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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비드 흄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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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배당금, 시장경제 질서 존중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국민배당금, 시장경제 질서 존중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AI발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것 아냐국민과 쌓아온 산업기반에서 나와초과이익은 전국민에게 환원해야 각자의 재산·소유권은 인정해야재산 이동은 자발적 합의 통해야약속 이행은 계약·신의 지키는 것정치 논리, 경제 논리 압도해선 안 돼사유재산권 존중해야만 살아남아 “이 글에서는 그 원칙에 가칭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핵심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원칙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 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것이 설계의 정당성이자 원칙이다.” 지난 5월 1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게시물의 핵심 문단이다. AI로 인해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예상을 뛰어넘는 역대급 이익을 거두자 그 이윤을 ‘전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의 논리를 되짚어 보자. 현재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얻는 수익은 일시적인 산업 사이클에 의한 것이 아니라 ‘AI 시대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병목 현상을 만들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구조적 독과점이 나타나고, 따라서 그로 인해 완전 경쟁 시장에서 얻는 ‘정상이윤’의 범위를 넘어서는 이윤이 발생한다. 그것이 바로 “초과이윤”(excess profit)이다. ●삼성전자·하이닉스 역대급 초과이익 이렇게 만들어지는 초과이윤은 단지 특정 기업의 활동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온 국민이 함께 쌓아 올린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오고 있다. 기업과 산업, 더 나아가 자본주의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기에 ‘영리 활동으로 인한 매출이 아닌 순이익에 과세한다’거나 ‘이중 과세를 금지한다’ 같은 기존의 원칙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일부를 ‘국민배당금’의 이름으로 온 국민이 나눠야 마땅하다. 과연 그럴까? 앞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건, 세계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과정에서 바탕에 깔려 있던 원리를 되짚어 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자유민주주 시장경제의 근본 원칙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이루어지던 18세기 스코틀랜드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데이비드 흄은 고작 12세의 나이에 에든버러대에 입학한, 의심할 나위가 없는 천재였다. 하지만 2년 만에 염증을 느낀 어린 천재는 학계에 정을 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24세가 되던 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자신의 첫 저서이자 불멸의 고전으로 남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의 대부분을 집필했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된 데뷔작이 1739년에서 40년 사이에 출간되었으니, 흄은 고작 20대의 나이에 철학의 역사를 뒤흔든 셈이다. ‘논고’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얻는가? 오감을 통해 지각해, 즉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어제도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기에 우리는 내일도 해가 뜬다고 생각한다. 해가 뜨는 방향이 일정하다는 것을 보아 왔으므로 그 방향에 ‘동쪽’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런 경험이 종합되어 ‘해는 동쪽에서 뜬다’라는 지식을 얻는다. 그런데 그 관찰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성립해 왔으므로, 우리에게 ‘진리’로 여겨지게 된다. 문제는 이 진리에 확실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나 또한 독자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우주 어딘가에서 인류가 관측할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의 충격파가 발생해서 이곳을 향해 오고 있으며, 그것이 오늘 밤 태양계와 지구를 강타해, 해가 서쪽에서 뜨더니 지구가 태양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마치 주인이 닭장을 열 때마다 모이를 주었으니 닭장이 열리면 밥을 먹게 된다고 믿고 있는 닭과 마찬가지다. 닭이 지닌 인과론적 확실성에 대한 믿음은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주인이 모이를 주는 대신 닭을 잡아 버릴 테니 말이다. 상식적인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며 헛된 근심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지식을 근본적인 차원까지 검토하는 철학자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인과관계 그 자체를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원인에 해당하는 현상과 결과에 해당하는 현상을 숱하게 보아 왔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 짓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내일도 해가 뜬다고 장담할 수 없고,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을 근거도 없다. 그런 주장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흄의 정의와 시장경제 원칙 흄은 이렇게 냉철한 경험주의를 사회과학의 영역에까지 적용한다. 정의로움(justice)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경험을 초월해 존재하는 절대적인 가치일까? 물론 흄의 답은 ‘아니요’다. 자연 상태에서 시작해 무리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인류는 무엇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해로운지 서서히 깨달으면서 사회적 규칙이나 관습, 즉 묵계(Convention)를 형성했다. 그러한 묵계는 너무도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왔기에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그 또한 인류가 지니고 있는 인식의 습관일 따름이다. 정의의 개념과 그 내용 역시 사람이 만들어 낸 경험의 산물인 것이다. 정의의 개념은 세 가지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각자의 재산과 소유권을 서로 인정하고 침해하지 않는 ‘소유의 안정성’(Stability of possession). 둘째, 재산의 이동은 폭력이나 강제가 아닌 당사자 사이의 자발적 합의와 교환을 통해야만 한다는 ‘동의에 의한 양도’(Transfer by consent). 셋째, 계약과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약속의 이행’(Performance of promises). 이 세 요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임금이 백성의 재산과 소유권을 존중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세금을 물리거나,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약탈하는 행위를 수수방관하거나, 그 누구도 계약을 지키지 않고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 성실하게 일하는 백성들은 모두 도망치거나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망해 버리므로 그들의 묵계는 전수되지 않는다. 현존하는 모든 인간 사회에 비슷한 정의의 관념이 존재하는 이유다. 흄은 ‘논고’의 제3권 2부 6절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는 이제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세 가지 근본 법칙을 확정했다. 그것은 소유의 안정성, 동의에 의한 이전, 그리고 약속의 이행이다. 인간 사회의 번영과 상호 작용은 전적으로 이 세 가지 법칙의 엄격한 준수에 의존한다.” 물론 이 또한 절대적인, 경험을 초월한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가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으며 제한된 자원을 나눠서 쓰고 있는 한, 각자가 자신의 것을 가질 권리, 그것을 자발적으로 교환할 권리,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라는 세 가지 정의의 원칙은 도출될 수밖에 없다. 흄의 이러한 생각은 절친한 친구였던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동시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로 불리는 이 사상적 흐름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흄의 경험주의적 통찰에 귀 기울여야 주식회사는 주주의 것이다. 회사의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 회사를 일부 소유한다는 말과 같다. 주주는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어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 폐업을 할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이윤이 창출되면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1602년 동인도회사(VOC)가 탄생한 후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주식회사의 작동 방식이다. 18세기를 살았던 흄은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를 신이나 도덕적 권위를 빌리지 않고 경험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정당화했던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추상적인 도덕적 요구와 정치적 이유가 경제적 논리를 압도하는 모양새다. 기업이 자신의 이윤을 스스로 재투자하거나 주주의 이익을 위해 환원할 수 있는 권리, 가장 기초적인 사유재산권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소유권을 존중하고 동의에 의해서만 재산을 주고받으며 약속을 지키는 국가만이 살아남고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는 흄의 경험주의적 통찰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 [최성훈의 세세보] ‘그 자연이 네게’

    [최성훈의 세세보] ‘그 자연이 네게’

    홍상수 감독이 지난 5월 공개한 33번째 장편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27년 전인 1998년작인 그의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둘 모두 등장 인물들이 서울에서 자연(산)으로 떠났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강원도의 힘’의 지숙(오윤홍 분)은 친구들과 강원도 강릉으로 떠났다가 어찌어찌 살아서(!) 서울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다시 홀로 강릉에 다녀오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우혜경 평론가의 빼어난 2017년 평론에 나오듯, 그것은 살았다는 안도와 죽어야(죽여야) 했던 태아에 대한 애도가 뒤섞여 있다. 반면 상권(백종학 분)은 우연히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 다녀왔지만, 심지어 원했던 교수직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두려운) 성관계에 집착할 뿐이다. 상권은, 대야 속 금붕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홍 감독을 ‘차이와 반복’에 관한 작가라고 칭할 때 사람들이 염두에 둔 것은, 질 들뢰즈의 책 ‘차이와 반복’이다. 정작 들뢰즈는 데이비드 흄의 테제를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 “반복되고 있는 대상 안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을 응시하고 있는 정신 안에서는 무엇인가 변하고 있다.” 최근에 국세청이 바우처 방식의 산모·신생아 돌봄 서비스 이용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범위에 관한 해석을 바꿨을 때에도 그러한 구조적 동형성이 보인다. 세법 조문 자체는 변함없이 반복 적용되고 있었는데, 그걸 반복하는 주체(과세관청) 내부에서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변하지 않는 법 자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입장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강원도의 힘’에서 지숙이 서울로 살아서 돌아온 것이 과연 강원도의 ‘힘’이라는 ‘실체’ 덕분일까. 홍 감독은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마치 힘으로 작용하는 실체에 의해서 지숙의 운명이 결정된 것처럼 영화의 제목을 붙인 것 아닌가. 홍 감독의 21번째 장편인 2017년작 ‘그 후’에서 아름(김민희 분)은 봉완(권해효 분)과 ‘실체’에 대해서 낮술 토론을 벌인다. 아름은 봉완에게 “정말로 실체가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라면 사실은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고, “알지도 못하는 실체라는 허상 때문에 우리가 당장 필요한 믿음을 거부하는 건 엉뚱한 짓”이라고 나무란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에서 ‘그 자연’은 네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네 안의 무엇인가가 변한 것일 뿐.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당장 필요한 믿음이다. 예를 들면 ‘그 후’에서 아름의 말처럼 나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아름의 그 믿음이야말로 ‘강원도의 힘’의 지숙이 서울 집으로 살아서 돌아오는 데 필요했던 믿음이었는지 모른다. 2025년 한 해 동안도 힘들었던 일들을 잘 견뎌 낸 당신 역시, 당신 자신만의 그러한 믿음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최성훈 법무법인 은율 변호사
  • 노인의 탓이 아니다, 질병도 죽음도… 철학의 ‘노년 지침서’

