ 콤비로 진행했으며, 한국어 및 영어 내레이션을 각각 입혀 제작해 국내외 누리꾼에게 널리 전파중”이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했다. 영상은 여성 최초 의병장인 윤희순의 삶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으로 시작한 항거는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하고, 향후 서간도로 망명한 후 학교를 설립하는 등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의 항일운동을 재조명했다.서 교수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국내외에 널리 소개하고자 지난해 정정화 영상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윤희순 영상을 제작했다”면서 “향후 삼일절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에 관한 다국어 영상을 ‘시리즈’로 제작해 국내외로 꾸준히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교수와 송혜교는 2007년부터 13년간 대한민국 기념일에 맞춰 해외에 남아있는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 부조작품 등을 35곳에 기증해왔다.
  • 송혜교-서경덕, 삼일절 맞아 첫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 소개

    송혜교-서경덕, 삼일절 맞아 첫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 소개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윤희순 ‘안사람 의병가’ 중에서) 삼일절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배우 송혜교가 우리나라 첫 여성 의병장 윤희순(1860~1935) 의사를 소개하는 다국어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 기획자인 서경덕 교수는 1일 소셜미디어(SNS) “여성 최초 의병장 ‘윤희순’을 알리는 영상은 송혜교가 후원했다”면서 “한국어와 영어 해설을 각각 입혀 제작해 국내외 누리꾼에게 널리 전파 중이며 영상을 다국어로 제작해 국내외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영상은 우리나라 독립 운동 정신의 모태가 ‘의병’이라는 설명과 함께 여성 최초 의병장인 윤 의사의 삶을 상세히 소개한다. 윤 의사는 일본에 항거하기 위해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직접 작성했다. 1907년에는 시아버지가 의병을 일으키자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해 독립 정신을 일깨운 뒤 1911년에는 서간도로 망명해 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맡는 등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항일운동에 매진했다. 또 남편과 맏아들이 일제의 고문으로 숨지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1935년 75살 나이로 중국에서 순국했다. 윤 의사는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윤 의사는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99주년 3·1절 기념사에서 호명한 ‘건국의 어머니’ 6명 가운데 1명이다.영상은 독립 유공 서훈자 가운데 여성 독립운동가는 극히 일부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역사 속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서 교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지난해 독립운동가 정정화에 이어 올해는 윤 의사의 영상을 제작했다”며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다국어 영상을 시리즈로 제작해 꾸준히 알려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 교수와 송혜교는 지난해 삼일절에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살림을 맡았던 독립운동가 수당 정정화(1900~1991)를 알리는 영상을 한국어와 영어 해설을 넣어 제작했다. 두사람은 지난 13년간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기념일에 맞춰 해외에 남아있는 독립운동 유적지 35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 부조 작품 등을 꾸준히 기증해 왔다.
  • ‘독립운동가의 도시’ 성북구, 각양각색 3·1절 기념 눈길

    ‘독립운동가의 도시’ 성북구, 각양각색 3·1절 기념 눈길

