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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저택 화재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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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의 사건, 네 명의 시선… 무엇이 진실일까

    하나의 사건, 네 명의 시선… 무엇이 진실일까

    비틀어 세운 기둥 네 개가 액자 같은 공간을 만들고, 그 주변에 의자 네 개가 놓인다. 단출한 무대 틀은 심문의 자리였다가 곧 네 남매가 각자 들어앉은 기억의 방으로 바뀐다. 네 개의 방을 각각의 버전으로 만들어 하나씩 열어 보이는 심리 스릴러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서윤미 연출·극작·작곡)는 이번 여덟 번째 시즌에서 올라운드 버전으로 네 이야기를 모두 올린다. 1926년 대저택 화재에서 살아남은 네 남매와 사라진 보모 메리 슈미트를 중심으로 한 이 창작 뮤지컬은 2012년 초연 이후 세 개 버전과 완결판 개념의 마지막 버전을 따로 선보여왔다. 지난 6월 18일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한스-메리포핀스 살인사건을 위한 변호’로 문을 연 이번 시즌은 ‘헤르만-모래 사나이가 나오는 꿈’(8월 9일까지), ‘요나스-숲의 기억’(8월 14~23일)을 거쳐 ‘안나의 방-두 개의 책상’(8월 28일~9월 6일)에서 흩어져 있던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모인다. 첫 주자였던 한스 버전의 중심에는 사건의 실체와 각자의 기억을 묻는 질문이 놓였다. 변호사가 된 한스가 사건의 진실을 접하고 답을 좇는 사이 독일 나치의 인체실험이 드리운 그늘이 드러나면서 조각난 증언을 맞춰가는 과정이 꽤 신선하다. 한스 역 박정원은 논리로 무장한 변호사의 외피가 벗겨지는 순간을 설득력 있게 쌓아 올리고, 윤승우(헤르만), 이한별(안나), 정지우(요나스)의 노래와 연기도 고르게 안정적이다. 홍륜희의 메리는 공포와 온기를 한 몸에 품어 사건의 무게를 홀로 떠받친다. 어두운 이야기인데도 끝내 따뜻하다는 인상이 남는 것은 그 온도 덕이다. 화자만 바꿔 같은 사건을 되풀이한 버전 구성은 재관람을 노린 장치가 아니라 주제와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다. 기억은 제각각 편집되고, 진실은 한 사람의 시선 안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화가 헤르만이 작업실에서 털어놓는 악몽 속 모래 사나이는 소설가 E T A 호프만(1776~1822)의 작품에서 비롯된 공포이자 죄의식의 얼굴이다. 막내 요나스에게는 아무 말도 말라며 옥죄는 숲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 편만 봐도 이야기를 꾸릴 수 있지만, 앞의 질문을 통과한 뒤 ‘안나의 방’에 들어서면 행복과 구원에 대한 답이 한결 또렷하게 잡힌다. 대단히 잔혹한 장면은 없지만 소재가 무거워 17세 이상 관람가에 트리거 경고를 따로 안내한다. 한스는 박정원·문경초·유태율, 헤르만은 윤승우·원태민·박준형·김경록, 안나는 이한별·이정화·이재림, 요나스는 진호·조성필·정지우, 메리 역은 류수화·안유진·홍륜희가 연기한다.
  • [기고] 겸재정선미술관에서 피어난 예술혼

    [기고] 겸재정선미술관에서 피어난 예술혼

    겸재 정선은 72세이던 1747년, 노년의 무르익은 필치가 집약된 금강산 그림을 남겼다. 그는 이 그림에 당대 최고의 시인 이병연과 김창흡의 시를 곁들여 산수화 21폭을 비롯한 총 38폭의 ‘해악전신첩’을 제작했다. 예술·학술·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이 화첩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 화첩은 한때 영영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33년 고미술상 장형수는 용인 양지면 일대를 둘러보던 중 한 대저택을 발견했다. 수소문 끝에 그 집이 친일파 송병준의 손자 송재구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송재구와 경성의 소식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날이 저물자 장형수는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하인들이 불을 지피기 시작할 무렵, 마침 밖으로 나왔던 장형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불쏘시개로 쓰려던 것이 다름 아닌 초록 비단으로 장정된 오래된 화첩이었기 때문이다. 그림과 글씨가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 그는 곧장 이 화첩을 간송 전형필에게 가져갔다. 처음에는 자신이 송재구에게 치른 값의 열 배인 200원 정도를 받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화첩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간송은 1500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놨다. 당시 경성 시내의 제법 큰 기와집 한 채 반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낸 셈이다. 오늘날 서울 강서구는 조선시대에 양천현으로 불렸다. 겸재 정선은 영조의 명을 받아 65세이던 1740년부터 70세인 1745년까지 5년간 양천현 현령으로 재직했다. 그는 지금의 강서구 궁산에 올라 마곡나루 주변의 뛰어난 경관을 그려 보내곤 했는데, 절친인 사천 이병연은 그림을 감상한 뒤 시로 화답했다. 멀리 떨어진 겸재를 그리워하며 이병연이 시 한 수를 지어 보내면, 겸재는 이를 받아 그림으로 옮겼다. 이처럼 한강 변 풍경부터 일상의 소식까지 그림과 시로 교류한 작품들을 후손들이 모아 엮은 것이 바로 ‘경교명승첩’이다. 이 화첩 역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강서구에서는 겸재 정선이 ‘경교명승첩’이라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것을 기념하고,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중심으로 연구·전시하고자 2009년 겸재정선미술관을 설립했다. ‘해악전신첩’(정선이 금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 시화첩)처럼 우리 선조가 지켜낸 겸재의 원화 27점을 순환 전시할 뿐 아니라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알리는 학문적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또한 현대 화가들이 겸재의 정신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매년 ‘겸재미술대전’과 ‘겸재 내일의 작가전’ 등 공모전도 개최한다. 특히 겸재정선미술관에서는 겸재 탄생 350주년을 기념해 4월 14일부터 6월 21일까지 특별 기획전 ‘소나무, 늘 푸르른’을 열고 있다. 겸재의 ‘사직노송도’를 비롯해 김홍도·강세황·이재관·이인문 등 조선 후기 화가들의 작품부터 채용신·김은호·박노수 등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23건 37점의 명작이 모였다. 소나무라는 하나의 상징을 통해 한국 회화 350년의 흐름과 변천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획이다. 겸재가 거닐던 강서구에는 서울 유일의 양천향교, 의성 허준 선생의 자취가 깃든 허가바위, 겸재가 그림에 담았던 궁산과 소악루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그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예술의 인연을 만나는 기회를 강서구 겸재정선미술관에서 갖기를 권한다. 김진호 서울 강서문화원장
  • 추신수 살던 ‘美 1200평 대저택’ 산불에 전소…“충격”

    추신수 살던 ‘美 1200평 대저택’ 산불에 전소…“충격”

    야구선수 추신수의 가족이 과거에 살았던 미국 텍사스 대저택이 화재로 전소됐다.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는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너무 충격적이다. 우리의 추억이 다 사라진 기분. 많은 분이 기억해주시는 JTBC ‘이방인’ 추패밀리하우스가 불에 타 사라져버렸다”고 적었다. 이어 “며칠 전 ‘이방인’을 다시 돌려보면서 추억에 잠겼는데 이럴 수가. 아무도 다치지 않았기를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 추신수·하원미 부부는 JTBC ‘이방인’을 통해 텍사스 집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추신수의 집은 무려 1200평의 대저택으로 화제를 모았다. 호텔 스위트룸을 옮겨 놓은 듯한 고풍스러운 부부의 침실과 워터파크를 연상시키는 야외 수영장, 넓은 화장실·거실·부엌, 체력 단련실 등이 갖춰져 있어 감탄을 자아냈다.9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북쪽으로 약 32㎞ 떨어진 시더파크에서 산불이 발생해 약 50에이커(20만2342㎡)의 산림을 태웠다. 이날 화재로 인근 아파트와 타운하우스가 일부 붕괴하고 일대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한편 추신수·하원미 부부는 지난 2002년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 “뉴욕서 공효진과 결혼” 케빈오, 美 대저택 ‘상상초월’