    노인의 탓이 아니다, 질병도 죽음도… 철학의 ‘노년 지침서’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0%를 넘는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년의 삶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늘고 있지만 주로 사회복지나 정책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철학적 성찰과 인식 변화 없이는 정책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건강한 노년은 중요하지만 ‘나이 들어감’을 외면하고 노화를 질병처럼 여기며 무조건 피하려는 것은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철학자 9명이 모여 노년이란 무엇인지,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노년이 바람직한지 규범적, 실천적 지침을 제시한 학술서 ‘철학의 눈으로 본 노년’(아카넷)을 내놨다. 이번 저작물은 3년 동안 꾸준히 진행한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책은 2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르네 데카르트의 기계론,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사변적 자연철학,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의지 형이상학 등 철학사 속에 숨어 있는 노년에 대한 사유를 추적했다. 2부에서는 자연과학적 노화 이론, 존 로크의 인격 동일성 이론, 데이비드 흄의 발전적 감성 개념, 아리스토텔레스의 효 개념, 노년과 서사적 정체성 등 다양한 이론으로 노년을 조명해 어떤 방식의 노년이 바람직한지 고민한다. 장미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키케로의 행복론으로 노년을 인생의 비극으로 간주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키케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받아들여 노인의 행복론을 펼쳤다. 흔히 노년은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신체적 쾌락이 감소하며 지위와 역할도 추락하고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키케로는 노년의 신체적, 정신적 질병은 이전에 어떻게 살았느냐의 문제일 뿐이며 노년에도 적당한 운동과 식이요법, 절제를 통해 예전의 체력을 상당히 유지할 수 있고 배움의 활동을 통해 정신적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젊었을 때부터 죽음이 무엇인지 배우고 인식한다면 불안과 공포에 눌리지 않고 평온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대표 필자인 임건태 박사는 “노년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을 벗기 위해서는 인간을 유년기에서 시작해 청장년기를 거쳐 노년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노년도 인생의 여러 과정 중 한 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린이의 삶, 청년의 삶처럼 노인만의 독특한 삶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임 박사는 “현대 문명은 지칠 줄 모르고 앞으로만 치달으면서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지 못한 젊은이와 같다”며 “현대 문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로의 전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노년의 삶에서 그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공포와 매혹 사이의 ‘죽음’…40년 만에 다시 읽는 ‘자살의 연구’

    공포와 매혹 사이의 ‘죽음’…40년 만에 다시 읽는 ‘자살의 연구’

    제목에서 공포와 매혹이 동시에 밀려온다. 영국의 문학평론가 앨 앨버레즈의 ‘자살의 연구’는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다. 1982년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판본이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을유문화사 암실문고에서 완역판이 출간됐다. 번역가 황은주가 기존 판본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읽는 내내 주변에서 많은 걱정과 위로가 있었다. 한국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탓일 터다. 최근 공개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는 1만 4439명으로 전년(1만 3978명)보다 3.3% 증가했다.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자살률 통계가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지만 그때뿐이다. 뚜렷한 해결책도,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앨버레즈는 자살의 정치사, 사회사를 추적한 뒤 끝에서 ‘자살의 예술사’를 완성한다. 앞서 자살을 연구했던 에밀 뒤르켐과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도 거리를 둔다. 자살을 그저 세상에 굴복한 개인의 체념으로 보지 않으려 한 듯하다. 앨버레즈는 낙인과 찬양이 번갈아 가면서 반복됐던 자살의 역사를 탐구한다. 끝에서는 핵무기 사용을 비롯해 스스로 종말로 나아가고 있는 현대의 혼돈을 사유한다. 세계 전체가 거대한 자살을 수행하고 있는 것 아닐까. 20세기에 쓰인 글이지만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낡은 게 하나도 없다. 앨버레즈는 책에서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말을 두 번이나 인용한다. 흄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생명이 굴의 생명보다 더 큰 중요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1980년대를 풍미한 시인이지만 같은 시기 번역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최승자의 번역이라는 점은 더 강렬한 매혹으로 다가온다. ‘이 시대의 사랑’을 비롯한 최승자의 시는 죽음과 고독의 이미지 안에도 처절한 생의 의지를 담아내고 있어서다. 기존 국내 번역 판본에는 없던 제4장 ‘자살과 문학’의 챕터 1~3번을 이번에 새로 옮겼다. 국내 최초 완역판인 셈이다. 앨버레즈는 옥스퍼드대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잡지 ‘옵서버’의 시 평론가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63)를 영국에 소개했다. 앨버레즈는 책에서 플라스의 생전 모습을 복원하며 그가 실제로는 죽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 코페르니쿠스의 무덤에 얽힌 괴이한 이야기 [이광식의 천문학+]

    코페르니쿠스의 무덤에 얽힌 괴이한 이야기 [이광식의 천문학+]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5세기 전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천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였다. 진정한 르네상스맨이었던 그는 수학자, 엔지니어, 작가, 경제 이론가 및 의사로도 활동했다. 1543년 폴란드 프롬보르크에서 사망한 코페르니쿠스는 지역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그의 무덤의 위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아무도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폴란드의 중부 도시 토룬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역 상인에게서 태어난 네 자녀 중 막내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 코페르니쿠스의 외삼촌이 그의 교육을 책임졌다. 코페르니쿠스는 18살인 1491년부터 1494년 사이에 크라쿠프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나중에는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볼로냐, 파도바, 페라라에서 공부했다. 의학, 교회법, 수리천문학, 점성술을 공부한 코페르니쿠스는 30살인 1503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바르미아의 주교후(主敎侯)였던 영향력 있는 외삼촌 루카스 바첸로데 밑에서 일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수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의사로 일했다. 당시에는 천문학과 음악이 모두 수학의 한 분야로 간주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두 가지 영향력 있는 경제 이론을 공식화했다. 1517년 그는 화폐수량론을 발전시켰는데, 이 이론은 나중에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에 의해 다시 심화되었고,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1519년 코페르니쿠스는 화폐의 유통과 가치 평가를 다루는 화폐 원리인 그레셤의 법칙으로 알려진 개념도 도입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델 과학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공헌의 초석은 그의 혁명적인 우주 모델이었다. 지구가 우주의 고정된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일반적인 프톨레마이오스 모델과 달리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코페르니쿠스는 행성 궤도의 크기를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로 표현하여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연구가 교회와 동료 학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려워했다. 그의 대작〈천구의 운동에 관하여>는 1543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야 출판되었다. 이 저작의 출판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획기적인 전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20여 년 후에 태어난 갈릴레오와 같은 미래의 천문학자들을 위한 길을 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어디에 묻혔나?프롬보르크 대성당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들 무덤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 16세기와 17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코페르니쿠스의 유해 찾기 시도는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다. 또 다른 실패한 한 사례는 1807년 아일라우 전투 이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에 의해 이루어졌다. 수학에 밝았던 나폴레옹은 코페르니쿠스를 박식가, 수학자, 천문학자로 높이 평가했다. 나폴레옹은 근대 천문학의 문을 연 위대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2005년에 폴란드 고고학자 그룹이 마침내 본격적인 수색에 착수했다. 프롬보르크 대성당의 참사원 위원을 지냈던 코페르니쿠스가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이 담당했던 대성당 제단 근처에 묻혔을 것이라고 보는 역사가 예지 시코르스키의 주장에 따라 제단 근처를 조사했다. 이 제단은 현재 성십자가 제단으로 알려진 성 바츠와프 제단이다. 이 제단 근처를 집중적으로 발굴한 결과, 60~70세 남성의 불완전한 해골을 포함해 13개의 해골이 발견되었고, 그중 한 해골이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법의학이 밝혀낸 ‘코페르니쿠스’제단 근처에서 발견된 문제의 두개골은 얼굴 재구성의 기초가 되었다. 형태학적 연구 외에도 DNA 분석은 역사적 유물이나 고대 유물을 식별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재구성된 두개골의 얼굴은 코페르니쿠스와 비슷했지만, 이것으로 완전한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코페르니쿠스로 추정되는 유해의 경우 치아 상태가 잘 보존돼 있어 유전자 식별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DNA를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친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 과학사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괴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DNA 참고자료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은 코페르니쿠스의 머리카락으로, 코페르니쿠스가 수년 동안 사용했던 천문학 장서의 책갈피 사이에 끼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17세기 중반 스웨덴의 폴란드 침공 이후 전쟁 전리품으로 스웨덴으로 반출되었다. 현재 웁살라 대학교 구스타비아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책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책의 주요 사용자인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몇 올이 발견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머리카락은 무덤에서 회수된 치아 및 뼈 물질과의 유전적 비교를 위한 참고자료로 평가되었다. 머리카락은 발견된 해골의 치아와 뼈에서 나온 DNA와 비교한 결과, 치아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골격 샘플은 모두 머리카락의 DNA와 일치하여 그 유해가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고고학 발굴, 형태학적 연구 및 고급 DNA 분석을 포함한 다학제적 노력을 통해서도 역시 설득력 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롬보르크 대성당의 성십자가 제단 근처에서 발견된 유해는 코페르니쿠스의 것일 가능성이 확정적이다. 이 기념비적인 발견은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의 마지막 안식처를 밝혀낸 것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데이터를 뒷받침하는 현대 법의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유해는 아무 묘비도 없이 무명으로 묻혔다가 사망한 지 5세기 만에 최고의 예우를 갖춰 ‘영웅’으로 재안장됐다. 대성당측은 코페르니쿠스의 사망 467주기 다음날 치러진 장례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코페르니쿠스를 국민영웅으로 칭송하는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새로 세워진 검은 화강암의 묘비에는 지동설을 표시하는 태양계의 도형을 새겨넣어 500년 전 그의 업적을 기렸다. 살아 생전에는 자기 학설도 발표하지 못했던 조심스러운 영웅의 부활답다고나 할까. 이광식 과학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이들을 ‘폭도’라 불렀다가 전화로 해임 통보받은 영국 장관

