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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만의 남북 첫 만남은 기싸움 끝에 3분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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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2-05-05 10:42 국방·외교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통일부 남북대화 사료 첫 공개

1970년대 남북 적십자 회담 과정
의학 발전 수준 등 놓고 신경전도
북측, 자유 왕래 남측에 제안해 와
물밑 접촉 등 민감 내용은 비공개

통일부는 4일 남북회담이 시작된 1970년 8월부터 1972년 8월까지 진행된 남북회담 문서 및 사진을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남북 적십자 쌍방 파견원이 판문점에서 열린 예비회담에 앞서 첫인사를 나누고 있다.(아래 사진)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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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는 4일 남북회담이 시작된 1970년 8월부터 1972년 8월까지 진행된 남북회담 문서 및 사진을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남북 적십자 쌍방 파견원이 판문점에서 열린 예비회담에 앞서 첫인사를 나누고 있다.(아래 사진) 통일부 제공

남북 분단 이후 26년 만에 열린 첫 공식회담은 신임장 교환을 포함한 3분간의 짧은 대화로 끝난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1970년 8월부터 1972년 8월까지의 남북회담 관련 기록을 담은 사료집을 4일 공개했다. 남북이 처음 대화의 문을 연 시점부터 스물다섯 차례에 걸친 남북 적십자 예비 회담까지의 진행 과정이 담겨 있다. 남북회담 사료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적십자 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아래 사진)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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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적십자 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아래 사진) 통일부 제공

사료에 따르면 1970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이 8·15 평화통일 구상선언을 발표하고 1년 뒤인 1971년 8월 20일 남북이 처음 만났다. 대한적십자사 파견원인 이창렬 서무부장은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북측 적십자 파견원에게 “안녕하십니까”라는 첫인사를 건넸고 북측은 “동포들과 서로 만나니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신임장을 교환한 뒤 우리 측은 “수해가 많이 나지 않았냐”고 물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북측은 “수해가 없었다”며 “그러면 우리 임무는 이것으로 끝났다고 봅니다”라고 말한 뒤 3분 만에 서둘러 만남을 마무리했다. 6일 뒤 2차 접촉에서부터는 날씨와 자녀 이야기 등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체제 경쟁으로 종종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1971년 9월 파견원 4차 접촉 당시엔 남측이 “우리는 언챙이(언청이·구순구개열)를 1년에 300~400명 치료한다”며 “72년이면 남한에 언챙이는 다 없어진다”고 자랑하자 북측은 “우리는 앉은뱅이도 서게 한다”고 대응했다.
남북 적십자 회담을 마치고 퇴장하는 대한적십자사 대표(위의 사진 가운데)가 손을 흔들고 있다.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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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적십자 회담을 마치고 퇴장하는 대한적십자사 대표(위의 사진 가운데)가 손을 흔들고 있다. 통일부 제공

9월 말 열린 2차 예비회담에선 회담 진행 절차를 담은 남북 당국 간 최초 합의서가 도출됐다. 상설 회담연락사무소와 직통 왕복 전화를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 합의서 내용이 지금까지 남북회담 운영의 기본 틀 역할을 했다”고 했다.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 당시엔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에 적극적이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두 달 뒤 판문점에서 열린 예비회담에서 북측 대표는 “서로 지척에 두고 있는 남북의 부모·형제·자매·친척·친우들끼리 자유롭게 다니지 못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며 자유 왕래를 주장했다. 이에 남측은 이산가족 생사부터 확인하고 단계적인 상봉을 해야 한다며 북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린 판문점에 취재를 나온 북한 기자들.(아래 사진)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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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린 판문점에 취재를 나온 북한 기자들.(아래 사진) 통일부 제공

통일부는 전체 1652쪽 가운데 418쪽은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을 이끌어 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북측 김영주 당 조직지도부장 간 협상 등 물밑 접촉에 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서유미 기자
2022-05-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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