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국내외서 증언 ‘참상’ 알려…“내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이옥선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의 생전 모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97)가 11일 저녁 성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
부산 출신인 이 할머니는 1928년생으로, 14세 때 중국 옌지(延吉)로 강제 동원되어 3년간 일본군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던 할머니는 2000년 6월 58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고, 이듬해 어렵게 국적을 회복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생활 중 일본군 도검에 찔려 손과 발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았으며, 폭행의 후유증으로 치아가 빠지고 청력도 크게 손상됐다. 퇴행성 관절염 등 건강 문제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피해 증언 요청이 있을 때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증언 활동에 앞장섰다.
2002년 미국 브라운대 강연을 시작으로, 일본과 호주 등 세계 각지를 돌며 20년 가까이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렸다. 2013년에는 미국, 독일, 일본 등 3개국 12개 도시를 오가는 강행군을 펼쳤다. 이동 거리만 약 5만㎞에 달하는 긴 여정이었다. 2016년에는 영화 ‘귀향’ 제작진과 함께 미국을 찾아 증언 및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한일 정부의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합의는 잘못된 것이다. 정부를 믿고 사는데 너무 섭섭하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다. 이후 국내 반발 여론과 한일 관계 경색 속에 2018년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됐다.
이옥선 할머니의 빈소는 용인 쉴락원 1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4일 오전에 엄수된다. 고인의 뜻에 따라 유해는 인천 바다에 뿌려질 예정이다. 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6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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