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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무화과 그냥 지나치면 아깝다…건무화과 활용법까지

    9월 무화과 그냥 지나치면 아깝다…건무화과 활용법까지

    - 달콤한데 붓기 완화까지? 칼슘·칼륨·철분 등 풍부- ‘여왕의 과일’로 불리는 이유…항산화 성분 다량 함유- 짧은 제철, 오래오래 즐기는 법…건무화과 활용 레시피 가을 문턱인 9월을 맞아 대표적인 제철 과일인 무화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화과는 여름철 풍부한 일조량을 흡수해 특유의 진한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로, 영양 성분과 다양한 섭취 방법이 주목받는다. 무화과는 부드러운 단맛을 지니면서도 칼슘과 칼륨 등 일상에서 결핍되기 쉬운 필수 미네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가표준식품성분표(2021)에 따르면 생무화과 100g에는 칼슘이 최대 41mg, 칼륨이 176mg가량 들어 있다. 무화과에 함유된 칼륨은 체내 나트륨 배출을 촉진해 혈압 안정과 체내 부기 완화에 기여한다. 아울러 철분 성분도 포함하고 있어 주기적으로 섭취할 경우 빈혈 예방과 피로 해소를 돕는 유익한 제철 과일로 평가받는다.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피부 관리를 위해 즐겨 먹었다는 일화로 ‘여왕의 과일’로 불려 온 무화과는 항산화 성분 면에서도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 무화과에는 폴리페놀을 비롯해 플라보노이드, 레스베라트롤 등 식물성 활성 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이 중 폴리페놀은 항산화 및 항염 작용을 통해 체내 세포 손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유해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 진행을 늦추고 피부 장벽 보호와 면역 체계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다만 생무화과는 과육이 매우 연하고 수분 함유량이 높아 유통 및 저장 기간이 짧다는 한계가 있다. 통상 구입 후 2~3일 이내에 소비하는 것이 권장되므로, 제철의 맛을 장기간 보존해 즐기려면 건무화과를 활용하는 것도 효율적인 대안이다. 말린 무화과는 쫄깃한 식감과 긴 보관 기간이 특징으로, 일상적인 과일 간식으로 활용하기 좋다. 그대로 먹는 것은 물론 요거트나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베이커리 재료로 더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간단한 조리법으로는 플레인 요거트에 건무화과와 견과류, 그래놀라를 더한 요거트볼이 대표적이다. 샐러드에는 건무화과를 잘게 썰어 치즈, 견과류와 함께 곁들이면 식감과 풍미를 더할 수 있으며, 크림치즈나 브리치즈와 함께 올려 간단한 핑거푸드로 활용하기도 좋다. 이 밖에도 오트밀이나 시리얼 토핑, 스콘·쿠키 등 홈베이킹 재료로 활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건무화과는 별도의 손질 없이 바로 섭취할 수 있어 바쁜 아침이나 간식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으며, 다른 건과일이나 견과류와 함께 소분하면 휴대용 간식으로도 활용하기 좋다.
  • 룩소르에서 베르사유를 거쳐 그라스까지…향수의 매혹적인 역사 [한ZOOM]

    룩소르에서 베르사유를 거쳐 그라스까지…향수의 매혹적인 역사 [한ZOOM]

    향수의 영어 단어 ‘퍼퓸’(Perfume)은 라틴어 ‘페르 푸뭄’(Per Fumum)에서 유래했다. ‘연기를 통해’라는 뜻이다. 즉, 향수의 시작은 액체가 아닌 연기였으며, 그 연기는 오롯이 신에게 바쳐지는 성물이었다. ‘페르 푸뭄’이라는 어원에는 이러한 태고의 역사적 사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향수의 역사는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긴 세월 동안 향수는 언제나 권력의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신전의 연기 (고대 이집트) 이집트 남부에 위치한 도시 룩소르.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나일강 변에 우뚝 솟은 ‘카르낙 신전’이다. 오래전 이 신전에서는 매일 세 번 신성한 향을 피웠다. 새벽에는 유향, 정오에는 몰약, 그리고 해가 질 무렵에는 복합 향료인 ‘키피’를 태웠다. 특히 키피는 와인, 꿀, 건포도, 유향, 몰약, 향신료 등 최대 16가지 천연 재료를 배합해 만든 물질로, 고대 에드푸 신전의 벽면에 그 정교한 제조법이 비문으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중요하게 다뤄졌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피어오르는 향 연기는 평범한 시각적 현상이 아니었다. 향을 피우는 것은 인간 세계의 불결함을 정화하고, 신이 지상으로 강림하여 인간의 기도를 돕도록 잇는 성스러운 매개체였다. 신관들은 해가 뜨기 전 나일강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신성한 향유를 바른 뒤에야 비로소 신전에 들어설 수 있었다. 향기는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의 세계도 관장했다. 미라를 만들 때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시더우드와 몰약을 채워 넣었고, 시나몬과 주니퍼 등을 배합해 향을 돋웠다. 죽은 이의 육신을 보존하는 숭고한 여정에도 늘 향기가 개입했던 것이다. 신과 인간 사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는 언제나 향기가 존재했다. ●악취와 향수 (베르사유) 고대 이집트에서 향기가 ‘신성함’의 상징이었다면, 중세와 근대 유럽의 향기는 ‘악취’를 감추기 위한 처절한 생존 수단이었다. 유럽 역사상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꼽히는 베르사유 궁전. 이 거대한 궁전에는 약 700여 개의 방이 있었고 왕실, 귀족, 관리 등 약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이며 살았다. 그러나 정작 궁전 내 화장실은 고작 9개에 불과했다. 결국 사람들은 계단, 복도, 정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배변을 해결했고, 베르사유의 화려한 사방은 지독한 악취로 물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프랑스에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면 피부 구멍이 열려 전염병에 걸린다’는 의학적 미신이 팽배해 사람들은 씻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절대군주 루이 14세조차 일생 동안 통목욕을 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청결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야사가 전해질 정도다. 이러한 위생 환경 속에서 향수는 사치품을 넘어, 숨 막히는 악취 속에서 버티기 위한 생존 필수품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좋은 향수를 소유하고 뿌릴 수 있다는 것은 곧 부와 권력, 그리고 고귀한 신분을 증명하는 척도가 되었다. 루이 14세가 전담 조향사에게 “요일마다 각기 다른 향수를 대령하라”고 지시한 일화는 유명하다. 평민은 물론 웬만한 귀족조차 향수 한 병 얻기 힘들었던 시절, 요일별로 맞춤형 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절대 권력의 또 다른 언어였다. ●악취에서 탄생한 향수 산업 (그라스) 베르사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인구 약 5만 명의 아름다운 언덕 도시 ‘그라스’가 나타난다. 규모는 작지만 오늘날 이 도시는 전 세계 향수 원액의 상당량을 공급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향수의 수도’다.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샤넬 No.5’의 핵심 원료인 재스민과 장미 역시 바로 이곳 그라스에서 재배되고 생산된다. 하지만 그라스가 처음부터 향기로운 도시는 아니었다. 중세 시대 이곳의 주력 산업은 ‘가죽 제조업’이었다. 그라스의 가죽 장인들은 뛰어난 무두질 기술로 명성이 높았으나, 가죽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역질 나는 악취가 늘 골칫거리였다. 이에 장인들은 가죽 특유의 비린내를 가리기 위해, 완성된 가죽 장갑을 라벤더, 재스민, 장미, 오렌지꽃 등 프로방스의 풍부한 꽃향기를 우려낸 욕조에 담그기 시작했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향수 역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며 그라스는 사양길에 접어든 가죽 제조업을 과감히 내려놓고 향수 산업에 명운을 걸었다.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던 향수 제조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도시 주변은 온통 꽃밭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1921년,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에게 ‘인공적이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여성미가 느껴지는 향수’를 주문하면서, 그라스의 꽃들을 베이스로 한 세기의 아이콘 ‘샤넬 No.5’가 탄생하게 된다. 지금도 그라스의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바람을 타고 퍼지는 은은한 향이 온몸을 감싼다.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향수병처럼 느껴질 정도다. ●냄새, 그 오래된 권력의 언어 고대 이집트의 신전에서 베르사유의 화려한 복도, 그리고 그라스의 흐드러진 꽃밭에 이르기까지 향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일관된 인간의 심리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향기는 언제나 무언가를 감추거나, 자신을 드러내거나, 혹은 타인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보이지 않는 도구였다. 악취를 가리고, 권위를 투사하며, 신성함과 세속을 구분 짓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좋은 향기는 고귀함의 증표였고, 불쾌한 냄새는 천함의 표식이었다. 오늘날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 수만 원대의 대중적인 향수부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명품 향수까지 향의 스펙트럼은 넓어졌지만 그 본질은 같다. 사람들은 그 정교한 향을 제 몸에 입히는 순간, 은연중에 자신의 가치가 격상되는 듯한 심리적 권력과 특별함을 경험한다. 신을 향해 피워 올리던 고대의 숭고한 연기는, 이제 나라는 존재를 타인에게 각인시키는 가장 감각적인 권력의 언어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 위에 자신의 가치와 욕망을 실어 보내려는 인간의 오랜 탐닉은 오늘도 소리 없이 계속되고 있다.
  • 4000년 전 이집트 공주들, ‘김부장’급 전투력 가졌다고? [사이언스 브런치]

