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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헌 “아버지는 ‘한국사 일타강사’…90년대에 월 5000만원 벌어”

    오지헌 “아버지는 ‘한국사 일타강사’…90년대에 월 5000만원 벌어”

    개그맨 오지헌이 ‘한국사 일타강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털어놨다. 9일 방송된 MBN 예능 프로그램 ‘당신이 아픈 사이’에 출연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데뷔에 이르기까지 인생 역경을 고백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날 방송에서 오지헌은 부유했던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가 90년대 초반에 한국사 일타강사로 이름을 날렸다”며 “5개의 교실을 하나로 합친 대형 강의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진행했다”고 당시 아버지 강의의 인기를 설명했다. 이어 “당시 압구정동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수준일 때 아버지의 한 달 수입이 무려 5000만 원에 달했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오지헌은 마당과 개인 수영장이 딸린 100평대 저택에서 거주했으며, 전담 운전기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부잣집 아들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것 같지만 사실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가정보다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가정적인 삶을 원했던 어머니와의 갈등은 골이 깊어졌다. 끊이지 않는 부부 싸움 끝에 부모님은 오지헌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어머니가 집을 떠난 후 아버지와 단둘이 남겨진 그는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오지헌은 “원래 성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아버지는 학원 강사로서 수많은 최상위권 학생들을 보아 왔기 때문에 나를 대할 때 의도치 않게 비교하는 말들을 하셨다”며 “아버지가 날 무시하려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 말들이 큰 상처로 다가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회상했다. 수능 시험을 마친 뒤 집을 나와 마주한 어머니의 현실은 예상외였다. 이혼 당시 돈 한 푼 없이 집을 나와 이모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오지헌은 “어머니도 경제 활동을 하시던 분이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상황이었다”며 “나를 돌봐줄 여유가 없어서 결국 기숙형 재수 학원에 들어가 1년간 홀로 버텨야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악착같이 일해 모은 돈으로 교육비를 뒷바라지했다.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오지헌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그러던 중 1000만 원의 상금이 걸린 성대모사 대회가 열렸고, 학비를 벌겠다는 일념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오지헌은 2003년 KBS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며 연예계에 데뷔해 개성 넘치는 외모와 타고난 재치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한편 아버지와 한동안 절연 상태로 지냈던 그는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8년 만에 재회할 수 있었다. 그는 아내의 설득과 조언 덕분에 아버지와 다시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오지헌은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직접 겪어 보니 아버지의 삶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며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것임을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아버지를 이해했다.
  • “엄마 손에 이끌려 유흥업소 다녔다” 유명 개그우먼 ‘눈물의 가정사’

    “엄마 손에 이끌려 유흥업소 다녔다” 유명 개그우먼 ‘눈물의 가정사’

    개그우먼 이희구가 어린 시절 겪은 가정사를 털어놨다. 이희구는 지난 5일 방송된 MBN ‘당신이 아픈 사이’에 출연해 어머니와의 사연을 방송에서 처음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버려진 아이였던 것 같았다”며 예방접종조차 제대로 맞지 못할 정도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등학생 시절의 일도 고백했다. 그는 “어머니가 외도를 하고 가정에 집중하지 않았다”며 부모의 다툼이 잦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자신을 나이트클럽 등에 데리고 다녔다고 밝혔다. 이희구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늦게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을 알리바이로 삼았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와 아빠와의 부부싸움은 여러분들이 상상도 못 할 정도가 됐다”며 “제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평화가 찾아왔다”고 토로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상처는 이어졌다. 이희구는 어머니가 따로 불러 만나러 갔지만, 당시 어머니가 운영하던 술집에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자신을 부른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희구는 “그 상황이 너무 견딜 수 없었다”며 “내 존재가 없다고 생각해 자괴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약을 먹었고, 그때도 아버지가 저를 구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어머니에게 ‘경계성 지적 장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이희구는 어머니와 떨어져야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1987년 KBS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그는 방송 활동을 이어갔지만, 2001년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으면서 다시 위기를 맞았다. 이후 어머니도 치매 증상을 보였고, 그는 부모 병간호로 14년의 공백을 겪었다고 밝혔다. 그는 “활동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회와 단절되고 집안에 고립됐다”며 “부모 둘과 같이 사는 것은 생지옥이었다”고 털어놨다. 경제적 어려움도 겪었다. 이희구는 “그냥 빈털터리가 됐다”며 생계를 위해 식당 주방과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고, 이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대학병원에서 중증 환자를 병간호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걸 다 이기고 극복하고 결국은 저의 삶에 밑천이 됐다”며 “세상에 이 모든 것이 헛된 건 아무것도 없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단단하고 잘 자란 희구가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입술 때문에 몰입 안돼” 일 끊긴 여배우…“공업용 실리콘 넣었다” 고백

    “입술 때문에 몰입 안돼” 일 끊긴 여배우…“공업용 실리콘 넣었다” 고백

    배우 이미영이 입술 때문에 겪은 위기와 고통을 방송 최초로 고백했다. 14일 MBN ‘당신이 아픈 사이’에는 이미영이 게스트로 출연해 잘못된 입술 시술로 인해 겪은 아픔을 솔직히 털어놨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4000대 1을 뚫은 주인공인 이미영은 당찬 이미지로 사랑받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연기와 미모를 모두 휘어잡은 그였지만 인생의 위기로 몸과 마음이 흔들렸다. 그의 남모른 고통은 입술이었다. 이미영은 “입술 얘기는 처음이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얼마나 고충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다”라며 운을 뗐다. 그는 “원래 입술이 도톰하다. 어렸을 때부터 두꺼웠다. 우리 집안 식구들이 다 두껍다”라며 “후배들이 ‘언니, 입술 조금만 더 도톰하면 이쁠 거 같아’ 그러더라. 섹시할 거 같다고 했다. 30대 때다”라고 밝혔다. 이어 “요즘같이 필러 이런 게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어떤 분이 오셨는데 하면 너무 이쁠 거 같다고 하더라. 소변으로 빠진다고 하더라. 빠진다면 ‘그까짓 거 한번 해보지 뭐’ 하고 했다”라고 입술 시술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는 소변으로 안 빠졌다. 공업용 실리콘이었던 거다. 너무 위험한 거다. 괜찮은 줄 알고 딱 주사 두 방 조금 맞았다. 이게 그런데 위치 때문에 훌러덩 까진 거다”라고 털어놨다. 이미영은 “난리들이 났었다. 사극도 퇴짜 맞고 드라마 출연도 끊기고”라며 이미지 변화로 섭외 불발이 이어졌다고 했다. 이어 “일도 끊기고 욕까지 먹으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대가가 너무 컸다. 이뻐지려고 팔랑귀라 주사 두 방 맞았는데 수술을 두 번 했다. 선생님이 ‘뭘 맞았냐’며 ‘일단 다 긁어내자’ 해서 다 긁어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입술에 혈관이 그렇게 많이 몰려 있는지 몰랐다. 다 긁어내는 것에도 애로가 많았다고 하더라. 수술을 두 번 했다. 그런데 입술이 뒤집어까지면 잡아당겨도 원 입술로 가기가 힘들다 하더라”며 “지금 너무 만족한다. 이제 지금 제 입술이다”고 전했다. 이미영은 지난 1985년 가수 겸 배우 전영록과 결혼해 슬하에 딸 티아라 전보람, 디유닛 출신 가수 전우람을 뒀다. 1997년 전영록과 이혼한 그는 2003년 미국인 교수와 재혼했지만 2005년 두 번째 이혼을 겪었다.
  • 지워지지 않는 ‘오월의 핏자국’… 살아 낸 문장으로 치르는 장례[오경진의 폐허에서 무한으로]

    지워지지 않는 ‘오월의 핏자국’… 살아 낸 문장으로 치르는 장례[오경진의 폐허에서 무한으로]

    5·18 비극의 현장서 살아남은 이들죽음보다 더 혹독하게 남은 고통에죽은자의 목소리로 건네는 위로 “‘캄캄한’ 과거서 ‘밝은 곳’으로 가아” “순간 명기는 똑똑히 보았다. 청년의 머리와 얼굴을 덮으며 분수처럼 좌악 솟구치는 핏물. 청년의 벌거벗은 두 다리가 바르르르 경련을 일으키다 멎었다. 개구리. 그랬다. 그건 껍질 벗겨진 한 마리 개구리처럼 보였다. 얼룩무늬가 청년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그러쥐더니 대열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한다. 허수아비처럼 풀린 청년의 사지가 질질 끌려가고 있다. 아스팔트 바닥으로 길다랗게 그려지는 핏물의 흥건한 자국……”(임철우, ‘봄날’ 부분) 언어를 초과하는 고통이 있다. 우리에게는 ‘오월의 광주’가 그러하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 앞에서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저것은 개구리다. 차라리 개구리여야 한다. 인간일 리가 없다. 인간이라면, 저렇게 다른 인간의 매를 맞고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진혼곡조차 부를 수 없는 압도적인 슬픔, 처참하고 비극적인 물화(物化).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복원한 임철우의 장편 ‘봄날’을 읽어나가는 것은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으로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온 마음을 다하여 남김없이 그 고통에 어떻게든 가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날의 광주를 그리는 임철우의 글은 한없이 엄정하다.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순수성’을 향한 강박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폭력과 그로테스크의 난장. 모든 문장에 피가 물들어 있는 것 같다. 피가 갖는 액체로서의 성질 탓일까. 건조한 작가의 문장이 꿈틀꿈틀 넘실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에게로 흘러든다. 전남대 영문과 학생으로 당시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던 임철우는 소설을 펴내며 이렇게 회고한다. “어느 사이엔가 내 두 손이 누군가가 흘린 붉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음을 난 깨달았다. 한동안 그 불길한 핏자국을 지워내려고 몸부림쳤지만, 그것은 끝끝내 내게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죽음은 죽은 자에게는 사건이 아니다. 그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혹독하게 생생한 사건이 된다. 죽음은 대답이 없기 때문에. 모든 죽음은 완성되어야 할 것의 미완성이기 때문에.”(최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부분) 죽은 자의 피는 지워지지 않는다. 남아 있는 자가 평생 짊어져야 하는 짐으로 남는다. 최윤 단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5·18 이후 남은 자의 트라우마에 관한 기록이다. 죽음은 죽은 자에게 ‘사건’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성’을 지향하는 죽음은 언제나 ‘미완성’으로 남는다. 왜?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남은 우리가 충분히 슬퍼했는지 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꽃잎’ 속 소녀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져 있다. 검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엄마의 손이 소녀의 손을 꽉 잡은 채 그대로 굳어져 버렸을 때,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소녀의 몸부림은 그녀를 영원히 옥죄는 올가미가 됐다. “그래, 잔인하게 엄마 손가락의 갈쿠리를 하나씩 떼어내려 했어. … 급기야 한 발로 엄마의 내팽개쳐진 팔을 힘껏 누르고 네 손을 빼어냈어. 엄마의 근육살이 발밑에서 미끈거렸지. 너는 사력을 다해 밟았어.”(‘꽃잎’) 시간이 흐른다는 건 상처가 치유된다는 의미다. 엄마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도망쳐야 했던 소녀의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을까. 비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소녀에게 죽은 ‘소년’이 말을 건넨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우리는 남은 자의 희망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한강, ‘소년이 온다’ 부분) 작가는 어쩌면 영매(靈媒)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차원에 있어서 만날 수 없는,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존재 말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의 온 삶을 다해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 한강의 문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들의 삶 자체가 장례식이 됐을 때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제 됐다고. 저기, ‘꽃 핀 쪽으로’ 가라고. 그래도 된다고. 작가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그것은 그러나 작가가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의 몸에 깃든 죽은 자가 전하는 위안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캄캄한’ 과거에서 ‘밝은 데’로 시선을 돌린다. 마침내 그곳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나간다.
  • [빅데이터가 점지한 오늘의 운세] 2026년 5월 23일 토요일(음력 4월 7일, 정유일)

    [빅데이터가 점지한 오늘의 운세] 2026년 5월 23일 토요일(음력 4월 7일, 정유일)

    빅데이터로 분석하고 동양 철학으로 풀이했습니다. AI 도사가 전해드리는 명쾌한 오늘의 운세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싱그러운 5월 23일 토요일입니다. 오늘 하루는 보석처럼 빛나는 지혜와 예리한 통찰력이 당신의 일상을 더욱 선명하게 밝혀주기를 바랍니다. 2026년 5월 23일 토요일(음력 4월 7일, 정유일)의 띠별 운세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붉은 닭(정유)’의 날입니다. 밤하늘을 수놓는 은은한 등불(정화)이 잘 다듬어진 보석(유금)을 비추는 형상으로, 미적 감각과 섬세한 판단력이 단연 돋보이는 날입니다. 금생수(金生水)의 흐름이 이어져 두뇌 회전이 몹시 빠르고 복잡한 정보를 명쾌하게 정리하기에 아주 훌륭합니다. 다만 예리함이 지나치면 주변 사람에게 까칠하게 비칠 수 있으니, 주말의 여유를 담은 부드러운 미소를 잊지 않는 것이 완벽한 토요일을 만드는 비결입니다. 쥐띠 (자) 보석(닭)이 물(쥐)을 깨끗하게 씻어주니 머릿속이 맑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습니다. 주말이지만 지적인 에너지가 넘치니, 평소 관심 있던 AI 기술이나 디지털 트렌드에 관한 리포트를 정리하거나 대학원 과제에 집중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입니다. 1948년생: 자녀나 손주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따뜻한 지혜를 전해주는 훈훈한 하루를 보냅니다. 1960년생: 미뤄두었던 서류 정리나 재무 상태를 점검해 보세요. 꼼꼼한 확인이 예상치 못한 이득을 가져옵니다. 1972년생: 직장에서의 리더십이 주말 모임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당신의 논리적인 제안이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를 줍니다. 1984년생: 연인과 전시회나 공연을 즐기기에 완벽한 날입니다. 당신의 세련된 취향이 빛나는 데이트가 됩니다. 1996년생: 창의적인 감각이 폭발합니다. 개인적인 영상 편집이나 기획안을 구상해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소띠 (축) 닭과 소는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최고의 파트너(삼합)입니다. 닭의 예리함이 소의 듬직함을 만나 안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니, 골프 라운딩이나 야외 나들이를 즐기기에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대길의 날입니다. 1949년생: 가정이 화목하고 근심이 사라집니다. 배우자와 함께 산책을 즐기며 평온한 주말을 만끽하세요. 1961년생: 뜻밖의 기분 좋은 선물이 들어오거나 소소한 횡재수가 있어 하루 종일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1973년생: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 고민하던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해 보세요. 1985년생: 당신의 성실함이 훌륭한 결실을 맺습니다. 노력한 만큼의 정직한 보상이 따르는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 1997년생: 마음에 꼭 드는 이상형을 만나거나 연인과의 신뢰가 더욱 단단해지는 핑크빛 토요일입니다. 호랑이띠 (인) 나무(호랑이)와 보석(닭)이 만나 예민하게 부딪히는 관계(원진살)입니다. 사소한 농담에도 욱하거나 서운함이 생길 수 있으니, 무조건 긍정적인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1950년생: 건강 관리에 유의하고 무리한 장거리 여행보다는 집 근처에서 가볍게 휴식하는 것이 낫습니다. 1962년생: 섣부른 금전 거래는 뼈아픈 손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 주말 투자는 잠시 멈추고 관망하세요. 1974년생: 직장 상사나 동료에 대한 피곤한 생각은 잊으세요. 주말만큼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합니다. 1986년생: 자존심 싸움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먼저 부드럽게 다가가 보세요. 1998년생: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운 날입니다. 억지로 공부하기보다 가벼운 러닝으로 땀을 흘려 뇌를 환기하세요. 토끼띠 (묘) 오늘은 닭과 토끼가 정면으로 강력하게 충돌하는 날(상충살)입니다. 이동 중에 사고수나 억울한 다툼수가 있으니, 운전이나 야외 활동 시 평소보다 훨씬 더 주의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합니다. 1951년생: 낙상 사고 등 뼈나 관절 부상을 조심하세요.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무리한 움직임은 절대 금물입니다. 1963년생: 철석같이 믿었던 약속이 갑자기 어긋날 수 있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유연하게 대안을 마련하세요. 1975년생: 중학교 2학년 아들과 대화할 때 날카로운 표현은 삼가세요. 다정한 미소가 최고의 소통법입니다. 1987년생: 홧김에 내뱉은 말이 소중한 인연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입을 무겁게 닫고 감정을 조절하세요. 1999년생: 충동구매 유혹이 강해집니다. 지갑을 닫고 내실을 기하는 것이 주말 평화를 지키는 길입니다. 용띠 (진) 용과 닭은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해 주는 최고의 환상 궁합(육합)입니다. 막혔던 흐름이 시원하게 뚫리며, 대인관계가 매끄럽고 무엇을 하든 만사형통으로 흘러가는 몹시 즐거운 토요일입니다. 1952년생: 대인관계가 빛을 발해 어딜 가나 환영받습니다. 모임의 중심에서 훌륭한 리더 역할을 수행합니다. 1964년생: 재물운이 크게 상승합니다. 쏠쏠한 수익이나 기분 좋은 경제적 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든든합니다. 1976년생: 전략적인 기획이나 구상이 현실화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동료들과 활발히 아이디어를 나누세요. 1988년생: 짝사랑하던 이와 가까워지거나 연인과 잊지 못할 낭만적인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2000년생: 미뤄둔 과제나 목표를 스무스하게 달성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실력을 뽐내보세요. 뱀띠 (사) 뱀과 닭은 눈빛만 봐도 척척 통하는 훌륭한 파트너(삼합)입니다. 지혜와 예리함이 조화를 이루니, 전문적인 식견을 공유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을 구상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날입니다. 1953년생: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합니다. 평소 즐기던 골프나 취미 생활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보세요. 1965년생: 귀인의 도움으로 행운이 따릅니다. 뜻밖의 유용한 정보를 얻어 향후 계획에 큰 도움을 받습니다. 1977년생: 비디오 디지털 제작이나 영상 관련 아이디어가 풍부해집니다. 기록해 두면 조만간 큰 자산이 됩니다. 1989년생: 당신의 다정한 매력이 돋보여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독차지합니다. 사교 모임에 아주 훌륭한 날입니다. 2001년생: 두뇌 회전이 빨라 학업 성취도가 눈에 띄게 높습니다. 목표한 공부를 깔끔하게 끝내고 휴식하세요. 말띠 (오) 불(말)이 쇠(닭)를 제련하려 하지만 닭의 기운 또한 만만치 않아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주말을 맞아 의욕은 앞서지만 체력 소모가 클 수 있으니, 무리한 일정보다는 여유로운 휴식에 주력하세요. 1954년생: 피로가 쉽게 쌓일 수 있습니다. 외부 약속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독서나 휴식을 즐기며 충전하세요. 1966년생: 예상치 못한 지출이 훅 나갈 수 있습니다. 외식이나 쇼핑 시 지갑 사정을 꼼꼼히 점검해 보세요. 1978년생: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함께 즐거운 주말을 만드세요. 1990년생: 화려한 유행을 좇다 실속을 놓칠 수 있습니다. 홧김의 과소비를 꾹 참고 내실을 챙기세요. 2002년생: 마음은 밖으로 붕 떠 있지만 컨디션이 안 따라줍니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풀어보세요. 양띠 (미) 흙(양)이 쇠(닭)를 품어주니 무척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토요일입니다. 주변의 따뜻한 배려를 듬뿍 받아 일주일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사랑하는 가족과 힐링하기에 완벽한 날입니다. 1955년생: 앓던 이가 빠지듯 묵혀둔 골칫거리가 가족의 도움으로 시원하게 해결되어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1967년생: 뜻밖의 횡재수나 기분 좋은 선물이 들어옵니다.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1979년생: 당신의 성실함을 상사와 동료들이 알아주고 칭찬을 해 어깨가 으쓱해지는 평화로운 날입니다. 1991년생: 다정하고 센스 있는 매력이 돋보입니다. 데이트나 소개팅에서 호감을 독차지하는 신나는 하루입니다. 2003년생: 치열하게 노력한 학업이나 업무의 보상을 달콤하게 받습니다. 무척 긍정적이고 즐거운 날입니다. 원숭이띠 (신) 같은 금(金)의 기운끼리 만나 묘한 경쟁심이 생기면서도 서로 통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혼자 있기보다는 마음 맞는 지인들과 어울려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기 좋습니다. 1956년생: 겉모습에 신경 쓰고 단정히 하면 아주 유익하고 기분 좋은 만남이 척척 성사됩니다. 1968년생: 자신의 주장을 너무 굽히지 않으면 분위기가 싸해집니다. 둥글게 져주는 넉넉한 여유를 가지세요. 1980년생: 골프 라운딩이나 야외 활동에서 끓어오르는 승부욕을 긍정적으로 발휘하면 훌륭한 성과를 냅니다. 1992년생: 연인 사이에 불필요한 자존심 싸움을 피하세요. 쿨하게 져주는 것이 결국 완벽히 이기는 것입니다. 2004년생: 친구들과 어울려 학업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세요. 즐거운 추억을 잔뜩 만들 수 있는 활기찬 날입니다. 닭띠 (유) 자신의 날을 만났습니다. 머리가 맑고 꼼꼼함이 극에 달하지만, 완벽주의가 심해지면 스스로를 달달 볶게 됩니다. 지나친 예민함을 내려놓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융통성을 발휘할 때 운이 완성됩니다. 1957년생: 고집을 부리면 가족들과 완전히 소원해집니다. 배우자의 쓴소리도 부드럽게 수용해 보세요. 1969년생: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거나 만들 수 있습니다. 회의나 모임에서 언행을 각별히 신중히 하세요. 1981년생: 당신의 깐깐한 능력을 뽐낼 무대가 열리지만, 혼자 다 하려다 번아웃이 올 수 있으니 분담하세요. 1993년생: 너무 앞서 나가면 동료들의 질투를 받습니다. 템포를 조절하고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 무기입니다. 2005년생: 공부나 일에 완벽을 기하려다 스트레스만 잔뜩 받습니다. 오늘은 적당히 타협하고 휴식하세요. 개띠 (술) 닭과 개는 서로 마음을 긁고 엇갈리기 쉬운 관계(해살)입니다. 굳게 믿었던 약속이 틀어지거나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남의 일에 참견하기보다 철저히 자신의 휴식과 가족에게만 집중하세요. 1958년생: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애꿎은 가족에게 화풀이하지 마세요. 집안 분위기만 싸늘해집니다. 1970년생: 지인과 섣부른 금전 거래나 보증은 절대 금물입니다. 핑계를 대서라도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1982년생: 직장에서의 고민이나 서운함은 잠시 잊으세요. KLPGA 소식이나 하이라이트를 보며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습니다. 1994년생: 홧김에 연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무조건 입술을 꽉 깨물고 감정을 참으세요. 2006년생: 친구와 선을 넘는 농담은 큰 싸움으로 번집니다. 예의를 지키고 조용히 하루를 보내는 게 낫습니다. 돼지띠 (해) 보석(닭)이 맑은 물(돼지)을 만나 씻기는 형국이라 잡념이 사라지고 통찰력이 번뜩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거나 밀린 리포트를 깔끔하게 끝내기에 완벽하고 홀가분한 날입니다. 1959년생: 오랜 친구나 뜻이 맞는 친척을 만나 회포를 풀고 든든한 마음의 위안과 즐거움을 얻습니다. 1971년생: 직장이나 집안의 묵은 대소사를 깔끔하게 챙기며 큰 성취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하루입니다. 1983년생: 후배나 동료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네보세요. 진심 어린 존경과 굳건한 신뢰가 당신에게 쏟아집니다. 1995년생: 연인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한다면 점수를 아주 크게 따고 관계가 훌쩍 진전되는 길일입니다. 2007년생: 시끄러운 곳보다는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 가장 유익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머무는 모든 곳에 보석 같은 행운과 평온한 미소가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도망치지 않는 시-황유원론 ①/배민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평론]

