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 제주올레/박재형
“나현아, 아빠 이상하지 않니?”
“뭐가?”
“아빠가 요샌 잘 웃지도 않고. 아무래도 이상해.”
나래가 아빠 눈치를 보며 말했습니다.
나현이도 아빠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전보다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그러나 아빠는 여전히 잘 웃고 부드럽습니다.
“이상하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나현이는 큰 소리로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퇴근해서 돌아오자마자 거리에서 거저 주는 신문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빠가 신문을 보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창밖을 내다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래나 나현이랑 눈이 마주치면 예전처럼 활짝 웃습니다.
“우리 음악을 들을까?”
아빠가 오디오를 틀면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면 아빠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나래와 나현이도 따라합니다.
“난 개밥에 도토리냐? 딸들하고만 놀고, 난 부엌데기 취급이야.”
저녁밥을 차리던 엄마가 투정을 부리면 아빠는 활짝 웃으며 말합니다.
“당신은 왕비님이지.”
아빠는 싱크대로 달려가 엄마의 두 팔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춥니다.
“나 저녁밥 해야 해요.”
엄마가 손을 빼려고 힘을 주지만 아빠는 손을 놓지 않습니다.
춤을 추는 아빠 엄마를 보며 나래와 나현이는 정말 행복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빠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름방학하면 우리 제주도로 여행가자. 아빠도 오랜만에 고향에 가고 싶어.”
“중국에라도 가지. 지영이는 일본에 간다는데.”
“민주는 미국엘 간다고 자랑했어. 아빠, 우리도 미국에 가요.”
나래와 나현이는 여행을 간다는 말에 외국으로 가자고 졸랐습니다.
“대기업 과장님이 외국으로는 못 갈망정 제주도가 뭐예요. 제주도는 늘 가는 곳인데.”
엄마도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다음에, 이번에는 제주도에 가고.”
아빠가 낮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기 때문에 엄마도, 나래와 나현이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아빠가 제주도에 안 간다고 하면 그건 큰일이니까요. 아니 그보다 아빠의 목소리가 낮을 때에는 기분이 나쁘다는 뜻입니다.
방학식을 하자마자 나래네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제주공항에 내리자 아빠는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아빠, 렌터카 안 빌렸어요?”
“응, 이번 여행은 걸어서 할 거야.”
“걸어서?”
엄마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응, 자동차를 타고 하는 여행도 재미있지만 걸어서 하는 여행도 좋아요.”
아빠는 걷는 게 무슨 마법의 양탄자라도 타는 것같이 신나는 일이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나래와 나현이는 걸어서 여행을 한다는 게 탐탁지는 않았습니다.
엄마도 그리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래네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거리에는 관광버스와 택시가 손님을 싣고 씽씽 달립니다. 그러나 시외버스는 마을마다 멈추기 때문에 굼벵이처럼 느립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타기도 하고, 다리가 아픈지 아주 조심스럽게 걷는 아저씨도 탔습니다. 에어컨을 틀어 버스 안은 시원했지만 느린 것이 아주 짜증이 납니다.
“아빠, 언제 도착해? 어디로 가는데요?”
나현이가 묻자 아빠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고향.”
“아빠 고향에는 아무도 없잖아요. 모두 돌아가셨으니까.”
“내 친구도 있고, 추억도 있고.”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나래네는 아빠의 고향인 시골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먼 친척집에 들러 인사를 한 후 바닷가에 있는 펜션에 짐을 풀었습니다. 시원한 푸른 바다에는 하얀 발자국을 내며 파도가 달려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신이 났습니다.
“언니, 점심 먹고 수영하자.”
나현이가 좋아서 입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에 가자고 떼쓰던 것도 잊고 파란 바다를 흠뻑 사랑하게 된 모양입니다.
“안 돼. 수영은 내일. 오늘은 제주올레를 걸을 거야.”
그런데 아빠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 수영도 안 하고 걸어요? 제주올레가 무슨 관광지예요?”
나래가 실망했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관광지라면 양보할 수도 있습니다.
“시골길을 걷는 거야. 돌담도 보고, 밭도 보고, 풀이랑 나무를 보면서.”
“아빠, 그럼 차를 타고 가요. 걷는 건 너무 힘이 들어요.”
“아냐, 그냥 걸어서 갈 거야. 모자랑 수건이랑 물병이랑 잘 챙기고 나가자.”
