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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글에서 세잔을 보듯… 글씨인 듯 회화인 듯

추사의 글에서 세잔을 보듯… 글씨인 듯 회화인 듯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21-03-10 20:22
업데이트 2021-03-1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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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글씨, 서가의 그림’ 展
김종영미술관 개관 20년 기념

서예 토대로 그림 다룬 작가들
김광업·김환기·백남준 등 11인
주류와 거리, 독자적 세계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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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추상화의 거장 한묵이 쓴 ‘비도´(1980). 김종영미술관 제공
기하학적 추상화의 거장 한묵이 쓴 ‘비도´(1980).
김종영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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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황창배의 ‘천지자만물지역여 광음자백대지과객´(1993). 김종영미술관 제공
동양화가 황창배의 ‘천지자만물지역여 광음자백대지과객´(1993).
김종영미술관 제공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우성 김종영(1915~ 1982)의 예술적 뿌리는 서예였다. 사물의 형태보다는 정신에 치중해 그리는 전통 서화의 ‘사의’(寫意)를 바탕으로 ‘추상’(抽象)이라는 서양미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다. 마음속 스승인 추사 김정희와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의 공통점을 찾아내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불각(不刻)의 미’를 이룩했다. 그는 “내가 완당(김정희의 다른 호)을 세잔에 비교한 것은 그의 글씨를 대할 때마다 큐비즘을 연상하기 때문”이라며 “완당의 글씨는 투철한 조형성과 아울러 입체적 구조력을 갖고 있고, 동양 사람으로는 드물게 보는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했다.
김종영 ‘통천하일기이’(通天下一氣耳). 김종영미술관 제공
김종영 ‘통천하일기이’(通天下一氣耳).
김종영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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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무제’(1967).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무제’(1967).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올해 개관 20년을 맞은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이 기념전 ‘화가의 글씨, 서가의 그림’으로 이 같은 우성의 예술관을 돌아본다. 전통 서예를 토대로 서양미술을 수용해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한 작고 작가 11명의 작품 50점을 모았다. 서예가 김광업·최규명, 시인이자 서화가 중광, 동양화가 이응노·황창배, 서양화가 곽인식·김환기·정규·한묵, 조각가 김종영, 비디오 작가 백남준 등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에 태어난 이들은 한국 화단이 전통 서화에서 미술로 전환되던 시기에 주류 미술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당시 서둘러 서구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따라가려는 세태와 정반대로 끊임없이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자기화하고자 했던 작가들”이라며 “21세기 한국 미술이 세계 속의 한국 미술로 나아가는 데 참고가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는 두 개의 공간에서 나뉘어 진행된다. 먼저 1층 전시실에선 미술가로서 서예에 정진한 작가, 제도권에서 활동하지 않은 서예가 등 서예를 공통분모로 한 8명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누가 서예가고, 누가 화가인지 구별이 어려울 만큼 글씨와 그림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풍경이 펼쳐진다.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거장인 한묵이 쓴 ‘비도’와 조각가 김종영의 글씨 ‘통천하일기이’(通天下一氣耳)는 서예가의 솜씨 같고, 서예가 최규명이 먹과 색으로 쓴 ‘요산’은 추상회화를 보는 듯하다. 서예와 문인화 전통에 기반을 두고 추상화를 시도한 이응노, 동양화에 서구 미술사조를 가미해 현재화를 모색했던 황창배, 선화(禪畵)의 영역에서 파격적인 필치를 구사했던 ‘걸레 스님’ 중광의 글씨와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서예가 김광업 ‘자강불식’. 1960년대. 김종영미술관 제공
서예가 김광업 ‘자강불식’. 1960년대. 김종영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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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心’(연도 미상).
백남준 ‘心’(연도 미상).
3층 전시실에는 특별히 서예에 정진하지는 않았지만 전통 서화의 미감과 작품관을 지닌 김환기, 백남준, 정규 세 작가의 작품을 모았다. 김환기가 신문지에 유화로 한글 자모와 한자 등을 그린 1960년대 ‘무제’ 3점은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다. 김환기가 남긴 서예 작품은 2점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의 한시를 적은 작품이 2년 전 일반에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백남준의 작품에는 문자와 기호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선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쓴 ‘心’(마음 심) 등 4점이 선보인다. 유화와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작업을 펼친 정규의 작품 ‘다도해’에선 전통적인 우리 자연의 형태와 색채미가 도드라진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1-03-1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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