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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제재에 꽁꽁 묶인 ‘체 게바라의 나라’, 완전히 멈췄다…끝없는 ‘대정전 늪’ [월드픽]

    美 제재에 꽁꽁 묶인 ‘체 게바라의 나라’, 완전히 멈췄다…끝없는 ‘대정전 늪’ [월드픽]

    [월드픽 3줄 요약]● 쿠바에서 올해 들어 여섯 번째이자 최근 한 달 사이에만 네 번째 대정전이 발생해 전력 공급이 전면 차단됐다.● 미국의 봉쇄 조치로 외부 원유 공급에 차질을 빚는 가운데 발전 시설 노후화까지 겹쳐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 전력망 완전 복구에 최대 100억 달러(약 14조 5천억 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미국의 제재로 외화벌이가 막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고강도 경제 제재와 에너지 봉쇄 속에서 쿠바의 국가 전력망이 다시 한번 완전히 붕괴했다. 한 달 사이에만 벌써 네 번째, 올해 들어 여섯 번째 대정전이다. 설비 노후화에 기름마저 떨어져 국가 전체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 달 새 4번 붕괴…일상마저 멈춰 선 쿠바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쿠바 전력청은 전날 밤 11시쯤 국가전력망 전체의 전력 공급이 완전히 차단됐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달 6일 이후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네 차례나 전력망이 다운되는 등 최근 들어 전력난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 갇힌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산업 시설 가동이 중단된 것은 물론, 민생 경제마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원유 부족률 60%…미국 제재에 자금줄도 ‘꽁꽁’ 쿠바 전력난의 근본 원인은 심각한 원유 부족이다. 쿠바의 하루 원유 필요량은 약 10만 배럴에 달하지만, 자체 생산량은 필요한 양의 40%(약 4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부족한 60%는 외부 수입에 의존해야 하지만, 미국의 촘촘한 봉쇄 조치로 유조선 입항마저 끊기다시피 한 실정이다. 쿠바 정부에 따르면 최근 7개월 동안 들어온 유조선은 단 한 척에 그쳤다. 여기에 고철과 다름없는 발전 설비가 한계를 드러내며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력청은 정전 직후 “전력망 재가동을 위한 긴급 프로토콜을 적용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복구비만 최대 14조원…‘땜질 처방’도 한계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노후화된 전력 설비를 완전히 교체하고 전력망을 복구하는 데는 최대 100억 달러(약 14조 300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외화벌이의 핵심 축이었던 관광업과 의료 서비스 수출길이 모두 막히면서 쿠바 정부는 복구 자금을 마련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 [세종로의 아침] 스페인 대정전의 교훈

    [세종로의 아침] 스페인 대정전의 교훈

    지난해 4월 스페인에서 발생한 초유의 대정전 사태는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겼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대정전의 원인이었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에너지원 다변화 못지않게 전력망의 안전성과 계통 운영에 대한 관리와 투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철저한 대비’다. 대정전 발생 두 달 뒤인 지난해 이맘때 기획 취재를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를 찾았다. 의외로 덤덤한 시민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이 멈춘 최악의 사태를 겪은 시민들은 “시스템을 믿고 기다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뒤집지 않았고, 대신 전력망 투자와 계통 안정성 강화라는 후속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똑같은 일이 민족성과 산업 구조가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고 상상해 봤다. 전력당국 수장 교체는 물론 정치권의 국정조사 추진, 줄 잇는 손해배상 소송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고착화된 원전파와 재생에너지파 간 갈등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공장이 멈춰 서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 그중에서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을 보며 스페인의 사례가 떠올랐다. 호남 프로젝트의 성공 조건은 인재와 용수, 전력을 뜻하는 ‘인수전’(人水電)이라고 한다. 전력만 놓고 보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6.3GW(기가와트)가 필요할 전망이다. 스페인 대정전 당시 단 5초 만에 전력망에서 사라진 전력이 15GW였으니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규모다. 정부는 호남 지역에 반도체 팹을 들이는 배경 중 하나로 풍부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들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사례에서 확인했듯 재생에너지로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것과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출렁이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뒷받침할 전력망과 저장장치, 예비전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순간적인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면 피해 규모는 스페인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 있다. 24시간 가동이 필수인 첨단 반도체 공정에서는 찰나의 멈춤조차 치명적이다. 2018년 평택 공장 정전 사고 때 단 28분 가동 중단에 약 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단순 환산하면 1분당 약 18억원이다. 2019년 화성 사업장에서도 1분가량 정전으로 수십억원의 피해가 났다. 2021년 한파로 사흘간 전력 공급이 끊긴 미국 오스틴 공장은 정상 가동까지 약 한 달이 걸렸고, 피해 규모는 약 5500억원에 달했다. 지난달 30일 광주를 찾은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원전 확대 및 LNG(액화천연가스) 열병합발전도 반드시 추진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호소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최우선 과제로 ‘속도’를 내세웠다. 국민보고회 개최 후 일주일 만에 광주 군공항 부지를 입지로 선정했고, 2030년 반도체 양산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 구축 속도전만큼 중요한 것은 필요한 시점에 막대한 전력을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느냐다. 