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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명 시장vs표현의 자유… 트위터·페북 ‘인도’ 시험대 오르다

13억명 시장vs표현의 자유… 트위터·페북 ‘인도’ 시험대 오르다

이지운 기자
입력 2021-03-08 17:40
업데이트 2021-03-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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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사이트] 빅테크 기업 길들이기 나선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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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Big Tech) 회사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번에는 ‘인도’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인도 정부가 페이스북과 왓츠앱, 트위터 등의 직원들을 감옥에 가두겠다는 경고를 보냈다고 지난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경고는 해당 회사들이 최근 인도 농민 시위와 관련된 정보와 계정 폐쇄 등 정부의 요구를 거절한 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나왔다. 동시에 거대 외국 플랫폼 회사들을 길들이기 위한 시도로 해석됐다.

앞서 지난 1월 인도 전자정보기술부는 “소셜미디어가 범죄, 반국가세력 등에 의해 오용되는 사례가 늘었다”며 ‘디지털 콘텐츠 관련 중재 가이드라인과 윤리 규정’을 새롭게 도입했다. 규정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플랫폼 회사들은 인도 정부의 법적 요청이 있을 때 관련 콘텐츠를 36시간 이내에 제거해야 한다. 사이버 보안 이슈와 관련해 정부 요청을 받게 되면 72시간 이내에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불법 메시지 최초 작성자의 신원도 제공해야 한다. 이에 응하지 않은 현지 법인의 임원에게 최고 7년의 징역과 벌금을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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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농민들이 지난해 가을 통과된 3개의 농업 관련 법안에 반대해 일어난 시위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인도 정부는 시위 옹호 SNS 삭제를 요구하며 글로벌 기술 기업들을 압박, 또 다른 전선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뉴델리 외곽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비난하며 인형을 불태우는 장면. 뉴델리 AP 연합뉴스
인도 농민들이 지난해 가을 통과된 3개의 농업 관련 법안에 반대해 일어난 시위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인도 정부는 시위 옹호 SNS 삭제를 요구하며 글로벌 기술 기업들을 압박, 또 다른 전선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뉴델리 외곽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비난하며 인형을 불태우는 장면.
뉴델리 AP 연합뉴스
●美언론 “트위터, 트럼프 퇴출 때 용기 보여라”

SNS 서비스 기업에 대한 인도 정부의 압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트위터는 지난 2월 초 농민 시위와 관련해 잘못된 정보가 제공된다며 계정 1000여개를 삭제해 달라는 인도 정부의 요청을 수용했다. 뉴델리에서 농민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정부가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리트윗했던 팝가수 리애나, 시위 상황을 공유했던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시위를 밀착 취재해 온 내러티브 보도 매거진 등이 문제가 됐다.

이후 트위터가 자체 조사를 통해 ‘(삭제한) 내용들은 언론의 자유에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인도 정부에 통보한 뒤 계정을 복원했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문제 삼았다. 지난 2월 10일자 NYT 기사는 “트위터가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킨 뒤 논란의 중심에 서더니 인도에서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계정을 차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도 정부는 운동가들과 언론인들을 체포했고 언론기관들에 압력을 가했으며 모바일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면서 “트위터는 트럼프의 계정을 차단했을 때와 같은 용기를 보여야 한다”는 인도 변호사의 견해를 소개했다.

기사는 2020년 상반기를 다룬 트위터의 ‘17차 투명성 보고서’ 내용을 실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일본, 러시아, 한국, 터키에 이어 콘텐츠 삭제 요청이 다섯 번째로 많은 나라”였다. 이 기간 트위터는 53개 국가로부터 8만 5375개 계정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삭제해 달라는 법적 요청을 4만 2220건 받았는데, 이 5개 국가로부터의 콘텐츠 삭제 요청이 96%를 차지했다. “인도는 법원 명령을 포함해 5500건의 법적 요구서를 보내 특정 트위터 내용을 차단하라고 요구했다”고 NYT는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오락가락한 트위터의 태도였다. 일부 계정을 열었던 트위터는 인도 정부가 법적 조치를 운운하며 위협하자 2월 12일 대부분의 계정을 다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트위터는 “계정은 인도 내에서만 차단될 것이며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들의 계정은 포함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허한 지침을 제시했다.

