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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폐·여권·국립공원 이용권에도 ‘트럼프’…우상화 논란 격화[워싱턴NOW]

    화폐·여권·국립공원 이용권에도 ‘트럼프’…우상화 논란 격화[워싱턴NOW]

    美 재무부, 올 가을 트럼프 초상 새겨진 1달러 주화 발행 기념물이라지만 ‘국가’와 ‘지도자’ 경계 흐린다는 비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상이 새겨진 1달러 동전은 투자 가치가 있을까요?”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22일(현지시간) 올가을 발행될 예정인 ‘트럼프 1달러 주화’를 소개하며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금 처리된 이 동전이 금색으로 빛나긴 하지만 전통적인 금화와 달리 금이 함유돼 있지 않아 수익률 예측이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수집가 수요와 동전 생산량에 따라 액면가(1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지만, 높은 투자 수익 기대는 금물이라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발행하는 ‘트럼프 주화’는 이처럼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비판도 많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우상화한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 연방법은 살아 있는 사람의 초상을 화폐에 새기는 걸 금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20년 통과한 건국 250주년 기념 주화 발행법에 따라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렸습니다. 법정화폐인 이 주화는 앞면에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가고, 주변을 둘러 자유라는 뜻의 영어 단어 ‘LIBERTY’와 미국의 건국 연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우상화 논란이 인 건 이번만이 아닙니다. 사실 미국은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집권을 시작한 이후 온통 ‘트럼프’로 도배된 느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건국 250주년 기념 100달러 지폐에도 자신의 서명을 넣었습니다.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과 금색 서명이 들어간 한정판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립공원 연간 이용권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나란히 인쇄돼 발행됐습니다.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팜비치 국제공항은 ‘도널드 J. 트럼프 국제공항’으로 공식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워싱턴DC의 대표적인 문화공연장인 케네디센터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넣었다가 위법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그의 초상이 새겨진 화폐에 대해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애국적 프로젝트라고 강조합니다. 건국 150주년 당시 50센트 기념 주화에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간 걸 들어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미국은 곧 트럼프’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고, ‘국가’와 ‘지도자’의 경계를 흐린다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트럼프 주화’가 건국 250주년을 기념한 기념품으로 남을지, 아니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개인숭배 흑역사로 기억될지는 미래가 평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뉴스의 중심에는 늘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일까요. 특히 한국에게 중요한 미국 뉴스는 무엇이 있을까요. 워싱턴 현지에서 느낀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좀더 알기 쉽게 미국을 풀어드립니다.
  • 250년 민주주의 뒤흔든 ‘트럼프 스톰’

    250년 민주주의 뒤흔든 ‘트럼프 스톰’

    견제·균형 잃은 ‘위기의 미국’ 직면폭우 속 건국기념 행사마저 ‘쇼’ 전락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4일(현지시간) 돌풍과 뇌우가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 열린 미 건국 250주년 행사는 냉전 종식 후 세계 유일 강국으로 군림해 왔던 미국이 스스로 만든 ‘위기의 폭풍’ 앞에 놓인 오늘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했다. 영국 절대 군주제를 거부하며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추구했던 미국 민주주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2기를 겪으며 심각한 형해화를 겪고 있다는 평가다. 250년 전 건국자들은 ‘군주 없는 나라’를 꿈꿨지만, 지금 미국의 모습은 정반대다. 칼럼니스트 마이클 허시는 지난 3일 미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국가적 단합의 장이어야 할 건국 행사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을 위한 쇼로 변질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정 민주주의 국가를 전체주의적 개인숭배 국가로 전락시킨 것만이 아니다. 그는 건국자들이라면 수없이 탄핵 사유로 삼았을 법한 부패 행위를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견제와 균형을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은 대외 정책에서는 ‘강압적 패권’으로 발현됐다. 올해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직접 체포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지난 2월 말 중동전쟁을 전격 단행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폭사시키며 더 큰 충격을 줬다. 의회 승인 없이 시작한 중동전쟁은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패착으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전쟁의 목적이었던 이란 핵 프로그램 폐기는 여전히 요원하고, 오히려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막강한 전략적 지렛대를 선물로 준 셈이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쟁을 통해 이란 정권이 더욱 강경하게 재편됐다며 테헤란에서 시작한 하메네이 장례식은 “더욱 공고해진 강경파 정권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대외 정책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다른 핵심 정책들도 하나둘 벽에 부딪히며 미국 사회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상호관세 위법 판결을 내린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위법·위헌으로 판단하며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양대 정책인 관세와 반이민 정책이 사법부에 발목을 잡힌 것으로, 2기 행정부는 또 한 번 법적·절차적 난맥상을 드러내게 됐다. 이들 정책은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지지를 받아 왔다는 점에서 ‘마가의 실망’이 중간선거 표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는 ‘USA 250’ 조명이 켜지고,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이 성조기색 조명으로 물들며 전 세계가 미국의 건국 250주년을 축하하고 있지만, 세계인의 실제 속마음은 트럼프 체제 미국을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미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5월 36개국 성인 4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23%에 그쳤고,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응답도 57%로 절반을 넘었다. 특히 한국 응답자 가운데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국가라고 답한 경우는 2022년 83%에서 올해 57%로 26% 포인트나 줄었다. 동맹국에는 위협을 서슴지 않는 약탈적 패권을, 국제사회에서는 다자주의 체제 탈퇴로 기존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계속하는 한 이 같은 미국에 대한 신뢰 하락은 계속될 전망이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는 “트럼프는 1기 때 공화당을 장악하지 못했고, 당시 공화당 지도층은 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했다”며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2기 트럼프는 충성파가 함께 국정을 운영하고, 공화당은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묵인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포착] 미국판 개인숭배?…법무부 청사에 ‘트럼프 얼굴’ 대형 현수막 논란

    [포착] 미국판 개인숭배?…법무부 청사에 ‘트럼프 얼굴’ 대형 현수막 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가 국내외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이번에는 그의 얼굴을 담은 대형 현수막이 미국 법무부 청사에 내 걸렸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 등 현지 언론은 법무부 건물 외벽 두 기둥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날 법무부 청사에는 트럼프의 얼굴과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Make America Safe Again)라고 적힌 긴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 문구는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주와 폭력 범죄 단속을 성과로 내세울 때 사용하는 슬로건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위대한 조국 건국 250년을 기념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역사적인 노력을 기리게 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번 트럼프 현수막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법무부는 전통적으로 백악관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동안 법무부가 그의 정적들을 겨냥하면서 이러한 독립성은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법무부는 트럼프 2기 들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인물들에 대해 잇달아 기소를 시도했다. 이에 대해 AP통신 등 현지 언론은 “워싱턴 DC 곳곳의 다른 기관 건물에도 트럼프 현수막이 걸렸지만 이번 사례는 백악관의 통제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 온 법무부의 전통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지난해 9월에도 노동부 등 연방 건물 3곳에 트럼프의 얼굴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걸려 논란이 된 바 있다.
  • [세책길] 김일성 개인숭배가 뉴노멀이 된 평양의 결정적 하루

