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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 속도 내는 ‘왕릉뷰 아파트’ 입주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을 듯

완공 속도 내는 ‘왕릉뷰 아파트’ 입주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을 듯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05-01 14:03
업데이트 2022-05-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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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김포 장릉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지난달 30일 김포 장릉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지난달 30일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내 이른바 ‘왕릉뷰 아파트’로 불리는 단지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게차와 포클레인, 덤프트럭이 부지런히 움직였고 안전모를 쓴 근로자들은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인 단지 내부를 오가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공사장 주변에는 신규 입주자를 겨냥한 내부 인테리어 관련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조선 왕릉 중 한 곳인 김포 장릉 반경 500m 안에 지어져 문화재청과 갈등을 빚는 대광이엔씨(시공 대광건영)·제이에스글로벌(금성백조)·대방건설의 아파트 단지 건설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공사 중지 관련 본안 소송에 대한 법원 판단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입주가 시작되면 철거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기관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건설사들은 조만간 준공을 위한 사용검사 절차 등을 밟아 이르면 6월 입주를 목표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분위기다.

문화재청은 2017년 장릉을 포함한 조선 왕릉의 반경 500m 안 역사문화환경보호구역에 짓는 20m 이상 건축물은 개별 심의하도록 건축행위 허용 기준을 변경한다고 고시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공사 현황을 파악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조치를 취했고, 건설사와 인천 서구청은 해당 고시를 뒤늦게 인지해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화재청은 철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건설사는 어쩔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공사 현장을 오가는 트럭.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공사 현장을 오가는 트럭.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 김포 장릉이 보인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 김포 장릉이 보인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현장에서 만난 건설 관계자들은 철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A씨는 “다 끝난 상태인데 어떻게 뜯느냐. 절대 못 뜯는다”면서 “막으려면 전에 막았어야지 무슨 조치를 취하려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B씨는 “주변에 다른 곳은 다 지었는데 여기만 이러는 건 이해가 안 된다”면서 “산 사람들이 잘 살아야 나라도 발전하는 것 아니냐. 죽은 사람들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문제가 된 19개 동 외에 다른 고층 단지도 속속 들어서고 있어 관계자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포 장릉은 파주 장릉부터 시작해 계양산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배치로, 계양산은 왕릉의 연속선상에서 같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검단신도시 개발로 계양산과 김포 장릉 사이에 주택단지가 대거 들어서고 있다. 해당 단지를 철거하더라도 계양산까지의 연결선은 사실상 깨진다는 것이 건설에 찬성하는 측의 입장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던 입주민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날벼락에 애가 탄다. B씨는 “이거 때문에 입주하는 분들 중에는 병원에 입원하신 분도 있다”고 전했다.
파주 장릉, 김포 장릉은 계양산과 일직선인 형태지만 검단신도시 개발로 김포 장릉과 계양산 사이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파주 장릉, 김포 장릉은 계양산과 일직선인 형태지만 검단신도시 개발로 김포 장릉과 계양산 사이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반면 조선 왕릉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는 문화재청으로서는 난감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판결 전에 입주까지 이뤄지면 법적으로 상당히 복잡해진다”면서 “입주 상태에서 불법으로 판결나면 퇴거 조치를 해야 하는데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또 다른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당 단지가 철거돼도 다른 건물에 의해 조망이 가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500m 이상까지 경관이 관리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500m까지라도 최대한 보호할 수 있게 규제해야 한다는 게 문화재청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김포 장릉에서 보이는 아파트 공사 현장.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김포 장릉에서 보이는 아파트 공사 현장.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아파트 건설 속도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세계문화유산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며 “지정 취소될 수도 있는데 상관없다는 거냐. 역사유산을 헌신짝처럼 우습게 알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개발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이 취소된 사례도 있는 데다, 건설사가 승소하면 향후 왕릉 주변 개발을 막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황 소장은 “우리가 일본 군함도를 문제 삼는 것처럼, 일본이나 중국이 왕릉 주변 개발 현황을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리버풀, 독일의 드레스덴도 개발 때문에 취소된 사례가 있다.
장릉에서 일반 관람객이 보는 시선에서 보이는 아파트 단지. 건설사의 손을 들어준 고등법원은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현재 기준으로 관람객은 나무 뒤쪽으로 아파트를 볼 수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장릉에서 일반 관람객이 보는 시선에서 보이는 아파트 단지. 건설사의 손을 들어준 고등법원은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현재 기준으로 관람객은 나무 뒤쪽으로 아파트를 볼 수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최근 유네스코는 세계유산과 관련해 점점 더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단순히 지정만 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유산 가치가 꾸준히 잘 관리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문화재청으로서는 속만 태우고 있다. 입주자 사전점검이 끝나 인천 서구청에 사용검사 유보를 요청한 상황이지만 별다른 답변이 없다. 서구청 관계자는 “신청이 있어야 검토할 수 있는데, 건설사 3곳 모두 아직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관계 기관들의 시계는 멈추고, 이와 반대로 아파트의 시계는 빠르게 흘러가면서 한쪽이 받을 상처와 타격도 점점 커지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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