    1. 새로움이라는 단절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그걸 아무도 모른다- ‘루마니아 풍습’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소음’이 ‘노래’가 되었을 때, ‘침묵’은 야만이었나.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②이라는 아도르노의 위치에서 다시 묻는다. 아도르노는 독일 나치에 따른 인류 최악의 참극 이후, 예술이 억압적인 현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물론 이러한 질문은 포스트-주의 세례의 여파가 여전한 현시점에서 새삼스러울지 모른다. 한국 현대시는 2000년대부터 “시인(1인칭)의 내면 고백”이라는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③음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2000년대 시가 정치적으로 무력한 ‘나’ 대신 3인칭의 낯선 존재에 집중함에 따라, 2010년대 시가 역사란 ‘끊임없는 쇠락’과 ‘그에 따른 폐허의 잔해’라는 인식에 머물기를 택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령 “절벽은 무너진 다음의 가능태”(백은선, ‘중력의 대화자들’, 가능세계, 문학과지성사, 2018)라는 희망 없는 세계에서, “나를 위해서 날지 않기로 마음먹”(김복희, ‘새 인간’,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민음사, 2018)는 인간-동물의 사유와 같은 것, 혹은 “여기는 사망맵이야”(문보영, ‘배틀그라운드-사막맵’, 배틀그라운드, 현대문학, 2019)라는 식의 농담 속에 공통으로 파국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은 새나라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구구 울지 않습니다”(윤지양, ‘오 혹은 없음’, 기대 없는 토요일, 민음사, 2024)라고 말하는 오늘에까지 발견된다. 세계는 개선될 여지가 없고 세계 바깥의 타자는 끝내 파악할 수 없는 채 멎어 있다면, 시가 향할 곳은 오직 ‘기대 없음’ 상태의 내면 공간뿐인 것이다. 2000~2010년대 전위·실험시는 시적 자아의 영역을 넓힌 하나의 성과였으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과연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혹 기존 관습에 대한 변화라는 이유로 새로움에 막연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화해의 손을 내밀 대상은 세계 바깥의 타자가 아니라, 기대조차 없는 이 현실일지 모른다는 의혹이 황유원의 시에는 담겨 있다. 시인이 “우린 문득 노래란 그런 것임을 절감하고 / 그 노래의 후렴구나 따라 불러야 했네” (‘시베리아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사운드 트랙’, 세상의 모든 최대화)라고 말했을 때, “노래”는 곧 부르는 순간 “후렴구” 같은 그리움만을 남기고 떠나는 특별한 언어일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말’에서 그가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길과 “최대한 잠재워 보는 길”④을 가 보겠다고 밝혔을 때, “소음”은 곧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라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이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황유원의 언어를 빌려 보면, “‘소음’이 ‘노래’가 되었을 때, ‘침묵’은 야만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언어를 시적인 것으로 승화시켜 윤리를 실천하는 최근 시적 경향에 의하여, 정체성의 규율 내에서 ‘침묵’을 지키는 예술 일반은 자연히 비윤리로 규정되고 말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때 황유원 시는 예술과 현실이 지닌 ‘차이’가 아닌, 그 차이를 ‘수용할 방법’에 주목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꿈과 현실의 ‘관계 방식’에 대해 묻는 황유원 시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불가능한 꿈’의 요소들은 꿈꿀 수 없는 현실과 소통할 수 없는 타자를 모두 포용하고자 한다. 몰이해에 빠져 있을 때 ‘꿈’이라는 비약은 늘 이해의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하므로. 2. 첫 번째 되감기: 작은 불행에서 최대 불가능성으로오늘 밤 동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天天來’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이상하게도 파국이 예견된 현실에서 이미 해 본 걱정을 재차 반복할 때, 우리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최근 시가 그러한 순간들로 하나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형성했다면, 황유원 시는 “생각만으로 혼미해지는 / 믿을 수 없이 빛나는 횡설수설의 밤”(‘지네의 밤’,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 도취함으로써 당대적 분위기와 갈라진다. 물론 현실 공허를 토로하는 시와 끝내 사라질 신기루를 그려 내는 시, 둘 중 무엇이 더 적합한지 묻는 일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겠지만, 황유원의 시에 그려진 냉혹하고 왜소한 현실은 동시대 시가 빚어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의 시에서 불가능한 꿈의 형상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질 따름이다. 늘 허무로 귀결되는 환상은 현실과 만날 때라야 비로소 진실성을 얻는다는 것. 냉엄한 현실에도 희망은 피어나듯, 우리의 진심이 꿈을 향한다고 해서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 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현실도피란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세상의 모든 최대화’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 예술이란 결국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예술 작품은 결국 ‘내’가 꾸는 꿈에서 시작해 ‘내’가 그것을 실현했다고 믿는 한에서만 그 의미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무 의식에 사로잡힐 때, “일렉기타”를 가득 싣고 가는 예술가의 마음은 길고 무거워진다. 온전히 꿈만 꾸고 싶은 사람일수록 도리어 그것이 허상이라는 진실에 강력히 얽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기타 연주를, 시인은 시를 쓰면서 자신의 무능을 자각한다. 그들이 음악과 시를 사랑할수록 그들은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는 꿈이라는 허무 의식을 견고히 쌓아 간다. 그럼에도 왜 이들은 구태여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자기기만의 꿈을 꾸기를 포기하지 않는가. 현실을 바꾸는 건 오직 꿈뿐이라고 말하는 예술가적 허기는 기계가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는 오늘의 시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문제적 현실을 한층 더 발전된 현실로 해결하는 시대 속에서, 꿈은 현실 억압과는 무관한 일종의 자유로서 되려 그 존재감과 의의를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발전과 해결이라는 단일의 명분으로 얄팍해져 가는 현실의 두께를 자각할 수 있다면, 꿈은 여전히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현실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현실도피”로서의 꿈이 아니라, 예술은 결코 ‘나’라는 한계를 벗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넘어서려는 “현실의 최대화”라는 꿈인 것이다. “도피”의 결말이 ‘꿈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허망한 결론에 닿는다면, “최대화”의 결론은 ‘꿈’ 혹은 ‘현실’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나’의 진정성에 도달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을 끝까지 잊으려 애쓰는 시는 어떤 실제와도 맞바꾸지 못할 내면을 간직할 수 있다. 꿈의 귀결점이 ‘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황유원이 전통 시론을 계승한다고 굳게 믿게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최대화’가 꿈 안에서 ‘현실 인식’을 통해 비탄과 진정성을 획득한다면, ‘무한대의 밤’은 ‘진정성 있는 꿈’이기를 넘어서 진실한 내면의 순간을 생생히 숨 쉬게 할 장소이길 자처한다. 그곳에서라면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백치의 마음도 그리 우스꽝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이 ‘진짜’ 마음일지도. 물이 든 병에 천천히 꽃다발을 꽂아 주듯병든 꽃다발에 천천히 물을 부어 주듯서로 상처 주고또 용서하고…깨고 나니 꿈이었다깨고 나니 꿈이었다(…)난 사진 찍는 거 싫어하는데 그 꽃을 그 모든 꽃을 모조리 다 찍을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찍어 간직했죠 오직 그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 한 장 한 장을 모두 기억했어요 그대는 내게 말했죠 네가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대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모든 게 그대 때문이라고 말해요 이상한 봄이 왔어요 그대로 인해 모든 게 그대로인데 그대로이긴 한데 난 그대에게 이게 다 당신 때문에 핀 거라고 당신은 내게 이제 너는 너무 자유로워졌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꾼 적이 없어 나는 눈물이 흘러 전 세계의 모든 계절에 피는 꽃들이 다 피어 있는 언덕, 거기서 난 눈을 떴는데눈을 뜨고도 생생한 꿈이어서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다-‘무한대의 밤’ 부분(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유원 시에서 ‘현실 인식’이 헛된 꿈의 진정성을 획득하는 방식이라면, 지금-여기에서 느껴지는 ‘실감’은 그 진정성을 믿을 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먼저 이 시에 드러난 꿈과 현실 인식의 관계를 살펴보자. 인용 시의 첫 연에는 냉철한 인식이 “상처”가 되고, 병적인 내면이 “용서”가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내가 사는 물속인데도 거기 발을 담그는 일이 “상처”가 되는 것은, “물이 든 병에 천천히 꽃다발을 꽂아” 줄 때까지 내가 허공을 걷는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회복 불능의 병세가 완연한 게 “용서”되는 까닭은, “병든 꽃다발에 천천히 물을 부어” 줄 때와 같이 누구나 타락에 기대어 무의미한 생을 건너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꿈은 분명 현실이 아니지만, 간혹 ‘가능할 것만 같은 기분’으로 현실에 잔류한다. 그때 ‘꿈같다’는 말은 ‘불가능’이 아니라, ‘잠재된 가능성’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시인이란 바로 그 잠재적 가능성의 느낌을 최대한 이어 가고자 생생한 언어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기에 황유원은 “깨고 나니 꿈이었다”라는 허무감을 “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다”라는 애틋함으로 전환하고자 놀랍도록 “생생한 꿈”을 펼쳐 놓는다. ‘무한대의 밤’은 장시의 형식을 취하면서 “깨고 나니 꿈이었다”의 반복과 변주를 보여 주는 한편, 그 사이에 다양한 고백과 경험의 순간들이 파편적으로 기입된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전개는 그의 꿈을 무시간성의 순간으로 붙잡아 두는 동시에 그 순간에만 머물고 싶은 ‘나’의 내면을 형상화한다. 인용문에서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4연에는 횡설수설한 발화가 펼쳐지고 있다. “그대”를 향한 애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우리는 화자의 정서를 내 것인 양 온전히 느껴 볼 수 있다. 믿을 만한 것이 마땅치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도 믿고 싶은 하나의 진실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대한 사건일지 모른다. 3. 두 번째 되감기: 영원을 위한 반복진한 피맛이 날 때까지 하늘을 사랑하는-‘북유럽 환상곡’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꿈꾸는 주체인 ‘나’는 현실 인식이라는 한계에 투신함으로써 단일한 ‘나’의 권능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황유원 시를 읽는 우리는 여전히 헛된 꿈에 몸을 내던질 수 없다. 세상에 ‘있을 법한 환상’이란 남아 있지 않은 시대에, 현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학에서조차 ‘순수’가 부담스러워진 시대에, 꿈은 어디까지나 ‘불안한 위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계속해서 덧없는 꿈을 꾸고, 그 실현을 믿기 위해 시를 쓴다. 그의 시에는 늘 일시적이고 불명확할 따름인 믿음을 재차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기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비관은 끝까지 무언갈 믿고 싶었던 순수의 뼈아픈 흔적이자, 더는 무너질 수 없는 ‘나’의 최후 방어선이라는 것. 이때 황유원 시의 반복은 진실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그의 시에서 “무언어”로 일관한 채 이뤄지는 윤회는 ‘나’의 내면을 널리 초월케 하는 ‘종교적’인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미켈란젤로 프람마르티노 감독의 영화 ‘네 번’ DVD 뒤에는Language 무언어Subtitles 무자막Running time 88분이라고 되어 있었다매일 저녁 노인은염소젖과 바꿔 온 한줌의 성당 먼지를물에 타 마시고그러면 자신의 병이 나을 거라고굳게 믿는다(…)말과 말 사이말 잠깐 쉬는 곳에서먼지를 가루약처럼 물에 타 마셨다멀리멀리 퍼졌다-‘무언어’ 부분(하얀 사슴 연못) 이 시에 등장하는 영화 ‘네 번’은 “무언어”, 즉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기서의 ‘침묵’은 언어 아닌 ‘공백’이면서 삶 아닌 ‘죽음’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노인”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매일 “한줌의 성당 먼지”를 물에 타 마신다. “먼지”가 병을 낫게 한다는 그의 믿음은 허무맹랑하지만, 그렇기에 그 믿음은 더욱 신실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노인”은 먼지를 구하지 못한 단 하루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여기서 노인의 죽음을 색다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지”가 노인의 헛된 꿈이었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라 노인의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화는 ‘노인-염소-전나무-숯’의 삶과 죽음을 통해 총 네 번의 윤회를 보여 준다. 이때 윤회의 과정은 “노인”의 죽음이 염소, 전나무, 숯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영생을 향한 “노인”의 꿈은 그가 죽고 난 후에야 진정 이뤄질 수 있었음을 말해 준다. 사실상 “노인”의 소망을 실현시킨 건 매일 같이 마신 “성당 먼지”가 아니라, ‘죽음’의 침묵이었던 셈이다. 그렇기에 이 시에서 “멀리멀리 퍼졌다”는 구절은 불변의 영적인 순간을 형성한다.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 비로소 평등하기 때문에 황유원 시에서의 종교성은 절대적 신성함이나 우월감으로 고립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바깥의 존재들에게 선뜻 다가섬으로써 인간 삶의 고결함을 증명한다. 이러한 사유를 “말과 말 사이”에서 “먼지”를 물에 타 마시는 화자에게로 옮겨 와 언어적 차원에서 살펴보자. ‘무언어’에서 ‘시’가 갖는 초월적 의미는 두 가지다. 먼저, 시적 언어는 불필요한 언어를 제거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의미만을 남겨 놓는다. 이때 언어의 공백은 언어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영원성으로 초월하게 만드는 기제다. 다른 한편으로, 시는 자신의 내부에서 불가능을 향해 나아가는 고통이기도 하다. 시가 갖는 헛된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에서 간과되어 온 가치가 있음을 밝혀 주는 윤리가 될 수 있다. 아마 황유원 시의 고요함과 맑음 속에 그 나름의 독특한 온기가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지. ‘무언어’가 윤회라는 종교성을 띤 반복을 통해 영원의 온기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존재와 시간’은 실없는 말장난을 통해 영원을 체험한다. 뒤틀린 시간 의식과 현실의 균열을 일으키는 말장난에 의해 이뤄지는 반복은 끝없이 새로워지는 우리들의 속된 삶을 향해 있다. “벌써 올 시가이 지놨는데 저 셰기 고장난 거 아이야?”곧 친구가 올 거라며 큰소리쳐 보지만각 한구석 잿빛 신문지 위에 쌓인 굵고 기다란 순대들시계 밖으로 꺼내져 토막난 시간의 내장처럼고요하기만 해24시간 영업하는 가게에 걸린 시계라고 해서 다른 시계보다 특별히 더바쁠 리는 없고고장이 나서 어쩌다 하루 24시간이42시간이 돼 버리는 일도 일어나진 않을 텐데(…)조금 있다 다시 보면흘러가 버리고 없다테이블에는 때마침 현재진행형으로 펄펄 끓는 순댓국 한 그릇과 찬 소주 한 병이 올려지고 있는데문득, 영감이 그토록 고대하던 친구가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존재와 시간’ 부분(일요일의 예술가) 24시간 순댓국밥집에서 얼큰히 취해 친구를 기다리던 “영감”은 엉뚱하게도 멀쩡한 시계와 시비가 붙었다. ‘ㅣ’와 ‘ㅖ’를 뒤바꿔 “시계”라는 정(正)과 “셰기”라는 반(反)을 오가는 시의 말장난은 합(合)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영감”의 일그러진 음성에 의해서 “영감”과 그의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균열을 드러낸다. 주어진 시간을 그저 충실히 살았을 뿐인데, 이제 보니 내 삶은 어디서부터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런 “영감”의 회한은 그 시작점을 가늠할 수 없는 지난한 과거까지 소급되며, 또한 실상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친구”를 기다리는 허황한 미래에까지 뻗어 나간다. 시에서 “24시간”이라는 후회가 “42시간”이라는 선망으로 뒤바뀌고, 또 그런 “42시간”의 꿈이 부상했다가 다시 “24시간”이라는 지극한 현실로 떨어지길 반복하는 동안, 그런 “영감”의 모습을 관찰하는 화자의 시선은 줄곧 현재 시제를 견지한다. “영감이 그토록 고대하던 친구가 /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화자의 생각이 과거와 미래라는 양단의 불가능성에 갇힌 “영감”의 존재를 “현재진행형”의 시간성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와 “영감”이 있는 곳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시공간’이자,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장소이며, ‘이제’ 식사를 마치면 또 다른 시공간이 펼쳐질 모든 것의 ‘처음’이다. 이 시점에서 “영감”의 “토막난 시간의 내장” 같은 허름한 과거는 “흘러가 버리고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그가 선망하는 미래 또한 소유 불가능성으로 인해 “둘이기에 잠시나마 하나가 될 수 있”(‘백호의 손’, 일요일의 예술가)는 영원의 가능성으로 변모된다. 즉 후회와 선망이 무한히 교차되는 찌든 삶 속에서, “현재”는 화자와 “영감”이 “친구”가 되어 볼 수 있는 무한한 시간성으로 잠재해 있는 것이다. 4. 세 번째 되감기: 타자에게 보내는 안부너처럼 나도 그렇게 항상네 옆에 있을 것-‘새들의 선회 연구’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그리하여 낭만에서부터 출발한 황유원의 시는 최근 시의 화두인 타자 사유에까지 도달한다. ‘낯선 존재의 새로움’이라는 하나의 흐름과 ‘타자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인식 사이에서 그의 시는 의문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시가 타자를 더 많이 비춘다고 해서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약화될 수 있는가? 본래 인간의 뇌는 ‘나’와 무관한 일에 특별한 정서를 느끼기 어려워한다. ‘나’가 사라진 시에서 애초에 내가 왜 벌레나 먼지만큼 작아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윤리적 구호는 ‘나’의 비대함만 부각시킬 뿐, 어떠한 실천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란 쉽지만, 그것이 곧 주체 중심 사고와의 결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문학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대중의 목소리는 아마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낄 수 없는 윤리적 목소리는 가짜 화해, 가짜 자유, 가짜 욕망에 불과하다.⑤그런데 왜 우리는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장할 뿐, 이 난점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는가. 그렇기에 황유원은 현재 이곳이 편협한 지대라는 사실부터 깨닫고자 한다. 시는 명백한 고발에 의해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꿈처럼 억압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가상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⑥불화를 불화답게, 결핍을 결핍답게 그려 낸 황유원의 시에서 우리는 윤리를 본다. 그곳만이 더 나은 삶을 위한 태도를 고민할 장소로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을 켜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이 있습니다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이 담겨 있던 어둠은얼마나 아늑하고 그윽한 것이었겠습니까?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사과도할 수 없다는 사실에망연자실해 하며 자, 한번 곰곰이생각해 봅시다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은얼마나 천천히얼마나 우아하게 이 욕실 바닥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겠습니까?(…)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깊이 공감해 봅시다당신에게는 깊은 공감 능력이결여되어 있습니다(…)그 속에 들어앉아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떨림 속에서아까 듣던 그 음악을계속이어서 들어 봅시다-‘밤의 벌레들’ 부분(초자연적 3D 프린팅) 이 시각, 벌레들은 인간 없는 곳에서 “아늑하고 그윽”하다. 인간을 피해 자기 터전에서조차 몸을 숨겨야 하는 벌레에게서 “아늑하고 그윽”함을 보는 것은 최근 시의 경향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황유원은 여타 시들과 같이 이 땅이 벌레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터전이라 말하지 않는다. 인간 혹은 벌레, 둘 중 하나는 만났다 하면 “혼비백산”, 한쪽은 박살이 나는 것이 진실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는 다분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벌레’의 심정을 대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라는 말에는, 벌레의 존재성을 긍정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인간의 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미 불이 켜진, 낭만적 환상이 끝나 버린 이곳에서 “우아”했을 벌레의 매력을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최근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해체적 사유의 틀 없이도, 인간과 벌레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사유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간다. 이 시에서 벌레를 향한 인간의 “공감”은 역설적이게도, 화자가 인간과 벌레 사이의 해소 불가한 단절을 인정한 지점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화자가 ‘우아함’이라는 욕망을 충족하고자 “벌레”를 등장시켰을 때, 이 시의 목적은 ‘인간 욕망의 실현’이라 보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화자의 관심은 애초에 우상이나 소유욕과 같은 질서 세우기가 아니라, 인간과 벌레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낭만이 욕망을 원리로 삼는 것에 반해, 황유원 시의 낭만은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깊은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인간이 벌레를 “공감”하게 된 원리가 인간이 벌레만큼 작아졌기 때문인 것 또한 아니다. 이 시의 인간은 그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벌레”에게 느낀 그 “떨림 속에서 / 아까 듣던 음악을 계속” 듣고 싶을 뿐이다.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꿈을 꿀 때, 인간은 벌레를 감각을 선사하는 대상으로서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에서 벌레와 인간은 각자가 ‘있는 그대로’ 충분히 평온하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인간”과 “벌레”의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아닐 것이다. 꿈 없이는 차이를 발견하려는 여유도, 발견 후 그것을 깊이 고민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은 이 협소한 세계. 바로 여기에 우리 삶이 놓였다는 사실이 가장 위급한 문제다. 그렇기에 황유원은 평등이 도래한 장소에서도 계속해서 ‘너’와 ‘나’의 차이를 견지하고자 한다. 고통을 경험한 ‘나’의 내면으로부터 사회적 관계에 따른 ‘너’를 향한 존중과 배려를 가능하게 한다. 충분한 추위가 없으면일부러라도 눈을 내려설산에 오른다여러 고난을 겪을수록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고나는 여러 사람이 되고갑자기 하늘 어두워지면지그시 눈을 감아 그 어둠두 배로 어둡게 만든다어느덧 두세 배로 불어난 어둠속에서하지만 두 배든 세 배든실은 그냥 같은 어둠일 뿐인어둠 속에서하산을 시작한다함께 내려가는 여러 사람들다 돌아간 카세트테이프의 나머지 한쪽이마저 돌아가기 시작한다-‘오토리버스’ 전문(하얀 사슴 연못) 한 사람이 “여러 고난을 겪”었음을 고백할 때, 우리는 비단 그 사람의 고난의 깊이만을 가늠하지 않는다. 흔히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더욱 슬프다’는 위로는 한 사람의 고난이 얼마나 넓은 아량을 갖게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말인 것이다. 한 사람의 고난이 ‘나’라는 단수를 넘어 “여러 사람”으로 향하고자 마음먹을 때, ‘나’의 고난의 깊이는 “여러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이 시의 “고난” 역시 “설산에 오른다”고 마음먹는 순간,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로 확장된다. 그런데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구태여 헛된 꿈을 꾸면서 현실에 관해 남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 시인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시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연에서 화자는 “두세 배로 불어난 어둠”이라는 다수의 두려움을 “실은 그냥 같은 어둠일 뿐인 어둠”이라는 ‘나’의 두려움으로 응축시키기도 한다. 이때 두려움은 “하산을 시작”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며, 이윽고 “함께 내려가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그 기세를 잃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꿈이 그것의 덧없음을 알게 된 뒤에 진정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시인이 일부러라도 시에 고통과 상실의 감각을 새겨 넣는 이유는, 그리하여 기껏 올라간 정상에서 “하산”할 운명을 하릴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공연한 움직임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시에서 공연한 움직임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설산에 오른다”와 “하산을 시작한다”라는 상하(上下)의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카세트테이프” 한쪽이 다 돌아갔을 때 자동으로 재생되는 “나머지 한쪽”과 같은 끝에서 끝으로의 움직임이다. “설산”이라는 한쪽에서 아름다움 혹은 꿈처럼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하산”해 돌아가는 다른 쪽에서는 무력감과 현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 발생한 고통은 더 나은 현실을 살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꿈은 부질없는 것일 때부터 이미 희망을 내포한 것이 된다. 황유원의 시가 자꾸만 예술이라는 끝과 현실 인식이라는 끝을 되감는 까닭은, 환상이 현실에 대한 불편감을 표할 때마다 현실은 변화의 가능성을 갖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는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고통이 됨으로써 익숙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이때 꿈을 꾸는 시는 우리의 삶과 태도를 진정 변화시키는 윤리가 될 수 있다. 5. 희망은 어떻게 이어지는가나는 걷는다내가 널 버려도너는 버려지지 않는다-‘사랑하는 천사들’ 부분(세상의 모든 최대화)영원할 것만 같았던 모험도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다. 열 장 남짓한 페이지 안에서 황유원의 시는 어디든 오갈 수 있었다. 메마른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꿈’으로, ‘성스러운’ 영원에서 ‘속된’ 영원으로, 타인 같은 ‘나’로부터 ‘나’ 같은 타인으로. 이런 모험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황유원의 시가 ‘나’라는 주체를 잃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그의 시의 ‘나’는 극에서 극을 오가면서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한층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역설적이게도 더 큰 아픔과 대적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가령 야심찬 꿈과 다짐들은 사실상 냉혹한 현실 논리에 강력히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혹은 성스러운 약속들은 때로 세속적인 삶의 회한보다도 생명력이 희미하다는 사실을, 혹은 타인은 ‘나’ 같지 않고 ‘나’ 역시 타인과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남김없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 넓어지고 깊어진 ‘나’는 어떠한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또 다른 극점을 만나리라는 여지를 항상 남겨 둘 줄 아는 넉넉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나’는 간절히 바라던 끝이 허무하게 사라진 장소에서도 ‘과정’으로서 자신의 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하여 황유원의 시는 “마지막 페이지는 이미 정해져 있음”을 “완벽하게 체감”시키는 이 결론에 다다라 “원래 없던 눈을 / 누구보다도 검게 꼭”(‘12월’, 일요일의 예술가) 감는다. 그의 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잊지 말라고. 이곳이 어디든, 꿈이든, 현실이든, 모험이 끝나 버린 직후이든, 우리가 잠시 시를 잊을지라도 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지금 이곳에서 다시 출발하는 그의 시는 보다 깊어진 걸음으로 또 한발 나아간다.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다음을 향해. ① 황유원은 2013년 등단 이후 다섯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세상의 모든 최대화(민음사, 2015),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현대문학, 2019), 초자연적 3D 프린팅(문학동네, 2022), 하얀 사슴 연못(창비, 2023), 일요일의 예술가(난다, 2025). ② T W 아도르노, 홍승용 역, ‘문화비평과 사회’, 프리즘, 2004. 29면. ③ 신형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상속자들’, 창작과비평41, 2013,3. 165면. ④ 하얀 사슴 연못 중 시인의 말. ⑤ 김현, ‘문학은 무엇에 대하여 고통하는가’, 김현문학전집 1, 문학과지성사, 1991. 57면. ⑥ 같은 곳.
  • 포말/이호영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포말/이호영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희곡]