    4000년 전 이집트 공주들, ‘김부장’급 전투력 가졌다고? [사이언스 브런치]

    고대 이집트 공주들 무덤 일부에서 활을 비롯한 무기들이 발굴됐다. 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자들은 무덤 속 무기들이 단순한 부장품일지, 실제로 쓰던 도구였을지를 두고 논쟁을 벌여왔다. 고고학계의 오랜 수수께끼 중 하나였던 이 물음에 대해 중왕국 시대 왕족 여성 미라들을 분석한 결과 해답을 내놨다. 이집트 베니수에프대 고고학과, 이집트 관광·유물부 이집트과, 영국 런던 생물고고학 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여성 왕족들은 활쏘기나 사냥처럼 숙련된 기술과 상당한 체력을 요구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고 19일 밝혔다. 왕족 여성들의 미라를 분석한 결과 뼈가 강도 높은 근육 사용을 견디도록 발달한 방식이 무덤에서 발견된 무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고고학 분야 국제 학술지 ‘최신 환경 고고학’ 7월 17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1890년대에 다슈르에서 발굴된 왕족 미라 6구를 대상으로 했다. 다슈르는 피라미드와 수직 갱도 무덤이 모여 있는 복합 유적으로 미라들은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다가 2020년 이집트 박물관 유물 정리 사업 중 지하 수장고에서 다시 발견됐다. 미라 6구 중 4구는 자매지간으로 파라오 아메넴하트 2세의 딸들이다. 이타 공주 옆에, 켄메트 공주, 이타웨레트 공주 곁에는 사트하토르메리트 공주로 추정되는 여성이 함께 묻혔는데 이들의 무덤에는 독특하게도 활과 화살 같은 부장품이 함께 매장됐다. 특히 이타 공주의 관에는 유난히 아름답게 장식된 단검이 발굴됐다. 나머지 두 왕족인 노우브호테프 공주와 호르 왕 무덤에서도 비슷한 부장품이 발견됐다. 6구 모두 미라로 처리됐지만 연조직은 모두 가루가 돼 부스러졌고 머리뼈를 포함한 일부 뼈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뼈는 상태가 양호해 사망 당시 나이와 키, 성별을 추정하고 질병이나 부상의 흔적까지 밝혀낼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이타 공주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으로 상체 근육이 붙는 자리가 유난히 발달해 있었는데 곤봉이나 단검, 활 같은 무기를 습관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에게 관찰될 수 있는 흔적이었다. 켄메트 공주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여성으로 뼈가 얇아지는 징후를 보이면서도 인대가 붙는 자리는 매우 튼튼했다. 이타웨레트 공주는 20~30대 초반 여성으로 갈비뼈와 발뼈가 부러졌다가 회복된 흔적이 있었으며 골격은 숙련된 궁수와 같았다. 공주 자매들의 뼈에서 확인된 강건한 근육 부착부는 무덤 속 무기의 사용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신체활동을 활발히 했음을 알 수 있다. 노우브호테프 공주와 호르 왕 역시 능숙한 궁수로 확인됐다. 이들의 팔에서 두드러진 발달이 확인됐는데 이는 활시위를 당기거나 무기를 안정적으로 잡는 것과 같은 반복적이고 고강도인 동작과 관련이 있으며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의 무덤에 활, 화살, 곤봉이 있었던 이유도 단순히 상징적 부장품이 아니라 생전에 실제로 사용했던 무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타웨레트 공주의 부러진 갈비뼈는 가격당했거나 높은 곳에 떨어져 생겼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냥, 군사 훈련, 고된 육체 활동 등의 원인으로 부상이 일상적이었고 감염과 영양 결핍의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됐는데 의외로 부상 부위가 잘 아물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골절이 어긋남이나 감염 없이 회복된 점을 볼 때 치료가 골절 치료, 부목 고정, 상처 치료법을 기록한 고대 이집트 의학사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에 담긴 지식 수준과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제이나브 하셰시 이집트 베니우에프대 박사는 “이번 연구는 단순히 고대 이집트 왕족의 신원을 밝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당시 환경과 그들의 온전한 생애를 최대한 상세하게 복원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며 “과학적 분석을 넘어 유해를 보존하고 교육과 가상 전시를 위한 3차원 프린트 모형을 제작해 전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씨줄날줄] 양산의 역사