더 중요한 것은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다. 더불어민주당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신규 원전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화했다. 하지만 주민 수용성과 환경단체 반발 등을 넘어 목표 시한 내 완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도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정부는 ‘인수전’의 핵심 퍼즐인 안정적인 전력망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전력망의 붕괴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한 번 무너지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철저한 대비 없이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했던 스페인 대정전의 교훈은 명확하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장진복 산업부 기자(차장급)
  • 문학 향한 진심, 진정성으로… 출판의 세계에 발 디뎠다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문학 향한 진심, 진정성으로… 출판의 세계에 발 디뎠다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출판은 이 거대한 우주에 절대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2019년 문학 전문 출판사 ‘무제’를 차린 영화배우 박정민(38)이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문학계는 반신반의했다. ‘배우 인지도로 적당히 돈 벌다가 빠지겠지.’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이런 시선은 이제 다 거두어진 듯하다. 어엿한 출판사 사장으로 문단을 종횡무진 누비며 진정성을 내보이고 있어서다. 이미 그에게 마음을 연 작가들도 여럿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와 책을 파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한다”며 제법 출판인 같은 말도 한다. 문학으로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박정민을 만났다. “많은 분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체감해요.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혼자서 작게 하고 싶은 거 만들고 있었는데, 이제 출판과 문학이라는 세계 안쪽으로 살짝 들어온 느낌이에요. 출판계 선배나 독자들이 저한테 기대하는 것도 생겼을 테죠. 괜한 책임감이 들어요. 안 그래도 되는데.” ●첫 장편 ‘첫 여름…’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박정민을 올해 문학·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라고 소개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제에서 처음으로 펴낸 소설인 김금희의 장편 ‘첫 여름, 완주’를 단숨에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난 6월 역대 최고 흥행을 거둔 서울국제도서전의 배경에도 박정민과 무제가 있었다. 그를 보기 위해 무제의 부스를 찾은 관람객은 도서전 내내 장사진을 이뤘다. ‘첫 여름, 완주’의 성공으로 무제는 ‘배우 박정민’의 사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앞으로 3~4권의 책은 여유롭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작은 출판사인 만큼 치열한 명분과 이야기가 필요해요. ‘배우 박정민인데, 저희랑 책 냅시다’ 하는 건 멋이 없죠. 좋은 글을 대형 출판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줘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작가들을 설득할 수 있겠죠. 그게 기획입니다. 앉아서 씨름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하되 ‘감각을 열어 두는 것’이 중요하죠.” ●시각장애인 아버지께 바친 ‘듣는 소설’ ‘첫 여름, 완주’의 성공 뒤에는 박정민의 내밀한 이야기가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아버지를 위해 ‘듣는 소설’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는 진심. 이 소설이 종이책으로 출간되기 전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온 이유다. 진심에서 비롯된 기획은 그 어떤 인위적인 마케팅보다 힘이 세다. 박정민은 이날 인터뷰가 끝난 뒤 서울맹학교로 향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듣기 위해서다. 소설 출간 이후 박정민은 꾸준히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을 만나며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보완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요즘엔 신문 기사와 출판을 접목하기 위해 열심히 스크랩하고 있단다. “대정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산업적으로 문학이 넷플릭스를 이기긴 어렵겠죠. 하지만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내밀한’ 게 있어요. 영상과 달리 소설 속 장면은 저마다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잖아요. 개인적이죠. 들인 시간도 더 길어서 한 권 한 권이 소중하죠. 글자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게 신기해요.” ●내가 좋아하는 책 재밌게 만들고 싶을 뿐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박정민이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띠지에 쓴 이 문장은 아마 올해 문학 시장을 요약하는 펀치라인이 될 듯하다. 띠지에 힘입은 ‘혼모노’는 최근 몇 주간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박정민은 웃으면서 “다른 출판사(창비) 좋은 일만 한 것 같다”며 억울해했다. 농담과 과장이 섞인 문장이지만 그리 간단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산업으로서 문학이 처한 위기의 본질과 그걸 돌파할 해법의 실마리가 담긴 아포리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계간 문예지 2종 정도는 꼭 챙겨 본다는 박정민이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가는 함윤이다. 지난 6월 나온 신작 ‘소도둑 성장기’를 재밌게 봤단다. 서울신문 신춘문예(2022년) 출신 작가를 호명해 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박정민은 “그렇습니까” 하며 멋쩍어했다. 무제는 다음달 말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정잡배가 잔잔한 호수에 끼어든 형국이죠. 하지만 모르니까 용감한 부분도 있죠. 문학인으로서 고귀한 책임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재밌는 책을 예쁘게 만들고 싶어요. 모르니까 좌충우돌할 수 있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보면서 독자들에게 책을 한 발짝 더 가까이 소개하고픈 마음입니다.”