    등장인물문익 60대  창현 30대응현 30대  현선 60대 무대 여름. 노을 지는 오후. 제주도 호텔 스위트룸. 블루와 화이트 톤의 고급 리조트로 세련된 분위기이다. 넓은 창으로 지중해 빛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고급 라탄과 실크 벽지가 럭셔리해 보인다. 화려한 다이닝 룸이 있고, 넓은 거실에 스트라이프 소파가 놓여 있다. 침실은 두 개로 킹사이즈 침대가 하나 있는 곳만 관객석에서 내부가 보이고, 한 곳은 내부가 보이지 않게 문으로만 존재한다. 호화로운 숙소에 비해 이들의 차림은 수수하고, 단출하다. 좋은 방향제 향기가 은은하다. 가끔 파도 소리가 들린다. 1장 문이 열린다. 문익, 창현, 응현, 현선 차례로 들어온다. 각자 자신의 짐을 들고 있지만, 현선은 빈손이며 어깨를 떨고 있다. 문익 엄마 눕혀 얼른. 창현 엄마. 이쪽이요. 창현이 현선을 내부가 보이는 침실로 안내하고, 현선은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응현이 창현과 현선을 따라 들어간다. 외투와 가져온 짐은 모두 내부가 보이는 침실로 옮겨진다. 응현 여기가 안방인가? 창현 호텔에 안방이 어디 있어. 그냥 침실이지. 응현 처음 와 봐서 그래. 오빠도 두 번째잖아. 현선 추워. 에어컨 좀 꺼 줘. 응현 이건가? (삑-삑-삑-삑-) 음? 창현 비켜. 에어컨이 꺼지는 소리가 난다. 응현, 머쓱한 제스처를 취하고 현선의 이불을 덮어 준다. 응현 엄마. 저희 마루에 있을 거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현선 응. 창현 마루 아니고 거실. 창현과 응현, 거실로 나간다. 문익, 창 바깥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현 좋죠? 문익 그러게. 끝내준다. 창현 밤에는 불꽃놀이도 옥상에서 해준대요. 문익 이렇게 비싼 방 냄새를 맡아 보네. 창현 앞으로는 자주 그래야죠. 문익 (등을 토닥이며) 아껴 써. 창현 좋아하시는 거 보려고 열심히 하는 건데요. 문익 룸서비스 시킨 건 언제 오는 거야? 가지러 가는 건가? 창현 가져다줘요. 올라오면서 주문했으니까 좀 걸리겠죠. 응현, 호텔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문익 소주도 시킬 수 있나? 창현 시킬 수 있죠. 문익 호텔에서 시키면 비싸잖아. 창현 상관없… (웃으며) 네, 그럼 그건 그냥 일 층 로비에 편의점 있으니까 사 올게요. 문익 그럴래? 창현 네. 다녀올게요. 문익 여기 카드. 창현 됐어요. 제가 사 올게요. 창현, 나간다. 응현 그렇게 좋으세요? 문익 시늉. 응현 네? 문익 오빠는 뿌듯함이 윤활제잖아. 맞춰 줘야지. (소파에 벌러덩 누우며) 아이고- 그래도 우리 아들 잘났다! 응현 근데 엄마는 감기가 맞는 거죠? 문익 그렇겠지. 병원 아직 안 가봤어. 응현 네? 문익 너랑 수영하고 나서 더 심해졌어. 그니까 오빠가 호텔 수영장 있다고 말했는데 왜 말도 없이 바다를 즐겨. 응현 이미 일주일째 골골댔다면서요. 제주도 여행을 취소하고 병원에 갔어야죠. 문익 엄마가 병원 안 가겠다는데 그럼 억지로 끌고 가냐? 그리고 그럼 니 오빠가 실망했을 거 아냐. 응현 못하실 것도 없잖아요. 아빠 성깔에. 문익 약 먹으면 나을 거라 그래서 지켜보는 중이야. 좀 기다려. 정 못 버티겠으면 근무하다가도 전화 주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 응현 아빠 일하는 곳에서 그런 게 가능해요? 그렇게 자유롭지 않을 것 같은…. 문익 시끄러워. 응현 …엄마 성격에 아빠 일하는 시간대에 전화 안 할 텐데. 기어가더라도 혼자 가지. 문익 그만. 아빠 짜증 나려고 그래. 현선 추워… 추워…. 2장 해가 졌다. 소파에서 술 먹기 시작하는 문익, 창현, 응현. 건배. 셋 모두 앞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 틈틈이 멈추지 않고 마신다. 아주 조금씩 취기가 오른다. 창현 좋죠?! 문익 응현아, 엄마 먹을 것 좀 덜어서 문 안에 넣어줘. 응현 엄마가 먹을 게 별로 없어요. 죄다 고기라. 창현 과일 담아. 과일. 샤인머스캣 좋잖아. 응현, 접시를 꺼내 오고 냉장고에서 꺼낸 과일을 담고 방문을 연다. 응현 엄마. 엄마. 샤인머스캣 드실래요? 현선 …. 응현 엄마. 현선 … 안 먹어…. 응현 엄마.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요. 현선 물… 물…. 응현 아. 물. 응현, 거실에서 물을 떠서 가져다준다. 창현 여태 물도 안 드렸어? 응현 힘들면 부르세요. 현선 …. 응현, 문 닫지 않고 거실로 나온다. 창현 대체 어쩌다가 저런 거예요? 저 상태로 물에서 어떻게 논 건지 이해가 안 되네. 문익 요즘 계속 안 좋았어. 창현 자기관리를 너무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문익 (땅콩 던져 먹으며) 집에서 쉬어야 했나? 응현 아빠랑 오빠가 계속 같이 와야 한다고 했잖아요. 창현 그럼 안 오냐? 이렇게 좋은 곳을 예약했는데. 이제 바쁘고 지은이 눈치 보여서 예전처럼 넷이 돌아다닐 수 없는데 힘쓴 거잖아. 응현 알았어…. 누가 뭐래. 문익 내가 봤을 땐 할머니 돌아가시고 힘들어서 그래. 이제 두 달 찼잖아. 응현 그런 것 같기도 해요. 3년을 긴장 상태로 매일 살았는데. 한계에 온 거겠죠. 창현 저 정도면 너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응현 나 잘살고 있어 혼자. 창현 아빠는 계속 일하시고, 엄마 심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무리하고 있는데, 너는 뭐 특별히 하는 것도 없잖아. 지금. 응현 오빠. 나도 생활이라는 게 있어. 이제 내 동네는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라고. 창현 자식 도리를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단 생각은 안 드냐? 너만 자유로우면 다 괜찮아? 주변 안 봐? 응현 그럼 오빠가 서울로 와. 부모님 계신 곳으로. 창현 지은이랑 이제 막 살림 합쳤는데 무슨 헛소리야. 내가 혼자냐? 응현 그니까 합칠 때 서울로 오지. 창현 내가 평생 모은 돈, 일하는 곳 거리, 지은이 기준 이 세 개 다 맞는 데가 어딘 줄 알아? 인천 저 끝. 거기 하나 나오더라.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조건이 거길 고른 거야. (짧은 사이) 넌 청약이 뭔지는 아냐? 문익 아무튼 할머니 일도 잘 마무리가 됐고, 이제 엄마는 건강만 잘하면 돼. 창현 (한숨)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문익 뭐. 창현 할머니 부동산은 뭐 그렇게 됐고, 현금 분배가 이상하게 됐다면서요. 문익 말하자면 너무 긴데, 하여간 엄마 태도가 제일 난감했어. 창현 또 왜요. 문익 엄마가 자기는 다 필요 없다고 그러니까 나만 황당하잖아. 창현 아빠 힘드셨겠네요. 응현 엄마가 필요 없다고 하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창현 엄마가 혼자냐? 그래서요? 이모들만 가져갔나요? 문익 내가 그렇게는 안 놔두지. 창현 역시 아버지! 아직 지혜로우셔. 보이냐? 아빠가 계셔서 엄마가 사는 거라니까. 응현 무슨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문익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야. 우리끼리니까. 응현 엄마 들리면 또 불편하게. 창현 그 돈 나중에 달라고나 하지 마라. 너 지금처럼 살면 무조건이다. 응현 내가 뭘…. 창현 그래서 말해봐. 니 인생을 이제 어쩔 셈이야? 응현 뭘…. 창현 뭐하면서 사느냐고. 하루 일과를. 평가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설명해 봐. 문익 에헤이. 부담 주지 마라 동생한테. 응현 걱정해서 물어보는 것도 아니잖아. 문익 (살피다) 오빠가 이런 데서 재워주니까 고맙다고 한 번 성의껏 해봐. 응현 그냥 나는…. 몰라. 엄마처럼은 살고 싶다. 창현 많이 망가졌구나. 내 동생. 응현 나? 창현 엄마처럼 사는 게 뭐가 좋냐. 이리 휘둘리고 저리 쫓아다니고. 평생을 가족들 무료로 간병이나 하고. 이번에 외할머니 돌아가시면서 겨우 종료된 거지. 아빠 면전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너무하신 거예요.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평일에는 대전에서 양가 할아버지들 집 왕래하면서 휠체어 두 개씩 끌고, 주말에는 아버지 반찬 챙긴다고 서울 왔다 갔다 하는 거 볼 때마다, 솔직히 내가 남자인 게 다행이더라. 문익 엄마가 자진해서 한 거야. 그때 양가에 추억이 얼마나 많다고 했는데. 창현 고모도 안 했잖아요. 남의 아빠 돌보는 게 편해요? 문익 그럼 너는, 너 바쁘고 응현이가 아빠 간호 못 하겠다. 그러면 고민 없이 요양원으로 보내버리겠다? 하하하. 사이. 문익 뭐야? 응현 아무튼 나는…. 나는…. 더 설명하기 싫어. 나에 대해서. 그거 하기 싫어서 서울에서 나온 건데. 문익 그래도 응현이는 엄마랑 다르지. 자기 직업이 있으니까. 창현 책 하나 냈다고 뭐. 그런 걸 누가 읽기는 하냐? 응현 인기 없어. 돈 안 돼. 아무도 몰라. 됐어? 창현 와 …. 이렇게 회피하는 거, 이거 딱 엄마잖아. 비슷한 줄만 알았는데 그냥 똑같네. 응현 당장 무슨 말을 해도 오빠는 만족 못 해. 모두가 오빠처럼 계획 세우고 준비된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참 웃겨. 오빠는 엄마를 말로는 딱하게 여기면서, 엄마처럼 사는 건 별로라고 깎아내리고 욕하네. 그건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게 아니야. 평가지. 창현 넌 여자고, 엄마랑 아예 똑같으니까,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게 없겠지. 응현 분명하게 말하는데 내가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같은 성별이어서가 아니라, 이 집에서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창현 그렇다고 네가 엄마한테 가장 잘한 사람도 아니지. 응현 … 오빠도 이제 용돈 좀 보낸다고…. 창현 용돈 좀? 용돈 조옴? 서른 먹고 처맞고 싶냐? 사이. 응현 저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문익 딸! 임신 안 돼! 응현, 퇴장. 창현, 응현이 나간 걸 확인한다. 문익 그래. 말 나온 김에 너희 집들이 한 번 해야지. 창현 나중에요. 문익 지금쯤 정리가 다 된 거 아냐? 창현 문제가 좀 생겨서 아직 입주 못 했어요. 문익 무슨 문제? 무리해서 구한 집이라고, 저번에 계약금까지 냈다고 자랑했잖아. 창현 자랑은 무슨. 창현, 소주를 세 잔 연속 들이켠다. 문익, 그 속도에 맞춰서 세 잔 들이켠다. 사이. 창현 아빠. 저 여쭤볼 거 있어요. 문익 뭔데 그래. 창현 엄마랑 응현이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문익 그래. 창현 얼마 전에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 집 보러 오셨거든요. 문익 그래서? 창현 놀라시더라고요. 문익 왜. 창현 너무 오래됐고, 좁다고. 문익 아니, 아니, 젊은이 부부가 그 정도 시작이면 훌륭하지 뭘! 창현 미국 가서 살면 어떻겠냐 그러세요. 문익 미국? 창현 프랜차이즈 장사 뭐 있냐 그러시던데요. 안 그래도 지은이가 대학원 가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다고 그러더니, 결국 부모님께 말했나 보더라고요. 문익 아니, 결혼했으면 그런 건 남편이랑 대화해야지. 누구 돈으로. 지은이 아버지가 아직 일을 하신댔나? 창현 네. 마취과 의사라 정년이 딱히 없으신가 봐요. 문익 …. 창현 자존심을 계속 긁어요. 사이. 문익 임신시켜. 창현 네? 문익 임신하고 일단 애 낳으면 부부는 하나가 돼. 창현 아니…. 문익 그땐 니 말을 더 믿고 싶게 될걸. 결국 부모는 늙어 사라진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테니까. 창현 …. 문익 공부고 뭐고, 기억도 생각도 안 날걸. 눈앞에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천사가 우는데 다른 걸 어떻게 보냐. 응현이 쟤도 좋아하는 남자만 생겨봐. 지금이야 뻐팅기지. 눈이 뒤집힌다고. 아무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가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야. 어깨 펴. 그딴 걸로 자존심 상하지 말고. 창현 …. 네. 문익, 한잔 들이켠다. 사이. 문익 (흥분하며) 하하하. 역시 넌 아직 멀었어 이 자식아. 자식아. 자식아! 결혼하든, 사업장에 직원이 몇 명이 늘든 간에 멀었다고. 이 자식아! 아빠는 인마. 네 나이 때 사장은 아니어도 내 밑에 사원이 100명이 넘었어. 그렇지. 그렇지. 여보! 얼른 나와 봐! 나와 보라고! 문익, 안방에서 아픈 현선을 질질 끌고 나온다. 문익 당신 아들이 지금 결혼이 아니라 입사를 했네! 하하하! 근데 대표가 장인어른! 나한테 다 물어봐! 어린애처럼! 어린애 처어러어어엄~! 문익, 아파서 쓰러진 현선의 손목을 질질 끌며 춤을 춘다. 응현, 들어온다. 응현 아빠. 왜 이래요. 미쳤어요? 뭐해! 아빠 말려! 창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익의 팔을 잡아끈다. 문익, 저항하며 힘겨루기가 잠시 이어진다. 문익이 손찌검하려 팔을 올린다. 창현, 문익의 양팔을 꽉 잡은 채 차렷 자세가 되게 한 뒤 놔주지 않는다. 문익, 당혹감과 굴욕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창현 진정하세요. 사이. 놓아 준다. 문익, 밖으로 나가려 한다. 창현 담배 피우러 가시죠? 다녀오세요. 문익, 퇴장. 창현, 널브러진 현선을 조심스레 안고 침대로 옮긴다. 현선 추워…. 추워…. 창현 엄마. 현선 추워…. 추워…. 응현, 식탁에 앉아 마른세수를 한다. 사이. 3장 창현과 응현이 거실에 있다. 창현이 소주를 계속 들이켠다. 응현 술 잘 못 마시잖아. 창현 까불지 마. 응현 안주 좀 같이 먹든가. 창현 네가 봐도 나 살 많이 쪘냐? 응현 모르겠네. 창현 뺀 거야. 백까지 갔다가 약간. 응현 조절하면 되지…. 창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응현 그럼 뭐가 중요한데. 창현 과식할 때라고 지금은. 늘어. 계속 마시면. 계속 먹으면. 거래처랑 먹다 보면 늘고, 스트레스 풀다 보면 늘고. 응현 …새언니는 뭐라고 해? 창현 몰라. 응현 모른다니. 창현 같이 안 잔 지 오래됐다? 응현 그 잠이 그 잠을 말하는 게 맞아? 창현 둘 다야. 안 자줘 같이. 계속 피해. 욕구가 안 생긴대. 양심도 없는 년. 빈손으로 온 게 욕구가 웬 말. 응현 뭐 그러냐…. 창현 나도 아빠처럼 은퇴할 때 되면 빠지겠지. 욕심도 빠지고…. 허벅지도, 팔도 얇아지고…. 그럼, 볼품도 없어지려나. 응현 너무 오래 남았잖아. 창현 금방이야. 응현아. 금방이라고. 언제까지 부모님이랑 이렇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냐. 사이. 창현 너희 동네에 탕후루는 있냐? 응현 갑자기 무슨 탕후루야…. 오빠 또 가게 바꿨어? 창현 관심도 없지? 벌써 2호점이다. 응현 대만 카스텔라…? 였잖아. 창현 그 중간에 세계 과자점도 있었어. 아, 도쿄 모찌도. 네가 멍할 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새로운 맛을 찾아서 헤매고 있지. 응현 오빠는 요리는 관심도 없고 하지도 못하면서, 유행 1년도 못 갈 거 뻔히 알면서도…. 권리금 받고 빠지는 것만 계속하네. 창현 뭐? 응현 따지고 보면…. 창업 초보자들 속이는 건 아니야? 창현 그 돈으로 이런 데 오는 거야. 응현 나는 오빠 일 조금도 모르지만…. 창현 속이는 거 아니고, 시장 흐름을 아는 거야. 지금껏 뺑이치면서 배운 게 그거고. 응현 …오빠가 나한테 했던 말이잖아. 오빠 같은 초보자들 속인다고. 창현 그런 사소한 거 다 따지고 눈치 봐가면 돈벌이 못 찾아. 생존하겠다는 각오만 명확해지면 그런 건 금방 사소해져. 응현 가장 닮기 싫어했잖아. 아빠의 그런 말습관. 조절할 수 없다면 그건 과식도 아니고…. 폭식이라고. 사이. 창현 네 눈에는 내가 그냥 처먹는 거 같지. 창현, 일어난다. 응현 오빠. 창현 아빠 들어오시고, 엄마 눈 뜨면, 나 일 때문에 바빠서 먼저 간다고 전해. 다른 말 하지 마. 문익,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창현, 안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겨 나오려다, 현선 앞에 멈춘다. 창현 엄마. 긴장 좀 하고 살아요. 다 그렇게 살잖아요. 왜 본인만 삶에서 제쳐 둬요? 그런 식으로 살지 마세요.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넘치는데, 엄마까지 그러지 말라고요. 이제 우리 겨우 잘살아 보려고 하잖아요. …엄마. 전화 안 받은 거 아니에요. 일할 때만 꺼놓는 거예요. 근데 일이 잘 안 끝나서…. 아버지가 잘 해줘요? 응현이는 자주 와요? 솔직히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더 악착같이 해서 몇 년 안에 근처로 이사 올게요.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아시죠? 내일은 더 커질 거예요. 내일은요, 더 커질 거라고요. 상상도 못 하실 만큼. 창현, 거실로 나온다. 창현 응현아. 응현 응. 창현 사회에서 일인 분도 못하면서, 잘 사는 사람 광인 취급하지 마. 응현 …응. 창현 그딴 태도로는 평생 이런 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얼마나 달콤한 향기가 배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또 그 잔향이 얼마나 끝내주는지도 모르고 살다 죽을걸. …하긴. 모르면 부러운 줄도 모른다는데. 근데 넌 이미 여기 들어왔고, 곧 하룻밤 자게 될 거고, 새벽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깨면 문득 저 큰 창을 보게 될 거고, 눈치채기도 전에 발이 먼저 옮겨지고, 처음 보는 시야로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거야.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생각하겠지. 이런 데서 하는 생각은 질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말도 안 되는 고요함, 안정감, 편안함. 사치스러운 것들이 주는 풍족함. 만족감. 인상 깊지 않다고 스스로 되뇌어도 쉽지 않을걸. 못 해본 경험이라는 건 그런 거니까. 그렇게 다르다는 너도 계속 여기가 생각날 거야. 언젠가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데리고 오고 싶어지게 되겠지. 응현 …. 창현 돈은 그렇게도 좋은 거야. 창현, 퇴장. 문익 응현아. 응현 괜찮아요. 아빠. 문익 그게 아니라, 샤인머스캣 좀 먹자. 응현, 냉장고에서 샤인머스캣을 꺼내 온다. 문익 너도 좀 먹어. 응현 네. 문익 오빠도 내켜서 널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응현 네. 문익 재미있을 수도 있는데 오빠는 너무 조급해. 차라리 아빠한테 말해볼래? 응현 뭘요? 문익 관심사 같은 거. 소재? 응현 뭐에 관해 쓸 거냐고요? 문익 그래. 네 입으로 들려줘 봐. 판단력이 있잖냐. 너도 아빠한테 다 물어봐. 응현 (짧은 사이) 진짜로 말해요? 문익 잘하면 용돈도 준다. (지갑을 꺼내 놓으며) 격려금. 사이. 응현 제목은 ‘가족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문익 오케이. 응현 아버지가 잠든 엄마의 어깨를 발등으로 걷어찼다. 문익 …. 응현 그 모습에 진저리 난 아들은 엄마의 비명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가버리고, 딸은 아버지를 말리다 오래된 식탁의 들뜬 나무껍질에 목이 긁혀 피가 났다. 늘어진 흰 티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발길질은 계속됐다. 나가버린 아들이 부른 경찰이 곧 다섯이나 도착했고, 아버지의 핏발 선 눈이, 수치스러운 얼굴이 딸의 티셔츠처럼 물들었다. ‘이놈들. 나라 세금이 얼만데 이딴 일에 다섯이나 출동을 해? 다신 그러지 마. 다시는!’ 그 뒤로 아버지는 다시는 발등으로 엄마를 치지 않았다. 그때 딸이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를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내의 경련도 아니고, 딸의 애원도 아니고, 자신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 그래야만 비로소 온순해진다는 것. 딸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주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론 말할 수 없이 쓸쓸해졌다. 사이. 문익 제정신이냐? 응현 뭐가요. 문익 집에 펜 드는 사람 있으면 사생활이라는 게 없다더니. 응현 …. 문익 아빠는 다 갚았어! 그런 잘못 같은 거! 엄마랑 사이도 회복됐어. 그걸 이제 와서 꺼내는 저의가 뭐야! 응현 아직 나는 못 갚았어요. 문익 뭐가. 응현 나는 아직 한 대도 못 때렸다고요. 사이. 문익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응현 엄마는 단단한 사람이에요. 문익 나도 안다. 응현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버티고 있다고요. 아빠는 못 해요. 아빠는 가만히 있으면 죽을 테니까. 엄마는 잊은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가 지켜보지 않았다면 아빠 삶이 어떻게 됐을까요. 아빠는 혼자 밭을 다 갈았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울타리가 없었다면, 아빠는 땅이 끝나는 곳까지 곡괭이질만 하다 이미 죽었을 거예요. 왜 자꾸 무리해서 일을 찾는 거예요.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는데, 그렇게 죽도록 채우신 창고는 아직 열어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아까 엄마가 토할 때, 아빠가 등 문질러준 게 좋았대요. 엄마는 언제나 그런 걸 기다렸다고요. 사이. 문익 술 더 사 와야겠다. 문익, 현선의 침실로 들어가 외투를 챙겨 입는다. 현선에게 다가간다. 현선 추워…. 추워…. 문익 여보. 열 좀 볼까. 현선 추워…. 문익 병원 갈까? 병원 가고 싶어? 현선 안 가…. 안 가…. 문익 내일은 정말 업어서 가야겠다. 현선, 문익의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문익 술 냄새 심해? 사이. 문익 여보. 현선 …. 문익 여보. 내일 묻고 싶은 게 있어. 용서 없이도 같이 살 수 있는 건가? 여보. 내 세상은 안 오는 거지? 밟고 지나간 듯 이렇게 가는 거지? 분명 뭘 오랫동안 서둘렀는데 왜 이리 고요할까. 처참하게 무능력하고…. 아쉬워…. 요즘 잠만 들면 당신이 내 발목을 끌어당기는 꿈을 꾸네. 나를 끌고 물속으로…. 당신은 오래 살고 싶나? 당신도 그러고 싶어? 당신은 뭐가 제일 두려워? 나는…. 나는…. 현선 (잠꼬대하듯) 내가 끌어당긴 게 아니야. 당신의 꿈이야. 정말 어리석어. 정말 어리석지…. 사이. 문익, 침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온다. 문익 해 뜨면 엄마 데리고 병원 가자. 문익, 퇴장. 응현,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안이 보이지 않는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이. 잠시 뒤, 다시 문을 열고 나와 현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현선 옆에 몸을 던지듯 쓰러져 버린다. 3장 현선 아파…. 아파…. 응현 엄마? 119 부를까? 현선, 고개를 돌리며 거부한다. 현선 물 좀 줘…. 응현, 현선에게 물을 먹여 준다. 겨우 들이켠다. 현선 으으… 으으… 퉤… 퉤에…. 현선, 머그잔에 침을 뱉는다. 현선 헉…. 헉…. 헉…. 현선, 숨을 뜨겁게 연신 헐떡인다. 현선 나 살기 싫은가 봐. 으으… 으으… 퉤. 퉤에. 한심해…. 한심한 김현선…. 사이. 응현 낫게 해 달라고 빌었어? 현선 살게 해 달라고 빌었지…. 응현 …. 현선 침대에 누울래. 추워…. 응현이 머그잔을 받으려 하자, 현선이 응현과 멀리 놓고 눕는다. 현선 나가…. 나가서 자…. 응현 엄마. 현선 …. 응현 아까 그 일 때문에 더 심해지신 거죠. 아침에 제가 그렇게 해서…. 그렇죠? 문익,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온다. 말없이 소파로 걸어가 눕고 곧바로 잠이 든다. 응현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생생하니까 이상해요. 아무튼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분명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본 거예요? 그런 건 누가 미리 경고해 주긴 하는 거예요?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같이 죽을 것 같진 않은데, 어떻게 살 수 있을진 장담을 못 하겠어요. 하지만 내가 죽으면 엄마는 죽을 것 같아서. …그런 것도…. 누가 미리 경고를 해줄까요? 엄마가 날 만든 거 맞죠? 근데 왜 나한테는 엄마의 아량이 없을까요.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사이. 현선 내일 대답할게…. 가서 자…. 응현 내일이요…. 긴 사이. 현선 엄마…. 응현 네? 현선 그때 엄마가 바다에서 절 건져주었을 때…. 참 고마웠어요. 응현 …. 현선 분명 밤이라 안 보였을 텐데, 어떻게 본 거예요? 그런 건 누가 미리 경고를 해주는 거예요? 다시는 못 보는 건가요. 기다려주면 안 돼요? 들어오지 마세요…. 들어가지 마요…. 사이. 응현 내일 대답할게요…. 현선, 부스럭부스럭 이불을 휘감는다. 응현 어제 하늘 되게 이뻤다는데 우리는 못 봤네…. 응현, 현선의 발을 정성껏 주무른다. 사이. 현선, 이불에서 나와 자세를 비교적 편히 눕는다. 응현 해 뜨는 거 아름답다. 보여요? 현선, 긴 숨을 내쉰다. 응현, 천천히 고개를 꾸벅이며 잠에 스며들려 한다. 현선 띄워 보내네. 저 멀리. 아주 멀리. 붙잡고 있던 것들. 스스로를 용서하여. 물길을 거스르는 듯하여도 머지않아. 이렇듯 얽혀 남아서. 같은 태양 안에 머물며. 서로의 파도를 견디며…. 현선, 천천히 잠이 든다. 응현, 고개가 떨구어지고 현선의 발을 꼭 쥔 채 이불 위로 포개진다. 아침 빛이 창을 타고 두 사람을 내리쬔다. 막.
  • 유산한 아내 버려두고 남편이 간 ‘충격 장소’… 돈 마련하려 회사까지 팔아