    이들을 ‘폭도’라 불렀다가 전화로 해임 통보받은 영국 장관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7년 만에 외무부 장관으로 돌아왔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13일(현지시간)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 장관을 해임하고 캐머런 전 총리를 외무 장관에 기용하는 내용의 개각을 단행했다.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총리실의 지시를 무시했다가 결국 해임됐다. 캐머런 전 총리는 2010년 보수당 집권 시대를 열고 6년간 정부를 이끌었으나, 브렉시트가 결정된 책임을 지고 2016년 7월 물러났다. 이후 지금까지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를 포함해 네 번째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영국 정치권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총리가 퇴임 후 외무 장관으로 다시 내각에 참여한 것은 알렉산더 더글러스 흄이 1964년 퇴임하고 1970년 돌아온 이래 처음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캐머런이 총리 시절 외교정책에서 실수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5000년 동안 영국은 유럽이 자신에 맞서 연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브렉시트로 한순간에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또 지나친 대중 유화정책으로 중국 기업들은 통신에서 원자력 발전소에 이르기까지 영국 인프라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캐머런은 총리 퇴임 이후 10억 달러 규모의 영국-중국 투자 펀드를 마련하기 위해 몇 년을 노력했지만 결국 영중 관계 악화로 무산됐다.캐머런은 외무장관 임명 발표 이후 인터뷰에서 전 총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몇몇 개별적 결정에 관해선 수낵 총리와 동의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수낵 총리는 강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7년간 정치 일선에선 빠져있었지만 11년 보수당 대표, 6년 총리 경력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낵 총리 대변인은 “현재 대중국·중동 외교 정책이 캐머런 장관 하에서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의 재등장은 보수당 온건파를 끌어들이는 효과와 함께 당내 우파의 반발을 살 전망이다. 과거 중국과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란 점에서 의회 내 반중 인사들의 불만이 커질 수도 있다. 수낵 총리가 캐머런을 재기용한 것은 현재 노동당에 20% 이상 뒤진 지지율을 보이는 보수당의 쇄신을 위한 인사란 분석이 나온다.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은 여당인 보수당이 다음 선거에서 패할 경우 당내 우파의 지지를 받아 향후 보수당 지도부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전화로 퇴출 통보를 받은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은 지난주 영국 경찰이 편견을 갖고 있다는 글을 더 타임스에 쓴 이후 장관직에서 잘렸다. 브레이버먼은 “경찰은 정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친팔레스타인 행진이 정부의 반대에도 진행될 것으로 보이자 경찰이 시위대에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친팔레스타인 폭도들 명백하게 법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무시된다”고 주장했다. 보수당 내 브레이버먼 지지자들은 이번 장관 인사 이후 수낵 총리 측을 향해 “광대짓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영 캐머런 전 총리, 외무장관으로 깜짝 귀환…설화 내무는 결국 해임

    영 캐머런 전 총리, 외무장관으로 깜짝 귀환…설화 내무는 결국 해임

    영국 총리실 앞에서 생중계하던 한 기자는 13일(현지시간) 개각 전 총리가 대상자를 불러 인사를 통보, 협의하는 관례를 좇아 등장한 인물을 보고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나타난 것이다. 리시 수낵 총리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총리실의 수정 지시를 무시했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을 해임하고 캐머런 전 총리를 외무 장관에 기용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7년 만에 깜짝 복귀했다. 총선을 앞두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수낵 총리는 우파 포퓰리즘 세력을 내치고 유럽연합(EU) 잔류를 지지한 중도우파 전직 총리를 불러들이는 예상치 못한 수를 뒀다. 캐머런 전 총리는 2010년 보수당 집권 시대를 열고 6년간 정부를 이끌었으나,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가결된 후 책임을 지고 2016년 7월 물러났다. 그 뒤로 지금까지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를 포함해 네 번째 총리를 수낵이 맡을 정도로 영국 정치권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총리가 퇴임 후 외무 장관으로 다시 내각에 참여한 것은 알렉산더 더글러스 흄이 1964년 퇴임하고 1970년 돌아온 이래 처음이다. 캐머런은 외무장관 임명이 발표된 후 방송 인터뷰에서 전 총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온라인 성명에서 몇몇 개별적 결정에 관해선 수낵 총리와 동의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수낵 총리는 강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캐머런은 지난달만 해도 수낵 총리의 차세대 고속철도 건설 계획 일부 폐기 결정을 비판했다. 그는 “지난 7년간 정치 일선에선 물러나 있었지만 11년 보수당 대표, 6년 총리 경력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위기를 포함해 여러 세계적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런 심각한 세계적 변화 속에서 동맹 곁을 지키고 동반관계를 강화하며 우리 목소리를 확실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총리 대변인은 “현재 대 중국·중동 외교 정책이 캐머런 장관 아래에서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등장은 보수당 온건파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과거 중국과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란 점에서 의회 내 반중 인사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 그가 지금은 파산한 그린실 캐피털의 고문으로 정부 요직 인사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전방위 로비했다는 2년 전 의혹이 논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하원의원이 아닌 캐머런을 내각에 합류시키기 위해 급히 왕실을 통해 종신 귀족으로 임명하고 상원의원이 되도록 했다. 이날 전화로 퇴출 통보를 받은 브레이버먼 장관은 최근 잇따라 강경 우파 발언을 쏟아내며 수낵 총리를 난감하게 했다. 브레이버먼 장관은 지난주 언론 기고문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고, 경찰이 이중잣대를 갖고 특혜를 준다고 비판했다. 현충일인 지난 주말 예고된 대규모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두고 예민한 상황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빗발쳤다. 더욱이 내용 수정 요구를 거부하며 총리실을 무시한 것이 드러나며 각료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는 지난해 9월 리즈 트러스 전 총리 시절에 규정 위반으로 내무부 장관에서 해임됐으나 그 직후 당 대표 경선에서 수낵 총리를 지지하면서 다시 자리를 맡았다. 측근들은 이날 모여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제임스 클레벌리 외무장관은 브레이버먼 장관의 자리로 옮겼다.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까지 포함하면 내각의 최고위직 4명이 모두 남성이 됐다. 스티브 바클레이 보건부 장관 자리는 재무부 부장관인 빅토리아 앳킨슨이 물려받았다. 트러스 전 총리의 측근인 테리즈 코피 환경부 장관은 물러났고 바클레이 장관이 그 자리로 갔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번 개각에 대해 현 정권의 약점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외무 장관을 찾으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점은 정부에 인사 자원이 없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또 수낵 총리가 조기 총선을 기피할 것임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의 설문조사에서 캐머런 복귀에 관해 38%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평가했고 잘한 일이라는 답은 24%였다.
  • ‘국부론’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평전… 생애·사상 다뤄