“아빤 너무해요.”
뜨거운 대낮에 걷는다니요. 아빠가 고집을 부리는 게 밉습니다. 엄마도 어이가 없는지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싫으면 서울로 돌아가고. 다신 여행을 안 갈 테니까.”
아빠는 심술꾸러기처럼 말했습니다.
아빠가 앞장을 서는 바람에 모두들 화가 나서 입을 꾹 다물고 따라나섰습니다.
시골길은 아름다웠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로 만든 돌담이랑, 집들, 나무들, 들꽃, 새들과 나비. 그렇지만 너무 더웠습니다. 그리고 다리도 이내 아팠습니다.
“아빠, 너무 힘들어요. 안 가면 안 돼요?”
“힘들면 쉬었다 가자. 급할 건 없어. 싫으면 돌아가고.”
아빠는 조금 전보다 더 낮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불평을 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아빠 말 들어. 아빠 말 들어 손해날 거 없잖아.”
엄마가 아빠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빠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화를 내면 무섭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길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골목길, 큰길, 숲길, 언덕길, 바닷길. 길가 나무에는 파란 헝겊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걸으면서 보니까 제주도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버스를 타고 휙휙 달려가서 관광지를 볼 때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더 많이 보았습니다.
나래네는 걷다가 쉬다가 앉았다가 물을 마시고 다시 걸으며 갔습니다. 나래네는 낮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제주말로 오름이라고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오름 봉우리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제주도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힘들었지? 날씨도 덥고.”
“그래요. 다신 이런 걷기 하지 말아요. 다리가 아파 죽겠어요.”
나현이가 엄살을 부렸습니다. 나래랑 엄마도 그렇다는 듯이 얼굴을 끄덕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걸었던 길을 나는 4학년 때부터 걸었어. 그것도 등짐을 지고. 누나랑 엄마가 땔감으로 쓰기 위해 이런 풀을 베어 말리면 같이 와서 지고 집까지 갔었다. 할아버지가 실직을 하는 바람에 집안이 어려웠거든. 등짐을 지고 걸어가면 새끼줄에 닿은 어깨가 너무 아팠어. 그래서 손바닥으로 어깨에 닿는 줄을 잡고 걷기도 했지. 어깨가 너무 아파 다리 아픈 건 생각도 못했다.”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목소리가 젖어 있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맨손으로 걷기도 힘든데.”
아빠의 말을 들으며 나래도, 나현이도, 엄마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빠가 할 말이 더 있다.”
아빠가 다시 심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무슨 말요? 불평하지 말라는 말요?”
나래가 냉큼 받았습니다.
“아빠가 두 달 전에 실직을 했어. 회사가 어려워 직원들을 줄이는 바람에 쫓겨난 거지.”
“어머, 정말이에요? 왜 말 안 했어요?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엄마가 큰일이 났다는 듯이 총알처럼 빠르게 물었습니다. 엄마의 표정은 한마디로 하얗게 질렸습니다. 아빠가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큰일이니까요.
두 달 동안 아빠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꿍꿍 앓아오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나래와 나현이도 아빠의 말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 우린 가난해지는 건가요?”
“걱정하지 마. 작은 회사에 들어가기로 했으니까. 전보다 월급이 적으니까 많이 힘들 거야. 다신 여행도 못할지도 모르고. 아빠는 어렸을 때 내가 걸으며 결심했던 길을 다시 걷고 싶었어. 희망만 버리지 않으면 행복은 언젠가는 찾아올 거야. 우리 두 딸 아빠 도와줄 거지?”
아빠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와 나래, 나현이도 아빠를 보며 웃었습니다.
힘든 일을 묵묵히 헤쳐 나가는 아빠는 정말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말
올레란 대문에서 큰 길까지 이어지는 길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제주올레는 골목길, 바닷길, 들길, 산길을 걷는 새로운 관광코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놀면서, 쉬면서, 구경하면서, 게으름 피우며 한가롭게 걷는 길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입니다. ‘제주도에 올래?’ 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회사에서 잘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가족이 힘을 모으면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가약력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남. 아동문예 신인상, 계몽아동문학상, 제주문학상 받음. 주요 저서로는 ‘검둥이를 찾아서’, ‘내 친구 삼례’, ‘이여로 간 해녀’,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 ‘까마귀오서방’ 등의 창작집이 있음. 현재 서귀포학생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