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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 덮친 집·밭 걱정에 코로나까지… 텐트밖 마스크도 못 벗어요”

“토사 덮친 집·밭 걱정에 코로나까지… 텐트밖 마스크도 못 벗어요”

이천열 기자
이천열, 남인우 기자
입력 2020-08-05 17:38
업데이트 2020-08-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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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이재민 생활시설 가보니

집 잃고 학교 체육관서 56명 텐트 생활
자원봉사자 오는데 마스크 지급 못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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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댐 3년 만에 방류
소양강댐 3년 만에 방류 한강의 홍수조절 최후 보루인 소양강댐이 닷새째 이어진 집중호우로 홍수기 제한수위 190.3m를 넘어감에 따라 5일 3년 만에 수문을 열고 방류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소양강지사는 이날 오후 3시를 기해 수문을 차례로 열었으며 일단 15일 자정까지 방류할 예정이다. 북한강 수계 댐도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는 상황에서 최상류 소양강댐마저 방류가 이뤄져 한강 수위는 1~2m가량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춘천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이 경황에 코로나를 걱정해야 하나요.”

집중호우가 번갈아가며 곳곳을 파괴한 충청권 주민들은 복구작업 늑장에 불만을 터뜨리며 코로나19 감염도 걱정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예측 못하는 폭우가 쏟아지고 일손까지 부족해 농경지 등에는 복구의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5일 오전 찾은 충북 음성 삼성중 강당의 이재민생활시설 안은 침묵이 흘렸다. 얼굴은 근심이 가득했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이재민들이 탁자에 붙어 앉자 군 공무원이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며 간격을 띄우라고 요구했다. 군 관계자는 “노인들이 불편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앞으로 식사도 텐트 안에서 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정자(62)씨는 “텐트 밖에만 나오면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서 “집이나 밭에서도 안 쓰는 마스크를 종일 쓰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토사가 덮친 밭 걱정하기도 힘든데 마스크까지 괴롭힌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정덕자(71)씨는 “마스크를 신줏단지 모시듯이 한다”며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코로나 걱정을 안 할 수 없다”고 쓴웃음 지었다. 그는 “비가 하루만 늦게 왔어도 자식들에게 아로니아를 수확해 줄 수 있었는데”라며 끝내 눈물을 훔쳤다. 이곳에는 지난 2일부터 삼성면 이재민 56명이 생활하고 있다. 최대 3명까지 누울 수 있는 텐트 29개가 설치돼 있다.

서울신문과 이날 전화로 연결된 충남 천안시 수신면 장산3리 이장 안이근(59)씨는 “오늘도 비닐하우스 물이 안 빠져 손도 못 대고 있다”면서 “모터로 물을 퍼내야 하는데 전기가 끊겼다. 한전에 연락했더니 ‘비 피해가 너무 광범위하니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동네 전파사에 연락해 (모터를) 돌릴 방법을 찾는데 이게 언제 될지 아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마을은 지난 3일 폭우가 쏟아져 ‘아우내 오이’와 ‘수신 멜론’을 심은 비닐하우스 50동 3만 3000㎡가 침수됐다. 안씨는 “이틀이 지나니 흙탕물 묻은 열매와 잎이 썩고, 벼도 이삭이 누렇게 변했다”며 “오늘도 비가 떨어지는 농경지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3년 전에도 수해가 나 도청에 준설을 요구했더니 환경단체 (오리 서식지라며) 반대 탓을 하더라”며 “사람 목숨이 오리 새끼만도 못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3리 주민 이덕희(63)씨는 “이웃 5명이 여전히 마을회관에서 묵고 있다”며 “자원봉사자들이 오는데 마스크는 지급도 못 받았다”고 전했다. 이곳은 온양천 도로 100m가 붕괴돼 10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6시까지 사망 15명, 실종 11명이라고 발표했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음성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2020-08-0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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