  •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발전보다 심각한 송전 위기 자립발전 비결은 철저한 대비 훈련 전력수요 확대 속 정전, 남의 일 아냐 재생에너지 확대 따른 대책 필요 모든 것이 멈췄던 스페인·포르투칼 대정전 발생 두 달여만인 지난 2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국도를 타고 북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자 웅장한 절벽 아래 거대한 수력발전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두에로강(Duero River) 상류에 위치한 ‘알데아다빌라 댐’이다. 이 발전소는 대정전 당시 불과 2~3분만에 발전기를 가동시켜 스페인 전역에 전력을 재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발전소 직원 이반 베레스씨는 “자립 시동 시스템인 ‘블랙 스타트’를 통해 빠르게 전력을 가동할 수 있었다”며 “우리가 스페인을 살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요 도시가 길게는 18시간 동안 암흑에 갇혀 있는 동안 이 발전소 인근 마을은 3시간 안에 일상을 되찾았다. 작은 시골 마을 알데아다빌라 데 라 리베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리아 비센테 로페스씨는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됐는데 이곳 주민들은 금방 평온을 되찾았다. 냉장 보관 음식도 전혀 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이들이 빠르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대비다. 발전소는 1년에 한 번씩 정전 대비 비상 훈련을 이어왔다. 베레스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외부 전력을 차단한 채 긴급 발전 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고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블랙아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충분한 대비 없이 전력망을 운영하다가 대정전을 맞은 스페인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력망이 고립돼 있고 에너지 전환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에게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미스터리 였던 정전 원인은 ‘과전압’…전조 증상 있었다 스페인 정전 이후 원인을 둘러싸고 기후 이상설, 사이버 공격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과전압 현상을 지목했다. 사라 아헤센 친환경전환·인구변화대응부 장관은 “전력망 내 과전압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전력망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발표했다. 서울신문 현지 취재와 스페인 정부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종합하면 정전은 4월 28일 낮 12시 30분쯤 시작됐지만, 이전부터 전조 증상이 있었다. 우선 사건 발생 며칠 전 전압 이상 현상이 감지됐다. 정전 전날인 4월 27일 오후 8시쯤 스페인 전력망공사 REE(Red Electrica Espanola)는 전압 제어를 위해 준비된 10기의 화력발전소 중 1기가 다음날 가동이 어렵다고 통보받았다. 그러나 REE는 이를 대체할 발전소를 확보하지 않은 채 사고 당일 9기만 돌렸다. 정전 당일에는 이밖에도 다른 여러 징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오전에는 전압 변동이 평소보다 더욱 심하게 나타났으며, 낮 12시 32분부터 전압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50㎐를 유지해야 하는 주파수가 급락했다. 과전압에 의한 발전기 탈락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생에너지 탓” VS “낙후 전력망 탓”…치열한 물밑 공방 재생에너지 확대가 대정전을 불렀는지를 놓고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인 ‘간헐성’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전력망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스페인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7년 32.5%에서 2024년 56.8%로 늘었다. 정전 사고 직전 스페인 전역의 전기 출력 비중은 태양광이 53%, 풍력 11%, 원자력·가스는 15%를 차지했다. 국민당(Partido Popular)을 비롯한 보수 야권은 정부가 국민을 볼모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실험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신문이 만난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시각에 선을 그었다. 태양광산업협회 크리스티나 토레스 케베도 규제 담당 이사는 “재생에너지 기반이 확대돼 정전이 일어났다면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는 있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물밑에선 책임 공방이 더 치열하다. REE는 재생에너지와 민간 전기회사에,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낙후된 전력망에, 전기회사들은 REE에 서로 화살을 돌린다. 정전 피해 규모는 최대 45억 유로(약 7조 3000억원)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에 비해 전력망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이 재생에너지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전력망 현대화에는 30센트를 투자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70센트를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의 하비에르 브레이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화 발명가가 살아 돌아온다면 현재의 통신망 체계는 알아볼 수 없겠지만,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이 부활한다면 스페인의 전력망 시스템을 금방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휴대전화로 결제하고 동영상을 볼 정도로 통신망이 발전했지만, 전력망은 발전원이 다양해졌는데도 과거 석탄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 후퇴 대신 전력망 강화 총력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할까?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재생에너지 정책은 단 1㎜도 뒤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81% 달성 목표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신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강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현장에선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저장·출력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확대 등 대안에 대한 고민도 엿보였다. 풍력산업협회 헤이키 윌스테트 메사 에너지 정책 담당 이사는 “2022년까지만 해도 ESS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지만 태양광·풍력발전 비중이 높아지면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해졌다”며 “정전을 통해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 기로 한국, 만반의 대비 태세 갖춰야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정전이 일어난다면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전력소비량은 588TWh(테라와트시)로, 스페인 245TWh를 훨씬 웃돈다. 스페인은 정전 이후 유럽 다른 나라와의 전력망 연결을 강화키로 했지만 위로는 북한, 주변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전력망은 완전 고립 상태다. 