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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대궁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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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부추꽃이 피어서

    [길섶에서] 부추꽃이 피어서

    지인이 시금치를 한아름 주고 갔다. 여름비에 장차게 뻗대는 속도를 감당 못하니 뽑아다 먹으라 했다. 풀 한 포기 뽑아 주지 않고 남의 밭을 휘젓기는 염치 없는 일. 그랬더니 아침 이슬 깨기도 전에 휘뚜루마뚜루 뜯어서는 놓고 갔다. 시금치를 다듬는데 목을 뽑아올린 꽃대궁이 보인다. 그래, 너도 꽃이었지. 줄기인지 분간이 안 되는 푸른 꽃. 고단하게 피는 꽃을 나는 잊고 살았네. 시금치꽃을 빤히 보는데 마음이 일렁거린다. 데치면 한 움큼이고 마는 것이 무엇하러 꽃을 피우자고 안간힘을 썼을까. 붉지도 희지도 못해 푸른 꽃, 꽃같지도 않은 꽃을. 모퉁이 텃밭에도 땡볕 아래 나물 꽃들이 피었다. 부추 흰 꽃, 돌나물 노란 꽃, 취나물 흰 꽃, 쑥갓 노란 꽃. 푸른 우주 속에 작은 별들이 총총 떴다. 겨우 풋나물 주제에 왜 하나같이 잔별 모양으로 꽃들은 피는지.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데 어째서 활짝 웃다가 가는지. 오래 보고 있으면 나는 너를 닮으려나. 부추 흰 꽃하고 나하고 백년해로 늙은 부부처럼 서로 보고 앉았다. 저하고 나하고 저녁 바람에 흔들리면서 오래 보고 앉았다. 황수정 논설실장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0]텃밭에 핀 붉은 양귀비꽃, ‘약손’의 비밀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0]텃밭에 핀 붉은 양귀비꽃, ‘약손’의 비밀

    중국과 영국이 벌였던 아편전쟁은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의 하나로 꼽힙니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확보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일군 영국이 떼돈 좀 벌어보겠다고 중국 전역에 막대한 양의 아편을 풀어 폐해가 속출하자 청나라 황제였던 선종이 아편 교역금지령을 내리고, 특사를 파견해 영국의 아편상들을 척결하도록 했지요. 아편 때문에 나라가 무너질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자 아편을 식민지 교역의 ‘전략상품’으로 내세워 큰 재미를 보고 있던 영국이 엉뚱하게도 자국 무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에 군대를 출병시켜 벌어진 전쟁, 바로 아편전쟁입니다. 그 아편 바람에 중국이 초토화했고, 중국과 교역을 하던 우리 나라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속절없이 아편의 덫에 걸려 신음해야 했었지요.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구축한 영국의 해군력에 청나라가 굴복해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는 유명한 난징조약이 맺어졌습니다만, 역사를 바꾼 이 전쟁의 빌미가 된 것이 바로 아편(阿片)입니다.  ‘할양’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일병탄을 앞두고 우리 나라도 일본에 많은 땅을 할양했고, 이곳을 무대로 일인들은 야금야금 조선을 먹어치웠으니까요. 그 때부터 일본은 우리 나라 곳곳에 ‘작은 일본’을 만들어 식민지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한일병탄 후에야 온 나라가 다 그들 땅이었으니 할양이라는 말을 쓸 이유도 없었지요. 그 때 일인들은 스스로를 ‘내지인’이라고 불러 ‘조센징’이나 ‘반도인’이라며 비하했던 우리들과 차별화했고, 거주지 등 생활권도 따로 꾸렸는데, 이 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말이 바로 ‘혼마찌’나 ‘사꾸라마찌’ 같은 용어들이었습니다. 국권 침탈보다 먼저 이뤄진 할양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통 효과 뛰어난 아편  아편이라는 말은 아편의 영어 표기인 ‘Opium(오피엄)’에서 따온 차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의 원료이기도 한 아편은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강력한 진통작용은 물론 경련을 진정시키거나 설사를 멈추게 하는 등 활용 범위도 무척 넓었습니다.  그러나 중독성이 강해 한번 습관성에 빠지면 ‘목은 잘라도 아편은 못 끊는다’고 할 정도였답니다. 값도 비싸서 한번 의존성에 빠져들면 살림은 물론 삶 자체가 거덜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중국이 영국을 상대로 아편전쟁을 벌인 게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도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의 벵갈지방에서 대량으로 재배, 생산해 중국에 퍼뜨린 이 아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출병한 청나라 병사들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바로 그 영국산 아편이 퍼졌다니 말입니다.  이런 아편은 우리의 민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더러는 의아해 하기도 하겠지만, 약도 의사도 없던 시절에는 아편만큼 요긴한 상비약도 없었습니다.  ●아편 혹은 앵속(罌粟)  마당 한켠의 토담을 끼고 돌면 탱자나무에 둘러싸인 텃밭이 있었습니다. 넓이가 어지간한 집 마당보다 훨씬 넓었으니 아마 너댓 마지기는 됐을 것입니다. 평수로 따지면 1000평쯤 되었겠지요.  집 안쪽으로 이어진 토담을 따라 텃밭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른 키를 훌쩍 넘을만큼 높다랗게 아주까리며 옥수수가 자라 있었고, 그 옆에는 당귀와 모시풀 등속이 심어져 있었는데, 그 안쪽에서 양귀비가 몰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높다란 흙담에 가려지고, 골목길 쪽으로는 무성한 탱자울에 당귀와 아주까리 등이 숲을 이뤄 밖에서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할머니의 영역’이었습니다.  텃밭에 심은 고추며 채마밭 고랑을 따라 아침, 저녁으로 이곳을 찾은 할머니는 양귀비 꽃이 피면 혼잣말로 “앵속, 참 곱다”면서도 누가 볼세라 꽃잎을 다 따내 버리곤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더러 앵속 단속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지 단속반이 떠도 주로 외진 산비탈의 뙈기밭이나 뒤지지 마을 가운데 있는 텃밭까지 뒤지지는 않았거든요.  어린 제가 봐도 그 꽃은 참 붉고 예뻤습니다. 텃밭에 살랑∼ 바람이라도 스치면 가는 꽃대궁 위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나온 꽃잎이 하늘거리는 모습이 너무 뇌세적이어서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목줄기가 타드는 듯한 충동이 일곤 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보면 오래 기억에 남는 색조의 충동이 그것 뿐만은 아닙니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무리지어 나는 방죽 너머로 해가 막 넘어갈 때면 노을이 마치 잉걸불처럼 이글거리기도 했고, 이슬이 찬 9월이면 매운 맛이 들어 붉어지는 고추가 또 보기만 해도 화닥거릴 정도로 붉었습니다. 홍시로 익어가는 땡감이야 그렇다 해도 그 감나무 잎에 단풍이 들면 붉은 색조가 한 순간 마당 한켠을 뜨겁게 물들였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옻이 오를까봐 곁에 가지도 않았던 옻나무 잎도 가을이면 정말 다가가 만져보고 싶을만큼 붉어져 길 가다가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기도 했습니다.  양귀비 꽃잎은 이런 붉음을 무색하게 할만큼 선연하게 붉었습니다. 붉다 못해 검어 보이거나, 붉은 꽃잎의 가장자리에 흰 테두리를 둘러 붉음이 더 선명하기도 했던 그 꽃잎을 똑똑 따서 버리는 할머니에게 “왜 꽃을 따버리느냐”고 물으면 “글씨, 앵속은 나라에서 못 키우게 하니 그렇지”라고 말하곤 했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어렴풋 그 꽃의 정체를 알아갔지만, 그 꽃에서 ‘기막힌 약’이 생산된다는 건 몰랐습니다.  꽃이 피었다 지면 할머니는 대나무를 삐져서 만든 손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씨방에 죽죽 칼집을 내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내 하얀 수액이 칼집을 따라 배어나곤 했는데, 그 이후엔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잘 모릅니다. 예닐곱 시절의 기억이지만, 딱지치기도 해야 했고, 자치기도 했야 했으니, 그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듯 저도 나름 바쁜 축이어서 맨날 할머니 치맛자락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거든요.  나중에 할머니가 보리알만 한 아편을 비닐에 싸서 앞닫이 속에 깊숙이 넣어둔 걸로 봐서는 씨방의 상처 자국에서 솟아 적당하게 굳어진 양귀비 수액을 따모아 잘 개어서 보관했던 것 같습니다. 손끝에 따모은 수액을 손으로 개면 이내 검은 고약처럼 변했지요. 마치 옻나무 수액처럼.  ●의사도 없고 약도 없으니  참 아픈 곳이 많았던 시절이었고,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병원도 없고, 약도 없어 어지간한 고통은 다 참고 견뎠지만, 그러다가 고질이 된 통증이 적지 않았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마디마디 관절염과 치통, 결핵에 해소와 천식을 갖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고, 아이들은 시나브로 횟배앓이를 하거나 동통이 지독한 몸살에 크고 작은 외상도 많앗습니다.  형제가 많았던 우리도 번갈아가며 배앓이를 하곤 했는데, 배가 한번씩 뒤틀리기 시작하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자빠져 뒹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얼른 할매한테 가봐라”시며 등을 떠밀었고, 그러면 득달같이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 그 ‘명약’을 청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윗목 앞닫이를 열고 잘 감춰둔 그 약을 꺼내 손칼 끝으로 깨알만큼 떼어낸 뒤 입안에 넣어주시고는 배를 살살 쓸어주셨습니다.  