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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구도 틀이 깨진다… 좌우에서 ‘정체성’으로

대립구도 틀이 깨진다… 좌우에서 ‘정체성’으로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0-04-16 17:56
업데이트 2020-04-1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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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에이미 추아 지음/김승진 옮김/부키/352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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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 진압 작전을 지켜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참모들.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할 때 복잡한 민족 구성과 갈등을 간과하면서 IS가 생겨나는 원인을 제공했다.  서울신문 DB
백악관에서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 진압 작전을 지켜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참모들.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할 때 복잡한 민족 구성과 갈등을 간과하면서 IS가 생겨나는 원인을 제공했다.
서울신문 DB
미국 백인 엘리트들이 2016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지금도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그토록 많은 미국 노동자들이 왜 도널드 트럼프를 찍었을까 하는 점이다. 말도 안 되는 협잡꾼의 주장에 다들 집단 사기라도 당한 게 아닐까.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신간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트럼프 당선과 백인 하층 노동자들의 지지를 엮어 미국의 특이한 정체성을 분석했다.

둘은 재력과 학력에서 차이가 있을 뿐 취향이나 감성, 가치관 등에서는 아주 유사하다. 그들은 교육 수준이 낮고, 인종주의적이며, 반페미니스트이자, 거리낌 없이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다. 백인 하층 노동자들은 이런 트럼프를 ‘같은 부족 사람’이라 생각했고, 기꺼이 표를 줬다고 봤다.

국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인 미국은, ‘민족’ 정체성은 약하지만 강력한 ‘국가’ 정체성으로 하나가 된 유일한 국가다.

이런 특징 때문에 미국은 다른 나라의 민족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패하기도 했다.

냉전의 렌즈로만 바라봤던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베트남의 화교는 인구 비중이 1%밖에 안 되지만, 경제적 부의 70~80%를 장악한 상태였다.

미국이 친자본주의적 조치를 취할 때마다 오히려 베트남 사람들은 분노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수장인 호찌민이 그저 중국의 꼭두각시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호찌민은 화교를 향한 베트남 사람들의 증오를 적절히 활용해 미국을 물리쳤다.

저자는 미국이 간과한 건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화교에 대한 증오였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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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는 서방을 향한 자살폭탄 테러를 벌이면서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 책 ‘정치적 부족주의’는 미국이 전 세계의 갈등을 좌우 구도로만 바라보는 실수를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서울신문 DB
IS는 서방을 향한 자살폭탄 테러를 벌이면서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 책 ‘정치적 부족주의’는 미국이 전 세계의 갈등을 좌우 구도로만 바라보는 실수를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서울신문 DB
미국이 “민주주의가 자유를 사랑하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라크를 침공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당시 복잡한 이라크의 민족 구성과 그들의 갈등을 간과했다. 당시 이라크는 수니파가 집권하고 있었지만, 전체 인구 60%는 반대편인 시아파였다.

민주적 선거 방식은 오히려 시아파 정권을 탄생시켰고 수니파에 대한 처참한 보복과 이에 맞선 무장단체이자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를 낳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 이후 미국에서는 민족과 유사한 ‘부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는 데 저자는 우려를 드러낸다.

2017년 2월 캔자스주에서 백인 퇴역 해군이 “우리나라에서 꺼져!”라면서 인도계 미국인을 죽인 일, 그해 5월 열차에서 무슬림을 욕하던 남자가 말리던 사람 2명을 찌른 일 등이 연이어 이어진다.

이제 미국을 바라보는 틀을 좌우 구도가 아닌 ‘부족´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은 미국의 특징을 설명하면서도, 우리에게 불편한 기시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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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좌우 이데올로기는 최근 들어 서서히 옅어지고, 대신 경제와 교육수준, 세대, 종교, 성별 등 다양한 정체성 갈등이 좌우 대결을 압도한다.

저자는 이런 정치적 부족주의를 경계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작은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금기를 자유롭게 꺼내놓고, 비난 대신 관용을 보이며 보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4·15 총선도 끝난 상황에서 책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준다. 너와 나를 나누고 우리 편이 누군지를 가르는 데에 급급하면 파멸할 수밖에 없다고. 선거 이후 우리도 작은 한 발을 내디뎌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20-04-1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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