    [씨줄날줄] 양산의 역사

    어제 아침 서울신문엔 양산을 쓴 젊은 남성의 모습이 담긴 석 장의 사진이 실렸다. 폭염이 거세지자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양산이 남성에게도 ‘필수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살인적 더위를 피하는데 남녀가 어디 있느냐”는 기사 속 ‘양산맨’의 목소리가 설득력 있다. 양산의 원조는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2498년 개창한 제5왕조 파라오의 행차에 시종이 긴 장대로 커다란 차양을 펼쳐 든 모습이 보인다. 햇볕을 차단하는 기능도 없지 않았지만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다. 이런 전통은 아시리아와 페르시아로 이어졌다. 이 차양은 인도에서 ‘차트라’라고 불리며 불교의 상징이 된다. 차트라는 호불왕(好佛王)이라는 BC 3세기 아쇼카왕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산치대탑을 비롯해 아쇼카왕이 세운 불탑의 꼭대기에 차트라가 표현된 것이다. 이후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며 차트라는 산개(傘蓋) 또는 보개(寶蓋)로 번역됐다. 불탑의 최상층을 이루는 금속제 장식 부분을 상륜부라 부른다. 상륜부를 포함한 불탑의 양식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졌다.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보주로 구성되는 상륜부에서 보개가 곧 차트라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무덤인 불탑을 차양으로 보호해 특별한 존재가 모셔져 있음을 상징한다. 고대 그리스에선 스키아데이온이라는 이름의 산개를 귀부인들이 햇볕을 가릴 때 썼다. 로마에선 황제나 귀족의 상징으로 움브라쿨룸이라 불렀으니 오늘날 우산이나 양산을 뜻하는 엄브렐러의 어원이 됐다. 전통은 가톨릭으로 이어져 금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는 의장용 산개 옴브렐리노를 지금도 쓴다. 조선시대 산개의 모습은 단원 김홍도의 기록화 ‘평안감사향연도’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장가가는 모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산개가 특별한 날, 특별한 용도로 쓰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보면 양산의 혜택을 더 많이 받은 것은 여성보다 남성이었던 듯싶다.
  • 앙리 루소, B급 화가가 거장이 된 이유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앙리 루소, B급 화가가 거장이 된 이유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취미로 그림 시작했던 세금 징수원“소묘도 못하는 삼류 화가” 조롱받아상상력·직관으로 현대적 예술가로사진기 등장에 회화의 ‘재현’ 빛 잃어초현실주의 내다본 위대한 개척자“원근법도 무시하고 소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삼류 화가.”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앙리 루소(1844~1910)에게 내린 평가는 냉혹했다. 당시 미술아카데미 기준에서 볼 때 루소의 그림은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루소는 취미로 그림을 시작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독학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눈을 감고 발로 그린 그림”이라며 비웃음을 당했던 루소의 작품이 뒤늦게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가 남긴 명언들을 따라가며 B급 화가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재평가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보겠다. 첫 번째 명언 “나는 미술학교나 거장의 화실에서 배운 적이 없다. 자연만이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이 말은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 화가 루소의 예술 철학을 보여 준다. 당시 파리에서 화가로 인정받으려면 아카데미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 등을 익혀야 했다. 루소는 남의 화법을 따르기보다 자연이 주는 영감과 직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루소의 발언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계기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71년 루소는 파리 외곽 통행료 징수소의 하급 세금 징수원이 되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세관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지만 실제 일과는 마차에 실린 화물의 무게를 정확히 재고 세금을 거두는 반복적인 업무의 연속이었다. 그는 삭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주말마다 붓을 들었다. 비록 여가시간에만 그림을 그리는 일요일의 화가였지만 마음속에는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류 미술계의 벽은 높았다. 루소는 1885년 공식 살롱전에 두 점의 작품을 출품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참가비 15프랑만 내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독립 예술가 전시회(살롱 데 앵데팡당)에 참여하며 화가로서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카니발의 밤’은 그의 나이브 아트(Naïve Art·소박파) 화풍을 보여 주는 초기 대표작이다. 소박파란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들이 자신만의 순수한 직관과 본능으로 그린 회화 양식을 말한다. 화면에는 어둡고 신비로운 겨울 숲을 배경으로 카니발 복장을 한 남녀가 팔짱을 끼고 서 있다. 두 인물의 밝고 화려한 옷차림은 어둠에 잠긴 숲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낯설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던 루소는 인물의 해부학적 비례나 공간감보다 의상의 단추, 모자, 주름 같은 세부 장식에 집중했다. 기존 회화의 기준에서는 실력 부족으로 보였지만 제도권 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시선과 시적인 분위기가 살아 있다. 그는 배운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그렸던 것이다. 1886년 살롱 데 앵데팡당에 이 작품이 걸렸을 때 원근법의 무시와 인형처럼 뻣뻣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 표현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은 그의 독창적인 무기교의 미학이 드러난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명언 “내 마음이 너무 열려 있어서 나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발언은 루소가 왜 순진한 화가로 불렸고 소박파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고백은 그가 63세이던 1907년 은행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을 때 담당 판사에게 쓴 탄원서에 나온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루소는 자신이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인의 부탁을 도와주다가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루소의 변호인은 그가 사기를 계획할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루소의 그림들을 법정에 가져와 배심원단에게 보여 주었다. 변호인은 “이렇게 유치해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떻게 은행 사기 시스템을 이해하고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겠는가?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서 속은 것뿐”이라고 변론했다. 배심원들은 루소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천진난만함에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약점이 되었던 루소의 순수한 영혼은 예술에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강점이 되었다. 이를 한 편의 시처럼 보여 주는 작품이 ‘잠자는 집시’다. 한 집시 여인이 황량한 사막 위에서 만돌린과 물항아리를 곁에 둔 채 깊이 잠들어 있다. 차가운 보름달이 사막을 푸르게 물들이는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사자 한 마리가 조용히 여인에게 다가온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과 공포가 감돌아야 마땅한데 신기하게도 정적과 평온이 느껴진다. 사자는 먹잇감을 덮치는 맹수가 아니라 낯선 존재 앞에서 멈춰 선 신비로운 방문자처럼 보인다. ‘잠자는 집시’는 현실의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과 자연, 약자와 강자가 조화를 이루는 꿈같은 세계를 그려냈다.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 초대 관장 앨프리드 바는 이 작품을 “19세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그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세 번째 명언 “피카소, 우리는 당대 가장 위대한 두 명의 화가라네. 자네는 이집트 스타일의 거장이고 나는 현대 스타일의 거장이지.” 루소가 젊은 피카소에게 건넨 이 말은 노화가의 허세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본능적으로 꿰뚫어 본 통찰이며 그의 자존감을 보여 주는 명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말은 1908년 11월 피카소가 몽마르트르 작업실 바토 라부아르에서 루소를 위해 열어 준 전설적인 파티에서 나왔다. 피카소는 벼룩시장에서 단돈 5프랑에 팔리던 루소의 대형 여성 초상화를 발견하고 작품에서 원초적인 힘과 독창성을 보았다. 감동을 받은 피카소는 루소에 대한 존경과 장난기 어린 애정을 담아 그를 주빈으로 초대했다. 이 자리에는 파리 전위예술계를 이끌던 인물들이 함께했다. 파티가 무르익을 때 한껏 들뜬 루소는 피카소에게 자신들이 “당대 가장 위대한 두 명의 화가”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집트 스타일은 피카소가 몰두했던 초기 입체주의와 원시미술의 경향을 가리킨다. 고대 이집트 벽화가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조합했듯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통해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너뜨리고 여러 시점을 한 화면 안에 결합했다. 루소는 직관적으로 피카소의 실험이 낡은 회화 규범을 깨뜨리는 혁명임을 알아본 것이다. 한편 루소는 자신의 화풍을 현대 스타일이라고 확신했다. 피카소가 시점의 해방을 통해 현대미술의 문을 열었다면 그는 상상력의 해방을 통해 회화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까지 품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루소가 마흔여섯 살에 그린 ‘나 자신, 초상-풍경’은 그가 일찍부터 스스로를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세워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는 검은 정장과 예술가의 상징인 베레모 차림으로 한 손에는 붓을, 다른 손에는 팔레트를 들고 화면 한가운데 당당히 서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물의 크기다. 루소는 주변 풍경보다 훨씬 크게 자신을 그렸다.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한 표현이지만 루소는 거리에 따른 실제 크기보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대상을 크게 그렸다. 마음의 크기대로 그리기는 중세 종교화에서 예수나 성인들을 상징적으로 크게 그렸던 방식과도 닮아 있다. 그의 뒤편에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세워진 에펠탑과 하늘을 나는 열기구, 센강 위의 최신식 철교와 만국기로 장식된 증기선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19세기 말 파리가 맞이한 산업화와 기술문명의 상징물이다. 루소는 현대적 풍경 한가운데 자신을 거인처럼 세워 두었다. 세상이 그를 아마추어 화가라고 비웃던 시절에도 그는 자신을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현대적 예술가로 그리고 있었다. 19세기 중반 등장한 사진기는 대상을 똑같이 복사하는 회화의 오랜 재현 기능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 당대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회화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했고 회화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루소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미술계의 고정관념이나 이론적 굴레에 갇히지 않은 가장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는 순수한 상상력과 직관만을 믿고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만들어 냈다. 그 정점이 그의 유작 ‘꿈’이다. 루소는 평생 정글에 가 본 적이 없었지만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을 자주 드나들며 이국적인 열대 식물들을 관찰했고 백과사전의 삽화와 상상력을 조합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야생의 정글을 창조했다. 붉은 소파, 잠든 여인, 사자와 코끼리, 피리 부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 그림은 훗날 초현실주의자들이 주목하게 될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앞서 열어 보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10년 봄, ‘꿈’의 전시를 앞두고 평생 수많은 조롱과 냉대를 견뎌야 했던 노 화가는 이번만큼은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이해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절친한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편지를 보내 진심으로 부탁했다. “부디 자네의 빛나는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내가 평생 받았던 모든 모욕과 상처에 대한 멋진 복수를 해 줄 것이라고 믿네.” 아폴리네르는 루소의 요청에 뜨겁게 응답하며 1910년 전시회 평론에서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단언컨대 올해는 아무도 감히 비웃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전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10년 9월 2일, 루소는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미술계에는 기술이 뛰어난 화가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독보적인 개성과 생명력으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 낸 화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루소는 그 드문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미술사는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던 아카데미 화가들이 아니라 솔직함과 순수함으로 견고한 규칙을 깨부순 독학 화가의 손을 들어 주었다. B급 화가였던 루소는 오늘날 새로운 회화 언어를 창조해 낸 위대한 개척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손흥민 6위 등극, 호날두 45위로 털썩”…월드컵 최고 ‘황금비 미남’ 누구?

    “손흥민 6위 등극, 호날두 45위로 털썩”…월드컵 최고 ‘황금비 미남’ 누구?

    ‘2026 북중미월드컵 최고의 미남 축구 선수는 누구일까.’ 황금비 분석 결과 아르헨티나의 로드리고 데 파울이 출전 선수 중 가장 잘생긴 얼굴로 꼽혔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손흥민은 6위, 이강인은 15위로 나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1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인공지능(AI) 기업 ‘드림AI’는 이번 월드컵에 나서는 축구 선수들의 얼굴을 황금비로 분석해 그 순위를 공개했다. 황금비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미의 기준으로 활용된 1대 1.618의 비율을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비롯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수치화할 때 주로 인용된다. 연구진은 월드컵 출전 선수 중 구글 검색량이 많은 150명을 대상으로 얼굴의 대칭성과 비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로드리고 데파울이 황금비 일치율 74.18%를 기록해 전 세계 축구선수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독일의 카이 하베르츠(74.10%)가 2위, 영국의 노니 마두에케(73.29%)가 3위에 올랐다.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73.27%)와 브라질의 엔드릭(73.25%)은 각각 4위와 5위를 기록했다. 한국 선수들의 도드라진 성적도 눈길을 끈다. 손흥민은 6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강인 역시 15위에 랭크되며 높은 미적 비율을 인정받았다. 반면 평소 철저한 외모 관리로 유명한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70.98%로 45위에 그쳤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드림AI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분석은 개인의 스타일이나 상품성, 인기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얼굴의 구조적 비율만 평가한 것”이라며 “호날두 순위가 낮게 나온 점은 황금비가 얼마나 구체적인 기준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편 축구선수들의 전반적인 황금비 점수는 할리우드 배우들에 비해 낮은 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의 성형외과 전문의 줄리언 드 실바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성으로 꼽힌 배우 애런 테일러존슨은 93.04%의 압도적인 일치율을 보였으며 루시엔 라비스카운트(92.41%), 폴 메스칼(92.38%) 등이 뒤를 이었다.
  • 인류 문명 탄생 ‘비옥한 초승달 지대’ 형성의 비밀 풀었다 [달콤한 사이언스]

