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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범의 정책 플랫폼] 21대 국회, 남은 1년여만이라도 제대로 하라/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이영범의 정책 플랫폼] 21대 국회, 남은 1년여만이라도 제대로 하라/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22-10-30 22:00
업데이트 2022-10-3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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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빠진 尹정부 첫 국정감사
법안 발의도 질보다 양으로 승부
협치커녕 대립갈등만 재생산
이제라도 숙의기구 역할 되찾길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가운데 세간에선 ‘국정’ 빠진 국정감사였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쟁으로 날을 새웠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현실은 고물가, 고환율, 급작스러운 채권시장의 위기 등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유동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향후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또다시 서민들은 높아진 물가로 인한 고통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국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지만, 민생을 위한 국회의 논의와 협치는 더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국회의 본래 기능은 각 정당이 가지고 있는 정책 신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의 모습을 보면 국회는 국민을 위한 정책 토론의 장이 아니라 마치 각 정당의 지지자들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곳이 된 듯하다. 이 모습은 각자 다른 신념의 관철을 위해 서로 대결하는 정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더 큰 걱정은 이러한 분위기가 쉽사리 사그라들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은 각자 알아서 불확실한 미래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국민의 생활은 어렵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은 시급하지만, 21대 국회의 남은 기간 동안 국회가 무언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정책을 만들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간 국회가 보여 준 입법 활동의 모습을 보면 이런 우려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대 국회를 보면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 제개정안은 총 2만 1954건이나 된다. 이는 국회의원 1인당 1년에 평균 18건의 발의안을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처리돼 법률에 반영된 발의안은 전체 발의안의 32%인 6608건이다.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발의안이 1만 4796건으로 전체 발의안의 67% 이상을 차지한다. 즉 국회에서 의원들은 열심히 발의하지만, 정작 논의와 합의를 거쳐 통과되는 법률 제개정안은 몇 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리된 법안도 질에서는 개탄스러운 경우가 많다.

여야를 떠나 발의안의 형식적 요건마저 무시한 법안, 동일 또는 유사한 내용의 중복 발의, 베끼기 발의 등 ‘실적 쌓기용’ 발의안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각 정당 내 정책조정 기능의 실종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국회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출산ㆍ고령화의 인구구조 변화, 저성장 기조의 지속이라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가? 국회 본연의 기능은 사회적으로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가치를 중재하고 대안을 모색해 사회통합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는 협치는커녕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만을 확대재생산하는 공간이 된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국회가 현재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를 적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동안의 논쟁은 잠시 멈추고 여야에서 어떤 조건이 선행됐을 때 국회 정상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부터 시작하자.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여야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대의민주주의 체계 내에서 국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국회는 하지 않아도 되는 실적 쌓기에 매달릴 게 아니다. 복잡하고 급속한 환경변화에 대응하면서 적실성 있는 정책을 생산해 내는 숙의적 정책결정자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 국회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고, 대립하는 가치를 중재하고 조정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하루속히 돌아와 사회통합에 앞장서기를 바라 본다.
2022-10-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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