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시론] 세계유산 김포 장릉 사태가 주는 교훈/이창환 상지대 명예교수

[시론] 세계유산 김포 장릉 사태가 주는 교훈/이창환 상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5-30 20:14
업데이트 2022-05-31 01:3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조선왕릉, 세계유산 지위 상실 위기
숱한 점검 기회. 관리 부실로 날려
환경평가제, 컨트롤타워 도입해야

이미지 확대
이창환 상지대 명예교수
이창환 상지대 명예교수
2009년 6월 30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조선왕릉 40기가 인류의 유산이 됐다. 탁월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는 의미는 전 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유산으로 지정하고 지켜 나가기로 했다는 뜻이다.

조선왕릉은 전 세계 167개국에 분포하는 문화 및 자연 유산 1154건 가운데 하나다. 우리 민족이 고조선부터 삼국 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 온 5000년 역사의 증거물로 그 가치를 더한다. 우리 민족의 예문화를 담은 길례(吉禮)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자연관도 깃든 녹지 공간으로 복합유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과 1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조선왕릉이 위기에 처했다. 40기 중 1곳인 김포 장릉 인근에 경관을 침해하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관할 구청에서 끝내 사용 승인을 내줘 아파트 입주가 이뤄진다고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법원 판결이 나기 전에 입주가 이뤄지면 경관 침해는 사실상 되돌리기 힘들다. 불과 1곳의 경관 훼손이지만 40기가 한꺼번에 등재된 조선왕릉의 완전성에 흠결이 생겨 세계유산 등재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김포 장릉 사태는 근본적으로 국가유산이며 세계유산이라는 가치를 무시한 개발지향적 사회가 원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업체가 부서 간 갈등, 엇갈린 이해관계에서 빚어낸 총체적 관리 부실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는 신도시 지정 단계에서, 인천시는 도시계획 단계에서, 인천 서구청은 검단신도시 환경영향평가 및 경관 계획 단계에서, 건설회사는 설계 시공 단계에서, 문화재청은 문화재 보호구역 영향 평가 심의 단계에서 숱한 검증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태에 이르렀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자긍심의 상징인 조선왕릉이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세계유산 지위에서 내려올 위기에 처해 있다니 정말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각 나라 유산을 5대양 6대주로 나누어 6년마다 보존 상태 등을 보고받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관리한다. 관리 상태가 부실하다고 평가한 유산은 위험 유산으로 분류해 특별 관리한다. 이 경우 해당국에서는 해마다 보존 관리 상황을 유네스코에 보고해야 한다. 유네스코도 특별 시스템을 가동해 수시 관리에 들어간다. 2022년 현재 전 세계 53건의 유산이 위험 유산으로 분류돼 관리되고 있다. 대개 그 가치는 우수하나 관리 능력이 부족한 후진국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입주민을 볼모로 삼는 등 저개발 후진국 양태를 띠고 있는 김포 장릉 사태는 문화와 기술 강국을 자부하는 우리 민족의 체면에 크게 금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김포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은 일제강점기에 각 능원의 봉분과 재실터 등만 남고 능역이 크게 줄어들었다. 수백 년 된 나무들도 잘려 나갔다. 남은 일부 능원의 핵심 시설만 세계유산 목록에 올려졌다. 즉 조선왕릉은 일제의 민족 정기 말살 정책과 수탈의 현장이며 증거물이기도 하다.

김포 장릉의 경관 유지가 최우선의 결과이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이참에 난도질돼 있는 조선왕릉의 각 능원을 놓고 가치 분석에 따른 지속가능한 보존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마땅하다.

우선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유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제가 조속히 도입돼야 한다. 차제에 세계유산 보전 관리를 놓고 부처 간 이해관계를 통합 조정하는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의 컨트롤타워를 두는 정부 조직 개편도 고민해 볼 일이다. 일부 유럽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2022-05-31 30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