    ‘국부론’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평전… 생애·사상 다뤄

    애덤 스미스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김광수 감수, 한국경제신문 펴냄) 이 책은 국내에서 애덤 스미스 300주년 기념 평전으로 출간됐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해 그의 전 생애와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만큼 대중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 인물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국부론의 저자’라는 것 외에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이점만 주장한 차가운 경제학자의 모습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따라서 책은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인 그의 다양한 면모와 사상을 생생하게 서술해 우리가 오해했던 애덤 스미스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했다. 또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데이비드 흄과의 만남,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남긴 강의 노트,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의 전 생애를 살펴보고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속 사상을 면밀히 추적했다. 책은 현지에서 출간 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 디애틀랜틱,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매체에서 극찬을 받았거나 최고의 도서로 선정됐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명성에 걸맞은 전기’라고 평했으며, 뉴욕타임스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것보다 더욱 비범했던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추천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그가 탄생한 후 300년이 되는 동안 기술 발달, 사회 구조 변화 등으로 사회의 모습은 달라지고 자본주의의 모습도 바뀌었지만, 오늘날에도 애덤 스미스는 이야기되고 있다”며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애덤 스미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크고, 그의 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서로 망하길 바라는 여야… 민주주의도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서로 망하길 바라는 여야… 민주주의도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1 민주 정치는 대중의 열정을 불러들이고 또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열정은 가치 있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합리적 이성으로 단련된 집단적 열정은 인간 세상에 유익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열정은 공허한 분노와 곧 이은 좌절을 낳고, 공동체로서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분열과 상처를 안게 된다. 2 정치에서 집단적 열정을 불러들이는 것을 ‘선동’이라 한다. 잘못된 체제와 맞서야 한다면 선동은 필요하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선동 없이 실천될 수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나쁜 열정을 동원하는 일도 불가피하다면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잔혹함이라는 악덕을 동원하는 것도 ‘불가피성’을 관장하는 수호신 ‘네체시타’의 후원이 있다면 공익을 위해 잘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의 선동, 즉 사적인 의도를 가진 자의 무책임한 선동은 네체시타의 다른 이름인 ‘필연의 힘’이 작용해 가혹하게 처벌받게 된다고 보았다. 합리적 토론과 조정으로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민주 정치의 책임자들 가운데 선동으로 일관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동료 시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정치하는 자들이다. 자신을 위해 대중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대중에 아첨하는 것이 일상인 그들로 인해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그들을 주기적으로 걸러내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할 때다. 3 정치란 인간 삶에서 불가피한 싸움의 문제를 전쟁의 방법이 아닌 평화의 방법으로 다루는 일을 한다. 싸움의 상대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정치의 역할은 시작된다. 그 기초 위에서 여야가 공유하는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을 공동통치라 한다. 다르지만 나눌 수 있다면 공유하는 것을 조정의 정치라 한다. 갈등적인 사안에서는 이견을 좁히려 노력하고 오해로 볼 수 없는 최종적 차이에 도달할 때는 기꺼이 타협하는 것을 교섭의 정치라 한다. 서로 물러설 수도 없는 사활적 쟁점에서는 소수의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해 비공식적인 거래조차 허용하는 것을 수용의 정치라고 한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변화의 조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정치의 현명함 가운데 하나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인류는 이런 정치의 방법으로 시민 내전 대신 좀더 자유롭고 다정하고 평등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조심스럽게 일궈 올 수 있었다. 4 흔히 팬덤 정치의 문제를 강성 시민, 강성 지지자들의 문제로 정의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가를 상대 정당의 첩자로 욕설하고 야유하는 당원들이 정치를 나쁘게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건 절반만 사실일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정치가 나빠졌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욕설 문자를 탓하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팬덤 시민, 팬덤 당원의 등장 훨씬 이전에 ‘팬덤을 필요로 하는 정치’가 선행했다는 사실, 문제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자발적인 시민 참여는 좋고 정치로부터의 대중 동원은 나쁘다는 의견도 많다. 사실이 아니다. 참여와 동원은 반대말이 아니다. 정치학의 기본 상식 가운데 하나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참여는 동원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 정치는 일종의 독과점 시장이다. 일반 시민이라는 수요자의 독립적인 역할이 있기 이전에 정당과 정치가들이 선택과 대안을 제공하는 공급자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강성 지지자나 팬덤 시민, 팬덤 당원의 지나침이 문제라면 그 이전에 그들에게 용기를 갖게 한 정치의 역할이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정치가 나쁘고 정당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시민도 대중도 당원도 얼마든지 사나워질 수 있다. 팬덤 정치는 정치를 바꾸는 문제로 접근할 일이지 시민을 바꿔야 할 일이 아니다. 정치를 좋게 하려는 자들이 흥하고 정치를 나쁘게 하는 자들이 망해야 하는 문제다. 정치가들이나 정당이 어떻게 하든 시민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 합당한 주장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자유롭고 정치가들은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할 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팬덤이라고 불리는 강성 지지자의 문제는 나쁜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문제다. 쫓아내고 절연해야 할 것은 팬덤 정치가이자 이들이 고용하고 동원한 팬덤 활동가들이며, 바꾸고 개선해야 할 것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야심을 갖게 한 정당 자신이다. 5 지금 여야는 마주 보며 정치를 하지 않는다. 서로 등을 돌려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상대를 비난하고 일러 대는 일만 한다. 그런 ‘정치 아닌 정치’를 하는 여야가 민주주의를 괴이하게 이끌고 있다. 정치 없는 민주주의 혹은 정치 대신 혐오를 주고받는 민주주의의 등장이라 정의할 만한 상황이다. 그로 인한 고통과 사회적 비용은 누가 감수하나. 정부나 정치의 도움이 필요한 중하층의 시민들이다. 중상층의 시민은 정치의 도움 없이도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득, 직업, 자산, 지위, 학력 등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한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중하층의 시민은 그렇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는 모든 일을 상대 탓으로만 돌린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묘한 심리가 있다. 현직 대통령이 일을 잘하지 못하면 전직 대통령과 야당이 너무 좋아한다. 야당의 여러 문제에 직면하면 현직 대통령과 여당이 너무 좋아한다. 여야 모두 서로가 망하기만을 바란다. 지켜보기 괴로운 일이다. 6 여당 시민, 야당 시민들 사이의 적대와 혐오의 감정은 더 격렬하다. 그들이 가진 적대와 혐오는 진심에 가깝다. 그 가운데 팬덤 대중의 적대나 혐오는 순수할 정도로 확신에 차 있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성이란 기껏해야 정념의 노예라고 했는데, 이를 바꿔 말하면 인간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는 본성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라는 뜻이다. 혐오의 정념에 이끌리는 지금과 같은 정치가 합리적 시민사회를 위한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순수한 인간은 타락도 쉽다. 그들은 이성보다는 정념에 잘 이끌리고, 같은 정념을 가진 집단에 속해서는 잘못된 의견임에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나아가 혼자 있을 때 가졌던 두려움도 쉽게 버린다. 인간은 이익을 위해서도 집단에 가담하지만 두려움을 피하고자 할 때도 그런다. 생명의 위험을 느낄 상황이 아닌데도 타자에게 과도할 정도로 공격적일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20세기 전반기 독일의 나치에 가담했던 중간계급 출신의 지지자들에게서 보았듯이 인간은 고립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자아에 투영된 혐오감을 타자화해 유대인과 집시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게 쏟아낼 수 있는 존재다. 죄책감 없는 폭력은 그 결과다. 7 아리스토텔레스는 혐오의 감정을 가리켜 자신에게서 비롯된 배설물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태도와 연관지어 설명한 바 있다. 그래야 혐오의 원천이 자기 자신임을 부정하고 나아가 혐오의 대상을 공격하고 제거하는 데 따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하고 공격하는 내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 그 대상자가 잘못의 원천이라고 여겨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을 이끌었던 사람들도 야당과 학생운동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은 정당성을 갖고 있지 못한 자신들에게서 비롯됐다. 그 때문에 야당과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겉과 달리 속이 빨간 ‘빨갱이들’로 정의하곤 했다. 남한이 아니라 북한을 이롭게 하는 존재로 타자화해야 자신들의 정당성 부재에 따른 불안감과 두려움을 줄일 수 있었다. 그 일을 이제는 ‘개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한다. 같은 당 안에서 이견을 갖는 사람들을 이적시할 때마다 겉만 파랄 뿐 속은 빨간 다른 당 사람이라는 의미로 ‘수박’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수박을 깨자는 행동의 비인간성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 전에 누군가를 향해 부역자(전쟁 중 점령당한 지역에서 점령군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협조한 자)라 하는 말은 정치가들이 먼저 썼다. 더 심하게는 귀태(鬼胎·귀신과의 성관계로 태어난 자식이란 뜻으로, 상대 당 정치인들을 가리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으로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말)나 토착왜구(자생적 친일 부역자)라는 말을 동원한 정치인들도 있었다. 이들이 없었으면 ‘개딸 현상’은 ‘별일 다 있네’ 정도로 웃어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8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이 가진 판단과 습성을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성향이 있다. 인간만이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런 성향은 민주주의에서 극대화된다. 외적 강제에 순응하기만 하면 최소한 내면의 평화는 지킬 수 있었던 권위주의 때와 달리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자유로운 만큼 그 자유를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할 때가 많다. 강요된 자유도 내면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확신할수록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더 크게 갖기 마련이다. 자기 확신에서 자유의 고양을 느낄수록 균형 잡힌 판단보다 자기 확신을 강화할 정보와 지식의 추구에 열정적인 것 역시 우리가 가진 취약함이다. 플라톤은 이런 인간의 단점이 민주주의에서 극대화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민주정의 타락은 곧 참주, 즉 대중이 사랑하는 독재자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인간의 가진 이 확신의 딜레마, 즉 독단에 쉽게 휩쓸리는 단점을 악용하는 정치가들은 많았다. 실제로 그들이 불러들인 혐오는 쉽게 전염되고, 빠르게 대중화되기도 했다. 인류가 전체주의를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듯 일이 그렇게 되면 열정적 대중도 잘못된 열정으로 세상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군대나 총칼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자들 혹은 민주주의를 오해한 자들에 의해서도 잘못될 수 있다. 9 진리란 찬반 어느 한쪽 편에 있기보다 그 사이에 있을 때가 많기에 우리에게는 합리적 토론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일당제 당, 국가 체제 대신 여야가 함께 입법부를 운영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제아무리 선한 대통령에 의한 것이든, 이념적으로 고결한 정당에 의한 것이든, 행동하는 양심과 정의감에 충만한 대중에 의한 것이든, 정치에서의 독단과 독주는 필연적으로 전제정을 낳는다. 혐오는 토론 없는 사회, 독단이 지배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치명적인 질병이다. 팬덤은 대중에게 아첨하는 정치, 혐오를 악용하는 정치가 만들어 낸 부산물이다. 인간은 다름과 차이 때문에 고통받지만 차이나 다름이 없어도 고통받는다. 인간은 언제든 추락할 수 있는 ‘날개 잃은 천사’다. 우리 사이에서 불완전한 이해로 인한 이견과 갈등은 없앨 수 없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무지의 문제’는 신이 아닌 인간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좋은 사회를 위한 인간의 노력이 좌절되는 것은 아니다. 다름과 차이가 의심과 증오, 적대를 낳게 할지 아니면 좀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의견들이 넘치는 다원 사회를 만들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10 복수의 정당 사이에서 논쟁과 조정, 타협을 거쳐 모두에게 구속력을 가진 입법과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게 하는 것이 힘은 들고 시간은 걸려도 사회를 더 잘 통합하고 공익의 증진에 더 잘 기여함을 믿고 인류가 선택한 것이 민주주의다. 하나의 옳고 정의로운 의지가 있다고 믿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보다 복수의 정견들 사이에서 잠정적 합의를 반복해 가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역시 우리가 소중하게 키워 가야 할 정치의 미래다. 우리에게는 달라도 안전할 수 있고, 느려도 길을 잃지 않으며, 침착하고 다정해도 뒤처진 느낌을 갖게 하지 않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강한 산성의 물질을 부으면 그릇을 먼저 상하게 하듯 혐오는 상대에게 도달하기 전에 우리의 영혼을 먼저 파괴한다. 그렇듯 팬덤 정치도 혐오하고 깨뜨리고 싶은 상대를 아프게 만들기 이전에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먼저 무너뜨린다. 우리가 그 길을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정치발전소 학교장
  • [열린세상] 전장연 시위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생각의 차이/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전장연 시위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생각의 차이/유창선 정치평론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가 한창일 때 86세대 부모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그 정도 불편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준석이 전장연을 비난할 때만 해도 장애인들 편에 섰던 MZ세대들이 왜 우리를 상대로 투쟁하느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당장 자신들의 출근길을 막는 행동에 대한 분노 앞에서 거창한 담론은 무력하다. 데이비드 흄도 “내 손가락에 상처를 내기보다 온 세계가 파멸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해서 이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인성론’)라고 하지 않았던가. 당장 내 손가락이 아프니 전장연 시위에 대한 입장이 갈라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의 상황을 놓고도 여론은 둘로 갈라졌다. 유가족협의회 대표들은 “진상 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독립적인 조사 기구에 의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특별수사본부의 ‘꼬리 자르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반대로 유가족들과 야당의 주장이 과도하다며 비판하는 반대 의견들도 많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은 막상 그렇게 복잡할 것이 없는데도 세월호 참사와 동일한 것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고위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는 성격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두 개의 생각은 각기 절반씩의 진실을 담고 있다. 전장연 시위도, 이태원 참사도 진실과 해법은 상반된 양쪽 주장 사이의 어디쯤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나 양쪽 극단에 있는 목소리만 들려올 뿐 그사이에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중간 지대에 존재하는 의견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환경에서는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는 내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고 애도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양극단으로 치달았다. 한쪽에서는 진상 규명을 하라고 요구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월호를 그만 이용하라고 맞섰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분열이 심화됐던 시간은 재난의 정치화에 대한 반면교사다. 음모론에 휘둘려 8년이 넘도록 아홉 차례의 조사와 수사 끝에 내린 결론이 고작 “알 수 없다”였던 사실은 정념이 이성을 누른 결과였다. ‘차이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질 들뢰즈에게 ‘차이’는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동일한 그림들의 반복이 아니다. 모네의 눈에 보이는 수련마다 물, 흙, 빛, 공기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모네는 그때마다 다른 수련의 모습들을 반복해서 그린 것이다. 수련들에게 차이가 없으면 모네는 더이상 수련을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다양한 차이들은 인간의 창의적 행위를 낳는 내적 에너지가 된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다양한 생각의 차이들은 그 사회를 살아 있게 만든다. 아무리 숭고한 이념과 대의를 내걸었던 사회도 하나의 생각으로 획일화됐을 때 결국 활력을 잃고 죽어 간다. 그 결과가 사회의 몰락이었음은 인류 역사의 경험들이 말해 준다. 문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를 대하는 방식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악마의 생각’으로 낙인찍는다고 그 생각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아쉽게도 우리 공동체의 해법은 대개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의 지대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모두의 성에 차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우리만의 정의에 대한 배타적 의식보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한 오늘이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노벨 문학상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노벨 문학상

