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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엽 “도움의 손길 보내는 아이들 어른들이 따뜻하게 보듬어야”

김재엽 “도움의 손길 보내는 아이들 어른들이 따뜻하게 보듬어야”

신동원 기자
신동원 기자
입력 2021-07-04 14:06
업데이트 2021-07-0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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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영웅’ 죽음의 나락서 재기 교수·방송인으로 제2의 삶

4일 김재엽 교수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말고 도전하면 현재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며 다시 일어선 나의 삶이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글·사진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4일 김재엽 교수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말고 도전하면 현재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며 다시 일어선 나의 삶이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글·사진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어머니가 ‘더 이상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이 아니다’며 삶의 의지를 심어줬고, 늘 곁을 지키며 물심양면으로 힘써 주신 덕분에 제 2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 영웅에서 유도계 부조리에 맞서다 강퇴당하고 사업실패 등으로 한때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다가 가족의 사랑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감동적인 사례가 있다.

4일 서울신문과 만난 김재엽(58) 동서울대학 경호스포츠학과 교수는 유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1984 LA올림픽 남자 60㎏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했고,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87 세계선수권대회, 1988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대한민국 유도계 전설이다.

하지만 올림픽이후 김 교수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서울올림픽 이후 은퇴, 마사회 유도부 코치를 하던 김 교수는 1996년 제자의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부당한 판정에 항의했다가 미운털이 박혀 연금중단 징계받고 유도계에서 퇴출됐다.

유도계를 떠난 이후에도 파란만장한 삶이 이어졌다.

돈을 많이 벌어 유도협회장을 해야겠다는 각오로 사업가로 변신한 김 교수는 1998년 당시 20억원 정도 손해를 보는 사업실패와 지인들에게 사기까지 당했고 충격과 방황은 이혼으로 이어졌다. 대인기피증이 생겨 노숙생활을 하면서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가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라는 것에 대한 정신적 압박이 심했다.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극단적 선택도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김 교수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것은 어머니와 가족의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추락하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와 가족이었다.

재기를 생각하게 된 김 교수는 아들과 딸에게 책임지는 아빠가 되기위해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을 했고 그 돌파구로 공부를 선택했다. 38살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 낮에는 운전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해 2006년 늦깍이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김 교수는 2004년부터 동서울대학에서 18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인으로 제2의 인생을살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어린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 뉴스가 잇따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두려움에 지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우리 어른들이 따뜻하게 보둠고 안아주어야 한다” 며 “힘들고 고난에 빠진 청소년들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선 나를 보며 용기와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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