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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 체조 전설 바일스가 전하는 말 [김정화의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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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9-21 14:00 김정화의 WWW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20> 시몬 바일스 미국 체조선수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환하게 웃고 있다. Academy of Achievement 제공

▲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환하게 웃고 있다. Academy of Achievement 제공

“나는 ‘제2의 우사인 볼트, 마이클 펠프스’가 아니다. 나는 그냥 시몬 바일스다.”

체조계에서 시몬 바일스(24)의 이름은 전설과 같다. 세계 체조 선수권대회에서 거머쥔 메달이 금 19개 등 총 25개로 역대 최다다. 올림픽까지 포함하면 메달이 총 32개로 미국 여자 체조선수 중 가장 많고,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모두에서 개인 종합 우승을 차지한 선수로도 기록됐다. 142cm의 작은 키로 누구보다 높이 날아오르고, 더 빨리 몸을 비틀고, 더 정확히 발을 내딛어 착지하는 그의 모습은 기계체조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숨죽이고 지켜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런 바일스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상원 청문회에 등장했다. 체조 국가대표팀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범죄 관련 연방수사국(FBI)의 부실 수사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바일스는 이 자리에서 “나는 래리 나사르를 비난하고, 그의 성폭력이 가능하게 한 시스템 전체를 비난한다. 당할 만큼 당했다”며 울먹였다. 세계 1위, 금메달리스트라도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언니들 따라하던 체조 신동, ‘역대급’ 전설이 됐다

바일스는 199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둘다 알코올, 약물 중독에 시달려 어릴 때 위탁 가정을 전전했고, 세 살 무렵 조부모에게 입양돼 길러졌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뛰고 날아다니는 활발한 아이”였던 바일스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재능을 찾았다. 탁아소에서 체육관으로 견학을 간 어느날, 체조 연습을 하는 소녀들을 보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어린 아이가 중고교생의 체조 동작을 훌륭하게 따라하는 것을 본 당시 코치는 곧장 바일스의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이 아이에게 체조를 가르치라고.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Academy of Achievement 제공

▲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Academy of Achievement 제공

2011년 US 클래식 주니어 전국대회에 처음 출전해 개인 종합 3위, 도마 1위라는 결과를 거둔 바일스는 곧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하루 6~8시간에 이르는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바일스는 본격적인 기록 행진을 써내려 갔다.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거머쥔 개인 종합, 마루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4, 2015, 2018, 2019년 등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며 개인 종합 5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여자 선수가 됐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개인 종합을 비롯해 도마, 마루, 단체전까지 총 4개의 금메달을 땄고, AP통신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 선수로 꼽혔다.
시몬 바일스가 25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미국 체조 여자 대표 선발전 중 평균대 종목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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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몬 바일스가 25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미국 체조 여자 대표 선발전 중 평균대 종목에서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여자 체조는 2등이 진짜 싸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일스의 실력은 독보적이다. 고난도 동작을 선보이기로 유명한데, 여기에서 비롯해 바일스의 이름을 딴 체조 기술이 4개나 된다. 전 체조선수이자 메릴랜드대에서 여자 체조를 지도하는 에린 둘리는 “크게 힘들이지 않는 것 같으면서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점프, 착지하는 바일스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탄성만 자아내게 된다”고 평했다. 그는 “마루 운동에서 보통 선수들은 텀블링을 1~2회 하지만, 바일스는 4회를 한다”며 “그저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메달만큼 빛난 용기  정신적 문제로 잇따라 경기를 포기했던 ‘미국 체조의 자존심’ 시몬 바일스가 3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결승 경기에서 다리를 180도로 쭉 펴면서 뛰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도쿄 AP 연합뉴스

▲ 메달만큼 빛난 용기
정신적 문제로 잇따라 경기를 포기했던 ‘미국 체조의 자존심’ 시몬 바일스가 3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결승 경기에서 다리를 180도로 쭉 펴면서 뛰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도쿄 AP 연합뉴스

2015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세계체조선수권대회 마루운동 결승전 당시 시몬 바일스. 서울신문DB

▲ 2015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세계체조선수권대회 마루운동 결승전 당시 시몬 바일스. 서울신문DB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 체조 금메달리스트인 메리 루 레턴은 “바일스는 내가 살면서 본 사람 중 가장 재능 있는 선수다. 아직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일스 스스로 체조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경쟁과 여행 두가지를 꼽을 정도로 그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내게 성공적인 올림픽 경험이란, 출전해서 경쟁할 때마다 100% 능력을 발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그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면 나는 그 일을 잘한다”고 밝혔다.

“경쟁할 때마다 100% 최선…위대하다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시몬 바일스의 레오타드에 염소 무늬가 보석으로 박힌 모습. 인스타그램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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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몬 바일스의 레오타드에 염소 무늬가 보석으로 박힌 모습. 인스타그램 캡쳐

특히 바일스는 자신이 잘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낼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체육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칭하는 ‘GOAT’를 자신의 상징물로 만들어버렸다. ‘Greatest Of All Time’의 약자인 GOAT가 염소를 뜻하는 영단어와 철자가 같아서 생긴 별명이다.