    “뉴욕서 공효진과 결혼” 케빈오, 美 대저택 ‘상상초월’

    가수 케빈오가 부모님과 가족이 있는 미국 뉴욕에서 배우 공효진과 결혼한다고 발표해 미국에 있는 집에도 관심이 쏠렸다. 17일 공효진과 케빈오는 오는 10월 미국 뉴욕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다고 밝혔다. 케빈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손편지를 통해 “올 가을, 제가 태어난 곳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며 “대한민국에서 너무나 사랑을 받고 있는 여배우와 함께하게 되어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려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 가족들과 어르신들이 계신 곳에서 식을 올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미국 결혼식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2020년 2월 발매된 케빈오의 싱글 ‘Anytime, Anywhere’의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고 있다.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실제 케빈오의 가족이 살고 있는 자택이고, 케빈오와 등장하는 출연자들이 친동생이라는 이유다. 특히 ‘Anytime, Anywhere’는 케빈오가 어린 시절 보낸 자택을 화재로 잃고 쓰게 된 곡이다. 자주 보지 못하거나 멀리 떨어져 보지 못 해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감정을 대변했다.현재 뉴욕에 거주 중인 케빈오는 지난 6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으리으리한 집을 공개하기도 했다. 방에는 키보드, 기타 등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화이트톤과 짙은 우드톤으로 포인트를 준 깔끔한 인테리어가 감탄을 자아냈다. 한편 공효진은 1980년생, 케빈오는 1990년생으로 10살 연상연하 커플이다. 앞서 공효진은 올해 3월 진행된 동료 배우인 손예진과 현빈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후, 4월 케빈오와 열애를 인정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케빈오는 “2년 전 한 여자를 만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인생 최고의 친구이자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그리고 저는 그녀를 제 아내라고 부르려고 한다”며 공효진을 향한 애틋함을 드러냈다.공효진은 1999년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상두야 학교가자’, ‘파스타’, ‘프로듀사’, ‘동백꽃 필 무렵’, 영화 ‘미쓰 홍당무’, ‘도어락’, ‘가장 보통의 연애’ 등에 출연하며 ‘공블리’로 자리잡았다. 케빈오는 2015년 Mnet ‘슈퍼스타K7’ 우승을 차지, JTBC ‘슈퍼밴드’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Oh, My Sun’, ‘After Tonight’ 등의 곡을 발매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 이분법 시대 ‘회색’ 소시민

    이분법 시대 ‘회색’ 소시민

    광복 75년 지나도 못다 한 친일청산친일파 윤덕영 저택 ‘벽수산장’ 배경적의 유산은 폐해인가 공동자산인가고뇌하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이야기문단 원로 조정래 작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친일파가 돼버린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애국가 작곡자 고 안익태 선생의 친일 의혹을 제기해 유족에게 고소당했다. 광복 75주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친일 청산’ 논쟁은 여전히 민감한 화두이자 사회 갈등의 도화선이다.심윤경 작가의 신작 소설 ‘영원한 유산’은 친일파가 남긴 화려한 건축물의 명멸을 소재로, 이분법이 지배하는 시대에 회색지대에 설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고뇌를 정면으로 다뤘다. 배경은 해방 이후 불과 20여년 지난 1966년 서울 옥인동의 유럽식 대저택 ‘벽수산장’이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일찍이 부모를 여윈 27살 청년 이해동은 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언커크·UNCURK)에서 통역 비서로 일하고 있다. 언커크 사무실로 쓰이는 벽수산장은 일제 시대 악명 높은 친일파로 귀족 작위(자작)를 받은 윤덕영(1873~1940)의 옛 별장이다. 달러로 월급을 받으며 ‘나 정도면 괜찮은 삶’이라고 자족하는 소시민 해동 앞에 어느 날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이 나타난다. 몰락한 친일파 후손 윤원섭은 사기죄로 2년 2개월 징역을 살고 나왔다. 그는 언커크 외국 외교관들에게 귀족 혈통의 신비로운 이미지와 대저택의 숨겨진 이야기 등을 하며 저택의 옛 주인이란 지위를 각인시키더니 결국 언커크의 ‘문화복원 디렉터’ 자리를 꿰차고 해동의 상전 행세를 한다. 기세등등한 윤원섭의 뻔뻔한 행태에 해동은 분노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윤덕영의 친일 박물관처럼 변모하던 벽수산장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한다.벽수산장이 윤덕영의 옛 별장이며, 언커크에서 사용했고 화재가 났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내용과 등장인물들은 픽션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인 1973년 할머니와 함께 찍은 자신의 사진에 나온 철거 직전의 벽수산장에 대한 호기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소설은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산업화 시대의 부조리를 담아 냈다. 하지만 친일 청산의 당위성보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사직서를 내야 할지 고뇌하는 해동의 심리에 더 초점을 맞췄다. 친일파와 그 뻔뻔한 후손은 밉지만, 저택 자체의 아름다움에는 매료된다. 언커크라는 좋은 직장은 포기해도, 저택이 없어진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유엔 기구인 언커크는 냉혹한 국제 정세와 동떨어질 수 없다. 해동의 상사이자 언커크의 호주 대표 애커넌은 제3자의 시각을 대변한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그때의 조선은 다른 세상이 아닌가? 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형편은 그때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네.”(97쪽) 작가는 “친일파와 왕가, 국제기구와 대저택 같은 거창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결국 이념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정직과 존엄을 지키려 애썼던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의 제단에 목숨이나 밥벌이할 직장 같은 것을 올렸는데, 그것은 실상 그들이 가진 전부”라고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적이 남긴 유산은 적과 함께 말살해야 할 폐해인가, 남기고 지킬 공동의 자산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우리 편 아니면 네 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격화된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주는 메시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조선 왕실 후손, 138억에 미 대저택 매입… 욕실만 13개”

    “조선 왕실 후손, 138억에 미 대저택 매입… 욕실만 13개”