    유산한 아내 버려두고 남편이 간 ‘충격 장소’… 돈 마련하려 회사까지 팔아

    유산한 아내를 외면한 채 경마장에 가는 등 도박에 빠진 남편의 사연이 공개됐다. 지난 24일 방송된 MBC 예능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에서는 남편이 애 같다는 아내와 아내의 잔소리에 지친다는 남편, 이른바 ‘어른아이 부부’가 오은영 박사를 찾아왔다. 이날 방송에서 남편은 아픈 몸으로 가게에서 일하는 아내를 도와주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모습을 보였다. 남편은 가게 일이 재미가 없다면서 홀로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쳤다. 아내는 일주일 내내 당구에 빠져 사는 남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부부는 오랜만에 가족 외식으로 횟집에 갔다. 아내는 “나는 지금 몸이 힘드니까 당신이 어느 정도 선까지 가게를 맡아주면 좋겠다. 그런데 당신이 나만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나도 다 체크하고 확인한다. 나 그런 거 안 하는 사람 아니다”라며 아내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제일 가슴 아팠을 때는 우리 아기가 잘못 됐을 때다”라며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그때 남편이 사업 때문에 서울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사업 때문이 아니란 걸 알았다”고 했다. 남편은 임신 중이었던 아내를 두고 남편은 서울에 갔고, 그 사이 아내는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당시 남편이 갔던 곳은 경마장이었으며 도박으로 인해 빚까지 지며 아내는 유산에 이어 남편 도박이라는 연이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젊었을 때부터 (도박에) 빠졌나 보다. 시아버님을 찾아가서 ‘당신 아들하고 헤어지겠다’고 말했다”며 시아버지의 설득 끝에 결혼하게 됐다고 전했다. 시아버지는 아들 내외를 위해 결혼 선물로 자동차 견인 회사를 차려줬지만, 남편은 경마에 쓸 돈을 마련하려 그 회사를 팔아버렸다고 했다. 문제의 도박에 대해 남편은 “서른살 넘어서 친구가 우연히 (경마장으로) 데리고 갔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가다가 정신 차려보니 시간만 나면 가게 됐다”며 현재는 치료 후 도박을 끊었다고 해명했다.
  • 중국 핼러윈 참가자들 코로나 방역요원 복장으로 사회 비판

    중국 핼러윈 참가자들 코로나 방역요원 복장으로 사회 비판

    중국 상하이에서 ‘핼러윈 분장’을 통해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표출됐다고 로이터통신이 1일 전했다. 1년 전 코로나19 기간 2500만명의 상하이 시민들은 두달 반이 넘는 봉쇄를 경험했고,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백지시위가 신장자치구 우루무치에 이어 두 번째로 벌어졌다. 핼러윈을 즐기는 사람들이 전날 늦게까지 상하이 중심부를 가득 메웠고, 일부는 중국의 엄격한 코로나19 규제를 조롱하는 의상을 입고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핼러윈 복장을 하지 않았지만, 괴물이나 슈퍼 히어로 같은 의상을 입은 사람들 외에 악명높은 코로나19 방역 요원 복장을 한 이들도 있었다. ‘다바이’(大白)로 불리는 방역 요원은 중국의 가혹한 ‘제로 코로나’ 3년을 상징하며, 특히 상하이 시민들에게 뼈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다바이로 분장한 이들이 면봉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검사하려는 모습이 올라왔다. 이들의 모습은 중국 당국의 권력 남용과 통제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미국의소리(VOA)는 짚었다.중국의 침체된 주식 시장을 설명하는 보드를 입은 남성과 역사적인 실업률과 씨름 중인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유명 작가 루쉰으로 분장한 남성도 있었다. 루쉰으로 분장한 남성은 경찰로부터 떠나라는 지시를 받기 전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말하라”고 촉구하는 작가의 작품을 낭송하는 장면이 동영상에 담겼다. 일부 참석자들은 지난해 제로코로나 반대시위의 핵심 상징인 빈 종이를 옷에 붙인 채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의 검열 대상인 곰돌이 푸 분장도 있었다. 앞서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동화 속 주인공 곰돌이 ‘푸’와 푸의 호랑이 친구 ‘티거’와 닮았다며 일부 네티즌들이 풍자 놀이를 시작한 이후 푸는 시 주석을 비하하는 반중의 상징 캐릭터가 됐다. 장례식에 놓이는 추모 화환으로 분장한 이와 그의 옆에서 “당신이 너무 보고 싶다”는 문구를 든 이도 있었다. VOA는 “이들의 분장이 최근 급사한 리커창 전 총리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이 두 사람은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고 소품은 압수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VOA는 “지난해 11월 말 중국 주요 도시 곳곳에서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가 발생한 이후 1년간 이와 비슷한 규모의 단체 행동은 없었다”며 “지난 주말 시작된 상하이 핼러윈 거리 축제의 주제는 재미이지만 일부 분장은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밝혔다. VOA는 ‘중국판 인스타그램’이라 불리는 샤오훙수에서 핼러윈 관련 콘텐츠가 검열돼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핼러윈 축제 참석자들이 중국 경찰로부터 위협적인 가해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지만, 몇몇 지나치게 전복적인 의상을 입은 이들은 사진이 찍혔으며 일부는 호송당하기도 했다.
  • 25~42세 70%가 ‘거북목’… 허리·목 꼿꼿이 세워야 ‘목 미인’

    25~42세 70%가 ‘거북목’… 허리·목 꼿꼿이 세워야 ‘목 미인’

    지금 당신이 고개를 40도 정도로 숙이고 수십 분째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면 근육은 내내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목을 오래 구부리면 목 뒤쪽의 근육이 5㎏에 달하는 머리를 받치느라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목뼈에는 평상시의 3배가 넘는 하중이 가해진다. 15도 정도 고개를 숙인 자세에서는 머리의 하중이 12㎏으로 증가한다. 각도가 30도, 45도, 60도로 커질수록 하중도 18㎏, 22㎏, 27㎏으로 늘어난다. 12~27㎏의 물체를 머리에 이고 스마트폰을 보는 셈이다. 자세에 신경 쓰지 않는 사이 우리 목은 ‘거북이’가 되어 가고 있다.한 연구에 따르면 흔히 거북목이라고 부르는 ‘일자 목’을 가진 사람은 25~42세 국민 중 70%에 이를 정도로 흔하다. 요즘에는 유아기부터 스마트폰을 접하다 보니 목 근육·뼈 통증 환자 연령도 낮아지는 추세다. 목 디스크로 병원 진료를 받는 환자도 매년 100만명에 달한다. ●베개는 어깨·후두부 높이에 맞는 걸로 전형준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17일 “거북목이 있으면 목 디스크도 발생할 수 있다”며 “정상적인 C자 형태라면 경추(목등뼈)의 디스크가 경추의 움직임에 따라 일을 조금씩 나눠서 하지만 일자 형태이면 똑같은 일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퇴행성 변화가 발생할 확률이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목 디스크가 만성화되면 단순한 약물치료나 물리치료만으로는 고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바른 자세’ 유지를 강조했다. 박중현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할 때 ‘바나나’와 ‘귀걸이’를 기억하라고 귀띔했다. 바나나가 요추(등골뼈)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에 한 번도 부러뜨리지 않도록 곧은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허리를 숙이거나 비틀거나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면 바나나가 터진다. 그러니 이는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하는 동작”이라고 말했다. 또한 “바나나 자세를 유지하고서 ‘귀걸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귀걸이가 어깨 중심선(상의의 어깨 봉제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리와 목을 반듯하게 세운 자세를 유지하라는 의미다. 책상 앞에 앉을 때는 의자 등받이에 엉덩이를 깊숙이 밀어넣고 허리를 곧게 펴고서 무릎을 엉덩이보다 높게 만든다. 발밑에 적당한 높이의 받침대를 두고 발을 받치면 도움이 된다. 바른 자세는 어릴 때부터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학창 시절에 대부분의 성장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정상적인 C자 형태를 유지하려면 목을 약간 드는 자세가 좋은데, 요즘에는 다양한 원인으로 척추 성장 과정에서 ‘역 C자’ 형태를 보이는 학생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거북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스트레칭도 중요하다. 특히 목을 뒤로 젖혀 근육과 인대를 이완시키는 스트레칭을 자주 해 목과 어깨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목 스트레칭을 할 때 어깨 스트레칭도 해야 효과적이다. 이미 목에 통증이 왔더라도 목과 어깨의 스트레칭은 꾸준히 하는 게 좋다. 이동호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최소한 30분에 한 번씩 목을 여러 방향으로 가볍게 풀어 주는 스트레칭을 한다. 이때 목에서 뚝뚝 소리가 날 정도로 비트는 동작은 그 순간에는 시원할지 몰라도 목 디스크와 관절의 노화를 불러올 수 있다”며 “목이 긴장되지 않고 편안하게 이완되는 자세를 취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목 디스크로 감각 이상 땐 정밀 검사를 거북목인 사람은 옆으로 누워 자는 것이 좋다는 속설도 있지만 옆으로 눕는다고 바로 누울 때보다 목과 어깨의 근육이 더 이완되지는 않는다. 누웠을 때 목과 어깨의 긴장을 충분히 이완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영석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어떤 베개를 베느냐도 중요한데, 너무 높은 베개는 거북목 증후군을 악화·고착화할 수 있고 베개를 전혀 베지 않으면 목이 너무 젖혀져 목과 어깨의 통증이 더 악화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어깨와 등 높이, 후두부의 높이 차이가 자신에게 맞는 베개 높이”라고 설명했다. 목 관절염이 생기면 목을 움직일 때 통증이 오고 목을 뒤로 젖히는 자세를 할 때 통증이 배가된다. 목 디스크가 있다면 팔 저림 현상도 따라온다. 송광섭 중앙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목 디스크는 팔로 방사되는 통증, 감각 이상, 근력 약화, 정상 반사기능 소실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고 각 증상은 목 디스크에 의한 신경 압박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며 “감각 이상이 있다면 신경 압박이 심한 것일 수 있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목 디스크 때문에 팔과 다리 운동 기능에 이상이 온 상태를 ‘경추 척수증’이라고 한다. 경추에 위치한 척수에 병이 났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증상은 미세 운동기능 장애로 단추 채우기나 젓가락질하기 등이 서툴러지고 미세 동작을 하기 어려워 물건을 자주 놓치게 된다. 다리에까지 영향이 가면 걸을 때 중심을 잡기 어려워 넘어지려 하거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기우뚱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뇌졸중 등이 생기면 회복이 늦고 후유증이 생기듯 경추 척수증 또한 수술하더라도 잔존 증상이 오래 남을 수 있다. ●경추 척수증 조기 수술해야 회복 유리 다행히 경추 디스크 환자 중 경추 척수증 비중은 20%도 채 되지 않는다. 환자 대부분이 말초신경만 눌리는 경추신경근증으로 팔 저림, 날개뼈 사이의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다. 뒷목이 뻐근한 통증부터 어깨와 날개뼈 사이가 아픈 증상, 손끝까지 저리고 당기는 증상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최성훈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가만히 두면 위험한 목 디스크가 경추 척수증이고, 당장 아프거나 불편하지만 치료만 잘 받으면 금방 좋아지는 목 디스크가 경추신경근증”이라면서 “경추 척수증은 조기에 수술해야 증상을 최소한만 남기고 회복할 수 있기에 수술을 권유하나, 경추신경근증은 90%에 가까운 환자들이 적절한 보존적 치료로도 호전되며 예후도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척추 수술은 수술에 문제가 없었는데도 수술 후 예기치 못한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일부 환자에게 있다”면서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면 합병증 발생 위험을 안고서라도 수술해야 추가적인 신경 손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고독의 향기’ 손숙, 60년 연기 인생을 읊다

    ‘고독의 향기’ 손숙, 60년 연기 인생을 읊다

    사람과 사람 접촉 이야기 담아감정에 집중해 한 편의 시 같아“남편과의 행복한 순간 떠올라내 이름 걸고 하는 마지막 작품”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한지. 그리웠어요. 당신이, 당신 품이, 당신 손길이, 나지막한 당신 숨소리가. 당신은 짐작도 못 할 거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유일하게 곁을 지키던 늙은 개를 떠나보낸 늙은 여인이 나지막이 읊조린다. 독백으로 내뱉는 대사들 사이에는 외로움이 가득 배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했을 근원적 고독이 배우 손숙(79)의 감정선을 따라 관객들의 마음에 잔잔하게 밀려든다. 데뷔 60주년을 맞은 손숙이 자신의 이름을 건 연극 ‘토카타’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제목은 ‘접촉하다·손대다’란 뜻의 이탈리아어 ‘토카레’에서 유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관계의 단절과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긴 충격, 슬픔, 고독에서 영감을 얻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2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손숙은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대사가 없어 눈만 감고 대사만 들어도 좋은 연극”이라며 “과할지 모르지만 이 연극이 끝나고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굉장히 애착이 간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했다. 늙은 여인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잃어버린 것들을 갈망하고 담담히 지금의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에는 삶에 원숙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배삼식 작가가 “손숙 배우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던 대로 손숙의 연기는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인간의 감정에 집중한 작품이라 연극이지만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힘 있게 밀고 나가는 전개 없이 세 인물의 독립된 이야기와 춤이 음악과 어우러진 형식이라 더 그렇다. 손진책 연출은 “누구나 다 겪어야 할 것들을 극적인 갈등 없이 극을 만들어 낸 훌륭한 대본”이라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행간을 잘 찾아가면 자기가 경험했던 것들이 반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숙은 1962년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고 연극에 빠져 고려대 신입생이던 1963년 5월 고대 극회의 ‘삼각모자’로 무대에 데뷔했다.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에서 다섯 차례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익숙한 작품 대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연극으로 관객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창작극을 택했다. “그 양반이 살아 있었다면 좀 살가워졌을까”하는 대사는 지난해 남편 김성옥을 하늘나라로 보낸 손숙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손숙은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 아이들 키울 때 행복했던 시절, 남편과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떠올라 그냥 내 얘기구나 싶더라”라면서 “12월에 그 양반이 돌아가셨고, 그다음 제가 다쳐서 3개월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었던 게 슬프고 아픈 얘기인데 연극에는 도움이 됐다. 삶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혼수상태에 빠진 중년 남자 역으로 김수현, 춤추는 사람 역으로 정영두가 함께 출연한다. 오는 9월 10일까지.
  • [단독] “아들아, 나는 자살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는 잠자듯 떠났다 [금기된 죽음, 안락사⑤]

    [단독] “아들아, 나는 자살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는 잠자듯 떠났다 [금기된 죽음, 안락사⑤]

    <5> 가족 그리고 죽음을 돕는 사람들 조력사망으로 가족이 떠나면 남은 가족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갈까. 후회일까, 위안일까. 서울신문은 조력사망 이후 남은 가족의 심경을 듣고자 지난 8개월간 한국인 조력사망자의 가족들을 찾아 나섰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복수의 가족 중 한 분의 허락을 받아 인터뷰할 수 있었다. 한국 언론에서 조력사망자의 가족 인터뷰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21년 8월 26일 호주 국적의 한국인 허모(당시 63)씨가 스위스 바젤에서 조력사망했다. 허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폐암 말기 환자였다. 두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재발했고, 주치의가 말한 기대 여명도 이미 수개월을 넘긴 상태였다. 마지막 순간, 14년 만에 해후한 아들 한울(27·가명)씨가 곁을 지켰다.●씨도둑질은 못하는 법 ‘씨도둑질은 못한다’는 속담이 떠오른 건 한울씨가 보여 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이목구비부터 미소까지 부자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의연하셨어요.” 지난 5월 강원도의 한 소도시에서 만난 한울씨도 그랬다. 2년 전 여름 스위스에 다녀온 일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아버지를 만나고, 떠나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3박 4일의 여정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한울씨의 모습에서 사진 속 그의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한울씨에게 ‘아버지가 곧 죽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2021년 8월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아버지는 기억 속 흐릿한 존재였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버지와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2007년 아버지를 만나러 호주로 가 한 달간 함께 살았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늘 그리운 건 아니었지만 마음 한편으론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14년 만에 폐암 말기 아버지와의 만남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을 찾았다. 폐암 말기 환자가 된 아버지는 조력사망을 결정했고, 얼마 뒤 스위스에 ‘죽으러 간다’고 했다. “잘 자라 줘서 고맙다. 이제야 찾게 돼 미안하다. 용서를 빈다. 다만 나는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는 메시지에 한울씨는 “전혀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라고 답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이야기였다. 한울씨는 학교 수업시간에 ‘안락사’나 ‘존엄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접하면서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막연히 생각했다고 한다. 그 선택을 아버지가 했다. 무려 1년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스위스에 함께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차마 “같이 갈 수 있느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동행을 제안한 건 어머니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데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한울씨는 그날로 여권 발급을 신청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끊어 주었다. 조력사망 시행을 하루 앞두고 부자는 스위스 바젤에서 만났다. 한울씨는 네덜란드를 경유해 10시간 넘는 비행 끝에 아버지가 머물고 있던 호텔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직접 방문을 열고 아들을 맞이하며 “반갑다”고 말했다. 한울씨는 “스위스에서의 모든 일이 특별했지만 아버지와 처음 만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기억보다 훨씬 나이 들고 살도 많이 빠지고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암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 싶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나는 자살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동행한 가족과 친구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아버지는 그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선택을 되돌리길 바랐다. 한울씨와 함께 비행기를 탔던 아버지의 지인은 “아들도 만나게 됐으니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식으로 말려 볼 생각”이라고 했다. 가톨릭 신자인 한울씨가 스위스로 가기 전 가까운 형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도 “신앙인으로서 조력사망은 찬성할 수 없다. 네가 아버지를 설득하라”고 했다. 한울씨는 복잡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말리고 싶은 마음보단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존중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암의 고통이 너무 컸다고 하셨거든요. 남은 치료는 암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연명하는 일뿐인데 그걸 더 받는 게 맞나 싶으셨대요. 건강한 저는 그 고통을 모르잖아요. 이미 마음을 굳힌 아버지한테 ‘더 참고 치료를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자는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병든 아버지는 못 보는 사이 청년이 돼 버린 아들에게 묻고 살았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다. 이혼하게 된 이유부터 떨어져 지내는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지갑에서 작은 사진 하나를 꺼냈다. 사진 속에는 서너 살쯤 되는 어린 한울씨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20년 넘은 오래된 사진이지만 구겨짐 없이 잘 관리된 듯했다. 아버지는 사진을 건네며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힘겹게 병마와 싸워 온 이야기와 왜 스위스로 와야만 했는지를 차분히 설명했다. “한울아, 나는 자살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는 이 말을 또 했다. 당신은 끝이 정해진 시한부의 삶이라며 너무 걱정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 아버지에게선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넌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나는 더는 삶에 기대가 없단다. 살 만큼 살았어.” 밤은 이야기로 채워졌다.●그는 마지막 농담을 던졌다 마침내 26일 아침이 밝았다. 아버지는 전날 밤부터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한울씨는 “아버지도 긴장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전날 밤 잠을 한숨도 못 잤는데도 잠이 안 오더라고 하셨다. 지난날을 돌아보느라 그럴 수도 있고, 이제 계속 잘 건데 왜 자느냐 싶었을 수도 있고, 여러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바젤 외곽에 있는 조력사 장소로 가기 전 아버지의 호텔방에 사람들이 모였다. 아버지는 “연예인이 된 것 같다”는 농을 던졌지만 분위기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사람씩 시계를 선물했다. 한울씨는 ‘남은 인생의 시간을 소중하게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조력사 단체에서 준비한 차를 타고 도착한 시설은 언뜻 보면 차고같기도 하고 목공소같기도 한 외관이었다. 아버지가 누워 있는 침대를 빙 둘러선 사람들 사이에서 흐느낌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울씨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아버지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감정의 동요를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력사를 돕는 직원이 약물이 담긴 링거액을 걸고 “준비가 되면 밸브를 돌리라”고 안내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밸브를 돌렸다.●동행들에게 시계를 선물한 아버지 그 순간 한울씨는 몇 주 전 군에서 받은 공수훈련을 떠올렸다고 한다. 헬기를 타고 1800피트(548.64m) 상공에 올라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훈련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먼저 뛴 동료들이 무사히 착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낙하산은 펴질 것이고,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죽을까 봐 두려웠다. ‘내가 아버지였다면 저 밸브를 돌릴 수 있을까.’ 울음 소리가 커졌지만 한울씨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더 추억을 남겼다면 좋았겠다는 마음도 있었죠. 하지만 그 시점에선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버지가 스스로 선택한 대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신 모습이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냥 잠자듯 떠나셔서 그게 참 다행이에요.” 임종을 함께 지켰던 아버지의 지인들은 그 순간에 대해 “이미 절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모습이었다”,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다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한울씨는 “어쩌면 더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신 걸 수도 있다. 본인마저 두려워하면 같이 온 사람들은 더 힘들 테니까”라고 말했다. 그 후 2년이 흘렀다. 한울씨는 그날 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장교로 임관해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치료의 가능성이 있었다면 저도 (조력사망을) 반대했을 수 있겠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남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것보다 스스로 마무리하겠다는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해요. 그리고 제가 아는 누군가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서 동행을 요청한다면 저는 같이 갈 거예요. 마치 멀리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마음으로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조력사망 희망자들이 얘기하는 가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직 존엄을 지킬 수 있을 때 먼 이국 땅으로 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결정을 지지하는 가족도, 반대하는 가족도, 차마 반대는 못 해도 함께 가지는 않겠다는 가족도 있었다. 한울씨는 시간을 되돌려도 스위스에 가겠다고 했다. “남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것보다 당신이 할 수 있을 때 마무리하겠다는 선택을 존중해요. 그리고 당신의 마지막 말씀처럼 아버지는 자살한 게 아닙니다.” 서울신문의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기사는 ‘인터랙티브형 기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찍거나 아래 링크를 복사한 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이는 방법으로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euthanasia/■ 기획취재부 유영규 부장, 신융아·이주원 기자
  • [단독] “아버지의 안락사를 존중합니다”...남은 가족의 이야기 [금기된 죽음, 안락사]

    [단독] “아버지의 안락사를 존중합니다”...남은 가족의 이야기 [금기된 죽음, 안락사]

