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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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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암절벽에 걸린 초록을 배웅하다 [박상준의 문장 여행]

    기암절벽에 걸린 초록을 배웅하다 [박상준의 문장 여행]

    화암팔경 다 보려는 욕심 버리고막바지 여름 정취에 취해보자기암절벽·녹음의 조화 빠져보네그림바위마을 골목 예술 산책용마소둔치공원서 쉬엄쉬엄거북바위 절경 잊지 못하네싫었던 건 여름 아닌 더위였음을정겨운 초록이 그리워질바야흐로 여름이 떠나가네“글을 쓰며 알았다. 나 역시 좋아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저 유난히 내성적인 여름 덕후였다는 것을. 하긴, 이렇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 계절을 사랑하지 않는 게 더 어렵지.”-김신회의 ‘아무튼, 여름’ 중에서 8월의 끝은 마치 여름의 끝 같다. 물론 달력에 적힌 숫자에 불과하다. 9월이어도 뒤끝 있는 더위는 얼마간 계속될 것이다. 또 계절이 경계를 넘는다고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가을이 되는 게 고작이다. 그럼에도 그냥 떠나보낼 수는 없지 않나. 그림바위마을 용마소둔치공원 그늘에서 2026년의 마지막일지 모를 화암팔경의 여름과 눈을 맞춘다. ●여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김신회 작가는 일년 내내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자신이 만든 출판사의 이름에도 ‘여름’을 넣고 좋아하는 드라마 제목조차 ‘수박’이다. 그리고 ‘아무튼, 여름(제철소)’을 “여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소개한다. 허나 모두가 여름에 호의적이지는 않다. 땀을 씻으려 샤워를 하고 욕실을 나서자마자 곧장 땀이 나는, 그래서 다시 욕실로 들어가는 자의 비애를 작가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어떤 이들에게 여름은 땀과 땀의 무한 루프다. ‘러브레터’에서 겨울을 먼저 떠올리고 여름은 ‘데스노트’에나 쓰는 단어다. 그래도 여름이 좋은 순간이 있다는 걸 끝내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여름이라서 ‘캬~’하는 탄성마저 맛깔나게 하는 편의점 ‘맥주 네 캔’, 수영 실력과 무관하게 푸른 바다 위에서 첨벙대는 물놀이, 여름 단물의 정수를 쪽쪽 끌어모은 듯한 초당 옥수수 그리고 평양냉면 같은 것들. 특히 더위의 반대편 그늘에서 여름만이 주는 찬란한 녹음을 마주할 때 ‘대나무 자리’ 같은 이 계절의 묘미를 수긍하고 못 이긴 척 인정할 수밖에. 예를 들면 정선 화암리의 소금강 풍경은 꼭 여름에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소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명소가 많다.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이다. 북녘의 금강산은 기암절벽과 겹겹의 봉우리가 화려한 경관을 뽐낸다. 그래서 기암절벽이 화려한 남쪽의 여행지에는 어김없이 소금강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강원 정선군 화암면에 있는 소금강은 화암리에서 몰운리에 이르는 약 4㎞ 구간의 계곡을 이른다. 첩첩산중으로 숨어드는 도로를 휘황한 기암의 절벽이 좌우로 호위한다. 수박을 한 입 크게 베어 물 때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와~’하며 지날 만큼 멋지다. 귓가에는 성악가 조수미 씨가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아이맥스’급 소금강 전망대 소금강 전망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소금강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깎아지른 수직 절벽의 위용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건 굉장한 경험이다. 아이맥스 스크린 앞자리에서 영화 ‘오디세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다름 아니고 여름이어서 그렇다. 기암절벽의 표면은 회색과 갈색이 섞였는데 여름 품에 있어 초록의 자연과 명징한 대비를 이루며 조화롭다. 