배앓이에 부대낀 탓인지, 그 약의 효험 때문인지 한동안 뒹굴다가 잠이 들었고, 자고 나면 씻은 듯 고통이 사라져 다시 마당으로 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천방지축 뛰어놀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절제없는 아편은 ‘마약(魔藥)’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아편은 매우 위험한 약물입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성은 습관성에 빠지는 것이지요. 질병 때문에 몰핀을 자주 사용하는 환자들은 내성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몰핀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처방이나 사용에도 엄격한 약전 기준을 적용합니다.  물론, 최근 통증의학 분야에서는 이런 진통제를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처방하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환자가 극심한 통증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보다 마약성 진통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득이 많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용하는 진통제는 비록 아편 성분이 든 마약성일지라도 중독 등 위험 부담이 적습니다. 전문의들이 정해진 기준과 준칙에 따라 적절하게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사도, 약도 귀했던 예전에는 통증이 반복될 때마다 아편을 쓰다가 중독에 빠져 종국에는 패가망신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통증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질병은 통증을 수반합니다. 특히, 처음에는 통증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질환도 마지막은 통증으로 귀결하는데, 암도 그렇고, 고혈압이나 당뇨병도 예외가 아닙니다. 통증의 정도도 다양합니다. 현재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통증 척도인 VAS 기준에 따르면, 총 10단계 중 1단계는 통증이 없는 상태, 10단계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통증이 8~9단계 정도에 이르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기게 되니까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고통을 못 견뎌 아편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 탓이라기보다 그런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한 몽매함과 미개함, 거기에서 비롯된 낙후한 의료시스템과 보건안전망의 부재 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이 다 그랬으니 그걸 탓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이었습니다만, 요즘 들어 갈수록 마약 밀수량이 많아지고, 유통량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마약은 퇴폐적인 향락의 주술(呪術) 같은 것이어서 마약 밀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 사회의 건전성이 훼손되는 징후라고도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의료용 마약의 소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이고, 마약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충족시키는 많은 방법 중 하나라는 강변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가진 본연의 성정을 왜곡하는 물질인 데다 습관성의 폐해가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부담없이 되돌아보는 약손의 추억이지만, 거기에는 이런 위험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할머니는 절대로 한 사람에게 이 약을 두 번, 세 번 잇따라 쓰지 않았습니다. 어제 아팠던 배가 오늘 다시 아파도 할머니는 “약 다 쓰고 없다”며 배만 쓸어 주셨는데, 아마 아편의 중독 위험성을 알고 계셨던 게 틀림없는 듯 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아들과 딸들이 또한 이 세상을 만들어 냈으니, 알아도 모른 척 했던 약손의 효험을 새삼 의심하고 지워버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체온으로 전해진 그 약손의 사랑이야말로 지금은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참으로 외경스러운 ‘내리사랑’의 기억이니까요.  jeshim@seoul.co.kr
  • [야생초 이야기] 앉은부채

    [야생초 이야기] 앉은부채