바일스는 자신의 레오타드에 보석으로 염소 모양 캐릭터를 박아넣는가 하면, 이 캐릭터에 ‘골디’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세계 1위의 위엄이다. 그는 잡지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이들이 ‘골디’를 보며 어떤 일이든 자신이 잘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몬 바일스의 레오타드에 염소 캐릭터가 보석으로 수놓여 있다. 인스타그램 캡쳐

▲ 시몬 바일스의 레오타드에 염소 캐릭터가 보석으로 수놓여 있다. 인스타그램 캡쳐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는 오만함의 발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는 이의 자신감이자 세상을 향해 그 선한 영향력을 마음껏 펼치는 것에 가깝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일스는 사람들에게 투표하라고 말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을 비난하며, 누구나 전기와 깨끗한 물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바일스는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는데,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는 “바일스는 정밀함, 우아함, 지배력의 달인”이라며 “세상 앞에서 경쟁할 때, 그는 겸손함과 자신감의 강력한 균형을 맞춘다. 바일스는 열성적이면서 강인하고, 자신의 힘을 믿는다”고 썼다.
15일(현지시간) 시몬 바일스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한 모습. 바일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명에 꼽혔다. 타임 제공

▲ 15일(현지시간) 시몬 바일스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한 모습. 바일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명에 꼽혔다. 타임 제공

이런 체조 스타였으니 이번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단체전 도마 연기 후 갑자기 기권을 선언했을 땐 세계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바일스는 대회를 앞두고 인스타그램에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기분”이라며 중압감을 호소했고, 경기 후 “내 몸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바일스는 이후 “갑자기 혼란이 왔다.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았다”며 “시간이 흐르며 스트레스가 쌓였다. 내 몸과 마음이 그냥 싫다고 했다”고 밝혔다. 선수들이 공중에 떠 있을 때 몸이 어디쯤 있는지 인지하지 못해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트위스티스’ 현상을 겪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3일(현지시간)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시몬 바일스가 경기 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도쿄 AFP 연합뉴스

▲ 지난 8월 3일(현지시간)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시몬 바일스가 경기 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도쿄 AFP 연합뉴스

그의 포기 선언은 스포츠 선수의 정신 건강 문제를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전 체조선수로 선수 생활 내내 트위스티스에 시달린 션 멜튼은 워싱턴포스트(WP)에 “단순히 말해, 체조를 할 때는 항상 목숨이 위험하다”고 할 정도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짚었다. 그는 “극도로 위험한 기술을 하면서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 스트레스가 심해진다”며 “공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무섭다”고 말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운동선수는 강인해져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승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며 “바일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를 보여주며 완벽을 위해 몸과 마음, 삶을 희생하는 아이콘이었지만, 운동선수도 자신이 인간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봤다.

팀 닥터 성폭력에 “살아남은 누군가는 목소리 내야” 앞장
미국의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 대표팀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폭행 관련 수사에 대해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워싱턴DC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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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 대표팀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폭행 관련 수사에 대해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워싱턴DC AFP 연합뉴스

더 나아가 바일스가 압박을 받은 건 ‘GOAT’ 타이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외에 래리 나사르의 성폭력이 알려진 뒤 처음 열린 올림픽 경기였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사르는 팀 닥터라는 지위를 악용해 20여년간 여성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성추행을 저질렀는데, 최장 17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피해자가 500명에 이르고, 법정에서 그의 범죄를 증언한 여성만 156명이다.

이같이 나사르가 ‘합당한’ 처벌을 받은 건 체조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간 바일스 역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2018년 알려진 뒤다. 그는 당시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도 나사르의 성적 학대의 수많은 생존자 중 한명”이라며 “너무 오랫동안 내가 너무 순진했는지 자문했다.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나사르의 죄를 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여자 체조선수들이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 수사 관련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시몬 바일스, 맥카일라 마로니, 알리 레이즈먼, 매기 니콜스. 워싱턴DC AP 연합뉴스

▲ 15일(현지시간) 미국 여자 체조선수들이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 수사 관련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시몬 바일스, 맥카일라 마로니, 알리 레이즈먼, 매기 니콜스. 워싱턴DC AP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바일스는 미 NBC와의 인터뷰에서 “나사르의 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그냥 지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뛰어나고, 유명하고, 힘 있는 여성 선수로서 다른 선수들을 또다른 피해로부터 막기 위해 자신이 앞장서겠다는 다짐이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그는 나사르뿐 아니라 FBI와 수사 관계자들을 향해 강하게 비난했다. 이들이 나사르의 범죄를 알고도 늑장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범죄가 계속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일스는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바일스가 미 전국 체조 선수권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7번째 개인 종합 우승을 차지하면서 새로 새긴 타투는 그의 야망과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흑인 시인 마야 안젤루의 시 네 단어에서 따온 글귀는 이렇다.

“and still I rise.”(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시몬 바일스는 누구 · Simone Arianne Biles
1997 미국 오하이오주 출생
2013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종합·마루운동 금메달
2014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종합·평균대·마루운동·단체전 금메달
2015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종합·평균대·마루운동·단체전 금메달
2016 리우 올림픽 개인 종합·도마·마루운동·단체전 금메달
   AP통신·국제스포츠언론협회(AIPS)·미국스포츠아카데미 선정 올해의 여자선수
2018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종합·평균대·마루운동·단체전 금메달
2019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종합·도마·평균대·마루운동·단체전 금메달
   AP통신 선정 올해의 여자선수
2021 도쿄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평균대 동메달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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