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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펠로시 “아제르바이잔이 끔찍한 공격” 아르메니아 편들어 물의

    펠로시 “아제르바이잔이 끔찍한 공격” 아르메니아 편들어 물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최근 아르메니아와 충돌한 아제르바이잔을 향해 ‘끔찍한 공격’을 했다고 규탄해 물의를 빚고 있다. 당장 아제르바이잔은 상대의 말만 믿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고 반발했다. 오랜 영유권 분쟁을 일으킨 곳을 찾아 양쪽을 화해시키고 진정시키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분쟁을 부추겼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AFP·스푸트니크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의회 대표단과 함께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발생한 교전을 언급하며 교전지인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아르메니아 영토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아제르바이잔이 불법적이고 끔찍한 공격을 저질렀다. 미국은 그런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또 펠로시 의장은 교전이 아제르바이잔 측에 의해 촉발됐다면서 공격의 순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2∼14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교전이 발생해 양측에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 15일 양국이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무력 충돌은 현재 멈춘 상태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교전을 두고 민주주의와 독재 국가 사이의 투쟁이라면서 아르메니아에 대한 지지를 촉구했다. 이어 미국은 민주주의 발전과 주권, 영토 보전에 관심이 있으며 아르메니아를 돕기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은 펠로시 의장의 발언에 즉각 반발했다. 아제르바이잔 외무부는 성명을 발표해 “펠로시 의장은 친아르메니아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면서 “우리는 그의 근거없고 공정하지 못한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그의 발언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편파적인 선전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펠로시 의장은 1991년 옛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다. 그의 아르메니아 방문을 두고 지난달 대만 방문에 이어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행보로 보인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 등은 풀이했다. 각각 옛소련에 속했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2020년 9월 오랜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교전으로 약 6600명이 사망한 끝에 러시아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나, 사실상 아제르바이잔의 완승으로 전쟁이 마무리됐다.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주요 지역을 장악했으며, 러시아는 양측의 충돌 방지를 위해 5년 동안 나고르노-카라바흐에 20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배치했다. 트랜스코카시아(코카서스 산맥 남쪽) 지역에 자리한 아르메니아는 튀르키예(터키)와 오랜 역사적 분쟁을 겪고 있지만 기독교 문화라 서방 진영에서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는 나라로 여겨지는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여전히 러시아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서 미래의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한편 지난 14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에서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적어도 9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영국 BBC가 이날 전했다. 몇년 사이에 가장 큰 유혈 충돌이었는데 다행히 16일 양측은 교전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두 나라 역시 옛소련에 속해 있다가 독립한 뒤 규칙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영토 분쟁을 지속해 왔다. 두 나라 국경은 1000㎞에 이르는데 3분의 1을 놓고 분쟁이 계속됐다. 지난해 4월에도 국경 지대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져 5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번에 희생자가 곱절이 됐다. 이날 늦게 키르기스스탄은 13명이 더 숨졌다며 희생자 수가 59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100명이 넘는다고 했다. 타지키스탄은 민간인 35명이 숨졌으며 적어도 20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모말리 라크몬 타지키스탄 대통령과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사태 진정을 촉구하는 한편 의견 차이를 평화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고 크렘린궁이 전했다.
  • 시진핑 ‘솽하이’ vs 모디 ‘쿼드’… 긴장의 파고 높아지는 인도양

    시진핑 ‘솽하이’ vs 모디 ‘쿼드’… 긴장의 파고 높아지는 인도양

    왕이, 아프리카로 새해 첫 순방미국 “함대 출범 위한 포석”주장中 일대일로 핵심기조와 맞닿아 인도, 국경충돌 이어 대치 가능성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솽하이’(雙海·두 바다) 전략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전략이 인도양에서 충돌하고 있다. 양국의 해상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5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은 지난 4일부터 나흘간 아프리카 북동부 에리트레아와 케냐, 코모로 공화국을 방문 중이다. 1991년부터 중국은 외교부장이 새해 첫 순방지로 아프리카 지역을 찾는데, 올해도 이 전통을 이어 갔다. 왕 국무위원은 곧바로 아시아로 돌아와 몰디브와 스리랑카도 방문한다. 리나 베납달라 미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 포레스트대 조교수는 “중국 해양 외교가 인도양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베이징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최근 미 국방부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인민해방군이 주둔할 기지를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과 나이로비 모두 이를 부인했지만 중국이 향후 인도양 함대를 출범시키고자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는 것은 분명하다고 포린폴리시가 설명했다. 중국이 추진하는 솽하이 전략의 일환이다. 솽하이 전략은 2005년쯤 중국 공산당의 국가 안보 개념으로 처음 등장했다. 서구 열강에 지배당한 ‘굴욕의 세기’(20세기)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동·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 제해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핵심 기조로 자리잡았다. 2020년 6월 히말라야 국경 지대에서 중국과 충돌한 뒤로 극한의 대치를 이어 가는 인도 입장에선 이 전략이 달가울 리 없다. 인도가 미국과 손잡고 추진하는 대중 견제 협의체 ‘쿼드’ 전략과 충돌할 수밖에 없어서다. 포린폴리시는 “인도양 국가들에 대한 전략적 개입을 강화하려는 중국과 이를 막아 내려는 인도 간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내다봤다.
  • [여기는 중국] 감히 순국 장병을 모욕해?…묘비서 기념 촬영한 中 블로거 징역형