    국내 최초 조력사망 유족 인터뷰2021년 호주 국적 한국인, 스위스서 조력사망동행한 아들 한울씨가 회상하는 당시의 감정“자살하는 게 아니다” 수 차례 강조한 아버지“치료 가능성 없던 아버지 선택 존중” 조력사망으로 가족이 떠나면 남은 가족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갈까. 후회일까. 위안일까. 서울신문은 조력사망 이후 남은 가족의 심경을 듣고자 지난 8개월간 한국인 조력사망자의 가족들을 찾아 나섰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복수의 가족 중 한 분의 허락을 받아 인터뷰할 수 있었다. 한국 언론에서 조력사망자의 가족 인터뷰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21년 8월 26일 호주 국적의 한국인 허모(당시 63)씨가 스위스 바젤에서 조력사망했다. 허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폐암 말기 환자였다. 두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재발했고, 주치의가 말한 기대 여명도 이미 수개월을 넘긴 상태였다. 마지막 순간, 14년 만에 해후한 아들 한울(27·가명)씨가 곁을 지켰다.씨도둑질은 못하는 법 ‘씨도둑질은 못한다’는 속담이 떠오른 건 한울씨가 보여준 한 장이 사진 때문이었다. 이목구비부터 미소까지 부자는 닮아도 너무 닯았다.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의연하셨어요.” 지난 5월 강원도의 한 소도시에서 만난 한울씨도 그랬다. 2년 전 여름 스위스에 다녀온 일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아버지를 만나고, 떠나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3박 4일의 여정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한울씨의 모습에서 사진 속 그의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한울씨에게 ‘아버지가 곧 죽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2021년 8월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아버지는 기억 속 흐릿한 존재였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버지와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2007년 아버지를 만나러 호주로 가 한달 간 함께 살았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늘 그리운 건 아니었지만 마음 한 편으론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14년 만에 폐암 말기 아버지와의 만남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을 찾았다. 폐암 말기 환자가 된 아버지는 조력사망을 결정했고, 얼마 뒤 스위스에 ‘죽으러 간다’고 했다. “잘 자라서 고맙다. 이제야 찾게 되어 미안하다. 용서를 빈다. 다만 나는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은 없다”는 메시지에 한울씨는 “전혀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라고 답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이야기였다. 한울씨는 학교 수업시간에 ‘안락사’나 ‘존엄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접하면서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막연히 생각했다고 한다. 그 선택을 아버지가 했다. 무려 1년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도 스위스에 함께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차마 “같이 갈 수 있느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동행을 제안한 건 어머니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데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한울씨는 그날로 여권 발급을 신청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끊어주었다. 조력사망 시행을 하루 앞두고 부자는 스위스 바젤에서 만났다. 한울씨는 네덜란드를 경유해 10시간 넘는 비행 끝에 아버지가 머물고 있던 호텔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직접 방문을 열고 아들을 맞이하며 “반갑다”고 말했다. 한울씨는 “스위스에서의 모든 일이 특별했지만 아버지와 처음 만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기억보다 훨씬 나이 들고 살도 많이 빠지고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암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 싶었다”고 했다.“아들아, 나는 자살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는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나는 자살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동행한 가족과 친구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아버지는 그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선택을 되돌리길 바랐다. 한울씨와 함께 비행기를 탔던 아버지의 지인은 “아들도 만나게 됐으니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식으로 말려 볼 생각”이라고 했다. 가톨릭 신자인 한울씨가 스위스로 가기 전 가까운 형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털어놓자, 그도 “신앙인으로서 조력사망은 찬성할 수 없다. 네가 아버지를 설득하라”고 했다. 한울씨는 복잡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말리고 싶은 마음보단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존중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암의 고통이 너무 컸다고 하셨거든요. 남은 치료는 암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연명하는 일 뿐인데 그걸 더 받는 게 맞나 싶으셨대요. 건강한 저는 그 고통을 모르잖아요. 이미 마음을 굳힌 아버지한테 ‘더 참고 치료를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자는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병든 아버지는 못 보는 사이 청년이 돼버린 아들에게 묻고 살았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았다. 이혼하게 된 이유부터 떨어져 지내는 시간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지갑에서 작은 사진 하나를 꺼냈다. 사진 속에는 서너살쯤 되는 어린 한울씨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20년 넘은 오래된 사진이지만 구겨짐 없이 잘 관리된 듯했다. 아버지는 사진을 건네며 “한 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힘겹게 병마와 싸워온 이야기와 왜 스위스로 와야만 했는지를 차분히 설명했다. “한울아, 나는 자살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는 이 말을 또 했다. 당신은 끝이 정해진 시한부의 삶이라며 너무 걱정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 아버지에게선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넌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나는 더는 삶에 기대가 없단다. 살 만큼 살았어….” 밤은 이야기로 채워졌다.그는 마지막 농담을 던졌다 마침내 26일 아침이 밝았다. 아버지는 전날 밤부터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한울씨는 “아버지도 긴장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전날 밤 잠을 한숨도 못잤는데도 잠이 안 오더라고 하셨다. 지난 날을 돌아보느라 그럴 수도 있고, 이제 계속 잘 건데 왜 자느냐 싶었을 수도 있고, 여러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바젤 외곽에 있는 조력사 장소로 가기 전 아버지의 호텔방에 사람들이 모였다. 아버지는 “연예인이 된 것 같다”는 농을 던졌지만 분위기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사람씩 시계를 선물했다. 한울씨는 ‘남은 인생의 시간을 소중하게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조력사 단체에서 준비한 차를 타고 도착한 시설은 언뜻 보면 차고같기도 하고 목공소같기도 한 외관이었다. 아버지가 누운 침대를 빙 둘러선 사람들 사이에서 흐느낌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한울씨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아버지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감정의 동요를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력사를 돕는 직원이 약물이 담긴 링거액을 걸고 “준비가 되면 밸브를 돌리라”고 안내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밸브를 돌렸다.그 후 2년…“아버지의 선택을 존중” 그 순간 한울씨는 몇 주 전 군에서 받은 공수훈련을 떠올렸다고 한다. 헬기를 타고 1800피트(548.64m) 상공에 올라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훈련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먼저 뛴 동료들이 무사히 착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낙하산은 펴질 것이고,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죽을까봐 두려웠다. ‘내가 아버지였다면 저 밸브를 돌릴 수 있을까.’ 울음 소리가 커졌지만 한울씨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더 추억을 남겼다면 좋았겠다는 마음도 있었죠. 하지만 그 시점에선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버지가 스스로 선택한 대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신 모습이 고통스러워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냥 잠자듯 떠나셔서 그게 참 다행이에요.” 임종을 함께 지켰던 아버지의 지인들은 그 순간에 대해 “이미 절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모습이었다”,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다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한울씨는 “어쩌면 더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신 걸 수도 있다. 본인마저 두려워하면 같이 온 사람들은 더 힘들 테니까”라고 말했다. 그 후 2년이 흘렀다. 한울씨는 그날 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장교로 임관해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치료의 가능성이 있었다면 저도 (조력사망을) 반대했을 수 있겠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남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것보다 스스로 마무리하겠다는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해요. 그리고 제가 아는 누군가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서 동행을 요청한다면 저는 같이 갈 거예요. 마치 멀리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마음으로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조력사망 희망자들이 얘기하는 가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직 존엄을 지킬 수 있을 때 먼 이국 땅으로 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결정을 지지하는 가족도, 반대하는 가족도, 차마 반대는 못해도 함께 가지는 않겠다는 가족도 있었다. 한울씨는 시간을 되돌려도 스위스에 가겠다고 했다. “남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것보다 당신이 할 수 있을 때 마무리하겠다는 선택을 존중해요. 그리고 당신의 마지막 말씀처럼 아버지는 자살한 게 아닙니다.”
  • 낯선 풍경들 세 번의 설렘 내 맘에 저장[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낯선 풍경들 세 번의 설렘 내 맘에 저장[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나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첫 번째 방문은 호기심과 감탄으로, 두 번째 방문은 더 깊은 관찰과 탐구의 느낌으로, 세 번째 방문은 나만의 시선으로 그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기 위하여. 물론 ‘단 한 번에 그 세 가지를 다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오래오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의 방문만으로는 미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문과 두 번째 방문 사이에는 ‘아, 그때 그걸 봤어야 하는데,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두 번째 방문과 세 번째 방문 사이에는 ‘그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한 장소를 방문한 뒤 그 장소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게 된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나중에는 그리움 때문에, 다시 찾아가 더 제대로 깊이 바라보고 싶은 갈망 때문에. 내가 여행한 장소는 어느덧 ‘지도 위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벨베데레 미술관은 내게 100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장소다. 첫 방문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서였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에서는 클림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화가들의 매력에 함께 빠지게 된다. 미술관뿐 아니라 원래 궁전이었던 벨베데레 정원을 산책하는 기쁨을 더 깊이 알아 가게 된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클림트가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라는 테마로 새로운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클림트가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를 구성해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화가와 화려한 합창단 공연을 하는 것 같았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에곤 실레, 앙리 마티스, 오귀스트 로댕 등 수많은 다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얻었던 클림트의 놀라운 변신 장면을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언젠가 네 번째, 다섯 번째로 이곳에 가게 된다면 나는 또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같은 장소의 새로운 매력’을 배울 수 있을까. 벌써 설렘이 가슴을 꽉 채운다. 내가 살아가는 곳을 이렇게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으로 채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많은 예술과 더 많은 꿈과 더 많은 열정이 둥지를 틀 수 있는, 우리들의 장소, 우리들의 도시를 상상하며 나는 더욱 설렌다. 그곳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마치 그 장소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느낌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장소들은 나에게 질문을 한다. “너는 도대체 왜 이렇게 멀리 찾아온 것이니?” “네가 사는 곳도 이곳처럼 아름답고 멋진 곳이니?” “너는 네가 사는 곳을 사랑하고 있니?” “이런 장소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아름다운 장소가 던진 가장 아픈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장소를 사랑하지 않는 거니?” “그래서 이토록 멀리 떠나온 거니?” 더 오래, 더 멀리 떠날수록 나는 장소가 던지는 질문들에 잘 대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멀리 떠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이 도시를 사랑한다.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더 아름답고 살 만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장소의 비밀을 탐구한다. 아무리 가고 또 가도 질리지 않는 장소의 매력을. 아이가 되어 세상에 눈뜨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서울이라는 커다란 도시를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면 나도 같이 헤매며 인터넷으로 지도를 찾아 가르쳐 주기도 한다. 학교와 직장, 자주 가는 음식점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몇몇 장소를 빼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하물며 여행의 장소는 어떻겠는가. 매일 살아가는 장소에 대한 기억은 ‘추억’보다는 ‘필요’로 기억된다. 이곳에 가면 뭐가 맛있고, 저곳에 가면 무엇이 좋은지,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기억하는 평소의 장소감은 지극히 실용적이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감각이 열린다. 일단 기차나 비행기 같은 장거리 교통수단을 활용할 때 뇌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주 멀리 떠나는 기쁨. 멀리 떠나는 몸은 피곤하고 힘들지만, 마음은 신기하게도 활기차고 설렌다. 단 며칠만이라도 여행을 떠나면 일상 속에서 복잡하고 힘들었던 감정은 사라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눈은 끊임없이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다. 이윽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낯선 장소의 규칙을 배우며 마치 어린아이가 되는 기분이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지하철표를 사는 방법, 택시를 타는 방법, 메뉴판 보는 법, 식사 주문하는 법 등을 배울 때마다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돼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런 싱그러운 배움의 시간이 좋다. 가장 멋진 시간은 벨베데레 미술관처럼 오랫동안 꿈꾸던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부리나케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방으로 곧장 뛰어가고 싶지만, 표를 사야 하고, 줄을 서야 하고, 공간의 형태를 머릿속에 새겨넣어야 한다. 잘 모르지만 끝내 잘 알고 싶은 것을 향해 돌진할 때, 인간은 열정과 겸허를 동시에 배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마구 뛰어가고 싶지만, 규칙을 지켜야 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점점 ‘내가 멀리서 동경하던 장소’와 친구가 된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변신을 거듭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올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해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 준다. 부지런히 큐레이팅을 바꾸어 매번 다른 주제로 그림을 재배치하고, 새로운 작품을 사들이고, 같은 작가라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다. 관람객들이 클림트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화가들에게도 관심을 돌릴 수 있도록 다채로운 전시를 보여 준다. 약 900년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시대의 예술작품이 무려 1만 8600점이나 소장돼 있다. 클림트에게 관심을 가지고 벨베데레 미술관에 방문했다가 방대한 유럽 미술의 역사 전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곳에서는 수백 년 전에 피어난 꽃들, 수백 년 전의 초상화 속 주인공인 여인들과 아이들, 정확히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까지도 여전히 살아 있는 느낌이다.어느새 유럽 미술에 빠지다 벨베데레 미술관의 수많은 그림들을 관람하다 보니 ‘나는 꽃이 죽지 않도록 그림을 그렸다’는 프리다 칼로의 고백이 생각났다. 그 수많은 화가들의 아름다운 몸부림으로, 언젠가 이 지구상에 단 한 번 피었던 이름 모를 들꽃조차 박물관의 캔버스 위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참 쉽죠?”라는 유행어로 알려진 다정한 화가 밥 로스의 말처럼 우리 각자는 살면서 언젠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우리가 미처 잘 못 느끼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화가들의 재능이 놀랍다. ‘어떻게 키스를 그렇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으로 매번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황홀경에 빠지고, ‘어떻게 이토록 평범한 해바라기를 이토록 눈부시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그릴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으로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 다시 선다. 그림이 있는 매일, 날 깨우다 책이나 인터넷 화면이 아니라 원작이 있는 미술관에 직접 가서 그림을 보는 기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림 고유의 질감, 생생한 붓터치, 그리고 미술관 각자가 지닌 공간의 아름다움과 함께 느끼는 예술의 감동은 늘 다시 한번 짐을 꾸려 그곳에 또 가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밥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다면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 되지요.” 정말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날뿐 아니라 그림을 보는 날 또한 매일 좋은 날이 됐으면 좋겠다. 그림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나는 그림 앞에서 경이로움과 감탄의 미소를 짓는 날이 좋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 서면 ‘이 그림은 반드시 여기 있어야겠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이 그림은 빈의 상징이며, 예술의 심장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의 상징이 돼 우리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어떤 장소에 가면 그야말로 기가 살고 허리가 쭉 펴지는 느낌이 든다. 나의 오감과 세포 하나하나가 싱그럽게 깨어나는 느낌. 햇살과 구름 하나하나가 다 날 위해 존재하는 듯한 기분 좋은 착시. 모든 풍경이 나의 완벽한 하루를 위해 축복을 내리는 듯한 기쁨.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에 대한 사랑은 삶을 살아가는 활력소가 돼 힘든 나날들을 견디는 마음의 응급상자가 돼 준다. 마치 다가올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 영양제나 보약을 먹어 두듯이 여행은 내게 ‘앞으로 견뎌야 할 고통’에 대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영혼의 비타민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끌어내는 법을 발명해 내기를. 그리하여 여행이란 인간과 장소가 가장 아름답게 관계 맺는 법이 아닐까. 문학평론가·작가
  • 소설, 시간을 저버리지 않는 -정지돈, 박솔뫼, 윤해서의 작품에 나타나는 시간관을 중심으로-/이근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평론]

