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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이상한 나라의 멋진 이수지/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문화마당] 이상한 나라의 멋진 이수지/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입력 2022-04-06 20:32
업데이트 2022-04-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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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위원석 딸기책방 대표
20년 전의 봄날,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 도서전 행사장 안팎을 참 열심히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전 세계의 그림책 작가, 그림책 편집자, 그림책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박람회에 더러는 한국어 그림책을 소개하기 위해 참가했고, 어떤 이들은 우수한 해외 그림책의 판권을 선점하기 위해 참가했다. 하지만 더 많은 수의 편집자들은 그림책과 그림책 산업에 대해 무엇 하나라도 배우고 싶은 열정으로 도서전을 참관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책 만드는 사람들의 열망은 강렬했지만, 아직 우리 그림책은 풍족하지 않았다. 도서전에서 만난 여러 나라의 예술적인 그림책, 다양한 그림책들을 보며 그림책 애호가로서는 기뻤고,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좌절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만 한 그림책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서구 100년의 그림책 역사를 한걸음에 따라잡을 수 없겠다는 이유 있는 열등감이었다.

출장 중 하루, 행사장 인근의 그림책방에 들렀다. 도서전 기간 중 지겨우리만큼 보았을 그림책이지만 책방에서 보는 그림책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도서전이 주로 새 책을 선보이는 장소라면 그림책방은 그 지역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책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정신 놓고 이 책 저 책 펼쳐 보던 중에 책방을 나서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만지작거렸던 책 중 눈에 띄는 네다섯 권의 그림책을 집어 허겁지겁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그중 한 권이 우리나라 작가의 책인 걸 알았다. 그 전까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그 작가가 최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 작가, 그 책은 이탈리아 코라이니 출판사에서 출간한 그의 첫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나 같은 사람들이 ‘우리는 그림책 역사도 짧고 문화도 척박하고 전문가도 부족해. 우리가 멋진 그림책을 만들기는 요원할 거야’라고 생각할 때, 누군가는 이미 서구보다 더 실험적이고, 더 예술적인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머리가 멍했다.

우리말을 쓰는 그림책 애호가로서 그림책 작가에게 최고의 영예라는 안데르센상을 우리 작가가 받았다는 뉴스에 마음이 설?다. 더구나 그 작가가 책의 유용성이 의심되는 시대에, 책의 물성을 온전히 이해하며 책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이수지 작가여서 정말 기쁘다. 더불어 이런 경사를 통해 그림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높아진다면 더없이 뜻깊은 일이 될 것 같다.

2004년 신동준 작가의 ‘지하철은 달려온다’가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후, 우리 작가들의 그림책은 매년 열리는 해외 도서전에서 수상 소식을 알리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재작년에는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하면서 그림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꽤나 높아진 적이 있다. 백희나 작가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초대되기도 했고 모 자동차 광고의 CF를 찍을 정도로 지명도가 높아졌지만, 작가와 작가의 수상에 대한 화제가 그림책 창작자나 종사자들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실 다른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에 비해 그림책 분야에 대한 의미 있는 정부 지원은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놀랍도록 멋지고 우아하게 새로운 세계를 펼쳐 가는 그림책 작가들의 성취가 놀라울 지경이다.

그림책의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만큼 높아졌다. 한국에서 그림책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관심과 노력도 이어지면 좋겠다.
2022-04-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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