    [세책길] 김일성 개인숭배가 뉴노멀이 된 평양의 결정적 하루

    각종 K시리즈가 유행하다보니 한국의 문화와 지리,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 속에서 전세계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 많은 K시리즈를 한반도 북쪽에 있는 또 다른 K와 혼란스러워하거나 비교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문제는 남과 북 모두에게 아주 오래된 숙제나 다름없다. 분명 수천년을 동일한 정치사회문화 속에서 살았는데 왜 이렇게나 다른 나라가 돼 버렸을까. 정치체제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경제 시스템과 성적표는 더 크게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구성하는 국민 혹은 인민들의 사고방식이 무척이나 달라져 버렸다. 무엇이 남과 북을 전혀 다른 사회로 만들었을까.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경로를 가게 된 분기점으로 남쪽에선 1960년 4·19, 북쪽에선 1956년 8월에 있었던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을 꼽는다. 남쪽에선 4월혁명을 통해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를 무너뜨린 승리를 거뒀다. 이는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과 촛불집회, 두 차례 탄핵에 이르는 원초적 경험을 형성했다. 이에 비해 북녘에서 조선노동당 내부 토론을 통해 김일성 개인숭배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추방되고 처형되고 숙청됐던 좌절은 이후 체제에 저항하거나 비판할 싹 자체를 밟아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평양을 자주 방문하는 지인한테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실패 이후 협상에 참여했던 핵심관계자들이 대거 숙청됐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최고존엄에게 실패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없는 사회에선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다. 남북협상이나 북미협상에서 일반적인 실무협상보다는 정상회담이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것 역시 원인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뿌리는 이미 한국전쟁 책임을 ‘박헌영을 비롯한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지도부가 미국 제국주의 간첩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던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사실 최고지도자 개인숭배 문제는 1950년대만 해도 남과 북이 오십보 백보였다. 평양에서 김일성이 미제를 물리친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을 때 서울에선 이승만을 북괴의 침략을 물리친 국부로 포장되고 있었다. 서울 남산에는 세계 최대 규모로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고 심지어 서울시를 이승만의 호를 따 ‘우남시’로 이름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하기도 했다. 저자가 남과 북의 차이를 만든 결정적 분기점으로 꼽는 ‘8월 종파사건’은 1956년 8월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무대다. 저자는 조선노동당의 정파적 해석이 지나치게 강한 ‘8월 종파사건’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인 용어인 ‘8월 전원회의 사건’으로 부른다. “체제 발족 이래 김일성을 비롯한 조선노동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비판받은 유일무이한 사건(5쪽)”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기존에는 소련의 후원을 받는 소련파와 중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연안파가 당내 패권을 추구하려다 실패했다는 해석이 많았다. 이에 비해 저자는 옛 소련 쪽 문서와 소련 주재 대사를 지냈던 이상조 등 관계자들이 남긴 회고록을 비롯한 각종 1차사료를 광범위하게 분석해 실체를 추적한 끝에 평양이 내세우는 공식역사와는 매우 다른 실체를 재구성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동당 공식행사에서 김일성 공개비판저자에 따르면 8월 전원회의 사건은 무엇보다도 김일성 개인숭배에 노동당 내부에서 거부감과 반발이 분출한 게 핵심 원인이었다. 1956년 2월 열렸던 소련공산당 제20차대회에서 총서기 흐루쇼프가 스탈린 개인숭배를 강하게 비판한 것을 계기로 집단지도체제와 당내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그 영향을 받아 김일성 개인숭배를 조장한 김일성을 비롯한 조선노동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세력 형성을 촉발했다. 이참에 조선노동당에서 당내민주주의와 집단지도체제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분출한 게 1956년 8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였다. 김일성 개인숭배는 정부수립 이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다. 김일성 초상화가 실린 신문으로 책을 포장했다가 징역 5년형을 받거나, 김일성 초상화를 가리키며 “당신은 인민들 사정을 모르고 있어!”라고 성토한 어느 농민은 징역 7년형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130~131쪽). 항일투쟁을 김일성 혼자 다 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일도 벌어졌다. 개인숭배에 비례해 정책 실패도 심각해졌다. 1955년 곡물 부족분이 25만t에 달할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했지만 김일성이 주도한 중공업 우선 정책 때문에 주민들 수만명이 굶어 죽는 사태도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생생한 증언을 들은 적도 있다. 소련 시절 사할린에서 태어나 자란 동포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소련 정부 추천을 받아 1950년대 평양에 있는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평양 경험을 매우 부정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개인숭배가 너무 심각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학교 건물 곳곳에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손가락질만 잘못 해도 큰일 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얼마 안돼 소련으로 귀국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스탈린 개인숭배를 청산하려는 소련의 후원을 등에 업고 김일성 개인숭배를 공격해 정책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계획의 핵심 주동자는 서휘·윤공흠·이필규·고봉기·이상조 등 40대 초반 소장인사들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전원회의장에서 상업상 윤공흠이 갑자기 발언권을 요구한 장면일 것이다. “나는 우리 당내에 존재하는 개인 숭배와 그것이 불러온 악영향에 대해 토론하려 합니다. … 당과 국가의 권력이 한 사람의 수중에 장악돼, 당내 민주주의와 집단 체제가 훼손되고 법질서가 유린되기에 이르렀습니다(320쪽).” 당 중앙위원 71명과 후보위원 45명,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급 이상 간부들까지 더해 150여명에 이르는 고위 당원들이 참석한 내각 회의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윤공흠에게 욕설을 퍼붓흔 소리, 발을 구르는 소리, 휘파람 소리, 책상을 치는 소리 등으로 장내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321쪽).” 윤공흠이 발언을 제지당하자 최창익도 나섰다. 그는 “당원이 자기 의견을 밝히는 행위는 정당한 권리 행사입니다. 당원의 발언을 억압하는 행위야말로 당내 민주주의를 짓밟는 것입니다. 윤공흠 동지의 토론을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322~323쪽)”라고 했다. 하지만 “반당분자는 토론을 중단하라!” “반당 종파분자를 끌어내려라!”는 고성이 난무하는 속에서 더이상 제대로 된 논의는 불가능했다. 김일성 1인독재 비판은 김일성 등 노동당 지도부한테 철저히 진압당했다. 서휘, 윤공흠, 이필규,김강은 그날 바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했다. 다음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이틀째 회의에선 <최창익, 윤공흠, 서휘, 이필규, 박창옥 등 동무들의 종파적 음모행위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하고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반당적 책동”으로 규정했다. 8월 전원회의 사건은 대숙청으로 이어졌다. 소련과 중국이 김일성을 제지하면서 한동안 어색한 동거가 이어졌지만 결국 중소갈등 와중에 김일성의 지지를 필요로 했던 소련과 중국도 당내 비판세력을 외면했다. 거칠 것이 없어진 김일성은 가혹한 숙청에 착수했다. “마침내 반격이 시작되었다(449쪽).” 1957년 7월부터 1년 동안 3912명이 노동당 당적을 박탈당했다(534쪽). 주도자로 몰린 최창익과 박창옥은 비밀재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았다(460쪽). 원로 독립운동가이자 저명한 국어학자로 당시 명목상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두봉은 가혹한 자아비판 끝에 평안남도 맹산군에 있는 농장으로 쫓겨났다(502쪽). 옛 의열단 지도자 김원봉은 “해방 전후 각각 중국국민당과 미국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혐의(552쪽)”를 뒤집어쓰고 수감돼 있다 자살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고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지내다 납북됐던 조소앙 역시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대동강에 뛰어들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557쪽). “이제 김일성 주위에 남아 있는 이들은 아첨꾼들과 기회주의자들뿐이었다(558쪽).” 이즈음 등장한 정치담론이 ‘주체’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한 국내외 비판, 특히 소련의 비판에 대한 대항논리로 출발했다는 저자의 지적도 흥미롭다. 소련조차 극복하고자 했던 스탈린주의가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동지들의 비판조차 수용하지 않고 변화를 거부한 선택은 “오늘날 북한을 경직된 체제로 만든 결정적 요인(27쪽)”이 됐다. 저자가 치밀하게 분석하는 8월 전원회의 사건은 치명적인 약점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당시 김일성 비판세력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돼 있다. 김일성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사람들이 향한 중국은 마오쩌둥 개인숭배로 홍역을 치르던 곳이었고, 결국 문화대혁명이라는 10년에 걸린 재앙으로 이어졌다. 그 망명자들이 개인숭배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 향한 곳에서 또다른 개인숭배에 대해 아무 할 말도 못한 채 여생을 지냈다는 건 그 자체로 비극이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모순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그들이 그토록 존경했던 마오쩌둥은 소련과 갈등이 격화되는 와중에 김일성의 지지가 절실해지자 이들을 평양으로 되돌려보내겠다고 김일성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오히려 김일성이 “더이상 그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필요한 일꾼들이 아니(559쪽)”라며 거절했다. 1958년 2월 평양을 방문한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 역시 “망명자들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도 반기를 들었다고 비판하며 그들을 ‘수정주의자들’이라고 몰아붙였다(559쪽).”
  • 북한 관광 다녀온 유튜버 “맥주맛 좋았지만, 김일성 동상 헌화해야”

    북한 관광 다녀온 유튜버 “맥주맛 좋았지만, 김일성 동상 헌화해야”

