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 서구 폭발적 발전 낳다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 서구 폭발적 발전 낳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2-10-27 20:18
업데이트 2022-10-28 01:4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위어드/조지프 헨릭 지음/유강은 옮김/21세기북스/768쪽/4만 2000원

일부일처제·친인척 결혼 금지
장자 상속 아닌 유언 따른 상속
친족관계 해체 교회로 부 쏠려
개인의 사고방식까지 바꿔 놔
사람들 도시로 몰려 경쟁 심화
상업 발전·산업혁명까지 견인
이미지 확대
“나는 ___이다.”

밑줄을 채워 보자. ‘누구의 아빠’라든가. ‘A대학’을 나온, 혹은 회사 이름을 먼저 말할 확률이 높다.

케냐 마사이족과 삼부루족은 자기 자신보다 집단 안에서의 역할에 대한 언급 비율이 80%에 이른다. 반대로 미국 대학생과 유럽인들은 ‘호기심이 많다’, ‘열정적이다’와 같은 자신에 대한 서술이 극단적으로 높다.
이미지 확대
조지프 헨릭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조지프 헨릭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조지프 헨릭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는 이런 이들을 가리켜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 앞글자들을 따 ‘WEIRD’(위어드, 기이하다)라고 명명했다. 우리가 흔히 ‘서양사람’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들이자, 오늘날 국제 사회의 주류라는 집단이다.

저자는 이들을 연구하면 서양 문명이 1000년 이후 역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서유럽 국가들이 1500년경부터 세계 곳곳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라든가, 어떻게 18세기 말 신기술과 산업혁명을 동력으로 삼아 경제 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는지 등이 이런 사례다.

저자는 유럽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 혹은 지금까지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았던 아프리카 부족 등에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시작점으로 1000년을 전후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기독교를 찾았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가장 독특한 부분을 살폈다. 저자가 찾아낸 특징은 일부일처제만 허용하고 친족과 인척과의 결혼과 중매결혼을 금지하고 독립적인 거주를 장려하고 장자 상속이 아닌 유언에 따른 상속을 하도록 한 점, 입양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결혼 가족 강령’으로 요약했다.
이미지 확대
결혼 가족 강령에 따라 집약적 친족관계가 해체되면서 유대감이 느슨해졌다. 교회의 독특한 기부 문화 덕분에 장자를 남기지 못하면 교회에 땅을 기부하면서 교회에 부가 쏠리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개인의 사고방식마저 바꿨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개인주의, 분석적 사고, 높은 죄의식에 반해 낮은 수치심이 모두 설명된다.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어야 했고, 그러면서 문해력이 높아졌다. 이것이 기독교가 퍼지는 반경과 겹치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친족관계가 해체되고 개인이 중시되면서 도시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길드, 수도원, 대학, 사업체 사이의 경쟁이 강해졌는데, 이는 생산성을 급격히 높였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창의성이 발현되는 사례도 많아진다. 도시화, 상업의 발전, 산업혁명에 이르는 발전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떠올릴 법하다. 다이아몬드는 생물지리적 요인들이 농업을 발전시키고 지구 차원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까닭은 잘 설명하지만, 1000년 이후 서구 사회의 발전에 대해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사실상 지금쯤 중국이나 아랍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0년 이후 교회에서 출발한 각종 장치와 제도가 수백 년 서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은 이 책이 더 설득력 있다.

700쪽이 훌쩍 넘는 ‘벽돌책’이지만, 술술 읽힌다. 무수한 통계와 각종 심리실험 등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오가며 저자가 직접 참여했던 실험은 물론이거니와 공들인 여러 통계가 설득력을 더한다.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압도하고, 지형적인 특징까지 압도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인류학과 심리학,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을 엮어 현대 서구 문명의 번영을 명쾌하게 해설한 저자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김기중 기자
2022-10-28 17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