    수영장·와인 시음실·영화관·체육관도 갖춰사우전드오크스 지역 거래 중 최고가 기록2013년에야 조선 왕실 가족인 것 알게 돼코로나 위기에 LA한인회에 10만 달러 기부조선 왕실의 후손인 재미교포 사업가 앤드루 이씨가 대형 수영장에 침실과 욕실이 20개에 달하는 138억원짜리 캘리포니아주 고급 저택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부동산 거래는 올해 지역 내 최고가 거래라고 외신은 전했다.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2일(현지시간) “한국의 (조선) 왕실 가족이자 가상사설망(VPN) 서비스업체 PIA를 창업한 앤드루 이 대표가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오크스시 소재 저택을 1260만 달러(약 138억원)에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LAT는 현지 부동산 중개인 단체 ‘멀티플 리스팅 서비스’에 등록된 매매 자료를 인용해 이 대표가 산 저택이 올해 사우전드오크스에서 최고가 거래 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 저택 내부에는 7개의 침실과 13개의 욕실, 와인 시음실, 영화관, 체육관 등이 있으며, 야외 공간에는 테니스장과 고급 풀장을 갖추고 있다고 LAT는 전했다.‘마지막 황손’ 이석, 李 황세손으로 지명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고종의 친손자이자 마지막 황손으로 알려진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이 황세손으로 지명한 인물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부친이 조선 왕실 후손이라는 점을 알려주지 않아 뿌리를 모르고 살다가 2013년에서야 왕실 가족임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이 대표는 당시 미국에 체류하던 이 이사장과 인사를 나누게 됐고, 이 이사장은 성공한 재미교포 사업가로 자리를 잡은 이 대표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 이사장은 2018년 베벌리힐스의 한 식당에서 이 대표를 왕세자로 책봉하는 예식을 열기도 했다. 한편 이 대표는 지난 4월 코로나19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한인들을 돕는다며 왕실을 대표해 LA한인회에 10만 달러를 보낸 것으로 LA한인회 측이 밝힌 바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 태화관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 태화관 광고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장소인 서울 인사동 태화관이 그 전인 1916년 1월 요리점으로 개업했다는 광고다. 태화관 자리는 조선 전기 중종 반정에 가담해 정국(靖國) 공신 2등에 책록된 구수영이 살던 곳인데 태화정(太華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중종은 이곳에 순화공주를 위한 집을 지어 주었고 순화궁이라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거처가 됐다가 1907년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차지했다. 이윤용은 순화궁을 1911년 동생 이완용에게 넘겼고 이완용은 1913년 옥인동에 대저택을 짓고 이사하며 임대해 주어 태화관(太華館)이라는 여관이 됐다. 이것을 홍순학이 인수해 요리점으로 바꾼 것이다. 홍순학은 태화관 요리점을 열기 전에 상업회의소 주임 서기로 일했다고 한다. 태화관은 친일 인사들과 조선총독부 고관대작들의 모임 장소로 애용됐다. 그런데 태화관에 1918년 벼락이 떨어져 건물 안에 있던 고목이 둘로 쪼개졌다. 주인인 이완용이 놀라 팔려고 내놓자 광화문 네거리에서 명월관을 경영하던 안순환이 인수해 명월관의 별관으로 운영했다. 이름도 한자가 다른 태화관(泰和館)으로 바꿨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지방에 있던 김병조, 길선주, 유여대, 정춘수 4인을 제외한 29명이 이곳에 모였다. 원래 대표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려 했다. 그러나 그 전날 서울 재동 손병희의 집에서 논의한 끝에 탑골공원에서 거사를 벌이면 자칫 군중의 과격한 행동을 야기해 유혈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주인 안순환에게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 일동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지금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보하라고 했다. 일경 80여명이 출동해 태화관을 포위한 가운데 한용운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나머지 대표들이 제창한 뒤 연행에 응했다. 대표들은 일경이 태화관에 인력거를 가지고 오자 자동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결국 민족대표들은 택시 일곱 대에 나눠 타고 경무총감부에 가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얼마 후 태화관에 불이 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장소인 보성사는 화재로 소실됐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일제의 방화로 추정된다. 그 뒤 태화관은 궁정 양악대 출신들이 만든 우미관 양악대와 단성사 양악대가 자주 출연하는 장소로 인기를 끌다가 1921년 미국 남감리교회에 인수돼 태화여자관으로 탈바꿈했다. 남감리교회는 이곳을 전도 사업과 여성 교육 공간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12층짜리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건물(태화빌딩)이 들어서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한끼줍쇼’ 초인종 누른 평창동 대저택, 알고보니 조항리 아나운서 집 “대박”

    ‘한끼줍쇼’ 초인종 누른 평창동 대저택, 알고보니 조항리 아나운서 집 “대박”

    ‘한끼줍쇼’에서 KBS 조항리 아나운서의 집이 공개됐다. 28일 방송된 JTBC ‘한끼줍쇼’에서 이경규와 강호동은 게스트 이윤석, 이수근과 함께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평창동을 찾았다. 강호동, 이윤석 팀은 우연찮게 조항리 아나운서 집의 벨을 눌렀다. 조항리 아나운서 집인 줄 몰랐던 강호동과 이수근은 “집이 대박이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문이 열리고 조항리 아나운서가 나오자 강호동은 화들짝 놀며 반갑게 인사했다. KBS2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인연을 맺은 바 있기 때문. ‘한끼줍쇼’ 제작진은 타 방송사 아나운서라는 이유로 집에 들어가는 데 머뭇거렸고 강호동은 “조항리 아나운서 누나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며 발끈했다. 조항리 아나운서 역시 “저는 그냥 숨어 있겠다. 맛있게 드시고 가라”고 말해 훈훈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조항리 아나운서의 누나가 방송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결국 함께 한끼를 먹는 것은 실패했다. 한편 조항리 아나운서는 지난 2012년 KBS 공채 39기로 입사했다. 당시 25세 최연소 입사자로 화제가 됐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조항리 아나운서의 아버지는 해금연주자로 무형문화재 1호며 어머니는 작곡가, 누나는 화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100여년 전 복 빌던 병풍, 새해 萬福을 바라나이다

    100여년 전 복 빌던 병풍, 새해 萬福을 바라나이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圖) 세 점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함께 전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4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매입해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곽분양행락도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이 각각 보유한 동명의 그림을 13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만복(萬福)을 바라다’ 특별전에서 공개한다. ●왕실 가례 때 사용… 약 10점 남아 필라델피아미술관과 스펜서미술관의 곽분양행락도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 문화재 보존·복원 지원사업을 통해 국내에서 최근 보존처리를 마쳤다.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나라 명장으로 평생 부귀를 누린 곽자의(697~781)가 분양왕에 봉해진 뒤 노년에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 시대 후기에 길상화(吉祥畵)로 왕실 가례 궁중 행사에 사용됐으며, 국내에 약 10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풍 중심부에는 곽자의가 대저택에서 연회를 베푸는 장면이, 오른쪽에는 그의 아내가 연회를 감상하는 장면이, 왼쪽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수려한 산세의 모습이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20일 강연회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라델피아미술관 보유 곽분양행락도의 보존처리 작업 중 병풍 뒤쪽에서 1950년대 발간 신문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이 작품이 1950년대에 국내에서 수리된 후 미국으로 흘러갔음을 알 수 있다. 스펜서미술관의 동명 작품에선 조선 시대의 토지 매매 문서 50~60장이 배접된 것이 발견됐다. 이 문서들은 관청이 전답마다 세금을 물린 내역을 정리한 ‘수세성책’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측 소장본 2점은 전시가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림은 모두 조선 후기 작품으로, 구성이 흡사한 8폭 병풍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오는 20일 강연회를 열어 곽분양행락도의 미술사적 가치와 보존처리 과정을 소개할 예정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연극·뮤지컬

    [이주의 문화 레시피] 연극·뮤지컬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서울 변두리 작은 이발소의 이발사 조만득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을 그린 이청준의 소설 ‘조만득씨’를 각색한 작품. 극단 아리랑의 30주년 기념작으로, 김명곤 전 장관이 연출했다. 한동규, 김중기 등 출연. 20~23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 27~11월 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소극장. 2만~3만원. (02)741-5332.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소극장 대표 창작 뮤지컬의 하나로 1926년 독일 나치 정권 시기 저명 심리학자 그라첸 박사 대저택 화재 사건과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에 얽힌 네 남매의 유모 이야기를 그린 심리극. 2012년 초연 이래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다.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티오엠 1관. 4만~6만원. (02)435-0598.
  • 공사장서 발견…1700년 전 비잔틴 제국 ‘모자이크’ 유물 공개