    인류 문명 탄생 ‘비옥한 초승달 지대’ 형성의 비밀 풀었다 [달콤한 사이언스]

    학창 시절 세계사 수업에서 인류 4대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4대 문명이라고 하면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 문명,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한 인도 문명, 황허강의 중국 문명, 그리고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메소포타미아는 비옥한 토지와 관개가 가능해 초기 문명 형성의 핵심적 기반이 됐다. 미국 에너지기업 셰브론 국제 탐사·생산부, 셰브론 기술센터, 텍사스 오스틴대 지구과학부, 유타 주립대 환경·사회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지구과학과, 호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 지구과학부 공동 연구팀은 동지중해로 흘러갔던 강 두 개가 합쳐져 현대 유프라테스강을 형성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지구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6월 2일 자에 실렸다. 유프라테스강은 약 200만 년 전 신생대 4기인 홍적세의 초기 인류 조상 흔적부터 기원전 3500년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도시들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와 오랫동안 밀접하게 얽혀 있다. 튀르키예에서 페르시아만까지 약 3000㎞에 걸쳐 뻗어 있는 유프라테스강의 초기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 유프라테스강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서아시아 하천 시스템의 시공간적 진화와 범람원에서 번성했던 인류 사회의 발달 과정을 추적하는데 중요해 많은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연구팀은 매몰된 퇴적물의 지진파 영상, 고대 퇴적물 지도, 하천 퇴적물 이동 모델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고(古) 카라수와 고 무라트라는 두 개의 독립된 강이 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 영토를 가로질러 약 540만 년 전 ‘메시니아 염분 위기’ 동안 부분적으로 건조해진 지중해 분지로 흘러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메시니아 염분 위기(MSC)는 약 597만 년 전부터 533만 년 전 사이에 발생한 지질학적 사건이다. 이 시기에 동지중해가 부분적으로 건조해지면서 100만㎢ 이상의 증발암(evaporites)과 관련된 퇴적물이 축적되는 한편 대규모의 지역적 하천 하방침식을 촉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MSC 이후 발생한 지각 변동으로 고 무라트강이 페르시아만을 향해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얼마 후 고 카라수강이 이에 합류했다. 이런 물길 전환이 결과적으로 단일 하천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는 약 160만 년 전 현재처럼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드는 유프라테스강으로 진화했다. 연구를 이끈 앤드루 매도프 셰브론 수석 지질학자는 “이번 연구 결과는 지역의 지각 변동이 두 물길의 방향을 바꾸었고 결과적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발달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더 많은 현장 관측과 개선된 연대 측정법을 활용한 추가 연구로 고대 역사를 검증하고 더 정교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사상자 약 9000명, 사망자 2020명”…‘전쟁광’ 이스라엘, 결국 사고쳤다 [핫이슈]

    “사상자 약 9000명, 사망자 2020명”…‘전쟁광’ 이스라엘, 결국 사고쳤다 [핫이슈]

    이스라엘의 맹폭을 받는 레바논에서 사망자가 총 2020명, 부상자가 6436명에 이른다는 집계 결과가 나왔다. 레바논 보건부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지난 3월 2일부터 국내 여러 지역에 계속된 이스라엘군의 폭격 희생자와 국경에서 발생한 교전 사상자를 모두 합친 통계”라고 밝혔다. 대규모 사상자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2024년 11월 27일 체결한 휴전 협정 이후 레바논을 향해 최대 규모의 로켓포 공격을 시작한 뒤 전투가 격화하면서 발생했다. AFP 통신은 “지난달 2일 교전 이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전국을 향한 군사작전과 공격을 확대해 왔다”고 보도했다. 가장 최근 공격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티레 지구의 마루브 마을을 공습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근 카나에서도 5명이 사망했으며 알 바주리야, 알 콰일라, 바플리예 등 4개 마을에 대한 폭격도 감행해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이날 이스라엘방위군(IDF)은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 준비를 마친 로켓 발사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휴전 첫날에도 대공습…최소 300명 사망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한 첫날에도 레바논을 폭격해 300여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르몽드 등 외신에 따르면 레바논 보건부는 이스라엘이 지난 8일 베이루트 등 레바논 전역에 가한 공습으로 최소 300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약 115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베이루트에서만 9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지난달 2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이 시작된 이후 하루 기준 가장 많은 인명 피해다.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군은 민간인이 거주하는 구역을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이스라엘군은 공격 몇 시간 전 레바논 남부 지역과 베이루트 남쪽 등에만 공습 경고를 내리고, 베이루트 중심부에는 경고도 없이 폭격을 퍼부어 피해를 키웠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무도한 살상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볼커 튀르크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이날 레바논에서 벌어진 살상·파괴의 규모는 끔찍하다”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과의 휴전 체결 불과 몇 시간 뒤에 이런 대학살이 일어난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분노했다. 튀르키예 외무부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격을 격화해 막대한 인명 피해를 만들고, 인도주의적 여건을 더욱 악화시킨 것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집트 외무부는 “레바논을 공격하는 것은 지역을 혼돈으로 몰아넣으려는 시도”라며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노(NO)브레이크’ 네타냐후, 이란 향해 “아직 할 일 남아”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이 2주간 휴전 대상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포함할지를 두고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에 대한 추가 공습을 예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1일 공식 영상 성명에서 “이란의 목을 조이고 있다”면서 “이란 정권이 휴전을 간청하고 있지만 아직 이란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겨냥한 군사행동을 계속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싸우고 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스라엘은 레바논 국경 근처의 주민들을 위해 안보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남부 영토 점령을 공언한 상태다. 한편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오는 1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첫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협상은 지난 10일 양국 주미대사 간 첫 전화 접촉을 계기로 성사됐다. 레바논 대통령실은 이번 협상에 대해 “휴전을 확보하고 본격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의 하나”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이 레바논과의 회담을 승인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협상에서는 헤즈볼라 무장 해제가 핵심 의제로 논의될 전망이다.
  • 한국 조사단, 람세스 2세 이름 담긴 ‘카르투슈’ 발굴

    고대 이집트의 황금기를 이끈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3)의 이름을 담은 상형문자 기호를 한국 조사단이 발굴했다. 국가유산청 소속 기관인 한국전통문화대는 최근 이집트 룩소르 유적 라메세움 신전 탑문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람세스 2세의 이름을 타원형 윤곽으로 둘러싼 ‘카르투슈’를 발견했다고 9일 밝혔다. 카르투슈는 형태와 파라오 이름을 확인하면 정확한 시대를 구분할 수 있어 연구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라메세움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세운 장제전(선대 파라오의 제사를 지내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설된 곳)이다. 과거 프랑스 조사단이 라메세움 신전 지성소(신전 맨 안쪽에 있는 최고 성소)를 발굴할 때 람세스 2세의 카르투슈를 발견한 사례가 있지만, 탑문에서 발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히샴 엘레이시 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 사무총장은 “기존에 발견된 카르투슈와 형태적 차이가 있어 신전 건축물들의 건립 순서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람세스 2세의 영토 확장 범위를 입증하는 새로운 지명이 새겨진 부재와 더불어 석재 운반과 축조 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토층까지 확인돼 향후 탑문 원형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도 확보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조사단은 한국 정부가 2023~2027년 추진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ODA) 사업 ‘이집트 룩소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 관광자원 개발 역량강화’의 일환으로 이 일대를 조사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 실무진의 역량 강화를 위해 부재 실측과 3차원(3D) 스캐닝 기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이집트 ‘람세스 2세’ 이름 담은 상형문자 한국 조사단 손에 발굴

