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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화의 기원을 찾아…7인이 펼치는 세계

한국 추상화의 기원을 찾아…7인이 펼치는 세계

김정화 기자
입력 2022-01-26 14:58
업데이트 2022-01-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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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상 류경채 강용운 이상욱 천병근 하인두 이남규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6일까지

이봉상, 미분화시대 이후 2(After the Age of Undifferentiation 2), 1968, 캔버스에 유채, 93x119.4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봉상, 미분화시대 이후 2(After the Age of Undifferentiation 2), 1968, 캔버스에 유채, 93x119.4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캔버스에 펼쳐진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방들. 주머니 같기도, 열매의 절단면 같기도, 인간의 세포를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지만 자연스레 퍼지는 빛깔과 모형 앞에서 관람객은 떠올린다. 인간이라는 구체적인 종(種)으로 분화하기 전 아득한 태고의 풍경이 이럴까 하고. 이봉상(1916~1970)의 작품 ‘미분화시대 이후 2’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 전은 추상회화에 한국적인 정신세계를 담아낸 작가들을 재조명한다. ‘에이도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본질을 뜻하는 말이다.
이봉상, 나무와 달(Tree and Moon), 1963, 캔버스에 유채, 112x160.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봉상, 나무와 달(Tree and Moon), 1963, 캔버스에 유채, 112x160.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전시에서는 이봉상을 포함해 류경채(1920~1995), 강용운(1921~2006), 이상욱(1923~1988), 천병근(1928~1987), 하인두(1930~1989), 이남규(1931~1993) 등 1920~1930년대 출생 작가 7명의 작품 57점을 선보인다. ‘해방 1세대’ 작가인 이들은 전후 서구로부터 유입된 추상회화의 거센 파고 속에서 한국적 양식을 보여 줬다는 평을 받는다.

이들은 김환기, 유영국, 남관 등 한국 추상회화 선구자의 뒤를 잇는데, 단색화 작가군과는 또 다른 경향을 갖는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봉상은 나무, 수풀, 새, 달 등의 소재에 한국 토착 설화의 서사를 녹여낸다. 여러 대상을 화면에 중첩시키는 ‘반추상’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류경채, 계절(세파)(Season (Vicissitudes)), 1964, 합판에 유채, 125x64cm. 학고재갤러리 제공
류경채, 계절(세파)(Season (Vicissitudes)), 1964, 합판에 유채, 125x64cm. 학고재갤러리 제공
류경채, 나무아미타불 77-3 (Namo Amitabha 77-3), 1977,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학고재갤러리 제공
류경채, 나무아미타불 77-3 (Namo Amitabha 77-3), 1977,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학고재갤러리 제공
류경채는 1960년대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동양적 착상에서 비롯해 서정적 추상의 세계로 나아간다. 풍부한 색채, 생명력 넘치는 붓과 나이프 자국은 화면을 순도 높은 시적 정취를 보여준다. 1980년대에는 기하학적 추상회화로도 이어졌는데, 원과 사각형, 마름모꼴 등의 구성에도 자연의 정감이 살아있다.
강용운, 무등의 맥(Vein of Mudeungsa), 1983, 캔버스에 유채, 65x53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학고재갤러리 제공
강용운, 무등의 맥(Vein of Mudeungsa), 1983, 캔버스에 유채, 65x53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학고재갤러리 제공
강용운, 정기(Vital Force), 1987,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강용운, 정기(Vital Force), 1987,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강용운은 호남 추상미술의 개척자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야수파적 표현주의를 선보였는데, 1960년대 장판지를 동원해 물감을 흩뿌리고 불을 지키는 등 다양한 실험을 펼쳤다. 1970년대에는 전통 수묵처럼 묽은 물감으로 담백하게 구성한 화면에 향토의 온화한 정감을 녹여냈다.
이상욱, 점 (Point), 1973, 캔버스에 유채, 90.5x72.5cm (frame 93x75.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상욱, 점 (Point), 1973, 캔버스에 유채, 90.5x72.5cm (frame 93x75.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상욱, 봄-B (Spring-B), 1984,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frame 102.5x102.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상욱, 봄-B (Spring-B), 1984,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frame 102.5x102.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상욱의 1960년대부터 두가지 유형의 추상 양식을 발표했다. 커다란 원형 또는 사각형에 단순화된 띠나 점으로 구성한 기하학적 형태가 첫번째, 토막난 굵은 붓자욱으로 구성한 게 두번째다. 그의 필선은 화면에 경쾌한 속도와 리듬, 호흡을 불어넣는다.
천병근, 무제 (Untitled), 1957, 캔버스에 유채 , 91x4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천병근, 무제 (Untitled), 1957, 캔버스에 유채 , 91x45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천병근, 우화(寓話) III (Fable III(, 1983, 캔버스에 유채, 24.3x33.4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천병근, 우화(寓話) III (Fable III(, 1983, 캔버스에 유채, 24.3x33.4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천병근은 일본 유학 시기에 배운 초현실주의의 조형 양식을 실천한 화가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세계에선 십자가, 만(卍), 해, 초승달, 눈, 별 등 이미지의 파편이 시적 언어로 떠돈다.
하인두, 만다라(Mandara), 1984, 캔버스에 유채, 116.5x91cm. 학고재갤러리 제공
하인두, 만다라(Mandara), 1984, 캔버스에 유채, 116.5x91cm. 학고재갤러리 제공
하인두, 생의 원(Source of Life), 1988, 캔버스에 유채, 116x73cm. 학고재갤러리 제공
하인두, 생의 원(Source of Life), 1988, 캔버스에 유채, 116x73cm. 학고재갤러리 제공
하인두는 한국 전통 미술과 불교적 세계관을 추상회화로 구현했따. 강렬하고 쨍한 색채는 불화나 단청, 민화, 무속화 등에서 비롯했다.
이남규, 작품 (Work), 1975, 캔버스에 유채, 130x90cm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남규, 작품 (Work), 1975, 캔버스에 유채, 130x90cm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남규, 추상 (Abstract), 1991, 유리화(레드 케임), 직경 110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남규, 추상 (Abstract), 1991, 유리화(레드 케임), 직경 110cm. 학고재갤러리 제공
이남규 역시 구도의 길을 걸은 종교화가다. 창작 활동을 통해 본연의 인간을 모습을 찾는 것을 도(道)라고 여겼다.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서 생명과 우주의 질서를 담아낸다.

이처럼 전시는 추상회화의 세계도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전시를 기획한 김복기 경기대 교수는 “전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의 단색화는 큰 관심 대상”이라며 “앞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단색화 이외에 어떤 것을 선보일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고, 우리 추상회화의 근원을 찾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하 1층에선 작가들의 아카이브 섹션도 마련했다. 생전 기록과 상호 교류, 전시 활동 등을 살펴볼 수 있다. 2월 6일까지.

김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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