마치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듯하다. 그러므로 온전히 생기롭고 빛난다. 아마도 가을에는 단풍에 묻히고 겨울에는 삭막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정선군 화암면에는 그런 풍경이 무려 여덟이다. 이를 가리켜 ‘화암팔경’이라 부른다. 소금강은 6경에 해당한다. 화암(畵岩)이란 지명부터 심상치 않다. 말그대로 ‘그림바위’다. 화천리 강변에는 용마소(3경), 북쪽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는 화암동굴(4경)이 있다. 남쪽은 거북바위(2경)를 지나 화암약수(1경), 소금강을 따라 화표주(5경), 몰운대(7경), 광대곡(8경)이 펼쳐진다. 그러니 그림바위들은 화암리의 본체나 다름없다. 화암팔경을 모두 돌아보자 제안하는 건 아니니 미리 저어할 건 없다.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라면 모를까, 눈길 닿고 발길 닿는 정도여도 여름 화암의 매력을 발견하기에는 충분하다. 다행히 사방 초록은 여전히 싱그러운데 그새 더위는 조금 수그러들었다. 정선은 8월 초에 비해 기온이 5~6도쯤 떨어졌다. 폭염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여름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여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시기다. ●느슨한 여름을 닮은 그림바위마을 화암리의 또 다른 이름은 ‘그림바위마을’이다. 화암동굴과 화암약수의 중간쯤 자리한 마을은 지난 2013년 마을미술프로젝트로 단장했다. 심원, 고원, 평원의 시선이라는 3가지 주제로 곳곳에 미술 작품을 더했다. 벽화도 있고 조형물도 있고 시설물도 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 바랜다. 그림도 바래고 취지도 바랜다. 하물며 13년 전 일이다. 그림바위마을은 변함없이 정겹다. 마을에는 빈집을 리모델링한 문화예술 레지던시 화암산방이 있어, 예술가들이 꾸준히 활력을 불어넣는다. 얼마 전까지는 2018년 옛 변전소를 개조한 그림바위예술발전소가 산책의 시발점 역할을 했는데, 현재는 아트플랫폼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 가을을 앞둔 여름처럼 어쩌면 지금이 조금이 더 자연스러우며 날것 그대로, 마을의 뜨거운 시절을 거닐 기회일지 모를 일이다. 우선 그림바위마을 커뮤니티센터나, 주차장 입구의 안내물 배포함에서 미술마을 홍보 리플릿(약도) 하나를 챙겨 든다. 센터 맞은편은 그림바위카페(화암산방 1호점)가 있고 옆으로 난 골목은 ‘맷돌바위 길의 꿈’이라는 제목이 붙은 타일 벽화 계단이다. 계단 끝에는 ‘상생’이라는 제목의 바느질을 표현한 작품이 북동쪽 언덕길을 따라 이어진다. 그림바위마을 산증인인 이재욱 작가의 작품이다. 낮은 담장 너머로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며 거닐기 알맞은 골목길이다. 계단 맞은편 안쪽에는 옛 동면 공소(성당)가 위치한다. 이제는 화암박물전람소 역할을 하는 장소로 ‘역사에서 자라는 담쟁이’라는 제목의 종탑이 짝이다. 언젠가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타워’였을 종탑은 마을의 역사를 적은 나무판이 둘레를 감싼다. 그 위로는 ‘황금 담쟁이’ 넝쿨이 철골을 타고 오른다. 큰길가에는 우주당 같은 비건 카페가 눈길을 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하는데 낮에는 우주당찻집으로 문을 연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은 우주막(음악과술한잔)으로 변신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7시부터는 리틀포레스트요가를 진행한다. 오는 8~10월까지는 매주 일요일 팝업 형태의 함박식당이 반긴다. 퍼머컬처 텻밭농부이자 자연여행자인 에이미, 성악가 최순웅 씨가 파스타와 감바스 등을 요리한다. 그 밖에도 화암노다지탐사대 등 지역과 지역이, 지역과 여행자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많다. ●여름의 녹음 속으로 그림바위마을 골목 산책은 사실 작품의 번호를 매겨가며 꼼꼼하게 챙겨볼 까닭은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숨은 보물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리는 게 맞다. 그리고 더운 여름은 욕심을 내기보다는 욕심을 덜어내며 여행해야 한다. 처음 찾는 동네는 아니어서 나는 용마소둔치공원에 오래 머문다. 