    북한이 지난달 20일부터 코로나19 이후 5년 만에 외국인 관광객을 받기 시작하면서, 서양인들의 눈에 담긴 폐쇄 국가의 내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1일(현지시간) 북한의 첫 해외관광객으로 나선경제특구를 5일 동안 방문하고 돌아온 이들의 소감을 전했다. 영국인 유튜버 마이크 오케니디(28)는 “관광객들은 사전에 승인된 일정만을 따르도록 현지 가이드의 엄격한 안내를 받았다”면서 “맥주 공장, 학교, 약국 등을 관광하는 동안 화장실을 사용하고 싶을 때도 가이드에게 사전에 말해야 했다”고 밝혔다. 오케니디는 “가이드 없이는 호텔을 나갈 수조차 없었다”면서 사전에 알긴 했지만 극도로 방문객을 통제하는 북한의 수준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탄도 미사일이 표적을 공격하는 영상을 배경으로 한 8살 어린이들의 공연을 감상했는데 노래 가사는 “우리 원수님 세상에서 최고야” 등의 개인숭배를 담은 내용이었다. 북한 관광은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제한적으로 이뤄져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이발소, 슈퍼마켓 등에서 주민들과 대화할 기회도 줄었다. 북한 전문 여행사인 고려투어의 그렉 바치는 BBC에 “국경에서 짐을 소독하고 체온을 측정했으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며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 아래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코로나19 방역이 실제 감염 위험 때문인지 혹은 주민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북한 현지 가이드는 코로나가 한국에서 보낸 풍선을 통해 유입됐고, 90일 만에 빠르게 근절됐다고 주장했다. 북한 관광이 시작되자 마자 가장 처음 입국한 프랑스인 피에르 에밀 비오(30)는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가이드들은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비오는 북한 관광이 재개되면 최초로 입국하기 위해 지난 일 년간 서울에서 지내며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국경 개방을 한다는 소식이 나올 때마다 여행사에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보내 북한 관광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경을 통과할 때 중국에서 비자 검사와 서류 검토가 엄격했으며, 북한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체온을 측정했고 가방 소독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비오는 이번 관광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오랜 우호관계가 강조되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북러 국경에 있는 러시아와 북한의 우정을 기념한 전시관을 방문했는데, 이 기념관은 1986년 김일성의 소련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여기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도 걸려 있었다. 관광객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에 꽃을 사서 헌화해야 했다며 “북한 주민들이 지도자에게 엄청난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매끼 식사마다 물 대신 대동강 맥주가 제공됐으며, 맥주 맛은 좋았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외국인 관광을 러시아인만 처음 허용했다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 관광객도 받기 시작했는데 기존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중국인 단체 관광은 아직 재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여행사의 3박 4일 관광 일정이 지난달 24일 출발 당일 취소됐는데,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우리는 여행사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논평하지 않을 것”이라며 언급을 회피했다.
  • 중국에서 추방된 독일 교수의 남북 통일 해법 “중국은 통일 원치 않아”

    중국에서 추방된 독일 교수의 남북 통일 해법 “중국은 통일 원치 않아”

    중국에서 9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국제관계에 대해 날카로운 평론을 써온 독일 출신 비욘 알렉산더 뒤벤(42) 전 지린대 교수는 지난 5월 갑자기 추방됐다. 중국이 인재에게만 발급해주는 특별 비자 기한이 10년 가까이 남아있었지만, 2주 만에 짐을 싸서 떠나야만 했다. 9년간 근무한 대학에서 하루아침에 이뤄진 해고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견해를 해외 언론에 밝힌 것이 빌미가 됐다.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고, 런던 정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벤 교수로부터 중국의 언론 자유 현실과 남북통일을 비롯한 국제관계 현안에 관한 생각을 들었다. 뒤벤 교수는 시진핑 집권 체제 이후 더욱 심각해진 언론 통제와 여론 탄압에 대해 시 주석의 종신집권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건강 이상이나 반란과 같은 예상할 수 없는 사태를 제외한다면 시 주석의 종신집권은 예상된 일”이라며 “중국에는 이미 ‘시진핑 사상’과 같은 개인숭배가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장춘시의 지린대 캠퍼스만 해도 누구나 오가는 공공장소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얼굴 인식 스캐너를 설치해 등록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게 됐다. 베이징의 지하철은 공항 수준의 검문검색으로 악명높고 신분증이 없으면 철도, 지하철 등 중국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 뒤벤 교수는 이러한 통제 사례를 들면서 “코로나19 이후 실업률 상승과 경기침체 등으로 중국인의 실망이 커지자 표현의 자유와 언론 보도에 대한 탄압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까지만 해도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있어 제한적이지만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하지만 시 주석이 3연임을 하면서 임기 및 연령 제한을 포함한 후계 임명, 집단 지도체제와 같은 중국의 ‘예외적 권위주의’는 모두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또 시 주석은 중국 경제와 사회에 활력을 낳기보다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현재와 같은 통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개인 권력을 형성한 시 주석에게는 정치적 안정이 최우선 순위란 것이다. 시 주석이 느슨한 통제 사이와 강력한 통제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강력한 억압을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뒤벤 교수가 지린대 공공외교학부 국제관계연구소 조교수직에서 해고된 것은 미국 국영방송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중국이 이중용도 제품 등을 지원한다고 언급했다. 중국이 러시아에 군수물품을 지원한다는 증거는 이미 나와있다. 하지만 사회 질서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고용 계약이 발목을 잡았다. 그의 사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학계 및 외교가로 퍼질 수 있다는 경고음으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는 일관되게 대만 상황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뒤벤 교수는 이를 부정했다. 그는 “러시아 침공을 우크라이나가 3년 가까이 막아내고 있는 것은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행사를 억제할 뿐 아니라 전략적 학습 경험을 제공한다”며 “중국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켜보면서 대만에 대한 미래 전략을 결정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가운데 누가 당선되든 중국에 대한 억압 정책을 실시할 것이 확실시된다. 뒤벤 교수는 “미중 관계가 가까운 시일에 눈에 띄게 개선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임기 동안 많은 갈등 속에서도 미중의 정치 및 무역 관계는 그대로 유지됐는데, 지금은 양국 관계가 악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때 중국에 유리한 점 두 가지를 들었는데 하나는 그가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국)나 한미동맹 등 동맹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 러시아 등 비민주적인 국가와도 거래할 의향이 있다는 점도 중국으로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10월 3일은 독일 통일 34주년 기념일이었다.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는 이날 “통일은 동독 주민들에게 새로운 시작인 동시에 많은 이들의 삶을 붕괴시켰다”라며 “그들의 지식, 경험, 평생의 노력이 평가절하되었다”라고 통일의 의미를 분석했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두 개의 국가’를 받아들이고,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거부감이 큰 통일 논의를 중단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뒤벤 교수는 한국과 독일의 분단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이유로 일어났지만, 분단 상황은 달랐다고 설명했다. 동독과 서독은 6·25와 같은 전쟁을 치르지도 않았고,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에도 인적 교류는 계속 이어졌다고 밝혔다. 동독도 전형적인 독재 국가였지만, 북한처럼 극도의 수준은 아니었으며 특히 경제적 차이 역시 현재 남북처럼 극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독일 통일은 동독을 점령했던 소련이 점차 내부적으로 약화해 결국 해체되면서 이뤄졌다는 점을 짚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는 중국이 소련처럼 무너질 리는 없으며, 중국은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을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뒤벤 교수는 “통일은 가치 있지만, 동독처럼 독재 정권이 내부로부터 붕괴하지 않는 이상 일어나기 어렵다”면서 한반도 통일의 유일한 가능성은 북한 정권의 내부 붕괴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 北 김정은, 딸 김주애 대동 軍 격려 행보..“존경하는 자제분”

