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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별’ 유상철, 이젠 ‘하늘의 별’

‘2002년의 별’ 유상철, 이젠 ‘하늘의 별’

홍지민 기자
홍지민 기자
입력 2021-06-07 22:32
업데이트 2021-06-0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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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감독, 암 투병 끝에 50세로 별세

한일월드컵 폴란드전 득점 등 4강 주역
A매치 124경기 18골… 2006년 프로 은퇴
2019년 투병 중에도 인천 2부 강등 막아
“돌아오겠다”던 약속 못 지키고 눈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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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4일 부산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폴란드와의 D조 1차전에서 후반 8분 한국의 두 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모습. 유 전 감독은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별세했다. 서울신문 DB
2002년 6월 4일 부산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폴란드와의 D조 1차전에서 후반 8분 한국의 두 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모습. 유 전 감독은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별세했다.
서울신문 DB
그라운드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안타깝게도 지켜지지 못했다. 췌장암 투병 중이던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 ‘유비’ 유상철 전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세상을 떠났다. 50세.

인천 구단에 따르면 유 전 감독은 이날 오후 7시쯤 입원 치료 중이던 서울아산병원에서 숨졌다. 고인은 위기의 인천을 이끌던 2019년 10월 황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시즌 종료 때까지 벤치를 지키며 인천의 2부 강등을 막아 냈다. 이듬해 1월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지휘봉을 내려놓고 치료에 전념해 왔으나 투병 1년 8개월여 만에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의 측근은 이날 “올해 초 병세가 호전되어 통원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최근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입원했다”며 “치료가 잘되는 것 같았지만 끝내 고비를 넘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보를 접한 축구계는 애도의 분위기에 잠겼다. 부고를 전한 기사의 댓글과 각종 축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 등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잇따랐다.

고인은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등과 함께 199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에서 수비수까지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해 한국 축구 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로 손꼽혔다.

1994년 울산을 통해 프로 데뷔했고 2006년 초 은퇴할 때까지 약 12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일본 J리그에도 진출해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가시와 레이솔에서 활약했다. K리그에서는 오로지 울산 유니폼만 입고 142경기를 뛰며 37골 9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A매치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24경기를 뛰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고 18골을 넣었다. 월드컵 무대는 1998년 프랑스 대회를 포함해 2차례 누볐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황선홍, 홍명보, 이운재, 안정환, 김남일, 설기현, 송종국, 이영표, 박지성 등과 함께 4강 신화를 쓰며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현역 은퇴 뒤 대전 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지휘봉을 잡았던 고인은 2019년 5월 강등 위기의 인천에 부임해 팀을 1부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때 병세가 호전되며 인천 감독 복귀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주변 만류로 치료에 전념해 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2021-06-0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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