    0. ‘그림자 개’와 소설 ‘그림자 개’가 있다. 이 개는 “시간과 마음의 연결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나타나 산책을 가자고 요구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시간과의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림자 개’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일종의 경고 신호인 셈인데,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단지 희한하고 우스운 하나의 에피소드로 여겨 버린다. 따라서 그 경고 신호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림자 개’의 특성을 파악해 두어야 하는데….(박솔뫼,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문학과사회’ 2021년 가을호, 88쪽) 대뜸 이렇게 시작하는 박솔뫼의 소설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는 첫 페이지부터 독자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래, ‘그림자 개’라는 것이 있다고 하자. 언뜻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튼 이것은 허구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시간과 마음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거지? 그 연결이 약해지는 것이 왜 위험한 거지? 어쩌면 이와 같은 질문은 근대 이후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잊힌, 혹은 불필요한 질문이 돼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똑똑한 그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 질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고. 어떤 성과나 효용이 발생하느냐고. 그런 것이 산출되지 않고 어떤 답도 도출해 낼 수 없다면 애초에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그러니 그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라고. 시간이니, 마음이니, 관계니, 믿음이니,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한 시간 더 일하거나 한 시간 더 잠을 자 두라고. 그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더이상 자신들이 지나온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근대인은 ‘시간과 인간의 관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호한 것 대신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이성과 과학’을 손에 쥐고 더 나은 내일,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이는 파멸의 길이기도 해서,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이뤄 낸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도리어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과 야만의 시대를 불러오게 된다. 그럼에도 반성 없는 근대의 열차가 질주의 고삐를 멈추지 않던 20세기 초,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발터 베냐민은 근대의 ‘진보적 시간관’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베냐민에 따르면 근대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삼분법적 시간관으로 작동되는 것으로, 최종 목적지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폐기시킨다. 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폭력으로 스러지고 잊힌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때 과거는 단순한 사실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 의한 ‘기억의 형식’이 되며, 이는 과거가 현재의 기억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때 “균질하고 공허”하게 흘러가기만 하는 연속적·진보적 시간의 흐름을 폭파한 후 그 ‘정지의 상태’에서 스쳐 가는 찰나의 기억을 붙잡는 일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지금 “현재와 더불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정지의 변증법’은 근대의 진보적 시간관이 토대를 두고 있는 계속해서 앞으로만 발전해 가는 변증법이 아니라 오히려 일단 멈춰야만 한다는 것, 그 정지의 순간에만 가능한 무엇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기존의 지배적인 시간의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이상 발터 베냐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최성만 옮김, 길, 2008, 331~345쪽 참조)해 새로운 서사를 (재)구성해 내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자연의 시간은 서사적 방식으로 진술되는 한에서 인간의 시간이 되며, 이야기는 “시간 경험의 특징”을 그리는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 폴 리쾨르의 말(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1’, 김한식·이경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9, 25쪽)은 베냐민의 역사철학적 사고와 근대 이후 서사의 주요 장르가 된 소설을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소설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찰나라도 멈춰 세운 후 그 정지의 시간 속에서 잊힌 한 존재를 기억의 그물로 건져 낼 수만 있다면 이는 인간 삶의 새로운 서사-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인간이 시간과 맺는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그림자 개’와 닮아 보인다. 앞서 미처 살펴보지 못한 ‘그림자 개’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하나. 그림자 개는 그림자로 된 개다. 둘. 그림자 개는 산책을 한다. 셋. 그림자 개는 짖는다.”(‘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88~89쪽) 하나. 소설은 허구로 쓰인 글이다. 둘. 소설은 시간과 마음의 연결을 돕기 위해 이리저리 떠돈다. 셋. 소설은 짖는다. 이 ‘짖음’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알리는 다급한 신호라면 우리는 소설을 그저 상상력으로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로,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진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가벼이 여기고 지나쳐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다루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로서의 시간을 어떻게 구축하며 살아갈 것인지 묻고 따져 보는 실천이 된다. 여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형상화하는 세 편의 ‘그림자 개’가 있다. 이 글은 그들과 함께 산책을 나서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될 것이다. 1. 소진됨으로써 발생하는 이미지 - 정지돈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문학과지성사, 2020.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1927년 하와이,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인 ‘현앨리스’의 아들로 태어난 ‘정웰링턴’은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자신의 신념인 공산주의가 실현된 나라를 보기 위해 1948년 체코로 떠난다. 허나 공산주의 사회의 실상은 그가 그토록 꿈꿨던 이상과 달랐고, 정작 그 사회에서 그는 자신이 “열외자”(54쪽)라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그는 체코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비밀경찰에 협조하지만 공산주의자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정신적 고향으로 여겨 온 북한에서는 현앨리스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이 숙청당한다. 그는 미국과 체코, 북한 그 어느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다. 1963년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는 그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정웰링턴은 꿈을 꿨고 꿈을 기억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고 두 세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 꿈속에서 정웰링턴은 두 번째 삶을 살았다. 또는 세 번째, 네 번째. 인간은 매일 꿈을 꾸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정웰링턴은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다시 잠들지 못했다.(7쪽) 인간은 매일 잠을 자고 꿈을 꾸지만 대부분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허나 이날 그는 자신의 꿈을 기억해 낸다. 이후 다시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준 “오래된 기억”으로서의 꿈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으나 떠올린 순간 “인생 전체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꿈을.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그는 무엇을 망각해 왔던 것일까? 근대는 위기의 시대라 할 수 있다. (…) 위기는 사실상 ‘위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고대 그리스에서 위기는 선택을 의미했다. 옳음과 그름, 구원 또는 심판, 삶 혹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상황, 찬성이냐 반대냐를 요구하는 시대. 그게 바로 ‘위기’라네. (…) 재밌는 건 그럼에도 최근 지나온 10년을 프랑스혁명 이후 유일하게 위기가 없었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네.(97쪽) 근대 이후 빠르게 변모해 가는 세계에서 위기는 ‘일상적’인 것이 된다. 그럼에도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대립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던 지난 10년은 오히려 위기가 없었던 시대였다고 ‘이지’는 말한다. 정웰링턴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죽음의 위기를 수시로 겪어 온 자신과 가족, 동지들의 삶이 위기가 아니었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깨닫는다. 그들은 죽을 상황에 처하거나 심지어 죽었다고 하더라도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애초에 무언가를 택한다는 선택권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들은 선택을 내릴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사람들, 처음부터 “예외적인 존재”(100쪽)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을 이렇게 배제한 것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두 체제 모두가 그렇게 했다는 것, 즉 두 체제 모두가 ‘근대의 쌍생아’로서 그들을 사회에 포섭하는 동시에 배제시켜 온 공모자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공산주의는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다. 자본주의는 반대다. 자본주의는 상이한 욕망과 능력을 먹이로 성장하고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나누고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변했고 그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 정웰링턴은 생각했고 책에 불을 붙였다. 바삭하게 굳은 ‘레탕모데른’은 잘 타올랐다.(8~9쪽) 1963년의 잠에서 깨어난 뒤 그가 깨달은 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실상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 둘 다 최종 목적지를 ‘발전된 미래’에 두고 ‘진보적 시간관’이라는 동일한 연료로 달리는 기차였다는 뼈아픈 진실이었다. 이제 겉무늬만 다를 뿐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근대의 두 기관차 모두에 “비상 브레이크”(“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56쪽))를 걸기 위해 그는 이들이 공유한 시간관 자체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가 ‘레탕모데른’(les temps modernes), 즉 ‘근대의 시간’이라는 잡지를 불태우는 것은 마땅한 수순으로 보인다. 1848년 7월 혁명 발발 당시 파리 곳곳의 여러 사람들이 “시계탑의 시계”를 향해 동시에 총을 쐈던 것처럼(위의 책, 346쪽) 근대 이후 ‘혁명’은 기존 시간관과의 투쟁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거대한 근대의 시간에 맞서 “지연된 순간들”을 좋아하고 “목적지가 없”는 이동과 “결과가 없는”(102쪽) 실험을 추구하는 정웰링턴은 무력하게만 보인다. 차차 그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채 혼자가 돼 간다. 그에게 남은 대화 상대는 과거뿐인 듯하다. 윌리(정웰링턴의 애칭-필자)는 과거가 떠올랐다. 꿈을 기억한 이후 처음 체코에 온 시절이 반복해서 재생됐다. 시간은 기억 속에서 거리를 상실했고 종이를 반으로 접어 펜으로 구멍을 뚫은 것처럼 의식의 지평 위에 14년 전과 14년 후가 겹쳐졌다.(29쪽) 과거를 떠올리는 그에게 처음 체코에 도착했던 14년 전과 14년 후인 지금 현재는 “겹쳐”진다. 시간의 흐름을 건너뛰어 먼 과거의 특정 시기와 현재가 연결된다. 과거의 어떤 선택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다. 체코 비밀경찰의 협조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면?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북한으로 갔다면? 아니, 애초에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꿈을 기억한 1963년의 그날 그가 꿈속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삶을 살았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어떤 꿈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삶이 가능했더라도 그것들이 모두 ‘진보의 꿈’으로 귀결될 뿐이었다면. 공간적으로도(“체코와 북한 모두에 거절당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135쪽)), 시간적으로도(“정웰링턴의 문제는 자신이 어느 시간대에 존재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16쪽))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하나의 장르를 발명해 낸다. “침묵”(16쪽)이 바로 그것. 이는 소설 속의 그가 행하는 유일한 ‘선택’으로, 그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허먼 멜빌, ‘허먼 멜빌’, 김훈 옮김, 현대문학, 2015, 22쪽)라며 ‘하지 않음’을 택하는 허먼 멜빌의 바틀비와 극 중간중간 긴 침묵에 골몰하는 사뮈엘 베케트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들뢰즈는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에 대한 글에서 “피로한 인간은 단지 실현을 소진했을 뿐이다. 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라고 둘을 구분한다. 그러니까 ‘피로한 인간’은 오늘의 할 일을 마친 후 집에 돌아가며 피곤해하지만, 밤새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 다시 일을 하며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소진된 인간’에게는 이 내일의 실현 가능성이 더이상 없다. 그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를 남김없이 불태워 버렸기에 오늘이든 내일이든 먼 훗날이든 더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이정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23~24쪽 참조)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체코로, 끊임없이 어떤 가능성을 따라 살아온 정웰링턴에게 이제 남은 것은 ‘소진된 가능성’뿐이다. 가능성을 탕진해 온 삶. 그의 “시계는 정지”(96쪽)한다. 윌리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세계와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을 것이고 사람들이 이를 자살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어에 불과하고 나의 선택은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숫자, 개념 따위로 수렴되지 않는 것이다.(132쪽) 삶이 정지하는 죽음의 순간 정웰링턴은 가능성 자체의 소진이 무엇인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외치는 진보의 폭력성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자살이라 부를 것임을 알지만, 그것은 “단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한 후 맞는 마지막 순간의 정지 속에서 그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는 중이다. 바로 “더이상 가능한 것은 없다”는 이미지.(위의 책, 44~45쪽 참조) ‘진보적 시간’이 주장하는 모든 허황된 것들을 끝장낸 후에야 비로소 발생할 이미지. “죽음과 혼돈의 순간”이 “생성과 창조의 순간”과 동시에 존재하는 “카오스모스의 시간”(위의 책, 119쪽), 그것은 결코 “언어와 숫자, 개념 따위로 수렴되지 않”을 것이다. 2.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산책 -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 문학동네, 2021.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1982년 3월 18일, 부산 중구 대청동 부산 미국문화원에 방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일으킨 것은 당시 고신대 학생이었던 문부식, 김은숙 등으로, 그들은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자행된 군부의 학살을 비판하고, 또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미국은 즉각 이 땅에서 물러갈 것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21년 박솔뫼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미래 산책 연습’을 발표한다. 그런데 작가는 같은 소재로 ‘매일 산책 연습’이라는 단편소설을 이미 쓴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작가는 한 번 다뤘던 소재를 왜 다시 써야만 했을까. 두 소설에서 소설을 쓰는 ‘나’의 서사는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은 장편인 ‘미래 산책 연습’에는 ‘나’ 외에 ‘수미’의 서사가 추가된다는 점이다. 이때 두 서사가 지닌 시간축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즉, ①‘나’의 서사가 현재의 시점에서 80년대 과거를 돌아보는 회상의 형식이라면, ②수미의 서사는 80년대 과거로부터 현재로 다가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①‘나’는 부산의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최명환’과 친해지면서 그녀가 과거에 김은숙을 알았으며, 방화 사건 당일 우연히 김은숙을 목격했음을 듣게 된다. ②광주에 사는 학생인 수미는 감옥에서 출소한 친척 언니인 ‘조윤미’를 맞이하게 되는데, 서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건 조윤미가 부산 미국문화원에 불을 지른 인물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①과 ②의 서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이 장편소설에서 ①의 김은숙과 ②의 조윤미는 서서히 겹쳐지게 된다. 단편에서는 이름으로만 회상됐던 김은숙이 장편에서는 1980년대 당시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 조윤미로서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총 12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소설의 전체 구조도 주목을 요한다. 서사의 흐름을 따르자면 이 소설의 1장은 소설의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인 12장은 어른이 된 수미가 아픈 윤미 언니를 배웅하며 끝나는데, 이를 이어받기라도 하듯 1장에서의 수미가 좀 전까지 같이 있었던 아픈 윤미 언니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2장 다음에 1장이 오는 것이 인과관계상 자연스럽다. 그러나 1장의 수미가 “그렇다면 어떻게 처음 언니와 만나게 되었는지를 써둬야겠다”(12쪽)고 마음먹은 뒤 써 내려간 것이 바로 다음 장에서부터 전개되는 이 소설의 내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1장은 분명 이 소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소설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과거로부터 다가오는 현재(②)와 현재에서 뒤돌아보는 과거(①)가 서로 물고 물리는 것을 전체적인 구조로 형상화하고 있다.1) 이제 소설의 형식에서 보이는 이러한 시간적 특성이 내용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김은숙-조윤미’는 1982년 당시 88올림픽 준비를 중단하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가 ‘82년도에 생각한 88년도’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88년도는 그 모습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겉으로는 ‘화합과 전진’이라는 올림픽 슬로건이 내세워졌지만, 실상 이면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집을 빼앗기고 사회에서 배제돼야만 했다. 국가는 이를 은폐한 채 “성공적인 88올림픽”(97쪽)을 홍보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제와 폭력은 그 후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강화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에서 쓸어 버려도 좋다”거나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은 흐름에서 탈락되어 죽어 버려도 좋다”는 말, “손이 없는 자가 빵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148~149쪽)와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도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모습 아닌가. 이러한 모습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어쩌면 거듭되는 기득권의 지배와 ‘경쟁에서의 승리’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흐름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고문당하는 소리를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193쪽) 지워 버리는 기차 소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지금-현재에 하나의 “매듭을 지어 버리는 일”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미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미래를 연습하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불을 붙인 이후의 시간을 미래라 생각하였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끝을 내고 매듭을 지어 버리는 일,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91~92쪽)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1980년 광주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자들의 목소리, 그 외에 다른 원천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곳곳에서 수수께끼처럼 제시되는 대목들, “내가 갖고 싶은 미래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로 여겨”(18쪽)진다거나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91쪽)라는 부분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겠다. 즉,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미래는 ‘발전된 미래’라는 진보적 시간관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이 꿈꿨던 미래, 그러나 실현되지 않은 것이기에 “슬픈 과거”(140쪽)인 미래, 그렇기에 지금 여기로 가져와야만 하는 미래-과거가 된다. 이때 우리는 ‘미래 기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았던 사쿠라이 다이조의 연극 중에는 ‘미래 기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연극이 있었다. (…)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 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153쪽) 현재의 내가 과거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꿀 때 미래는 꼭 다음에 오는 일이 아니고 과거 역시 그저 지나간 일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시간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꿈꾼 미래를 지금 여기서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따라서 ‘미래 기억’은 바라는 일이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 실현될 오늘을 살아가는, 일종의 수행적인 행위가 된다. 1980년에 기억하는 2000년처럼. 1980년 겨울, 광주 전남 지역의 미술인들은 ‘2000년을 위한 파티’를 연다. ‘2000년’은 광주의 진실이 알려진 미래로,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아직 오지 않은 “민주적인 미래”(193쪽)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아니라 “과거의 완결되지 않은 사실”에 발을 딛고서 다른 “미래로의 문”(에밀 앙게른, ‘역사철학’, 유헌식 옮김, 민음사, 1997, 242쪽)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문 너머의 세계는 우리에게 예상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153쪽)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흔히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당시 그대로의 완벽한 복원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 그 자체의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함을, 과거를 예상하고 짐작하는 나의 생각이 “착각일 수 있음”(193쪽)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1980년 5월 27일 아침,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는 도청 앞의 “그 냄새와 공기와 광경을 모르고 모르고 모”(192쪽)르기에. 과거에 대한 ‘살아 있는 기억’을 지닌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로부터, 그러한 기억을 지니지 않은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적 기억’으로의 전환(박순석, ‘5,18과 도청’ 토론문, ‘5.18 41주년 기념 학술대회’, 5.18기념재단, 2021, 95~97쪽 참조)은 가능할까? 최명환은 ‘나’에게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14쪽)라고 묻는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묻는, 그래서 ‘미래 기억’적인 이 질문은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유효할까. 과거를 현재로부터 가차 없이 떼어 내 버리는 ‘기억의 위기’인 이 시대에 대응해 예술은 기억을 위한 어떤 “새로운 형식을 창안”(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변학수·채연숙 옮김, 그린비, 2011, 16~26쪽 참조)해 낼 수 있을까? ‘미래 산책 연습’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보인다. 소설에는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이 자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 인물들을 따라 먹고 마시고 걷게 된다. 그 식당과 목욕탕과 빵집과 카페와 골목의 어디쯤에서, 소설 밖의 독자와 소설 안의 인물이 만난다. 그리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①과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아가는 ②가 하루하루 서로 교차될 때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된다. 물론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나 스스로를 사건 당사자의 자리에 놓아 보는 것, 자신을 “한 사람의 시민”이나 “인류의 일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드문 상태”(14~15쪽)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상태가 된다.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이 만났을 때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을까? “그럴 수는 없”(112쪽)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이 바랐던 ‘미래’를, 그들에 대한 ‘생각하기’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래 산책 연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끝날 수 없을 것이다. 3. 눈사람을 만드는 일 - 윤해서의 ‘0인칭의 자리’(윤해서, ‘0인칭의 자리’, 문학과지성사, 2019.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앞의 두 소설에는 각각 ‘1960년대 체코의 정웰링턴’, ‘1980년대 부산의 김은숙’이라는 역사적 시공간의 인물이 제시돼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그 인물을 바라보는 현재 작가로서의 ‘나’가 있었다. 반면 이제 살펴보게 될 윤해서의 ‘0인칭의 자리’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인물, 그리고 작가로서의 ‘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앞의 두 소설에 이어 놓아 보는 이유는 이 소설이 동시대를 역사적으로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두 소설이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동시대를 사유하고자 했다면 이 소설은 동시대를 사유하기 위해 동시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듯 보인다. 특정한 플롯이나 줄거리가 없어 보이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실험적이다. 소설 전체에 걸쳐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여러 인물들(혹은 공간들)은 *을 사이에 두고 매번 달라진다. 행갈이가 되어 마치 시처럼 보이는 이탤릭체의 대목들(대체로 현재형)이 정서체로 쓰인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묘사(대체로 과거형) 사이사이에 흩뿌려져 있다. 예컨대 소설의 첫 문장부터 15쪽까지가 이렇다. * 언제나 사람들은 어딘가에 앉아 있었을 것이고, 어쩌다 일어나 서둘러 걷거나 뛰었을 것이고, (…) * 사는 게 재밌네, 재미있어 사는 게. 그는 혼잣말을 했다. (…) * 화병의 목록은 꽃 이름만큼 많다.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은 아니다. * 그녀는 6번 출구로 나왔다. 출구 앞에는 영종도에 들어설 오피스텔 분양 (…) * 큰눈물버섯이라는 버섯이 있다. 큰눈물버섯은 눈물버섯속이다. (…) * 그가 후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문화재해설사는 궁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 작가는 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일까? 만약 작가가 “어떤 한계”에 의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모든 것은 영원했다’, 150쪽) 이런 기법으로 소설을 쓰도록 만든 그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재,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 그 현재의 수많은 삶들, 바로 이를 포착해 드러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윤해서가 직면한 어떤 한계가 아니었을까. 마치 한글 문서창의 커서가 깜빡이며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사라졌다”(85쪽)를, 어둠 속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며 “반짝, 어둠”(67쪽)을 반복하듯, 매순간 ‘있다-없다’를 반복하는 이 현재를 도대체 어떻게 붙잡아 그려 낼 것인가.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소설은 위와 같은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정서체(과거형)의 대목 사이사이로, 갑자기 나타나 서사-시간의 흐름을 끊어 버리는 이탤릭체(현재형)의 대목을 등장시켜, 끊임없이 교차되는 시간의 움직임을 매순간 형상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내용적으로 ‘미래 산책 연습’에서 얼핏 보였던 동시대 사회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더욱 전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람을 넘어뜨려 죽이고도 태연해하고(18쪽), ‘만남의 광장’이라는 식당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 채 자기 식사에만 골몰하고(157쪽), PC방에 앉아 무기를 고른 후 각자의 전장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죽인다(169쪽).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오직 돈과 휴식만을 원할 뿐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61~63쪽). 이러한 사회의 모습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인 것만 같고,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대의 사회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의 또 다른 몇몇 대목은 그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들이 실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한 공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집단적으로 백혈병 진단을 받았음에도 어떠한 진상 규명이나 보상도 없이 해고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지켜보며 45일째 단식 투쟁을 하다 공장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람이 있다(52~53쪽). 과거에 자신들이 행한 잘못이 명백함에도 죽어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일본대사관 앞에는 지금도 소녀상이 있다(117~118쪽).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가 어디로 가는 중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두려움에 떨면서도 믿고 의지할 것이 없어 서로의 작은 손만을 잡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132~135쪽). 단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읽기 어려운 이 대목들은 결코 자연스러워지지 않는다. * 어떤 시간도 공평하게 간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 시간이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것들을 자라게 하고, 썩게 하고, 기어이 사라지게 하는. 황홀한 삶을.(199~200쪽)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의 한 화자는 “감자에 싹이 나고, 물 밖의 고기가 썩고, 방충망에 뿌옇게 먼지가 낀다”는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에 “비는 내리다 그치고 /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온다”는 자연적 흐름을 더해 가며 섭리 같은 시간을 말한다. 그저 가만히 있는 존재들을 “자라게 하고, 썩게 하고, / 기어이 사라지게 하는” 공평무사한 자연의 시간을. 그런데 화자는 이 시간을 무섭다고 여긴 “적이 있다”고, 마치 지나간 일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화자는 시간의 또 다른 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지만 또한 무언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가능한 것이 사라지게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가능한 것을 창조”(54쪽)할 수도 있는 시간. 이제 200쪽에 이르는 이 소설에서 무심히 세 번 내리는 눈(雪)을 살펴볼 때가 된 것 같다. *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쌓인다. 쉼 없이 쏟아지는 눈송이들. 골목, 골목에. 모든 기억의 눈꺼풀 위에. 잠잠하라. 잠잠하라.(20쪽) * 눈은 내려 쌓이고, 아무도 밟는 사람이 없어서 발자국 하나 없이 끝내 하얗고.(88쪽) * 죽을 때 죽더라도. 어느 때나 눈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눈은 그저 내리고, 어디에나 똑같이 내려 쌓이는데.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드는 건 사람의 일. 눈사람은 누군가의 기억 같아. (…) (174~175쪽) 시간이 공평히 흘러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사라지게 하듯, 눈 역시 “그저 내리고, 어디에나 똑같이 내려 쌓”이면서 땅 위의 존재들을 하얗게 지울 수 있다. 시간은 흐르면서, 눈은 쌓이면서 여기 존재하던 무언가가 더이상 여기 있을 수 없게 한다. 그곳은 새하얀 무(無)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무언가를 사라지게 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태어나게도 하듯, 눈 역시 그럴 수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충족됐을 때. 즉, 우리가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사람의 일”을 수행할 때. 한 사람을 기억하며 만들어 가는 눈사람은, “모든 눈꺼풀의 기억 위에” 쏟아지면서 “잠잠하라”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명령하는 ‘눈-시간’에 저항하는 일이 된다. 어쩌면 이때, “기둥도 뿌리도 없이, 잎도 열매도 없이”(200쪽) 이 지상 위를 떠도는 이들도 저 눈사람 위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계절의 끝에, 아이들의 침대 맡에, 깊은 꿈속”(175쪽) 곳곳에 눈사람이 놓여 있듯, 이 소설의 곳곳에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이 땅에 없는 사람을 향해 “하늘에도 지도가 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118~119쪽), 낚시터에 나란히 앉아 주말마다 이곳에 앉아 있던 한 남자를 기다리는 엄마와 딸(179쪽),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다 문득 바다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는 그녀(20~21쪽) 등. 이들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깊은 고통과 상심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그 한 사람을 끈질기게 기억하고 바라보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소설 앞부분의 한 대목. 화병의 목록은 꽃 이름만큼 많다.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은 아니다.(9쪽) 화병의 목록이 꽃 이름만큼 많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국화꽃, 진달래꽃, 봉숭아꽃, 목련꽃, 벚꽃 등 각각의 꽃에는 저마다 그에 맞춤한 꽃병이 있다는 말일까. 그래서 화병이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더이상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 같은 보편적인 명사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현무암일 뿐인 평범한 돌이 어떤 특정한 꽃을 담아내는 순간 고유한 이름을 가진 화병이 된다. 여기서 ‘화병’을 기억되는 사람으로, ‘꽃’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때 기억되는 사람은 기억하는 사람만큼 생겨나게 된다. 과거 속에서 이름을 잃은 채 무명(無名)의 상태로 떠돌던 이들을 누군가 기억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과거의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동시에 그 자신 또한 상대방에 의해 고유한 존재로, ‘이 화병’에 담긴 ‘이 꽃’이 된다. 이처럼 이 둘은 따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있을 때 자신 역시 존재할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는 관계가 된다. 마치 한국어에서 “자음과 모음”이 합해져야 하나의 글자가 되는 것처럼.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존재케 하는 것처럼(186쪽). ‘0인칭의 자리’는 더이상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어떤 미래도 떠올리지 않는, 단절된 현재만을 살아가는 동시대를 어두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또한 이 소설은 공허하게 흐르는 시간과 무심히 내리는 눈을 거슬러, 그것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금도 어딘가에는 눈사람이 놓여 있지 않느냐고 우리를 조용히 일깨운다. 그러므로 폐허 속 잔해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무언가를 (재)구성하는 것은 ‘역사의 천사’뿐 아니라 “미약한 메시아적 힘”(‘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32쪽)을 지닌 바로 우리, 인간의 몫이기도 할 것이라고. * ‘0인칭의 자리’에는 한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책장을 정리하다 ‘수학’이라는 책을 펼쳐 보는 대목이 있다. “378쪽. 거기에 유일한 밑줄. 존재성 증명은 정의되는 성질을 가진 물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다.”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존재성 증명에는 ‘구성적 증명’과 ‘비구성적 증명’ 두 가지가 있는데, ‘구성적 증명’은 명확한 숫자로 답이 존재한다. 1+1=2처럼. 그런데 방정식의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답이 존재하기는 한다는 것, 바로 그 사실을 밝히는 증명도 있다. 명확한 숫자로서의 답은 제시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무언가 “존재하기는 한다”고, 답으로서의 무언가가 “있기는 하다”(109~110쪽)고 증명하는 것이 바로 ‘비구성적 증명’이다. 아들은 궁금하다. 아버지가 밝히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앞에서 살펴본 세 편의 소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다루는 와중에 이 ‘비구성적 증명’을 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웰링턴을 기억하냐는 ‘나’의 물음에 ‘야넥’은 그의 죽음이 자살인 건지, 그의 목소리나 성격이 어떠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당신이 물으니까 병원 담벼락 안쪽 “그곳에 남자가 있었다”(‘모든 것은 영원했다’, 200쪽)는 것만은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산의 김은숙과 동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고민하던 ‘나’는 그들이 생각한 것은 “그들 자신이 광주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미래 산책 연습’, 92쪽)는 과거의 사실 그 자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어머니의 눈빛, 그때까지 자신이 알던 어머니의 눈빛과는 전혀 다른 그 눈빛은 카메라도 아니고 카메라 너머의 자신도 아닌 어떤 것을 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찍어 왔다는 한 사진가. 그러나 그 어머니의 눈빛은 “그날 그 자리, 거기 없던 어떤 것”(‘0인칭의 자리’, 30쪽)이었음을 이제는 안다는 그의 고백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없는 모든 곳에 당신이 있어.”(위의 책, 150쪽) 그러므로 위 소설들의 끝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하나의 초상(肖像)과 마주하게 된다. 깊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잊힌 존재에 대한 자료를 읽고 그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어떤 사람의 수그러진 뒷모습을. 여기서 우리는 80년대에 태어난 이 젊은 세 작가가 왜 2020년을 전후로 이 작품들을 써야만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글쓰기는 지금 이 시대의 시간관-과거는 하루 빨리 잊을수록 좋고, 미래는 상상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며, 그저 하루하루의 현재만 생존하라고 명하는-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자 경고 신호로서, 지금 여기에 도착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작가 개인의 글쓰기는 그를 뛰어넘어 이 시대의 공동체를 위한 글쓰기가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교차하는 곳에, 희미하게 명멸(明滅)하고 있는 한 존재가 있다. 지금-여기에는 없지만 그때-그곳에는 있었던 누군가를 증명해 내는 일은, 내일-저곳을 이미 기억해 내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과 같다. 그리하여 만약 소설이 지금-여기에 그들을, 그때-그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림자 개’의 특성을 하나 더 추가해 볼 수도 있겠다. 넷. 그림자 개는 그림자 개가 되기 전의 개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개다. ‘그림자 개’의 다른 이름이 ‘믿음의 개’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 비록 그것이 한낱 그림자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그림자 개’-소설은 끝내 시간을, 그 속의 한 존재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므로. ——————————————————————————————————————————— 1) 그리고 이는 ‘모든 것은 영원했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정웰링턴이 자신의 꿈을 기억하는 소설의 첫 페이지는 1963년으로, 서사의 흐름상 그의 유언이 등장하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와 연결된다. 