    공사장서 발견…1700년 전 비잔틴 제국 ‘모자이크’ 유물 공개

    1700년 전 중세 비잔틴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모자이크 작품이 공개돼 고고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발견된 이 모자이크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1m, 13m에 이르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모자이크는 지난 해 이스라엘 중심부 도시인 로드(Lod)의 한 공사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1700년 전 동(東)로마제국(비잔틴제국) 시기에 매우 부유했던 중세 시민의 집 마당 바닥에 깔려 카펫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동물이나 물고기, 새 등의 동물들의 사냥 모습이 매우 정교하게 묘사돼 있으며, 이스라엘 문화재 관리국(Israel Antiquities Authority)의 한 관계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이어 “모자이크에 표현된 이미지를 봤을 때 이를 제작한 사람의 매우 높은 예술적 능력을 엿볼 수 있다”면서 “1990년대에 같은 구역에서 모자이크가 발견된 바 있다. 당시 모자이크는 집 거실 바닥에 깔려 있었으며, 이번 것은 마당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모자이크는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 성당 등을 장엄하게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했다. 당시 대저택에서는 건물 바닥의 모든 부분을 모자이크로 장식하기도 했으며, 대체로 채색된 돌이나 유리를 재료로 이용했다. 한편 해당 모자이크는 이탈리아와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해외여행 | 슬로바키아 중심에서 만난 몰랐던 유럽②낡은 성들의 유혹 캐슬과 샤또

    해외여행 | 슬로바키아 중심에서 만난 몰랐던 유럽②낡은 성들의 유혹 캐슬과 샤또

    ●낡은 성들의 유혹 Castles & Chateaux 캐슬과 샤또 슬로바키아는 숱한 전쟁의 무대였다. 헝가리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몽골 타타르족과 투르크족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음을, 슬로바키아의 남은 성들이 증명하고 있다. 성의 파괴가 적에 의해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세금이나 관리비를 부담할 수 없어서 성주가 일부러 불을 놓 는 경우도 있었고, 세월이라는 파괴자의 위력도 대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슬로바키아에는 100 여 개의 성과 2,100여 개의 대저택들이 남아 있다. 차에서 졸다가 깰 때마다 새로운 성과 성터들이 보이는 이 유다. 용도 폐기된 성들의 운명은 제각각이다. 세계적인 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폐허 로 방치되는 곳도 있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 호화스러운 호텔로 변신하기도 하고 정부에 귀속되어 박물관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역사의 부침이 컸던 만큼 중세에 우후죽순처럼 불어났던 슬로바키아의 성들은 아 직 각자의 운명을 시험 중이다. 로맨틱한 중세의 유혹 보이니체 성Bojnice Castle 로맨틱한 외관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성이다. 1113년 문헌에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낸 보이니체 성은 목재 요새에서 시작하여 차례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더해진 우아한 레지던스로 변신했다. 현재 모 습대로 네오고딕 양식의 로맨틱한 성이 완성된 것은 성의 소유가 장 팔피Jan Frantisek Palfi, 1829~1908년 백 작에게 넘어가면서다. 최고를 추구했던 탓에 공사가 무려 22년이나 걸렸고, 팔피 백작은 완성된 성을 보 지 못하고 후손 없이 죽고 말았다. 이후 유산을 둘러싸고 일어났을 친척들의 분쟁이야 뻔한 이야기. 황금의 방 Golden Hall, 주방, 사무실 등 호사스러운 내부를 깨알같이 설명해 주는 가이드 투어가 매일 진행된다. 지하의 거대한 동굴과 성 뒤쪽의 공원을 둘러보는 시간도 꼭 확보할 것. Zamok a okolie 1, 972 01 Bojnice, Slovakia 8유로(가이드 투어 포함) 5~9월 9:00~17:00, 10~4 월 10:00~15:00 +421 46 543 06 24 www.bojnicecastle.sk 중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요새 스피슈 성The Spiš Castle(Spišský Hrad)​ 해발 634m 높이의 고지에 4만1,426km²가 넘는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1780년 세금을 피하기 위한 성주의 고의 화재로 소실된 성은 그 뼈대와 터만 남아 있지만 중부 유럽 최대 규모의 중세 요새라는 위용은 여전하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일품.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촬영지인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 잔해일 뿐이 지만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바로크, 고딕양식의 흔적이 모두 찾아질 뿐 아니라 신석기 시대의 유골이 발견되 기도 했다. 주방, 화장실 터 등도 흥미롭지만 지하의 감옥이나 무기저장고, 중세의 식사예절을 설명해 놓은 전 시 등 보기보다 볼거리가 풍부하다. Žehra, Slovakia 성인 6유로 9:00~16:00(5~9월 9:00~18:00, 4월, 10월 9:00~16:00, 11월 10:00~15:00, 12~3월 폐쇄) +421 53 454 13 36 www.spisskyhrad.com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트렌친 성Trenčín Hrad 트렌친은 서로마 제국의 국경에 위치했던 도시이자 발칸반도에서 북유럽으로 이어지던 무역로 상에 자리잡은 도시다. 그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많은 침략을 받았지만 같은 이유로 항상 재건되곤 했던 곳이다. 일찌감치 9 세기 모라비아 왕국 때 타워가 세워졌고, 11세기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13세기 마테 카사크Mate Csak 성주의 통치 아래에서 가장 번성했다. 지금도 슬로바키아의 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인근에 50개의 성을 소유했던 마테는 바강Vah River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비탈을 거슬러 성 입구로 올라가면 바강을 끼고 형 성된 트렌친과 이웃 도시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터키의 귀족 오마르와 파티마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사랑의 우물을 포함해 여러 개의 궁전으로 구성된 성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가이드 투어가 필수다. Mierove namestie 46 912 50 Trenčín, Slovakia 그랜드 투어 | 성인 5.1유로, 미니 투어 | 성인 3.6유로 +421 32 743 56 57 www.muzeumtn.sk 로마 가톨릭의 화려한 유산 니트라 성Nitra Hrad 니트라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5세기경 카르파티안 산맥을 넘어온 슬라브족이 처음 자리를 잡 은 곳이 바로 니트라였기 때문. 상인 출신의 사모Samo가 7세기에 첫 번째 통합국가를 건국하였고 830년경 프리 비나Pribina 왕자가 슬로바키아 최초의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833년에 이르러 모라비아의 왕자 모이미 르 3세가 프리비나 왕자를 몰아내고 대 모라비아 제국을 세웠다. 첫 번째 교회의 유적은 니트라 성 아래 묻혀 있다. 성 에머람 성당Cathedral-Basilica of St. Emeram, 주교궁전, 교구 박물관 등으로 운영 중인 니트라 성 은 니트라 교구의 관리를 받고 있는 중요한 가톨릭 박물관이다. 내부에 전시된 성물들의 화려함은 입이 쩍 벌 어질 정도.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안을 듯 팔을 벌리고 있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동상도 인상적이다. Nám. Jána Pavla II. č. 7, P. O. Box 46/A, 950 50 Nitra, Slovakia 10:00~14:00(11~3월은 17:00까지 오픈) +421 37 772 1747 www.nitrianskyhrad.sk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Articular Churches 슬로바키아 목조 교회 목조 건축의 단점은 명확하다. 쉽고 저렴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로 교회 를 세울 때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8세기 초 세워졌던 목조 교회에는 놀라운 탄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슬로바키아는 가톨릭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의 70% 가까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 863년 데살로니카에서 온 키릴로스St.Cyril와 메토디우스St. Methodius의 포교 이후 그 주류가 바뀐 적은 없었다. 그 한결같음에는 어쩔 수 없이 타 종교에 대한 배타가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16세기 유럽에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바람이 불었다. 이 영향으로 유럽 전역에 프로테스탄트로의 개종이 급 증하기 시작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분열을 가다듬은 가톨릭의 반격은 특히 합스부르크 영토에서 활발했는데, 신교도에 대한 박해와 순교까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케즈마록 출신의 백작이 오 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1세로부터 부분적인 종교의 자유를 얻어냈고, 당연한 수순으로 프로테스탄트들은 교회 를 세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반드시 마을 외곽에 자리잡아야 하고 도로쪽으로는 문도 낼 수 없었다. 건축 재료로는 나무만을, 심지어 못 조차도 나무못을 사용해야 했으며 그것도 1년 안에 완공하는 조건이었다. 눈에 띄는 첨탑 등을 세울 수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런 조건 아래 완공된 목조 교회들을 ‘아티큘라 교회Articular Church’라고 한다. 계약Article이라는 이름의 ‘미션 임파서블’에도 불구하고 1718년에서 1730년 사이 38개의 교회들이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5 개 중 3개Kežmarok, Hronsek, Leštiny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놀랍지 않을 정도. 현재 슬로바키 아에는 로마 가톨릭과 신교도 교회를 포함하여 총 60여 개의 목조 교회가 남이 있고 그중 유네스코세계문화유 산으로 지정된 것은 총 8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케즈마로크의 목조 교회와 흐론섹의 목조 교회를 차례로 방문했었다. 목재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리석 교회 부럽지 않은 성상과 장식은 정성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교회들은 낡았지만 규모가 컸고, 여전히 예 배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흐론섹 교회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던 팔순의 노파도 교회처럼 정정했다. 교회 마당으로 나온 가이드 마틴이 옆집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여기 사세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웅. 운이 나쁘지!”였다. 모두 한바탕 웃었다. 시도 때도 없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상대하는 일이 노파에게는 얼마나 성가신 일이겠는가. 하지만 막상 설명에 나서면 작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알려 주는 그녀의 열정은 직업이 아니라 신앙에 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불가능할 것 같은 조건에서 탄생한 목조 교회들이 수백년 뒤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이 되어 슬로바키아의 자랑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칸디나비아 스타일로 흐론섹 목조 교회Dreveny Artikularny Kostol Hronsek 땅부터가 척박했다. 흐론섹 목조 교회는 강가의 습지에 세워졌다. 1725년 10월에 공사를 시작했다는 것뿐, 건 축가의 이름도 완공 날짜도 알지 못한다. 건축양식에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 엿보이기에 당시 스칸디나비아 에 있는 루터 교인들의 지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기둥의 배열이나 지붕을 지탱하는 빔 등의 기술 은 빠른 시일 내에 완공해야 했던 제약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인이었다고. 이례적으로 2층의 네 면에 모두 좌석을 두어서 중앙의 제단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총1,100여 명을 수용하는 규모다. Augusta Horislava Krčméryho 8 976 31 Hronsek, Slovakia 9:00~17:00 +421 48 418 81 65 스웨덴 선박을 닮은 창 케즈마로크 목조 교회Dreveny Artikularny Evanjelicky Kostol 건물 외벽에 회반죽을 발라 놓은 케즈마로크Kežmarku목조 교회는 1688년 세워졌고 1717년에 재건축된 것이다. 4면으로 뻗은 팔의 길이가 똑같은 그리스 십자가의 형태로 설계하는 과정에 스웨덴 선원이 참여했다는 이야기 가 전해지는데, 교회 창의 모양이 선박의 둥근 창과 매우 흡사하여 이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리석처럼 보이기 위해 세심하게 조각하고 색칠한 제단에서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던 간절함 마음이 엿보인다. Hviezdoslavova, 060 01 Kežmarok, Slovakia 9:00~12:00, 14:00~16:00 +421 52 452 22 42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슬로비카아관광청 www.sacr.sk 슬로바키아관광청 한국사무소 02 2265 2247 슬로바키아대사관 페이스북 www.facebook.com/Slovak.Embassy.Seoul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단독] 향교·서원·고택 되살려 ‘문화 상품’ 만든다