    문학 하면 우리는 으레 시와 소설을 떠올린다. 당연히 노벨 문학상도 시인, 소설가에게만 수여하는 것인 줄로 알기 일쑤다. 토마스 만(1929), 헤르만 헤세(1946), 오에 겐자부로(1994) 등이 얼른 떠오른다. 2020년 수상자 루이즈 글릭도 미국 시인이다. 2016년 수상자인 밥 딜런은 그의 ‘노래’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부 ‘전문 문학인’들이 ‘가수’의 노벨상 수상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서양 문학의 원조 호메로스 역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노래 부른 가수였으니, 반대한 사람들만 협량해 보일 뿐이다. 사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에는 ‘전문 문학인’ 아닌 인물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상(1953)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물론 역사 저술이다. 독일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은 ‘로마사’(1902)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또한 역사 저술로 분류된다. 어디 역사뿐일까. 독일 관념론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1908),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927),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950)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의 선정 범주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영어권 학자 171명이 참여해 집필한 전 18권, 1만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케임브리지 영문학사’(1907~1921)에는 셰익스피어, 존 밀턴과 나란히 에드워드 기번(역사학자),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데이비드 흄, 벤담과 공리주의자들(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정치학자), 애덤 스미스(경제학자) 등에게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시와 소설만이 문학이 아니란 의미다. 정치학, 철학, 경제학의 위대한 저술도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문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아마도 이게 글로벌스탠더드일 것이다. ‘한국 문학사’에도 이런 광폭 행보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의 범주가 너무 협소한 건 아닐까. 우리의 협소함이 문학에 국한된 것일까. “의자에 앉아 글귀나 짓는 시인은 대단한 시는 결코 짓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건대 진정한 시인의 내면에는 정치가, 사상가, 입법자, 철학자의 자질이 잠재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사상가인 토머스 칼라일의 ‘시인’에 대한 정의다. 문학에 대한 놀라운 찬사다. 이 찬사에 걸맞게 문학의 꽃은 더 위대하게 피어나야겠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벨파스트 평화협정 설계하고 견인한 존 흄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벨파스트 평화협정 설계하고 견인한 존 흄

    “진정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말로 전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3일(이하 현지시간) 향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굿프라이데이 협정) 설계자인 존 흄 북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SDLP) 전 대표가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여러 해 치매를 앓았던 흄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일찍 고향인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의 오웬 모르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영국 BBC 등이 보도했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존은 남편이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이자 형제였다”면서 “그는 매우 사랑을 받았으며, 가족은 그의 부재를 매우 깊이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런던데리와 벨파스트에 분향소가 차려진다. 장례 미사는 5일 오전 11시 30분 런던데리의 세인트 유지니 성당에서 거행된다. 흄 전 대표는 벨파스트 평화협정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98년 4월 10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버티 아언 아일랜드 총리의 중재로 북아일랜드 신·구교도 정파 사이에 체결됐다. 이 협정으로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주장해 온 구교계와 영국 잔류를 고수해 온 신교계가 1969년 이래 계속된 유혈 분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흄은 1970년 구교파 온건 정당인 SDLP 창설을 주도했으며, 1979년부터 2001년까지 대표를 맡았다. 그는 SDLP 대표로 선출된 이래 일관되게 “대화를 통한 대타협”을 주장하는 등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북아일랜드 구교도들이 폭탄과 총기를 버려야만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꾸준히 설득했다. 그는 비폭력 운동을 통해서만 영국으로부터 독립이라는 구교도들의 염원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흄 전 대표는 강경 노선을 추구한 북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Sinn Fein)의 제리 애덤스 대표와 대화를 시작했고, 이것이 물꼬가 돼 1994년 휴전과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IRA는 살해 협박을 했고 IRA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신페인과의 타협은 안된다고 거칠게 반대했다. 이같은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같은 해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이자 얼스터연합당(UUP)의 대표인 데이비드 트림블과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흄 전 대표의 별세 소식에 영국과 아일랜드 정치인들은 한 목소리로 애도를 표했다. 콜룸 이스트우드 SDLP 대표는 “존 흄의 죽음은 20세기 아일랜드의 가장 위대한 정치적 인물을 잃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미홀 마틴 아일랜드 총리는 “그는 위대한 영웅이자 진정한 중재자”라고 평가했고,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민주연합당(DUP)의 알린 포스터 대표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거인”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존 흄은 정치적 거인으로 미래가 과거와 똑같을 것이라는 믿음을 거부한 선지자”라며 “북아일랜드 평화에 대한 그의 공헌은 대단한 일로 계속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그가 평화를 위해 기나긴 전쟁과 싸워왔다며 애석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선택한 무기들은 비폭력, 인내, 다정함과 사랑이었는데 이를 흔들리지 않고 지켜냈다. 영예로움을 간직하며 북아일랜드의 모든 어린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온갖 어려움에 맞서 행진했다. 난 1995년 런던데리의 밤, 광장과 골목에는 희망에 찬 얼굴들이 가득했던 때와 거의 20년 뒤 평화의 다리를 그와 함께 건너며 우리가 나눈 모든 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고인과 함께 SLDP를 창당한 오스틴 쿠리, 미셸 마틴 타오이시치(아일랜드 총리직), 아를렌 포스터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석 장관 등도 추모의 뜻을 밝혔다. 애덤스는 “정치 지도자라면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좁은 정파적 이해를 넘어 폭넓은 사회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이들이 상투적인 정치적 비난에 움츠러들 때 존 흄은 평화를 위한 손실은 감수할 줄 아는 용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트림블 역시 고인이 목적을 평화적으로 추구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던 지도자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주말엔 과학] 아인슈타인 상대성 원리에 ‘영감’ 준 사람은 100년 전 철학자 흄

    [주말엔 과학] 아인슈타인 상대성 원리에 ‘영감’ 준 사람은 100년 전 철학자 흄

    최고의 천재라 하더라도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리는 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과학천재로 일컬어지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사실 어떤 철학자에게서 받은 영감 때문이라는 사실이 최근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발견된 아인슈타인의 편지에서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으로, 이 편지에는 1905년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직전에 데이비드 흄의 '인간의 본성 (Treatise of Human Nature)'에 푹 빠져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 나온다. 물리학자들은 이 편지에 대한 평가에서, 흄의 질문이 아니었더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흄은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역사가, 경제학자로, 자연주의와 회의론에 관한 그의 철학은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인간의 본성'은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기 61년 전인 1738년에 처음 출판되었으며, 과학의 맥락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추상적 추론의 대척점에 있는 주요한 반대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에서 파생된다. 일상생활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는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심오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서 볼 때... 그것들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상대성 이론은 바로 흄의 이러한 개념을 이론화한 것으로 획기적인 제안이었다. 시간과 공간은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이 편지는 1915년 12월에 씌어진 것으로, 수신자는 빈 대학의 물리학 교수 모리츠 슐릭이었다. 이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흄의 작업이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당신이 정확하게 지적했다시피, 이러한 일련의 사상들이 나의 상대성 이론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에른스트 마흐와 데이비드 흄의 인식론은 내가 깊은 존경심을 갖고 공부한 것으로, 이를 통해 나는 인식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연구 없이는 해결책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발견한 에딘버러 대학의 데이비드 퍼디 교수는 영국 '텔레그래프' 지에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나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아인슈타인의 모든 논문을 읽었지만 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인슈타인의 오래된 편지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 잊혀졌던 이 편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다른 누구보다도 흄이 자신을 고무시켰다고 말했다. 100년 전,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살았던 누군가가 아인슈타인에게 그런 영향을 미쳤을 수 있었다니, 정말 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1900년대 초반, 스위스에서 동료 과학자, 철학자들과 같이 만든 독서 모임인 올림픽 아카데미에서 데이비드 흄의 저작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정의란 침해행위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

    정의란 침해행위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

    정의에 대하여/애덤 스미스 지음/정명진 옮김/부글/232쪽/1만 3000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세상을 떠난 뒤 공개적으로 전해진 책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에서 강의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두 권뿐이었다. 스미스는 지인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죽으면 ‘국부론’을 제외한 모든 원고를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100여년이 흐른 1895년 스미스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 남긴 노트가 발견됐다. 책은 바로 그 노트에 적힌 강의 중 ‘정의’와 관련된 내용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책은 정의의 목적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족과 국가의 구성원으로 사람이 당할 수 있는 침해 행위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고 밝히면서 시작된다. 곳곳에서 공법과 가정법, 사법에 대한 스미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봉건법이 왕권의 약화가 아닌 강화로 인해 생겨났으며 기술과 상업의 발달은 군주가 아닌 귀족의 권력만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형사 소송의 경우 사람들의 분노 때문에 법의 처벌을 더욱 서두르게 된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이와 함께 그는 잉글랜드의 법 중에서도 공평한 배심에 관한 조항이 칭송을 받을 만하다고 소개한다. 배심원단의 상당수는 피고인에게 거부당할 수 있는데 만약에 사법 집행관이 불공평하다는 의심이 든다면 피고인은 배심원단 전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 이유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법원이 판단한다. 그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이 제도보다 우수한 것은 없다고 소개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캐나다 로키의 속살을 만나다 쿠트니 로키

