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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구하라법… ‘네이밍 법안’ 어디까지 괜찮나

민식이법·구하라법… ‘네이밍 법안’ 어디까지 괜찮나

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입력 2020-05-27 16:50
업데이트 2020-05-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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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이름 붙은 ‘네이밍법’ 발의 늘어
통과 후 반대여론 ‘민식이법’ 부작용도
“법 감정에 가려 내용 전달 안돼” 지적
이슈화로 인한 법 통과 유리 장점도 뚜렷

학교 앞 교통사고 발생시 운전자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민식이법’이 시작된 지난 3월 25일 서울 성동구 한 초등학교 앞에 속도제한 표지판이 보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학교 앞 교통사고 발생시 운전자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민식이법’이 시작된 지난 3월 25일 서울 성동구 한 초등학교 앞에 속도제한 표지판이 보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민식이법, 하준이법, 김용균법, 윤창호법, 구하라법…. 오는 29일 막을 내리는 20대 국회에서는 이런 네이밍 법안들이 대거 발의됐다. 매 국회에서 크게 증가하는 법안 발의 건수와 맞물려 21대 국회에서도 네이밍 법안 입법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구체적 내용보다 상징성이 부각되곤 하는 네이밍 법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민식이법’은 네이밍 법안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대표적 사례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차량에 충돌해 사망한 고 김민식군 사망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법안은 스쿨존 내 신호등 및 과속단속카메라 의무설치와 사망사고 발생 시 3년 이상 징역 부과를 골자로 한다. 법안 처리 당시만 해도 피해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우세했다. 이 때문에 여야는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에도 민식이법을 민생 법안으로 보고 합의 처리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본격 시행 후 운전자들을 중심으로 무고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며 개정·폐지 여론이 높다.

불과 몇 달 사이 달라진 여론은 네이밍 법안의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준다. 모든 네이밍 법안이 그렇듯 민식이법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라는 긴 법안명으로는 민식이법의 핵심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발의한 의원과 언론 등이 붙인 별칭이다. ‘일부개정법률안’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네이밍 법안 독립된 하나의 법안이 아니다. 기존 법 조항 일부를 삽입·수정·삭제하는 것을 편의상 ‘○○○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네이밍 법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특히 피해자 이름이 붙은 법안은 국민 법 감정에 호소하는 측면이 커 정작 실질적인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식이법이 발의됐을 때 법조계에서는 고의범과 과실범을 구별하지 않는 등에 대한 과중한 처벌과 위헌 소지 우려가 높았지만, 일부 국민들이 반대하는 국회의원에게 문자폭탄을 보내는 등 비난 여론이 입법을 부추긴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꼭 통과시켜야 하는 법’이란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면 엉터리법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네이밍은 법안을 사회적인 의제로 공론화시키는 장점이 뚜렷하다. 20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2만 3045건으로 20년 전 15대 국회(1144건)의 약 20배에 이른다. 무수한 법안 사이에서 이슈화를 거쳐 국회 통과라는 동력을 얻으려면 눈에 띄는 네이밍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네이밍 법안은 해당 사안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이점이 있고,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인지도를 함께 올리는 효과까지 있다”면서 21대 국회에서도 네이밍 법안이 쏟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본질보다 상징에 치우치는 부작용도 있다”며 “특히 피해자의 이름을 붙일 때는 유가족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점 등 영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피해자 이름에서 따온 법안명이 바뀐 사례도 있다. 8세 아동 성폭행 사건인 ‘조두순법’이 대표적이다. 사건 초기 피해자의 가명에서 따온 ‘나영이법’으로 불렸지만, 피해자 부모가 가명이더라도 피해자 이름이 붙는 것으로 원하지 않아 ‘조두순법’으로 정착된 바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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