    [단독] 향교·서원·고택 되살려 ‘문화 상품’ 만든다

    “사람이 살아야 고택(古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회장인 강릉선교장 이강백(67) 관장은 13일 이렇게 말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선교장은 강원 강릉시 경포대 쪽으로 4㎞쯤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고택이다. 조선 영조 때인 1703년 효령대군의 11세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명당 자리를 발견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한국 민가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됐다. 1960년대만 해도 300여칸을 자랑하는 대저택이었는데, 현재 150여칸만 남았다. 이 관장은 “1992년부터 서별당, 외별당, 곳간채 등 공간을 복원하고 갖가지 시설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며 “한옥숙박 체험객 등 관광객 연인원 30만명에 11억여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교장은 둘레길 등 조경사업을 벌이고 도서관과 쉼터를 건립하는 등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한편, 수익의 80%를 문화행사 유치 및 협의회 운영비에 재투자 중이다. 이 관장은 “한옥의 특성상 방치하면 급속하게 훼손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거주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북 경주시 서악서원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 관장, 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청·경북도 관계자, 원주향교·명재고택 종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향교·서원·고택 주민 품으로, 대청마루 정담(情談)’이 열렸다. 정부는 건축자산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업에 지난해 25억원, 올해 41억 7000만원을 비롯해 2019년까지 34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대상은 향교문화재 230곳, 서원문화재 169곳, 고택문화재 166곳을 합쳐 565곳이다. 1단계로 올해까지 공모사업 확정과 함께 교육 등 기본계획을 마치고 2016~2017년 특화 프로그램 개발을 거쳐 지역별 자립형 문화상품을 정착시킨다는 게 줄거리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만 향교·서원 활용을 통해 인쇄·식음료 등 업종에서 1만 2000여명의 고용유발과 972억원의 경제파급 효과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경주 정담에서 원주향교는 매주 월·목요일 사서삼경 강의와 인문학 특강, 서예교실, 전통생활예절 체험으로 특화했다고 우수사례로 발표했다. 서악서원은 텃밭 가꾸기, 문화재 지킴이 양성 등으로 일자리와 새 소득원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동국대에서 문화재 살피미 동아리를 꾸리고 있는 김민서(22·학생) 대표는 “많은 문화재급 건축물을 관찰한 결과 늘어나는 관광객만큼 보존·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온라인 시대를 맞아 홈페이지를 통한 이미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향교·서원·고택 개방에 따르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세계에 고유한 우리나라 전통가옥에서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부터 예절을 지키는 등 사전교육에 애써야 합니다.” 경주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오싹·섬뜩… 대학로 공포물 몰려온다

