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이 쏘아올린 ‘초월적 외교’...의도된 발언이었나

문정인이 쏘아올린 ‘초월적 외교’...의도된 발언이었나

김헌주 기자
입력 2021-04-12 18:44
수정 2021-04-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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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여건이 걸림돌
현실 인식 잘못했다가는 득보다 실 커
美 압박에 숨통 넓혀주려는 의도 해석도
미중 경쟁 장기전..“공존구조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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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서울신문 DB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서울신문 DB
“혹시 초당적 외교를 잘못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멘토’였던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살 길은 초월적 외교”라고 주장한 데 대해 외교가에서는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했을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다자 협력을 통한 ‘적극 외교’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초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국이 지정학적 불리함을 극복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지난 11일자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대립이 격화할수록 한국의 선택지는 제한되기 때문에 대립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나는 이것을 한국이 살길로 초월적 외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 어느 진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 협력과 지역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미중 충돌을 막고 외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적극적인 외교”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지나친 미국 의존은 오히려 미일동맹의 경직성을 가져와 한일 모두에 안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도 스스로 적극적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맥락에서 ‘초월적 외교’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 정부 출범 이후 미중 대립 국면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한국 입장에서는 솔깃한 제안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군사력, 경제력 측면에서 눈부신 성장을 일궜으면서도 하필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에 위치해 지정학적으로 취약성이 크다는 점이다.

결국 취약성을 줄여나가면서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과 구조 자체를 벗어나 새로운 외교를 창출해 내는 것 중 하나를 정해야 하는데 여기엔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이상을 추구했다가는 득보다 실이 커 오히려 우리의 입지를 더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당장 문 이사장의 주장에 대해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를 모를 리 없는 문 이사장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미국의 압박을 받는 한국 정부의 활동 공간을 넓혀주기 위해 의도된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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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문재인 대통령 예방에 앞서 한미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스틴, 블링컨 장관, 성 김 미국 국무부 동아차관보 대행, 서훈 국가안보실장,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서주석 외교안보실 1차장. 2021. 3. 18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문재인 대통령 예방에 앞서 한미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스틴, 블링컨 장관, 성 김 미국 국무부 동아차관보 대행, 서훈 국가안보실장,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 서주석 외교안보실 1차장. 2021. 3. 18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12일 “미중 간 냉전 구도를 피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든지 그런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남북관계만 얘기하면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다자협력을 하려면 미국과 중국도 들어와야 하는데 가능할 지 의문”이라면서 “초월적 외교는 동북아의 외교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중 전략 경쟁은 세계적인 범위에서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나머지 국가들이 같이 협력하고 연대해서 미중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극단화할 수 있는 미중 경쟁에서 공존 구조를 만드는 것은 양국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이제는 그런 역할을 해 나가야 할 시기가 됐고 역량도 있다. 다만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현재의 외교 역량을 결집하는 ‘초당적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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