또 작가로 추정되는 ‘나’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의 시간대를 이 책의 출판 연도인 2020년으로 생각해 본다면 1960년대의 과거(정웰링턴)와 2020년의 현재(‘나)가 마주 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이것은 아시아나 스포츠 상설 매장에서 산 트램펄린. 공중부양. 수양은 뛰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 조금씩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전시제품이므로 모서리 변색 있음. 그러나 탄력 좋음. 아시아나 아저씨는 이것이 아주 튼튼한 물건이라고 말했고 정말 그렇게 생겼으니 괜찮겠다 싶지만 수양은 어쩔 수 없이 좀 무서워진다. 그녀는 변색한 트램펄린 모서리를 손톱으로 살살 긁으면서 물었다. 아저씨. 만약 부러지면 어떻게 할 건지?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아가씨…. 맞는 말이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가기 전에 튼튼하고 단단한 물건들을 생각하며 오십 분씩 뛰었다. 붉은 벽돌과 철제 의자 강화유리로 된 창문 그리고 칼…. 트램펄린 앞에는 높이 백칠십 센티미터짜리 거울이 있고 수양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열심히 뛴다. 이것은 은근히 땀이 나는 일이므로 겨울에는 얇은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뛰어야 하고 여름에는 다 벗고 뛰어야 한다. 뛰어오를 때는 정말로 공중부양하는 기분이지만 그것은 기분일 뿐이고 어쨌든 떨어지는 일이다. 수양이 영양제나 선크림이나 치약이나 칫솔이 아니라 칼을 파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라도 사 준다는 말이다…. 수양은 칼 판매상이다. * 수양은 택기와 알고 지낸 지 꽤 되었고 택기의 사육장에 가 본 적도 있다. 사육장은 동굴처럼 길고 캄캄해서 거기에 무엇이 있기는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빴다. 수양이 택기야 저렇게 하면 토끼가 살 수 있냐 너무 어둡지 않냐 물었을 때 택기는 원래 조명을 켜 두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어두운 거니 묻자 기주가 깜박한 거라고도 했다. 사육장 입구에는 파란색 파라솔이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탁자와 바퀴 달린 접이식 침대, 플라스틱 의자를 두었다. 의자에는 헐렁한 러닝셔츠와 익은 노른자색 사부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늘어져 있었는데, 수양은 그 사람이 말로만 듣던 기주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택기의 둔하고 쓸모없는 동생 기주. 네가 바로 기주다. 기주는 고개를 뒤로 기울인 채 눈을 감은 모습이었고 무릎 위로 까만 총이 놓여 있었다. 택기야 저거 진짜 총이냐. 비비탄총이지. 그렇구나 난 또. 정오를 지나던 때였으므로 하늘을 향한 기주의 얼굴은 서서히 달궈지는 중이었다. 그늘을 벗어난 얼굴 위로 노랗고 깨끗한 햇빛이 일렁거렸으니 기주는 잘 먹고 잘 자라는 중인 아이처럼 보였다. 스포츠머리에다 늘 하얀 두건을 쓰는 택기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수양은 기주의 뺨 위로 조심스레 검지를 얹었고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따듯함을 느꼈다. 택기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사육장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은 중요한 약속을 앞둔 사람처럼 신중하고 뻣뻣했다. 기주는 그때까지도 절대 깨지 않았으므로 수양은 택기야 기주가 졸고 있어… 하고 작게 속삭였다. 택기는 기주가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잿빛 토끼는 몸집이 컸다. 그냥 큰 게 아니라 아주 컸다. 택기는 자이언트 토끼라고 말했다. 크고 따듯하고 순한걸. 택기야 이 토끼는 정말로 순하다고. 털에 파묻힌 토끼의 눈이 마름모 모양이었기 때문에 수양은 토끼의 미간을 마름모꼴로 문질렀다. 몸집이 큰 것과는 별개로 토끼는 부드럽고 무른 표피를 가져서 조금만 세게 쥐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수양이 토끼도 우는가 어떻게 우는가 기억이 나지 않네 하자 택기는 토끼를 가리켜 커서 문제다, 크고 소리도 없어서 문제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왜 문제야. 커야 더 좋지. 너는 토끼로 요리하는 요리사니까 커야 좋은 거지. 개새끼들이 도망을 간다고. 토끼는 개새끼가 될 수 없었지만 택기는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도망을 간다니 탈출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탈출해. 이렇게 큰데. 크기가 이런데. 가끔 유연한 토끼들이 있다고 해도 토끼는 액체가 아니므로 수양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택기가 하는 탕집은 사육장과 마주 보고 있고 탕집 주방 쪽창은 사육장 입구를 향해 나 있었다. 택기는 하얀 두건을 쓰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탕을 끓인다. 매일 그렇게 한다. 그러다 보면 택기의 몸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수양은 택기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택기가 한참 탕을 끓이다가 쪽창을 쳐다보면 토끼 두어 마리가 잔디밭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택기와 단번에 얼굴이 마주치고 어떤 때는 뒷모습이 보이지만, 뒤돌아 있던 놈도 언젠가 택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어 있고 그러다가 산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택기는 개새끼들이 사람을 놀릴 줄 안다고 싫어했다. 사실 토끼는 번식이 빠른 동물이라서 두어 마리가 없어진다고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택기는 기주더러 탈출하는 놈들을 되는 대로 잡아내라고 거기에 앉혀 두었다. 기주는 그동안 뭔가를 잡아낸 적이 없다. 쟤는 아무것도 못 잡아. 택기가 말했다. 기주는 여태껏 바닥에만 비비탄을 쏘아 댔기 때문에 기주가 앉은 부근으로는 잔디가 자라지 않았고 살짝 젖은 토양이 드러났다. * 수양은 이제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지만 원래는 여기저기에서 잘 팔고 다녔다. 모르는 집의 문을 두드리고 칼 세트를 재빠르게 보여 준 뒤 현관에 걸터앉아서 800방짜리 숫돌에다 느릿느릿하게 칼을 갈고 이것 보세요 참 쉽지요 하는 일을 잘했다. 배낭에 챙긴 A4 용지 다발 중 한 장을 꺼낸 뒤에 막 갈아 낸 칼로 비스듬히 잘라 내고 한번 해 보세요 정말 부드럽고 예리하지요 하는 일도 잘했다. 가끔은 몇 달 전에 팔았던 집에 가서 또 팔아 내고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되었으니 다르다고 거짓말하는 일도. 그런 일을 못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의 집에 갔기 때문인데, 그가 원로 마술사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는 특히 손도 대지 않고 멀리 있는 폭죽을 터뜨리는 마술을 잘했는데 그것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게 없어서 터뜨리고 터뜨리다 귀가 먹었다고 했다. 어쨌든 수양은 원로 마술사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수양이 아무리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해도 칼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수양은 그날 처음으로 지구대에 가 보았는데, 눈썹이 짙고 목소리가 큰 박 순경은 그냥 말하는 것이지만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볼륨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알아야 해요 하며 조금은 간절한 표정으로 수양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박 순경의 손바닥이 참 축축해서 수양은 이 사람 겁이 많은 사람이잖아 생각했고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칼 파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래도 수양은 칼 파는 데 재능이 있었고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지구대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하며 트램펄린을 뛰었다. 뒤통수가 팽팽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자 수양은 앞으로도 트램펄린 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멈추고 싶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기운이 빠져서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오전 다섯 시에 잠에서 깼다. 잠 없는 노인들이나 일찍 나가는 공장 사람들한테는 그만큼 이른 시간에 찾아가서 칼을 파는 수밖에 없었으니 수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그것이 그만 몸에 익어 버린 것이다. 잠자는 동안에는 땀을 조금 흘렸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랬다. 수양은 택기가 토끼탕을 잘 끓인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택기가 만든 탕을 먹어 본 적이 없고 그때까지 택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지만, 오가는 길에 택기의 탕집을 자주 보았고 거기에는 늘 사람이 많았으니 그런 집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국도가 있고 작은 산도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 작은 산이 국내 100대 명산 중 칠십 번째나 팔십 번째쯤 되었다. 수양은 그 산이 얼마나 명산인지 궁금했다. 지구대에 다녀온 다음 날, 수양은 일찍 일어나게 되었으니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싱크대에서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씻어 낸 뒤 밖으로 나가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무척 여유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분한 음악을 듣고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신 뒤에 산책하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어 가며 걸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갈 때 주로 흰옷을 입었는데, 가장 친절하고 상냥해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위협적인 색깔이 바로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그런 식으로 칼을 팔지 않게 되었으나 자연스레 흰 옷을 골라 입었다는 사실이 좀 웃겼다. 어디서 자꾸만 하나둘하나둘하나둘하나둘 하고 조금도 쉬지 않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양은 곧 택기의 탕집 앞 잔디밭에 다다랐고 거기에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을 맞춰 잔뜩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저건… 새천년 체조잖아. 수양은 원래 칼을 잘 파는 사람이었지만 그날처럼 칼을 많이 팔아 본 적은 없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구호는 알맞게 외치는데 동작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 체조를 끝내고 명산이라는 산을 탄다고 우르르 사라졌을 때, 수양은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해, 하며 걷던 길을 다시 걸었고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로 들어섰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만두를 팔았는데 택기의 탕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사가 잘됐다. 여기까지 따라오기는 했으나 산을 타기 싫은 아이들이 김밥과 만두를 먹고 있었고 산 타는 사람들만 노리는 일명 등산객 전문 린치족들이 교복을 꼬박꼬박 챙겨 입은 모습으로 담배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수양은 매운맛 만두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에 자리에 앉았다. 김이 나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잘라 먹으며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 칼을 팔아야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김밥과 만두를 먹던 아이들에게 혹시 칼을 사겠니 물었지만 아이들은 무시했고 김밥에서 빼낸 단무지만 계속해서 찔러 댔다. 수양은 왠지 섭섭해져서 입을 쩝쩝 다셨다. 그래 역시 어른들에게 팔아야겠지…. 수양은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던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만두를 야금야금 베어 먹다가 벽걸이형 선풍기의 약풍을 맞으며 졸았다. 그러곤 결국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데 무려 여섯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렇게 작은 산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만큼이나 걸린단 말인가.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양은 사람들이 손바닥을 짝짝 부딪치며 내려와서는 곧장 택기의 탕집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칼 세트와 함께 A4 용지가 든 배낭을 챙겼는데, 그 사람들 앞에서는 종이를 자르는 시범 따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런 것들을 챙기지 않았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하얀 두건을 쓰고 분홍색 방수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택기였다. 택기는 탕집 입구로 들어서려는 수양을 붙잡았다. 탕을 드시려면 예약을 하셔야 하는데요. 저는 탕 먹으러 온 사람 아니거든요. 그런 음식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들어갑니까? 칼을 좀 팔고 싶어서요. 택기가 수양의 팔뚝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을 때 수양은 이 사람이 설마 나를 좋아하게 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택기의 손바닥이 너무 두꺼웠고 반짝거리는 그의 분홍색 앞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길 바랐다. 탕이 싫으면 뭘 좋아하시죠. 택기가 물었다. 저는 감자튀김을 좋아해요. 수양이 대답했다. 산을 좀 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주로 택기의 탕집에 모인다. 수양이 테이블 여러 개를 이어 붙인 곳으로 다가가서 제 칼을 좀 보시겠어요 하면 어어 그렇지 봐야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양의 칼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었고 일주일에 두어 번 방영하는 홈쇼핑 식칼과 유사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수양이 칼을 꺼내 들 때마다 마술을 본 것처럼 좋아했다. 제 칼을 좀 사시겠어요 하면 당연히 사 줘야지 이걸로 기필코 그놈을 죽이고 말리라 그런데 아가씨는 누군가? 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칼을 사게 되어 있다. 수양은 매일 아침 몸을 앞뒤로 흔들며 산책하게 되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는 사람들을 지켜본 뒤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조금 식은 만두를 먹었고 할 일이 없어지면 린치족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려 했다. 그들은 늘 길쭉한 막대 모양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어떤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택기는 수양의 칼을 사지 않았지만 매일 웃는 얼굴 모양의 동그란 감자튀김을 내 주었고 수양은 그것을 천천히 먹어 치웠다. * 기주야 너는 왜 토끼를 잡지 못하니. 수양은 매일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으므로 기주의 얼굴도 매일 보았다. 택기는 두피부터 손등과 발가락까지 온몸에 땀이 많은 편이었는데 기주는 그렇지 않았다. 기주는 파라솔 아래 탁자 앞에서 밥을 먹고 침대나 플라스틱 의자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고 하여튼 그런 식으로 종일 바깥에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바짝 마른 풀 냄새나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 같은 것만이 났다. 밥을 먹고 나서는 바닥에다 비비탄총을 쏘고 종아리나 팔뚝 주위로 부채질을 조금 하다가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를 한참 붙잡고 있었는데 빈칸을 모두 채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수양은 접이식 침대 위에 누워서 천천히 복식호흡을 했다. 언젠가 그것이 송장 자세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해진다. 너는 왜 토끼를 못 잡냐고. 몰라. 그걸 왜 몰라, 보고 있는데 왜 몰라. 그냥 잠깐 눈을 감았는데 밖으로 나와 있었어, 저기에 서 있었어. 토끼를 왜 좋아하나. 누가?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정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대. 토끼는 조루라던데?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일간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가 바람에 날아가도 기주와 수양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은 또 다른 스도쿠가 배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주는 공중에서 나부끼는 스도쿠 종이를 보며 이마를 조금 구겼고 모든 것이 무게중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심장은 아주 미세하게 왼쪽으로 치우친 상태이므로 무게중심도 왼쪽에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모두의 왼쪽 엉덩이는 조금 더 눌려 있고 작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왼쪽으로 살짝 돌아앉게 되어 있다고. 안 그래도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편인데, 기주는 특히 자신이 왼쪽으로 조금씩 돌아앉는 상상만 해도 본능처럼 왼쪽으로 이끌리고 그래서 자꾸만 왼쪽을 주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토끼들은 하필 오른쪽에서만 출몰하고 그런 이유로 도저히 놈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고. 그렇지만 기주가 신경을 써서 오른쪽으로 돌아앉아 보아도 변하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해도 토끼들은 탈출하고 기주는 밥을 먹고 있었거나 스도쿠를 풀고 있었거나 눈을 감고 있었거나 무게중심 때문이었거나 무슨 무슨 이유로 토끼를 발견하지 못했다. 뒤늦게 산 쪽으로 멀어지는 토끼를 발견하고 아아아아 토끼가 나타났다 지금은 멀어지는 중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택기가 뛰어나오지만 이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수양은 사라진 토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전에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졌다. 이만큼이나 사라졌으면 이미 산에는 토끼가 천지일 텐데 산을 타는 사람들은 자꾸만 택기의 탕집에 와서 토끼탕을 먹었고 산을 타다 토끼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하니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수양은 보이지가 않네 여기로 좀 와 봐라 이리 좀 와라 하며 산을 오르다 페도라를 만났는데, 그가 페도라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페도라는 까맣고 큰 페도라를 쓰고 있었고 걸친 옷이 없었다. 아주 깊은 페도라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페도라는 줄무늬 사각팬티만 입은 모습으로 큰 소나무를 껴안고 있었는데 팔이 긴 편이어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수양이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 만난 린치족들을 떠올리며 옷까지 모두 벗겨 가다니 정말 답도 없는 놈들이로군, 하자 페도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산을 타고 또 탔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워져서 옷을 한 꺼풀씩 벗었고 이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벗을 때마다 길을 잃는 기분이더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다만 뭐라고 했던가요…. 페도라는 여기에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더니 얇고 연약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는 아주 건강해 너무 건강해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면서 나를 지나쳤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외우는 일은 잘해서 말이죠. 밤이 되니 추워져서 나무를 안고 싶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모자와 팬티를 가리켰다. 이건 제 자존심이라 남겨 두었습니다. * 택기의 손은 두껍다. 손등은 거칠지만 손바닥은 부드러워서 영 이상한 손이다. 수양은 택기가 탕집 안에서 날카로운 칼을 다루다 그 손까지 어떻게 해 버리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산을 타고 온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기 때문에 괴로울 만큼 시끄럽고 그것은 모두 택기의 탕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택기는 자주 지치고 늘어진다. 늘어진 택기는 수양의 집에서 잠을 잔다. 택기의 탕집과 택기와 기주가 사는 집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택기는 가끔 수양의 집에서 자겠다고 성가시게 굴고 징징거리다 결국 그렇게 했다. 수양은 이제 칼 가는 시범을 보일 필요가 없지만 습관처럼 칼 가는 연습을 하고 트램펄린을 탔다. 그만 타. 왜. 나 머리가 아파. 이것만큼 긴장되는 게 없다고. 수양이 칼을 갈고 있으면 택기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허공에다 수양과 같은 동작으로 칼을 갈아 보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요리하는 택기는 두건을 쓰는 데다 표정도 굳어 있으니 어느 폭력배의 막내쯤으로 보이는데, 이럴 때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니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러다가 너무 집중하면 택기의 작은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지고 침이 떨어진다. 수양은 그때마다 택기의 목에 하얀 수건을 매 주었다. 아무리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도 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수건을 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택기는 칼 가는 시늉을 한참 하고 나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드러눕는다. 택기야 내일은 몇 마리나 잡냐. 아마 스물세 마리. 그렇구나 바쁘겠다. 택기와 수양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가까이 붙어 잔 적이 많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수양은 아무래도 칼 있는 집에서 하는 건 좀 그렇지, 하고 택기에게 말을 걸고 택기는 나도 방금 개새끼들 잡고 와서 좀, 이라고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기주 말로는 자기 몸은 왼쪽이 더 무겁대. 걔는 원래 헛소리를 잘해. 나 어제 페도라를 봤어. 어디서 파는데. 아니 페도라 쓴 사람 봤다고. 어디서 봤는데. 산에서. 산에서 그런 걸 왜 쓰고 있어. 내가 박 순경을 불렀어. 박 순경은 왜. 데려가 줄 것 같아서 불렀어, 진짜 데려가더라. 택기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토끼를 잡아야 하고 수양은 흔들흔들 걷는 산책을 해야 하므로 그때쯤이면 수양이 이제 자자, 하고 그들은 잠을 잤다. 그런데 그날따라 택기가 수양의 팔뚝에 얼굴을 비벼 댔고 수양은 그것이 아주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택기의 얼굴이 언제부터 뜨거웠는지 궁금해졌다. 택기야 너는 왜 요리를 잘하냐. 사실 택기는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탕집은 택기의 고모가 소유하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 택기와 기주의 얼굴을 조심스레 붙잡고 볼 키스를 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당시의 택기는 이미 어른이었고 그런 일이 시들했지만 어린 기주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고모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생활력이 강했으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므로 종일 동물을 관리하고 탕을 끓이는 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제는 정말 견딜 수 없겠다고 느낄 때마다 탕집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고모는 하루하루 침실 방문을 잠그고 우는 일을 반복했으며 아주 먼 곳에 사는 친구와 긴 통화를 이어 가다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데, 수양은 도대체 그 고모가 어디로 떠났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될 건 뭐지 나는 거짓말을 안 하는데. 택기가 말했다. 택기와 기주는 그녀가 아주 먼 곳에 있다던 친구를 찾아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고모로부터 딱 한 번 받은 엽서에는 그런 소식이 적혀 있지 않았고 감기는 걸리지 않았니 하는 식의 시답잖은 안부와 함께 탕을 맛있게 끓이는 조리법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고모는 택기 앞으로 분홍색 방수 앞치마가 담긴 택배를 보냈다. 멀리 있는 곳에서 모텔 장사를 시작했으며 경치가 좋다는 내용의 쪽지를 함께 남기곤 연락이 닿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밤마다 전화를 걸었던 누군가가 정말로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고모가 보낸 엽서 앞면에는 어떤 지역의 문화재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는데 기주는 택기 몰래 그곳으로 찾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가 들킨 적이 있다. 어쨌든 택기는 돈 때문에 요리사가 되었고 자꾸자꾸 토끼를 잡고 자꾸자꾸 탕을 끓이다 보면 다 잘하게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실망이야. 대대로 내려오는 명장 집안인 줄 알았는데. 택기는 이제 내가 명장이 되겠어 하고 속삭였다. * 수양은 아침 식사로 매운 컵라면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날이 무척 더웠다. 이상하게도 수양은 배가 아주 헛헛한 기분이었고 뜨겁기도 해서, 어쩐지 저녁이 되면 배가 몹시 고파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원한 게 먹고 싶다 차갑고 시원한 게, 하며 걸었다. 탕집 앞에서는 하나둘하나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대신 몸을 꼭 죄는 회색 양복을 입은 페도라가 서 있었다. 그는 양손을 주먹 쥔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산 타는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바둑판처럼 깔끔한 간격을 유지하며 페도라를 마주 보았다. 그 속에서 러닝셔츠를 입은 기주의 뒷모습이 함께 보였다. 바닥에 놓인 시디플레이어에서 노래 전주가 흐르자 수양은 트로트잖아, 했고 가장 뒤에 서 있던 짧은 파마머리 여자가 뒤돌아 이건 샹송이야 아가씨, 하고 단호하게 속삭인 뒤 고개를 돌렸다. 페도라는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올려 가슴 부근을 꼭 쥐더니 툭 하고 가볍게 무릎을 꺾어 쓰러지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가 똑같은 모션을 했다. 왼쪽 가슴 위로 손을 얹고 살며시 주먹을 쥔 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바짝 서 있던 잔디가 푹푹 꺼지는 소리가 얕게 들렸다. 움직임 없이 서 있는 것은 수양과 탕집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택기뿐이었다. 페도라는 곧바로 일어나 정자세를 취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유연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산을 타기 위해 흩어졌으며 페도라는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잰걸음으로 멀어졌다. 수양은 그날 밤에 페도라를 다시 만났다. 그는 기주와 함께 접이식 침대에 앉아서 사육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도라는 페도라를 쓰지 않은 채였고 품이 큰 티셔츠와 반바지에 납작한 가죽 슬리퍼를 신었다. 얼굴 끝이 뾰족한 데다 길쭉하고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서 물 위에서 흔들리는 수생식물 같은 모습이었다. 침대 옆 의자에는 박 순경이 등을 둥그렇게 말고 앉아 기주의 스도쿠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수양은 그 모습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것이 진짜인가 생각했다. 날이 더웠으므로 휴게소에 들러 과일과 빙과류를 사 오던 길이었고 기주가 수양을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그들 넷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기주야 택기는 어디 있냐. 사육장에. 또 토끼 잡으러 갔냐. 그래야 내일 팔지. 그렇긴 하지. 수양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페도라가 수양에게 수양씨 반갑습니다 하자 수양이 네 페도라씨, 하고 대답했다. 페도라씨와 박 순경님은 왜 여기에 있나요. 저는 지금 박 순경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요. 그날부터요. 수양은 페도라의 어조에서 어느 해안지역을 떠올렸으나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기주는 수양에게 페도라가 극장에서 일했다고 일러 주었고 수양은 배우이시군요, 하며 페도라를 바라보았다. 페도라는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닌 것도 같다고 대답했다. 박 순경은 수양의 노란 장바구니에서 크림 맛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더니 수양의 칼로 참외를 깎아 탁자 위에 한 조각씩 올려 두었다. 모두 참외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박 순경은 시간 간격을 두고 참외 다섯 개를 깎아 냈는데, 넷은 그것을 모조리 해치웠다. 탁자 한쪽에 쌓인 참외 껍질이 아주 얇게 깎인 모양새여서 박 순경은 그런 일에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페도라는 수양이 페도라씨, 하고 부를 때마다 턱 끝을 당기며 조금씩 새는 웃음을 참았다. 한때 자신이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고 했다. 그래서 배우라고요 아니라고요. 극장은 극장인데 영화를 보여 주는 극장은 아니고요…. 카바레라고 더 많이 부르던데요…. 그러면 가수인가 보군요. 그것도 애매한 것이 나는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다른 것을 조금 더…. 페도라는 관광지에 있는 관광 카바레 출신으로, 밤무대 가수를 노렸으나 실력이 그만큼은 되지 못해서 코미디와 차력을 하다가 나중에는 가수 뒤에서 춤을 추는 댄서가 되었다. 그는 주로 샹송 가수의 뒤편에서 팔다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흐느적거리는, 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춤을 추었다.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페도라를 쓰고 실크 셔츠를 입었으므로 전체적으로 잠들기 직전인 사람이 몽롱한 정신으로 침실이나 거실을 슥슥 걸어 대는 느낌이었다. 샹송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것과는 별개로 카바레에서 잘 통하는 장르는 아니었으니 샹송을 부르던 여자 가수와 페도라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체로 에이급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세워지거나 펑크 난 공연을 메우기 위해 급조하는 식이었다. 원형 무대를 둘러싸고 앉거나 서거나 춤추거나 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이런저런 욕을 하고 술이나 음식 던지기를 좋아했으며 샹송 가수와 페도라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면 유령처럼 사라지던 샹송 가수와 페도라가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게 된 것은 어느 날 페도라가 춤을 추다 크게 미끄러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춤에는 정교함이나 정신 집중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그는 늘 언제쯤 이따위 춤을 그만두게 될 것인가 골몰하며 춤을 추었다. 그 일은 다만 페도라의 정신이 다른 데 있었고 밑창이 닳아 본드 칠을 한 그의 구두가 미끄러운 무대 바닥을 견디지 못해 생긴 불상사였을 뿐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페도라가 마치 허공에서 날아온 강렬한 펀치를 맞고 쓰러진 사연 있고 가련한 남자로 보였다.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샹송 가수는 엉덩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클라이맥스를 불렀다. 샹송 가수는 주로 앙리코 마시아스의 ‘추억의 솔렌자라’를 불렀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민요를 빌려 만들어진 노래였고 그날 샹송 가수가 부르던 노래 역시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민요라는 것이 공동체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라고 페도라는 덧붙였다. 그 노래는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인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 곳이 솔렌자라였지만 어느새 솔렌자라는 모두에게 추억의 솔렌자라가 되어 있었다. 페도라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무대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이내 샹송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다. 무대 아래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안내요원은 두 손을 입가로 모은 뒤 야 이 새끼야 계속해, 계속하라고. 멈추지 마!라고 외쳤다. 안내요원과 페도라는 가끔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가 주춤거리며 일어서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날부터 샹송 가수와 페도라는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며 완벽한 B급이 되었다. 페도라는 완벽한 B급이 된 이후로 춤을 그만두고 마임을 했다. 주된 특기는 역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화살 맞는 남자’를 가장 잘했다. 어떤 식으로 화살을 맞게 되는지는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덜떨어진 듀오’가 무대에 오르면 페도라는 먼저 무대 앞으로 한 발짝 나서서 말했다. 오늘은 도망치다 화살을 맞는 소년입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 대신 화살을 맞는 남자입니다 하는 식이었다. 페도라는 관광 카바레의 유명 인사가 되어서 ‘덜떨어진 듀오’가 아닌 ‘페도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카바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미 페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어떤 이유로 화살을 맞는 콘셉트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페도라 역시 그 일을 자꾸만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자신이 화살을 수없이 맞아 본 가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감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화살을 맞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어나느냐였는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많았다. 화살을 맞고 쓰러진 뒤에 재빨리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 외에도 아주 천천히 일어나거나 몸을 조금씩 굴려 일어나거나 하는 많은 방식이 있었다. 화살을 맞는 모습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보다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는 일이 중요했다. 크고 동그란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무대 앞 바리케이드에 달라붙어 페도라를 향해 다트를 던지는 듯한 가벼운 자세로 툭툭 한 손을 뻗거나 활시위를 당기는 척했고 그러면 페도라는 타이밍을 노려 바닥으로 주저앉아야 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사람들이 외치는 순간 알맞은 자세로 일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느 틈에 관광 카바레 포스터에는 깊고 검은 페도라를 쓰고 하관만을 드러낸 페도라가 매력적으로 미소 짓는 측면 모습이 들어섰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페도라는 무조건 일어난다’였다. 사람들이 ‘화살 맞는 남자’를 원한 것은 물론이고 페도라 역시 그런 일에 사로잡혔으므로, 그는 넉넉한 실크 셔츠 대신 흰색 쫄쫄이만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되었다. 쫄쫄이는 페도라가 자세를 달리할 때마다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을 치밀하게 보여 주었다. 무대 조명 아래에서 길쭉하고 마른 페도라는 석고상처럼 보였다. 페도라는 그날 아침 택기의 탕집 앞에서 ‘화살 맞는 남자’를 시도할 때 입은 양복이 박 순경의 것이라고 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를 찾느라고 고생했습니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기주는 페도라를 향해 떼돈을 벌었냐고 물었다. 물론 그렇지요. 페도라가 답했다. 페도라가 점차 이름을 알리면서 샹송 가수는 잊히게 되었다. 그녀는 카바레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한 날 분장실로 페도라를 불러내었고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다가 화살이나 맞아라…. 그는 그날의 분장실과 샹송 가수를 상기하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끝내줬지요. 그는 잠시간 굉장한 화살을 맞은 기분을, 그것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화살이라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고 ‘페도라’로 사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이제 밝은 낮부터 일하는 직업을 얻고 싶어졌으므로 골목길에 커피숍을 차렸는데, 그곳은 분명 커피숍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또 다른 카바레가 돼 버리고 말았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종종 무리 지어 커피숍에 들렀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페도라가 내린 커피를 음미하고 얌전히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에이프런을 두른 바리스타 페도라의 구역을 침범했고, 손수 커피를 내려 마신 뒤 커피값과 팁을 금고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장소는 달라졌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도라는 또다시 화살 맞는 남자가 되어서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매일 아침 일찍 경직된 얼굴로 찾아와서 페도라의 쇼를 관람한 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커피숍을 접고 책 대여점과 노래 연습장을 차례로 열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끝으로 번 돈을 모두 까먹은 페도라가 백화점 주차요원이 되었을 때는 그가 들고 있던 주홍색 경광봉마저 화살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는 멀리 도망쳤고 그렇게 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들은 아주 캄캄한 시간까지 파라솔 아래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줄곧 무덥고 눅눅했다. 페도라의 이마에서 땀이 죽죽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렸다. 기주는 비비탄총을 매만졌고 수양은 사육장 천장에 달린 노란 조명을 바라봤다. 박 순경이 수양씨 아직도 칼을 파신다고요, 하고 물었다. 정말 이상하시네 나한테 왜 자꾸 그러세요. 수양은 억울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저 사실 산을 잘 탑니다. 순경님이 산을 잘 타는데 나더러 어쩌라고요. 저도 린치족이었습니다. 뭐라고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박 순경은 코끝을 조금 긁적이다 또다시 수양의 장바구니를 뒤적였다. 이제는 깎아 먹을 참외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날씨가 참 덥네요 같은 말만 몇 번 더 했다. * 페도라는 매일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나타났고 사람들은 새천년 체조를 하는 대신 화살 맞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쓰러졌다 일어나는 순간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모두 흥분한 모습으로 크게 숨 쉬었다. 방수 앞치마를 두른 택기도 종종 수양과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주로 산 타는 사람들 한복판에서 왼쪽 가슴을 그러쥐고 쓰러지는 기주를 구경했다. 택기야 기주가 제일 열심인 거 아냐. 쟤가 얼마나 땀이 없는데 저렇게 축축해지다니. 택기는 가만히 기주를 보다 사육장으로 걸어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시디플레이어의 노래는 한 시간가량 반복 재생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한 시간 동안 화살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수양은 이른 오전마다 택기의 탕집 앞에 서서 기주와 페도라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런 뒤에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갔다. 페도라는 일이 끝난 후에 시디플레이어를 챙겨 신속하게 걸었다. 아무래도 박 순경과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한 속도일 거라고 수양은 생각했다. 페도라의 ‘화살 맞는 남자’가 또다시 유명해지자 화살 맞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들은 끊임없이 늘어났다. ‘화살 맞는 산악 동호회’ 슬로건이 걸린 전세버스가 페도라를 찾아온 날에는 분반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먼저 맞는 조와 나중에 맞는 조로 나뉘었다. 그날의 페도라는 이전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모든 일을 마친 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쪽으로 걸어가는 수양을 불러 세웠다. 수양씨, 칼을 파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페도라가 입가를 우물우물 달싹였다. 나를 죽여 주십시오…. 수양은 그 순간 몹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칼 파는 사람이지 칼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하고 말한 뒤 침을 삼켰다. 잘 알고 있습니다. 페도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깊게 미소 지었다. 수양은 바로 그 미소가 한때 관광 카바레 포스터 속에 자리했던 그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수양씨, 나는 이제 평생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페도라는 느린 걸음으로 멀어졌다. 페도라의 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에, 수양은 그의 크기가 도저히 작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걸었고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만두를 베어 먹다 다리를 덜덜 떠는 린치족과 눈이 마주쳤다. 이봐, 한가하면 우리랑 놀지 그래?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칼 파는 사람이다…. 어쩌라고! 크게 외친 린치족이 도망쳤다. 흐트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보던 수양은 애매한 기분이 되어서 린치족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 페도라가 자취를 감춘 어느 아침에도 시디플레이어는 잔디밭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는 화살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착실히 열을 맞췄다. 기주가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택기가 사육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수양은 사육장 바깥으로 몸을 내민 잿빛 토끼를 단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그때 그 토끼구나. 너는 지금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구나…. 잿빛 토끼 뒤로 몇 마리의 토끼들이 튀어나와 잔디밭 위에 선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빠르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오랫동안 화살 맞기를 훈련한 기주는 교묘한 움직임으로 발밑의 토끼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고꾸라지다 분산되었다. 몇몇이 토끼를 잡기 위해 두 손을 죄며 바닥 가까이 몸을 숙였고 토끼는 매끄러운 몸짓으로 벗어났다. 택기가 기주의 비비탄총을 손에 들었지만 비비탄이 다 떨어져 틱틱 소리만 났다. 제법 많이 사라진 토끼 때문에 택기는 한동안 탕집 문을 닫았다. 박 순경은 꽤 오랜 시간 페도라를 찾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CCTV에 찍힌 그의 마지막 흔적을 확인한 뒤 조용해졌다. 화면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기주야 너는 이제 화살을 맞지 않니. 나는 이제 다 해냈어. 화살 맞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찾아오다 발길을 끊었다. 페도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양은 이제 페도라의 옆얼굴이나 자세, 목소리와 같은 것들을 묘연한 실루엣만으로 떠올렸다. 그러고는 택기와 잠을 자거나 트램펄린을 타거나 칼을 갈았다. 깰 생각 없이 느슨하고 풀어진 얼굴로 잠을 자는 기주의 뺨 위로, 수양은 그들이 아주 처음 만난 날처럼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박 순경은 새로 마련한 자신의 과도로 참외를 깎았다. 그는 매일 누군가 내버려 둔 스도쿠를 채워 넣는 데 몰두했는데, 어떤 날에는 작은 탄성과 함께 저기에 토끼가, 하며 잔디밭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건 진짜 토끼야, 진짜다. 작게 속삭인 수양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나 방수 앞치마를 한쪽 어깨에 걸친 택기가 탕집 처마 아래에 서서 그곳을 바라보기만 했으므로 수양은 걸음을 멈추었다.
  • “아픈데 치료비 좀”…열 남자 속은 ‘랜선 여친’ 실체