용마소둔치공원은 마을 서쪽을 감싸고 흐르는 어천 천변에 있다. 반원을 그리며 흘러 ‘반달에 비친’이라는 수식이 그림바위마을 앞에 붙기도 한다. 마을 여기저기를 산책하는 일은 재밌기는 한데 어딘가 그늘에 앉아 푸른 풍경을 보며 쉬엄쉬엄 여름의 시간을 떠나보내고 싶기도 하므로, 그럴 때는 용마소둔치공원이 제격이다. 서늘한 달의 표면에 안착한 듯하다. 공원은 키 큰 나무와 벤치, 정자 등 쉼터가 많아 좋다. 솟대처럼 솟은 ‘빛나는 이야기’ 같은 조형 작품들이 마을 이야기를 전한다. 작품의 기둥은 금광에서 쓰던 채굴 기계를 다시 사용했다. 마을에서 약 1.5㎞ 떨어진 곳에는 화암동굴이 있다. 금을 캐던 광산으로 갱도 외에 천연 석회암 동굴이 공존한다. 그곳의 시간이 마을에 흐른다. 용마소둔치공원은 지난해까지 캠핑장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근래에는 맥문동밭을 조성했다. 그림바위마을은 ‘보라색’을 상징색으로 마을을 물들이는 중이다. 담장도, 벽화도, 화단도 보라색이 자주 눈에 띈다. 두 해를 맞은 맥문동은 아직 키가 작고 어려 듬성듬성 보라색 꽃을 피웠다. 물가 난간 너머는 아기장수의 슬픈 전설이 전하는 화암 3경 용마소다. 겨울에는 물가 자갈들이 보이는데 여름은 온통 초록의 풀들이 뒤덮는다. 용마소 상류 700~800m 거리에는 화암약수 가는 길 초입에 화암 2경 거북바위가 있다. 절벽 위에 있는 바위가 거북을 닮아 그리 부른다. 거북바위는 두 갈래의 산책로가 나 있다. 거북바위산림욕장 쪽은 계단을 따라 정자각까지 오른다. 계단은 이끼가 잔뜩 끼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득한 여름의 초록을 느끼게 한다. 거북바위 정자각에서 아래쪽 데크로 내려가면 거북바위다. 커다란 바위와 바위의 틈새를 지나면 그림바위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자연만이 화암의 자랑일까. 사람들이 사는 마을 또한 그림 같다. 화암팔경에 하나를 더한 화엄 9경이라 불러도 좋겠다. 다만 절벽 위이고 안전난간이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천천히 여름을 배웅하는 법 거북바위에서 화암 1경 화암약수까지는 1.3㎞다. 마을커뮤니티센터를 출발점 삼아도 1.5㎞ 정도, 걸어서 20분 남짓이다. 고작 약수 한 모금 하러 걸어야 할까 싶지만, 화암약수까지 가는 산책로만으로 이미 보상이 되고 남는다. 짙고 푸른 여름 풍경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화엄팔경에 넣어도 손색없을 그림 같은 바위가 줄을 잇는다. 화암약수는 철분이 함유된 탄산 약수의 톡 쏘는 맛이 특징이다. 코끝이 찡해서 단숨에 여름을 쫓는다. 약수터를 나오는 다리 위에서는 경쾌한 계곡 풍경에 한 번 더 무장해제한다. 건너편 ‘정선껏 바이 이진리’ 카페에도 들러보시길. 지난 7월 화암약수 건너편 2층 팔각정에 문을 열었다. 고풍스러운 정자에 ‘요즘스런’ 카페인 셈이다. 카페 창밖의 초록이 포근한 정취를 연출한다. 밖은 푸른 여름인데 안은 더위를 잊는다. 그 사이 쉬엄쉬엄 용마소와 거북바위 그리고 화암약수까지 이르렀다. 소금강전망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화표주를 지났으니 화엄팔경 가운데 다섯 곳을 본 셈이다. 화암동굴까지 욕심이 난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는데 동굴 안은 연중 평균 14도로 기온이 쑥 내려가 정선을 대표하는 여름 피서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름의 화암팔경은 이쯤에서 그쳐도 무방하다. 구름도 쉬어가는 몰운대나 가는 길이 험한 광대곡의 영천폭포를 굳이 끼워 넣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여름이니까. 남은 팔경일랑은 다른 계절을 위해 남겨둬도 그만이다. 김신회 작가의 말을 빌리면 “여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므로. 그러고 보면 내가 싫어한 게 여름은 아닌 것 같다. 장미의 가시처럼 뾰족한 여름의 더위 때문이었을 뿐, 그저 여름날의 추억 하나 갖고 싶었는지도.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면 지겹게 정겨운 이 여름의 초록이 분명 그리울 테니까. 복날에 베어 문 수박처럼. 비록 여름을 싫어하는 나이긴 하지만. 바야흐로 여름이 떠나간다. 글·사진 박상준 여행작가
  • 산내음에 취해… 발길 머문 그곳, 쉬어 가다

    산내음에 취해… 발길 머문 그곳, 쉬어 가다

