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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그랜드 투어/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그랜드 투어/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입력 2021-07-06 17:16
업데이트 2021-07-0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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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2021. 오름과 지붕의 선이 닮았다.
제주 2021. 오름과 지붕의 선이 닮았다.
유럽사에서 17세기와 18세기는 시대정신이 크게 달랐다. 30년 전쟁(1618~1648)이 보여 주듯이, 17세기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 종교적 갈등이 극심했다. 따라서 17세기가 끝날 때까지 여행과 이동은 극히 제한됐다.

유럽인은 대부분 태어난 고장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극소수 귀족만이 해외에 나가 교육받을 기회를 누릴 수 있었을 뿐이다. 외국 여행은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개신교 국가들은 가톨릭 사제들이 그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지나 않을까 우려했고, 가톨릭 국가들은 ‘이단’ 개신교 종파와의 접촉을 두려워했다.

18세기는 ‘이성의 세기’였다. 식자층의 교양이 성숙하면서 광포한 종교적 갈등이 누그러들었다. 18세기를 휩쓴 계몽주의는 이성을 강조했고 매우 반(反)종교적이었다. 합리주의 철학이 보급되고 이신론(理神論)이 상류 계급에 유행하면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외국에 머물면서 영혼이 위험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덜었다.

이제 부모들은 안심하고 아들을 해외로 보낼 수 있었다. 당시의 최고 선진국은 고대 로마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였다. 두 나라는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특히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의 중심이었고, 14~16세기에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당대 최고의 문화 선진국이었다. 반면 영국, 독일, 러시아, 스칸디나비아는 고대의 영광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열등감이 컸다. 북유럽의 부유층 젊은이들이 파리를 거쳐 이탈리아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랜드 투어’의 본격화였다.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 칼레의 호텔업자들은 마차 임대업으로 큰 재미를 봤다. 영국에서 건너온 젊은 귀족들이 파리를 거쳐 로마로 가려면 마차가 필요했다. 최상층 귀족들은 자가용 마차를 배로 운반해 타고 다녔다. 하지만 대개는 현지에서 임대했다. ‘렌터카’ 사업의 효시였다.

영국과 독일의 젊은 귀족은 보통은 3년, 많게는 5년간 장기해외여행을 했다. 수행원으로 두 명의 가정교사가 따라갔다. 한 명은 학과 교사, 또 한 명은 승마·펜싱 교사였다. 여기에 하인이 둘 이상 따라갔는데 통상 본국에서 한 명, 현지에서 한 명을 고용했다. ‘국부론’을 쓴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귀족 도련님의 가정교사로 그랜드 투어에 따라나섰다.

꽉 막힌 코로나 시대엔 제주가 해외 구실을 톡톡히 한다.
2021-07-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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