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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타자게임 대항전서 순위 오른 여대에 쏟아진 혐오

온라인 타자게임 대항전서 순위 오른 여대에 쏟아진 혐오

김태이 기자
입력 2020-06-03 10:22
업데이트 2020-06-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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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차지한 숙명여대에 “매크로 이용” 억측과 비난

숙명여대. 연합뉴스
숙명여대. 연합뉴스
참가자들의 소속 대학별로 경합을 벌이는 한 온라인 타자 게임 대회에서 서울의 한 여대 순위가 급상승했다는 이유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 사이에서 비난 댓글의 표적이 됐다.

이 여대 학생들이 집단으로 점수를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나왔지만, 대회 주최 측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남성들이 근거 없는 억측으로 여성을 매도하는 집단적 혐오를 드러낸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발단은 한글과컴퓨터 주최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열린 ‘한컴타자 대항전’에서 숙명여자대학교의 순위가 급상승한 것이었다.

이 대회는 참가한 대학생들이 일대일로 타자 게임을 벌여 얻은 점수가 합산돼 소속 대학의 순위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대회 종료 시점에 상위 3개 학교의 상위권 참가자들에게는 상품으로 치킨 기프티콘을 준다. 1위에는 150개, 2위는 100개, 3위는 50개 등이다.

지난달 28일께까지는 부산대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아주대와 동국대, 충남대 등이 2, 3위를 두고 경쟁하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대회 초반 10위권에 머물렀던 숙명여대가 29일께부터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틀 만인 31일 오후 부산대에 이어 2위에 오른 뒤 대회 마지막 날까지 순위를 지켰다.

그러자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로 유명한 A사이트 등에서는 숙명여대가 부정한 방법으로 순위를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숙대생들이 자동화 프로그램(매크로)을 이용한 게 틀림없다”, “특정 참가자에게 일부러 져서 점수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게임 규칙을 어겨가며 학교 순위를 올렸다”고 주장하는 글이 많은 추천을 받았다.

문제는 대회 순위에 대한 의구심을 넘어 대회에 참가한 숙명여대 학생과 여성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도 다수 올라왔다는 것이다.

숙명여대 일부 학생이 여성운동을 벌여 온 점을 거론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페미니스트를 할 수가 없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글도 있었다.

일부 자정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 사안은 페미니즘과 관련 없는 사안인데, 왜 숙대라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를 들먹이며 비난하느냐”는 취지의 댓글은 십여 개의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 관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언급된 순위 조작 의혹에 대해 로그 기록을 분석한 결과 매크로로 추정되는 행위는 전혀 없었다”며 “갑작스럽게 점수가 추가되는 것은 승점이 랭킹 시스템에 반영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 조작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만일 특정 참가자에게 점수를 몰아주는 행위가 있었더라도 그 자체로 이번 대회의 규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남성들이 가진 여성에 대한 피해 의식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분출된 양상으로 분석했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인터넷은 확증편향(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성)이 심한 공간”이라며 “사실에 기반해 건설적인 비판을 내놓기보다는 평소 이성에 대해 가졌던 혐오와 갈등이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젊은 남성들은 사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오히려 자신이 성별 차별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감정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슈가 터질 때마다 극단의 대결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연구위원은 “혐오가 낳는 사회적 폐해 등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며 “커뮤니티 사이트도 극단적인 혐오 댓글을 제재하는 등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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