    [여기는 중국] 감히 순국 장병을 모욕해?…묘비서 기념 촬영한 中 블로거 징역형

    중국의 한 여행 블로거가 인도와의 국경충돌로 숨진 장병 묘비에 발을 올린 혐의를 받자 중국 사법부가 나서 해당 블로거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해 화제다. 중국 국영매체 관찰자망 등 다수의 언론은 지난 7월 신장위구르자치구 캉시와 열사능원에서 순직 병사 묘비에 발을 올리고 사진 촬영한 혐의로 여행 블로거 리치시엔 씨에 대해 징역 7개월과 언론을 통한 공개 사과 등을 판결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신장 피산현 인민법원은 1심 판결문에서 리 군의 행동이 영웅 열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 판결문 공고 직후 10일 이내에 대중에 대한 공개 사과가 불가피하다고 리 군의 행위를 비판했다. 논란이 된 사건은 지난 7월 여행 전문 블로거 리 씨가 해발 4280m 높이에 위치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 캉시와 열사능원 방문 당시 묘비 앞에서 촬영한 기념 사진을 웨이보 등 SNS에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리 씨가 찾은 묘역은 지난해 6월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국경 분쟁이 잦은 갈완계곡에서 인도군과 충돌해 숨진 중국군 4명 중 한 명인 천샹룽 장병의 묘비가 있는 장소였다. 당시 사진을 게재하며 리 씨는 ‘존중’이라고 적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해당 사진 속 리 씨의 한 손이 묘비 상단에 올려져 있었고, 비석 받침돌 위에 올라가 비석에 몸을 기댄 채 찍은 모습이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문제가 확산되자 관할 인민검찰원까지 나서 사건을 수사, 검찰원 측은 ‘사진 속 리 씨의 자세가 추하다’면서 공개 저격하고 나선 바 있다. 당시 관할 인민 검찰원 측은 리 씨를 겨냥해 “검찰기관은 문화관광 기관에 연락해 리 씨를 여행 블랙리스트에 올리도록 제안했다”면서 “향후 현지 검찰은 군 검찰과 공동으로 캉시와 열사능원을 방문해 관리 강화와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고 강력한 수사 방침을 공개했다. 또, 리 씨의 행위를 계기로 영웅을 모독한 행위에는 관용을 베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공고하는 등 강력한 처벌 의사를 거듭 공개해 논란의 불을 지폈다. 사건 직후 리 씨는 자신이 운영했던 웨이보 등 SNS 등을 자발적으로 삭제했지만 해당 업체 측은 리 씨 명의의 모든 계정 운영을 영구 금지하는 등 강력한 제재 방침을 공고해 또 한 번 논란이 됐다. SNS에 게재된 기념 사진 후폭풍은 꽤 크게 확산됐다. 사건 이후 인민 검찰원에 형사 기소돼 재판에 회부된 리 씨는 지난 9월 30일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 검찰 측은 그에게 징역 7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의견과 양형을 받아들여 1심에서 징역 7개월과 대중에 대한 공개 사과 등의 처벌을 공고한 상태다. 한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지난해 12월 일명 ‘영웅열사보호법’을 만장일치로 통과, 올 3월부터 영웅열사의 명예를 침해한 사건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과 민사상의 책임을 묻는 법규를 시행 중이다.
  • “인도와 국경충돌 사상자 조롱” 中 인기 블로거 징역 8개월

    “인도와 국경충돌 사상자 조롱” 中 인기 블로거 징역 8개월

    지난해 6월 중국과 인도 간 국경 충돌 당시 동영상이 공개되자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중국 인기 블로거 추쯔밍(38)이 “순교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1일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장쑤성 난징 법원 발표를 인용해 “그가 ‘싸움을 걸고 분란을 일으킨’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며 “정직하게 자백했고 다시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매체 경제관찰보 기자 출신인 추는 250만명 이상 팔로워를 가진 사회고발 전문 블로거다. 올해 2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중국과 인도 국경 충돌 당시 중국 측 최고 책임자인 치파바오 연대장이 살아남은 것은 지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더 많은 중국군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중국 공산당청년연맹 중앙위원회가 유감을 표시했고 웨이보는 해당 글을 삭제했다. 당시 난징시 공안은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국경을 수호한 4명 영웅의 명예를 훼손했다. 사회적으로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그를 구금했다. 신화통신도 “추쯔밍이 국민감정을 해치고 애국심을 오염시켰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3월 1일 추는 중국중앙(CC)TV 뉴스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공개 사과했다. 이번 사건은 중국 입법부가 형법에 ‘순교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추가한 뒤 기소된 첫 사례였다. 올해 3월 1일부터 영웅과 순교자의 명예를 모욕하거나 비방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중국과 인도의 갈등은 지난해 5월 양국 군인 250명이 라다크에서 난투극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틀간 이어진 총격전과 투석전으로 양측 군인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흘 뒤에는 라다크에서 1200㎞ 떨어진 시킴에서 재차 충돌했디. 이에 양측은 같은 해 6월 “접경지역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5일 갈완 계곡에서 순찰을 하던 인도 병력이 좁은 산등성이에서 중국군과 마주쳐 투석전이 시작됐다. 두 나라 병사들은 긴장 고조를 피하고자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다. 양측 병력 600명이 맨손으로 싸우거나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그럼에도 양국의 충돌로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 당시 인도에서는 2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추쯔밍은 2010년 중국 제지업체 카이언이 선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국유재산을 점유하고 내부자 거래를 해왔다”는 내용의 고발기사 4건을 보도했다가 지명수배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인도와 국경충돌 사상자 조롱” 中 인기 블로거 체포

