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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꿈꾸던 수포자·중퇴생, 독창적으로 세기 난제 풀어… 늦깎이 수학자, 새 지평 열다

시인 꿈꾸던 수포자·중퇴생, 독창적으로 세기 난제 풀어… 늦깎이 수학자, 새 지평 열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2-07-05 18:10
업데이트 2022-07-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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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교수, 한국계 첫 ‘필즈상’

어릴 땐 구구단도 외기 버거워해
히로나카 강의 듣고 수학자 길로
석사까지 한국서 마치고 美 유학
도장깨듯 난제 풀어 ‘콜렉터’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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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 수학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한국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리드 추측, 로타 추측, 다울링-윌슨 추측 등 세계 수학계의 난제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면서 ‘수학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콴다매거진 제공
한국계 미국 수학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한국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리드 추측, 로타 추측, 다울링-윌슨 추측 등 세계 수학계의 난제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면서 ‘수학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콴다매거진 제공
어려서는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우고 수학문제집 답지를 베끼던 ‘수포자’, 고등학교 때는 기형도를 좋아해 시인을 꿈꾸며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학생. 대학 시절엔 좋아하는 수학자를 만나기 위해 과학기자를 꿈꿨던 사람이 수학계 최고 영예인 ‘필즈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석학으로 우뚝 섰다.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 수학자 허준이(39·June Huh)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한국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다.

국제수학연맹(IMU)은 5일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ICM) 개막식에서 허 교수를 포함한 4명의 수학자에게 ‘2022 필즈상’을 수여했다.

IMU는 허 교수의 이름을 두 번째로 호명하면서 “그는 리드 추측을 비롯해 오랫동안 난제로 남아 있던 문제들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풀어냄으로써 앞으로 수학이 나갈 방향을 제시해 수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허 교수는 한국인은 물론 한국계 수학자 중 첫 필즈상 수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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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ICM) 개막식에서 허준이 교수가 상패를 전달받고 있다. 헬싱키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ICM) 개막식에서 허준이 교수가 상패를 전달받고 있다.
헬싱키 연합뉴스
●리드 추측 등 난제 대수기하학 접근

허 교수는 리드 추측, 로타 추측, 다울링-윌슨 추측 등 수학 난제들을 차례로 해결해 ‘난제 콜렉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리드 추측은 1968년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제시한 채색다항식 관련 조합론 문제다.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다리 7개를 반드시 한 번씩만 건너서 모두 지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같다. 허 교수는 이런 조합론 문제를 1차, 2차, n차 다항식으로 표현되는 대수기하학으로 풀었다.

세계적인 수학자 반열에 오른 허 교수의 학창 시절은 차라리 ‘수학을 포기한 학생’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2학년 끝무렵에 구구단을 겨우 외우고 아버지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가 낸 수학문제집 풀이 숙제에 답지를 베꼈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어머니인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는 아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다가 두 손을 들었다. 시인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가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한 뒤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과학기자를 희망직업으로 삼았다. 1990년대 국내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자서전 ‘학문의 즐거움’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허 교수는 학부 4학년 때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로 온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를 듣고 전공을 수학으로 바꾼 ‘늦깎이 수학자’다.

●수학 난제 푼 줄도 모르던 늦깎이

허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도교수인 히로나카의 조언으로 박사 과정 유학을 위해 미국의 대학 12곳에 지원했지만 11곳에서 떨어지고 히로나카 교수 추천서 덕분에 일리노이대에만 겨우 합격했다. 허 교수는 박사 과정 1학년 말에 ‘리드 추측’을 증명했지만 자신이 푼 문제가 유명한 수학 난제였다는 걸 몰랐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엄상일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교수는 “허 교수는 조합수학 분야의 오랜 난제들을 해결한 것도 좋지만 그 추측들을 해결할 때 다른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수기하학을 통한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허 교수와 함께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는 위고 듀미닐 코팽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 제임스 메이너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교수다. 특히 비아조우스카 교수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필즈상 86년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수상자다.
유용하 기자
2022-07-0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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