    외진 곳에 눈길이 쏠리는 시절이다. 코로나 오미크론 탓이다. 그 압도적인 전염력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강원도의 산간마을에서라면 잠시나마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강원의 두메 하면 퍼뜩 떠오르는 곳이 정선이다. 뾰족 솟은 산 사이에 크고 작은 마을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곳. 이 마을에 숨어드는 여정만으로도 바이러스들이 뚝뚝 떨어져 나갈 듯하다. 정선 들어가는 길. 곳곳에 현수막이 나붙었다. 산골의 대명사 정선에도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내용들이다. 하나같이 사투리로 내용을 썼다. “마커 베르고 베르던 고속도로! 역사를 새로 쓰는 기래요”라는 식이다. 입가에 실웃음이 배어 나온다. 현수막에까지 강원도 사투리가 등장할 줄이야. ‘마커’는 ‘모두’를 뜻하는 사투리다. 보통 ‘마카’라고 발음하는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듯하다. ‘베르고 베르던’은 ‘벼르고 벼르던’이란 뜻이다.정선 사람들이 그토록 반기는 건 영월~삼척고속도로다. 동서6축 고속도로의 잔여구간이다. 경기 평택이 한쪽 기점인 이 도로는 현재 충북 제천에서 뚝 끊겼다. 최근 정부가 잔여구간에 대한 건설 계획을 밝혔는데, 정선도 그 노선에 포함됐다. 정선의 두메 마을들을 효율적으로 돌아보려면 구획을 나누는 게 좋다. 들머리를 어디로 삼느냐에 따라 진입하는 고속도로 나들목도 달라진다. 예컨대 개미들마을, 연포마을, 가수리 등은 남쪽으로 묶고 대촌마을이나 그림바위 마을 등은 북쪽으로 묶는 게 좋다. 이 경우 고속도로 진입로가 각각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과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으로 달라진다. 남면의 개미들마을부터 간다. 진작부터 농촌체험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한 마을이다. 지장천 물길이 굽어지는 곳마다 바위 절벽이 기세 좋게 솟구쳤다. 광덕리 어름에서 ‘미리내마을’ 이정표가 보이면 차를 잠시 세운다. 마을 옆 지장천에 조성된 ‘천년돌다리’를 보기 위해서다. 드라이브스루로는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름은 ‘다리’지만 사실 물고기 조형물에 더 가깝다. 수t에 달하는 화강석 수십 개를 징검다리처럼 늘어놓았다. 인증샷 찍기 딱 좋다. 조형물 끝자락의 여울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많다. 플라이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자주 눈에 띄는 이유다. 거대한 수직 절벽 아래에서 인조 미끼를 캐스팅하는 낚시인을 보자니, 속세와 동떨어진 비속의 땅에 와 있는 듯하다. 뱀처럼 휜 지장천을 따라 ‘안돌이지돌이’(‘안고 돌고 지고 돌고’의 사투리)하다 보면 가수리가 나온다. 동강과 접한 마을 가운데 가장 풍경이 빼어난 마을로 꼽히는 곳이다. 이제껏 곁을 지켰던 지장천은 이 마을 초입의 600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서 조양강과 합쳐진다. 하나 된 강물은 그제야 동강이란 이름을 얻고 영월 땅을 향해 흐른다. 동강 주변의 얼음은 벌써 다 녹았다. 물빛이 짙푸르다. 순결한 옥빛 강물. 눈이 정갈하게 씻기는 느낌이다. 가수리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연포 방향으로 접어든다. 오른쪽은 북쪽, 정선읍 방향이다. 가수리에서 2㎞ 남짓 떨어진 가탄마을엔 섶다리가 볼거리다. 갈수기가 시작되는 늦가을에 놓아 이듬해 봄까지만 쓰는 전통 나무다리다. ‘섶’은 땔감으로 쓸 만한 잔가지를 일컫는다. 굵은 둥치의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소나무 등의 ‘섶’을 깔아 만든다. 섶다리 주변의 버들개지들은 벌써 토실하게 부풀어 올랐다. 여전히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하지만 이곳만큼은 완연한 봄이다. 동강을 따라 난 강변길은 여느 강변도로와 다소 다르다. 제방이 없고 강에 바짝 붙어 간다. 물길을 따라 도로도 유연하게 굽었다. 때로는 절벽과 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날 때도 있다. 얼추 30㎞ 정도의 이 강변길을 달리는 걸 ‘동강 드라이브’라 부른다. 정선을 찾는 이들 사이에서 꽤 ‘핫’하다는 여행 아이템이다. 도로 한켠엔 나리소 전망대 같은 볼거리도 있다. 나리소는 백운산에 부딪친 동강이 뱀처럼 휘어지며 만든 물돌이동 지형을 일컫는다. 크게 원을 그린 푸른 강물이 꼭 거대한 에메랄드 반지를 보는 듯하다. 백운산 쪽에도 전망대가 있다. 완벽한 원형의 나리소를 굽어볼 수 있다. 