    北 김정은, 딸 김주애 대동 軍 격려 행보..“존경하는 자제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 부인 리설주와 함께 인민군 창건일을 하루 앞둔 7일 북한군 장성 숙소를 방문해 기념연회에 참석했다. 특히 북한 매체는 김주애를 향해 “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표현하는 등 집중 조명해 ‘4대 백두혈통’ 띄우기에 나섰다. 노동신문은 8일 김 위원장이 기념연회 연설에서 “인민 군대 75년사의 영광은 줄기차게 이어지는 위대한 계승에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병사들을 향해 “절대적 충실성을 그대로 유전받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충성심을 강조했다. 또 핵무력을 ‘위대하고 절대적인 힘’이라고 언급했을 뿐 직접적인 대남 대미 메시지는 없었다.특히 김 위원장이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레드 카펫을 걷는 모습이 보도돼 후계자 입지 다지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노동신문은 1·2면에 김주애가 등장한 기념 연회 관련 사진 여러 장을 게재하며 높은 비중을 뒀다. 어머니 리설주와 유사한 검은색 정장 차림에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한 김주애는 헤드 테이블에서 김 위원장과 리설주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김주애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현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 북한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11월 말 미사일 발사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치하하는 자리에 김주애가 등장했을 때는 ‘존귀하신 자제분’라고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노동신문이 어린 김주애에 대해 일반 간부들에게도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존경하는’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인숭배를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며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더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본격적인 후계구도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한 국방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국방 관련 행사에 자녀를 동행하고 있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한편 리설주는 ICBM 화성17형을 형상화한 길쭉한 모양의 은색 목걸이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 ‘장자의 죽음’… 백지혁명으로 시험대 오른 시진핑 더 흔드나

    ‘장자의 죽음’… 백지혁명으로 시험대 오른 시진핑 더 흔드나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90세 생일이던 2016년 8월 17일 웨이보와 위챗 등 중국 소셜미디어는 그의 생일축하 물결로 도배됐다. 두꺼비를 닮은 장 전 주석을 위한 팬클럽 ‘하쓰’(蛤絲·두꺼비클럽)가 열려던 생일잔치를 당국이 막았지만 온라인 축하 물결까지 차단하진 못했다. “장자(長者·웃어른)의 90세 생일을 축하드린다”는 글이 수만건 올라왔다. 하쓰는 지난해 95세 생일에도 관영통신 신화사를 패러디한 유튜브 계정 ‘신합사’(新蛤社)를 통해 그에게 헌정하는 노래 22곡을 소개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장쩌민에 대한 향수로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시 주석 체제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백지(白紙) 혁명’이 확산되는 가운데 30일 장 전 주석의 사망이 ‘시진핑 3기’ 체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중국 현대사학자 장리판은 ‘장쩌민 향수’ 현상에 대해 “불만을 직접 표현할 수 없는 국민이 이전 지도자를 추억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생각을 밝히는 것”이라며 “마오쩌둥 시대의 개인숭배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받으면서 인권 상황이 악화되자 장 전 주석 시대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 주말 중국 곳곳에서 벌어진 ‘백지 시위’에서 “시진핑은 물러나라”는 구호가 터져 나온 곳이 장 전 주석의 정치적 고향인 상하이라는 건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고전하며 주민들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 주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이날 중국 공산당이 장 전 주석 서거에 대한 애도에서 “이제 우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더욱 단결해야 한다”고 전한 것도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4년 장 전 주석을 두꺼비로 칭해 열풍을 일으킨 장쑤성의 한 블로거는 “중국은 ‘황제가 아닌 보통사람이 최고지도자인 인간적인 국가’라는 점을 전 세계에 보여 줬다”며 “약간 우스꽝스러운 지도자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지도자보다 낫다”고 말했다. 장 전 주석의 타계로 중국 1~5세대 지도자들 간 차별적 특성도 조명된다. 마오쩌둥으로 상징되는 1세대는 ‘대장정’을 겪은 이들로 이념과 충성도를 중시했다. 반면 항일 전쟁으로 대표되는 2세대는 덩샤오핑을 필두로 중국의 개혁·개방 기초를 닦았다. 덩의 계보를 이은 3세대 지도자 장쩌민은 카리스마가 떨어졌지만 경제적 성과를 정통성의 근간으로 삼은 신권위주의 체제를 마련했다. 2002~2004년 공산주의청년단과 상하이방의 타협으로 4세대 지도자가 된 후진타오는 권력 승계의 제도화 및 안정화에 주력했다. 후진타오는 화평굴기(和平起·군사적 위협 없이 평화적으로 성장)를 신국가전략으로 내세웠다. 반면 시진핑으로 대표되는 5세대 지도자들은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 등을 비롯해 자기관리가 뛰어난 이들로 대부분 중국의 명문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지난달 막을 내린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인대)는 덩샤오핑이 권력투쟁 방지를 위해 마련한 ‘7상8하’(67세 이하는 상무위 잔류, 68세 이상은 퇴진) 관례, 국가주석 임기제(2기 10년), 격대지정(현 지도자가 차차기 지도자를 미리 정하는 권력승계 방식) 등을 모두 폐기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후 축적된 정치적 성과가 시 주석 집권기에 전면적으로 부정됐다고 볼 수 있다.
  • 파장 커지는 미국의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파장 커지는 미국의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미국이 내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외교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보이콧을 시사하면서 미중 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지구촌 인류 화합의 축제인 올림픽은 단순한 경기대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각국 정상이 개·폐회식에 참석해 친선을 과시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사절단의 올림픽 불참 검토가 향후 미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관심이 쏠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대한 취재진 질문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외교적 보이콧 검토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인권 관행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검토는 영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연쇄적인 외교 보이콧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으로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인 장기 집권 체제 구축을 위한 사전 작업에 공을 들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제행사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다음 내년 하반기 제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 짓길 원한다. 지난 11일 제19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에서 ‘개인숭배 금지’와 ‘종신집권 폐지’ 등의 문구를 뺀 ‘역사 결의’를 통과시킨 것도 이런 과정의 하나로 해석된다. 미국이 보이콧 검토 사유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관행을 거론한 것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전략적 접경지역인 신장에 대한 서방의 인권 문제 제기를 내정 간섭이자 주권 침해로 보고 있다. 반면 바이든 정부는 미국 민주당의 인권 중시 외교 기조를 잇고 있어 미중 양국이 타협할 여지가 작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양국이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사흘 전 첫 화상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경쟁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충돌은 피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안은 협력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 이종석 “김정은, 절대왕조 군주·현대기업 CEO 자질 겸비”

    이종석 “김정은, 절대왕조 군주·현대기업 CEO 자질 겸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은 절대왕조 국가의 군주라는 특성과 현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질을 겸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 정권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의 원천은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선대 김정일 정권은 1990년대 수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을 경험하면서도 살아남았는데,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정권보다 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권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물리적 통제를 하는 선군 정치와 개인숭배, 자주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통해 정통성을 창출했다며 “김정일 정권의 권력을 떠받드는 기초는 단순하고 전근대적 요소로 구성됐다”고 봤다. 이와 달리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정권의 물리적 통제와 개인숭배의 유산을 갖고 있지만, 실용주의와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며 “주민생활의 안정과 향상, 경제적 발전이 김정은 위원장의 최대 정치적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월 노동당 8차 대회 계기 당 규약을 변경해 선군 정치를 폐기하고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표명한 데 대해 “대중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이와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실용주의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행보가 그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며, 김 위원장이 절대왕조 국가의 군주 특성과 현대 기업의 CEO 자질을 겸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세션에 참가한 뤼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경제 개혁을 추구하지 않으며, 8차 당 대회 계기로 오히려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크 교수는 “소련과 중국, 베트남의 (개혁·개방) 사례를 봤을 때 최고지도자가 명시적으로 개혁에 대해 공표했는데, 이것이 개혁에 필요하다”며 “최고지도자가 ‘경제체제를 개혁하겠다,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얘기해야 하위 관료들이 이를 지지하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권력체제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 정권 들어 농장의 책임, 기업의 책임 등 여러 개념들이 도입됐다”면서도 “이는 기존 체제를 완벽하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개혁을 시도해지만 선포한 바는 없다”고 지적했다. 프랑크 교수는 북한이 경제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지만 개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8차 당 대회 연설은 수입을 제한하고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지 연설에 개혁이나 정책 변경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사상 검증이나 정치적 압박 가능성만 시사했다고 짚었다. 프랑크 교수는 “북한의 리더십은 현재 반사회주의적 문화와 이념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그래서 정권이 개혁보다는 정권 안정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을 개혁으로 이끌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 엘리트들을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 성공 사례를 통해 설득해야 하며, 경제 제재는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경제 개혁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개혁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 조치들을 법제화하는 등 개혁 계획과 조치는 정해놨지만, 경제 제재로 인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이 8차 당 대회에서 ‘경제 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언급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이 중앙집권적인 스탈린주의적 경제로 돌아갔다고 이야기하지만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자신이 계획했던 개혁·개방정책을 안되는 부분도 있지만 계속 가져갈 것”이라며 “결국 키는 (제제를 가하는) 서방, 미국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프랑크 교수의 제언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도록 장려하기 위해서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일정한 출로를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정승민의 막론하고] ‘대한’과 ‘조선’의 차이/북유튜버