    미국발 금융위기가 급기야는 이 머나먼 한국 땅의 경제도 꽁꽁 얼려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상 유례 없는 청년 실업자 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더러는 그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아이엠에프보다 더 춥고 긴 겨울이라고 한다. 이곳 지리산에는 지난 11월 말부터 높은 능선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온 산이 이불처럼 눈에 덮여 있다. 등산로엔 간간히 겨울 산행객이 지나긴 하지만 골짜기엔 고라니나 산토끼 같은 짐승 자국밖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적막만이 눈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간간히 들려오는 박새나 오목눈이 같은 새소리도 오히려 그 적막을 거들 뿐이다. 나무나 풀들도 고요히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나뭇가지에 꽃눈이나 잎눈이 새봄을 기약하며 맺혀 있긴 하나 아직 눈을 틔우기엔 너무도 이르다. 마른 풀잎들은 지난여름 혹은 가을에 뽑아 올렸던 꽃대궁들로 지난날의 영화를 아스라이 떠올리고 있다. 해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살아 있는 꽃을 이 겨울산에서 찾아본다는 것은 난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눈 속에 피어 있는 꽃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바람이 그리 매섭지 않은 골짜기, 물기가 촉촉한 비탈엔 제 스스로 눈을 녹이며 고개를 내미는 꽃이 있다. ‘앉은부채’가 그것이다. 이 식물은 뿌리에 저장해놓은 녹말을 분해하며 열을 내뿜어 저를 덮고 있는 언 땅과 눈을 녹이며 자라나 꽃을 피운다. 보통은 이르면 2월 중순 넘어서 3월, 4월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지만, 성질 급한 놈은 이렇게 늦은 1월이나 이른 2월에도 더러 만날 수 있다. 앉은부채의 꽃은 불염포라 불리우는 휘장을 두르고 그 안에 숨어 있다. ‘불염’이라 함은 부처의 후광을 둘러싸고 있는 불꽃 모양을 이른다. 꽃을 싸고 있는 계란 모양의 잎새를 ‘포’라고 하는데 이 앉은부채의 꽃을 둘러싸고 있는 그것이 부처를 두르고 있는 불염과 같으니 불염포(佛焰苞)라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꽃의 이름은 ‘앉은부채’가 아니라 ‘앉은부처’이어야 옳다. 발음이 와전되어 고착한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그 불염포 안을 들여다보면 부처의 머리와 같은 꽃차례가 나타난다. 꽃이라 해서 모두 아름답거나 화려하거나 앙증맞진 않다. 이 꽃은 그렇듯 일반적인 꽃과 다르다. 화려한 꽃잎도 꽃받침도 없다. 그러나 분명 꽃이다. 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잠시 바꿔야 한다. 둥근 구슬 모양의 꽃대에 암술과 수술이 노랗게 박혀 있을 뿐이다. 꽃이 식물의 생식기관이라면 이 암술 수술이면 꽃에겐 충분하지 않은가? 꽃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향기로워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이기적인 판단이 작용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기 꽃가루를 자기가 받게 될 것을 염려하여 암술부터 발육하고 암술이 제 기능을 다하면 그 다음에 수술이 발육한다는 것이다. 오랜 진화의 결과 체득한 지혜라고 하겠다. 어찌 꽃을 미추라는 기준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이 앉은부채는 무엇보다 냄새가 썩 좋지 않다. 그래서 서양에선 스컹크 양배추(skunk cabbage)라 부른단다. 그러나 그 냄새로 하여 딱정벌레와 같은 벌레들이 모여들게 되고 벌도 나비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추운 겨울에 꽃가루받이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앉은부채가 스스로 열을 내다보니 그 온기를 좇아 곤충들이 꾀기도 할 것이다. 만화방창 꽃들이 세상을 가득 채운 봄날에 꽃 같지도 않은 이 꽃을 벌, 나비가 찾아나 줄 것인가? 그러니 일찌감치 눈 속에 피어, 향기 아닌 썩은 냄새라도 피워 곤충을 모아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지혜가 예사롭지 않다. 하등식물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냄새나는 방귀쟁이 동물 스컹크 이름을 붙여주었으나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갸륵한 식물에게 부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상만 바라보는 얕은 서구적 사고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다. 부처라는 이름으로 거룩하게 앉아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열악한 외적 조건만을 탓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예쁘고 화려해야 다 꽃이 아니듯 사람도 그렇지 않겠는가?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제 스스로 열을 내어 땅을 뚫고 눈을 녹이며 피어나는 앉은부채를 본다. 벌, 나비가 없는 추위 속에서도 강인한 제 유전자를 천손만대에 이어가려는 눈물겨운 의지를 읽는다. 사람이 이 꽃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사람일진대. 어찌 보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그것도 이 앉은부채가 피어 봄을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봄을 알려주는 꽃이 아니라 봄을 불러오는 꽃이다. 우리 인간 세상의 봄도 그러하리라 생각해 본다. 모질고 혹독한 시기를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훈훈해지고 더 살 만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작으면 작은 대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생명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며 스스로를 꽃 피우는 일이 저 꽃에게나 사람에게나 다를 바가 없다. 