    캐나다 로키의 속살을 만나다 쿠트니 로키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캐나다의 로키가 아니다. 과거 일확천금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인 캐나다 골드러시의 중심지였던 쿠트니 로키는 이제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독특한 겨울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100년이 넘은 알파인 마을들에서 로키의 속살을 만났다. 캐나다의 동서를 잇는 기찻길이 만나다 쿠트니 로키 여행은 크레이겔라히Craigellachie에서 시작되었다. 캐나다의 동서를 잇는 기찻길, 캐네디언 퍼시픽 레일웨이Canadian Pacific Railway는 1885년 이 작은 도시에서 완성됐다. 각각 동쪽과 서쪽에서 출발한 기찻길이 바로 이 도시에서 만난 것이다. 크레이겔라히에 오기 위해 밴쿠버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 만에 켈로나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야 크레이겔라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나 먼 길을 왔지만 여전히 브리티시컬럼비아주였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캐나다를 동서로 잇는 기찻길이라니 그 길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180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골드러시 시대에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채굴된 각종 광물들을 옮기기 위해 설치된 이 기찻길은 아직까지도 캐나다의 주요 화물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철로의 마지막 못이 박힌 장소는 ‘라스트 스파이크Last Spike’라는 이름의 명소가 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화물열차가 지나는 기찻길 옆에서 마지막 못을 박는 기념사진을 찍고, 기찻길이 지나는 모든 캐나다 주州의 이름이 적힌 기념비도 구경한다. 100년이 지나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대륙을 가로질러 운반했을 기찻길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Revelstoke레벨스톡 인간과 자연이 만나 역사를 만들다 기찻길이 완성되었다는 도시를 지나 기찻길 덕분에 생겨났다는 또 다른 도시를 찾았다. 레벨스톡은 1880년대 캐네디언 퍼시픽 레일웨이CPR가 개통되면서 형성된 도시로 도시의 이름 역시 자금난을 겪던 CPR을 구제하고 선로를 개통시킨 영국의 귀족, 레벨스톡경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간이 만들어낸 열차와 광산업으로 도시가 성장했지만 레벨스톡의 자연환경은 사람들에게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겨울에는 1m가 훌쩍 넘게 쏟아지는 눈 때문에 눈을 털어내기 쉬운 양철지붕을 고집해야만 했고 높은 산에서 일어나는 눈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하지만 100년이 넘게 이 산간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연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법을 점차 터득했다. 현재 레벨스톡에는 캐나다눈사태협회 본부가 설치되어 전국의 눈사태를 예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눈이 많은 환경을 적극 활용해 겨울 스포츠의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 함께해 온 도시에는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과자집 사이를 걷는 달달한 산책 레벨스톡은 100년이 훌쩍 넘은 도시이기에 다운타운 역시 그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여느 알파인 타운과 마찬가지로 뾰족한 지붕을 가진 과자집 모양의 주택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레벨스톡을 상징하는 그리즐리 베어의 동상이 우뚝 서서 방문객을 환영한다.마을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레벨스톡 박물관에 가보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작은 박물관은 오래된 우체국 건물을 수리해서 사용하고 있다. 32년째 레벨스톡에서 살고 있다는 아담한 체구의 캐시 할머니가 안내해 주시는 박물관에는 처음 미 대륙의 서부를 탐험하며 컬럼비아강을 따라 지도를 그렸던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son의 발자취와 1920년대 캐나다의 스키점프 챔피언인 넬스 넬슨Nels Nelson의 활약상도 담겨 있다. 박물관을 나와 다운타운의 메인 거리를 걷다 보면 작은 로컬 커피숍과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있다. 눈이 많은 산악 마을인지라 따뜻한 커피 혹은 런던 포그London Fog 한 잔이면 차갑게 얼어붙은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런던 포그는 홍차에 거품을 많이 낸 따뜻한 우유를 넣고 바닐라 시럽을 첨가한 달달한 음료로 이 지역 커피숍에서는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저녁에는 이 지역의 로컬 맥주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레벨스톡에서 잘 보이는 커다란 설산, 마운틴 벡비Mt. Begbie의 이름을 딴 맥주는 100% 천연원료로 만드는 이 지역의 맥주이다. 빙하에서 녹아 내려온 물을 사용해선지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산악 마을에서의 식사 메뉴로는 엘크 혹은 바이슨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로컬 와인과 함께 생전 처음 먹어 보았던 스테이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레벨스톡 박물관315 First Street West, Revelstoke, BC V0E 2S0 월~금요일 10:00~17:00, 토 11:00~17:00, 일 휴무일반 CAD5, 60세 이상 & 청소년 CAD4, 가족 CAD12(12세 이하 무료)+1 250 837 3067 www.revelstokemuseum.ca Woolsey Creek Bistro600 Second St West, Revelstoke, BC V0E매일 17:00 오픈바이슨 CAD27, 엘크스테이크 CAD29www.woolseycreekbistro.ca ▶Theme Park놀라움이 가득한 유령마을 쓰리밸리 고스트 샤토Three Valley Ghost Chateau 유령마을. 이름만 들어도 오싹해진다. 챙 넓은 카우보이모자에 가죽점퍼를 입은 백발노인이 마을 입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더욱 무서울 것이다. ‘세 개의 계곡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이름이 붙여진 쓰리밸리 고스트 샤토는 사실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는 3성급 호텔이다. 하지만 호텔보다 더욱 유명한 것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고스트타운이다. 1800년대 후반 이후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자 번성했던 광산타운들은 유령도시가 됐다. 지역의 유지이자 유명한 수집광이었던 고든 벨Gordon Bell은 사라지는 유산들이 안타까워 크고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건물까지 수집하기에 이르렀다고. 각 지역에서 오래된 교회, 상점 건물들을 하나씩 옮겨 와 골드러시 당시의 마을을 복원하여 테마파크처럼 만들었다. 기찻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이기에 북미에서 가장 크다는 기관고와 6개의 열차도 수집했다. 20여 개의 올드카가 시대별로 차고를 가득 채우고 있고 각각의 건물 안에는 당시에 사용되던 숟가락부터 오래된 가구까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컬렉션이 가득하다. 혹시라도 이 소중한 공간에 화재가 일어날까 염려되어 아예 타운 내에 소방서까지 마련해 둔 이 수집가의 열정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쓰리밸리 고스트 샤토 4월 중순~10월 중순 성인 CAD12, 청소년(12~17세) CAD7, 어린이(6~11세) CAD5, 가족 CAD30(5세 이하 무료) +1 250 837 2109 www.3valley.com 가이드였던 백발노인 셰인은 수집가의 오랜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그는 옛 기차역을 복제하여 만든 고스트타운의 입구 앞에서 나무로 만든 투박한 피리로 기차 경적 소리를 들려주었다. 달리지 않는 기차가 머무는 고스트타운의 경적 소리가 사방으로 겹겹이 둘러친 로키 산맥까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여유롭게 만나는 로키의 속살 마운트 레벨스톡 국립공원Mount Revelstoke National Park는 국립공원치고는 작은 규모에 속하지만 주변 산세와 컬럼비아강Columbia River을 따라 자리 잡은 레벨스톡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191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그 역사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잘 관리된 도로가 산 정상까지 놓여 있어 누구나 레벨스톡에서 차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정상을 5분 정도 남겨 놓은 지점부터는 생태환경 보존을 위해 개인 자동차의 출입을 제한한다. 그 때문에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타고 올라가거나 20분 정도의 트레킹을 해야만 했다. 바늘같이 뾰족하게 솟은 침엽수들이 하늘을 향해 촘촘하게 뻗어 있는 사이로 짧은 산책을 했다. 아침의 공기가 갓 떠 놓은 약수처럼 아삭했다. 코로 한껏 들이마시니 겨울 냄새가 났다. 곧 하얗게 눈이 덮일 것만 같은 느낌. 해발 1,933m의 정상에 올라가니 산불을 관찰하기 위한 작은 관망대가 있다. 레벨스톡산 정상에서 보는 로키 산맥은 평평하고 넓으며 각 산맥의 봉우리들이 제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해발 2,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에는 천년만년 녹지 않는 빙하가 있다. 또 다른 국립공원인 글래시어 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의 새하얀 봉우리가 레벨스톡산 정상에서 바라다보인다. 빙하를 따라 시선을 조금만 내려 보면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 고스란히 땅을 드러내고 있는 알파인 그리고 침엽수들이 대부분인 서브알파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쿠트니 로키 지역은 고산 초원지대Alpine Meadow가 많아 가파른 코스를 피해 여유롭게 트레킹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따뜻한 계절에는 초원 가득 피어나는 야생화가 아름다워 세계 각지의 하이커들과 사진가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마운트 레벨스톡 국립공원 국립공원은 1년 내내 개방하지만, 몇몇 구간과 안내시설은 눈이 많은 10월에서 5월 사이는 운영하지 않는다. 트레킹을 하고 싶다면 매일 업데이트되는 홈페이지의 트레일 컨디션 리포트Trail Condition Report를 확인하자. 어른 CAD7.8, 어린이 CAD3.9, 가족(최대 7인) CAD19.6 +1 877 737 3783 www.pc.gc.ca(‘Mount Revelstoke National Park’ 검색) ●Nelson넬슨 깊은 산 속 작은 샌프란시스코 “곧 미니사이즈의 골든게이트브릿지가 보일 거예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말 ‘금문교’가 나타났다. 호수가 좁아지는 길목을 연결하는 커다란 오렌지색 다리는 크기도, 색깔도, 모양도 샌프란시스코의 그것과 닮았다. ‘커다란 오렌지색 다리Big Orange Bridge’를 줄여 ‘밥B.O.B’이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넬슨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히피들의 성지라는 별명을 가진 넬슨은 쿠트니 로키에서 가장 젊고 예술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음악, 미술, 영화 등 예술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라면 찾고 싶어질 넬슨의 다운타운에는 크고 작은 아트숍, 캐나다의 현대 팝이나 포크음악을 즐길 수 있는 소규모 공연장, 중고 책이나 음악CD 등을 판매하는 오래된 서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는 넬슨을 가장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자전거 투어. 그냥 자전거보다는 오르막길을 쉽게 오를 수 있는 전기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가장 좋다. 핸들의 버튼만 눌러도 앞으로 쌩 나가고 오르막길에서 힘을 쓰지 않아도 되니 타는 재미가 있다. 넬슨 자전거 투어의 백미는 호수를 따라가는 자전거 길이다. 넬슨의 랜드마크인 밥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고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에서 공놀이를 하는 캐나다 가족도 만나 볼 수 있다. 여름에는 호수에서 카약 등 수상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넬슨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는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다. 예술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넬슨은 독특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두 베이커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베이커 스트리트의 한 카페에서 발견한 빙고게임이 도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설명해 준다. 길 쪽으로 난 테라스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며 빙고판에 적힌 장면을 볼 때마다 체크해서 빙고를 만드는 게임이다. 빙고판에는 요가매트, 머리를 묶은 남자, 깃털귀걸이, 음악페스티벌 입장권 팔찌 등 지극히 히피스러운 장면들이 담겨 있다. 쿠트니 로키에 살고 있다는 가이드 앤디에게 이 빙고판을 보여 주자 넬슨의 이미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며 웃는다. 넬슨은 넬슨만의 매력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도 존중받을 수 있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매력. ▶Hotel유령과 함께하는 파티의 밤 흄 호텔Hume Hotel 넬슨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으스스한 매력이다. 지하묘지가 있다는 소문부터 시작한 무서운 이야기는 오렌지색 다리를 건너자마자 위치하고 있는 오래된 흄 호텔로 이어진다. 무려 1898년에 만들어져 100년이 넘은 호텔은 오랜 시간만큼이나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론 보수와 개조를 거쳐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지만, 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와 오래된 엘리베이터, 미로처럼 뻗어 있는 비밀통로들이 세월을 드러낸다. 이러한 호텔의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흄 호텔에서는 가끔 손님들을 위해 호텔 곳곳에 숨겨진 비밀의 방들을 둘러보는 유령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호숫가를 따라 운행되는 오래된 트램은 1년에 한 번 핼러윈 때가 되면 유령 트램으로 변신한다. 넬슨에서 활동하는 ‘초자연적현상연구회’는 핼러윈마다 넬슨 시내를 돌아다니며 각 명소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령 투어를 진행한다. 흄 호텔 422 Vernon Street, Nelson, BC V1L 4E5 +1 250 352 5331 www.humehotel.com ●Heli-skiing & Cat-skiing차원이 다른 겨울스포츠의 천국 쿠트니 로키의 겨울스포츠는 차원이 다르다. 잘 다져진 스키 슬로프와 곤돌라가 아닌, 아무도 없이 고요한 설원 한가운데, 자연이 만들어 놓은 슬로프를 따라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 쿠트니 로키는 캐나다에서도 헬리스키Heli-skiing와 캣스키Cat-skiing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슬로프 없는 곳에서 내려오는 백 컨트리 스키가 더욱 일상적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하얀 설산, 헬리스키 헬리콥터를 타고 설산을 올라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헬리스키는 모든 스키어의 로망이다. 처음 헬리스키에 대해 상상했을 적엔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 영상에서 본 것처럼 헬리콥터에서 직접 뛰어내려야 하나 하고 걱정을 했지만 그건 오해였다. 아직 스키 시즌이 아니라 헬기투어만 하고 돌아왔지만,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로키 산맥 사이를 날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실제 헬리스키를 하게 되면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헬리콥터가 착륙할 때 날리는 눈보라의 장관도 멋지지만 헬리콥터에서 내린 후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음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가 헬리콥터가 사라지면서 찾아오는 설산의 고요함을 만나게 된단다. 쿠트니 로키에는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헬리스키 코스가 있다. 망설여지는 이유가 가격이라면 그룹의 크기별로 다양한 헬리콥터가 있어서 비용부담도 줄일 수 있단다. 신개념 스키여행, 캣스키 캣스키는 요즘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스포츠로 캣Cat이라고 불리는 설원용 전동차를 타고 산을 올라 백 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것이다. 최대 14명 정도의 스키어가 탈 수 있는 이 전동차 내부에는 따뜻한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캣스키의 장점은 한 번 나가서 여러 코스를 돌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한 번 출동하면 코스 길이에 따라 다르지만 3~4회 정도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 캣스키의 가장 큰 장점은 헬리스키처럼 자연의 설산 위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 더 많은 인원이 함께 이동할 수 있기에 금액을 나눠서 부담하기도 좋다. 다른 코스로 이동하는 시간에 차 안에서 따뜻한 음료도 즐길 수 있으니 더욱 좋다. ▶Tip쿠트니 로키에서 스키 즐기기 뭉치면 더 즐거운 스키 타기쿠트니 로키에는 스키 리조트가 많고 각각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다. 차를 렌트한다면 이동이 어렵지 않으니 일정 내내 하나의 리조트에 있기보다는 여러 개의 리조트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슬로프를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헬리스키나 캣스키를 탈 때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그룹을 만드는 것이 좋다. 실력이 비슷해야지만 그에 알맞은 코스를 선택할 수 있고 모두 함께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가이드가 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스키를 떠나기 전 가이드와 원하는 일정과 코스를 충분히 상의하자.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노천온천 쿠트니 로키는 겨울스포츠만큼이나 노천온천도 유명하다. 낮에는 설원에서 겨울을 만끽하고 밤에는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스키 리조트 근처에는 온천 리조트가 있으므로 둘 중 한 곳에 묵으면서 오고가면 된다. 스키를 타지 않아도 괜찮아, 헬리투어 꼭 스키를 타야지만 헬리콥터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봉우리 가까이로 다가가 빙하를 구경할 수 있는 헬리투어는 쿠트니 로키의 아름다운 광경을 하늘 위에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겹겹이 둘러싼 산맥 사이로 빙하가 녹아 만들어낸 맑은 호수와 작은 마을들은 마치 장난감 세상을 둘러보는 듯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파일럿이 전해 주는 산 봉우리에 얽힌 전설이나 마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30~40분 정도 비행할 수 있다. ▶travel info AIRLINE쿠트니 로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알버타주, 그리고 미국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밴쿠버 혹은 캘거리에서 켈로나 혹은 크랜브룩으로 국내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넬슨을 방문하고 싶다면 밴쿠버에서 캐슬가로 가는 방법이 제일 가깝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에어캐나다가 인천-밴쿠버 직항편을 운행 중이다. TRANSPORTATION캐나다횡단고속도로Trans-Canada Highway 1번이 캐네디언 퍼시픽 레일웨이CPR: Canadian Pacific Railway를 따라 쿠트니 로키를 지나간다. CPR은 화물열차로만 운영되고 있어 차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적설량이 많을 때를 제외하면 도로 사정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카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캐나다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루트라 이용이 쉽고 가격도 무료다. CAFE오소 네그로Oso Negro커피 로스터이자 카페인 오소 네그로는 이 커피맛을 찾아 쿠트니 로키 곳곳에서 원두를 사러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독특한 구조의 정원과 건물 장식으로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단델리온 라떼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료로 민들레 가루를 넣은 라떼다. 604 Ward Street, Nelson, BC osonegrocoffee.com/cafe 에스프레소 CAD2, 민들레라떼 CAD2.75 HELI-TOURS하이 테라인 헬리콥터High Terrain Helicopters넬슨의 외곽에 비행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코카니 빙하Kokanee Glacier와 발할라 마운틴Valhalla Montain 투어를 할 수 있다. 4인승 작은 헬리콥터부터 10인승의 헬리콥터까지 여러 대를 구비하고 있으며 벌써 25년째 운영 중인 베테랑이다. 3인부터 탑승이 가능하며 가격은 30분 투어에 1인당 CAD199부터다. www.htheli.com SKI RESORT레벨스톡 마운틴 리조트Revelstoke Mountain Resort레벨스톡 시내와 가깝고, 가장 최근에 생긴 편이라 신식 시설을 갖춘 스키 리조트다. 52면의 스키 슬로프가 존재하고 가장 긴 슬로프는 15.6km에 달한다. 해발 1,713m까지 리프트로 올라갈 수 있는 데다 산을 둘러싸고 내려오는 완만한 슬로프가 있어 초보자도 산 정상에서부터 내려오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레벨스톡에서는 거의 2,000km2에 달하는 대지에서 헬리스키나 캣스키를 즐길 수 있다. 2950 Camozzi Rd, Revelstoke, BC +1 250 814 0087 www.revelstokemountainresort.com HOT SPRING할씨온 핫스프링 Halcyon Hot Springs로키 산맥과 호수를 비경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노천온천은 굉장히 로맨틱하다. 온수 자쿠지가 두 개, 냉수 자쿠지가 하나 있으며 커다란 수영장도 갖추고 있다.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온천을 즐길 수 있으며 탈의실과 샤워실도 크고 넓다. BC-23, Nakusp, BC +1 250 265 3554 www.halcyon-hotsprings.com 아인스워스 핫스프링Ainsworth Hot Springs산 중턱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인스워스 리조트의 온천은 동굴이 있어 독특하다.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동굴 속에 온천을 만들었기에 스팀이 빠져나가지 않아 더욱 따뜻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1회 입장권 혹은 하루 이용권을 구입할 수 있다. 3609 Highway 31. Ainsworth Hot Springs, BC +1 250 229 4212 www.hotnaturally.com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윤지민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keepexploring.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생각하는 존재로 아름다운 행성에 사는 모험 누렸다”