유사시 다른 나라로부터 1㎾(킬로와트)의 전력도 공급받을 수 없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기준 우리나라의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3년 8.4%에서 2030년 18.8%, 2038년 29.2%로 높아진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커진다”며 “전력망 확충과 안정성 강화에 대폭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성윤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가야 할 길”이라며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책이 중점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전력망 안정성·회복력 강화 안간힘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정전을 겪은 스페인은 후속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내 과전압 현상으로 대정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력 시스템 운영기업의 의무 강화 ▲전력망 및 저장설비에 대한 투자 확대 ▲국가 간 전력망 연계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전 당시 과전압 상황에서 ‘무효전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 무효전력은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전력으로, 가정 등에 전기 에너지로 공급되는 유효전력과 반대 개념이다. 이에 스페인은 전력 운영 규정을 개정해 허용 전압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무효전력의 발생 또는 흡수를 유지하도록 했다. 과전압 또는 저전압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스페인 정부는 우선 전력망의 안정성 및 회복력 강화에 방점을 둔 ‘왕령법령(Real Decreto-ley) 7/2025’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 법안은 국가시장 및 경쟁위원회(CNMC)와 전력망 공사(REE·Red Electrica Espanola)의 발전 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CNMC와 REE는 각각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전력의 역할을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긴급 상황 발생 시 전력 당국이 전력계통과 발전소를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저장장치(ESS) 설치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간소화된다. ESS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설비다. 기존 재생에너지 설비에 저장 시설을 추가할 경우 행정 처리 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된다. 민간 싱크탱크인 레노바블레스 재단의 이스마엘 모랄레스 기후 정책 책임자는 “재생에너지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력계통에 통합될 수 있도록 송전 인프라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페인 정부는 유럽연합(EU) 차원의 전력망 공동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포르투갈, 모로코 등 인접 국가와의 전력망 연계율을 높일 방침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모든 것이 멈췄던 스페인·포르투칼 대정전 발생 두 달여만인 지난 2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국도를 타고 북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자 웅장한 절벽 아래 거대한 수력발전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두에로강(Duero River) 상류에 위치한 ‘알데아다빌라 댐’이다. 이 발전소는 대정전 당시 불과 2~3분만에 발전기를 가동시켜 스페인 전역에 전력을 재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발전소 직원 이반 베레스씨는 “자립 시동 시스템인 ‘블랙 스타트’를 통해 빠르게 전력을 가동할 수 있었다”며 “우리가 스페인을 살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요 도시가 길게는 18시간 동안 암흑에 갇혀 있는 동안 이 발전소 인근 마을은 3시간 안에 일상을 되찾았다. 작은 시골 마을 알데아다빌라 데 라 리베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리아 비센테 로페스씨는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됐는데 이곳 주민들은 금방 평온을 되찾았다. 냉장 보관 음식도 전혀 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이들이 빠르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대비다. 발전소는 1년에 한 번씩 정전 대비 비상 훈련을 이어왔다. 베레스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외부 전력을 차단한 채 긴급 발전 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고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블랙아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충분한 대비 없이 전력망을 운영하다가 대정전을 맞은 스페인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력망이 고립돼 있고 에너지 전환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에게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미스터리 였던 정전 원인은 ‘과전압’…전조 증상 있었다 스페인 정전 이후 원인을 둘러싸고 기후 이상설, 사이버 공격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과전압 현상을 지목했다. 사라 아헤센 친환경전환·인구변화대응부 장관은 “전력망 내 과전압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전력망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발표했다. 서울신문 현지 취재와 스페인 정부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종합하면 정전은 4월 28일 낮 12시 30분쯤 시작됐지만, 이전부터 전조 증상이 있었다. 우선 사건 발생 며칠 전 전압 이상 현상이 감지됐다. 정전 전날인 4월 27일 오후 8시쯤 스페인 전력망공사 REE(Red Electrica Espanola)는 전압 제어를 위해 준비된 10기의 화력발전소 중 1기가 다음날 가동이 어렵다고 통보받았다. 그러나 REE는 이를 대체할 발전소를 확보하지 않은 채 사고 당일 9기만 돌렸다. 정전 당일에는 이밖에도 다른 여러 징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오전에는 전압 변동이 평소보다 더욱 심하게 나타났으며, 낮 12시 32분부터 전압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50㎐를 유지해야 하는 주파수가 급락했다. 과전압에 의한 발전기 탈락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생에너지 탓” VS “낙후 전력망 탓”…치열한 물밑 공방 재생에너지 확대가 대정전을 불렀는지를 놓고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인 ‘간헐성’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전력망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스페인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7년 32.5%에서 2024년 56.8%로 늘었다. 정전 사고 직전 스페인 전역의 전기 출력 비중은 태양광이 53%, 풍력 11%, 원자력·가스는 15%를 차지했다. 국민당(Partido Popular)을 비롯한 보수 야권은 정부가 국민을 볼모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실험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신문이 만난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시각에 선을 그었다. 태양광산업협회 크리스티나 토레스 케베도 규제 담당 이사는 “재생에너지 기반이 확대돼 정전이 일어났다면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는 있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물밑에선 책임 공방이 더 치열하다. REE는 재생에너지와 민간 전기회사에,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낙후된 전력망에, 전기회사들은 REE에 서로 화살을 돌린다. 