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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사라진 뒤 제자리로 돌아온 부처님의 ‘마지막 외출’

홀연히 사라진 뒤 제자리로 돌아온 부처님의 ‘마지막 외출’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05-15 17:52
업데이트 2022-05-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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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지본처, 새달 12일까지 공개

도난당한 성보 문화재 등 32건
대법원 판결 끝에 소유권 반환
일본·독일 경매서 환수하기도
“지정문화재로 등록·관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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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장안사 신중도를 훔친 절도범은 사찰 이름을 검게 칠했지만, 희미하게 이름이 보여 장안사 소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화는 떼서 말면 가져가기 쉬워 문화재 절도범의 주요 표적이 된다. 류재민 기자
부산 장안사 신중도를 훔친 절도범은 사찰 이름을 검게 칠했지만, 희미하게 이름이 보여 장안사 소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화는 떼서 말면 가져가기 쉬워 문화재 절도범의 주요 표적이 된다. 류재민 기자
어느 날 부처님이 사라졌다. 죄는 훔쳐 간 이가 지었으나, 스님들은 부처님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부처님을 팔아버린 것 아니냐’는 비난 섞인 오해도 마음을 후벼 팠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돌아온 부처님을 만나는 순간 어떤 스님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 자리로 돌아감)를 둘러싼 풍경이다.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부처님들이 마지막 외출에 나섰다.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환지본처, 돌아온 성보문화재 특별공개전’을 통해서다. 전시는 크게 2부로 구성돼 총 32건이 전시됐다. 1부 7건 25점은 전시 뒤 사찰로 돌아간다. 2부 전시작은 사찰에서 박물관에 위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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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김룡사 사천왕도를 비롯해 1부에 전시된 7건 25점은 다음달 12일 전시가 끝나면 원 소유 사찰로 돌아간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문경 김룡사 사천왕도를 비롯해 1부에 전시된 7건 25점은 다음달 12일 전시가 끝나면 원 소유 사찰로 돌아간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문경 김룡사 사천왕도’, ‘여수 용문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등 1부의 성보들은 돌아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4년 서울의 한 사립박물관에 은닉된 성보들이 경매시장에 나오며 수사가 시작됐다. 이를 통해 31건 48점이 환수됐다. 2016년 같은 박물관에서 또 다른 도난품을 은닉한 사실이 파악됐다. 압수 뒤 수년간 법적 공방이 이어지다 2020년 12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고 지난해 소유권 문제가 정리되며 성보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1부의 부처님들은 이번이 진짜 마지막 외출이다.

2부 성보에 얽힌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양주 석천암 지장시왕도’는 2015년 독일 경매시장에 나온 것을 찾아왔다. ‘평양 법운암 치성광여래도’는 2018년 일본 경매시장에서 환수했다. 그해 남북 정상이 만나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평양 귀향 기대감에 부풀었으나 아직 휴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영동 영국사 영산회상도’는 2002년 발견 당시 고미술상이 도난품인지 모르고 샀다며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그의 승용차에 영산회상도가 실린 ‘불교문화재 도난백서’(1999)가 발견돼 거짓말이 탄로 났다.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처럼 보물로 지정된 상태라면 도난 여부 입증이 확실해 환수 절차가 깔끔하다. 그러나 대다수는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도난 이후 선의 취득이 인정되는 사례도 있다. 영산회상도는 운이 좋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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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과 같은 지정문화재는 도난 여부 입증이 수월하지만 대다수 도난당한 불교문화재는 지정이 안 돼 있어 지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보물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과 같은 지정문화재는 도난 여부 입증이 수월하지만 대다수 도난당한 불교문화재는 지정이 안 돼 있어 지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불화는 경매시장에서 가치가 높고, 떼서 돌돌 말면 가져가기도 쉬워 주요 표적이 됐다. 2-2부는 불화만 전시됐는데. 절도범에 의해 훼손된 흔적도 있었다. 절도범들은 불화의 화기(그림 제작 관련 기록)를 지우기도 했다. 팔려고 훔친 것이니 가치를 위해 제작자나 제작연대 등은 남겨두되, 사찰 이름만 지운 경우도 많다. 사찰의 소유권 주장을 대비해서인데 검게 칠한 뒤로 사찰 이름이 비치는 어설픔도 보인다.

이용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비구니(여자 스님) 절이 자주 도난당했고, 스님들이 부처님오신날 행사 뒤 신도들과 나갔다 오면 사라진 경우도 많았다”면서 “미리 조사하고 훔쳐 가는 거라 스님들이 많이 억울해하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추후 관리를 위해 환수된 성보의 지정문화재 등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류재민 기자
2022-05-1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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