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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세상 유람] 코로나 시대, 우리 안의 파랑새를 찾아서

[심리학의 세상 유람] 코로나 시대, 우리 안의 파랑새를 찾아서

입력 2021-03-26 13:52
업데이트 2021-03-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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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차의과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초빙교수
박선영 차의과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초빙교수
두 달 전쯤 코로나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저녁 무렵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밤이 되자 38도가 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도 먼일처럼 느껴졌는데 그제야 실감이 났다. 다음 날에 있었던 중요한 일정을 취소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선별진료소에 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틀 동안 자가 격리를 하며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도 결과는 음성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인 나는 작년 한 해가 참 고단했다. 무엇보다 두 아이를 몇 달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다 보니 더 힘들었다. 여행이라도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길 수도 없으니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모두 그 형태나 정도는 다를지언정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초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관계의 단절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업이나 경제적 곤란과 같은 실질적인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코로나로 인해 삶의 여러 영역이 제한되는 것 또한 큰 심리적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괴로움을 다룰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가장 첫 번째 방법은 심리적 고통을 수용하는 것이다. 심리치료 분야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에서는 심리적 고통의 수용을 강조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고통을 피하거나 없애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괴로움이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통제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은 오히려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작금의 현실에 적용해보면, 코로나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일 확진자가 3~400명씩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여전히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으며 일상에서의 제약도 상당하다. 이러한 객관적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즉, 현재 상황을 탓하면서 분노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이 상황이 누구에게나 힘든 것임을 먼저 수용할 필요가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힘들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마음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직시한 고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치료를 창시한 빅터 플랭클은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조차 삶을 살아가는 이유, 즉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삶을 더욱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시기에도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가령,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와 타인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시민 의식을 자각하는 것은 고통을 위로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또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고통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고통이 의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 단절로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친밀감과 유대감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무능하다고 느껴 고통받는다는 건 성취와 유능감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반증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운지를 볼 수 있다면,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객관적인 상황은 힘들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된다면 이후에 그 길로 가는 여정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계를 통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심리학의 수많은 연구는 심리적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 시기,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건 타인을 함께 할 대상이 아닌 나를 감염시킬 수 있는 감염원으로 가정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법을 찾아내고, 서로를 향한 지지와 위로를 여전히 지속해나갔다.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 박사과정 학생들과 ‘내 안의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파랑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대상으로 화상 집단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백여 분을 상담하며 그 안에서 발견한 가장 큰 의미는 우리 모두 외로웠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온라인에서나마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위로했던 그 순간이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이적의 ‘당연한 것들’이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이제 백신 접종도 시작되었고, 코로나 치료제도 승인되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심리적 후유증은 앞으로 계속될 수 있다. 코로나 시대, 객관적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서로를 향한 온정과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새로운 일상을 수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벨기에의 동화 ‘파랑새’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돌고 돌아 찾게 되는 파랑새는 어쩌면 이미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박선영 차의과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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