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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빼앗긴 경대의 봄, 아직도 찾아주지 못했다

30년 전 빼앗긴 경대의 봄, 아직도 찾아주지 못했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1-05-13 17:36
업데이트 2021-05-14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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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봄/권경원 글/이강훈 그림/너머북스/302쪽/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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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17세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가운데)은 산업현장에서 숨진 김용균(오른쪽 두 번째)을 떠올리게 한다.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육우당(왼쪽 두 번째)은 변희수(맨 왼쪽) 하사와 성소수자 활동가 김기홍(맨 오른쪽)의 죽음과 닮았다.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숨진 1991년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젊은이들은 여전히 꽃처럼 지고 있다. 너머북스 제공·서울신문 DB
온도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17세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가운데)은 산업현장에서 숨진 김용균(오른쪽 두 번째)을 떠올리게 한다.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육우당(왼쪽 두 번째)은 변희수(맨 왼쪽) 하사와 성소수자 활동가 김기홍(맨 오른쪽)의 죽음과 닮았다.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숨진 1991년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젊은이들은 여전히 꽃처럼 지고 있다.
너머북스 제공·서울신문 DB
밥은 꼭 먹고 가라는 엄마의 메모에 아들은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금방 올게요”라고 답장하고 집을 나섰다. 그는 이날 등록금 문제로 경찰서에 잡혀 있던 총학생회장 구출 시위에 참여했고, 교문 쪽에서 사복 경찰에게 쇠파이프 구타를 당했다. 1991년 4월 26일 대학생 강경대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지금 우리가 만끽하는 자유의 봄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뻗어 왔다. 하지만 어쩌면,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학원 민주화와 노동 해방, 인권 신장을 외치며 국가 폭력에 맞서 몸을 내던졌던 1991년 봄부터 30년 사이, 봄을 맞지 못한 청년들을 되짚었다.

‘1991년, 봄’을 연출한 권경원 감독은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국가폭력 앞에 몸 던져 저항한 이들의 이야기를 수년간 취재하고 기록했다. 그 결과물로 낸 책에서 권 감독은 1991년 비극의 씨앗이 이때 잉태했다고 설명한다. 사회 각 부문으로 민주화 열기가 번져 나가자 정권은 3당 합당과 공안정국으로 반격에 나선다. 1990년 10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시위자는 끝까지 추적해 검거한다’면서 강력한 공안 통치로 사회를 옭아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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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명지대생 강경대를 비롯해 새파란 청춘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정권의 폭압에 항거했다. 4월 29일 전남대 학생 박승희가 강경대 사망 규탄 집회에서 분신했다. 5월 1일 안동대 학생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 학생 천세용,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그리고 5월 12일 직장민주화청년연합 회원 윤용하, 5월 18일 노동자 이정순, 전남 보성고 학생 김철수, 5월 22일 노동자 정상순이 몸을 던졌다. 5월 6일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가 의문사했고,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시위 도중 사망했다. 모두 20~30대의 나이였다.

젊은이들의 사망 이후 이들이 어떻게 폄훼되고 지워졌는지도 살핀다. 경찰은 애도의 행렬을 폭력으로 막아섰다. 지식인으로 칭송받던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며 변절의 길을 걸었다. 박홍 서강대 총장은 “주사파 같은 배후 세력이 있다”며 분열을 부추겼다. 검찰은 검사 9명을 동원해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했다.

저자는 당시의 아픔이 힘없고 이름 없는 이들에게 지금도 이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17살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이야기에는 꽃다운 나이에 숨진 김용균을 떠올리게 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맨 육우당 이야기에서는 변희수 하사가 겹친다.

승리의 기억으로 남은 1987년을 발판으로 정치권에 등장해 권력을 잡은 운동권 세력은 당시 폭정자들처럼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덮고, 내로남불의 구차스런 모습을 보인다. “1991년의 봄을 다시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진 않는다.

30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 이강훈 화가가 이들이 ‘꽃 피는 봄날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철쭉 핀 교정, 벚꽃 길, 보성 녹차밭 등을 배경으로 미소 띤 모습으로 애틋하게 그려 냈다. 30년 전 지워졌던 이름을 불러내 애도하고 성찰하기엔 너무나도 찬란한 봄이지만, 우린 그래도 기억해 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21-05-1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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