다만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 목재 데크를 따라 십 분 남짓 걸린다. 이제 정선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연포마을을 구경할 차례다. 하루 세 번 달이 뜬다는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칼병(‘병’은 봉의 사투리)과 둥글병, 큰병 등 큰 봉우리 세 개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데, 달이 봉우리 뒤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한다고 해서 이 같은 별명을 얻었다.연포마을에선 ‘뼝대’(바위절벽의 사투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베리꾀리’(뾰족한 절벽 꼭대기의 사투리) 아래로 우람한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외지인들이라면 이 거대한 벽 앞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영화 ‘선생 김봉두’(2003)에서 강남의 잘나가던 선생 김봉두(차승원)가 이 마을 연포분교에 발령받아 왔을 때, 왜 그리 기막히고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뼝대 위로 길이 나 있다. 연포마을에서 제장마을까지 4㎞쯤 된다. 트레킹 삼아 뼝대 위를 걷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제장마을 못 미쳐 ‘하늘벽 구름다리’가 있다. 갈라진 두 ‘베리꾀리’를 잇는 작은 다리다. 바닥이 강화유리여서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이 다리를 보기 위해 제장마을에서 오르는 이들도 있다. 연포마을보다 거리는 확실히 가깝지만 그만큼 심한 된비알을 올라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시라.연포마을 인근의 신동읍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이 지역 특산의 수제맥주 공장이 있는 예미마을,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에서 그녀(전지현)가 견우(차태현)와 함께 타임캡슐을 묻었던 새비재 소나무 등의 볼거리가 있다. 초봄 무렵, 동강 여정에서 잊지 말고 만나야 할 것이 동강할미꽃이다. 석회암 뼝대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서덕웅 동강할미꽃보존연구회장은 “동해시 찬물내기 공원에서 복수초 개화 소식이 전해질 때쯤 동강할미꽃도 꽃술을 낸다”고 했다. 3월 초중순쯤이면 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서 회장의 손에 이끌려 해마다 가장 먼저 꽃을 틔운다는 녀석을 찾았지만, 이제 겨우 솜털 보송한 꽃대만 내밀고 있다. 이 거무튀튀한 벼랑에서 말간 보랏빛 꽃이 활짝 필 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동강할미꽃이 필 무렵, 바로 곁에 사는 동강고랭이도 꽃을 틔운다. 할아버지 수염처럼 늘어진 꽃대 위로 아주 작고 노란 꽃이 별처럼 반짝인다. 이 모습을 두고 한 호사가는 “5억년 된 석회암 돌침대에 할미꽃과 할아비꽃이 나란히 누웠다”고 했다지.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정선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지 싶다. 동강할미꽃 군락지는 가수리에서 정선읍 방향으로 올라가야 나온다. 피고 지는 시기가 달라 4월까지는 동강할미꽃을 만날 수 있다. 정선읍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대촌마을이 나온다. 원빈, 이나영 부부의 소박한 결혼식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2015년 이 부부가 마을 뒤 야산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결혼식을 치렀던 장소가 밀밭으로 전해졌지만 사실 청보리밭이다. 청보리는 농가에서 소먹이로 요긴하게 쓰이는 작물이다. 보통 5월 무렵에 어린아이 키만큼 웃자란다. 이때쯤 대촌마을 일대의 풍경도 절정에 이른다. ‘삼시세끼’, ‘1박 2일’ 등의 예능 프로그램도 이 마을에서 촬영됐다. ‘삼시세끼’를 촬영한 기와집은 지금도 남아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촌마을에서 더 올라가면 덕산기 계곡이다. 오지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이 국내 최고의 명소 중 하나로 꼽는 곳이다. 