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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사동에서 발견됐을까...무더기로 발견된 조선전기 금속유물(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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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6-29 16:19 사회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발견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29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2021.6.2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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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29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2021.6.29 연합뉴스

인사동 유적 발굴 당시 모습 서울 인사동 유적에서 매우 희귀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하던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물시계 옥루 혹은 자격루의 부속품인 ‘주전’(籌箭)으로 추정되는 동제품까지 한꺼번에 출토됐다고 문화재청이 29일 밝혔다. 사진은 발굴 당시 인사동 유적의 모습. 2021.6.29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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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유적 발굴 당시 모습
서울 인사동 유적에서 매우 희귀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하던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물시계 옥루 혹은 자격루의 부속품인 ‘주전’(籌箭)으로 추정되는 동제품까지 한꺼번에 출토됐다고 문화재청이 29일 밝혔다. 사진은 발굴 당시 인사동 유적의 모습. 2021.6.29 문화재청 제공

서울 종로구 인사동 조선 전기 금속활자와 물시계 부속품 추정 동제품, 천문시계 부품 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금속 유물이라는 점이다.

2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금속활자와 물시계 부속품 추정 유물만 도기 항아리에 담긴 채로 발견됐다. 천문시계 부품과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銃筒), 동종(銅鐘) 등 상대적으로 큰 나머지 유물은 그 주변에서 출토됐다.

활자를 제외하면 모두 일정한 크기로 부러뜨린 채 묻은 것으로 확인됐다. 활자 일부는 불에 타 엉겨 붙은 상태였다.

발굴조사를 맡은 수도문물연구원 오경택 원장은 “조사 중에 도기 항아리를 보니 금이 나 있었는데, 조각이 떨어지면서 공깃돌 같은 파편 두세 개가 떨어졌다”며 “세척해 보니 금속활자여서 항아리를 통째로 연구원 수장고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서울 인사동서 조선금속활자 등 유물 무더기로 발견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서울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을 찾아냈다고 29일 밝혔다. 사진은 인사동에서 나온 일성정시의, 동종, 총통. 2021.6.29 문화재청 제공

▲ 서울 인사동서 조선금속활자 등 유물 무더기로 발견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서울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을 찾아냈다고 29일 밝혔다. 사진은 인사동에서 나온 일성정시의, 동종, 총통. 2021.6.29 문화재청 제공

유물이 나온 지점은 종로2가 사거리, 탑골공원 서쪽이다. 종로 뒤편에 있는 작은 골목인 피맛골과 인접한 땅이다.

이곳은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 경제·문화 중심지인 견평방(堅平坊)에 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는 관청인 의금부와 상업시설인 운종가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물이 확인된 곳은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둘 만한 장소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오 원장은 “건물터 형태를 보면 매우 특이하다”며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고, 서울 시내에서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택의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습한 유물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도기 항아리를 기와 조각과 작은 돌로 괸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묻은 정황을 알 수 있다”며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에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인데,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었다가 잊혀서 다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는 “구리는 조선시대에도 비싼 금속이었다”며 “유물을 재화, 즉 값나가는 물건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고도 주장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며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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