    [정승민의 막론하고] ‘대한’과 ‘조선’의 차이/북유튜버

    6ㆍ25가 일어난 지 이제 71년이다. 몇 달 전 전쟁의 장본인인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발간됐다고 들었다. 온라인 서점몰을 검색해 보니 판매하는 곳이 전무했다. 시중에 나온 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모두 압수했단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했기에 판매와 배포를 금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신청도 연달아 제기된 상태다. 다른 편에서는 학문과 출판의 자유를 가로막는 시대착오적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절대선(絶對善)은 아니다. 보편타당한 사실을 왜곡해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하는 내용은 곤란하다. 헌정질서를 지키려는 정당한 행위로 평가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짓을 처벌하는 까닭이다. 현재 ‘세기와 더불어’는 법원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념성 서적은 유해 간행물 여부를 확정할 수 없어서다. 김일성의 이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6ㆍ25다. 북한 인민군은 나라가 세워지기 7개월 전 창설됐다. 한반도 전역을 사회주의로 통일하기 위해 북한을 민주기지로 만들고 국토를 완정하겠다는 방침에서 비롯됐다. 김일성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지만 젊은 시절 만주에서 무장활동을 한 행적은 인정된다. 그가 가장 잘 알고 잘하는 일이 무력을 쓰는 것이니 통일의 명분이 걸린 전쟁을 마다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전쟁의 발발을 놓고 북침론부터 내전연장론까지 다양한 관점이 나오지만 당사자인 김일성의 입으로도 남침은 확인된다. 세계적 작가인 루이제 린저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진행되던 시기에 만난 김일성에게 왜 개입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과거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피로 물들인 손을 더이상 쓸 수 없다고 답했단다. 6ㆍ25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그가 선택한 것은 내부 권력투쟁이었다. 경쟁하는 정치세력들을 차례로 숙청했다. 연안파의 무정, 소련파의 허가이에 이어 최대 정적인 박헌영 그룹을 날려 버렸다. 상층부는 제거했지만 출당한 당원 수십만을 복당시키면서 당내 기반은 확충했다. 이 시기에 김일성의 직함이 수상에서 수령으로 승격한 배경이다. 전쟁에 따른 숱한 비극과 상처를 야기한 인물이 정작 자신은 물론 후손까지 권력세습을 가능하게 했으니 역사는 난감하기만 하다. 그러나 김일성에서 시작된 북한 정치는 주체사상의 이념과 유일 권력구조에만 고착됐기에 남북한 체제경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승패가 뚜렷해졌다. 1961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의 갑절이었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기 전에 정반대가 됐다. 서구 경제학자가 ‘코리아의 기적’으로 극찬했던 북조선은 ‘한강의 기적’에 완패했다. 어떻게 대역전극이 가능했을까. 정치학자 박명림은 경쟁과 갈등을 허용하는 서울의 민주주의적 요소가 체제의 실패를 방지하고 실수를 교정하는 발전적 역할을 하는 반면 평양은 최고지도자에게 의심조차 용납하지 않는 개인숭배로 리더십의 오류를 수정할 기회를 원천 박탈했다고 본다. 이견과 이론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혁신과 발전은 존재할 수 없다. ‘국부’ 이승만과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도 사정없이 끌어내리는 대한민국의 역동성에 비춰 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기 힘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봉건성이 두드러진다. 진행 중인 ‘세기와 더불어’ 논란도 모순과 갈등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으로 풀어나가면 어떨까. 사상의 자유와 헌법적 가치도 고려하면서 피해자와 유족의 상심을 배려하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은 전후 70년 만에 다시 출간됐다. 서점에 깔리기도 전에 선주문으로 동이 날 만큼 관심이 후끈했다.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부활을 걱정할 법도 하지만 안전판을 놨다. 국수주의와 인종차별로 점철된 본문에 관해 비판적 주석을 첨부한 판본만 출간을 허용한 것이다.
  • [데스크 시각] 체니의 ‘네버 트럼프’ 전쟁/박상숙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체니의 ‘네버 트럼프’ 전쟁/박상숙 국제부장

    ‘현재 공화당에서 정직함보다 더 큰 죄는 없다.’ 대선 사기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빅 라이’(Big Lie)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리즈 체니가 공화당 지도부에서 축출되자 터져 나온 개탄이다. 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아니라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전직 대통령의 거짓 주장에 동조하기를 거부한 죗값을 물어 당의 ‘넘버3’를 끌어내린 건 미 언론의 자조대로 ‘바나나 리퍼블릭(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체니가 누구인가.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실세 부통령을 역임한 ‘보수의 원류’ 딕 체니의 맏딸로 가족의 오랜 터전이자 친트럼프 성향이 강한 와이오밍을 지역구로 둔 터라 트럼프와 여러 면에서 죽이 잘 맞는 동반자였다. 와이오밍의 주요 산업은 석탄·석유. 트럼프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등 일방 정책은 체니에게 표심을 다지는 축복이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표 통상, 이민, 환경 정책에서 딴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당연히 트럼프의 1차 탄핵심판 때 그를 엄호했고, 지난해 대선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당시 민주당 부통령 후보를 향한 억지 출생지 논란에도 기꺼이 트럼프와 한배를 탔던 그였다. 공화당이 똘똘 뭉쳐 3선으로 당 서열 3위까지 오른 체니를 속전속결로 제거한 건 와이오밍의 험악한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몰표를 준 이곳 유권자들은 체니에게 ‘이름만 공화당원’(RINO·Republicans In Name Only)이라며 돌을 던졌다. ‘비호’로 찍힌 체니는 사실상 재출마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다. 와이오밍의 분위기에서 백악관과 의사당을 모두 내준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설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뾰족한 전략은 없는 상황에서 ‘브랜드 파워’가 여전한 트럼프에게 영혼을 파는 건 쉽고 확실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수호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정당에서마저 개인숭배라니,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기도 하나 보다. 입에 쓴 약을 뱉듯 반대자와 이견을 제거하는 소위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세계 정치판에서 점점 일상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발달로 유권자들의 요구와 비판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면서 이런 경향은 짙어지는 상황이다.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오로지 인기와 당선에만 목매 극렬 지지자들의 아우성에 휘둘린 정치인과 정당이 일으킨 분열과 갈등 사례를 찾으려고 멀리 갈 것도 없다. 특정 인물의 신격화,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오만함, 문자폭탄을 동원한 반대파 제거 등 민주주의 위기 양상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에서 이질성과 다양성을 제거한 집단은 일치단결한 모습으로 단기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지만, 급격한 환경 변화가 닥쳤을 때 다양성의 부재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 이견과 다툼은 시끄럽고 불편하지만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항체와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앵무새’가 되기를 거부한 체니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네버 트럼프’ 기치를 높이 들며 4년 뒤 대선을 바라보는 트럼프를 향해 “백악관 근처에도 못 가도록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반격을 선포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위험하고 반민주적인 트럼프 개인숭배에 빠진 공화당의 현실을 꼬집으며 “역사가,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용기를 내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종종 미국에서 부는 바람은 한국에서 폭풍으로 바뀐다. 공화당의 블루칩에서 졸지에 트럼피즘의 희생양이 된 체니의 ‘네버 트럼프’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란다. okaao@seoul.co.kr
  • 비판이 잠든 순간 독재가 깨어난다