    “솔직히 두렵지만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느낀다.” 미국의 존경받는 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올리버 색스(82)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뒤 신문에 기고한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컬럼비아대 의대 임상심리학 석좌 교수인 색스는 지난 19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나의 삶’이란 글에서 9년 전 수술받았던 안암(眼癌)이 간으로 전이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털어놓으며 이제 인생을 정리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불과 몇 주 전 이 같은 선고를 받았다며 안암이 전이될 확률은 2%로 매우 희박했는데 불행하게도 자신이 그렇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편지를 쓴 동기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쓴 단편 자서전. 색스는 자신이 존경하는 흄이 생전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글로 인생을 정리한 데 착안해 편지를 썼다고 적었다. 이어 “(내가) 흄보다 훨씬 오래 살며 많은 것을 이뤘지만, 흄과 결정적인 부분에선 차이가 난다”고 고백했다. 색스는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글을 더 많이 쓰고, 힘이 남아 있으면 여행하고, 새로운 깊이의 사고와 통찰력을 기르려 한다”며 “이제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일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결국 나는 인식이 있는 존재, 생각을 하는 동물로 이 아름다운 행성에 살 기회가 주어졌다”면서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특혜와 모험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글을 맺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재벌들 일단 세금부터 더 내 쓸 곳도 당신들이 정하면 돼”