    이집트 ‘람세스 2세’ 이름 담은 상형문자 한국 조사단 손에 발굴

    고대 이집트의 황금기를 이끈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3)의 이름을 담은 상형문자 기호를 한국 조사단이 발굴했다. 국가유산청 소속 기관인 한국전통문화대는 최근 이집트 룩소르 유적 라메세움 신전 탑문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람세스 2세의 이름을 타원형 윤곽으로 둘러싼 ‘카르투슈’를 발견했다고 9일 밝혔다. 카르투슈는 형태와 파라오 이름을 확인하면 정확한 시대를 구분할 수 있어 연구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라메세움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세운 장제전(선대 파라오의 제사를 지내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설된 곳)이다. 과거 프랑스 조사단이 라메세움 신전 지성소(신전 맨 안쪽에 있는 최고 성소)를 발굴할 때 람세스 2세의 카르투슈를 발견한 사례가 있지만, 탑문에서 발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히샴 엘레이시 이집트 유물최고위원회 사무총장은 “기존에 발견된 카르투슈와 형태적 차이가 있어 신전 건축물들의 건립 순서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람세스 2세의 영토 확장 범위를 입증하는 새로운 지명이 새겨진 부재와 더불어 석재 운반과 축조 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토층까지 확인돼 향후 탑문 원형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도 확보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조사단은 한국 정부가 2023~2027년 추진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ODA) 사업 ‘이집트 룩소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 관광자원 개발 역량강화’의 일환으로 이 일대를 조사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 실무진의 역량 강화를 위해 부재 실측과 3차원(3D) 스캐닝 기술 교육을 진행하고 룩소르박물관 디지털화 사업도 돕고 있다.
  • AI 시대 외국어 배우는 이유…“합리적인 자아·사회의 열쇠”

    AI 시대 외국어 배우는 이유…“합리적인 자아·사회의 열쇠”

    기원전 196년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한 로제타석은 고대 그리스어, 이집트 민중문자, 이집트 신성문자라는 세 가지 다른 기호로 동일한 텍스트를 기록했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이 다중언어 구사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정신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심리언어학자인 저자는 기원전부터 이어오고 있는 다중언어의 역사 속에서 그동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중언어의 놀라운 힘을 소개한다. 저자 자신이 루마니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러시아어와 영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거기다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등 10개가 넘는 언어를 구사하는 다중언어 능력자다. 저자는 “다른 언어를 쓸 때마다 또 다른 자아가 된다”고 설명한다. 아는 언어가 많아질수록 정보를 추출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생각과 감정, 인식과 기억, 의사결정, 아이디어와 통찰력에 더해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할 때 ‘정직의 목소리’가 커지며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소개한다. 오랫동안 과학계에서는 뇌가 언어를 옮겨갈 때 하나의 언어를 꺼두고 다른 언어를 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중언어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어떤 단어를 들으면 비슷한 발음의 다른 언어를 동시에 떠올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뇌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항상 활성화된 상태로 남아 있어서 저절로 동시에 일을 처리한다는 ‘병렬 활성화’에 집중하며 다중언어 사용자의 뇌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나아가 저자는 언어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도 언어를 폭넓게 살핀다. 사회 구조는 물론 정치, 역사, 과학에서도 언어의 힘이 작용하며 수학, 인간의 DNA 코드 등도 언어의 눈높이로 해석한다. “상징체계가 우리 정신의 코드이고 우리 정신이 우주로 통하는 창문이라면, 언어는 우주의 신비를 여는 열쇠를 쥐고 있다. 다중언어 사용은 우리가 자물쇠에 딱 맞는 열쇠를 찾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언어를 번역해주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AI의 한계를 초월할 힘이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살 빼려고 ‘이것’ 먹는다…끔찍한 디톡스 다이어트 5가지 [건강을 부탁해]

    살 빼려고 ‘이것’ 먹는다…끔찍한 디톡스 다이어트 5가지 [건강을 부탁해]

    세상에는 ‘오만가지’ 다이어트 방법이 존재하며 이 중에는 체내의 불필요한 성분들을 빼내는 디톡스(해독) 다이어트도 포함돼 있다. 디톡스 다이어트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촌충의 알을 삼키거나 세제 성분을 먹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들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다. 뉴욕 의과대학 의학 강사이자 공인 영양사 지아나 디마리아는 지난 9일 미국 뉴욕포스트에 “디톡스 식단이 탈수, 전해질 불균형, 영양실조, 기력 저하, 섭식 장애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디톡스 식단이 몸을 초기화하고, 몸에 남긴 악영향을 제거해 준다는 생각은 잘못됐으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뉴욕포스트가 소개한 ‘끔찍한’ 디톡 다이어트 5가지 ▲기생충 다이어트 촌충은 사람이나 동물의 장에 기생하는 기생충의 한 종류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 당시 디톡스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촌충 요법은 살아있는 촌충의 알이나 유충이 든 알약을 삼키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이 촌충의 알이나 유충을 먹으면 디톡스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는 기생충이 장 안에서 부화해 음식 속 열량을 먹어 치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기생충이 몸 안을 돌아다니며 칼로리를 먹으면서 섭취한 음식이 지방으로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고 믿은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다이어트 방법을 시도한 사람들에게서는 끔찍한 결과가 나왔다. 심각한 영양실조와 빈혈, 기생충에 의한 치명적인 감염, 최악의 경우에는 사망하거나 목구멍에 기생충의 미끼가 달린 관을 넣어 촌충을 유인해 빼내야 했다. ▲세탁 세제 섭취 및 목욕 2023년 SNS에서는 세탁 세제 성분인 붕사(Borax)를 먹으면 체내 염증이 줄고 관절 통증이 나아진다는 거짓 정보가 확산했다. 이에 사람들은 물과 커피, 스무디 등에 붕사를 넣어 마셨고 일부는 중금속과 기생충, 독소 등을 제거하는 디톡스 효과를 기대하며 붕사 목욕을 하기도 했다. 화학명 사붕산나트룸인 붕산은 알칼리성 물질로, 물을 부드럽게 만들어 세제가 잘 작동하도록 돕는 성분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붕산을 화장품 사용에 제한하고 있으며, 피부에 오래 닿으면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당연히 섭취는 금지돼 있다. 전문가들은 붕사를 섭취할 경우 심각한 위장 장애와 신부전,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비어있는 갈대를 이용한 관장 기원전 1500년, 이집트인들은 체내 독소와 불필요한 열량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위해 갈대를 이용했다. 그들은 나일강에 몸을 담그고 속이 빈 갈대를 항문에 넣은 뒤 액체를 주입해 배변을 유도했다. 고대 이집트 의학 문헌에도 동물 가죽 주머니나 방광에 갈대를 연결해 액체를 주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대 의학에서 관장은 변비를 해소하고 장의 내용물을 제거하며 장에 찬 가스 배출을 도와 더부룩함을 감소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관장이 독소를 제거하거나 질병을 치료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마스터 클렌즈 디톡스 다이어트 열풍 당시 가장 유명했던 디톡스법이다. 마스터 클렌즈는 레몬즙과 메이플 시럽, 물, 고춧가루를 섞은 액체를 10일간 마시는 방식이며, 이에 더해 소금물과 허브차를 마셔 몸 안의 노폐물을 강제로 배출한다. 마스터 클렌즈는 1940년대 자연요법 치료사 스탠리 버로우즈가 체내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개발했고, 월드스타 비욘세가 2006년 영화 ‘드림걸스’ 촬영을 앞두고 마스터 클렌즈 방식으로 2주 만에 9㎏을 감량했다고 밝히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스터 클렌즈가 극단적인 영양소 제한인 탓에 몸의 자연 디톡스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양배추 수프 다이어트 섬유질과 수분이 풍부한 양배추를 이용해 다이어트를 하면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을 것 같지만, 극단적인 체중 감량은 체지방이 아닌 근육과 수분의 배출만 유발할 수 있다. 양배추 수프 다이어트는 1980~90년대에 유행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양배추 수프가 몸속 수분을 배출하고 부기를 줄이며 배변을 촉진해 소화기관을 정화한다고 믿었다. 이 다이어트 방식은 현존하는 원푸드 다이어트와 유사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단기간에 체중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복부 경련과 피로, 어지럼증, 두통, 영양실조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디마리아는 “빠지는 체중은 수분 무게일 뿐, 내장지방이 서서히 줄어드는 건강한 체중 감량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 “인류 고대문명, 외계인이 만들었다” 일평생 외친 작가 별세… 향년 90세