    만해 한용운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의 도시’ 서울 성북구가 다채로운 행사로 제105주년 3·1절을 기념하고 있다. 성북구 대표 역사 유적지인 심우장에선 ‘심우장에 색채를’ 행사를 연다. 심우장은 민족 대표 33인이자 시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구청 블로그에서 흑백 심우장 그림을 내려받아 나만의 색으로 칠하며 105년 전 3·1운동의 주역을 기릴 수 있다. 색칠한 심우장 그림 사진과 성북구청 인스타그램의 친구 추가하기를 한 사진을 등록하면 35명에게 경품도 제공한다. 다음달 1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다.성북구 관계자는 “성북구청 직장어린이집 원생을 대상으로 심우장에 색채를을 사전 진행한 결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호평이 나왔다”고 말했다. 구를 상징하는 참새 캐릭터를 활용한 ‘대한독립만세 짹짹이’ 이모티콘에 대한 호응도 높다. 성북구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읬다. 의례적인 3·1절 기념에서 벗어나 친근함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취지다. 시 ‘청포도’가 탄생한 성북동 종암동의 ‘문화공간이육사’에서도 특별한 체험행사 ‘비밀결사’를 준비했다. 다음 달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독립선언서 필사 체험, 접선 암호 퀴즈, 기념사진 체험행사를 펼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방문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공식 유튜브 ‘성북TV’를 통해 3·1절 특집 영상을 통해 성북천 등 3·1 만세운동의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성북마을아카이브’ 홈페이지도 3·1절과 독립운동과 관련한 성북구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도시 성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성북구민이 많다”라며 “제105주년 3·1절과 한용운 선생 서거 80주년을 맞아 성북구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미래세대와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 휘도는 용의 기세…휘감는 꿈의 기운

    휘도는 용의 기세…휘감는 꿈의 기운

    충남 홍성 용봉산(381m). 이름 한번 거창하다. 야트막한 산인데도 ‘용’(龍)과 ‘봉’(鳳) 등 전설적인 동물들을 이름으로 삼았다. 안내판은 이름의 유래를 이렇게 적고 있다. “산세가 운무 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길어 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봉산이라 부른다.” 새해는 푸른 용의 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면서 용의 기운까지 받을 수 있는 산을 찾고 있다면 용봉산이 제격이다. 봉우리마다 기암을 이고 있어 ‘작은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용의 형상과 봉황 머리를 닮았다’ 용봉산은 말 그대로 가성비가 좋은 산이다. 짧고 굵다. 가파르지만 위험하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산은 작은데 등산 코스는 여럿이다. 용봉초등학교를 출발해 투석봉과 정상, 노적봉, 악귀봉 등을 찍는 종주 산행은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여행 삼아 용봉산을 찾은 이들에겐 다소 긴 코스일 수 있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출발해 정상만 찍고 오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소요 시간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한데 너무 야박하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용봉산의 정수를 돌아보려면 노적봉과 악귀봉까지는 다녀와야 한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3시간 남짓 걸리는 코스다. 용봉산을 찾는 산객들 대부분이 이 코스로 오른다. 코스가 그리 길지 않아 출근 전에 운동 삼아 오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용봉산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 숙박객은 물론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 등 각종 시설이 잘 갖춰졌다. 하늘엔 아직 별이 총총이다. 부지런히 오르면 용봉산 정상에서 해가 돋는 광경과 마주할 수 있다. 물론 사위가 캄캄할 때 단독 산행에 나서는 것이 마뜩잖은 이도 있을 터다. 한데 용봉산엔 새벽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 혼자 산에 오르는 걸 겁낼 필요 없다. 두런거리며 앞서가는 이들을 자박자박 따르다 보면 금세 정상이다. 용봉산은 조금만 올라도 하늘이 트인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내포신도시가 펼쳐져 있다.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신도시다. 도시의 가로등과 아파트 불빛 등이 어우러져 제법 볼만한 풍경을 펼쳐낸다. 다가오는 ‘푸른 용의 해’ 마중할까노적봉~악귀봉 기암괴석 줄줄이바위 틈엔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 ●새벽 산행 자박자박 걷다 보니 정상 용봉산 정상까지는 줄곧 오르막이다. 평소보다 더 자주, 더 길게 쉬며 오른다. 땀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겨울 산행에선 가급적 땀을 흘리지 않는 게 좋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도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용봉산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쉬엄쉬엄 걸어도 그렇다. 정상에서 산객을 맞는 건 이른바 ‘길냥이’들이다. 