    “인도와 국경충돌 사상자 조롱” 中 인기 블로거 체포

    지난해 6월 중국과 인도 간 국경 충돌 당시 동영상이 공개되자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중국 인기 블로거 추쯔밍(38)이 체포됐다. 2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장쑤성 난징 공안 발표를 인용해 “그가 ‘싸움을 걸고 분란을 일으킨’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 혐의는 중국 당국이 반체제 인사에게 주로 적용된다. 최대 10년형에 처할 수 있다. 중국 경제매체 경제관찰보 기자 출신인 추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중국과 인도 국경 충돌 당시 중국 측 최고 책임자인 치파바오 연대장이 살아남은 것은 지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더 많은 중국군이 사망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중국 공산당청년연맹 중앙위원회가 유감을 표시했고 웨이보는 다음 날 해당 글을 삭제했다. 난징시 공안은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국경을 수호한 5명 영웅의 명예를 훼손했다. 사회적으로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신화통신도 “추쯔밍이 국민감정을 해치고 애국심을 오염시켰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19일 중앙인민라디오방송은 지난해 6월 중국-인도 분쟁지역인 갈완 계곡 충돌 당시 4명의 병사가 숨지고 치 연대장이 중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해방군보 등이 당시 충돌 상황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사상자를 추모했다. 웨이보에서는 ‘그들이 우리를 위해 죽었다’는 표제어를 비롯해 국경 충돌 관련 내용이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중국과 인도의 갈등은 지난해 5월 양국 군인 250명이 라다크에서 난투극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틀간 이어진 총격전과 투석전으로 양측 군인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흘 뒤에는 라다크에서 1200㎞ 떨어진 시킴에서 재차 충돌했디. 이에 양측은 같은 해 6월 “접경지역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5일 갈완 계곡에서 순찰을 하던 인도 병력이 좁은 산등성이에서 중국군과 마주쳐 투석전이 시작됐다. 두 나라 병사들은 긴장 고조를 피하고자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다. 양측 병력 600명이 맨손으로 싸우거나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그럼에도 양국의 충돌로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 당시 인도에서는 2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추쯔밍은 2010년 중국 제지업체 카이언이 선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국유재산을 점유하고 주식 내부자 거래를 해왔다“는 내용의 고발기사 4건을 잇따라 보도했다가 지명수배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월드이슈-中·印 ‘총성없는 전쟁’] 中, 다국적기업 연구소 600개 유치… 첨단 육성 印, IT이외 생명과학·우주항공분야도 최고 노려

    아시아 지역의 오랜 숙적 중국과 인도가 이번엔 ‘세계 연구개발의 차세대 중심’자리를 놓고 경쟁적인 달음박질을 벌이고 있다.각각 옛 소련과 미국에 접근,상대국가를 견제하면서 유혈 국경충돌 등 분쟁의 기억을 안고 있는 두 거인이 경제개발에 전력을 다하면서 세계 연구개발 기능을 끌어들이는 21세기형 경쟁을 벌이고 있다.두 나라는 모두 10억명이 넘는 거대시장을 배후에 두고 풍부한 과학기술 연구인력으로 첨단기술 개발 분야에서 외국의 우수하고 저렴한 두뇌를 빌리려는 세계 매머드 기업들의 연구개발 기능을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 내 외국기업의 크고 작은 연구개발 센터는 600개.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모토롤라,지멘스,IBM,인텔 등 첨단산업의 ‘매머드’들이 경쟁적으로 중국에 연구개발 거점을 만들고 있다. 오러클사의 경우 베이징에 연구소를 내고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독점하고 있는 컴퓨터 운영시스템 ‘윈도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한 아시아판 ‘리눅스’ 시스템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오러클에 앞서 1998년 베이징에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170명으로 짜여진 현지 과학기술자들의 진용을 활용,각종 신제품에 도전하고 있다.포털 전문사이트 구글의 온라인 검색엔진과 경쟁하기 위한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베이징 연구진들의 작품이었다.중국은 첨단기술 개발의 격전장이자 교두보가 되고 있고 중국의 과학기술 인력들은 세계 다국적 기업들의 ‘대리전쟁’에 ‘용병’이 되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 맥시밀리언 본 제트위츠 칭화대 교수의 분석을 인용,“앞으로 5년 안에 중국에 있는 다국적기업 연구소의 규모와 능력이 영국 일본 독일 등 경쟁국들을 모두 따라 잡으면서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지난 3년여 동안 300개에 가까운 외국기업의 연구소가 설립되는 등 중국 내 다국적 기업의 연구거점 설립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지금까지 중국의 기업 연구개발 센터들이 선진기술을 응용하고 복제하는데 주력했지만 점차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위한 기술 창조의 요람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세계의 공장’ 중국이 ‘세계의 첨단 연구개발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낙관했다. 이런 낙관의 도전자는 인도.인도는 미국의 은행 및 주요 회사들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주문생산해 주고 데이터베이스 및 시스템 관리로 외화를 벌어들이며 연구개발 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인도가 외주제작 등 IT 서비스로 벌어들인 돈은 120억달러.주요 고객인 미국 기업들은 인도 회사들에 외주를 주어 평균 40% 이상의 비용을 줄였다는 통계도 있다.관련업계에 따르면 인도의 IT관련 수출은 2008년까지 500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도 뉴델리와 주요 도시인 뭄바이뿐 아니라 방갈로르,노이다 등 주변 도시들로 IT 개발연구 센터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올들어 노키아,마이크로소프트,피델리티투자 등 다국적 기업들이 뉴델리의 위성도시인 구루가온으로 서비스센터와 연구개발센터를 이전했다. 인도의 강점은 ‘기술의 주문 제작 및 서비스’에 대한 풍부한 경험.민주화의 진전으로 정책결정 과정이 투명한데다 영어 사용권이란 이점도 있다.서구 기업들이 중국보다 진출과 영업에서 인도를 편안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이 성장률,수출액,외환보유고 등 모든 경제지표에서 인도에 앞서지만 은행의 대규모 악성부채,불투명한 정책결정 과정 등은 진출 기업들에 부담을 주고 있다.인도의 정치경제 시스템의 투명성이 큰 강점인 셈이다. 두 나라 모두 IT는 물론 생명과학과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국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영국의 경제전문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14일 전세계기업 CEO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9%가 앞으로 3년 동안 중국이 연구개발투자의 주요 목적지가 될 것이라고 응답했고 인도는 미국(29%)에 이어 3위인 2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팔짱 낀 한국외교/조정원 경희대 총장(시론)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동북아의 세력재편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최근 미·일·중·러 4강간의 정상회담이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특징적인 것은 한때 적대적이거나 불신관계에 있던 이들 국가들이 표면적으로는 모두 화해와 신뢰조성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21세기의 건설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신안보선언에 따른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제정되면서 이들의 안보협력 법위가 대만해협에까지 미치는가를 놓고 미·중 및 일·중 사이에 갈등이 노정되기도 했으나 중·일 정상회담을 통하여 이 문제는 지리적 범위가 아닌 상황의 개념이라는 선에서 임시방편적 타협을 본 바 있기도 하다. ○긴박한 한반도 주변 정세 또 지난 10월26일에는 동북아 지역국가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했다.이번 회담은 79년 1월의 등소평 방미 이후 중국의 최고 실력자가 미국을 공식 방문한다는 의미와 동서양 최강국간의 전략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미·중 관계는천안문사태와 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로 인해 갈등이 있어 왔으나 현시점에서는 적대적 대립관계의 지속이 결코 상호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추구해 나아갈 것으로 보여진다.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인권문제와 냉전의 잔재인 대만문제에 발이 묶여 거대한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실리적인 측면이 고려되었으며,중국으로서도 세계최대 개발도상국이 세계최대의 선진국과 만나는 것은 중국의 목표인 현대화와 경제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보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결국 중국은 미국과의 현실적인 국력 차이를 인정하면서 미래를 위한 시간벌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중국의 점진적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후퇴가 감지되는 경우,미·중의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전략적 균형관계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으며 이때 동북아의 세력균형은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11월 1일에는 러·일 정상회담이 개최됨으로써 오랫동안 러·일간에 북방 4개도서 문제 등을 두고벌어졌던 역사적 원한과 불신감이 해소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그동안 영토문제 해결 이전의 평화협정 불가를 고집하던 일본이 2000년까지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러시아가 일본과의 북방 4개도서 문제에 대한 가시적 해결을 시사함으로써 향후 러·일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또 11월 9일에는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중·러 정상회담이 열렸다.양국은 60년대말 국경충돌까지 가져왔던 우수리강 유역의 국경분쟁을 종식하고 이 섬들을 공동개발 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는 최근 동북아에서의 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한 중·러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이 지역의 세력균형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양국의 의사가 합치되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정쟁 중지 21세기 준비를 그러나 이와같은 한반도 주변의 긴박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외교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김영삼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활발한 정상외교를 전개하였지만 임기말과 대선정국이라는 난마에얽혀 중심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며,대선주자들 역시 대권쟁취에만 몰두한 채 이런 주변 상황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것이 안타깝기조차 하다.더 늦기 전에 한국정부와 대선주자들은 정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국가이익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과거 냉전시대에 강대국간의 합의에 의한 분단의 쓰라림을 다시는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며,오히려 강대국간의 협력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하여 남북한 협력과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특히 올 12월에는 4자 회담의 개최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정상회담과 주변국가와의 정상외교가 신정부의 출범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도 있으므로 국가이익을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는데 정치지도자와 국민간의 합의도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 우간다 자이르 침입/부룬디 내전도 격화