워낙 추운 날씨에도 피어 그렇지 그렇게 보기 드문 꽃은 아니다. 자료를 보면 전남, 강원, 경기, 함남 지방에 분포한다고 하나 여러 가지 종류가 다양하게 전국에 걸쳐 분포하는 것으로도 소개되고 있다. 색깔도 다양하여 순노랑색을 띄는 것도 있고 자주빛깔을 띄는 것도 있다. 이 앉은부채는 이렇게 일찍 피었다가 져가면서 잎이 피어나게 되는데 그 잎은 30~40cm 정도로 넓게 퍼져 자란다(반대로 ‘애기앉은부채’는 잎이 먼저 피어 다 자란 후 6~7월에 핀다). 앉은부채 잎은 나물로도 식용하며 진정제, 이뇨제 등의 약재로도 쓰인다 하니 인간에게도 이로운 식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뿌리에는 독성이 있다. 천남성과 식물이 대개 그렇다. 저도 스스로를 지킬 무기는 있어야 하겠지. 하지만 이 독성을 약재로 사용하는 처방도 있어서 앉은부채를 채취하는 손길이 많아져 지켜보는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다. 글 복효근 시인
  • 현실 부적응 고통받는 삶들/소설가 김현주의 ‘물속의 정원사’ 관념적 투쟁 모습·삶의 흔적 담겨

    소설가 김현주(42)가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집 ‘물속의 정원사’(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실존과 싸우는 주인공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 모음집이다.그러나 작가가 보여주는 싸움의 포즈는 주먹다툼이나 일상과의 맞장뜨기가 아니라 다분히 관념적이다. 표제작 등 13편의 작품을 모은 이 작품집의 주인공은 대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떠돈다.그들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도록 작가가 도와주는 방식은 고통스러운 기억과의 정면대결이다.구체적으로 작가는 주인공들에게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의 나날,기억의 좁은 길”(표제작,109쪽)을 직접 통과하게 만든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작품마다 주인공이 부딪치는 기억 속에는 통증이 똬리를 틀고 있다.옛 사랑을 빼앗긴 문인화가 수연(표제작),유년과 청년기 악몽을 기억의 저편으로 내몰려고 시도하는 소설가 최지환(‘32일’),떠난 아내가 남긴 기록 때문에 강렬한 질투에 사로잡히는 화자(‘에어컨’) 등의 기억은 상처투성이다. 뿐만 아니다.사업에 실패한 남편 치다꺼리에 지쳐 다시 만난 옛 남자의 기억에서 헤매는 헤어디자이너 문효(‘불의 꽃대궁’)나,성폭행 당한 뒤 어쩔 수 없이 결혼해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는 신희(‘잃어버린 정원’) 등도 예외는 아니다.작가는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대신 소설,나아가 예술이라는 치유방법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평론가 김형중은 작품집에 대해 “예술은 고통스러운 기억의 승화인데,김현주는 자신의 작중 인물이 그곳에서의 탈출을 봉쇄하고 망각속으로 도피하지도 못하도록 하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소설을 써낸다.”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 경찰서장이 시나리오집 출간

    현직 경찰서장이 시나리오 작품집을 펴내 화제다.경북 청도경찰서 성동민(48·成東珉·총경) 서장은 5편의 창작 시나리오를 묶은 ‘떠도는 혼(魂)’ 을최근 출간했다. 이중 타이틀 작품인 ‘떠도는 혼’은 북한에서 표류해 온 11세 소년을 통해남북 분단의 비극과 이데올로기의 허상, 그 과정에서 허물어져 가는 한 인간의 실존적인 삶을 그린 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당시 영화화가 추진됐으나 소년의 표류를 남한측이 자진 월남한 것으로 조작,대외선전용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 문제돼 영화 제작 승인을 받지 못한 채 한동안 빛을 보지못하다 93년 6월 뒤늦게 KBS 특집드라마로 제작,방송됐다.토우제,림보우,회귀선,꽃대궁 등 나머지 작품들도 프로급이라는 평이다. 성 서장은 문학이 경찰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편견에 대해 “경찰도 21세기에는 문화경찰로 탈바꿈해야 하며 문학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문학으로 마음의 창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창을 달아주고 한 모금의 샘물을 선물하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성 서장은 연세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를 거쳐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문 작가 출신.80년 시대문학의 희곡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컬럼집 ‘유라의 운명’,‘평양 엘레지’와 수필집 ‘정자나무처럼 산다면’을 출간했고 ‘개선문’과 ‘2020년’ 상·하권 등 3권을 번역했다. 청도 한찬규기자 c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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