랜턴을 비추면 수십 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먹이를 던져 주는 산객이 많아 정상 일대를 거처로 삼은 듯하다. 용봉산 정상은 사실 표지석 외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하이라이트는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향하는 암릉길이다. 불과 300여m 거리지만 사자바위, 물개바위 등 기암괴석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노적봉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노적봉 아래 바위에는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가 뿌리박고 있다. 이른바 ‘용봉산의 보물’이라 불리는 소나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분재처럼 앙증맞은 크기지만 수령이 100년을 넘나든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엔 어느 하나 만만히 볼 게 없다. 여기부터 암릉 산행은 절정을 이룬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지고 거대한 바위 군락을 넘어설 때마다 색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 내포평야가 시원스럽게 다가오고 동쪽으로 금마천과 삽교천이 느릿하게 흐른다. 악귀봉은 봉우리 전체가 기암괴석의 집합체다. 행운바위, 물개바위 등 용봉산에서 유명한 바위들은 죄다 여기 모인 듯하다. 악귀봉을 내려서면 임간휴게소다. 여기서 용바위를 거쳐 신경리 마애석불로 내려선다. 마애석불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홍진세계에서 온 중생을 토닥거리기라도 하는 듯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다. 홍주읍성 등 문화유적 둘러보고남당전망대 눈부신 ‘장밋빛 노을’갯벌서 방금 캔 석화는 탱글탱글 ●신경리 마애석불, 나를 토닥거리네 병풍바위를 등지고 용봉사가 단아하게 앉아 있다. 개창 연대는 백제 말로 거슬러 오르지만, 여러 전란과 화마를 거친 탓에 1905년 새로 지어 올렸다고 한다. 절집은 소박하다. 대웅전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영산회괘불탱화’(보물)가 보관돼 있다. 지방의 소도시지만 홍성엔 뜻밖에 문화 유적이 많다. 대부분 읍내 중심부에 몰려 있어 돌아보기도 수월하다. 홍주읍성부터 간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옛 성벽이다. ‘홍주’는 홍성의 옛 이름이다. 홍주읍성의 성벽 둘레는 축성 당시 1772m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은 800m가량 남았다. 읍성 안에 있던 옛 관아 건물과 성곽 문루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파괴됐다. 조양문과 군청 정문처럼 쓰이는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등이 복원돼 남아 있다. 홍주아문 옆엔 해마다 성탄 트리가 세워진다. 고색창연한 조선시대 유적과 현란한 성탄 트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 홍성 주민들의 인증샷 명소이기도 하다. 이제 홍성의 바다로 나간다. 서해 쪽이다 보니 아무래도 해넘이 풍경이 빼어난 공간들이 많다. 요즘 가장 ‘힙’한 노을 명소는 세 곳이다. 남당노을전망대는 남당항 바로 옆에 있다. 해 질 무렵이면 해변의 모래들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물든다. 옅은 장밋빛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이 느낌이 참 좋다.●연인 조형물 ‘행복한 시간’ 핫플로 바로 이웃한 어사리 노을공원은 요즘 핫플로 뜬 곳이다. 연인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 ‘행복한 시간’ 덕에 요즘 한창 사진 명소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노을공원 바로 아래에 주민 공동작업장이 있다. 해거름에 갯일 마치고 돌아오는 어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갯벌에서 방금 캔 석화도 살 수 있다. 속동전망대는 뭍과 바짝 붙은 섬에 조성한 전망대다. 요즘 홍성 스카이 전망대 공사가 한창이다. 홍성엔 역사책에서 자주 봤던 위인들의 탄생지가 많다. 홍성 북쪽의 홍북읍은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이웃한 노은리엔 조선 초의 충신 성삼문 유허지가 있다. 독립투사들의 유적지는 ‘홍성 8경’으로 지정해 알리고 있다. 그만큼 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이 강하다는 방증일 터다. 홍성 서쪽엔 한용운(3경), 김좌진(7경) 생가지가 이웃해 있다. ‘만주벌 호랑이’ 김좌진 장군은 저 유명한 ‘청산리 대첩’을 이끈 독립투사다. 갈산면 행산리에 그의 생가와 기념관, 사당 등이 조성돼 있다. 인접한 결성면에선 만해 한용운이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하고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는 등 저항문학에 앞장선 인물이다. 생가 주변에 민족시비공원, 만해문학체험관 등이 있다. ■ 여행수첩 산행의 피로는 온천에서 푼다. 용봉산에서 예산 덕산온천이 지척이다. 스플라스 리솜은 용출온도가 약 50℃에 달하는 온천수를 활용해 워터파크, 스파, 리조트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휴식 공간이다. 오는 24일 ‘비보이 산타 스페셜 공연’, 31일 ‘굿바이 2023 스페셜 공연’ 등도 선보인다.