정전 피해 규모는 최대 45억 유로(약 7조 3000억원)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에 비해 전력망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이 재생에너지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전력망 현대화에는 30센트를 투자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70센트를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의 하비에르 브레이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화 발명가가 살아 돌아온다면 현재의 통신망 체계는 알아볼 수 없겠지만,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이 부활한다면 스페인의 전력망 시스템을 금방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휴대전화로 결제하고 동영상을 볼 정도로 통신망이 발전했지만, 전력망은 발전원이 다양해졌는데도 과거 석탄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 후퇴 대신 전력망 강화 총력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할까?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재생에너지 정책은 단 1㎜도 뒤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81% 달성 목표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신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강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현장에선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저장·출력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확대 등 대안에 대한 고민도 엿보였다. 풍력산업협회 헤이키 윌스테트 메사 에너지 정책 담당 이사는 “2022년까지만 해도 ESS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지만 태양광·풍력발전 비중이 높아지면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해졌다”며 “정전을 통해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 기로 한국, 만반의 대비 태세 갖춰야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정전이 일어난다면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전력소비량은 588TWh(테라와트시)로, 스페인 245TWh를 훨씬 웃돈다. 스페인은 정전 이후 유럽 다른 나라와의 전력망 연결을 강화키로 했지만 위로는 북한, 주변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전력망은 완전 고립 상태다. 유사시 다른 나라로부터 1㎾(킬로와트)의 전력도 공급받을 수 없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기준 우리나라의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3년 8.4%에서 2030년 18.8%, 2038년 29.2%로 높아진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커진다”며 “전력망 확충과 안정성 강화에 대폭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성윤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가야 할 길”이라며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책이 중점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전력망 안정성·회복력 강화 안간힘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정전을 겪은 스페인은 후속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내 과전압 현상으로 대정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력 시스템 운영기업의 의무 강화 ▲전력망 및 저장설비에 대한 투자 확대 ▲국가 간 전력망 연계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전 당시 과전압 상황에서 ‘무효전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 무효전력은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전력으로, 가정 등에 전기 에너지로 공급되는 유효전력과 반대 개념이다. 이에 스페인은 전력 운영 규정을 개정해 허용 전압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무효전력의 발생 또는 흡수를 유지하도록 했다. 과전압 또는 저전압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스페인 정부는 우선 전력망의 안정성 및 회복력 강화에 방점을 둔 ‘왕령법령(Real Decreto-ley) 7/2025’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 법안은 국가시장 및 경쟁위원회(CNMC)와 전력망 공사(REE·Red Electrica Espanola)의 발전 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CNMC와 REE는 각각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전력의 역할을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긴급 상황 발생 시 전력 당국이 전력계통과 발전소를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저장장치(ESS) 설치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간소화된다. ESS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설비다. 기존 재생에너지 설비에 저장 시설을 추가할 경우 행정 처리 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된다. 민간 싱크탱크인 레노바블레스 재단의 이스마엘 모랄레스 기후 정책 책임자는 “재생에너지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력계통에 통합될 수 있도록 송전 인프라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페인 정부는 유럽연합(EU) 차원의 전력망 공동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포르투갈, 모로코 등 인접 국가와의 전력망 연계율을 높일 방침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정쟁 외풍에 멈춰 선 韓풍력, 에너지굴기 바람 탄 中풍력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정쟁 외풍에 멈춰 선 韓풍력, 에너지굴기 바람 탄 中풍력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미국 땅 뚫고, 대만 바람 탈 때… “해외 자본 안 돼” 우물 안 한국美알래스카주 LNG 프로젝트 가동대만 풍력발전 구글과 전력 계약국내선 ‘자본 국적’ 따지며 혐오 조장“무조건 반대 오히려 개발 속도 늦춰” ‘54시간’. 중국 광둥성의 한 해상풍력발전기 제조 공장에서 12메가와트(㎿)급 발전기에 쓰이는 118m 길이의 블레이드(날개)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근로자 150여명이 동시에 투입돼 조립라인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듯 거대한 블레이드를 찍어내고 있었다. 블레이드의 탄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등을 일일이 손으로 붙였는데, 그 정교함과 안전성은 유럽에서도 인정한다고 했다. 이 공장은 지난해에만 총 1500개의 블레이드를 제작해 국내외 발전단지에 공급했다. 최대 출력이 여전히 8㎿급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풍력발전기 생산 능력과 대비됐다. 7월 초 서울신문 기획취재팀은 중국과 미국, 스페인, 대만을 찾았다. 에너지 패권을 노리는 국가이거나 에너지 안보에 사활을 거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전력 생산 현장에서 목격한 공통점은 에너지 전환이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국 정부는 탄소 중립을 목표로 구체적인 에너지 백년대계를 세웠으며, 이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산업계는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과 설비 역량 강화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신규 에너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기업들은 이를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에너지 수급 불안은 에너지원 다변화와 최적의 에너지 믹스로 극복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거듭했지만, 안타깝게도 에너지 안보는 뒷걸음질쳤다. 