    “인류 고대문명, 외계인이 만들었다” 일평생 외친 작가 별세… 향년 90세

    세계 7대 불가사의 등 고대문명이 외계인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는 외계문명기원설을 주장해 명성을 얻은 스위스 작가 에리히 폰 데니켄이 90세를 일기로 지난 1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AP·로이터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데니켄 측은 고인이 이날 스위스 중부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1935년 4월 스위스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8년 스위스 한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심야에 쓴 원고를 모아 ‘미래의 기억’(한국어판 제목은 ‘신들의 전차’)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마야인과 고대 이집트인이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으로부터 첨단 기술을 전수받아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인류가 과학 발전에 힘입어 달에 첫발을 내딛으려던 참이었는데, 그의 책은 과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며 많은 독자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고인은 이후 ‘신들의 전차’와 유사한 2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며 역사적·과학적 증거는 무시한 채 사실과 환상을 섞은 문학적 틈새 장르를 개척했다. 그의 책들은 30개 이상 언어로 번역돼 7000만부 가까이 팔렸고,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힌 스위스 작가 중 한 명이 됐다. 이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오르면서 그는 초자연 현상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명성을 얻었으나, 과학계로부터는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유명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칼 세이건은 “나는 데니켄의 저작만큼 논리적·사실적 오류로 가득 찬 최근의 책을 알지 못한다”고 혹평했다. 1973년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표지 기사 제목을 ‘데니켄의 사기극’으로 달기도 했다. 명성을 얻기 전 고인의 삶이 평탄치는 않았다. 그는 1954년 학교를 졸업한 후 웨이터와 바텐더로 일하는 동안 사기 혐의로 기소돼 두 차례나 짧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첫 책을 집필하면서도 해외여행 비용을 마련하려고 자신의 지배인으로 일하던 호텔 돈을 횡령했다가 1970년 2월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1년간 복역했다. 그러나 출소할 때쯤엔 첫 책의 성공으로 상당한 부가 축적된 상태였다. 고인은 1970년대 내내 이집트와 인도, 라틴 아메리카의 고대 문화에 매료돼 이 지역들을 수없이 탐사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에도 외계 생명체가 과거 여러 차례 지구를 방문했으며, 앞으로도 다시 방문할 것이라는 믿음을 굳건히 지켰다. 고인은 또 생전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쳤다. 자신의 이론을 홍보하는 고고학·우주비행학·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협회(AASRA)를 공동 설립했다. 그의 생전 마지막 주요 사업은 책을 기반으로 한 테마파크 개장이었다. 2003년 5월 스위스에서 문을 연 ‘미스터리 파크’는 그러나 방문객들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 몇 년 만에 문을 닫았고, 지금은 융프라우 파크로 이름의 바뀌었다. 고인은 65년간 함께한 아내 엘리자베스 스카야와 딸 코르넬리아, 두 명의 손주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 “촌충 알 삼켜 뱃속에서 키운다”…영양실조·사망 부른 최악의 해독 다이어트는?

    “촌충 알 삼켜 뱃속에서 키운다”…영양실조·사망 부른 최악의 해독 다이어트는?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연말 과식을 만회하려고 몸을 정화하는 해독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이런 해독 열풍은 수천 년 전부터 있었지만, 촌충 알을 삼키거나 세제 성분을 먹는 등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방법들도 많았다. 뉴욕포스트는 9일(현지시간) 역사상 가장 이상한 해독법을 소개했다. 뉴욕 의과대학 의학 강사인 공인 영양사 지아나 디마리아는 해독 식단이 탈수, 영양 불균형, 영양실조, 기력 저하, 섭식 장애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큰 오해는 해독 식단이 몸을 새롭게 하고 나쁜 식습관의 악영향을 없앤다는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살 빼려고 촌충 알 삼켜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에 시작된 촌충 요법은 살아있는 촌충 알이나 유충이 든 알약을 삼키는 방식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장 안에서 부화한 기생충이 자라면서 음식의 ‘여분’ 열량을 대신 먹어 날씬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촌충을 삼킨 사람들은 심각한 영양실조와 빈혈을 겪었다. 최악의 경우 사망하거나 목구멍에 미끼가 달린 관을 넣어 벌레를 유인해 빼내야 했다. 빈 갈대로 관장…장 세척항문을 통해 액체를 주입해 배변을 유도하고 장을 씻어내는 관장은 기원전 1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에 몸을 담그고 속이 빈 갈대로 물을 주입했다. 고대 이집트 의학 문헌에도 동물 가죽 주머니에 연결된 갈대로 액체를 넣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의사들은 심한 변비를 해소하거나 대장내시경 검사 전 장을 비우기 위해 관장을 사용하지만, 관장이 독소를 제거하거나 질병을 치료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SNS서 유행한 붕사 섭취2023년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세탁 세제에 쓰이는 붕사를 먹으면 염증이 줄고 관절 통증이 나아진다는 거짓 정보가 퍼지며 붕사 섭취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중금속, 방사선, 기생충, 독소를 없애려고 붕사 탄 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붕사를 먹으면 심각한 위장 장애, 신부전, 심지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붕사 목욕은 발진, 극심한 가려움증, 피부 벗겨짐을 일으킬 수 있다. 1980년대 양배추 수프 열풍양배추 수프 식이요법은 1980~90년대 유행했다. 높은 섬유질과 많은 수분이 몸속 수분을 빼내고 부기를 줄이며 배변을 도와 소화기관을 ‘정화’한다는 것이다. 양배추 수프 식이요법은 빠른 체중 감량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복부 팽만, 경련, 피로, 현기증, 두통, 영양실조를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졌다. 할리우드 휩쓴 ‘마스터 클렌즈’가장 유명한 해독법 중 하나인 ‘마스터 클렌즈’는 레몬즙, 메이플 시럽, 물, 고춧가루를 섞어 10일간 마시는 방법이다. 매일 소금물과 허브 차를 마셔 몸속 노폐물을 강제로 빼낸다. 이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1940년대 자연요법 치료사 스탠리 버로스가 몸속 불순물을 없애려고 개발했다. 가수 비욘세가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2006년 영화 ‘드림걸스’ 촬영을 앞두고 이 방법으로 2주 만에 9㎏을 뺐다고 밝히면서 수십 년 만에 다시 인기를 끌었다. 배우 애슈턴 커처, 데미 무어, 기네스 팰트로도 이 방법을 시도했다고 인정했다. 디마리아는 영양소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대신 몸의 자연스러운 해독 기능을 돕는 건강한 습관을 서서히 들이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그는 “더 건강한 습관은 첨가 설탕, 튀긴 음식, 가공식품을 줄이고 통곡물, 과일, 채소, 콩류 등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늘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민식의 알 수 없어요] 역사 읽기와 문학의 이유