    【키갈리·고마 AFP 로이터 연합】 자이르에 대한 국제 구호품 공수 활동이 지연되는 가운데 1일 자이르와 우간다가 국경충돌을 일으키고 부룬디 내전도 격화,중부 아프리카 일원에 불안 기류가 새롭게 확산됐다. 보구오 마켈리 자이르공보장관은 우간다군이 반군 추적 명목으로 자이르 국경을 침입,동북부 카신디를 점령했으며 자이르측은 보복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 외국교과서 한국사 왜곡 심각/스페인 “남한 수도는 평양” 표기

    ◎일선 “고려·조선이 중국의 속국” 일본과 중국을 비롯,동구권과 중동지역 및 미국 등의 역사교과서가 한국사를 잘못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교육부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고교 세계사교과서에서 고조선의 건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내용을 일부러 뺐으며 특히 고려와 조선을 각각 원·명·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쓰는 등 한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 등 동구권도 한국의 독자적인 문화는 언급하지 않고 중국의 종속문화로 기술하고 북한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것으로 기술하는 등 북한 중심으로 역사교과서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중동지역도 6·25전쟁의 발발원인을 국경충돌이 확대돼 발생한 것으로 기술하는 등 오류가 많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제교육정보센터」와 같은 전문기관을 설립해 외국 교과서를 분석,왜곡된 내용을 적극적으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주국 교과서 한국역사 왜곡/중국의 속국 묘사… 친북 성향

    ◎한국전은 「항미원조」·신라수도 평양 기술/교육개발원 5개국 12종 분석 대만과 베트남·홍콩 등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역사교과서도 한국관련 내용을 상당부분 왜곡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한국교육개발원이 대만 등 5개국의 역사교과서 12종을 분석한 결과 대만의 역사교과서는 고조선에서 조선시대까지의 한국을 줄곧 중국의 속국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라의 삼국통일을 당나라의 조선정복으로,조선과 명나라를 주종관계로 서술하고 있으며 근대사에서는 조선의 주체적인 근대화 움직임과 외세에 대한 대항은 누락시키고 청과 일본의 간섭만 받는 국가로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도 중화사상에 바탕을 두고 한국고대사를 서술하면서 한국전쟁을 「중국이 미국에 대항해 한국을 구원한다」는 뜻의 「항미원조」규정하는 등 중국교과서의 내용을 따르고 있으며 더욱이 대만과 홍콩은 신라의 수도를 평양으로 적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는 대체로 친북적 경향을 띠면서 근대사는 주로 일본학계의 주장을 싣고 있으며 한국전쟁의 발발원인에 대해서는 남침설과 함께 국경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됐다는 상황설을 같이 쓰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교과서는 해방후 북한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인민정권이 설립됐고 남한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비민주적인 정권을 수립한 것으로 친북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 페루와 분쟁 해결/국경협상 곧 재개/에콰도르 대통령