연이은 자연휴식년제 지정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다 오는 4월 말쯤 다시 문을 열 예정이지만 곧 닫힐 가능성이 높다. 화암면 쪽엔 그림바위마을이 있다. 마을이 속한 행정구역인 화암(畵岩)에 수미상응하는 이름이다. 정확히는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 마을’이다. 화암약수 쪽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마을 앞을 휘돌아 나가며 반달처럼 생긴 지형을 만들었다. 이 물에 비친 마을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그처럼 예쁜 이름을 얻었다. 그저 그랬던 산골마을이 환골탈태한 건 2013년이다. 마을 전체를 미술품처럼 단장하려는 계획이 수립됐고, 화가와 조각가 등 수십 명의 작가들이 마을 가꾸기에 참여해 지금의 모습을 일궈 냈다. 예전에 비해 다소 쇠락했다는 느낌도 있지만, 외려 그런 모습들이 더 정감 있게 느껴진다. 마을 초입의 ‘그림바위마을 예술발전소’를 들머리 삼아 자박자박 돌아보는 맛이 각별하다.그림바위 마을 초입에 천포금광촌이 있다. 1920~1980년대 화암면 일대는 금광으로 유명했다. ‘강아지도 금이빨을 하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할 정도였다. 천포금광촌은 당시를 재현한 테마 공원이다. 광부들이 일하던 금광과 선술집, 각종 조형물 등을 빼곡하게 전시했다. 정선의 명소인 화암동굴 바로 아래 있다. 관광객들의 시선에서 살짝 비켜 있지만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강원도 정선 화암 그림바위 마을

    [명인·명물을 찾아서] 강원도 정선 화암 그림바위 마을

    첩첩산중, 천혜의 자연 풍광을 간직한 강원 정선 화암마을이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 마을’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화암마을은 이름이 말해 주듯 그림 화(畵)자에 바위 암(岩)자를 써서 그림바위 마을로 불려 왔다. 마을을 둘러싼 자연 풍광이 그림처럼 빼어나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곳곳이 화엄 8경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화표주의 배경이 된 곳이란 이야기까지 전해 오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화암 1, 2리 그림바위 마을은 200여 가구 43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아 산골마을 치고는 규모 있는 마을이다. 주변 화암약수와 거북바위, 용마소, 화암동굴, 화표주,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 등 화암 8경의 살기 좋은 자연환경이 산촌 사람들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대부분 농사를 짓지만 주변의 빼어난 자연 풍광 덕에 관광객들을 맞아 생계를 잇는 사람들도 많다. 해마다 7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이 밀집해 있는 화암마을에는 관광객들이 찾지 않아 최근 이곳에 공동화 현상이 빚어졌다. 주민들이 떠나가고 빈집이 늘면서 마을의 변신이 절실했다. 이런 취지에서 군과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전해져 오는 마을의 최대 장점을 살려 나가기로 하고 마을 전체를 이야기가 있는 그림바위 마을로 변화시키기로 했다. 한국화의 3가지의 시선(고원, 평원, 심원)으로 그린 겸재 정선의 화표주와 같은 아름다운 절경과 반달과 같은 강, 밝은 풍광을 품은 산수화 속에 등장하는 마을로 꾸며졌다. 정선군에서는 화암마을을 살리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와 함께 국비 5억원 등 17억원을 들여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 마을-3가지 시선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마을 재탄생을 계획했고 마침내 지난 14일 준공했다. 이 주제는 군이 주민들로부터 지역의 지리와 역사, 정서 및 정체성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선정했다. 