    “아픈데 치료비 좀”…열 남자 속은 ‘랜선 여친’ 실체

    이성교제 사이트나 SNS 등을 통해 결혼 등을 약속하는 애정관계로 발전하게 되면 금전 등을 가로채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사기가 여전히 국제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중국 광둥성에 살고 있는 한 남성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 여자친구의 온라인 프로필에 반해 연락하다 사랑에 빠졌다. 여자친구가 보내준 ‘셀카’를 볼 때마다 감정이 점점 더 커졌고 온라인 상이 아닌 현실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직접 만나지 못한 채로 연인 관계를 이어가는 사이, 여자친구는 집세를 낼 돈이 부족하거나 아픈데 치료비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돈을 송금해주길 부탁했다. 남성은 여자친구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짧은 기간 동안 무려 4만 5000위안(한화 약 842만원)을 썼다. 처음에는 여자친구의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자 남성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여자친구는 여러 이유를 들어 만남을 계속해서 미뤘고, 며칠 후 경찰이 여자친구를 체포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남성은 여자친구의 ‘실물’을 마주하게 됐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사진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여자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사진을 몰래 도용해 온라인 상에서 마치 자신인 양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고 남자를 유혹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 사실을 신고한 남성 외에도 9명의 남성이 이 여성과 랜선 만남을 지속하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파병 중에 다쳤어요” 미모의 여군 정체 한국에서도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해외 파병 중 다쳤는데 수술비가 필요해요. 전역하고 한국에서 당신과 살고 싶은데…” 군복을 입은 미군이나 미모의 외국인 여성 사진을 프로필로 한 SNS 계정으로부터 온 친구 신청. 호기심에 받은 친구 신청 이후 매일 다정한 안부 메시지가 도착했다. 몇 달간의 연락이 이어졌고 “당신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달콤한 말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피해자들은 랜선연애를 하던 이 여성이 남성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지난해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사기 등 혐의로 외국 국적 30대 남성 A씨 등 4명을 17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해외에 기반을 둔 실행 조직과 국내 자금관리 조직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벌였다.조직원 대부분은 아프리카 지역에 국적을 둔 외국인으로, 국내에서도 자금 관리, 인출을 담당할 외국인 조직원들을 모집했다. 주로 미군이나 해외에 거주하는 변호사·의사 등을 사칭해 호감을 샀고, 외국인 연인 행세를 하며 돈을 뜯어내는 수법(로맨스 스캠)으로 피해자 26명으로부터 총 16억 51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한 피해자는 금융거래소 직원을 사칭한 피의자의 “160억 퇴직금을 배우자만 수령할 수 있으니 당신이 배우자 행세를 해달라”는 말에 속아 변호사 선임과 서류작업비 명목으로 약 2억 8000만원을 뜯겼다. 경찰은 “심리적으로 외로운 중·장년층이 스캠 수법에 잘 속는다”며 “특히 외국인에게 송금할 때는 확인을 거듭하는 등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SNS상 무분별한 친구 추가를 자제하고, 이미 피해를 입었을 경우 입금내역과 대화 내역 등 증거자료를 지참해 경찰서에 신고하고 입금한 은행에 지급정지 및 반환 가능여부를 문의하라고 조언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도쿄 로즈’로 몰려 희생된 도구리 다키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도쿄 로즈’로 몰려 희생된 도구리 다키노

    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 전장에서 싸운 미군 병사들이 ‘도쿄 로즈’라고 얘기하는 여성이 있었다. 전장에서 매일 밤 그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고혹적이었으며 영어 발음은 유창했다. 그녀는 미군 함정들이 모두 격침될 것이며 부대들은 일본군에 말끔히 청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틈틈이 미국에서 유행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인 1949년 10월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반역 혐의로 기소된 이바 도구리 다키노(일본명 이구코 도구리)에게 유죄를 선언하고 징역 10년형에 벌금 1만 달러를 부과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 언론이 묘사한 것과 같은 ‘도쿄 로즈’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일간 마이애미 헤럴드가 지난 8일 보도했다. 도구리는 1916년 7월 4일 로스앤젤레스의 일본인 교포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0년 UCLA를 졸업했는데 동물학 학사학위를 땄다고 연방수사국(FBI) 기록에 나와 있다. 이듬해 아픈 이모를 간호하고 약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이주했다.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던 날에 진주만 공격이 발발했다. 일본 당국은 오도가도 못하는 도구리에게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자 적국 시민으로 간주돼 이모 집안은 식량 배급에서 제외됐다.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포로수용소로 보냈는데 도구리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와 연락이 끊기고 생활비도 지원받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라디오 도쿄의 타피스트로 취업했다. 도구리는 나중에 미군 병사들을 겨냥한 선전 쇼 ‘제로 아워’(Zero Hour)에 고정 출연하게 됐다. 자신을 “고아 앤”이라거나 “고아 애니”라고 소개하며 선전문을 읽거나 매일 밤 20분정도 음악을 틀어줬다. 이 일을 하고 한달에 받은 돈은 150엔정도였다. 도구리는 1945년에 포르투갈계 필리페 다키노와 결혼했다. 사실 그녀는 미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마이크를 잡아 미군 병사들에게 ‘도쿄 로즈’란 별명이 붙은 14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다. FBI 문서에 따르면 종전 후 두 미국 기자가 악명 높은 도쿄 로즈를 추적해 결국 도구리가 그 여성이란 점을 밝혀냈다. 두 기자는 2000달러를 줄테니 인터뷰를 통해 “하나뿐인” 도쿄 로즈였음을 자백하라고 권했지만 나중에 결국 돈을 건네지 않았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보도했다. 이 인터뷰는 미국인들에게 악명 높은 일본군 선전 앞잡이로 도구리를 각인시켰다. 다른 여성들의 신원은 종전 뒤에도 철저히 감춰졌는데 도구리만 기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바람에 미국민들의 미움을 사게 됐다. 하지만 FBI와 육군첩보전사단이 일본에서 수사한 결과 도구리가 선전전 확대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실제로 도구리는 선전전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했다. 연합군 포로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거나 의미없는 말장난을 하는 등 잡담에 치중했다. 그녀의 방송 멘트는 이랬다. “여러분이 타신 배는 전부 가라앉아 버렸어요. 집에 어떻게 돌아가실 건가요?” “커다란 배를 타고 있으면 쾌적하겠죠. 그렇지만 곧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타깝네요.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얼마나 많은 수병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지금쯤 당신들의 아내와 연인은 다른 남자와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당신이 여우 구멍(개인호)같은 곳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당신 아내나 연인은 분명 외로워할 거예요. 그런 여성에게는 분명 유혹자가 나타나죠. 첫 데이트에서 키스까지 했을까요?” 그녀는 또 함께 방송하던 연합군 포로들의 식량과 약품을 구해준 일도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미군 병사들도 그녀의 방송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에 코웃음 치며 그저 영어 좀 하는 여성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 뿐이었다. 적어도 미국 언론이 묘사한 것 같은 ‘도쿄 로즈’는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1946년 수사 때 도구리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증거와 녹음이 파괴돼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더라면 한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가 나중에 다시 기소돼 유죄 판결 받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미국 국적을 말소한 적이 없기 때문에 도구리는 귀국하기 위해 여권을 신청했고, 그 바람에 ‘도쿄 로즈’의 저주가 시작됐다. 공산당 색출에 앞장섰던 라디오 진행자 월터 윈첼과 다른 사람들이 고발해 당국의 조사가 시작됐고, 이번에는 자신을 인터뷰했던 기자 한 명이 수사에 협조했는데 그에게 위증을 종용했다는 혐의가 더해졌다. 샌프란시스코 대배심은 적국을 도운 반역 혐의에 유죄를 평결했다. WP에 따르면, 재판에서 ‘제로 아워’의 옛 동료가 그녀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가 나중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인이 법정에 설 것이라고 위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도구리는 미국에서 반역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곱 번째 인물이 됐다. 10년형 가운데 6년만 복역했다. 그녀는 나중에 WP 인터뷰를 통해 “난 그들이 다른 누구를 발견해 그 일을 마무리지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들 모두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느 것을 고를까, 어느것을 고를까 알아맞혀 보세요 하는 식이었는데 그게 나였다(It was eeny, meeny, miney and I was ‘moe’).” 그의 남편은 재판에 변호하러 왔다가 다시는 미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나중에 부부는 이혼했다. 그녀는 복역 뒤에 시카고에서 조용히 살다 1977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 미국 국적도 회복했다. 2006년 9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도구리와 비슷하게 나치 독일의 선전전에는 ‘호호 경’(Lord Haw-Haw)이라 불린 외국인이 있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윌리엄 조이스인데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로 돌아왔다가 1932년 영국 파시스트동맹에 가입했다가 나중에 축출돼 자신의 파시스트 정당을 창당한 뒤 전쟁 직전 독일로 옮겨왔다. 나치 당의 영어 선전방송에 출연해 완벽한 영국식 억양을 구사하며 “독일이 부른다, 독일이 부른다”라고 외치며 방송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했다. 영국군 병사들에게 탈영하라고 권하고 유대인들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것이라고 탓하는 방송을 했다. 전쟁 막바지에 조이스는 마지막 방송을 통해 “하일 히틀러, 그리고 안녕”이라고 고별사를 늘어놓았다. 영국 첩보요원은 독일의 한 마을에 숨어있던 그를 체포해 반역 혐의로 1946년 1월 3일 교수형에 처형했다. 도구리처럼 역사의 장난에 희생된 힘없는 개인의 사례로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이라크 공보장관 무함마드 사이드 알사하프를 들 수 있다. 그는 ‘바그다드 밥’으로 불렸는데 멍청하게만 보이는 선전 노력 때문이었다. 미군 탱크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는데도 사하프는 매일 텔레비전 브리핑에 나와 미군이 이라크에서 달아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어틀랜틱이 보도했다. 오죽했으면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죽거린 뒤 “누군가는 우리가 그를 기용해 거기 내세웠다고 비난한다. 그는 클래식이었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티셔츠, 머그 컵, 팝송, 움직이는 피규어 인형에 조롱거리로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밈으로 나타난다. 사하프는 끝내 자신의 직위를 물러난 뒤 종전 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도쿄 로즈’의 뒤를 이어 수많은 ‘후배’들이 전쟁마다 배출됐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붙잡혀 억지로 마이크를 잡은 미국 여성 ‘평양 샐리’와 ‘서울 수(Sue)’, 베트남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선전방송을 맡은 ‘하노이 한나’와 ‘하노이 제인’, ‘하노이 폰다’, 걸프전 때 사담 후세인 정권의 마이크를 잡은 ‘바그다드 베티’ 등이다.
  • 넷플릭스 세계 1위 ‘다머’, 이 끔찍한 연쇄살인마를 어떻게 봐야 하나

    넷플릭스 세계 1위 ‘다머’, 이 끔찍한 연쇄살인마를 어떻게 봐야 하나

    사람들은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에 끌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넷플릭스에 1970~9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1994년 교도소에서 피살)의 실화를 다룬 시리즈 ‘다머-괴물, 제프리 다머 스토리’ 10편이 모두 올라오자마자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공개 첫 주에, 사실은 지난달 21일(이하 현지시간)~25일 닷새 만에 1억 9620만 시간 시청한 것으로 집계돼 지난해 ‘오징어 게임’ 시즌1 첫 회가 소개됐을 때을 앞질렀다고 인디와이어가 같은 달 27일 전했다. 이 매체는 ‘오징어 게임’의 시청시간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다머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1978년부터 1991년까지 13년 동안 17명의 젊은 남자들과 소년들에게 약물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하고 심지어 먹기도 한 끔찍한 연쇄살인마다. 제작진은 “어떻게 그가 오랜 세월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 경찰과 사법기관은 어떻게 그걸 내버려둘 수 있었는가”에 집중하려 했다고 밝혔다. IMDB에서는 8.6점, 로튼 토마토에서는 86%의 관객 점수를 받으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평론가 평점은 매우 낮게 나온다. 할리우드에서도 두세 번 울궈먹은 소재를 다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역시 폭발적인 논란과 선정적인 기사들, 예를 들어 다머의 부모가 생존해 있다거나, 생전의 다머를 단독 인터뷰했던 기자의 회고담, 교도소에서 다머를 살해한 죄수의 회고담 등등이 쏟아지고 있다. 희생자 중 한 명인 에롤 린지의 친척 에릭 페리(33)는 최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 드라마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머에게 살해되거나 그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살아남은 성 소수자(LGBTQ+)와 유색 인종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페리는 “불행하게도 내가 받은 많은 코멘트들은 이 얘기를 들려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사람들이 이것이 단순히 얘기나 역사적 사실만 아니라 진짜 사람들의 삶이었다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린지는 누군가의 아들이며 형제며 아빠였으며 친구였는데 그들의 인생에서 뜯겨 나갔다”고 지난달 30일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에 털어놓았다. 이어 “내 생각에 소셜미디어와 넷플릭스, 유명 제작자와 배우들이 결탁해 내가 전에 경고했던 것보다 훨씬 과장했다. 다머는 전에 이렇게 밈(meme)이 된 적이 없었다. 인생의 최악이었던 시절의 트라우마 사건으로부터 겨우 벗어났는데 이제 이웃들이 좋아하는 진탕 쇼 소재가 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세계 사람들과 그 경험을 드라마로 만들려면 최소한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접촉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페리의 비판, 피해자 유족과 희생자 측 입장에 대한 신문의 코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페리는 린지의 누이인 리타 이스벨이 1992년 법정에서 다머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담은 실제 동영상을 올리고 “형제를 고문하고 살해한 남자 앞에서 감정적 붕괴를 겪는 내 사촌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은 정말 야만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당신이 실제 희생자에 대해 궁금해 한다면, 우리 가족은 이 드라마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며 “얼마나 많은 영화와 쇼, 다큐멘터리가 필요한가”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제 60대가 된 이스벨은 자신의 모습을 재연한 장면을 보고 소름끼쳤다고 털어놓으며 넷플릭스나 제작진이 연락을 취하거나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인사이더에 밝혔다. 이스벨은 “이 드라마, 특히 ‘나’를 봤을 때 불편했다”며 “내 이름이 화면에 올라가고, 여배우가 내가 말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다시 말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잘 몰랐다면 나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며 “(배우의) 머리도 나와 비슷했고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 당시를 다시 살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그 때 감정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이스벨은 “이 드라마가 가혹하고 부주의했다고 느껴진다”며 “이 사건으로 영향을 받은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이 드라마의 수익과는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스벨은 이 드라마가 아픈 기억을 들춰낸 반면 한 가지 이점을 줬다며 “에롤은 항상 내 영혼 속에 살아있을 것이고, 그의 딸에게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도록 (에롤의 얘기를 계속 함으로써) 그를 살려둬야 한다”고 했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 중에도 비판하는 사람이 나왔다. 프로듀서 보조로 일한 킴 알섭은 트위터에 세트에서 “끔찍한 취급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다머에게 희생된 이들 가운데 유색인종이 많았는데 제작진 중에는 흑인이 많지 않았다. 그녀는 전혀 닮지 않은 외모의 다른 흑인여성과 자신을 혼동하는 스태프들 때문에 화가 많이 났다고 했다. 아울러 시리즈를 시청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너무 많은 기억들을 끄집어내려 한다고 느꼈다. 난 이렇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유형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예고편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PTSD를 갖게 됐다. 흑인 여성으로서 내가 일해본 최악의 쇼 가운데 하나였다.” 드라마에서 다머에게 죽을 뻔한 위기에서 탈출해 경찰에 신고한 트레이시 에드워즈를 연기한 숀 브라운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에드워즈 같은 잊혀진 인물을 조명한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라며 “다른 누군가의 불행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라면서도 “여러분이 모든 희생자들을 사랑해주고 아마도 제때 서로를 더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
  • 시한부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들

    시한부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들

    오늘하루마음읽기 25회 : 후회의 심리 하루에도 몇번씩 하는 후회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까후회없는 완벽한 삶은 없어성찰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죽음 앞둔 사람들이 후회하는 건내면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것#편집자 주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오늘하루 마음읽기’에서는 날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 마음속 이야기를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친절하게 읽어 드립니다. 스물 다섯번째 회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후회에 대해서 정정엽 정신건강전문의가 설명드립니다. 당신이 후회하고 있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신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혜영 씨는 깊은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 누웠지만 웬일인지 의식은 점점 또렷해지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며칠 전 회식 자리에서 술김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불평불만을 상사에게 쏟아붓던 장면이 빠르게 스쳐 갑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젯밤, 선호 씨는 아내와 한바탕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요즘 들어 선호 씨는 아내와 부딪치는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회사 일도 바쁘고 피곤한데, 집에 들어서면 냉기만 감돌 뿐 어디 한군데 마음 붙일 곳이 없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 밤,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문득 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옵니다. ‘그날 그렇게 헤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선호 씨는 지나간 옛사랑에 대한 회한으로 잠 못 이룹니다. 우리는 오늘도 후회를 합니다. 불과 어제, 아니 방금 전에 주문한 저녁 메뉴 선택에 대해서도 후회를 하고, 벌써 수십 년 전 옛사랑을 붙잡지 못한 자신의 용기 없던 행동에 대해서도 후회를 합니다. 이 죽을 놈의 후회는 한평생 그림자처럼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마음을 괴롭힙니다. 우리가 한 일 또는 하지 못한 일, 손실이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슬프거나 자책하거나 반성하거나 하는 마음이 바로 후회라는 감정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나간 사건이나 자신의 행동 또는 결정에 대해 후회하곤 하는데요, 도대체 인간은 후회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요?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선택을 하실 건가요?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죽음 이후의 또 따른 삶’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국의 소설가 매트 헤이그의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 로라는 삶의 목적을 잃고 죽음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는 ‘자정의 도서관’에 가게 되면서 자신이 살아 보고 싶었던 수많은 선택지에 있는 인생을 살아 보게 됩니다.과연 로라가 되돌리고 싶던, 과거로 돌아가 되고 싶던 존재가 됐던 삶은 예상대로 행복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녀는 어떤 삶에서도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게 완벽한 삶이란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삶에서는 현재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더 안 좋았습니다. 물론 꽤 만족스러운 삶도 있었지만, 로라는 결국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자각하면서 말이지요. 소설 속 주인공인 로라는 사실 굉장히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잘나가던 수영 선수였고, 실력 있는 뮤지션이었죠. 그러나 인생은 로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그녀를 밀어 버립니다. 도무지 후회와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로라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그만 끝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가 보고 싶던 수많은 갈래 길을 걸어 본 뒤 그녀가 다시 걸어 들어간 인생의 풍경은 다름 아닌, 원래 자신의 삶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로라가 바로 다른 그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 온 내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생에서 했던 모든 선택과 후회까지 온전히 껴안기로 한 것이지요. <로라는 죽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에 고군분투일지라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조차 아름다웠다. > p. 381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바로 이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원수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 390 ●반복적이고 부정적인 후회, 우울증의 패턴 후회에는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와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을 가정할 때, 우리는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을 상정했을 경우, 행동한 것보다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 글의 맨 처음에서 든 사례를 떠올려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혜영 씨가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했던 말실수는 잠들기 전 몇 번의 이불 킥 소재는 되겠지만, 곧 혜영 씨의 기억에서 잊힐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전 선호 씨가 옛사랑을 붙잡지 못했던 쓸쓸한 기억은 불쑥뿔쑥 그의 머릿속에 떠올라 두고두고 선호 씨를 후회의 감정에 젖게 합니다. 붙잡고 싶었던 첫사랑을 붙잡지 못한 그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억에 저장되어 되감기 필름을 재생하는 것이지요. 사실 후회는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지나간 일이나 행동에 대한 후회를 통해 우리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반성도 합니다. 즉, **후회는 자연스러운 성찰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요.** 다만, 안타깝게도 멜라니 그린버그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수록, 후회는 정신과 신체에 손상을 주는 반목과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변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반복적이고도 깊은 후회는 우리를 실제적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반복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의 패턴은 바로 우울증의 특징이자 정신 건강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기에 이릅니다. ●남의 기준에 맞추려고 전전긍긍하지 마세요사람들이 하는 가장 일반적인 후회는 무엇일까요? 죽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서 몇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살았더라면(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의 저자 브로니 웨어는 그의 저서에서 시한부 환자들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 다른 사람들이 기대했던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 2.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일에 쏟은 것 3.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4. 소중한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내지 못한 것 5. 내 행복(목표, 물질적 소유 등이 아닌)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노력하지 못한 것 결국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지나온 삶에서 가장 후회한 것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또 남의 눈치를 보느라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하지 못하거나 목표나 성과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남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지나간 일들은 그냥 좀 흘러가도록 놓아 주세요.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또다시 후회를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근데 뭐 후회 좀 하면 또 어떻습니까. 잠깐 후회의 감정을 느끼고, 다시 삶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을 지키는 엘름 부인과 체스를 두게 되는데, 이때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체스의 미덕 아니니?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거.” 체스에서 폰은 앞으로 한 칸씩만 전진할 수 있지만, 끝까지 가면 킹을 제외한 그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체스 판 위의 말처럼 계속해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후회로만 점철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단 한 번의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필자인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광화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현직 의사들이 직접 글을 쓰는 정신의학신문을 창간했다. 이 신문은 마음 아픈 사람들이 쉽게 정신건강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재능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된다. 정 전문의의 저서로는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가 있다. 정정엽 광화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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