    【브라질리아·리마 AFP AP 로이터 연합】 국경충돌을 종식시키기 위한 페루와 에콰도르간의 평화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브라질을 방문한 시그스토 도랑 바젠 에콰도르대통령은 일시중지된 협상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6일 밝혔다. 도랑 바젠대통령은 이날 브라질 대통령궁에서 페르난도 엔리크 카르도소 브라질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친 뒤 휴전과 공평한 협상에 의한 해결책을 기대한다면서 『브라질리아에서 양국간 대사급 평화회담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랑 바젠 대통령은 언제 협상이 재개될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 페루­에콰도르 휴전 합의

    【키토(에콰도르) DPA AP 연합】 에콰도르정부가 페루와 국경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휴전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한지 수시간만에 페루정부도 휴전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것으로 영국의 BBC방송이 31일 보도했다. 페루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에콰도르와의 휴전합의 사실을 공식 발표했으며 이같은 휴전합의는 이날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국경분쟁 종식을 위한 회담 직후에 나온 것이라고 이 방송은 전했다. 한편,지난달 26일 이후 양국간 국경충돌로 페루군 20명과 에콰도로군 4명이 사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으나 현지 전투지역의 미확인 보도에 따르면 에콰도르군 사망자수는 30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에콰도르­페루 국경충돌/비상·동원령 선포… 군 증파

    ◎서로 “먼저 침범” 주장… 이틀째 전투 【키토 로이터 AP 연합】 남미의 에콰도르 정부는 인접 페루와의 국경 무력 분쟁과 관련,27일 국가 비상사태및 이에따른 동원령을 선포했다. 식스토 두란 발렌 에콰도르 대통령은 이날 전국 방송을 통해 페루군이 에콰도르의 여러 국경초소를 공격,전투가 종일(26일)계속됐다고 비난하고 자신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무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두란 발렌대통령은 그러나 에콰도르 헬기가 페루국경 초소를 공격했다는 페루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비상사태하에서 두란 발렌 대통령은 특별권한을 부여받게 되는데 그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즉각 밝혀지지 않았다.양국간 분쟁지역은 수도인 키토에서 남쪽으로 약3백㎞ 떨어져 있다. 에콰도르 합동참모본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에콰도르와 페루간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며 페루군이 에콰도르 진지에 대해 박격포공격을 감행하고 있으나 에콰도르군은 이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1년 1천6백㎞에 달하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치렀던 에콰도르와 페루 양국은 최근 상대방에 대해 서로 자국 영토를 침범했다고 비난하면서 국경에 군대를 증파하는등 긴장이 고조돼왔다.
  • 러,아프간 포격 중단키로/국경충돌종식 협상 합의

    【카불 로이터 연합】 타지크공화국주둔 러시아군은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대한 포격을 중지키로 합의했다고 압둘 아지즈 모라드 아프가니스탄대통령 대변인이 31일 발표했다. 모라드대변인은 예프게니 프리마코프 보리스 옐친대통령특사와 부르하누딘 라바니 아프가니스탄대통령이 한시간동안의 회담끝에 양측은 타지크공화국과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 충돌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개최의 필요성에 합의,이에따라 아프가니스탄이 러시아측의 포격중지를 요청,이같은 합의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프리마코프특사는 30일 카불에 도착,북부 아프가니스탄에 은거하고 있는 타지크반군의 대러시아 공격 중지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군은 러시아 지원하의 타지크정권에 대항,투쟁중인 타지크 회교반군들을 아프가니스탄이 지원함에 따라 이에대한 보복으로 아무 다리야강을 따라 북부 아프가니스탄에 포격을 가해 왔었다.
  • “북 「이상징후」 발견안돼/국경충돌·폭동설 와전 가능성”/외무부

    정부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북한 내부의 이상동향에 관한 보도가 사실과 다르거나 통상적인 일이 와전된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일 『김일성 사망설,중국·북한 국경충돌설,평양 순안비행장 폐쇄설등 최근 일련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김일성을 직접 만난 복수의 사람을 통해 확인한 결과 김일성은 현재 건강하고 중국·북한 국경에서 일어난 총격전은 평소에도 가끔 있는 일』이라며 『순안비행장 폐쇄 또한 시아누크 캄보디아 대통령의 환송행사를 위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신의주 폭동설에 언급,『신의주에 심각한 소요움직임이 있다는 증거는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면서 『과거 북한방문객들의 입을 통해 확인된 식량배급을 둘러싼 작은 불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경부근으로의 군대이동설과 관련,『4·25 북한군 창군기념일 또는 이른바 북한의 「전승기념일」인 7·27 행사를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시위진압 목적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군단병력 중 접경 이동”/2개 사단이상 폭동진압위해 급파

    ◎“미,예의주시”/워싱턴타임스지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북한은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군단 규모의 대병력을 이동시키고 있으며 이는 이 지역에서 발생한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고 워싱턴 타임스지가 30일 보도했다. 워싱턴 타임스지는 익명을 요구한 미고위관리의 말을 인용,『중국과 북한간의 국경지역에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북한측 동원병력이 2개사단 이상의 군단병력이라고 전했다. 이 관리는 이번 병력이동은 중국과의 국경지역에서 발생한 폭동진압과 관련이 있거나 아니면 최근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북한간의 국경충돌설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신문은 그러나 미정보기관들이 북한의 병력동원에 대해 확실한 이유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나 중국과의 긴장관계때문이 아니라 그 지역의 폭동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또다른 관리의 말을 인용,『분명히 (그 지역에는)모종의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 북의 거동이 심상찮다(사설)