    오싹·섬뜩… 대학로 공포물 몰려온다

    서울 대학로 공연 게시판이 서늘해졌다. 심령의 그림자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배치된 검은색 바탕에 섬뜩한 빨간 글씨가 도드라진 벽보가 하나둘 늘고 있다. 공연가가 공포물 특수 시즌에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오는 30일 개막하는 연극 ‘우먼 인 블랙’이 단연 기대작이다. 영국 작가 수전 힐의 동명 소설(1983)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주연한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젊은 변호사 아서 킵스가 죽은 노부인의 유산을 정리하러 간 바닷가 근처 저택에서 겪은 기이한 사건을 다룬다. 1989년 영국 코벤트가든의 포천 극장에서 연극으로 처음 올려진 뒤 지금까지 41개국에서 공연되며 롱런하고 있다. 연극에서는 이야기를 압축하고, 무대 효과를 극대화했다. 악몽 같은 사건을 겪고 수년을 시달려 온 아서 킵스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비극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연극을 택했다. 젊은 연극배우를 고용해 극으로 만들어 가면서 다시 공포가 스민다. 적절히 사용한 빛과 소리, 갑자기 물체가 움직이는 특수 효과, 배우들의 명연기가 가미돼 시종일관 긴장감을 이어 간다. 이번 공연에선 2007년 한국 초연부터 함께한 홍성덕과 ‘배우’ 역을 했던 이용환, 새롭게 합류한 권혁준이 아서 킵스를 연기한다. 배우 역에는 이동수, 김경민과 함께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활약하는 임강성이 캐스팅됐다. 6월 29일까지 종로구 동숭동 샘터파랑새극장 2관에서 공연한다. 3만원. (02)747-2090. 창작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도 많은 관객이 기다리는 작품이다. 유쾌한 동화 ‘메리 포핀스’ 앞에 ‘블랙’을 달고, 잔혹 동화를 암시한다. 1926년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나 보모와 4남매만 극적으로 살아났다. 아이들은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지만, 변호사가 된 4남매의 첫째 한스에 의해 12년 만에 잊혔던 사건의 전모가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난다. 2012년 초연한 뒤 ‘잘 만든 소극장 뮤지컬’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심장을 조이는 긴장감보다는, 아름답지만 잔혹하고 슬픈 이야기의 느낌이 더 강하다. 일본 토호극단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7월 5일부터는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에서 일본 공연을 시작한다. 이번 공연에는 김수용·박한근·임병근(이상 한스), 배두훈·서경수(이상 헤르만), 강연정·윤나무·홍륜희 등 연기파 배우들이 캐스팅돼 기대감을 더한다. 다음 달 10일부터 8월 31일까지 동숭동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한다. 2만~3만원. (02)548-0598. 연극 ‘술래잡기’와 ‘두 여자’도 오픈런(무기한)으로 공연을 이어 간다. ‘술래잡기’의 경우 오랜 감금, 다중인격, 밀실 살인 게임 등 영화에서 이미 소개된 소재를 동원하면서도 개성을 잃지 않았다. 막 출소한 남자와 다중인격 여인의 게임이 후반으로 갈수록 가해자와 피해자가 교차하는 사회문제로 변주돼 흥미진진하다. 동숭동 우리네극장. 3만원. 1661-6981. 연극 ‘두 여자’의 포스터는 대학로에서 가장 섬뜩한 벽보로 꼽힐 만하다. 작품 구성도 공포, 그 자체다. 이야기 흐름보단 특수분장과 음향, 조명 등으로 공포 체험을 선사한다. 명륜동 라이프씨어터. 2만 5000원. (070)8151-6416.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천장 무너졌던 샹쉬르 마른 성의 교훈

    [문소영의 시시콜콜] 천장 무너졌던 샹쉬르 마른 성의 교훈

    프랑스의 루이 15세와 코르티잔이던 퐁파두르 부인이 사용한 ‘동쪽의 베르사유’로 불린 샹쉬르 마른 성(Chateau de Champs-sur-Marne)은 지난여름 관람객에 재개장됐다. 흔히 ‘샹성’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성은 ‘태양왕’ 루이 14세 통치시기인 1699년 착공돼 1706년에 완공됐다. 18세기 초반의 건축·미술 양식과 프랑스식·영국식 정원을 잘 보여주는 곳으로 베르사유의 축소판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해 17세기 말부터 유럽 궁전과 귀족 대저택에서 유행했던 중국풍의 장식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시누아즈리(Chinoiserie)로 불리는 이 유행 덕분에 궁전은 대형 청화백자와 일본의 이마리 자기 등과 옻칠 가구, 중국인 상상벽화 등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최근 6년여 동안 폐쇄됐는데 2006년 9월 21일 밤 ‘중국인의 방’으로 칭하던 방의 천장 일부가 무너져내린 탓이다. 정확하게는 시누아즈리 화풍의 대가인 크리스토프 유에 2세(Christophe Huet, 1700~1759)가 천장에 석회를 바른 뒤 프레스코기법으로 천장화를 그렸는데, 그 일부가 훼손된 것이다. 드골 대통령 시절 해외 국빈의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자, 1974년 대중에 공개해 영화 ‘앙투아네트’를 찍는 등으로 더 유명해진 프랑스 문화유산에서 어떻게 이런 후진적인 일이 일어났을까. 프랑스 전체가 발칵 뒤집혀 원인을 조사해 보니 단순한 관리소홀이었다. 1분 거리에 문화재관리소가 있었지만, 천장화를 나무 천장과 분리시키는 곰팡이(mrule)가 가득 피어올라 문화재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곰팡이는 워낙 냄새가 지독해서 한 번만 문화재관리소에서 방문만 했어도 상황을 금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은 동서가 비슷하다. 5~6평 규모 작은 방의 천장화 복원에 6년 이상이 걸린 이유가 더 중요했다. 프랑스 역시 옛것을 활용해 복구할 것인가 여부를 두고 논란이 거셌던 탓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인 방의 천장화는 전체가 복제그림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문화재의 진정성’과 원형보존이란 문제에 봉착한다. 문화재보존복원의 헌법 격인 1964년 ‘베네치아 윤리 강령’에서 문화재 복구는 1항에 최소화 원칙과 4항의 복구·복원부위의 육안식별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또 책임소재를 두고 성의 관리책임자와 그의 부하 직원인 학예사 간에 법적 소송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오래된 불화가 뒤늦게 밝혀졌다. 그 갈등으로 곰팡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안타깝다. 2008년 2월 방화로 훼손된 숭례문 복구사업에 5년여를 투여했으나 최근 부실 복구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다. 전통방식에 대한 이해도, 적용도 부실했음을 드러냈다. 또한 부실 복구논란이 가열된 배경에는 문화재청 안팎의 갈등과 불화도 한몫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문화재를 보존·관리해 후손에게 물려주려면 윤리의 준수와 인화(人和)가 필수적이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비석도 없이…잠든 모습마저 그는 겸손했다

    비석도 없이…잠든 모습마저 그는 겸손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마법의 푸른 지팡이가 있어. 그 지팡이는 이 골짜기에 묻혀 있단다.” 소년은 큰형이 들려준 푸른 지팡이 이야기에 매료됐다. 이후 푸른 지팡이를 평생의 화두로 삼고 살았다. 죽기 전 지팡이가 묻혀 있다던 골짜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행복은 사람을 위해 사는 곳에 있다”며 민중에 대한 사랑과 휴머니즘을 실천했던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이야기다. 지난 6일(현지시간) 교보문고 독자 25명은 톨스토이가 평생 좇았던 푸른 지팡이의 골짜기를 찾았다. 톨스토이가 태어나 자라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곳.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툴라시 인근의 작은 마을 야스나야폴랴나다. 모스크바에서 세 시간여를 꼬박 달려간 ‘순례자’들을 맞이한 것은 은빛 자작나무 행렬이었다. 수직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러시아 국목(國木) 옆에는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가 개량했던 100여종의 사과나무 사이로 말들이 순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야스나야폴랴나는 톨스토이가 19세 때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60년간 산 터전이자 그의 첫 소설 ‘유년시절’을 포함해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등 대부분의 작품이 탄생한 요람이다. 현재 전체 면적은 4㎢지만 톨스토이가 상속받았을 당시에는 12㎢에 이르렀으며 하인만 330여명을 거느렸다. 독자들을 안내한 모스크바국립대 김진성(36·러시아 문학 전공) 박사는 “야스나야폴랴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막심 고리키, 안톤 체호프, 이반 투르게네프 등이 줄지어 찾은 곳으로, 러시아 예술가들에게는 성지와도 같다. 불안이 팽배했던 세기 말, 톨스토이가 제시하는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2층짜리 흰 저택은 그의 몸만 빠져나간 듯 유품 4000여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래된 장서들의 퀘퀘한 냄새가 묵직하게 전해졌다. 15개 언어를 구사했던 톨스토이가 소장했던 책은 39개 언어 2만 2000여권에 이른다. 2층 응접실로 올라가니 러시아 유명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와 일리야 레핀이 각각 그린 45세, 59세 때의 톨스토이 초상화가 형형한 눈빛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집필실에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이 쓰여진 책상과 눈이 나빠 182㎝의 장신을 한껏 구부리고 앉았던 작은 의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택을 빠져나와 숲길을 얼마나 헤치고 갔을까. 사람 하나가 누우면 꼭 맞을 크기의 장방형 봉분이 솟아 있었다. 대문호는 어릴 적 형들과 뛰놀던 골짜기의 흙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비석 하나 없는 흙더미를 덮은 야생화가 겨우 그곳이 ‘묘지’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최대한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는 그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농노들을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대저택을 팔고, 말년에는 저작권과 재산 소유권까지 사회에 환원하려 했던 그다운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객사’라는 비운을 맞았다. 82세이던 1910년 아내와의 불화로 집을 떠난 지 열흘 만에 간이역의 역참지기 집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삶뿐 아니라 죽음으로도 무소유와 청빈, 평화와 박애 정신을 실천한 그의 무덤 앞에 선 독자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번 기행에 동행한 정호승(63) 시인도 무덤에서 쉽사리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삶의 결과는 죽음인데 대문호의 무덤에 비석도, 십자가도 하나 없는 걸 보니 감동이 큽니다.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흔적조차 없었을 테지요. 죽어서의 모습이 그렇게 겸손하다면 그가 생전에 정화된 삶을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의 공동 주최로 열린 러시아 문학기행은 러시아 대표 문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시간이다. 기행은 모스크바에서 ▲고려인 3세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의 강연 ▲알렉산드르 푸시킨·안톤 체호프 박물관 방문에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배경지 견학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관람 등으로 진행됐다. 글 사진 야스나야폴랴나(러시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공연리뷰] ‘블랙메리포핀스’

