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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근대 올림픽 정신을 생각해 볼 때다/이제훈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근대 올림픽 정신을 생각해 볼 때다/이제훈 체육부장

이제훈 기자
이제훈 기자
입력 2021-07-15 17:26
업데이트 2021-07-16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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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체육부장
이제훈 체육부장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마라톤 경기에서다. 북한의 유망주였던 함봉실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여자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때문인지 올림픽 무대에서도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면 메달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왔다.

해발 1900m 백두산 고지훈련까지 한 그녀는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마라톤의 대표주자였던 이봉주와 중국 쿤밍에서 합동훈련을 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함께하자는 다짐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아테네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테네의 무더운 날씨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20㎞ 구간을 앞두고 기권했다.

안타까운 심정을 직접 듣고자 완주를 포기한 선수들이 타는 대회 차량에 접근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올림픽 폐막식 뒤 귀국하기 위해 찾은 공항에서였다. 우연히 같은 날 출국하다 만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도 반갑다는 듯이 반응했다.

보장성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전부터 안면이 있던 회사 동료가 함봉실에게 선물을 건네자 주변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선물을 받고 그렇게 유유히 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함봉실과 같은 북한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북한이 밝힌 올림픽 불참 이유는 코로나19로부터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불참 의사를 번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미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북한이 불참하면서 생긴 출전권을 다른 국가에 나눠 줬다.

스포츠를 통해 전 세계인의 우정과 화합을 도모하자는 것이 근대 올림픽 정신이다. 선수들은 4년 동안 흘린 땀의 결실을 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림픽 정신이 자꾸 이런저런 정치적 문제로 훼손되는 것 같다.

개최국인 일본이 도쿄올림픽 홈페이지 성화 봉송 코스를 소개하는 지도에 독도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희미한 점을 찍어 독도가 마치 일본 영토인 것 같은 꼼수를 부린 것은 묵과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 등 정부가 일본 정부와 IOC를 상대로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IOC는 지리적 문제를 표현한 것이라며 일본 입장을 두둔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한반도기에 표시된 독도를 일본의 항의를 받아들여 사용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정치인들은 올림픽 보이콧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선수들이 4년간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감안한다면 쉽게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감정이 앞서면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이번 올림픽부터 선수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선수들의 의사 표현 기회가 확대된다. 이에 따라 ‘평화’(peace), ‘존경’(respect), ‘연대’(solidarity)와 같은 글이 적힌 옷을 입을 수 있다. 또 무릎 꿇기나 주먹 들어 보이기 등의 행위도 가능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축구대표팀의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그라운드를 달렸다가 메달을 박탈당할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점을 이용해 도쿄올림픽에서 ‘독도’라는 명칭이 담긴 유니폼을 입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올림픽은 근대 올림픽 125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관중 없이 열린다. 이념이나 체제를 떠나 선수들이 올림픽을 위해 흘린 땀방울만을 기억하고 싶다.

식이요법을 위해 함봉실이 밥솥을 구할 곳이 없는지 물어봤던 그런 장면이 도쿄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게 아쉽기만 하다. 우정과 화합이라는 근대 올림픽 정신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이제훈 체육부장 parti98@seoul.co.kr
2021-07-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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