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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음식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음식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셰프 겸 칼럼니스트

입력 2021-07-14 20:34
업데이트 2021-07-1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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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이건 정말이지 예술이야.” 이탈리아의 한 레스토랑에서 무려 4시간 동안 코스요리를 맛보고 나온 후 어안이 벙벙해진 채 혼자 중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음식을 맛있게 하는 것을 넘어 감탄을 자아내는 정교한 플레이팅과 서비스를 통해 마치 예술적 체험 같은 경험을 주는 소위 파인 다이닝의 첫 경험이었다. 기승전결에 맞춰 등장하는 작고 아름다운 요리를 하나씩 맛보는 일련의 경험은 요리사가 지휘하는 한 편의 교향곡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각 접시에는 저마다 존재 이유와 서사가 있었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놀라움과 즐거움을 안겨 준 인상적인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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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소도시 알바에 있는 레스토랑 피아자 두오모의 요리들. 미슐랭에서 별 세 개를 받았고,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엔리코 크리파 셰프가 만들어 내는 요리는 미각 예술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전한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소도시 알바에 있는 레스토랑 피아자 두오모의 요리들. 미슐랭에서 별 세 개를 받았고,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엔리코 크리파 셰프가 만들어 내는 요리는 미각 예술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전한다.
기대와 달리 음식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 또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 행위, 그리고 요리사를 각각 예술작품과 예술활동, 그리고 예술가에 견주기도 한다.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플레이팅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의심을 품을 수 있으랴.

어떤 이들은 음식은 우리의 모든 감각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일종의 종합예술이라고 치켜세운다. 미국 뉴욕의 유명 페이스트리 셰프인 도미니크 앙셀은 “음식은 모든 감각을 통합하고 있기에 가장 친밀한 형태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음식을 먹고 느끼는 건 오감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때문에 인간의 모든 감각에 호소하는 행위는 어쩌면 그 어떤 예술보다 상위에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식이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논쟁을 부른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본인뿐만 아니라 예술인, 평론가, 큐레이터 등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명 일식 셰프 니키 나카야마는 “음식과 요리에서 예술이란, 맛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부산물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는가 하면, 시카고현대미술관의 마들린 그린츠테인은 “음식은 예술은 아니지만 예술적일 수는 있다”고 말한다. 음식이 예술 자체가 되진 않더라도 맛본 이의 감정을 움직이게 한다면 예술적인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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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소도시 알바에 있는 레스토랑 피아자 두오모의 요리들. 미슐랭에서 별 세 개를 받았고,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엔리코 크리파 셰프가 만들어 내는 요리는 미각 예술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전한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소도시 알바에 있는 레스토랑 피아자 두오모의 요리들. 미슐랭에서 별 세 개를 받았고,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엔리코 크리파 셰프가 만들어 내는 요리는 미각 예술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전한다.
서양에서 음식을 예술로, 요리사를 예술가로 간주하는 경향은 고급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가 갖고 싶어 했던 지위인 동시에 고급 요리를 소비하는 이들의 요구였다. 19세기 유럽 상류층에게 요리 취향은 그림이나 음악처럼 자신의 고상함을 보여 주는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을 위한 요리는 순수예술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미식법(가스트로노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 일이다.

프랑스의 상류층과 예술문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예술적으로 차려진 음식을 맛보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레스토랑에 모여들었다. 요리사와 예술가는 서로 창의적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선 같은 부류였다. 예술가들은 훌륭한 요리사들이 있는 데서 번창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경제적 문화적 황금기라는 배경 속에서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는 예술가에게 자신들과 다름없다는 찬사를 받고, 요리사 스스로도 기술자나 장인보다 예술가라는 자각을 가지며 음식을 만들어 냈다. 난해한 순수예술보다 오감과 허기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식사가 더 즐기기 쉬운 일상의 예술 감상 행위라고 받아들여진 시대다.

음식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 안에 포함돼 있다. 예술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음식은 예술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술은 속시원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따라서 음식이 예술의 영역인지에 대한 질문도 우리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논쟁처럼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멕시코시티 푸욜의 셰프 엔리크 올베라는 음식 예술 논쟁에 대해 “음식은 예술보다 공예에 가깝지만,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즐거움을 주는 한 더이상의 진술은 필요하지 않다”고 일갈한다. 요리의 목적은 누군가 음식을 먹고 행복하게 웃는 걸 보는 것이지, 우리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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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에몬테주 바롤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운영하는 마시모 카미아 셰프. 셰프는 ‘요리하는 예술가’로도 불린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바롤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운영하는 마시모 카미아 셰프. 셰프는 ‘요리하는 예술가’로도 불린다.
돈을 벌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팔릴 만한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있는 반면,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적으로 끊임없이 예술성을 갈망하고 다가가려는 요리사도 존재한다. 기존의 예술계에서 이들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어쩌면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오늘 먹은 음식에서 예술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란 질문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예술을 발견하고 향유할 수 있을까’란 질문과 맞닿아 있다. 결국 각자가 예술을 어떻게 느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2021-07-1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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