    비판이 잠든 순간 독재가 깨어난다

    체제 유지 성공 독재자 8명 분석언론 장악·진실 왜곡·미화 작업반대파마저 거짓 숭배 동참하며불신·감시·충성 경쟁만 남게 돼 비판·바른 조언만이 독재자 위협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자 그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는 만수대에 모인 북한 주민들은 마치 경쟁하듯 슬퍼했다. 가슴을 손으로 마구 내리치며 비통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졸도해 쓰러지기도 했다. 이들의 눈물은 진짜였을까. 프랑크 디쾨터 홍콩대 인문학 석좌교수의 ‘독재자가 되는 법’은 효과적으로 체제를 유지한 8명의 독재자를 분석한다. 이들은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뒤발리에, 차우셰스쿠, 멩기스투다. 권력을 얻은 자들 대부분이 피비린내 나는 숙청, 교묘한 속임수, 혹은 각개 격파로 정적을 제거했다. 저자는 이런 방법에 관해 “일시적이나마 권좌를 유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 독재자들에게서 보통의 권력자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찾는다. 바로 강력한 개인숭배다. 저자는 독재자들이 개인숭배를 받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우선 언론 장악이 필수다. 무솔리니는 로마 진격 직후 반대 목소리를 내는 신문사의 인쇄기부터 파괴하고, 자신에게 호의적인 언론에 막대한 자금을 줬다. 나팔수 언론은 무솔리니를 영웅으로 추켜세웠다.진실을 왜곡하고 독재자를 미화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예컨대 히틀러에게는 전속사진가인 하인리히 호프만이 있었다. 히틀러의 신봉자인 요제프 괴벨스 나치스 선전장관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때론 외국인을 끌어들여 대외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마오쩌둥은 기자 에드거 스노를 초대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혁명가로서 각색한 이력을 들려줬다. 스노가 1937년 출간한 ‘중국의 붉은 별’에는 마오쩌둥이 독서광이자 천재인 데다가 탁월한 군사·정치적 전략가라는 내용이 담겼다. 독재자를 미화하고 찬양한다고 국민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개인숭배를 거부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에게 가혹한 폭력을 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저자는 특히 “개인숭배를 시키는 목적은 설득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측근이건 반대파건 독재자를 칭송하도록 해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개인숭배를 거부하면 숙청당하기 때문에 거짓으로라도 따라야 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면, 반대파는 독재자에게 반대하는 공모자를 찾아내기 어렵다. 결국 서로를 불신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고, 독재자를 향한 충성 경쟁에 매달리게 된다. 독재자의 말로는 한결같이 비참하다. 자신을 반신이라 믿었던 히틀러는 자살했고, 차우셰스쿠는 생방송 도중 야유와 함께 순식간에 몰락했다. 나라 곳곳에 세운 스탈린 동상은 성난 시민들에 의해 내동댕이당했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 주민들이 슬퍼한 까닭은 슬퍼서가 아니라 비밀경찰들이 이들을 감시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권력자를 무조건 옹호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의 눈은 멀게 마련이다. 이른바 ‘문빠’나 ‘대깨문’ 같은 단어가 섬뜩하게 들리고, ‘대통령의 괴벨스’를 자처하는 이들의 득세가 우려스런 이유다. 독재자가 생겨나는 것을 막는 장치는 결국 비판이다. 권력자 주변에 바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아첨꾼만 남는다. 성난 국민이 혁명을 일으키고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일, 우린 이미 몇 차례 겪었다. “결국 독재자에게 가장 큰 위협은 국민과 독재자 자신”이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특히 와닿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전태일의 유토피아

    [황규관의 고동소리] 전태일의 유토피아

    대구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이곳에 가면 오래된 집 한 채가 있는데, 조용했던 그 집 주위에도 어김없이 재개발 바람이 불어 몇 년 전에 이미 ‘도시환경정비’가 대문과 담장을 허물어 버리고 말았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는 우리 현대사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가 최근 대구 시민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한 이 집은 소년 전태일이 살았던 곳이다. 가족이 가난에 휘둘려 이리저리 찢기는 와중에 가출했던 전태일은 영천을 거쳐 대구로 다시 와 그 사이에 서울에서 내려와 살고 있던 가족들과 재회한다. 그 집이 대구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에 있는 지금의 누옥이다. 남산동 집에서 가족들과 재회한 후 전태일은 인근의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청옥고등공민학교는 그 당시 명덕국민학교 내에 있었다. 고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아름다운전태일)에 옮겨 놓은 전태일의 일기에 따르면 그 시절이 전태일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음이 분명하다. 가을 체육대회를 하며 벅차오른 감정을 적은 것이다. “맑은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깊었으며 그늘과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 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때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는 내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진심으로 조물주에게 감사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유토피아의 원형질로 남게 되는 법인데, 이것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유토피아에 가깝지만 전태일에게는 그 모두를 뛰어넘는 어떤 절대적 순간이었던 듯하다. “서로 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때”는 도대체 어떤 상태일까. 상상만으로도 영혼에서 희열이 일어나는 이런 시간을 우리는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청옥고등공민학교와 남산동 2178-1번지가 그의 ‘마지막 결단’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연한 기회에 청옥고등공민학교 터가 있었다는 지금의 명덕초등학교 체육관을 바라보면서였다. 사실 전태일은 ‘마지막 결단’ 사흘 전에 대구에 내려와 청옥고등공민학교 시절의 친구 예옥을 만나 자신의 결단을 말하기도 했다.(‘사랑을 시작하다-전태일’ YTN 다큐멘터리) 소년 전태일의 집이 헐릴 위험을 직감하고 대구의 시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먼저 ‘전태일시민노동문화제’를 열어 대구 시민들에게 전태일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다음 전태일이 살던 남산동 2178-1번지를 대구전태일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역사적 시간을 현재화하는 일은 그 물질적 흔적들을 가능한 한 많이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조 변호사의 기록물 ‘전태일 평전’이 없었다면 전태일의 ‘정신’이 지금처럼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역사가 될 수 없다. 내 생각으로 대구전태일기념관의 일차적 의미는 이것이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전태일을 단순한 기념비에 가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활시키는 데에 있다. 우리는 대구와 경북을 언제부터인가 역사적 반동의 땅으로 낙인찍고 있지만 그 지역은 해방 이후부터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열망이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였다. 우리는 독재자 박정희가 정치적 탄압을 통해 그 변화의 열망을 꺾어버리고 지역적 인연을 악용해 개인숭배의 땅으로 만들어 버린 사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대구 시민들은 대구가 “전태일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창립선언문’)이지 단순히 군사 독재자가 태어난 고장이 아님을 선언하고 나섰다. 나는 이 언어가 부정의 땅에 긍정의 씨앗을 파종하는 가장 근원적인 정치라고 생각한다. 즉 현실 정치의 질곡을 넘어서는 ‘다른’ 정치의 시작 말이다. 따라서 현실 정치에 절망한 우리가 대구전태일기념관 건립에 힘을 보태는 것도 새로운 정치에 함께하는 방법 중 하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구 바깥의 민주주의자가 열외일 수는 없다. 대구전태일기념관 건립 시민모금의 계좌는 다음과 같다. 대구은행 504-10-351220-9 ㈔전태일의 친구들.
  • 영욕의 71년 북러 관계… 김정은·푸틴 다시 꽃 피울까