    [김민식의 알 수 없어요] 역사 읽기와 문학의 이유

    세밑 공공기관 업무보고 중에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언급했다. 그러자 역사학계와 여러 언론에서 대통령이 ‘위서’(偽書), 가짜 책을 들먹인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고도 길었다. 정치권에서도 야권의 대표자 한 사람은 “환단고기가 역사서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가 되겠다”며 그냥 넘기지 않았다. 강단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아 사료, 팩트, 실증적 근거를 들어 환단고기를 아예 거짓 글로 규정한다. 검증 가능한 사료만이 역사를 구성한다는 역사 실증주의자들. 엄격한 이 역사학도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은 그러면 히브리의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일본서기도 위서인가? 또 판타지라면 반지의 제왕은 창세기나 일본서기의 옷자락 끝에도 닿을 수 없다. 듣자니 환단고기도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태백교의 경전이다. 아무튼 역사학자라면 그가 검증했거나 아니거나를 떠나 글 앞에서는 그냥 겸허해야 할 터. 장구한 인류의 문명에 비해 점토판에 새긴 문자의 역사는 고작 오천년 남짓할 뿐이다. 글로 쓰인 역사는 한 그루 나무가 지닌 진실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숱하다. 일본 규슈의 남쪽 섬 야쿠시마에는 수령 삼천년 또는 칠천년으로 추정되는 삼나무 숲이 하늘을 가린다. 미국과 칠레에는 나이테가 오천년인 소나무가 지금도 건재하고. 뿐인가 썩지 않고 땅에 묻혀 있던 만년 오만 년 나무 조각 하나로 우리는 지금 선사 시대 지구의 기후 변화 강수량까지도 파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질없이 글로 다투니, 나무야 내게 사실을 말해다오. 한국 고대사에도 나무로 역사의 진위가 밝혀진 큰 사건이 있었다. 1971년 공주에서 발굴된 5세기 백제 무령왕릉의 목관은 일본 특산의 상록수 금송이었다. 놀랍게도 일본서기에 기록된 무령왕의 출생과 행적이 껴묻거리 표석과 일치했다. 고고학은 말한다. 사료로서 글의 비중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젊은 날 뮌헨의 1월 건축 메세를 마치고 로만 로드를 따라 밀라노로 가는 길에 이탈리아 최북단 볼차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볼차노에는 알프스 얼음 구덩이에서 발견된 칠천년 전 아이스맨이 있었다. 이집트의 황금 마스크 투탕카멘보다 얼추 사천년 전 시대의 사람이다. 유리관 안으로 선사 시대 아이스맨의 털모자, 외투, 부츠를 보면서 다음날 도착할 밀라노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의 트렌디한 디자인을 생각했다.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까? 이탈리아에 들어왔으니 다시 로마사의 명장면 하나. ‘브루투스 너마저도(시저)/ 자유를 위하여 사랑하는 친구 시저를 나는 죽였습니다. 시저보다 로마 시민들을 더 사랑하기에(브루투스)/ 고결한 사람 브루투스, 여기에 시저가 누워 있습니다. 야심이 가득했다는 시저는 그의 모든 현금과 테베레강 아래의 정원과 과수원을 로마 시민들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안토니우스)’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시저’ 대사의 일부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시저편도, 로마사의 어느 글도 16세기 영국 극작가의 묘사에 닿지 못한다. 셰익스피어는 문학으로 로마의 공화정제, 원로원의 암투, 시저의 살해 앞에 모여든 군중들의 가파른 숨소리까지도 전달한다. 강이 산을 넘지 못하듯 역사는 문학을 넘지 못하니. 나는 근래 친구들과 서울 청담동의 소전서림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었다. 아테네의 시라쿠사 원정에서 최고 지휘관 니키아스의 마지막 연설을 들은 군사 중에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에트나산과 이오니아 바다가 전장을 지켜보았을 뿐. 하지만 역사는 저자 투키디데스의 문학적 상상력을 거짓 글로 매도하지 않는다. 신화와 전설 기담 여행기로 가득한 그리스 로마 이야기는 인류 역사의 고전으로 간주하면서 사마천과 나관중, 환단고기는 엄격한 실증의 잣대로 직박는 것은 우리 내면의 오리엔탈리즘인가? 새해를 열며 헤로도토스, 펠로폰네소스를 읽던 맥락으로 나는 친구들과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참이다. 우리 젊은 그 시절 상상의 공간 중원과 관운장의 적토마를 다시 만나게 되어 설렌다. 참이 아닌 기록일지라도 사료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결국 역사가의 몫.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김민식 내촌목공소 고문
  • ‘환단고기’ 논란… 가짜 책으로 진짜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환단고기’ 논란… 가짜 책으로 진짜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한민족 고대사, 재야 사학자들 주장李대통령, 재단에 ‘교육’ 관련 질문공식 석상서 재야의 역사 관점 옹호환단고기에는 20세기 이념도 담겨고대 역사서라면 있을 수 없어 ‘위서’서가에 꽂힐 영역은 역사 아닌 픽션 “역사 교육 관련해서, 무슨 환빠 논쟁 있죠? (중략) 왜 몰라요, 그걸. 그 있잖아요, 단군, ‘환단고기’(桓檀古記),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 음, 그런데 아예 동북아역사재단은 특별한 관심이 없는 모양이군요?”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향해 던진 질문이다. 의아해 하던 박 이사장은 곧 이 대통령의 질문을 이해했다. ‘환단고기’라는 책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사’를 논하는 소위 ‘재야 사학자’들의 의견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느냐는 함의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전문 연구자들의 이론과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이제 전문 연구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박 이사장의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르며 되물었다. “증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 ‘환단고기’의 내용이 사료(史料)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음을 익히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듯했다. ●기원전  7000년 환국 문명 흔적 없어 ‘재야 사학자’들과 이미 대화를 시도했으나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박 이사장의 답변에 이 대통령도 더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박 이사장을 향한 이 대통령의 질의는 적당히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이 ‘환단고기’와 ‘환빠 논란’을 언급했고, 심지어 그 책과 그런 관점을 옹호했다는 사실만큼은 역사에 분명히 기록될 예정이다. 대체 ‘환단고기’가 뭘까. ‘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위서(僞書)다. 누군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지어낸 가짜 책이라는 뜻이다. 그 장엄한 내용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자. 때는 기원전 7000년, 바이칼 호수에 뿌리를 둔 고대 문명이 있었다. 그 이름하여 환국. 환국은 전성기에 1억 800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하며 동서로는 한반도를 넘어 일본과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남북으로는 북극에서 인도까지, 사실상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신적인 존재이자 정치 지도자인 환인의 다스림 속에 환국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제국은 없는 법. 환국은 언제부터인가 기울기 시작했다. 요임금이나 순임금 등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국가에 우리 고대 제국의 드넓은 강역이 갉아먹히고 만 것이다. 결국 우리 민족은 저 드넓은 영토와 빛나는 역사를 모두 잃어버린 채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런 찬란한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망각의 이유는 분명하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부터 오늘날 주요 대학에 자리를 잡은 소위 ‘강단 사학자’들까지 민족의식을 저버리고 외세를 추종하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 자부심을 등한시하는 기득권 세력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랑스러운 한민족은 강단 사학자들에게 더는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재야 사학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할 때 그 영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문제가 있다. ‘환단고기’는 역사적 사실을 담은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기원전 7000년이라는 연도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당시는 구석기 시대가 저물면서 신석기 시대가 막 시작되던 무렵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이집트 문명도 기원전 3000년쯤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7000년에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지배하던 고대 문명이 있었다면 그 흔적이 어딘가에 어떻게든 남아 있어야 마땅하다. 물론 그런 건 없다. ‘환단고기’라는 책의 출현 시점도 그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환단고기’는 1979년 9월 10일 광오이해사라는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그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인 이유립은 자신이 그 책을 직접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911년 계연수라는 독립운동가 겸 도인을 만나 전수받은 다섯 권의 고대 문헌을 종합했다는 것이다. 같은 책 속에 내용의 충돌이 있고 몇몇 대목이 혼란스러운 것은 그래서라고 한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16세기에 쓰이기 시작한 지명, 18세기에 나온 개념, 20세기에 널리 퍼진 이념 등을 담고 있다. ‘국가’, ‘인류’, ‘전 세계’, 심지어 ‘남녀평권’(男女平權) 같은 근대 이후 개념들이 속출한다. 기원전 70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조선시대 이전에 작성돼 숨어 있다가 세상에 나온 고대 역사서에는 도저히 등장할 수 없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가능한 설명은 단 하나뿐. 훨씬 후대의 누군가가 펴낸 조악한 위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등장한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가짜 역사책에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휘둘리는 걸까.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새삼 화제가 되었지만 ‘환단고기’가 정치인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PC통신 시절부터 ‘환단고기’와 그 책을 추종하는 유사역사학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쓰며 전문성을 인정받은 역사 연구가 이문영은 ‘유사역사학 비판’(푸른역사, 2018)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2013년 8·15 경축사 때 박근혜 대통령은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암은 ‘단군세기’를 저술했다는 인물(물론 이는 ‘환단고기’의 주장일 뿐이다)이며, 해당 인용구는 ‘환단고기’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통령 연설에 ‘환단고기’의 문구가 인용된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환단고기’ 추종 세력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재야 역사학’에 몹시 우호적인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정권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매머드가 살아 숨쉬던 시베리아에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는 거대 제국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기묘한 역사 판타지에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일부가 힘을 실어 주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소리가 1980년대와 90년대, 심지어 2000년대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유신 독재 체제를 구축한 후 집권의 정당성을 찾아야 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관제 민족주의 열풍을 끌어올린 후폭풍이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뿐 아니라 운동권 대학생이었던 이 대통령조차 ‘환단고기’에 우호적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박정희의 우호 세력만이 아니라 박정희에게 반대하던 ‘청년’과 ‘진보 세력’들도 고스란히 관제 민족주의 열풍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렇게 ‘환단고기’는 지금껏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적 역사 담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의  민족주의는  어둡고 위험 ‘환단고기’는 역사서가 아니다. 픽션이지만 허구가 아닌 역사책을 흉내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포스트모던 문학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다. 우리 민족의 영광된 과거를 한없이 부풀리며, 그 몰락의 이유를 ‘외세’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환단고기’에 담긴 민족주의는 어둡고 위험한 사상일 수밖에 없다. ‘유사역사학 비판’의 한 대목을 읽어 보자. “유사역사가는 민족이라는 집단을 최우선시하는 쇼비니즘의 소유자들이다. 인도에서는 이런 유사역사학을 정체성으로 하는 인도인민당이 집권한 뒤 2002년에 구자라트 폭동이 일어났고 2000여명의 이슬람교도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런 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2025년 말 대한민국이 만든 반도체가 전 세계의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세상을 누빈다. 우리가 듣는 음악에 세계인들이 춤을 추고 우리와 같은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다. 우리의 자부심을 위해 까마득한 기원전의 가짜 역사를 들먹여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완전히 종결되기를 바란다. 서가에서 그 책이 꽂혀야 할 영역은 ‘역사’가 아니라 ‘픽션’이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 고대 로마 엘리트층, 반려동물로 ‘인도산 원숭이’ 키웠다