  • 한일전에 욱일기 들고 ‘엄지 척’…서경덕 “역사 부정”

    한일전에 욱일기 들고 ‘엄지 척’…서경덕 “역사 부정”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욱일기 등장하자,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역사 부정”이라며 항의 메일을 보냈다. 지난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APBC 한국과 일본의 예선전에서 욱일기가 등장했다. 이와 관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9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침략 전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일본 팬이 욱일기를 들고 응원을 펼쳐 논란이 돼 APBC 측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욱일기는 과거 일본이 아시아 각국을 침략할 때 전면에 내세운 깃발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상징한다”며 “욱일기 응원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전쟁의 공포를 상기하는 행위이자 파시즘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 교수는 “이를 인정한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 측 응원단의 욱일기 응원을 즉각 제지했다”며 “APBC도 욱일기 응원을 즉각 금지하고, 다시는 이런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서 교수는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서도 욱일기 응원이 등장해 큰 논란이 됐었다”며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욱일기 응원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서경덕 교수가 기획하고 송혜교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부조 작품 기증 등은 12년째 진행 중이다. 꾸준한 활동으로 현재까지 35곳에 기증이 이뤄졌다. 최근에는 송혜교와 함께 대만 ‘타이뻬이한국학교’에 조명하 의사 대형 부조 작품을 기증했다. 서 교수는 “조명하 의사는 대만에서 일왕의 장인이자 육군 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를 단도로 저격하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독립운동가”라고 소개하며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부조 작품 기증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기증은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중국 상해 윤봉길 기념관, 중국 가흥 김구 피난처 등에 이어 일곱 번째 기증”이라고 전했다.
  • 관계 틀어질 때마다 ‘좀스러운’ 복수… 中, 임정시설도 걸어잠그나[뉴스 분석]

    관계 틀어질 때마다 ‘좀스러운’ 복수… 中, 임정시설도 걸어잠그나[뉴스 분석]

    최근 중국이 안중근, 윤동주 등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사적지를 연달아 폐쇄하자 우리 정부는 중국 내 독립운동 시설 관람 차단이 확산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 뤼순감옥 박물관의 안중근 전시실과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윤동주 생가의 폐쇄 조치가 이뤄지면서 한중 관계 악화가 반영된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7일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측이 안중근 전시실과 윤동주 생가에 대해 ‘보수 공사로 인해 미개방된 상태’라고 확인해 줬다”며 “개보수가 끝나고 재개관 등 별도 소식이 있으면 이를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도 “독립운동 사적지의 폐쇄가 일시적 조치인 만큼 곧 재개관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기다리고 있다”며 “두 곳 외에 추가로 폐쇄된 사적지는 없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한국대사관과 독립기념관 등에 따르면 중국 25개 성·시·자치구에 걸쳐 373곳의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가 있다. 뤼순감옥과 윤동주 생가를 비롯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광저우·상하이·충칭 등)와 김구 임정 주석 피신처(항저우) 및 총상 치료지(후난성 창사),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산시성 시안) 등이 대표적이다.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이후 뤼순감옥 박물관 내 안중근 전시실을 폐쇄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윤동주 시인 생가 관람을 금지했다. 공교롭게도 안중근 전시실 폐쇄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밝혀 중국의 반발을 샀던 때와 겹친다. 