    영욕의 71년 북러 관계… 김정은·푸틴 다시 꽃 피울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이번 달 말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이다. 두 정상이 70여년 간 부침을 거듭한 북러 관계를 전면 복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1948년 9월 정권 수립 후 10월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과 국교를 수립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의 지원을 받아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키면서 북한과 소련은 혈맹 관계를 맺게 된다. 1953년 7월 정전되기 4개월 전 스탈린 서기장이 사망하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북소 관계는 악화된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1956년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서구와의 평화공존정책을 추진하자 북한은 흐루쇼프 서기장을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두 국가는 갈등을 빚었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소련은 1961년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된 ‘조·소 우호 협력 및 호상 원조 조약’(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해 혈맹 관계의 명맥은 유지했다. 1964년 흐루쇼프 서기장이 실각하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하자 북소 관계는 개선되는 듯했다. 두 국가는 1965년 군사원조협정을 체결했고, 이듬해 김일성 주석과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정상회담을 했다. 1967년에는 경제기술협력협정 체결, 경제공동위원회 설치 등 관계 개선 조치가 잇따랐다. 하지만 1960년대 소련과 중국이 국경 분쟁을 빚고 1970년대 들어와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북한은 ‘자주노선’을 견지하며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폈다. 1984년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서기장에 오르고 서구 강경노선을 견지하자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강화된다. 1984년 김일성 주석은 23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고, 이듬해 양국은 군사지원협정과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집권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자 북소 관계는 냉각된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6년 블라디보스토크 선언과 19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을 통해 ‘신아시아주의’ 노선을 발표하며 30여 년 간 국경분쟁을 벌인 중국은 물론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한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선다. 소련은 1988년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한국과 소련의 수교를 비공식적으로 결정했다. 이를 설명하고자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북한에 파견하지만, 김영남 당시 외교부장은 “달러를 위해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그해 9월 한국과 소련은 수교를 맺으면서 북소 관계는 해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들어선 이후에도 북러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러시아는 1992년 북한에 1961년 체결된 상호원조조약 중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북한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조약 만료 기한인 1996년에 조약 연장이 중단됐다. 35년간 이어온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동맹이 해체된 것이다. 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1996년 재선되고 친한(親韓) 정책에서 남북한 등거리 외교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북러 관계는 점차 회복된다. 북러는 1999년 3월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폐기된 상호원조조약 중 문제가 된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조약의 한 당사국이 긴박한 침입 위협 또는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에 상호 협의’하는 걸로 대체했다. 이러한 내용의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은 2000년 2월 정식 서명돼 발효됐다. 옐친 대통령의 후임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0년 5월 취임하고 2개월 후 러시아 최고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양국 간 협조와 상호 협력, 북한 미사일 문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북러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듬해 7~8월 김정일 위원장은 답방 형식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러 관계는 복원 단계에 접어든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사업, 대미 공동보조 등에 합의한 ‘북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2년에도 러시아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 푸틴 대통령과 3차 북러정상회담을 하면서 북러 간 친선을 과시했다. 북러 관계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핵 위기가 고조되며 잠시 조정기를 거쳤으나, 2011년 김정일 위원장의 방러로 다시 강화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6자회담 재개와 북러 경협 문제를 논의했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 경협이 재추진됐다. 러시아는 2012년 북한의 대러 채무를 탕감하기로 했으며, 북러는 2014년 경제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러시아가 동참하고, 북한이 2016년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러 관계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북러 간 교역과 인적 교류, 러시아의 대북 지원은 지속됐으며, 2018년 5월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이후 남북,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치 일정이 급하게 돌아가면서 북러정상회담은 순연됐지만, 지난 2월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러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타게 돼 이번 달 말 열리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자 8년만의 북러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북러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北달력 ‘김정은 생일’ 평일 표기…“정치·경제 복합적 고려”

    北달력 ‘김정은 생일’ 평일 표기…“정치·경제 복합적 고려”

    내년 ‘1월 8일’ 검은색 숫자로 인쇄달력 문구에도 김 위원장 언급 없어북한의 내년도 달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일(1월 8일)이 평일로 표기되면서,이러한 결정에 정치·경제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외국문출판사 제작 2019년 달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생일로 알려진 1월 8일(화요일)은 별도 표시가 없는 검은색 숫자로 인쇄돼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다른 공휴일에 비해 더욱 강조돼있는 김일성 주석(4월 15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2월 16일)의 생일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또 외국문출판사에서 제작한 북한 예년의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붉은색 문구가 적혀있었는데,올해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별도의 언급 없이 동일한 문구가 사용됐다. 북한이 2012년 김 위원장 공식 집권 이후 그의 생일을 공식 매체에서 언급하거나 공개적으로 경축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던 만큼,생일이 평일로 표시된 내년에도 공개적인 기념식이나 대규모 행사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은 앞서 2017년 말 제작했던 올해 달력에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 호칭했던 과거와 달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로 표기해 ‘최고령도자’ 호칭을 추가한 바 있다. 당시 이러한 변화는 북한 내부에서 김 위원장의 권력과 권위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지난달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방북 당시에는 김 위원장의 첫 번째 공식 초상화로 여겨지는 대형 그림이 등장하면서,북한이 ‘김 위원장에 대한 개인숭배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한 암시’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년도 북한 달력에 김 위원장의 생일이 표시되지 않자, 또 다른 해석이 나온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선양 현지 소식통은 “정치적으로 보면,아직 자신이 내세울 게 없고 할아버지 등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자신은 아직 젊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보면 국경일로 지정할 경우 주민들에게 배급을 줘야 한다”면서 “평양 인구만 해도 200만 명인데,식용유나 고기 등 명절 물건을 배급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정치적·경제적 양 측면이 모두 고려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열린세상] 김정은과 ‘대중독재’/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김정은과 ‘대중독재’/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대중독재’는 한국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임지현(서강대) 교수가 2003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일 때 동료 학자들과 20세기 근대 독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용어를 만들고 특징을 규정했다.근대독재는 군주독재나 전체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권력자가 폭력과 강제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논리가 아닌 ‘폭력과 강제는 물의 표면에서 작동하는 현상일 뿐 대중의 동의와 자발적 동원 체제를 만들어 내는 다양하고 정교한 장치들이 물밑에 숨어서 작동한다’고 했다. 대중독재는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스페인의 프랑코이즘은 물론 중국의 문화혁명까지 두루 다루고 있지만, 주목적은 박정희 체제의 비판에 있었다. 조희연(현 서울시교육감) 교수가 펴낸 ‘동원된 근대화’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유신 이전까지 박정희 체제의 장기 집권과 그에 대한 폭넓은 대중의 지지와 참여, 근대화와 산업화의 성공을 비판하려면.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 긍정적 집단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의 ‘신화’를 전체주의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한 대중독재는 아래로부터의 독재다. 대의민주주의나 의회민주주의가 아닌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권력의 강압이나 임의적 선택이 아닌 대중의 강제다. 이 때문에 대중의 자발적 지지와 동원의 모습을 띠며, 동의의 정치를 추구하며, 근대화와 산업화의 성공을 통한 대중의 소원과 희망을 반영할 때 더 호소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고, 대중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란 호칭으로 산업 전사로 동원해 국가경제의 고도성장과 노동자들의 소득 향상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착취까지 사회적 양보가 받아들여졌다. 도시 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산업화에서 소외됐던 농민들도 ‘잘살아 보자’며 새마을운동에 참여했다. 대중독재에서 이 모두는 자발적 동원이 아닌 강제동원이다. 이를 위해 박정희는 우상화한 개인숭배보다는 대중과 일상을 같이하고, 심지어 인생에 대한 대중의 태도까지 공유했다는 것이다. 대중독재는 무엇보다 유기적 공동체로서 ‘민족’을 강조하며 민족공동체란 소속감이 유지되는 한 체제에 대한 동의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국가에서 민족은 국민이고 대중이다. 이 때문에 대중 참여는 곧 국민주권이자 민족주권의 행사이며, 대중의 지지와 자발적 동원이 때론 초법적 권력이 돼 불법을 합법으로 바꾸어 놓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 같은 정의와 해석이 타당한가, 아닌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수많은 독재자를 포함시켰지만, 다분히 박정희 체제의 비판을 겨냥한 대중독재의 그림자가 3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김정은에게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북한 인민(대중)은 물론 우리까지 놀라게 만드는 최근 그의 모습은 과거 전체주의에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분명 다르다. 북한 주민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서 북한 주민의 삶에 대한 관심,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유연한 행동과 솔직한 표현, ‘민족공동체’를 강조하는 발언까지 모두 ‘대중독재’가 말하는 것들이다. 계산된 전략이든 아니든 그와 북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국민의 그에 대한 신뢰도가 77.5%까지 치솟았고, 보수층에서조차 72.9%를 기록한 것(MBC 4월 29일 조사)이 말해 준다. 나아가 그의 변신은 북한에서의 그의 권력을 더욱 강화, 안정시켜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남북 평화와 통일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알 수 없다. 한국의 진보사학자들이 규정한 대중독재는 과거 20세기 파시즘이나 박정희 개발독재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김정은에게만 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말할 수 없다. 의회제를 부정하면서 대중 참여민주주의의 환상을 심어 주고, 대중의 열광과 갈채로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는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보수든 진보든 대중독재다.
  • 중국 UAE의 시진핑 주석 전투기 영접 왜 강조하나