    각종보도와 정보통로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북한의 최근동향이 크게 주목되고 있다. 평양주변의 대규모 군사이동이 탐지된데 이어 평양근교의 순안비행장이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다.핵문제로 중국과의 외교접촉이 중단되었으며 국경충돌로까지 번져 중국인 수명이 살해됐다는 보도도 나왔다.신의주의 대규모 시위·폭동설이 유포되고 있는가하면 최근 중국으로 탈출하는 주민이 늘어나 발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편 러시아보도나 우리정부 당국자는 금년81세의 김일성주석 건강이 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전하고 있다.하루평균 3∼4시간밖에 자지못하는 노인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손발이 심히 떨리고 오른발의 거동이 부자유스러운 것으로 관측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부 부인되기도 했으며 수년전 김일성사망설 소동때처럼 그 모든것이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정상적일수 없는 일련의 북한동향은 때도 때이니만큼 심상케 보아넘길 일만은 아니라 생각한다.누가 보아도 지금 북한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있다.식량·에너지등의 경제난 가중에 핵고집으로 자칫하면 중국한테도 외면당할지 모를 심각한 국제고립의 2중수렁에 빠져있다. 게다가 북한은 개혁을 할수도 안할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하면 체제가 위태롭고 안하면 살아남기가 힘든 운명인 것이다.어느쪽도 간단히 결단할수 없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할수 있다.현재로선 핵무장카드로 이 위기를 극복해가려는 심산인 것으로 보이나 그나마 국제압력의 가중속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말하자면 오늘의 북한에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상황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을 원하지 않는만큼 갑작스런 붕괴나 폭발의 혼돈도 바라지 않는다.경제적인 파탄이나 고립의 심화도 원하지 않는다.가장 바라는 것은 점진적이고 질서있는 북한스스로의 러시아및 동구형 민주화 변화다.중국형 개방개혁도 좋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희망사항이지 북한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결국 우리는 북한의 모든 가능성을 상정하고 철저히 대비·대응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현실은 희망한다고 오고 원하지 않는다고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기 때문이다.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북한의 붕괴가 뜻밖에 갑자기 밤도둑처럼 오게될지도 모르며 궁지에 몰린 반발이 엉뚱한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부정비리척결의 개혁에 정신없는 우리지만 그러한 북한동향에 대한 감시와 대응도 절대 소홀히해선 안될 것이다.
  • 두만강국경서 북한군 발포/중국인 수명 사망

    ◎WP지,“외교접촉도 중단상태”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을 번복시키려는 중국측의 설득노력은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중국·북한간의 외교적 접촉이 중단됐고 국경충돌까지 벌어져 중국인 수명이 사망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28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이달초 중국측이 평양에 외교부 부부장(외무차관)을 파견했으며 이어 김일성생일인 4월15일에는 고위 축하사절단을 보내 핵확산문제를 제기하려 했으나 북한측이 외국사절단입국 자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들은 또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지역에 경비병을 대폭 증강했으며 이들 경비병들이 중국지역에서 탐지된 중국인을 향해 발포했다고 말했다. 포스트지는 중국외교부 정보국관리가 『그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 보도를 부인했으나 북한이 지난달 중국·북한간의 국경을 2주일동안 봉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측은 북한의 NPT탈퇴번복선언을 철회시키기 위해 제재조치보다조용한 외교노력이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미국과 서방측을 설득하고 있는데 북한의 이같은 강경입장이 중국측에 대해 외교적 당혹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한편 중국이 시장경제개혁을 추진하고 한국과 수교한 이래 북한과 중국간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으며,중국측이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에 대해 시장경제개혁을 추진할 것을 제의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1