에너지원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흥청망청 전기를 쓰는 보기 드문 국가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개발은 15년째 제자리걸음을 했고 원자력발전은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며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미국의 “드릴, 베이비 드릴!” 미국 알래스카주 북극해와 인접한 유전지대 프루드호베이. 송유관·가스관이 거미줄처럼 펼쳐진 이곳에는 무려 567개의 시추 현장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첫날 이곳 동쪽에 있는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시추공’을 뚫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주민 달리아(24)는 “천연자원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천연자원 개발 카드를 꺼내 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스페인, 대정전 트라우마 극복 안간힘 단 5초 만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28일 스페인에서 15기가와트(GW)의 전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대정전이 발생했다. 초유의 블랙아웃은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았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시민 호르헤 디아스(22)는 “일상의 마비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라고 했다. 대정전 사태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던 전력계통 안정성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스페인은 전력망 및 저장 설비 투자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만, 국토 전체 분산 에너지 특구로 대만의 타이중 지역에 위치한 구글 데이터센터는 지난 3월 펑먀오1 해상풍력발전단지와 495㎿ 규모의 전력 구매계약을 맺었다. 데이터센터와 발전단지 간 거리는 35㎞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도 인근 창화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전기를 공급받는다. 대만 서해안을 자동차로 달려 보니 200~300m 간격으로 늘어선 수많은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었다. 전력 수요가 있는 곳에 발전소를 설치해 국토 전체가 ‘분산 에너지 특구’가 돼 가는 모습은 수도권이 지방에서 생산된 모든 전력을 빨아들이는 한국과 비교됐다. ●재생에너지 트랙레코드조차 없는 한국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느닷없이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체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6.8%에서 2021년 27.4%로 오히려 늘었다.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디기만 하고 수입에 의존하는 LNG 가격이 오르면서 원전 의존도가 커진 탓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출범과 동시에 친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을 180도 바꿨다. 동해안을 온통 원자력발전소로 채울 기세였지만 정작 3년 내내 신규 원전 입지조차 선정하지 못했다. 두 정부 8년간 ‘원전 공방’을 벌이는 사이 우리 여건상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태양광과 해상풍력은 후퇴했다. 문 정부가 재생에너지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던 태양광발전은 윤 정부 들어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다. 토종 해상풍력 업체들은 해외 자본과 기술 없이는 10㎿급 이상의 발전기 하나 세우지 못하면서 자본의 국적을 따지며 혐오를 조장했다. 입찰 때마다 “중국 자본은 안 된다”, “유럽 자본만 어부지리를 봤다”는 등의 마타도어만 펼칠 뿐 정작 우리 힘으로 이룬 트랙레코드(실적)는 전무한 실정이다. 장연재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자본의 에너지 안보 위협이나 국부 유출은 별도 인허가 절차로 대응할 수 있다”며 “무조건적인 반대가 오히려 개발 속도를 늦춘다”고 말했다. 시작은 비슷했던 해상풍력… 中에 143배 뒤처져정권 따라 에너지 정책 오락가락‘블랙록’ 2년 만에 발전사업 허가윤석열 정부에서 답보 상태에 놓였던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최근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에 사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지만, 업계에선 정권 따라 뒤바뀌는 에너지 정책 기조에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이 위태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블랙록이 자회사인 크레도오프쇼어를 통해 추진 중인 전남 신안군 해상의 총 2GW(기가와트) 규모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했다. 최초 발전사업 허가를 신청한 지 2년여 만이다. 산업부는 그동안 재무 능력, 계통 연결 어려움, 주민 수용성 문제 등을 이유로 불허 또는 심의 보류 결정을 내렸다. 업계에선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에야 비로소 사업 허가가 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재생에너지 정책에 미온적이었던 전 정권 탓에 그동안 사업이 진척을 못 냈다는 이야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 초 해상풍력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다만, 5년 후에 다른 성격의 정부가 들어서면 사업이 순항할 거란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국내 해상풍력발전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해상풍력발전은 2010년 이명박 정부의 해상풍력 추진 로드맵을 통해 처음 거론됐는데, 여기에는 3단계(1단계 100MW·2단계 900MW·3단계 1.5GW)에 걸쳐 2019년까지 총 2.5GW 규모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백지화됐다. 10년 뒤인 2020년 1단계 설비 계획에도 한참 못 미치는 60MW 규모의 서남해 해상풍력발전 단지가 건립된 게 해당 로드맵의 유일한 성과다. 2010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중국의 해상풍력 설비는 올해 기준 한국(0.3GW)의 143배인 42.9GW로 확대됐다. 영국 15.6GW(52배), 독일 9.0GW(30배), 네덜란드 5.4GW(18배), 대만 3.0GW(10배) 등 경쟁국들은 모두 다 초격차 상태로 한국에 앞서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기후변화로 세계 인프라 재해 급증… 법 바꿔서라도 온실가스 감축해야”

    “기후변화로 세계 인프라 재해 급증… 법 바꿔서라도 온실가스 감축해야”

    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 끌어내“정부, 구체적 감축 목표 제시를”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 인프라를 뒤흔드는 현상은 갈수록 늘어날 겁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윤세종 변호사는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을 마비시킨 대규모 정전 사태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기온 변화로 인해 공기 흐름이 송전탑에 이상 진동(유도 대기 진동)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언론 분석이다. 윤 변호사는 “2022년 프랑스에서는 가뭄으로 원전 절반이 멈췄고, 2021년엔 한파로 미국 텍사스에서 대정전이 발생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인프라 재해는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도 상당 기간 이상기후가 계속되기에 ‘타임라인 불일치’가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대학 시절부터 환경법에 관심이 많았던 윤 변호사는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에서 근무하다 2022년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도 내로 억제하자’는 뜻을 담은 플랜1.5를 설립했다. 윤 변호사는 활동가가 된 이유에 대해 “법조인은 이미 있는 법을 해석해야 하는데, 온실가스를 감축할 실효성 있는 법 자체가 없었다”며 “그래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정부의 안이한 기후 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헌재는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구체적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며 내년 2월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이 소송은 아시아 최초 기후 소송인 데다 초등학생 등 어린이들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윤 변호사는 헌재 결정이 ‘종착역이 아닌 문제를 확인시킨 시작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 세대에 기후변화를 떠넘기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전가하는 일임을 지적한 판결”이라며 “정부가 내년에는 반드시 2030~2050년 구체적인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달 말 전력수급경보 가능성… 재택근무 때 ‘블랙아웃’ 될라