    중국 UAE의 시진핑 주석 전투기 영접 왜 강조하나

    중국 중앙(CC)TV는 2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9일 아랍 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할 때 UAE 영공에 진입하자마자 전투기 12대가 시 주석이 탄 전용기를 영접 호위했다고 보도했다. CCTV는 전투기가 국가 지도자의 전용기를 영접해서 호위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의전이라며 그동안 시 주석에게 전투기 호위 영접을 한 국가를 소개했다. 2014년 3월 22일 시 주석이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했을 때 시 주석이 탑승한 전용기가 네덜란드 영공을 통과하자 네덜란드 왕립 공군 f-16 전투기 2대가 급히 이륙해 시 주석의 전용기를 호위했다. 2014년 3월 30일 벨기에를 국빈 방문했을 때도 벨기에 공군 f-16 전투기 2대가 호위했으며, 같은 해 7월 20일 베네수엘라 국빈 방문 때도 공군 수호이-30 전투기 2대가 시 주석을 공중에서 영접했다.  2015년 4월 20일 파키스탄을 국빈방문 했을 때는 중국과 파키스탄 공군이 합작해서 개발한 전투기 ‘샤오룽’(梟龍) 8대가 시 주석의 전용기를 호위했다. 샤오룽은 중국 항공 공업공사와 파키스탄이 합작해서 개발한 전투기로 중국과 파키스탄의 우호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체코, 세르비아, 폴란드, 방글라데시 국빈 방문 때도 2~8대의 전투기가 시 주석을 공중에서 영접했다. 전투기 호위는 서방국가 방문 때도 이어져 2017년 4월 핀란드와 7월 독일 방문 때도 전투기가 두 대가 시 주석을 각국 영공에서 먼저 맞이했다. CCTV는 이와 같은 공중에서의 전투기 의전이 중국에 대한 존중이라고 분석했다.  19일부터 열흘 여간 중동, 아프리카 등지로 장기 해외순방에 나선 시 주석에 대한 융숭한 의전을 강조한 관영언론의 보도는 미국과의 무역전쟁 와중에 나온 것으로 시 주석의 권위를 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무역전쟁 국면에서 강력한 중국을 건설하자는 시 주석의 비전 ‘중국몽’이 미국의 보복을 불러 일으켰다는 비난이 홍콩언론 등을 통해 새어나오는 터다. 이러한 비난에 중국 당국은 시 주석의 개인숭배를 금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전투기 호위는 지난달 북·미 싱가포르 회담에서 전용기를 북한에 내어 준 중국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이동을 위해 중국 영공을 지날 때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시진핑 초상화 먹물 투척’ 이후 ‘개인숭배’ 주춤?

    ‘시진핑 초상화 먹물 투척’ 이후 ‘개인숭배’ 주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에 먹물을 끼얹고 반대를 표명한 여성이 구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신문이 17일 보도했다.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 ‘개인숭배’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중국 각지에서 이어져 중국 공산당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디오프리아시아(RFA)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에 사는 한 여성은 지난 4일 이른 아침 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국몽’(中國夢) 선전 간판에 있는 시진핑 주석의 얼굴에 먹물을 끼얹었다. 이 여성은 “나는 시진핑의 독재전제적인 폭정에 반대한다”면서 “나를 비롯해 수많은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뇌를 공격당하는’ 박해를 받고 있다. 국제기구가 개입해 조사해달라”고 외쳤다. 또 “나를 체포할 거라면 여기서 기다리겠다”고도 말했다. 이 여성은 이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이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자 국내외에서 모방 사건이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에는 “독재자의 얼굴에 먹물을 끼얹자”는 글이 퍼지고, 시진핑 주석의 초상이 그려진 간판에 오물을 칠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도 올라왔다. RFA는 문제의 여성뿐만 아니라 딸의 행동을 지지한 아버지도 13일 경찰에 구속됐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 여성이 ‘뇌를 공격당하고 있다’고 외친 것으로 보아 피해망상증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며 먹물을 뿌린 행위의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여성의 동기와 별개로 시진핑 주석 초상에 먹물을 뿌린 행위와 독재에 반대하는 메시지에 호응하는 움직임을 중국 당국은 주시하고 있다. 반정부 성향의 중화권 매체 보쉰은 지난 9일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면에서 이례적으로 시진핑 주석 관련 기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이는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5년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보쉰은 시진핑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에 대해 당 중앙에서 제동을 거는 움직임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베이징 경찰이 건물 관리자에게 시진핑 주석 포스터 철거를 요구하는 긴급통지를 보냈다는 투고도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 흐름은 집권 2기를 시작한 지난해 10월 19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본격화했다. 보쉰은 ‘개인숭배’로 보이는 시진핑 주석에 대한 지나친 선전이 인민들의 반발을 불러왔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네티즌 개인정보 강화?… 시황제의 ‘디지털 사상 검열’

    페북 등 인터넷 기업 활동 제한 국가 간 데이터 이동 규제 강화 中사회주의 바탕의 인터넷 구축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1일 베이징에서 제1차 전국 사이버안보회의를 열고, 인터넷 강국 추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인터넷을 구축해 나가야 하며, 인터넷 기업은 해로운 정보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인터넷 정화를 강조하고, 중국 정부는 인터넷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 중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활동은 더욱 제약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계기로 개발도상국과 21세기 디지털 실크로드를 닦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공산당 기관과 간부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능력을 키울 것을 요구받았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률은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51.7%로 네티즌 숫자는 7억명 이상이며 이 가운데 92.5%가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네티즌의 개인 정보와 법적 권리 보호를 위해 앞으로 3년 안에 새로운 법안을 마련한다고 21일 보도했다. 새 법안은 사이버 범죄와 관련된 빅데이터의 법적 사용을 명확히 규정할 전망이다. 2016년부터 중국은 인터넷을 관리하는 18개의 법안과 규제를 제정했다. 이들 법률은 온라인 광고, 출판, 자금조달 및 결제, 뉴스, 인터넷 기반 공유경제 등을 규제하고 있다. 최근 광전총국의 기능을 흡수한 중국 문화부는 4900개 이상의 동영상 중계 애플리케이션을 조사해 370개를 삭제했다. 중국 경찰은 지난 2년간 개인 정보 도용 등을 이유로 3700건을 조사해 1만 1000명을 잡아 가뒀다. 중국의 인터넷 환경은 강력한 법률 환경을 통해 더욱 정화될 것이란 것이 인터넷 규제 법률안 마련에 참여 중인 중국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 2년 동안 중국 당국의 인터넷 규제는 사이버 안보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개인 정보 보호로 확대된다. 국경 간 데이터 이동, 온라인 검열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해외 인터넷 기업들의 영업 활동 제한도 명확히 하게 된다. 의료나 법률 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교통 위반 벌금과 수도세·전기세 등 각종 공과금을 휴대전화 앱으로 낼 정도로 중국의 인터넷 환경은 성장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에 따르면 3만 2000개의 정부 인터넷사이트와 6000개 이상의 위챗 계정이 각 정부 부처에서 운영되고 있다. 중국의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위챗은 해외 사용자까지 포함하면 9억명이 이용하고 있어 위챗을 통한 가짜뉴스 유통이 심각한 문제가 될 정도다. 하지만 새로운 인터넷 규제법은 당국의 만리방화벽 때문에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 사이트에 가상사설망(VPN) 프로그램 없이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중국 네티즌들을 더욱 옥죄는 장치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 기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는 시 주석을 풍자하는 ‘종신’이나 ‘개인숭배’ 같은 단어가 차단됐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외모를 비하하는 별명도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인 바이두에서는 민감단어로 분류돼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당국의 삭제 조치에 코미디 앱 ‘네이한돤즈’ 이용자들이 집단 항의에 나서는 등 중국 네티즌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공산당의 검열을 중국인들이 어떻게 뚫을지 주목된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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