그동안 중국은 한국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우리 관광객의 중국 내 유적지 접근을 막는 등 감정적 대응을 이어 왔다. 2000년대 초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이 논란이 됐을 때는 한국인의 고구려 유적 방문을 일시 차단했다. 지금도 해당 유적지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의 태극기·현수막 사용을 금지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리 이웃 관계가 서운하다 하더라도 지켜야 할 금도가 있는 법”이라며 “(중국의 항일지사 사적지 폐쇄가) 좀스럽고 시시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중 관계가 더 악화하면 개보수 등을 명목으로 항일운동 관련 사적지 폐쇄가 확대될 수 있어 우려된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상하이에서도 지가가 비싼 화이하이중루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은 모두 상업지역으로 재개발됐다. 중국 정부는 항일투쟁 역사를 공유하는 한국의 요청으로 임정 청사 재개발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베이징 고위 소식통은 “중국 내 보훈시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 “송혜교가 또 후원” 서경덕,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알린다

    “송혜교가 또 후원” 서경덕,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알린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1일 104번째 3·1절을 맞아 배우 송혜교와 함께 여성 독립운동가 수당(修堂) 정정화(1900∼1991)를 알리는 영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송혜교씨와 의기투합해 ‘임시정부의 안주인, 수당 정정화’ 영상을 다국어로 제작해 국내외에 공개했다”며 “이번 영상 역시 ‘서경덕 기획, 송혜교 후원’ 콤비로 진행했으며, 한국어 및 영어 내레이션을 입혔다”고 말했다. 정정화는 구한말 문신이자 임시정부 고문을 지낸 독립운동가 동농(東農) 김가진(1846∼1922)의 며느리다. 그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임시정부의 일원이 됐고, 해방을 맞아 국내로 돌아올 때까지 임정과 함께했다.영상은 국내로 잠입해 독립자금을 조달하고, 대한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또 임정 요인들과 그 가족들의 생활을 돌보는 등 임정의 운영을 위해 헌신한 모습도 소개했다. 서 교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많아 이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이번 일을 시작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다국어 영상을 꾸준히 제작하는 글로벌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와 송혜교는 2012년부터 역사적인 기념일에 맞춰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 33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부조 작품 등을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 조선 독립 위한 불꽃이었나… 죽음으로 완성한 불멸의 넋이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조선 독립 위한 불꽃이었나… 죽음으로 완성한 불멸의 넋이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어떤 사람은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기억된다. 죽음으로 삶을 증명하고, 완성한다. “그 사내가 웃었다. 다정하고 습습하게 웃으며 말했다. ㅡ어째 표정이 그러십니까? 저는 영원한 쾌락을 향유하고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 슬퍼하십니까? 기뻐하셔야 합니다. 장사는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지니, 아무리 영광으로 기꺼울지라도 죽음이 어찌 기쁠 수만 있는가. 돌이킬 수 없는 길, 예정된 영이별에 나도 모르는 사이 안색이 참담하게 굳어졌던가 보다. 탁상에 놓인 것은 조선독립선서문과 태극기 그리고 두 개의 수류탄이었다. 나는 그에게 폭탄의 사용법을 설명했다. 폭탄 주둥이의 나무마개를 빼내고 금속으로 된 기계를 모두 끼워 넣을 것. 안전핀만은 실행 전날에 뺄 것. 폭탄은 머리가 무언가에 닿아야 터지니 될 수 있는 한 높이 던질 것. 하나는 흙바람으로 세상을 뒤덮고 사람을 미혹하는 괴물들을 물리칠 뇌성벽력의 무기였고, 다른 하나는 고독한 전사가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여는 자살용이었다. 고국의 형에게 보낼 독사진을 찍었다. 입아귀를 활찐 벌린 그의 얼굴은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천진무구했다. 선서문을 가슴에 달고 폭탄을 양손에 한 개씩 들었다. 벽에 걸린 태극기를 배경으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는 끝까지 활달하고 체체했다. ㅡ제가 지금 떠나가면 큰일 한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즐거운 얼굴로 찍으십시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마 우리는 영원히 함께 머무르리라. 은근한 그의 지청구에 나는 가까스로 구겨진 얼굴을 폈다. 