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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신경불안… ‘비정상’ 낙인 해체한 전쟁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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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2-07-22 09:56 출판/문학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정상은 없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정해영 옮김/메멘토/600쪽/3만 3000원

우생학, 조현병·유색인 규제 활용
시리얼, 수음 줄이는 발명품 시초
월남전, 스트레스 환경 요인 조명
한국전, 심리적 대화 치료 일상화
향정신병약 개발, 통원치료 효과

19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에 끌려가 대중 앞에서 알몸으로 전시대에 서야 했던 남부 아프리카 여성 사라 바트만을 그린 프랑스 판화. 당시 아프리카 흑인은 유럽인과 전적으로 다른 종이자 동물에 가까운 원시적 신체 구조로 여겨졌다.  메멘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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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에 끌려가 대중 앞에서 알몸으로 전시대에 서야 했던 남부 아프리카 여성 사라 바트만을 그린 프랑스 판화. 당시 아프리카 흑인은 유럽인과 전적으로 다른 종이자 동물에 가까운 원시적 신체 구조로 여겨졌다.
메멘토 제공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장애는 극복할 대상이 아닌 인간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레이디 가가나 마이클 펠프스 같은 유명인도 각각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주의력결핍장애(ADHD)를 공개하는 데 비해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혐오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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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보건을 연구하는 미국 문화인류학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정상은 없다’를 통해 사회 통념상 ‘비정상’인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고 낙인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벨기에의 응급치료소에서 한 영국 부상병(왼쪽 아래)이 폭발로 인한 신경 불안 증세인 ‘탄환 충격’ 증상으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메멘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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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벨기에의 응급치료소에서 한 영국 부상병(왼쪽 아래)이 폭발로 인한 신경 불안 증세인 ‘탄환 충격’ 증상으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메멘토 제공

실제 자폐증 딸을 키운 경험이 있는 저자는 자본주의와 전쟁, 의료화의 세 측면에서 정신 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탐구한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이 없다는 것은 질병으로 여겨졌고 여성은 출산만 하는 동물적 본성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이런 시각은 인종주의와 결합해 사라 바트만이라는 19세기 남부 아프리카 여성은 영국 런던에서 알몸으로 대중들 앞에 전시됐다. 당시 흑인 여성은 유럽인과 종이 다른 원시적 인체 구조일 뿐이었다. 우생학자는 조현병을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의 성생활, 결혼과 출산 규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고, 생물학자는 유색인종을 원시적이라고 비하하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했다.

켈로그의 ‘콘플레이크’(시리얼)는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이 성욕을 억제한다는 생각에 따라 20세기 초 정신 질환으로 여겼던 수음(자위행위)을 줄이기 위한 발명품이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 육군이동외과병원(MASH)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에 오르는 부상병들. 메멘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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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미국 육군이동외과병원(MASH)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에 오르는 부상병들.
메멘토 제공

저자는 ‘군진 정신의학’을 통해 전쟁이 정신적 문제에 대한 낙인과 수치심을 줄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PTSD가 조명받았는데, PTSD는 개인의 고유한 성격보다 환경적 스트레스에 원인을 돌림으로써 정신병 환자라는 낙인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했다. 6·25전쟁 때는 심리 치료의 핵심인 대화 요법이 일상화됐다.

많은 정신보건학자들은 정신 질환을 뇌의 장애로 이해하고, 뇌를 치료함으로써 낙인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신 질환을 당뇨나 심장병처럼 분류하려는 시도에 저자는 반대한다. 복잡한 유전적 특징은 정신 질환 원인의 일면일 뿐이며, 임박한 정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 인간의 뇌는 다른 장기와 달리 쉽게 해부할 수도 없다. 저자는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을 그의 뇌로 환원하는 것은 누군가를 그 사람의 유전자나 인종, 종교, 성별, 성적 지향으로 환원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고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2006~2011년 한국에서 진행한 자폐증 연구도 흥미롭다. 한국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자폐증으로 진단받길 거부하고 유전과 연관성이 적은 ‘반응성 애착장애’(RAD) 진단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식이 자폐아로 낙인찍힐 경우 혈통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 다른 자식의 혼사에도 악영향을 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항정신병약의 개발로 많은 환자가 시설을 떠나 통원치료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안과 정신병을 줄였고, 일본에서 2002년 정신분열증을 ‘통합실조증’으로 바꿔 불러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인식하게 된 변화에 주목한다. 생생한 사례와 명쾌한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 질환에 새겨진 낙인을 해체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종훈 기자
2022-07-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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