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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의 달달한 삶] 중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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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2-05-12 02:09 전민식의 달달한 삶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중독됐는지조차 모르는 글쓰기
중독에 좋고 나쁨이 있을까
다른 사람 상처 주지 않는다면
혼자만의 중독도 좋지 않겠나

전민식 소설가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전민식 소설가

음악 속에 시간이 오래 흐른 정황이 느껴지면 나는 그 노래에 금방 중독된다. 단편 한 편 쓸 때는 물론 장편을 쓰는 내내 한 곡만 들을 때도 있다. 장편 한 편 쓰는 데 빠르면 반년 정도 걸리는데, 그럼 그 반년 동안 노래 한 곡이나 연주곡 한 곡만 듣는 셈이니 지독한 중독이다.

중독은 매혹적이다. 언제나 설레게 만들고 때론 가슴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20여년 전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원고 작업을 위해 강원랜드에 보름 정도 묵은 일이 있었다. 장소가 하나의 욕망에 중독된 사람들이 득시글 모인 곳이었다. 산책하기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 숙소에서 나와 산책을 하다 보니 중독의 이면이 보였다. 길가에 저당 잡힌 차들이 길게 서 있고 전당포는 성황이었다.

씁쓸한 기분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와 작업을 시작하려고 라디오를 틀었는데 그때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흘러나왔다. 마침 해는 노을을 끌고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사위가 천천히 어둑해지는 걸 은밀하게 보고 있는데, 길가의 주인 잃은 자동차들과 갈 곳 잃은 사람들이 도로 경계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절묘한 순간이었다. 희미해져 가는 노을과 빈자리를 메우는 어둑함과 거리의 사람들은 물론 작은 도시를 떠도는 매캐한 공기들까지 바버가 그 모든 걸 바닥 모를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거리 풍경에 중독됐다.

그 뒤로 10년쯤 지나 좀 낯선 음반 하나를 만났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음반이었다. 이젠 흔한 음반이 됐는데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늙었고 전설적인 가수들이라는 것만 알았지 처음엔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그중 중독된 노래가 있다. Veinte A※os, 20년! 누군가를 사랑하다 실패하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옛 사랑을 만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한 노래였다. 예전에 사랑했었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당신은 나를 20년 전과 똑같이 사랑하지만, 지금 나는 처참하게 부서져 버린 영혼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내용의 노래.

하지만 그 시절의 중독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랬는데 유튜브를 뒤지다 다시 ‘20년’이라는 노래를 만났다. 늙은 디바가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10살쯤 먹어 보이는 소녀가 자신의 오빠와 불렀다. 곁에 앉은 아빠는 기타 연주를 했다. 가수의 연령은 60년쯤 차이 났지만 노래 속에 담긴 어리석음과 애틋함은 그대로 전달됐다. 나는 다시 몇 날 며칠 몇 달 그 노래만 들었다. 그 노래는 예전에 나를 중독으로 이끌었던 음악과 노래를 뒤져 보게 만들었다. 그 안에 음악이나 노래만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고백들이 숨어 있었고 말하지 못한 미안함도 배어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의 경우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건 단순한 하나의 현상이나 사람, 물질을 미친 듯 좋아하게 됐다는 게 아니라 현상이 만들어진 연유와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어떤 형태가 되기까지 물질에 쌓인 시간에 중독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여전히 나는 글 쓰는 일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른 채 중독돼 살아가고 있다. 사전에서 중독은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실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중독은 좋고 어떤 중독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정상적으로 실물을 판단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 입게 만든다면 그건 나쁜 중독이니 어서 빠져나와야 하지 않을까. 나쁜 중독이 아니라면 나를 매료시켰던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거나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지독한 금단현상에 빠질 것이다. 그 현상을 이겨 낼 재간이 없어 오늘도 나 혼자만 상처 입는 중독에 빠지기로 한다. 그 상처가 다른 멋진 중독을 하나쯤 창조해 낸다면 무엇에든 중독이 돼도 좋지 않겠는가.
2022-05-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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