착잡하고 침울한 가슴에선 속바람이 들고 피눈물이 흐르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웃었다. 울지 않으려 웃었다.”(졸저 ‘백범’ 중에서)그 사내, 이봉창 의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서울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 반가사유상 두 점을 전시한 ‘사유의 방’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연화대 위에 걸터앉아 얼굴을 오른손으로 괸 채 명상하는 형태의 불상’인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되기 전의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전 세계에 70여점이 남아 있는데 그중 20여점이 우리나라에 있다. ‘사유의 방’에는 6세기 후반 제작된 국보 78호와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국보 83호를 모셨다. 관광지나 유적지, 박물관을 방문하는 시간으로는 비 오는 화요일 오전이 최고다. 사람의 독력(毒力)이 미치지 않는 한갓진 순간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주말일지나 박물관의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맞춰 들어가려 서둘렀다. QR코드를 찍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해 2층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두어 칸 앞쯤에 목적지가 같은 듯한 사람이 보인다. 반가사유상과 독대하는 순간을 빼앗길까 봐 잽싸게 그를 앞질러 ‘사유의 방’에 입성했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10시 1분에 온 놈 앞에 10시에 온 놈이 있다. 이미 나보다 더 부지런한 한 분이 반가사유상을 모델로 두고 열심히 촬영 중이시다. 아, 어리석은 나는 부질없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건축가와 협업한 최초의 유물전시인 ‘사유의 방’은 관람객의 시각·청각·후각까지 고려한 그 자체로 작품이다. 섬세한 조명과 계피향이 은은한 흙벽에 둘러싸인 반가사유상은 사방 어느 편에서 봐도 아름답다. 정면에서 마주 본 얼굴에는 찰나의 환희가 미소로 걸려 있어 거룩하다. 내가 찾아가는 그 사내도 미소가 참 좋았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반가사유상의 그것이라기보다 국립춘천박물관에 상설 전시된 영월 창령사지 오백나한의 그것과 더 닮았다. 나한은 깨달아 해탈했지만 아직 충분한 공덕을 쌓지 못한 존재이기에, 부처보다는 기쁨·슬픔·희망·분노를 모두 품은 인간의 얼굴에 가깝기 때문이다.서울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1번 출구에서 500여m 떨어진 효창공원 내에 삼의사 묘역이 있다. 무릇 태어나 살고 죽는 것이 생명의 순리지만 그 사내를 이야기할 때는 죽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과 백범 김구 묘역, 의열사와 임정요인 묘역과 삼의사 묘역과 안중근 가묘는 이미 수차례 찾았던 곳이다. 5세에 홍역으로 죽은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역이었던 효창원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최초의 골프 코스가 됐다가 해방 후 효창운동장과 효창공원으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용산이라는 서울의 배꼽 자리가 역사의 펀치를 온몸으로 맞받은 흔적이랄까, 혼란스러운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이 용산 곳곳에 지금도 선연하다. 역사는 일상과 얼키설키 뒤얽힌 채로 흘러간다. 산책하고 운동하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백범과 삼의사와 임정요인들은 조용히 누워 계신다. “조선 민족 불멸의 독립 혼을 중외에 떨친 것은 이 세 분이 으뜸일 것입니다!”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백범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에 묻힌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유해를 송환해 1946년 7월 6일 국민장을 치르고 효창원에 안장한 것이었다. 아나키스트 백정기를 제외한 두 사람은 백범이 직접 폭탄을 쥐여 준 한인애국단 단원들이다. 졸저 ‘백범’에 테러리즘과 의열투쟁의 차이에 대해 상세하게 언술한 바 있지만 후대의 시시비비와 별개로 백범은 폭탄을 써야 했고 쓸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바닥, 그곳이 바닥의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젊은 치들이 나누는 객담을 백범이 우연히 듣지 않았다면 이봉창도, 한인애국단도, 어쩌면 임시정부까지도 없었을 것이다. 이름은 거창하게 대한민국임시정부이지만 1920년대 말 통합을 위한 민족유일당운동이 실패하면서 중국 상하이는 무주공산이나 진배없었다. 1930년대 들어 조선과의 연락망이 끊기면서 매월 30원의 집세와 20원의 고용인 월급조차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잔치가 끝난 임정에 남아 떠맡듯 민단장과 재무부장의 감투를 들쓴 백범은 가족을 국내로 돌려보내고 홀로 정청에서 살며 동포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발바닥이 닳은 헝겊신을 꿰어 신고 쓰레기통에서 배춧잎을 주워 먹었다. 