    한국뮤지컬대상, 더뮤지컬어워즈 등 뮤지컬 시상식에서 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이름을 널리 알린 ‘설록홈즈’가 보여준 대학로 창작뮤지컬의 힘을 2012년 ‘블랙메리포핀스’가 이어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홍수 속에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완성도 높은 무대장치, 배우들의 열연 등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원작 소설이나 시나리오도 없는 100% 순도의 한국 창작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불행한 기억은 잊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1926년,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란첸 슈워츠 박사의 대저택에 화재사건이 발생한다. 박사는 숨졌지만, 박사에게 입양된 4명의 아이들이 보모이자 박사의 연구 조교였던 메리 슈미트의 극적 구조로 구출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다음 날 메리 슈미트는 실종됐고, 4명의 아이는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사건은 단순 화재사건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12년 뒤 어느 날, 네 명의 아이 중 맏형 격인 한스 시몬에게 박사의 수첩 한 권이 전달되면서 각기 다른 집에 입양됐던 아이들이 한데 모이고, 12년 전 그날 밤의 진실에 대해 파고든다. 아이들이 박사에게 입양된 데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나치 정권하에서 박사는 독일이 전 세계를 점령했을 때 식민지의 국민에게 독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최면을 통해 지울 수 있는지를 실험하려 했고, 그 실험 대상으로 아이들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흘러간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조나스 역을 맡은 김대현의 공황장애 연기 및 다양한 팔색조의 연기는 인상적이며 탁월하다. 한스 역을 맡은 장현덕, 안나 역의 송상은 등도 안정된 연기력을 보이며 극의 몰입을 돕는다. 대극장이 아닌데도 조명장치, 무대 장치 등은 대형 뮤지컬 뺨치게 완성도가 높다. 특히 1막의 첫 장면인 ‘1926년 그란첸 박사 대저택 화재사건’ 장면은 조명과 커튼 막, 배우들의 몸동작 및 그림자를 잘 활용해 완벽한 영상미를 만들어낸다. 또 회전 무대를 중심으로 겹겹이 싸인 진실의 비밀을 상징하는 무대 위 사각의 턴테이블 모서리는 네 명의 아이들이 배치되고, 그들이 서로 가진 기억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훌륭한 무대 장치로 활용된다.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 라인을 이용, 적절하게 긴장도를 높였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7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4만 5000~6만원. (02)548.0597~8.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산시성 1경-몐산…살아숨쉬는 중국 사적지 山西

