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걷히는 북미 회담
北 자발적 억류 미국인 석방美에 충분한 대화의지 전달
폼페이오 美국무, 김정은 만나
비핵화 범위·방법 합의 관측
지난 3월 31일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 신분으로 북한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장관이 9일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백악관이 공개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모습. 폼페이오 장관이 재방북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최종 확정하고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데려오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AFP 연합뉴스·미 정부 제공
AFP 연합뉴스·미 정부 제공
북한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조치에 이어 억류자 석방 등 대미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먹구름이 걷히는 분위기다. 워싱턴의 한 외교관은 “이번 북한의 자발적인 억류 미국인 석방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에 충분한 대화 의지를 보여 준 셈”이라면서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과 독대로,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뿐 아니라 ‘비핵화’의 수준도 합의를 마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일 취임식에서는 ‘영구적 비핵화’(PVID)를 강조해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허들을 올린 것으로 여겨졌다. 허들을 높이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북한 외무성은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김 위원장과 한반도 비핵화 범위와 수준, 방법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렀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에 브라이언 후크 국무부 정책계획국장에 이어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까지 데려간 것도 이 같은 핵 폐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석방된 미국인은 김동철, 김상덕(미국명 토니 김), 김학송씨로 모두 한국계다.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에서 체포된 김동철씨는 북한 군인으로부터 핵 관련 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와 사진기를 넘겨받았다는 이유로 간첩과 체제전복 혐의가 적용돼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받았다. 중국 연변과기대 교수 출신으로 지난해 4월 국가전복 적대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김상덕씨는 평양과학기술대 회계학 교수로 초빙돼 한 달간 북한을 방문했다가 출국길에 잡혔다. 김학송씨는 지난해 5월 중국 단둥의 집으로 가려다 반공화국 적대행위 혐의로 체포됐다. 김씨는 2014년부터 평양과기대에서 근무하며 농업기술 보급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과기대는 한국계 미국인 김진경 공동총장이 2010년 미국 선교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대학으로 교수진 전원이 미국 또는 유럽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평양에 도착하기에 앞서 전용기 안에서 풀 기자들(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에게 북·미 정상회담 의제 확정과 ‘억류자 석방 협상’이 방문 목적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북한에 도착하면 억류 미국인 3명 문제를 꺼낼 것”이라면서 “북한이 이들을 석방한다면 좋은 제스처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키웠다. 또 그는 “북·미 최고위급 차원에서 날짜와 장소에 대한 약속이 이뤄져 있으며 확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단지 (특정) 도시나 나라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디냐에 대해 좀더 알맹이를 채워 나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단계별·동시적’ 비핵화 주장은 일축했다. “우리는 잘게 세분화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렇게 된다면(잘게 세분화한다면) 국제사회가 대북 압박 완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거 걸었던 길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밝히길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제재 완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2018-05-10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