    이달 말 전력수급경보 가능성… 재택근무 때 ‘블랙아웃’ 될라

    올여름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폭염과 경기 회복에 따른 산업생산 증가로 전력 수요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8년 만에 전력수급경보가 발령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순환 정전 같은 여름철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탈원전·탈석탄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국무총리 주재 현안조정회의에서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심의·확정했다고 밝혔다. 산업부에 따르면 여름철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 이달 4주차의 전력 예비력은 4.0∼7.9GW(기가와트), 예비율은 4.2~8.8%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다음달 2주차에도 전력 예비력은 4.8~8.3GW, 예비율은 5.1~9.1%로 전망된다. 예비력은 최대 공급전력에서 최대 수요치를 뺀 값으로, 전력수요 변동이나 수요 예측 오차, 발전기 고장 등에 대비해 확보해야 하는 전력이다. 예비율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력보다 추가 여유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나타낸다. 예비력과 예비율이 낮으면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다. 폭염 등으로 산업부의 상한 전망이 현실화되면 전력 예비력(7월 4주차 4.0GW)은 2012년 2.8GW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지난해 여름 전력 예비력은 8.9GW, 예비율은 9.9%였다. 평균 기온과 최고 기온, 폭염 일수 등 모든 부문에서 폭염 기록을 경신한 2018년 여름의 예비율은 7.7%였다.예비력이 5.5GW 밑으로 내려가면 전력수급경보가 발령된다. 예비력에 따라 준비(5.5GW 미만), 관심(4.5GW 미만), 주의(3.5GW 미만), 경계(2.5GW 미만), 심각(1.5GW 미만)으로 구분된다. 경계 단계부터 긴급 절전 조치가, 심각 단계에서는 광역정전 위험에 대비해 순환 단전을 시행해야 한다. 2011년 9·15 대정전이 대표적인 순환 단전이다. 전력수급경보는 2013년 8월 이후 한 번도 발령되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부의 전망대로라면 올여름에는 경보 발령 가능성이 크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 발전기 정지 등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주의나 경계 단계로 악화될 수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발전소는 항상 정비나 고장을 예상해야 한다. 전력 예비율이 최소 5%는 돼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올여름 전력 예비력이 낮아진 것은 전력 공급은 예년 수준인 가운데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서다. 코로나19 회복으로 산업생산이 늘어 산업용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폭염이 예상되면서 냉방기기 가동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여름 최대 전력 수요의 상한 전망을 94.4GW로 봤다. 2018년 기록한 기존의 역대 최대 수요(92.5GW)를 크게 웃돈다. 산업부는 우선 예방 정비 중인 부산복합 4호기와 고성하이 2호기의 시운전 일정을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주간으로 조정하고, 태양광을 통해 전기를 충전한 에너지저장장치의 방전 시간도 전력 수요 증가 시간으로 변경해 비상 상황 때 쓸 수 있는 추가 예비전력 8.8GW를 확보하기로 했다. 또 전력 수요를 줄이고자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여름철 휴가 분산, 냉방기 순차 가동정지 등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초 정부는 영구 폐지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실제 시행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 [씨줄날줄] 블랙아웃/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블랙아웃/이동구 논설위원

    뉴욕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발생한 대정전(블랙아웃)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세계 초일류 도시에서도 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에 놀랐고, 만약 대정전이 우리의 대도시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겠나 하는 걱정에 소름이 돋는다. 더구나 우리는 탈원전 정책으로 향후 전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데다 얼마 전 서울 KT아현지사의 통신망 화재로 겪었던 불편을 기억하기에 뉴욕 대정전을 보는 심경은 검은색의 타로카드를 뽑은 듯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42년 전인 1977년 7월 13일에도 뉴욕 대정전이 있었다. 변전소에 벼락이 떨어져 뉴욕의 상당 부분에서 정전이 발생, 약 25시간 동안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이에 뉴욕은 한순간에 무법천지로 돌변, 약탈과 방화로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1700여개 상점이 약탈당하고 3800여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기록으로도 충분히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크게 달랐다. 뉴욕 대정전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약 5시간 동안 지속된 정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차분하고 질서 있게 대처했다. 약탈 등 정전으로 인한 혼란과 범죄는 없었다. 카네기홀의 연주자들은 정전으로 공연이 취소되자 거리로 나와 시민들을 위로하는 즉석 길거리 공연을 펼쳤고, 이 광경을 담은 동영상이 트위터에 올려지면서 하루 만에 30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또 다른 뮤지컬 연기자들도 관객을 위해 거리에서 간이공연을 했다고 한다. 성숙된 시민의식이 재난 상황을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장면으로 바꾼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공연이 취소됐지만 관객들은 기억에 남을 순간을 선물로 받았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물론 이번 대정전으로 뉴욕의 세계적인 명소 타임스스퀘어, 록펠러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을 수놓던 휘황찬란한 불빛도 꺼져 암흑천지가 됐다. 브로드웨이에서 상영 중이던 오페라의 유령 등 유명 뮤지컬도 취소, 중단되는 등 곳곳에서 엄청난 피해와 불편이 이어졌다. 하지만 뉴욕 시민들이 보여 준 침착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은 뉴욕을 세계 일류도시, 문화의 도시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영어권에서 블랙과 결합된 용어, 단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가 많다. 블랙먼데이(증시 대폭락 사태), 블랙리스트, 블랙마켓 등 부지기수다. 대정전도 블랙아웃(Blackout)이라고 한다. 그런데 회계 장부상에는 흑자는 검은색(블랙)을, 적자를 표시할 때는 빨간색(레드) 잉크를 사용한다. 연중 최대 규모의 세일인 블랙프라이데이에서 블랙이 바로 그런 의미로 조합된 단어다. 그렇다면 뉴욕 블랙아웃의 의미도!? yidonggu@seoul.co.kr
