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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함만 남은 손기정 옛집, 재개발 임박… 사라질 위기

초라함만 남은 손기정 옛집, 재개발 임박… 사라질 위기

이주원 기자
입력 2021-08-12 20:58
업데이트 2021-08-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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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6주년… 방치된 역사문화 명소

손 선수, 전통 지키려 지은 용산 한옥
쓰레기 무단 투기… 담벼락엔 낙서만
재개발 땐 안암동 집터처럼 헐릴 수도
“최대한 보존하고 日 역사왜곡 맞서야”
시세 35억 추정… “서울시 매입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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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 선수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거주했던 서울 용산구 한옥. 손 선수가 당시 대목수들에게 의뢰해 직접 한옥을 지었다. 현재 이곳 일대는 민간 재개발이 추진되며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 선수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거주했던 서울 용산구 한옥. 손 선수가 당시 대목수들에게 의뢰해 직접 한옥을 지었다. 현재 이곳 일대는 민간 재개발이 추진되며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손기정 선수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민족을 사랑했던 그의 흔적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

서울 용산구 원효로 83길에 있는 전통 한옥. 현대식 주택과 상가들 사이에서 홀로 옛 기풍을 지키고 있는 이곳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고개 숙인 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마라톤 영웅’ 손기정(1912~2002) 선수가 살았던 집이다.

용산구는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이 집을 ‘근현대 역사문화명소 100곳’으로 지정하고 손 선수를 소개하는 안내판과 벤치를 설치했다. 하지만 방문객이 많다는 민원 때문에 구는 올해 6월 설치물을 철거했다. 12일 찾아간 손 선수의 집에선 한국 마라톤 전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담벼락의 지저분한 낙서와 쓰레기 무단 투기 경고문이 초라함을 더했다.

이마저도 민간 재개발이 추진되면 집 자체가 헐릴 가능성이 크다. 원효로1가 재개발 추진 준비위원회는 이날 기준 70.5%의 주민 동의를 얻어 다음달 서울시에 도시정비형 재개발(옛 역세권시프트) 지구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손 선수의 옛집을 포함한 일대 약 10만㎡의 땅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선다. 준비위 관계자는 “손 선수의 집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 아니어서 재개발 지구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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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수가 1950년대 후반 집 앞에서 찍은 사진. 손기정기념재단 제공
손기정 선수가 1950년대 후반 집 앞에서 찍은 사진.
손기정기념재단 제공
손 선수가 지도자의 길에 나선 1940년대에 살았던 성북구 안암동 집터도 1980년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면서 헐렸다. 손 선수는 이 집에서 ‘조선마라톤보급회’를 창설하고 제자들을 지도하며 한국 마라톤의 기틀을 닦았다.

손 선수는 이후 중구 장충동을 거쳐 용산구에 한옥을 지었다. 유족에 따르면 손 선수는 직접 대목수들에게 의뢰해 집의 설계부터 꼼꼼히 챙겼다. 양옥 대신 한옥을 고집한 것도 우리 것을 소중히 여겼던 그의 뜻이었다고 한다. 손 선수는 1950년대 이 집에서 4년을 살면서 1958년 도쿄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자이자 사위인 이창훈을 지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손 선수의 후손들은 한옥이 어떤 방식으로든 보존되길 바란다. 지난 8일 폐막한 2020 도쿄올림픽 개막 전 일본이 올림픽 박물관에 손 선수를 자국 선수로 표현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려면 손 선수의 흔적을 최대한 지키고 후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의 외손자인 이 사무총장은 “재개발 때 서울시에 기부채납되는 부지 중 공원으로 조성될 곳에 손기정의 집을 옮겨 손기정전시실로 활용하면 역사성을 살려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재개발 허가 조건에 이 같은 방안을 명시해 보존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울시나 용산구가 손 선수의 집을 매입해 문화재로 보존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용산구는 2018년 한옥 매입을 위해 소유자와 접촉했지만, 가격 차이가 커 무산됐다고 전했다. 집의 토지 면적은 약 165㎡로 현재 3.3㎡당 7000만원의 시세가 형성돼 최소 35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성배 서울시의원은 “역사성이 있는 한옥은 서울시에서 문화유산으로 가꿔 시민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와 논의해 매입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21-08-1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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