이봉창을 만나 새로운 ‘사업’을 도모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저 빛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더욱 ‘근대 3부작’의 첫 장에는 실제로 그 시절의 ‘주류’는 아니었지만 역사 속에서 끝내 승리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지금은 정치가들을 위시한 많은 사람이 모범으로 삼으며 숭앙하는 듯하지만, 당시의 그들은 다만 처절하도록 외롭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계속하고 있었을 뿐이다.공원 한가운데 그 사내, 이봉창의 동상이 있다. 옛날의 미남 영화배우처럼 선이 굵은 얼굴이나 우람한 몸피가 전혀 이봉창 의사를 닮지 않았다. 손에 잡고 던지는 폭탄의 모양새도 1932년 일왕의 마차를 향해 던진 마미(麻尾) 수류탄과는 달라 보인다.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건립된 소위 애국선열 동상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사진 자료를 무시하고 만들어졌다. 그 연유에 대해 미술평론가들은 당시의 모더니즘적 경향과 군사정권의 선동적·극적 효과에 대한 요구가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아무도 닮지 않은 상상 속의 영웅들이 위대하고 완전무결해질수록 실재했던 인간으로서의 그들은 기쁨·슬픔·희망·분노가 시시때때로 교차하는 우리로부터 멀어져 간 것일지도 모른다. (㉻에 계속) 소설가
  • 역사와 문화 살아 숨쉬는 서대문… 매년 독립·민주지사 정신 기린다

    역사와 문화 살아 숨쉬는 서대문… 매년 독립·민주지사 정신 기린다

    “틀에 갇힌 역사, 암기 과목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곳곳에 새겨진 독립·민주지사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생생한 역사를 기억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서울 서대문구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다. 독립·민주지사들이 옥고를 치른 투쟁의 장소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매해 ‘서대문독립민주축제’를 열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는 22일까지 진행되는 올해 축제는 형무소역사관 내 ‘독립·민주지사 기억공간’에서 열리는 특별한 전시 덕분에 의미를 더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축제에서는 생존한 독립·민주지사들을 초청해 발 모양을 동판에 찍는 풋프린팅 기념식을 진행했는데 올해부터는 상설 전시로 대신한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18일 “독립운동 생존 지사들이 이제 몇 분 남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마련했다”며 “매년 새롭게 관련 인물을 선정하고 그들에 대한 영상을 기록으로 남겨 1년간 전시함으로써 많은 시민이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1920년 독립군자금 탈취 의거를 주도한 철혈광복단의 임국정·윤준희·한상호 독립지사와 1974년 독재정권에 맞섰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의 김윤·이철·장영달 민주지사에 대한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문 구청장은 “이번 전시 영상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서현석 교수와 학생들이 제작했는데, 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독립·민주 지사를 바라보고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서 “앞으로 매년 누적되는 전시 영상을 보관해 학생들을 위한 교육 자료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에 헌신한 독립운동가 중 김좌진·홍범도·윤희순 등 39명의 어록과 활동 내용을 멋진 글씨로 표현한 깃발전 ‘독립군의 기(氣) 휘날리다’도 형무소역사관 내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상시로 진행하는 비대면 프로그램 ‘민주와 독립의 열망의 길, 의주로’도 있다. 역사문화해설사의 설명이 담긴 영상을 보며 충정로역에서 의주로를 따라 독립문까지 걷는 체험이다. 문 구청장은 그간 독립민주축제를 비롯해 3·1운동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독립유공자와 유가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나라사랑채’를 건립하는 등 지역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사업에 힘을 쏟았다. 그는 “오는 1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근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완공되면 독립문에서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거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독립유적지 역사문화벨트’가 완성된다”면서 “서대문독립공원 일대가 자주독립과 실질적 민주주의를 성취한 순간을 학습할 수 있는 역사문화 중심지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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