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법인 세워 ‘꼼수’ 수령


서울의 한 전기차 전문 렌터카 업체가 보조금 지급이 많은 전라도와 경상도 등에 ‘유령 법인’ 수십개를 세우고 27억여원의 전기차 보조금을 ‘꼼수’ 수령한 정황이 경찰에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자체 예산을 털어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그 지역에서 운행하지도 않으면서 많게는 수백대의 차량을 한꺼번에 구입하며 예산을 ‘독식’한 것이다. 보조금 재원이 조기에 소진되면서 정작 전기차가 필요한 주민들은 구입을 못하거나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돌아갔다는 지적이다.
●미완성 차 구매 등 불법 수령 계속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최근 렌터카 업체의 전기차 구매를 제한하고 있지만 여전히 ‘편법’ 구매가 가능한 데다 처벌 규정도 명확하지 않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렌터카 업체 등이 불법·편법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수령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22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금천경찰서는 서울 소재 전기차 렌터카 업체 대표 A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1년부터 경남 양산과 전남 광양 등에 20여개의 유령 법인을 세웠다. 이 업체는 지자체별 전기차 보조금이 다른 점을 노려 보조금이 많은 지역에 차량을 ‘위장 등록’한 후 실제 영업장은 서울에서만 운영했다고 한다.
전기차 보조금은 국비에 지자체의 자체적인 지원금을 더해 지급된다. 이 업체가 전기차를 사들인 2022년 광양의 보조금은 최대 1500여만원(차종별 차이 있음)으로 서울의 900여만원보다 600만원 가량 많았다. 이에 광양에서만 200여대의 전기차를 사들여 12억여원의 ‘보조금 차익’을 챙겼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이런 방법으로 전국 각지에서 500대가 넘는 전기차를 구입해 27억 820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 수령했다.
이런 행위가 가능했던 이유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이 렌터카 업체의 차량 등록과 운행 지역에 대한 뚜렷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서다. 아울러 전국으로 이동이 가능한 차량 사업 특성상 보조금 수령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어렵단 점도 한몫한다. 이 업체가 보조금을 수령한 양산시 관계자는 “운전을 하다 서울에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 지역에서 영업하는지 일일이 들여다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경찰도 A씨에 대해 적용할 법 위반이 있는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 실태 조사 강화·엄벌해야”
정부도 최근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전기차 보조금 지급 규정을 강화했다. 2023년 변경된 지침에 따라 현재는 렌터카 업체가 지자체당 1대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보조금이 많은 지역에서 차량을 구입하는 게 가능하고, 한국환경공단의 별도 승인을 받으면 여러 대의 차량을 등록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실태 조사를 강화하고 보조금 불법 수령 업체에 대해선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처벌을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25-04-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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