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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국가와 국민 4500년간의 도전과 응전

세금, 국가와 국민 4500년간의 도전과 응전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2-08-18 22:04
업데이트 2022-08-1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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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흑역사
마이클 킨, 조엘 슬렘로드 지음
홍석윤 옮김/세종서적/568쪽/2만2000원

고대 수메르 이후 ‘조세 숨바꼭질’
러시아 수염세, 현대 탄소세 기원
유럽 부가가치세, 각국 정부 도입
인니, 오토바이 8인승 바꿔 절세
불균형·불공정한 징세, 저항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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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대명사 드라큘라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탄생했다. 루마니아의 전신이라 할 발라히아 공국의 블라드 3세 공작이 주인공이다. 그는 흔히 ‘가시공(公)’으로 불린다. 사람을 꼬챙이에 끼워 죽이는 잔혹한 공포정치로 얻은 별명이다. 당시 발라히아의 지배계층이었던 독일계 상인들이 과도한 세금에 항거하자 그는 수많은 사람을 꼬챙이에 끼워 죽였다. 세금이 드라큘라라는 소설 속 캐릭터를 이끌어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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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00년 당시 세금 영수증이 새겨진 수메르의 점토판.  세종서적 제공
기원전 2500년 당시 세금 영수증이 새겨진 수메르의 점토판.
세종서적 제공
세금은 국가의 동력이다. 혈액에 견줄 만하다. 그런데도 세금을 걷는 쪽과 내는 쪽은 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그려진다. 심지어 세금 징수를 흡혈로 묘사하기도 한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성서 마태복음(21장 31절)은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라고 적고 있다. 마태복음을 쓴 이가 세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구절은 ‘세금 징수는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고, 정직하게 그 일을 해냈다면 천국에 간다’는 뜻으로 읽힌다. 새 책 ‘세금의 흑역사’는 이처럼 국가와 국민 간의 끝없는 도전과 응전이었던 세금이 어떻게 역사 속에 기록됐는지, 과거 사건들은 현실의 세금 문제 해결에 어떤 단서를 제공했는지 등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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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시기에 만들어진 이른바 ‘소비세잔’. 무게에 따라 유리 제품에 세금을 매기자 가운데 손잡이 부분을 텅 비게 제작했다. 세종서적 제공
1795년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시기에 만들어진 이른바 ‘소비세잔’. 무게에 따라 유리 제품에 세금을 매기자 가운데 손잡이 부분을 텅 비게 제작했다. 세종서적 제공
세금 정책은 동서와 고금을 무시로 오간다. 애덤 스미스가 “사람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는 기술만큼 한 정부가 다른 정부에서 더 빨리 배우는 기술은 없다”고 단언할 만큼 각국 정부는 항상 다른 나라들의 세금 정책을 ‘기쁘게’ 들여왔다. 대표적인 게 1967년 등장한 부가가치세다. ‘천재적인 세금’이라 불리는 부가가치세의 기원은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다. 생산 단계마다 과세하는 이 세금은 상품 서비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왜곡이 적은 방법으로 더 큰 세수를 창출할 수 있게 했다. 부가가치세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미국 등을 제외한)로 퍼져 나갔다.

기원전 2500년 당시의 세금 납부 영수증이 수메르의 점토판에 기록으로 남은 이후 인류는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세금과 숨바꼭질을 벌여 왔다. 지금도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케이맨제도의 5층짜리 ‘어글랜드 하우스’엔 1만 2000개 회사가,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한 건물엔 무려 28만 5000개의 회사가 입주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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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이 “최초의 세금 시위자”라고 표현한 고다이바 부인의 그림.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1898년 작품이다.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였던 남편의 조롱 섞인 제안에도 수치심을 버리고 누드 시위를 벌여 백성들에게 세금 경감을 안겨 준 역사를 표현했다. 세종서적 제공
저자들이 “최초의 세금 시위자”라고 표현한 고다이바 부인의 그림.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1898년 작품이다.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였던 남편의 조롱 섞인 제안에도 수치심을 버리고 누드 시위를 벌여 백성들에게 세금 경감을 안겨 준 역사를 표현했다. 세종서적 제공
그렇다고 피할 궁리만 하는 건 아니다. 세금의 필요성엔 누구나 공감한다. 문제는 징수의 균형과 공정이다. 정부가 오토바이에 세금 우대정책을 펴자 뒷좌석을 8명까지 탈 수 있게 개조한 인도네시아처럼 가벼운 공방전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일본의 시마바라 학살 사건에서 보듯 영주가 조세에 저항하는 1만 7000여명의 주민을 화형시켜 저잣거리에 효수하는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극빈자들에게 몸에 들끓는 이를 세금 대신 걷은 잉카제국, 수염세를 만든 러시아 표트르 대제처럼 생뚱맞은 사례들도 있다. 물론 모두 나름의 시대적 이유가 있다. 잉카의 경우 누구든 어느 정도의 세금은 내야 한다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고, 귀족을 억제할 의도로 매겼던 수염세는 오늘날 탄소세의 기원이 됐다. 미래도 그렇다. 로봇세, 유전자세처럼 현재 시각으론 황당해 보이는 정책도 고령화가 심화되고 복지가 강조되는 미래엔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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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바라의 난 관련 그림. 마쓰쿠라 다이묘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저항한 시마바라의 농민들이 화형당하는 모습을 그렸다.⑤오늘날 탄소세의 기원이 된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수염세 토큰. 세종서적 제공
일본 시마바라의 난 관련 그림. 마쓰쿠라 다이묘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저항한 시마바라의 농민들이 화형당하는 모습을 그렸다.⑤오늘날 탄소세의 기원이 된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수염세 토큰.
세종서적 제공
세금은 보통 정의의 관점에서 다뤄진다. 그래서 세금 이야기는 늘 무겁고 어렵다. 한데 책은 정의를 말하면서도 현학적이거나 딱딱하지 않다. 농담과 풍자를 잘 버무려 꿀꺽꿀꺽 넘어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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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5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세금 징수의 역사와 에피소드, 2부는 과세의 공정성, 3부는 세금을 회피하는 기발한 노력들, 4부는 정부가 내놓은 당근과 채찍, 5부는 조세정책의 공과와 미래에 대한 교훈을 각각 조명한다.

손원천 기자
2022-08-1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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