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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제물 써야 성 안 무너져” 경주 한복판에 묻힌 신라여성

“사람 제물 써야 성 안 무너져” 경주 한복판에 묻힌 신라여성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21-09-07 20:26
업데이트 2021-09-08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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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인신공희’ 흔적 발견

키 135㎝ 왜소한 성인 여성 인골 확인
신분 낮은 계층·사후에 묻혔을 가능성
2017년 인골 2구 발굴 이어 두 번째

월성 축조 4세기 중엽~5세기로 밝혀져
삼국사기 기록보다 250년가량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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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월성 서쪽 성벽에서 제물로 바쳐진 성인 여성 인골 1구를 발굴해 7일 공개했다. 2017년 같은 위치에서 50대 남녀 인골 2구가 출토된 데 이어 두 번째로 확인된 인신공희 사례다. 이전 인골과 달리 장식품으로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고개가 꺾이면서 목걸이가 귀 쪽으로 놓였다. 액체류를 담는 토기도 머리 부근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월성 서쪽 성벽에서 제물로 바쳐진 성인 여성 인골 1구를 발굴해 7일 공개했다. 2017년 같은 위치에서 50대 남녀 인골 2구가 출토된 데 이어 두 번째로 확인된 인신공희 사례다. 이전 인골과 달리 장식품으로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고개가 꺾이면서 목걸이가 귀 쪽으로 놓였다. 액체류를 담는 토기도 머리 부근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제공
신라 왕성인 경북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서 성벽을 쌓기 전 제물 삼아 묻은 인골 1구가 추가로 확인됐다. 2017년 서쪽 성벽에서 인신공희(人身供犧) 흔적으로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굴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 아울러 유물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월성 축조 연대가 4세기 중엽~5세기 초라는 사실도 최초로 밝혀졌다. 파사왕 22년(101년)에 월성이 지어졌다는 ‘삼국사기’ 기록보다 250년 늦은 시기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서성벽에 대한 정밀 조사 결과 ‘인간 제물’로 사용된 성인 여성 인골 1구와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는 동물뼈를 추가로 발굴했다고 7일 공개했다. 앞서 발견된 인골 2구는 건물을 짓거나 제방을 쌓을 때 주춧돌 아래에 사람을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고 오래 유지된다는 고대 설화인 ‘인주(人柱)설화’를 입증하는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인골 2구의 위치에서 북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여성 인골은 키 135㎝ 안팎의 왜소한 체구로 굽은옥 모양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뼈의 상태로 보아 성장이 끝난 성인 여성으로 확인되나 연령대를 특정하긴 어렵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외상 흔적이 없어 사망 후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유골 머리맡에서 액체류를 담는 토기가 발견됐고, 동물뼈는 늑골 위주로 선별돼 주변에 놓여 있었다. 인신공희 인골 3구는 모두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고, 고급 유물이 없는 점으로 미뤄 신분이 낮은 계층으로 추정된다.

인신공희 인골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1985년과 1990년 이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약 10m 거리에서 출토된 인골 20여구에도 관심이 쏠린다.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인골 3구는 성벽의 중심 골조인 토루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성벽을 쌓아올리기 전 계획적으로 인신 제사가 이뤄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30여년 전 인골의 인신공희 여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어떤 맥락에서든 이 유골들도 성벽 축조 과정과 연관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와 함께 서성벽에서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가속질량분석기 연대 분석을 통해 그동안 불명확했던 월성의 축조 시기와 건축 재료, 축성 기술도 규명했다. 축조 시기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0년가량의 공사 기간을 거쳐 5세기 초에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문헌에는 2세기 초로 기록돼 있고 혹자는 5세기 후반으로 보는 등 월성의 축조 연대가 그동안 논란이 돼 왔다”면서 “이번 발굴을 통해 월성 축조 시기와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초기 신라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으로 알려진 월성은 기초부 공사에선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 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 공법을 사용했다.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 때는 볏짚, 점토 덩어리, 건물 벽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너비 40m, 높이 10m 이상의 거대하고 높은 성벽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장은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견고하고 높은 성을 쌓았다. 삼국통일을 이룬 근원적인 힘을 성곽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신라 토목 기술의 실체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1-09-0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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