    ◎한국부문/북한병력,남침 6일전 38선 집결/“개전 임박” CIA보고 극동 사서 무시/6·25 터지자 백악관·의회·군 “책임 논쟁”/휴일 미 보병학교서 야구중계 보다 “전쟁발발” 뉴스 들어 한국에서의 「미군」은 누구인가­.주한미8군참모장을 역임한 존 싱글로브장군(69)이 펴낸 회고록 「위험한 임무」(HazardousDuty)는 한국전쟁발발 및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77년 두번째 한국근무중 당시 지미 카터 미대통령의 주한미군철수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다 소환되어 강제퇴역 당하는등 소신을 굽힐줄 모르는 강직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싱글로브장군은 이 회고록에서 6·25는 미 CIA보고에 대한 미국정부의 판단착오 때문에 발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서울신문은 이 회고록을 긴급입수하여 「미군」으로서 체험하고 느낀 주한미군의 한반도에서의 역할과 책임,그리고 공과에 관한 부분을 발췌하여 몇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1950년 6월 25일 비내리는 일요일 새벽,날이 채밝기도 전에 10만여명의 북한인민군이 38선 전역을 가로질러 침공을 개시했다.남한에서는 이들을 편성도 채 갖추지 못한 3개사단 정도가 맞서고 있었다. 당시 한반도는 1945년 2차대전 후 일본인들의 항복을 접수하기 위하여 남쪽은 미군이,북쪽은 소련군이 나누어 통치를 하고 있었다. 소련은 탱크와 중화기를 지원하는등 북한 인민군의 무력증강에 많은 투자를 했다.1948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공식적으로 북한땅을 철수한 후에도 수천명의 군사고문단이 잔류,지속적인 군비증강을 꾀했으며 침공을 감행할 무렵에는 13만5천의 병력과 소련사관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만주에서 중국공산당의 전투를 참관한 유능한 장교단들로 구성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군은 10만명이 채 못되었으며 미 고문단에 의해 훈련을 받고 미군장비를 갖추고 있었다.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24군단 병력이 공식적으로 철수한 것은 1949년 5월이었으며 군사고문단과 병참요원등 5백여명만이 잔류하고 있었다.한국군에는 탱크는 없고 몇대의 대포만 있을 뿐이었으며 제대로자격을 갖춘 장교도 드물었다.더욱이 소규모 작전의 지휘권까지도 워싱턴에 있었으며 도쿄의 맥아더 극동사령부와는 중계를 통한 무선통신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군은 바로 첫날 새벽부터 현대전 사상 유래가 없는 패주의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한의 방어에 미군을 사용한다는 극동사령부의 임시계획은 있었지만 그것은 이같이 38선 전역에 걸쳐서,또 다량의 우수한 최신 소련제 탱크의 공격을 예상한 것이 아니고 고작 북으로부터의 소규모 국경충돌이나 게릴라침투 등을 고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의도는 다른데 있었다. 내가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을 안 것은 조지아주 베닝기지에서 였다.그 전날 보병학교에서 대대장교육을 수료한 뒤여서 그날은 숙소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야구중계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중간에 한국전쟁 소식이 스포트로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만주에서 여러해동안 정보업무를 맡아왔던 나로서는 우선 몹시 화가났으며 놀라움에서 불평이 튀어나왔다.그 다음에는 강한 의구심이 일었다.『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 침공을 예측하지 못했는가?』 봄철 내내 38선 전역에서 북한군에 의한 철저한 준비와 위장이 있었을 것이고 그곳의 높아져가는 긴장감을 분명히 CIA와 윌로그비소장 산하의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에서 감지했을 것이다. 나는 CIA의 북한 정보망을 내가 직접 작성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침공의도에 관한 정보를 완벽하게 놓치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CIA는 1946년부터 48년 사이에 만주로부터 압록강을 건너 잘 훈련된 10여명의 젊은 한국인 정보원들을 북한에 투입했다.극동사령부의 맥아더원수와 윌로그비장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침략 조기경고의 특수한 임무를 부여해 북한땅에 헌신적인 반공주의자들을 투입시켰던 것이다. 그후 1949년에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CIA는 마침내 서울에 지역본부를 설립했다.나는 그때 CIA의 중국담당 책임자였는데 서울본부는 아주 우수하고 믿을만한 장교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해 중반부터 서울본부에는 북한으로 침투시킨 정보원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상당부분 북한의 전쟁준비 움직임에 대한 경고를 해왔을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후에 CIA에서 한국에 대한 군사정보 임무를 맡아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당시의 민간및 군사정보 책임자들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50년 6월 엄청난 「정보실패」의 미스터리를 풀수 있었다. 그해 봄부터 김일성의 공산당정권은 한국에서의 선거를 비난하고 군사적 도발의 위협을 가하면서 남한에 대한 악랄한 선동공세를 벌여왔다.그러는 가운데 소련지원을 받는 김의 군대는 침공준비를 위해 은밀하게 단계적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당시 북한에 있던 우리 정보원들은 이미 북한의 교통시설은 물론 정부기관이나 군내부에서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아 임무수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같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6월까지 몇몇 정보원들이 북한의 전쟁준비에 대한 특별보고를 해오거나 38선을 실제로 넘어와서 서울에 있는 CIA간부들에게 직접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CIA 서울지역국 보고」라고 명명된 1950년 6월19일자로 된 한 중요한 정보보고를 보면 중장비 등을 수송하기 위한 38선 북측 도로의 확충,1945년이래 소련에 의해 파괴되었던 남측으로의 연결도로에 대한 일제 보수등 광범위한 병력의 움직임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더욱 불길한 징조는 북한의 민간 교통수단들이 북한의 주요 군사기지에서 38선으로 연결되는 철로변에 집결돼 있다는 것이었다.결론적으로 이 보고서는 북한의 침공이 임박했으며 김일성은 자신이 원할때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병력과 장비를 배치시켜 놓고 있다는 것이다. CIA국장 로스코 힐렌쾨터 해군대장은 북한의 침공이 있기 전 닷새의 시간동안 이 평가서는 백악관과 딘 애치슨 국무장관,루이스 존슨 국방장관,오마 브래들리 합참의장등 트루먼대통령의 군사및 외교정책 핵심참모들에게 전달됐으리라고 확신했다.이 평가서의 요약본은 또한 전통을 통해 도쿄 극동사령부의 맥아더장군과 윌로그비장군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군부및 민간의 핵심 정책입안자들은 남침 이전에 이미 북한의 침공의도에 관한 충분한 증거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물론 이들 증거자료는 잘 훈련된 정보원들의 보고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연적인 의문점이 제기될수 있다.왜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 정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가? 왜 어떤 작은 군사적 행위도 강력한 응징을 받을수 있다는 공식적인 주의를 북한에 주지 않았는가? 왜 적어도 미공군의 정찰기들이 북쪽의 뒤엉킨 산들로부터 단지 세개 뿐인 남쪽으로의 통로를 감시하지 않았는가? 당시 태평양지역에서 일했던 CIA 지역책임자들이 후에 나에게 이 문제들의 해답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윌로그비소장의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는 그해 봄 서울에서 오는 모든 정보들을 분석평가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F6」정보,즉 「미숙한 정보원이 보낸 신빙성이 불투명한 정보」로 분류돼 거들떠보기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작전은 맥아더사령관의 관할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정보책임장교는 그 보고들을 심각한 고려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해버렸던 것이다.그러한 등급으로는 워싱턴에서 절대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질 수 없었다. 워싱턴에서 이들 정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힐렌쾨터 CIA국장 한사람 뿐이었다.그러나 그의 임무는 정책입안자들에게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무방비상태에서 전쟁은 발발했고 개전 다음날인 26일부터 워싱턴은 한국전쟁발발의 책임문제를 놓고 의회와 백악관,CIA와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간에 「정보수집실패」냐 「정보판단실수」냐의 뜨거운 논쟁에 휘말렸다.
  • 남북예멘 통일 1년의 교훈/정영태 민족통일연 책임연구원(특별기고)