    저자의 제안 가운데 흥미로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경쟁’ 민주주의 대신 ‘일치’(Concordare)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경쟁 민주주의란 지금처럼 선거에서 승리한 이들이 정권을 배타적으로 차지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일치 민주주의는 선거 득표율에 따른 권력 분점을 뜻한다. 가령 대선에서 A후보가 60%, B후보가 40%의 지지를 얻었다면 내각의 40%를 B후보 정당에다 떼주는 것이다. 외교·국방은 A후보의 정당에서, 재정·보건은 B후보의 정당에 맡기는 방식 같은 것이다. 이런 제안을 내놓는 이유는 권력을 배타적으로 부여하다보니 정치가 극단적인 말과 이념 쇼를 통해 상대를 매도하는 소모적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진보, 보수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비웃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경쟁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다수결 사상은 정당이 지금보다 명확한 세계관과 어느 정도 서로 다른 체제사상으로 차이가 있던 시절에서 기인한 것”인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차이를 보이는 정당이 있기는 할까 싶은 현 상황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전봇대 뽑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하겠다고 요란을 떨더니 결국 재벌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음미해볼 법하다. 또 하나는 증세에 대한 얘기다. 저자는 부자나 재벌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 증세하되 증가분이 어디에 쓰일지는 그들에게 맡겨두자고 제안한다. 가령 5% 증세를 해서 세수가 10조원 증액된다고 하자. 정부는 이 10조원이 쓰일 곳이 적힌 리스트를 공개한다. 무상급식이나 보육비 지원 사업, 학교폭력 예방 사업, 영어 공교육 지원 사업, 소상공인 보호 사업 하는 식이다. 그러면 A그룹 회장은 자기가 더 내는 세금 가운데 일부는 여기에, 다른 일부는 저기에 사용하도록 지정토록 하고 그에 맞게 집행한다. 이는 이익 분배가 겉으로는 경제논리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논리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다. ‘회장님’들은 꼭 검찰청이나 법원을 드나든 뒤 사회공헌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좋다는 사회공헌임에도 대개의 반응은 “일단 세금부터 똑바로 내시지.”라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의 제안은 기부금과 세금 사이의 타협이다. 세금이라는 국가 공식 체계를 존중하되, 납세자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오해는 말길. ‘내 행복에 꼭 타인의 희생이 필요할까’(리하르트 프레히트 지음, 한윤진 옮김, 21세기북스)는 이런 심각한 문제만 다루진 않는다. 2008년 한국에 소개된 ‘나는 누구인가’라는 교양철학서로 인기를 모았던 저자는 경제학이 상정하는 이기적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반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인간의 본성은 이타적이며, 사회제도는 이 이타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죄수의 딜레마’의 게임이론 덕분에 철학, 뇌과학, 신경학, 심리학, 생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에까지 이 논쟁은 번졌다. 이들 학문들을 연결해 복잡계 연구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나오면서 전방위로 뻗어나가고 있다. 책에도 이는 고스란히 반영됐다. 책은 모두 38장인데, 각 장마다 이런저런 이론과 실험이 최소한 2~3가지씩 등장한다. 저자에게 고마운 점은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글쓰는 철학자답게 이를 매끄럽게 정리해뒀다는 사실이다. 곳곳에 위트도 넘친다. 가령 꼬리말이원숭이 실험결과를 두고 인간 본성에 정의감이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다 이렇게 말한다. “아들은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 ‘아빠, 이건 옳지 않아요’라는 말로 나를 공격했다. 그 불공평의 대상은 나다. 아들은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그때까지 즐거웠던 베개 싸움이 불공평하다고 한다. 대게 네 살에서 다섯 살의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꼬리말이원숭이의 정신이 나타난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것을 정의감이라 불렀다.” 그래서 책을 덮을 때 떠오르는 인물은 알랭 드 보통이다. 적당한 지적허영에다 이런저런 실험결과를 핵심만 추려 잘 던져주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가 독일 사람이어서인지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섬세하고 장황한 문장 대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한다. 동시에 복잡계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산타페연구소 대신, 영장류에 대한 학제간 연구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등장한다. 저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끌어들이지만 본격적 논쟁은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에서 시작한다. 다윈의 오른편에 ‘사회적 다위니즘’을 주장한 토머스 헉슬리를, 왼편에 ‘상호부조론’을 통해 헉슬리를 강하게 비판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을 앉힌다. 보통 아나키스트하면 ‘국가 없이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책 없이 낭만주의적인 공상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각종 실험 결과들이 크로포트킨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는 사실을 지적해나간다. 인간 본성이 이타적이냐, 이기적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한 지적유희가 아니다. 앞서 봤듯 오늘날 한국 사회에 음미할 대목이 많다. 가령 ‘감성 대 이성’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2001년 심리학자 조나단 화이트의 연구결과를 등장시킨다. 그 결과를 보면 ‘나꼼수’ 김어준이 지난해 내놓은 ‘닥치고 정치’(푸른숲 펴냄)에서 ‘무학의 통찰’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던, 이성이란 결국 감정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맞닿는다. 인간이 경제에 대해 윤리와 도덕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배후세력의 조종’이나 ‘좌파 관점으로 덧칠된 경제·역사교과서’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으로서의 ‘직관’ 때문이다. 또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찬양하는 바람에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한 미국에 대해 저자는 “21세기임에도 여전히 19세기적 비스마르크 사회개혁입법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웃는다. 이는 “미국이 역사가 짧아서 그렇지 결국은 유럽을 따라갈 것”이라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자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박사의 판단과 맥을 같이한다. 김종인 박사는 독일 유학파인데, 유학 당시 독일은 질서자유주의(책에서는 ‘신자유주의’라 표기된다)가 대세를 장악했다. 저자는 31장 ‘프라이푸르크로 돌아가는 길’에서 질서자유주의의 본산 프라이푸르크학파를 다룬다. 2만 2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인간 심연 들여다본 심리 서적 3권] 의심이 열어준 새세상

    [인간 심연 들여다본 심리 서적 3권] 의심이 열어준 새세상

    신이 없는 세계, 종교적 확실성을 잃은 이 혼란하고 불안한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음 둘 곳 없는 현대인 덕에 신경정신과 병원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남과 여가 짝을 맺듯 도시인들은 전담 슈링크(shrink·정신분석의)를 둔다. 심리학을 다룬 책들이 봇물 터지듯 하고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한다. 의심, 고독, 거짓말, 속임수 등 갈래는 다르지만 인간 심리의 바닥을 들여다본 책들을 모았다. ‘의심의 역사’(제니퍼 마이클 헥트 지음, 김태철·이강훈 옮김, 이마고 펴냄)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2600년 동안 동서양의 종교적 의심을 연대기적으로 살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과학사를 전공한 저자는 그리스신화에서부터 유대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계 각 지역종교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추적하며 믿음의 역사 이면에 가려진 의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모교에서 예술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역사상 최초의 의심은 2600년 전의 일로서 모든 신앙보다 오래되었다. 신앙은 멋진 것일 수는 있겠지만 유일한 멋진 것은 아니다. 의심은 신앙 못지않은 생동감으로 좋은 삶을, 열정으로 진리를 처방해 왔다. 많은 기준으로 판단하건대, 의심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이 책은 그 성공의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방황하는 인간은 주로 신을 찾는다. 절망에 처했거나 환희에 빠진 자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도 ‘오, 신이시여’다. 프로타고라스의 책 ‘신에 관하여’는 오직 첫 문장만 남아있지만 그 위력은 대단하다. “나는 신이 존재한다, 안 한다 말할 수 없다. 어떤 모습인지도 말할 수 없다. 그 앎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너무 많은데, 그중 논의 대상이 불분명하고 인간 삶이 너무 짧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이 책 때문에 프로타고라스는 신성 모독으로 기소되었고 재판 전에 바다 건너 시칠리아로 도망가다가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심의 역사는 종교 역사의 네거티브 상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실체 없는 역사의 그림자는 아니다. 종교적 거장들이 위대한 말로 세계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면, 의심도 성실하게 진리를 추구해 왔다. 믿음에 거룩한 성인과 순교자들이 있다면 의심에도 소크라테스에서 스티븐 호킹까지 당대의 권력과 사회통념에 도전함으로써 역사를 진전시켰던 위대한 ‘의심의 영웅’들이 있다. 우리의 삶은 불공정하다. 우리는 정의를 갈망하지만, 세상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별 이유도 없이 벌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불의의 문제는 많은 신앙인을 회의에 빠지게 한 민감한 주제였다. 근대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신이 악을 막아내고자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면 신은 무능하다. 능력은 있는데 그럴 의향이 없다면 신은 악하다. 능력도 있고 의향도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고 의심했다. 저자는 여기서 성서 가운데 ‘욥기’를 의심의 텍스트로 다시 읽는다. 욥은 선량한 사람으로 신에게 축복받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신은 그의 신실함을 놓고 사탄과 내기를 벌인다. 욥에게 갖은 박해를 가하던 신이 욥을 꾸짖고 다시 선물을 주어 화해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인간에게는 정의가 있지만 신에게는 없다. ‘욥기’는 이런 정의 없는 세계에 대한 체념의 우화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현대 작가 엘리 위젤은 홀로코스트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장 사랑받던 어린아이를 게슈타포가 데리고 가 목매달아 죽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을 보고 누군가가 “도대체 지금 신은 어디 있는가?”라고 말하자 위젤은 중얼거린다. “그는 지금 이곳에 목매달려 있다.” 저자는 우리가 정말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의심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지혜, 지식, 친구, 가족에 헌신하고 지역사회, 돈, 정치, 쾌락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속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마음을 열고 정신을 맑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심하고 변화를 기대하고 죽음을 수용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항상 바보처럼 살라.”(Stay foolish)고 말했다. 그도 아인슈타인처럼 가장 위대한 의심가였다. 2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베토벤·헨리8세… 유명인 34명의 연서

    ‘당신 생각뿐이오(My thoughts go out to you)/나의 불멸의 연인(My immortal beloved)/나는 당신과 함께라야만 살 수 있다오.(I can live only wholly with you or not at all.)/그대를 사랑하는 루트비히로부터’ 지난해 여름 개봉된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는 주인공 캐리가 연인 빅에게 읽어준 베토벤의 연애편지다. 이 편지의 출처가 된 책은 ‘위인들의 연애편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책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영화 제작을 위해 만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피카도르 출판사의 부발행인이었던 어슐러 도일은 연애편지 원본을 찾아냈고, 영화 속 책을 현실에서 펴냈다. 이것이 ‘나는 당신의 심장으로 살고 싶습니다’(원제 Love Letters of Great Men, 안기순 옮김, 라이프맵 펴냄)이다. 책은 유명인사 34명이 연인에게 쓴 편지들을 소개한다. 영화에 나온 베토벤의 편지를 비롯해 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데이비드 흄이 부풀레 부인에게,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에게,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빅토르 위고가 아델 파우처에게, 다윈이 엠마 웨지우드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그들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 질투, 갈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1만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길섶에서] 신독(愼獨)/노주석 논설위원

    은사의 좌우명이 신독(愼獨)이라는 사실을 그 분의 저서를 통해 알게 된 이후부터 이 말을 곱씹게 됐다.‘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가 ‘대학(大學)’에 나오는 신독의 뜻풀이다. 이 말이 얼마나 따라하기 어려운지 고통스럽다. 후회될 때도 많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오성에 대한 연구’에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요, 이성의 동물이지만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갈파했다. 사실 혼자 있을 때 온갖 유혹의 노래에 솔깃해지곤 하는 나를 본다. 지켜보는 시선이 없다고 느낄 때 나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감정의 노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누가 듣거나 말거나 ‘도리’를 지킬 수 있다면 군자나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도리어 실천하는 과정이 신독이 아닐까. 신독이라는 단어를 뇌까리는 순간 삼가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깃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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