그림바위 마을이 그림과 같은 기암절벽을 이루고 마을이 반달의 형태를 띠고 있는 데에서 착안해 지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선군이 지난 4월 문체부가 주최하는 ‘2013년 마을 미술 행복 프로젝트’에 공모해 화암면 그림바위 일대 마을이 최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마을 미술 행복 프로젝트는 2011년 시작됐으며 매년 공모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1개 지자체를 선정, 추진하는 사업이다. 그동안 경북 영천시와 제주도 서귀포시가 선정됐다. 마을을 미술품으로 단장하는 그림바위 마을 프로젝트에는 일반 공모를 통해 심정수 조각가 등 유명 작가 35명이 참가했다. 35개의 작품마다 정선의 아름다운 산, 바위, 화암 8경에 얽힌 전설, 마을 사람들의 삶에 담긴 소박한 생활, 마을 사람들의 얼굴, 마을의 이야기, 정선아리랑 등이 형상화됐다. 작가들이 만든 3가지 시선의 이야기는 권역별로 나누어 심원의 시선, 고원의 시선, 평원의 시선으로 이름 붙여 이야기가 있는 마을로 꾸며졌다. 1권역인 심원의 시선은 마을을 통해 흐르는 소금강 길의 마을 집들 외부 벽면에 채영미 등 여성작가 3인방이 그림바위 마을의 주민들과 전설을 주제로 해 도자기와 타일로 부조 벽화를 설치했다. 또 소금강과 마을을 연결하는 전망대와 아트문주도 설치했다. 2권역인 고원의 시선은 그림바위 마을의 뱃돌바위골목 오름길, 맷돌바위 골목 입구, 맷돌바위 중간길, 맷돌바위 언덕길에 설치돼 있다. 오름길 계단에는 작가들이 벽에 타일을 붙여 마을의 밝은 모습들을 만들었고 맷돌바위 입구에는 이대철 작가가 그림바위마을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맷돌바위 중간 길에서는 겸재 정선과 마을풍경을 조형화한 작은 조형물들과 이재욱 작가의 대형 바느질 작품들을 볼 수 있다. 3권역 평원의 시선은 그림바위 마을 입구에 원로 작가인 석종수 조각가가 스테인리스스틸을 사용해 정선아리랑과 그림바위 마을의 풍경, 삼의 모습을 상징화한 대형 작품을 설치했다. 소금강 길의 중간에는 심정수 조각가가 그림바위 마을의 산과 물과 사람들, 뗏목 타고 멀리 떠나는 사람의 모습으로 정선아리랑의 노랫가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형작품을 설치했다. 또 화암면사무소 벽 외관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설치됐다. ‘화암 8경의 사계’를 주제로 64m의 부조 작업을 설치했다. 그림바위 마을의 삶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금광채굴 장비를 이용해 변전소 앞마당에 랜드마크가 되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또 다른 작가는 정선 아리랑을 그림바위 마을 할머니들의 현재 삶에 대한 이야기로 재해석해 150여개의 TV 화면에 영상으로 담아 냈다. 독립기획자인 이섭 작가는 그림바위 마을의 미술박물관을 생활사 중심으로 꾸몄다.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모으고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활재를 중심으로 ‘화암박물관 전람소’를 꾸몄다. 마을의 옛 변전소는 변전소 외부와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빈집을 활용해 미술작품 전시장을 만들기도 했다. 마을 중심지에 남아 있던 옛 천주교 건물은 사진, 조각, 그림들을 전시하는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무상으로 내놓은 두 채의 집과 또 다른 빈집도 이 같은 방식으로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군과 주민들은 마을 자체 의견을 모아 먹을거리와 볼거리를 더 만들어 주변의 화암동굴, 화암약수를 찾는 관광객들을 마을까지 끌어들여 주민 소득원으로 자리 잡도록 할 방침이다. 정선의 그림바위 마을은 그동안 레일바이크와 시골 기차, 정선 시골 5일장 등으로 유명한 한정된 관광상품을 주변 마을까지 확대해 산골마을 정취를 듬뿍 맛볼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선읍내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그림바위 마을은 전국 처음으로 그림 등 예술작품을 주제로 한 테마가 있는 산골마을로 각광 받을 전망이다. 최승준 군수는 “화암면 그림바위 마을이 이름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미술 마을로 성장해 지역 경기가 살아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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