    고대 로마 엘리트층, 반려동물로 ‘인도산 원숭이’ 키웠다

    고대 로마 제국의 엘리트층이 인도산 수입 원숭이를 반려동물로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는 인도에서 로마령 이집트(아이깁투스)로 살아있는 동물이 거래됐다는 최초 증거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집트 동쪽 해안 도시 베레니케의 고대 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반려동물 묘지로 2011년 처음 발견됐다. 지금까지 동물 매장지 약 800개가 발굴됐으며, 그중 도시 외곽에서 발견된 35마리 원숭이 무덤이 가장 흥미로운 발견으로 꼽힌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폴란드 연구팀은 원숭이 유골 연대를 로마 고위 군 장교 주둔 시기인 기원후 1~2세기로 추정했다. 뼈 분석 결과 대부분 인도산 마카크(macaque) 종이었다. 연구팀은 “베레니케에서 발견된 인도산 원숭이는 고대 로마가 반려동물을 조직적·체계적으로 수입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최초 사례”라고 로마 고고학 저널(Journal of Roman Archaeology)에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발굴 현장엔 원숭이와 함께 목걸이·음식·무지갯빛 조개껍데기 등 사치품이 묻혔고, 일부 무덤엔 돼지 새끼·새끼 고양이도 동반됐다. 원숭이 무덤 40%에 부장품이 있었으나 개·고양이는 거의 없었다며 연구진은 “원숭이가 다른 반려동물보다 특별한 지위를 가졌던 신호”라고 분석했다. 한 원숭이 발엔 질병 치료 흔적도 포착됐다. 논문은 “인도산 원숭이 소유가 엘리트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부 원숭이 두개골에서 영양실조 흔적이 포착됐는데, 이는 외딴 지역인 베레니케의 과일·채소 부족이 원인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이전에도 로마인들의 애완 원숭이를 길렀다는 증거는 다수 나왔지만 대부분 아프리카산이었다”면서 “(이번 발견은) 고대 로마가 초기 제국 시대에 인도와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 개·고양이 아니다…고대 로마 엘리트층이 반려동물로 키운 ‘이것’

    개·고양이 아니다…고대 로마 엘리트층이 반려동물로 키운 ‘이것’

    고대 로마 제국의 엘리트층이 인도산 수입 원숭이를 반려동물로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는 인도에서 로마령 이집트(아이깁투스)로 살아있는 동물이 거래됐다는 최초 증거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집트 동쪽 해안 도시 베레니케의 고대 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반려동물 묘지로 2011년 처음 발견됐다. 지금까지 동물 매장지 약 800개가 발굴됐으며, 그중 도시 외곽에서 발견된 35마리 원숭이 무덤이 가장 흥미로운 발견으로 꼽힌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폴란드 연구팀은 원숭이 유골 연대를 로마 고위 군 장교 주둔 시기인 기원후 1~2세기로 추정했다. 뼈 분석 결과 대부분 인도산 마카크(macaque) 종이었다. 연구팀은 “베레니케에서 발견된 인도산 원숭이는 고대 로마가 반려동물을 조직적·체계적으로 수입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최초 사례”라고 로마 고고학 저널(Journal of Roman Archaeology)에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발굴 현장엔 원숭이와 함께 목걸이·음식·무지갯빛 조개껍데기 등 사치품이 묻혔고, 일부 무덤엔 돼지 새끼·새끼 고양이도 동반됐다. 원숭이 무덤 40%에 부장품이 있었으나 개·고양이는 거의 없었다며 연구진은 “원숭이가 다른 반려동물보다 특별한 지위를 가졌던 신호”라고 분석했다. 한 원숭이 발엔 질병 치료 흔적도 포착됐다. 논문은 “인도산 원숭이 소유가 엘리트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부 원숭이 두개골에서 영양실조 흔적이 포착됐는데, 이는 외딴 지역인 베레니케의 과일·채소 부족이 원인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이전에도 로마인들의 애완 원숭이를 길렀다는 증거는 다수 나왔지만 대부분 아프리카산이었다”면서 “(이번 발견은) 고대 로마가 초기 제국 시대에 인도와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 엎친 데 덮친 루브르 박물관… 누수로 고대도서 400권 손상

    엎친 데 덮친 루브르 박물관… 누수로 고대도서 400권 손상

    약 두 달 전 대낮에 도난사고를 당했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이번에는 누수 사고로 수백 점의 작품이 훼손됐다. 프랑시 스탱보크 루브르 부관리자는 7일(현지시간) “지난달 26일 누수로 인해 주로 서적을 포함한 300~400점의 작품이 피해를 입었다”면서 “현재 정확한 피해 규모를 집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피해 도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만들어진 이집트학 저널과 과학 기록물들로, 학자들이 참고하는 사료지만, 이보다 귀중한 서적들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젖은 책들은 건조된 뒤 제본소로 보내져 복원 작업을 거친 뒤 서가에 다시 돌아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루브르 박물관 측은 이번 누수 사고가 배관 노후화로 인한 것이라며 내부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고는 난방 및 환기 시스템의 밸브가 실수로 열리면서 책이 보관된 건물 천장을 통해 물이 스며들며 발생했다. 스탱보크 부관리자는 “완전히 쓸모없어진 난방 및 환기 시스템이 수개월간 가동 중단된 상태였다”면서 “내년 9월부터 교체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누수 사고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은 두 달만에 세번째 사고를 겪게 됐다. 지난달 17일부터는 내부 안전문제로 그리스 항아리를 전시하는 캄파나 갤러리가 폐쇄됐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19일에는 네명의 강도가 8800만 유로(약 1400억원) 상당의 보석을 훔쳐 달아나면서 심각한 보안 허점을 드러냈다. 현지에선 루브르 박물관이 작품 구매에 과도한 지출을 하며 건물 유지보수와 리모델링 등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루브르는 내년부터 비유럽연합(EU) 방문객을 대상으로 입장료를 현 22유로에서 32유로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늘어난 수익을 박물관 노후 시설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이집트 대박물관과 유물 반환 논쟁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이집트 대박물관과 유물 반환 논쟁

    이집트 카이로의 기자 피라미드 인근에 거대한 유리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준비 끝에 개관한 이집트 대박물관은 단순한 박물관을 넘어 이집트의 문화적 주권을 선명히 드러내는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 박물관은 단일 문명을 다루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관으로, 서구 중심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자국인의 시각으로 문명사를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집트 대박물관 개관은 세계 주요 박물관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제국주의의 힘을 앞세워 반출한 수많은 문화재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대영박물관의 로제타석과 엘긴 대리석, 루브르미술관의 사모트라케의 니케, 베를린 신박물관의 네페르티티 흉상 등 보존이라는 명분 아래 약탈해 간 유물들은 이제 귀환 요구와 함께 새로운 시대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서구 박물관들은 오랫동안 보존 환경의 우수성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반환 문제를 방어해 왔다. 문명의 유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며 세계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21세기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는 제국주의 시기의 불평등한 취득 과정을 가리는 핑계에 불과하다. 2005년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가 대영박물관의 유물 옆에 몰래 돌조각을 두었으나 박물관 측이 사흘간 알아채지 못한 일화는 이러한 관리의 우수성 주장을 날카롭게 풍자한 사건이었다. 최근 유럽과 북미 여러 기관이 소장품 반환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23년 ‘문화재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 유물의 출처와 취득 경로를 체계적으로 재검토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조정·반환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올해 2월 기원전 7세기의 청동 그리핀 머리 조각을 그리스로 반환했다. 현재 대출 형식으로 같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그리스에 청동 벨트 걸이와 철검 등 12점의 고대 유물을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역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임의로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꾸준히 요구한 결과 2010년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계기로 영구임대 방식으로 귀환을 성사시킨 바 있다. 이는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는 동시에 유산 반환의 모델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런 반환 사례들은 박물관의 책임 및 역할 변화, 탈서구 중심주의, 국제적 역사 정의 회복이라는 큰 흐름과 맞물려 있다. 이제 박물관은 자신들의 컬렉션 형성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문화재를 둘러싼 공정성과 윤리를 논의하는 데 능동적 파트너가 돼야 한다. 핵심 유물은 본국에 돌려주되 장기 대여, 공동 연구,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같은 형태로 전 세계와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물을 본국으로 돌려주는 일은 상실이나 패배가 아니라 인류 문화유산을 진정으로 공유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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