    산시성 1경-몐산…살아숨쉬는 중국 사적지 山西

    우리나라 국적기가 이륙을 앞둔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 국제공항. 허름한 철조망 너머로 삼삼오오 주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비행기를 배경 삼아 아이의 사진을 찍어 주는 엄마, 트럭 위에 걸터 앉아 낄낄대는 남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자못 신기했나 봅니다. 그만큼 우리를 포함한 외지와의 교류가 많지 않았다는 방증이겠지요. 하지만 품고 있는 문물은 눈부셨습니다. ‘천공의 도시’ 몐산(綿山)과 명·청대 건물들이 늘어선 핑야오구청 등 수많은 유적들이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네 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유적들이 여전히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점이었습니다. 박제되지 않은 중국의 문물과 마주할 수 있는 곳, ‘5000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로 가라’는 헌사가 전해져 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지요. ●빼어난 자연과 고도(古都)의 숨결을 찾는 여정  비행기가 요동친다. 착륙을 앞두고 기체가 흔들리는 일상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말끔한 고속도로가 아닌, 허름한 시골 마을의 비포장길을 덜덜거리며 날고 있는 듯하다. 부기장이 안내 방송을 통해 친절하게 일러 준다. 봄철 황토 고원 특유의 황사바람 때문이라고. 비행기 수천m 아래로는 산자락을 층층이 깎아 조성한 계단식 밭들이 누런 황토를 뒤집어쓴 채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수많은 농부들이 오랜 세월 한땀 한땀 만든 설치미술 작품을 보는 듯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가 어딘가. 산시성(山西省)이다. 이웃한 산시성(陝西省)과 함께 해마다 봄이면 우리나라에 황사를 날려 보내는 진원지 가운데 한 곳이다. 두 성은 중국어 발음이 같다. 로마자 표기도 똑같다.  비슷한 점은 또 있다. 산시성(陝西省)이 ‘실크로드’의 시발점인 것에 견줘 산시성(山西省)은 국수가 생겨나 전파된, 이른바 ‘누들로드’(Noodle Road)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세계의 국수는 중국에 있고, 중국의 국수는 산시에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게다. 현지 가이드 최원성씨에 따르면 산시성에 전해지는 면의 종류만 270여종에 달한다.  여기에 빼어난 자연 경관과 역사의 숨결 오롯한 고도(古都)들도 즐비하다. 호사가들이 ‘중국의 지하 문화재는 산시(陝西)에, 지상 문화재는 산시(山西)에 있다.’고 상찬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겠다. 산시성(陝西省)의 지하 문화재란 병마용, 한양릉 등을 염두에 둔 표현일 터. 그렇다면 산시성(山西省)으로의 여행은 불교와 도교의 성지 몐산과 누대를 이어온 핑야오구청(平遙古城) 등 지상의 문화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봐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한식의 기원 품어…신라시대 최치원 흔적도  산시성의 성도 타이위안(太原)에서 남쪽으로 3시간 가까이 내려가면 몐산에 닿는다. 한식(寒食)의 기원이 된 개자추(介子推)의 고사가 어린 산이다. 높이는 약 2567m. 산둥성과 산시성을 가르는 타이항(太行) 산맥의 한 갈래다. 몐산의 겉모습은 유순하다. 하지만 안쪽은 험하기 짝이 없다. 사방이 죄다 절벽이다. 석회암 협곡을 따라 구불구불 산허리를 오르다 보면 천길단애 사이사이에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이처럼 몐산의 문화유산은 대개 해발 2000m 언저리에 세워져 있다. 그야말로 ‘천공(天空)의 도시’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벼랑길은 ‘놀이 기구의 종결자’다. 몐산 초입부터 직벽을 따라 16㎞나 이어져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겁난다. 절정의 스릴을 맛보려면 오를 땐 버스 오른편, 내려올 땐 반대편에 앉으시라. 단언컨대 오금이 저릴 게다.  몐산을 개발한 이는 염길영이라는 석탄 부호로 알려져 있다. 석탄 광산으로 떼돈을 번 그는 1996년 말부터 몐산 개발에 나섰고, 2005년 5월에 처음 개방했다. 몐산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풍경은 도교사원 다뤄궁(大羅宮)이다. 도교에서 최고의 숫자로 여기는 ‘13’층짜리 건물이다. 내부엔 신라시대 최치원이 다녀간 흔적도 남아 있다.  다뤄궁에서 벼랑길을 몇 굽이 돌면 ‘스자이’(石寨)다. 5호16국 시대, 노예에서 후조의 초대 황제에 등극한 석륵이 지은 군사 요새다. 스자이와 연결된 하늘다리 ‘톈차오’(天橋)의 자태도 웅장하다.  1400년 전 개창했다는 고찰 윈펑스(雲峰寺)는 몐산의 아이콘이다. 몐산 절벽엔 모두 200여개의 동굴이 있는데, 윈펑스는 그 가운데 포복암이라 불리는 높이 60m, 깊이 50m의 동굴 속에 지어졌다. 윈펑스 위 절벽에는 붉은색 천을 단 등과 종들이 매달려 있다. 소원을 비는 사람이 먼저 등을 단 뒤, 소원이 이뤄지면 종으로 바꿔 단다고 한다. 절벽 틈새엔 이쑤시개와 면봉 등이 빼곡히 꽂혀 있다. 허리가 아픈 사람들이 이쑤시개 등을 꽂아 두면 낫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몐산엔 모두 14존의 등신불(等身佛)이 있다. 불교 성인은 10존, 도교는 4존이다. 윈펑스에 1, 산자락 너머 정궈스(正果寺)에 13존이 각각 모셔져 있다. 윈펑스에서 정궈스까지 트레킹로가 조성돼 있다. 길이는 3㎞ 남짓. 윈펑스 위쪽의 몐산 능선을 따라 간다. 윈펑스에서 절벽에 붙은 폭 1m쯤의 계단을 타고 오를 때 다소 숨이 찰 뿐 이후로는 대체로 평탄하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호텔 윈펑수위안(雲峰墅苑)에서 벼랑길을 따라 걷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궈스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중국의 절개’ 개자추를 빼고 몐산을 말할 수는 없다. 개자추는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이 19년간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동안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이며(割肉救主) 곁을 지킨 신하다. 훗날 왕이 된 문공이 몐산에 은거한 개자추를 불러내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르지만 개자추는 “신하들이 벼슬을 놓고 다투는 게 부끄럽다.”며 끝내 나오지 않고 3일 뒤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다. 한식(寒食)은 불타 숨진 개자추를 기리며 3일 동안 찬 음식을 먹었던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몐산 1800여m 능선에 개자추의 무덤이, 바로 아래엔 그를 기리는 사당이 있다. 관광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산은 서현곡 쪽으로 내려온다. 몐산에 불이 났을 때 개자추가 어머니를 업고 힘겹게 올랐다는 계곡으로, 그의 효성을 체험하라는 뜻에서 계곡 바위벽에 설치한 철제 계단을 딛고 내려온다. ●‘민간의 자금성’ 왕자다위안  몐산에서 차로 15분 남짓 떨어진 곳에 왕자다위안(王家大院)이란 대저택이 있다. 청나라 때 링스(靈石) 지역에 정착한 왕씨 형제가 두부 장사로 시작해 큰 돈을 벌어 1796년 완성한 집이다. 원래 25㎢에 달하는 주택군이지만, 현재는 ‘불과’ 4.5㎢만 개방하고 있다. 방은 모두 1118칸, 정원은 113개에 달한다. ‘민간의 자금성’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대목이다.  왕자다위안엔 ‘형만 한 아우’가 있다. 약 30m 길이의 다리를 경계로 형과 아우의 집이 나뉘는데, 아우의 집이 월등히 크다. 저택은 ‘왕’(王)자 형태를 하고 있다.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명∙청 시대의 부조와 조각, 건축 양식도 엿볼 수 있다. 현재는 정부에서 관광지로 관리하고 있다.  왕자다위안에서 잊지 말고 살펴야 할 게 주변의 ‘동굴집’이다. 동굴집은 산시성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이다. 황토 고원인 만큼 주민들이 동네 뒤편의 야트막한 동산을 판 뒤 주택이나 창고 등으로 이용한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동굴집에서 살고 있다. 왕자다위안의 32m 담벼락에 서면 그네들 삶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글·사진 타이위안·핑야오·제슈(중국)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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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문스님, ‘명월이 생식기’ 소송패소 불구 ‘목표달성’

    혜문스님, ‘명월이 생식기’ 소송패소 불구 ‘목표달성’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부장판사 임영호)는 19일 혜문스님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소)를 상대로 낸 조선 기생 ‘명월이 생식기’ 표본보관 중지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명월이 생식기’ 보관중지 청구소송은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인 혜문 스님이 “일제가 무단 적출한 ‘여성 생식기 표본’을 국과수에 보관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니 폐기하라”며 국가를 상대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기생 명월이’는 일제 강점기 시대 서울 종로에서 유명했던 기생집 명월관에서 일했던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 경찰은 명월이와 성관계를 맺은 일본 남성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이유를 규명한다는 목적으로 생식기를 적출했다. 적출된 명월이의 생식기는 포르말린용액에 넣어 보관되다가 1955년 국과수에 넘겨졌다. 혜문스님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현장 검증이 있던 날 처음 ‘명월이 생식기’를 접했을 때의 충격을 전하고 있다.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명월이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생식기를 오려 표본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표본을 보는 순간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막연히 주먹 정도 되는 크기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장기 하나를 떼어낸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막상 실물을 보니 축구공만 한 크기였다. 표본은 피부의 탄력이 남은 젊은 여성의 둔부와 생식기를 완전히 오려낸 상태였고, 나팔관까지 이어지는 자궁도 도려내어져 있었다” 혜문스님의 호소를 받아들인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는 5월 27일 ‘국과수에서 생식기를 폐기하는 대신 혜문 스님은 위자료를 포기하라’며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화해권고는 양측이 조건을 충족시켰을 시 판결문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국과수 측은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6월 14일 용역업체에 의뢰해 자체적으로 표본을 폐기했다.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혜문스님에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적격성이 없다며 판단했다. 문제가 된 표본은 이미 패기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혜문 스님의 소송은 패소 판결났지만 목적은 이룬 셈. 처참한 죽음을 맞았던 명월이는 반세기 만에 온전히 영면을 취하게 됐다. 사진 = 혜문닷컴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기자 legend@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김태희 "양동근과 ‘우중키스신’, 먼저 들이대긴 처음"▶ MC몽, 병역비리서 법정분쟁까지 잇단 악재 ‘시끌’▶ ’청바지 입었을 뿐인데…’ 김민희, 패션화보계 레전드▶ ’힐튼과 연락하는’ 홍콩재벌녀 맥신 쿠, 대저택 공개 "입이 쩍…"▶ 최은주, 촬영중 고산 오르다 저체온증…"죽다 살아나"▶ 하이킥 시즌3 제작된다...방송은 2011년 예정▶ 시크릿 징거, 다이어트 성공...’노안’ 벗고 섹시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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