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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만명 캐나다 작은 도시, 9·11 때 ‘인류의 119’ 된 사연

인구 1만명 캐나다 작은 도시, 9·11 때 ‘인류의 119’ 된 사연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1-09-09 17:36
업데이트 2021-09-10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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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짐 디피디 지음/장상미 옮김/갈라파고스/304쪽/1만 5500원

비행기 35대, 뉴펀들랜드 비상 착륙
주민들이 승객·승무원 6595명 보호
옛날부터 항공 사고 때 친척처럼 대접
“공격받은 서구 사회, 강인한 면모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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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북부에 있는 뉴펀들랜드는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장소로 꼽힌다. 예전엔 비행기의 주유소였고, 20년 전엔 9·11 테러로 뉴욕에 가지 못한 비행기 승객들의 안식처가 됐다.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은 당시 뉴펀들랜드 갠더에 머문 사람들을 조명하면서 환대와 신뢰로 쌓은 인간의 강인함을 펼쳐낸다. 픽사베이 제공
캐나다 북부에 있는 뉴펀들랜드는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장소로 꼽힌다. 예전엔 비행기의 주유소였고, 20년 전엔 9·11 테러로 뉴욕에 가지 못한 비행기 승객들의 안식처가 됐다.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은 당시 뉴펀들랜드 갠더에 머문 사람들을 조명하면서 환대와 신뢰로 쌓은 인간의 강인함을 펼쳐낸다.
픽사베이 제공
캐나다 북부의 뉴펀들랜드주를 인류 최후의 도피처 정도로 묘사한 영화들을 본 기억이 있다. ‘월드워Z’(2013)는 그중 하나다. 감염된 좀비와의 전쟁에서 절멸의 위기에 처한 인류에게 안전지대가 돼 준 곳이 뉴펀들랜드의 항구도시 노바스코샤였다. 궁금했다. 왜 뉴펀들랜드였을까.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을 읽다 보면 서구인들이 갖고 있을 정서의 일단이 엿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구인들은 뉴펀들랜드를 인간의 선한 본성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이해하는 듯하다. 발단이 된 건 꼬박 20년 전 터진 ‘9·11 테러’다.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 등에서 비행기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 영공이 폐쇄됐다. 미 정부는 자국으로 향하던 모든 비행기의 즉시 착륙을 명령했다. 당시 미국 상공에 떠 있던 비행기는 4546대. 이들은 미국 내 아무 공항에나 착륙할 수 있었다. 문제는 대서양 상공을 운항 중이던 약 400대의 비행기였다. 이들 대부분은 캐나다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테러범이 탔을 수도 있지만, 캐나다는 주저하지 않고 갈 곳 잃은 비행기를 받아들였다. 그중 한 곳이 뉴펀들랜드의 소도시 갠더였다.

책은 ‘9·11 테러’ 직후에 갠더에서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겨우 1만명 정도가 사는 소도시에 착륙한 비행기는 모두 35대. 승객과 승무원은 6595명이었다. 주민 전체와 맞먹는 숫자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갠더와 주변의 작은 마을에 사는 남녀노소 모두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생업을 멈추고 낯선 ‘비행기 사람들’을 조건 없이 껴안았다. 세상에 ‘인간애’라는 달달한 단어가 남아 있으리라 믿기 어려운 시대에 이들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뚜렷이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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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펀들랜드에 사는 사람들을 ‘뉴피’라고 부른다. 이 지역에 정착한 영국과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말끝에 ‘자기’(my dear), ‘내 사랑’(my darling) 등의 단어 붙이길 즐긴다고 한다. 저자는 뉴피들을 “셰익스피어 소설체의 말을 쓰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들로 그리고 있다. 사람에 대한 환대도 극진하다. 원래 특질이 그렇다기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DNA가 아닐까 싶다.

뉴피들이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베푼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은 다소 덜하지만, 비행기 연료 적재량이 지금보다 적던 시절에 갠더는 대서양 횡단 비행의 ‘주유소’였다. 그 와중에 추락 등 불행한 사고가 빚어지기도 했다. 뉴피들은 그때마다 집의 문을 열고, 낯선 타인들을 오랜만에 만난 친척처럼 대접했다.

책엔 수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관제사, 보안관 등 갠더 주민은 물론 비행기에 오른 승객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모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저자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다시 만난 ‘그날의 사람들’ 이야기도 담겼다. 저마다 삶의 행로는 달라졌어도 2001년 9월의 그 시간이 타인을 보는 관점을 바꿔 놓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재난이 상수인 시대에도 인간은 언제나 환대와 신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며 “테러범이 서구 사회의 허약함을 드러내려 공격을 감행했다면, 갠더에서 일어난 일은 반대로 (인간의) 강인한 면모를 증명해 냈다”고 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2021-09-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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