  • [In&Out] 누진제 개편, 지금이 적기다/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

    [In&Out] 누진제 개편, 지금이 적기다/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6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데 6단계 요금이 1단계 요금의 11.7배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의 누진율을 보인다. 덕분에(?) 전기를 평소보다 2배 정도 썼는데 요금은 4~5배나 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40만원 정도의 전기요금이 나온 가구의 1㎾h당 전기요금은 약 450원이다. 산업 및 일반용 전기요금 107.4원 및 130.5원과 비교하면 3~4배 수준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주택용 전기요금과 비교해도 최고 수준이다. 검침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냉방기 사용이 집중됐던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요금폭탄 문제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누진제 개편 방향은 분명하다. 절약을 유도하면서 소득 형평성을 제고하는 기능을 가진 누진제 자체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6단계를 3단계로 줄이고 11.7배의 누진율을 2~3배 수준으로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 이러한 수준은 누진제를 도입하고 있는 여러 국가의 사례와 유사하며 서울시 수도요금과도 유사하다. 서울시에서는 가뭄 때문에 1995년 6단계 누진제를 도입했지만 물 사용량이 안정화되면서 현재 3단계로 완화했고 누진율은 2.2배에 불과하다. 과거에도 누진제를 개편하려는 정부 차원의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번번이 무산된 가장 큰 이유는 누진제 개편이 부자의 전기요금을 깎아준다는 이른바 ‘부자 감세’ 주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에 신생아, 유아, 환자, 노인 등이 있거나 가족 구성원이 많다 보면 부자가 아니더라도 폭염으로 인해 얼마든지 6단계에 진입할 수 있으므로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닌 전기라는 제품 사용에 대한 가격이므로, 부자 감세를 내세우며 누진제 개편에 반대하는 것은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나는데 새끼손가락에 약을 바르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력 사용량 급증으로 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누진제 개편 반대의 근거였다. 하지만 전체 전력 수요에서 주택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해 그 영향은 제한적이다. 또한 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하는 시간은 오후 2~5시인 반면, 주택용 최대 전력수요 발생 시간은 퇴근 후 저녁이므로 전력 피크와 주택용 전력 피크는 시간대가 서로 다르다. 국민이 누진제에 겁을 먹어 냉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주택용 1인당 전력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반면에, 청정연료인 가스(열병합)발전소는 급격한 가동률 저하로 적자에 허덕이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즉 대정전은 기우라고 할 수 있다. 누진제 완화가 1·2단계에 있는 저소득층의 전기요금 부담을 늘린다는 지적 또한 누진제 개편 반대의 중요한 논리였다. 하지만 누진제 완화로 1·2단계에 있는 넉넉한 1~2인 가구가 원가 이하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저소득층의 부담 증가는 복지 차원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누진제 완화와 함께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전기요금 원가 공개와 원가연동제 도입이다. 현재 정부와 한전은 생산원가 공개 및 원가연동제 시행을 하지 않은 채 전기요금 변동을 억제하고 있어 소비자에게는 가격신호를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전은 고유가 상황에서는 대규모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저유가 상황에서는 대규모 흑자로 욕을 먹는다. 지금은 저유가 시대라 원가연동제를 제도화시키기에 적기이다. 몇 가지 보완책을 마련하면서 누진제 완화와 원가 공개 및 원가연동제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소비자는 부담이 줄어 좋고, 발전사업자는 발전을 늘려 좋고, 한전은 원가를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으니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
  • [영화리뷰] ‘베니싱’

    [영화리뷰] ‘베니싱’

    대정전이 있던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나선 채널 7의 TV 리포터 루크(헤이든 크리스텐슨)는 거리 곳곳에 허물처럼 벗겨진 옷가지와 안경, 주인을 잃고 버려진 자동차들을 보게 된다. 마치 사람들이 한꺼번에 증발한 듯한 광경에 루크는 충격을 받는다. 72시간 후 그는 암흑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발전기를 돌려 스스로 빛을 내는 7번가 술집을 찾아낸다. 불빛을 보고 찾아드는 나방처럼 생존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영사기사 폴(존 레귀자모), 물리치료사 로즈마리(탠디 뉴턴), 술집 바텐더의 아들인 제임스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대정전 당시 손전등이든 라이터든 그들을 지켜주던 빛이 있었다는 점이다. 31일 개봉한 ‘베니싱’(원제: Vanishing On 7th Street·7번가에서 사라지다)은 ‘잃어버린 식민지’로 불리는 로어노크 식민지 실종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1585년 로어노크섬(지금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북미 대륙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건설됐다. 개척을 주도한 존 화이트는 영국에서 식량과 물품을 조달받아 3년 만에 돌아왔지만 100여명의 주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종의 영구 미제 사건인 셈. 재난의 원인이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점, 그 원인을 파헤쳐 나간다는 대목에서 인도 출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해프닝’(2008)을 떠올리게 한다. 곳곳에서 인간의 죄악에 따른 재앙임을 암시하는 등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비슷하다. 죽음의 매개체가 바람(‘해프닝’)에서 어둠(‘베니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거스를 수 없는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사투는 극도의 긴장감을 안겨주기 마련. 영화 초반부에는 과감한 생략으로 제법 긴장감 있는 스릴러의 면모를 풍긴다. 특히 암흑이 세상을 삼키려고 스멀스멀 다가서는 모습은 관객의 머리끝을 찌릿하게 만든다.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게 전부라는 것. ‘왜’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도 없다. 후반부로 갈수록 짜임새는 헐거워지고, 평탄한 이야기에 지루해진다. 기차를 타고 창밖을 아무리 둘러봐도 똑같은 풍경만 펼쳐지는 평야지대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브래드 앤더슨 감독은 미국 드라마 ‘프린지’의 에피소드를 맡아 미스터리를 주무르는 솜씨를 발휘했던 터. 하지만 91분의 상영시간은 그에게 버거워 보인다. 주인공 루크 역을 맡은 크리스텐슨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에서 다스베이더의 젊은 시절을 맡아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던 배우. 하지만 ‘어웨이크’(2007), ‘점퍼’(2008)에 이어 또 한번 고만고만한 상업영화에서 헛심만 뺐다. ‘미션 임파서블 2’(2000)의 탠디 뉴턴이나 ‘물랑루즈’(2001)의 존 레귀자모처럼 능력 있는 배우들도 극 중 배역만큼이나 무기력하다. 12세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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