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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낡은 가방… 85년 민족혼 가득

고려인 낡은 가방… 85년 민족혼 가득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07-05 20:28
업데이트 2022-07-0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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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재단 역사 전시회 눈길

카자흐스탄과 수교 30주년 기념
생존 의지 보인 농지 개척 사진
홍범도 수위로 일한 극장 모형
신문·희곡 등 한글 사료도 풍성
고난 속 문화예술 희망 엿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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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9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소련 정권에 의해 여행가방 하나 달랑 든 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1937년 9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소련 정권에 의해 여행가방 하나 달랑 든 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하루아침에 강제 이주 명령이 떨어지면 가방엔 무얼 챙겨야 할까.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중앙아시아로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은 크지 않은 여행가방에 옷가지와 함께 책이나 공연에 필요한 소품 같은 것들을 챙겼다고 한다. 문화예술을 통해 어딜 가서든 민족혼을 잊지 않고자 했던 그들의 의지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고려인의 정착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 ‘와싹와싹 자라게’를 다음달 6일까지 서울 중구 수하동 KF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정착 85주년이기도 하다.

전시관 입구에는 중앙아시아에 외따로이 떨어졌던 고려인처럼 낡은 갈색 여행가방 하나가 쓸쓸히 놓여 있다. KF갤러리 관계자는 “당시 실제로 썼던 여행가방”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둘러보면 그 여행가방에 단순히 옷가지와 같은 생활필수품만 챙긴 것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다. 전시의 주를 이루는 사진에는 당시 학생들이나 교사, 우리말로 연극을 선보인 연극인들, 한글 신문 ‘레닌기치’ 사원들과 출판사 관계자 등 우리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레닌기치를 계승해 오늘날까지 발간되는 고려신문,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명맥을 잇는 고려극장 등은 고려인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이어 간 민족혼을 엿보게 한다.

전시 중간에는 낯선 땅에 정착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치열했던 생존 흔적도 살필 수 있다. 강제 이주는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이 고려인강제이주명령서에 서명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고려인들이 도착한 일대는 진펄과 갈밭, 소금밭뿐이었다. 고려인들은 이듬해 봄부터 갈대를 베고, 땅을 고르고, 메마른 땅에 물을 대어 볍씨를 뿌렸다. 척박한 땅에 집을 짓고 개척했던 고려인들의 사진은 이들이 뿌린 씨가 황무지를 푸른 옥토로 변신시켰다는 설명과 함께 그들의 강인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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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고려극장에서 우리말 공연을 선보이는 등 문화예술을 통해 민족혼을 유지하는 데 힘썼다.
고려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고려극장에서 우리말 공연을 선보이는 등 문화예술을 통해 민족혼을 유지하는 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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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로 유명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고려인 17만명이 이주했고, 노약자 1만 5000여명은 이주 첫해 추위와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봉오동전투’로 유명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고려인 17만명이 이주했고, 노약자 1만 5000여명은 이주 첫해 추위와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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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우리말 신문인 레닌기치(현 고려일보)를 발간하는 등 문화예술을 통해 민족혼을 유지하는 데 힘썼다.
고려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우리말 신문인 레닌기치(현 고려일보)를 발간하는 등 문화예술을 통해 민족혼을 유지하는 데 힘썼다.
생활이 나아진 고려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 대신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고려인들에게 모국어 고등교육을 금지시켰지만 문화예술 활동에는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지식인들은 극장과 신문사로 모여 민족문화의 명맥을 이어 갔고, 수많은 한글 문학 단행본과 희곡 등이 탄생했다. 고려극장은 ‘봉오동전투’를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이 수위로 근무한 역사도 품고 있었다. KF 관계자는 “현재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엘리트 계층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며 “5세대까지 내려와 한글이 익숙하진 않지만 고려신문과 고려극장 등을 통해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명인 ‘와싹와싹 자라게’는 고려인 1세대 극작가 연성용이 1933년에 작사·작곡한 노래 ‘씨를 활활 뿌려라’의 후렴구 가사다. 바람에 와사삭, 와싹 스치는 농경지의 빼곡한 벼 잎들을 상상하게 하는 이 가사는 고려인들의 희망을 보여 주는 말로 고단한 삶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글·사진 류재민 기자
2022-07-0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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