●中·인도 갈등 속 퇴출된 틱톡, 60억弗 손실

WSJ는 “인도 정부는 싸울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했다. 미국 언론들은 ‘제2의 틱톡’ 사태를 거론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중국과 국경에서 무력 충돌이 생기자 인도가 안보상의 문제를 들어 틱톡과 위챗 등을 포함한 59개의 중국산 스마트폰 앱을 금지시켰던 사례를 떠올린 것이다. 틱톡은 자타 공인 중국 앱의 대표 주자로, 인도의 동영상 생태계를 장악했었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틱톡 사용자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였다. 2019년 인도에서 3억 2300만회 다운로드됐는데, 이는 전 세계 다운로드 횟수의 30%에 달하는 것이다. 틱톡의 모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 관계자는 당시 “(인도의 차단 조치로 인해) 기업평가액 감소분을 포함해 약 60억 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13억명의 인구, 확대되는 인터넷 접속률, 성장하는 중산층을 거느린 인도에 대해 WSJ는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 노리는 거대한 성장시장”이라고 평가하며 “중국에서 퇴출당한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 접속이 활발하고 수억 명의 소비자가 처음으로 온라인에 접속하는 인도의 인터넷 경제에 매료됐다”고 전했다. 특히 페이스북은 선진국에서의 성장이 둔화된 이후 인도에서 서비스 확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페이스북의 왓츠앱은 인도 최대 인기 앱이다. 2020년 1월 기준으로 사용자가 4억명을 넘었다. 인도 내 페이스북 사용자는 3억 4000만명, 트위터 사용자는 7500만명가량이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인도 내 사업 확장을 위해 인도 통신 사업자와의 새로운 제휴에 57억 달러(6조원 이상)를 지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 대안있는 투쟁

인도의 전투 의지 이면에는 인도판 트위터인 ‘쿠’(Koo)가 있다. ‘파란 새’ 트위터를 본떠 ‘노란 새’를 상징물로 쓰는 ‘인도산 SNS’는 지난해 3월 출시됐고, 영어뿐 아니라 8개 현지 언어로 이용 가능하다. “트위터는 인도법을 따라 인도 정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인도 내각 각료와 여당 정치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인도 기업이 만든 쿠로 갈아타자”고 팔로어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트위터에서 960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피유시 고얄 상무장관은 “나는 이제 쿠를 쓴다. 쿠에서 만나자”는 게시물을 올렸다. 인도 네티즌들은 트위터에서 트위터 반대 해시태그 달기 운동을 벌였다. 쿠도 “인도 말로 인도인들과 연결하자”며 애국주의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다.

인도 정부의 요구 앞에서 우왕좌왕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언론의 자유 편에 서는 동시에 혐오 발언 퇴출 운동을 벌여 온 전 세계 진보세력의 신뢰를 많이 상실한 상태다. NYT는 지난 1월 미국 워싱턴DC의 의사당 폭력 난입 사건 이후에야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트럼프의 계정을 차단했다고 전하며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그간 줄기차게 제기되던 혐오 발언 삭제 요구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다가 트럼프 계정 퇴출만 ‘예외적으로’ 실행한 점이 도리어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을 화나게 했다”고 전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폭력 선동 트윗 제한 조치에 대해 ‘불가능한 일’이란 식으로 대응하던 SNS 기업들이 의회 난입이 벌어지자 트럼프의 계정을 속전속결로 차단한 건 이율배반적이란 것이다. 트럼프 계정은 차단됐지만 인도,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등에서의 혐오 발언 삭제 요구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란 명분에 밀려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이제 와서 ‘언론·표현의 자유’에 입각한 내부 규정을 세우자니 인도는 너무나 매력적인 시장이고 인도 정부의 태도는 너무 강경하다.

이지운 전문기자 jj@seoul.co.kr
2021-03-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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