    ◎「흡수통합」 아닌 「균등통합」 배울만/물가등 경제불안에도 정치적 갈등은 적은 셈 남북 예멘정부는 10여 년에 걸친 군사·정치적 대치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인 협상수단을 통하여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90년 5월22일 통합선포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것은 순전히 양국 정상간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완전한 정치적 통합은 통합선포 후 30개월이라는 과도기를 두고 이루어질 것이지만 통합선포 후 1주년이 지난 현재 남북예멘의 분위기는 대부분의 예멘인들이 이러한 통일과정을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으로는 과도기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간차원의 생활은 이미 남북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있는 듯하다. 예멘 일반 국민들은 이제까지 정치적으로 강요되어 왔던 남북의 물리적 제한의 제 장애물들이 제거됨으로써 느끼게 되는 홀가분한 감정으로 통일선포 이전과 별 다름 없이 평소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제로섬 아닌 통일방식 통합정부는 현재 상존하는 예멘의 제 이질적 요소들을 제도적으로 통합 흡수함으로써 불안정의 소지를 제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다당제 도입준비가 바로 그것이다. 예멘 통합정부 자체가 현존 정당들의 성장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당들의 창설까지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현재 약 50여 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그 중에서 북예멘과 남예멘의 유일정당이었던 「일반 인민회의」와 「예멘 사회주의당」은 총선과 함께 신정부가 수립될 1992년을 대비하여 아덴과 사나에 지부 및 본부를 각각 새로이 설치하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치권내의 갈등은 아직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통일협상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대부분의 자리가 남북에 대등하고 평등한 차원에서 분배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독일의 통일과는 달리 남북예멘의 주요 관리들은 거의 한 사람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 신정부에 흡수되었다. 다만 그 후유증으로 지나치게 비대해진 행정조직에 있어서 업무의 효율성과 업무교류상 소통의 어려움 등이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5월22일남북예멘 통합선포 후 지금까지 실질적인 통합작업의 진척은 매우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남북통화의 조절을 위해서 북예멘의 리얄과 남예멘의 디나르화를 20 대 1의 비율로 교환가능케 하였으며,남예멘의 임금수준을 북예멘 수준으로 상승시켜 놓았다. 그리고 남예멘의 토지 및 기업의 사유화 추진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선 외국인 소유토지나 대지주의 토지는 계속 국유화하면서 단지 소규모의 토지사유화를 점차적으로 허용해나가고 있다. 국방 측면에 있어서,먼저 남북예멘의 지휘체계가 통합되었다. 예멘 국방장관 자문위원인 모하메드 가넴 장군은 『군사계급의 분배가 남·북의 지역적 차별개념을 떠나서 어느 정도 능력과 경험 그리고 다른 요소들이 공정하게 반영되어 적합한 인물이 적절한 자리에 임명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서,국방통합에 따른 남·북 요소들간의 큰 갈등은 없다고 말했다. 통합선포 이후 통일예멘군의 군복이라든가 무기 등은 이전과 전혀 변화없이 남북 양측 고유의 것이 각각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공항 혹은 관공서를 수비하고 있는 예멘군인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남북예멘 각각의 고유의 복장과 무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나란히 근무에 임하고 있다. 이밖에도 통일예멘 신정부는 전신·전화·물·전기관련 부문의 통합을 위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멘통일 후 가장 심각하고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는 바로 물가앙등이다. 이러한 급격한 물가앙등은 통일작업에 크게 기인한 면도 있지만 실제로 잠재적,가시적으로 누적되어 온 예멘의 경제적 저발전의 연속현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통합 반대주의자들은 이 모든 경제적 궁핍이 통일의 여파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통일 신정부의 입지를 크게 흔들고 있다. 남북예멘의 통일경험이 우리의 남북한관계의 개선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남북한이 6·25전쟁을 치르는 등 상호불신이 심화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로 남북예멘도 2차례 이상의 국경충돌을 겪음으로써 상호불신의 벽은 매우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남북예멘 위정자들의 예멘통합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남북예멘의 대화가 대부분 정상회담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이다. 동일한 역사와 언어를 공유하고 단일민족성에 의한 높은 통일의지가 상존하고 있는 남북한이나 남북예멘의 경우 통일의 결정적 요소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결단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치적 결단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예멘은 수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서 상호간의 불신을 해소시키고자 노력했으며 결국은 균등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권력분배 방식으로 과도 통일정부를 수립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비록 남예멘측 정권이 사회주의 정치의 실패를 인정하는 백기를 들었으나 북예멘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의 대등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서로가 패배의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통일방식을 도출해 낸 것이다. 그 결과 통합 후의 여러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예멘인들은 그들의 통합을 수호하는데매우 적극적이다. ○권력 균등분배 주목을 남북한의 경우에 있어서도 정치적 차원에 있어서의 통합의지와 결단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의 급선무는 예멘과 같이 정상회담을 통한 통합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통합논의 과정에서는 상호의 패배감을 부추기지 않는 형태의 통일구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흡수통일 방식의 전형인 독일통일 과정에만 지나친 관심을 표하는 것은 우리의 통일협상 진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남북통일협상의 분위기마저 냉각시킬 수 있는 소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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