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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그날, 광주 가해자가 털어놨다

‘5·18’ 그날, 광주 가해자가 털어놨다

김성호 기자
입력 2020-10-29 20:16
업데이트 2020-10-3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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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내란수괴 전두환/허장환 지음/멘토프레스/360쪽/2만원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의 증언록
1988년 12월에 5·18 가해자로서 첫 양심선언
나치 유대인 학살 능가하는 잔혹한 참상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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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어느 날 광주에서 총과 막대를 든 계엄군 앞에 한 남성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소속이었던 허장환 수사관은 8년 후 양심선언에 나서 “광주에선 나치 독일 아우슈비츠 유대인 도살장을 능가하는 잔혹한 참상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연합뉴스
1980년 5월 어느 날 광주에서 총과 막대를 든 계엄군 앞에 한 남성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소속이었던 허장환 수사관은 8년 후 양심선언에 나서 “광주에선 나치 독일 아우슈비츠 유대인 도살장을 능가하는 잔혹한 참상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연합뉴스
‘피해자가 엄연하고 아픔도 여전하지만 가해자는 없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드리워진 분노의 모순이다. ‘5·18 내란수괴 전두환’은 그 공전의 역사인 ‘광주항쟁’ 당시 가해자 편에 있었던 인물의 증언록으로 눈길을 끈다.

5·18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이 저자다. 전남·북 계엄분소 합동수사단과 광주사태 처리수사국 국보위 특명반장을 담당했고 1988년 12월 6일 평민당사에서 5·18 가해자로서 가장 처음 양심선언을 했던 인물.

당시 폭탄선언은 이랬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2차 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나치 독일 아우슈비츠 유대인 도살장을 능가하는 잔혹한 참상이었음을 폭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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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단체와 시민들이 전씨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5·18 단체와 시민들이 전씨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저자는 목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을 만큼 국가와 조직에 충성을 다짐하고 실행하던 보안대 요원이었다. 그런 그가 양심고백을 하고 책까지 펴낸 데는 숱한 곡절이 숨어 있다. 인권변호사인 홍남순 변호사가 김대중과 엮이며 내란수괴자로 몰려 505보안대에 끌려온 게 시작이다. 허장환은 직속상관인 서의남 505보안대 대공과장에게 홍 변호사의 무고함을 주장하면서 맞섰다가 항명죄로 불명예 강제전역을 당했다. 이후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당시의 일들을 정리했으나 안기부에 압수당했다고 한다. 거듭되는 신변 위협과 협박에 수십년을 숨어 살았다.

책의 의미는 역시 ‘가해자가 털어놓는 사실’의 증언이다. 우선 국보위 실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5월 17일 24시를 기해 단행한 계엄확대는 치밀하게 사전계획된 것이었음을 폭로한다. 계엄확대가 ‘광주에 특정된 것’이라는 발언이 공공연했다. 시가지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비공식 은거지’인 호텔 객실 5층에서 시위와 진압 방식을 보고 군인들이 시위대를 자극했고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됐음을 알았다고 쓰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와 부인 이순자씨. 서울신문 DB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와 부인 이순자씨.
서울신문 DB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광주 방문 사실을 거듭 확인시킨 저자는 공수부대가 교도소에 주둔한 것도 시민들의 교도소 습격을 저지하려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시민들이 시 외곽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고립 봉쇄임무 수행이었다고 밝힌다. 도청에서 발생한 ‘독침사건’은 흥분된 군중들을 자극하기 위한 작품이라고도 증언한다. 계엄군 간 쌍방교전 사실과 조선대 총장 체포사건의 전말도 털어놓는다.

책 곳곳에 광주시민들이 겪었던 참상이 생생하다. ‘시체 암매장’ 소문이 나돌아 직접 방문한 광주교도소에선 “지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26일 새벽 시민군 지휘본부인 도청 진압작전이 막 끝난 뒤 가장 먼저 뛰어들어 갔다가 창문에 처참하게 걸린 시신들을 목격한다.
책 뒤쪽에 붙인 부록들은 증언 못지않게 귀한 자료들로 눈길을 끈다. 5·18 당시의 횡행했던 유언비어들이 “전두환과 그 세력들이 운용한 편의대(편의공작대)의 공작”이란 점 말고도 당시 군부지휘 체계도, 계엄군 사령관 지시사항 등 진상규명에 중요한 자료들이 수두룩하다.

“그 시절 나에 대한 합리화나 한때 뜻을 같이했던 동료들에 대한 배신으로 각인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저자는 “역사는 개인의 아픔이나 과거보다 훨씬 크고 깊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민족의 비극사를 초래하면서까지 광주사태를 유발한 정치적 배경과 목적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바르게 알려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일성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20-10-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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